달은 아직 그 달이다 창비시선 398
이상국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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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25



농성장을 꽃밭으로 바꾸어 주는 ‘사랑’

― 달은 아직 그 달이다

 이상국 글

 창비 펴냄, 2016.5.9. 8000원



  시인 이상국 님은 마흔 해라는 나날을 두고 시를 써서 일곱째 시집 《달은 아직 그 달이다》(창비,2016)를 선보입니다. 마흔 해에 걸친 시쓰기는 마흔 해에 걸친 노래라고 느낍니다. 마흔 해를 한결같이 시처럼 삶을 바라보며 읊는 노래이지 싶습니다.


  시라고 하는 한길을 차근차근 걸어온 발자취를 헤아립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쌀을 씻어서 불리고, 부엌을 갈무리하고,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고, 마당을 쓸고, 밭자락을 돌아보고 난 뒤에 시 한 줄을 가만히 읽어 봅니다.



봄이 되어도 마당의 철쭉이 피지 않는다 / 집을 팔고 이사 가자는 말을 들은 모양이다 / 꽃의 그늘을 내가 흔든 것이다 (그늘)


내가 아는 유월은 오월과 칠월 사이에 숨어 지내는데 사람들은 잘 모르고 그냥 지나간다. 유월에는 보라색 칡꽃이 손톱만 하게 피고 은어들도 강물에 집을 짓는다. (유월)



  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새 유월에 새롭게 들일을 합니다. 바야흐로 한낮 햇볕이 따가운 철인 터라 새벽 일찍 하루를 엽니다. 일흔 해나 여든 해를 살아온 이 시골자락에서 언제나처럼 시골일을 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문득 생각해 봅니다. 찔레꽃이 지면서 찔레알이 천천히 여무는 이 유월에, 붓꽃도 차츰 시들고 옥수숫대는 무럭무럭 오르는 이 유월에, ‘시 할아버지’와 ‘시골 할아버지’ 사이에 흐르는 기운을 생각해 봅니다. 일흔 고개로 접어든 ‘시 할아버지’는 이녁 어릴 적 이야기를 자꾸 시로 적바림합니다. 어린 나날 마주한 시골 모습을 그리고, 어린 나날 먹던 밥을 그리며, 어린 나날 하던 시골일을 그립니다.


  일흔 살 시 할아버지는 천천히 흙내음 쪽으로 몸이 기울어질는지 모릅니다. 어린 날 마음에 새겨진 흙내음을 떠올리고, 오늘날 새롭게 마주하는 유월 바람을 가만히 되새깁니다. 지난날 유월에 만난 칡꽃을 되새기면서, 오늘날 새삼스레 맞이하는 유월 땡볕에 땀을 흘립니다.



아카시아꽃을 씻어 / 밥 잦을 때 안치면 // 이밥보다 하얀 / 꽃밥이 되었다 (꽃밥 멧밥)


친구 어머니 문상을 했다. // 그 나이 되도록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니 얼마나 고마웠을까. (신발을 찾아 신다)



  시 할아버지는 아카시아꽃을 씻어 꽃밥을 지어 먹었다고 합니다. 나는 오늘 내 보금자리에서 모시잎을 훑어 모시밥을 지어 먹습니다. 이른 봄에는 여린 쑥을 뜯어서 쑥밥을 지어 먹었고, 오뉴월에는 모시잎을 뜯어서 모시밥을 지어 먹어요. 가을에는 감자밥을 지어 먹고, 겨울에는 고구마밥을 지어 먹어요. 때로는 무밥을 지어 먹고, 당근을 넣은 당근밥도 지어 먹습니다. 감꽃을 주워서 감꽃밥을 지어 먹기도 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시골일은 하나같이 ‘먹는 일’인가 싶기도 합니다. 땅을 만지는 일이란, 내 입으로 들어올 밥을 정갈히 다스리는 일인가 하고 돌아봅니다.


  살림을 짓는 일이라면 아이들을 건사하면서 보살피고 사랑하는 일이 될 테지요. 시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시 한 줄이란, 시로 지은 꿈을 이야기로 들려주는 일이 될 테고요. 아이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뛰노는 하루란 그야말로 재미난 놀이를 짓는 일이라 할 터입니다.



얼마 전 한국의 중구청 공무원들이 / 쌍용차 대한문 농성장을 철거하고 / 화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 꽃들이 얼마나 좋아했을까 // 노동자들의 자비다 (자비에 대하여)



  투박한 말투로 꽃을 말하고 사랑(자비)을 말합니다. 농성장이 사라지고 꽃밭이 생겨난 일을 지켜본 시 할아버지는 ‘꽃사랑’을 넌지시 말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 나라에는 너른터(광장)가 수없이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이 넉넉히 모여서 뭔가를 꾀할 만한 자리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나저나 “한국의 (중구청) 공무원”들이 꽃밭(화단)을 좋아한다면, 꽃을 그토록 사랑한다면, 광화문도 청와대도 국회의사당도 모두 조용히 헐고서 꽃밭으로 바꾸어 줄 수 있을까요? 모든 시멘트덩이를 걷어내고 꽃밭이나 꽃숲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을까요? 고속도로도 골프장도 축구장도 말끔히 걷어내고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을까요? 농성장만 꽃밭으로 바꾸지 말고 온 나라에 고운 꽃내음이 퍼지는 사랑스러운 마을로 바꾸어 볼 수 있을까요?



예닐곱살쯤 돼 보이는 계집아이에게 / 아빠는 뭐 하시냐니까 // 우리 아빠가 쫄딱 망해서 이사 왔단다 // 그러자 골목이 갑자기 환해지며 / 그 집이 무슨 친척집처럼 보이기 시작했는데 (쫄딱)



  착한 사랑을 그리고 싶습니다. 고운 사랑을 그리고 싶습니다. 농성장을 꽃밭으로 바꾸어 주는 사랑보다는, 아프게 외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랑을 그리고 싶습니다. 오월꽃과 유월꽃이 베푸는 보드라운 냄새에 몸을 맡길 줄 아는 사랑을 그리고 싶습니다. 흙내음을 아끼고, 나무 한 그루를 돌볼 줄 아는 사랑을 그리고 싶습니다.


  시집 《달은 아직 그 달이다》를 덮고 아침밥을 지으려 합니다. 부엌에 들어온 파리 한 마리를 손으로 살살 쫓으면서 문 밖으로 내보냅니다. 굳이 파리채를 들지 않고도 파리를 밖으로 내보낼 만합니다. 파리더러 거름자리로 가서 네 몫을 즐겁게 맡아 달라고 속삭입니다.


  환해지는 골목처럼 환해지는 마을을 그려 봅니다. 이웃이 서로 아끼는 살림을 그려 봅니다. 환해지는 나라와 환해지는 시 할아버지 마음을 그려 봅니다. 유월볕을 받는 논자락 볏포기가 싱그러이 빛나는 나날입니다. 2016.6.1.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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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무명치마 창비아동문고 70
김종상 지음 / 창비 / 198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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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76



호박잎에 비 내리는 소리 듣는 시골집에서

― 어머니 무명치마

 김종상 글

 한연호 그림

 창작과비평사 펴냄, 1985.8.30. 7000원



  어제 우리 집 텃밭에서 콩꽃을 보았습니다. 언제 피려나 하고 날마다 수없이 들여다보았는데, 새벽에는 못 본 꽃이 낮에 살그마니 봉오리를 열었어요. 밥상을 차리고 나서 이래저래 집 안팎을 드나들며 몇 가지 일을 하다가 콩꽃을 보고는 한동안 바라보다가 부엌으로 돌아가서 밥상맡에 앉았지요. 먼저 밥을 먹는 아이들한테 “오늘 콩꽃 피었는데 보았니?” 하고 물었어요. 아이들은 아직 못 봤다면서, 밥을 먹다 말고 숟가락을 던지고 콩꽃을 보러 가려 합니다. “밥 다 먹고 보렴. 서두르지 않아도 콩꽃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니까.”



감자에 / 싹이 날 때면 / 돌도 / 꿈을 꾸어 볼 거야. / 파아란 싹이 나는 꿈을 (돌과 모래)


물은 / 나뭇가지로 기어올라 / 파란 잎과 예쁜 꽃을 / 피게 하고 // 사과 알을 굵게 한다. (물)



  고흥집에서 지낸 지 여섯 해째 되면 올해에 아이들은 무화과나무에 피는 꽃을 잘 알아봅니다. 여러 해째 우리 집 무화과나무를 살폈으니 ‘꽃이자 열매’가 이쁘장하게 맺는 무화과나무를 잘 알아보지요. 아이들은 무화과나무에 맺힌 꽃망울을 바라보며 참말로 날마다 물어요. “아버지, 무화과 언제 먹을 수 있어?” 그러면 나는 아이들한테 “너희가 나무한테 물어보렴. 그리고 날마다 지켜봐. 그러면 너희가 스스로 알 수 있어.” 하고 대꾸합니다.


  찔레꽃이 피고 들딸기가 익는 오뉴월에 아이들은 또 묻습니다. “감은 꽃이 언제 피어?” “언제 필까?” “몰라.” “그러면 날마다 감나무를 바라보렴. 아버지가 보기에는 곧 꽃망울이 벌어질 듯한데?” 엊그제 아이들한테 이렇게 말했는데, 어제 낮에 찔레나무 앞에 서서 찔레꽃 냄새를 한껏 들이켜다가 감꽃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문득 놀라서 고개를 들으니, 아니 감꽃이 이렇게 조롱조롱 잔뜩 달렸네!



어른들은 / 날 보고 / 까분다지만, // 바람이 달려가는 / 들길 저 건너 // 모랫돌을 굴리는 / 냇물이 있고, // 밤 이슬이 자고 간 / 잔디 언덕엔 // 예쁜 꽃이 눈짓으로 / 불러 주는데, (나 혼자만 어떻게)


엄마가 김매시는 / 서숙밭 머리 // 도롱 삿갓 모아서 / 볕을 가리고, // 아기는 혼자 놀다 / 잠이 들었다. (여름)



  김종상 님 동시집 《어머니 무명치마》(창작과비평사,1985)를 읽어 봅니다. 퍽 묵은 동시집이라 할 만합니다. 왜냐하면, 이 동시집이 나올 즈음만 해도 ‘시골에 사는 아이’가 꽤 많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이 동시집이 나올 무렵만 해도 ‘무명치마’를 입는 분들이 퍽 계셨어요.


  시골아이가 제법 많고, 시골마다 크고작은 학교가 면소재지뿐 아니라 깊은 두멧자락에도 있던 무렵에 나온 동시집에는 크고작은 시골마을에서 올망졸망 밭일을 하고 들놀이를 하는 아이들 몸짓과 목소리가 흐릅니다. 참말로 요즈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할 만한 이야기와 노래가 흐릅니다.



수수깡 울타리 / 호박잎에 비 내리는 소리. // 들로 가신 어머니는 / 아직도 웬일일까? (기다림)


마을 앞 무논에 / 얼음은 덮여도 / 미나리는 야들야들 / 겨울을 살고, // 응달밭 이랑마다 / 서릿발이 할퀴어도 / 보리싹은 파릇파릇 / 겨울을 살고, (겨우살이)



  “감자에 싹이 날 때면” 꿈을 꾸어 보겠노라 하는 동시를 오늘날 아이들은 어느 만큼 헤아릴 만할까요? 가게에서 어머니가 장만한 감자라든지, 인터넷으로 시켜서 택배로 날아오는 상자에 담긴 감자는 쉽게 볼 아이들일 테지만, 감자싹이나 감자꽃이나 감자잎은 거의 볼 일이 없으리라 느껴요. 호박싹이나 호박꽃이나 호박잎도 거의 볼 일이 없을 테고요.


  그렇지만 오늘날 어른들도 깻잎은 고기에 맛나게 싸서 먹으면서도 정작 들깨 씨앗은 모르기 마련이요, 콩잎도 깻잎처럼 맛나게 먹는 줄 잘 모르곤 합니다. 들이나 밭에서 돋는 풀잎은 뜯고 뜯어도 새로 돋아서 봄내 여름내 가으내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줄 잘 모르기도 할 테고요.


  바야흐로 보리랑 밀이 익으면서 샛노란 물결을 이룰 들판을 아이들하고 걷다가 들딸기를 훑습니다. 자전거를 몰아 골짜기를 찾아가고 고갯길을 넘다가 다리를 쉬면서 들딸기를 새삼스레 따면서 동시를 가만히 생각합니다. 이제 시골에서 자라거나 노는 아이는 거의 다 사라졌기에 《어머니 무명치마》 같은 동시집은 읽힐 값어치가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아직 시골에서 씩씩하거나 꿋꿋하거나 즐겁거나 재미나게 살림을 짓는 어른들이 도시 아이들한테 ‘얘들아, 너희들이 앞으로는 도시 아닌 시골에서도 얼마든지 새롭게 삶을 일굴 수 있단다’ 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시를 새로 쓸 만한 뜻이 있다고 할 만할까요?



놀이터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 “내 신발이 더 좋다.” / “우리 학교가 더 크다.” / 싸움은 이래서 시작되고 / 내 것 네 것을 가려 따지면서 / 서로가 지지 않으려고 버틴다. (나의 것은)



  밥 한 그릇에서 평화가 태어난다고 합니다. 땅을 일구어 얻은 열매를 서로 나누는 자리에서는 언제나 평화가 태어난다고 합니다. 밥그릇을 나누기에 평화요, 밥을 얻으려고 땅을 짓는 투박한 손길에서 평화가 태어난다고 할 만합니다.


  흙을 만지는 손길은 흙을 가꾸려 하기에 전쟁무기에는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흙을 아끼는 눈길은 흙에 깃드는 풀이랑 꽃이랑 나무를 사랑하기에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마을살이를 꿈꾸리라 봅니다. 동시집 《어머니 무명치마》에 흐르는 차분한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아이들이 개구리하고 동무가 되기를 바라면서, 아이들이 새하고 곱게 노래하기를 바라면서, 아이들이 풀벌레를 고이 보듬기를 바라면서, 아이들이 풀 한 포기도 함부로 다루지 않기를 바라면서, 아이들이 새파란 하늘을 마음에 가득 안고 싱그러운 마음이 되기를 바라면서, 나는 오늘 이 시골집에서 새롭게 꿈을 꾸는 아침을 맞이합니다. 2016.5.2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동시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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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6-05-21 15:54   좋아요 0 | URL
ㄷ3ㅁㅁㄴㅎ
 
까치독사 창비시선 397
이병초 지음 / 창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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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24



새소리로 부산스러운 시골 아침

― 까치독사

 이병초 글

 창비 펴냄, 2016.4.29. 8000원



  경기도 파주하고 전라북도 완주 사이를 오가는 틈틈이 시를 썼다는 이병초 님은 《까치독사》(창비)를 선보입니다. ‘선생질과 농사일’을 나란히 하면서 시를 길어올렸다고 합니다. 며칠은 가르치고 며칠은 배우는 살림을 이으면서 조용히 부른 노래가 시로 태어났으리라 느낍니다. 나는 이 시집을 새벽 너덧 시 즈음에 가만히 읽어 봅니다. 고즈넉한 마을에서 집집마다 차분히 하루를 여는 이무렵 뒷밭에 서서 수많은 새가 저마다 다른 소리로 지저귀는 노래를 가만히 들으면서 시를 한 줄 두 줄 석 줄 읽어 봅니다.



들깨 갈아놓은 게 남았다길래 머윗대 껍질을 벗긴다 물을 잘박하게 잡으면 목에 시원할 것이다 잠 달아난 굴뚝새들이 목이슬을 터는지 탱자 가시에 잘게 긁히는지 울타리 안팎이 소란스럽다 (아침)



  시집 《까치독사》에도 나오는데, 시골 아침은 퍽 부산스럽습니다. 동이 틀 무렵 그야말로 온갖 새가 저마다 다른 날갯짓으로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노래합니다. 먹이를 찾는 어미 새가 날고, 어미 새를 부르는 새끼 새가 지저귑니다. 한쪽에서는 하늘에서 노래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둥지에서 노래해요. 이러면서 이무렵은 밤새 복닥복닥하던 개구리 노랫소리가 잦아듭니다.


  비록 도시처럼 자동차가 달리는 소리가 거의 없습니다만, 시골에서는 사뭇 다른 소리로 새벽이 부산스럽습니다. 나는 이런 새소리를 들으면서 호미를 손에 쥡니다. 아무런 기계가 없이 오직 호미를 손에 쥐고 땅을 쪼고 돌을 고르며 흙을 다스립니다.



꽃을 보면 꽃이 되고 / 벌이 되고 나비가 되던 시절을, / 남들 쉴 때 나도 쉬는 아름다운 세상을 / 길바닥에 짜악 찌크러버리고 / 길 떠나는 후배가 장다리꽃 속에서 손을 흔드네 (빛나던 시절)



  한참 호미질을 하다가 밭자락에 폭 주저앉아서 호미는 한쪽에 내려놓고 하늘바라기를 하다 보면 더없이 아늑하다고 느낍니다. 무엇이 아늑하느냐 하면, 군더더기 없는 하늘이 아늑하고, 풀내음이 아늑합니다. 오월이 무르익으면서 흐드러지는 찔레꽃이 아늑하고, 찔레꽃 곁에서 막 돋으려는 감꽃이 아늑합니다.


  매화꽃이나 벚꽃이나 산수유꽃처럼 새봄에 눈부신 꽃은 없는 오월이지만, 바야흐로 들딸기가 빨갛게 익으면서 찔레꽃이 흰눈처럼 해맑아요. 찔레꽃이 흐드러지는 우리 집 뒷밭에 쪼그려앉아서 흙을 쪼다 보면 찔레꽃이 베푸는 꽃냄새만으로도 배가 부를 노릇입니다. 여기에 살포시 퍼지는 감꽃내음은 얼마나 달콤한지요.


  “꽃을 보면 꽃이 되고”라는 싯말처럼, 흙을 만지면 흙이 됩니다. 꽃내음을 맡으면 꽃내음 같은 마음이 됩니다. 새파란 하늘을 마시면 새파란 숨결로 거듭납니다. 무당벌레가 팔뚝에 내려앉아 볼볼 길 적에 일손을 멈추고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면, 나는 어느새 무당벌레하고 하나가 됩니다.



라디오가 나를 물고 직직거린다 / 개 짖는 소리뿐인 산중에 / 사락사락 눈이 내린다 / 하루를 딱 닫아건 오리나무숲께로 / 마음만 갔다가 솔가리 타는 냄새에 에둘리어 / 뒤도 못 캐고 눈을 맞는 밤 (답장)


눈비 들이치면 무를 못 먹는다기에 / 텃밭 귀퉁이를 판다 / 삽날에 찍혀 달아났다가 절뚝절뚝 되엉기는, / 덜 마른 시래기 타래에 튕겨나온 햇살이 / 무 구덩이 맨흙 위에 쏠린다 (입동)



  씨앗 한 톨은 얼마나 착한지, 땅을 잘 갈아서 고운 손길로 살포시 묻어 놓으면, 어느새 싹이 트고 줄기가 오르며 잎이 퍼집니다. 씨앗 한 톨은 얼마나 야무진지, 비바람이 세차고 몰아쳐도 꼿꼿하게 푸릅니다. 씨앗 한 톨은 얼마나 대단한지, 풀벌레가 여린 잎을 야금야금 갉아먹어도 씩씩하게 새로운 잎을 내놓으면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착하고 야무지며 대단한 새싹을 바라보면서 김을 맵니다. 물을 주고 북을 돋웁니다. 아침 낮 저녁으로 인사를 하면서 밭 언저리를 거닙니다. 이러면서 곰곰이 생각하지요. 먼먼 옛날, 아스라히 먼먼 옛날, 고즈넉한 터에 아기자기하게 살림을 지은 사람들은 이녁이 지은 보금자리를 거닐기만 하면서도 가없이 아늑하고 고요한 나들이를 다니는 셈은 아니었을까 하고요.



심어봤자 돈도 안되는 거 또 심어놨다 / 안 심는다 안 심는다 해놓고도 / 빈 밭으로 묵히는 게 죄로 갈 것 같아서 / 기어이 심어버리고 만 고구마밭 둬마지기가 / 그게 무슨 일거리랴마는 / 마음 딴 데 두고 손짓하는 구름 / 상수리잎에 묻어 반짝이는 햇살이 / 구절초 꽃잎처럼 가슴에 적혀 / 가을은 고개 숙이고 땀을 식혔다 (가을)



  아이들이 묻습니다. “옥수수는 왜 심어?” 나는 빙긋 웃으면서 대꾸합니다. “너희들이 옥수수를 잘 먹으니까.” “그렇구나. 빨리 옥수수 먹고 싶어.” “그러면 날마다 이 싹을 들여다보면서 얘기를 나누면서, 흙이 말랐다 싶으면 물을 줘.”


  이병초 님은 “돈도 안되는 거”를 또 심었다고 하지만, 고구마는 “돈도 안되는 거”이기 앞서 ‘맛나며 넉넉한 먹을거리’요 ‘푸진 살림살이’이리라 느낍니다. 고구마 몇 자루를 내다판들 ‘선생질하는’ 이병초 님 말마따나 ‘돈이 안 되기’ 마련일 테지만, ‘농사일하는’ 시인 마음으로서는 ‘밭을 가꾸고’ 싶은 마음이니 자꾸자꾸 고구마를 심으리라 느낍니다.


  내가 먹고, 이웃하고 동무한테 나누어 주면 되거든요. 겨우내 먹고, 봄에 마저 먹으면서 ‘땅이 베푼 넉넉한 기쁨’을 누리면 되거든요. 예부터 시골지기는 돈을 벌려고 흙을 짓지 않았으니까요. 아스라히 먼 옛날부터 시골사람은 살림을 짓고 사랑을 지으며 삶을 지으려고 흙을 짓는 하루를 지었으니까요.

  호미로 콕콕 땅을 쪼듯이, 삽날로 꾹꾹 땅을 파듯이, 시골바람을 마시면서 태어난 자그마한 싯말을 혀끝에 얹어 또르르 굴리면서 새롭게 아침을 맞이합니다. 2016.5.15.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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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명의 내가 있는 액자 하나 민음의 시 220
여정 지음 / 민음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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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15



호미 쥐고 밭자락에 서서 읽는 시

― 몇 명의 내가 있는 액자 하나

 여정 글

 민음사 펴냄, 2016.1.29. 9000원



  마음이 어지러울 적에는 밭일을 하면 스르르 풀립니다. 왜 밭일이 마음을 풀어 주는지는 잘 모릅니다만, 호미를 쥐고 흙을 쪼다 보면, 풀을 뜯고 밭을 일구다 보면, 씨앗을 심고 북을 돋우다 보면, 어느새 어지럽던 마음은 보드랍게 풀리곤 합니다.


  시골에서 살기에 으레 밭자락에 앉아서 해바라기를 하고 풀내음을 맡습니다. 예전에 우리 식구가 도시에서 살던 무렵에는 어떻게 ‘마음풀기(마음 가누기)’를 했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흙을 만질 자리가 없던 지난날에는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을 해야 엉킨 마음을 고요히 풀거나 얽힌 실타래를 조용히 풀 만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언제부턴가 방구석에 처박혀 구멍들을 헤아리고 있다. TV에서는 에너자이저 건전지가 백만 스물하나, 백만 스물둘,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다. 구멍이란 구멍에는 모두 물이 고여 있다. (0편, 혹은 구멍·外 1편)


도둑맞은 집 같은 그런 봄이 왔다 / 내 숨구멍을 하나씩 하나씩 열고 있는 봄 / 꽃의 향기가 내 눈꺼풀을 올리고 / 빛에 쏘여 눈이 아리다 / 눈이 밝아졌다 / 젠장 / 봄 (잠에서 깨어나다)



  여정 님이 빚은 시집 《몇 명의 내가 있는 액자 하나》(민음사,2016)를 가만히 읽습니다. 시를 쓰는 여정 님은 여정 님 마음자리에 깃든 실타래를 풀면서 시를 씁니다. 엉킨 것을 풀면서 시를 쓰고, 꼬이거나 뒤집힌 것을 제자리로 돌리려 하면서 시를 씁니다.


  때로는 방구석에 처박혀서 시를 쓰고, 때로는 그림을 그리며 시를 씁니다. 때로는 햇볕을 쬐거나 꽃을 바라보면서 시를 씁니다. 때로는 나무를 바라보다가, 때로는 어머니하고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때로는 삶과 죽음을 아스라이 생각해 보다가 시를 씁니다.



모닝글로리 연습장에 오토펜슬2.0mm로 왼손을 그려 본다. 그리는 오른손보다 작고 어리게 그린다. 포즈를 취한 왼손이 허공에서 조금씩 떨려 온다. (떨리는 손의 소묘)


어머니는 참오동나무라 하는데 / 나는 그냥 나무라 한다 / 아버지는 은방울꽃이라 하는데 / 나는 그냥 꽃이라 한다 // 어머니는 자가용이라 하는데 / 형은 에스엠파이브라 한다 / 아버지는 반코트라 하는데 / 누나는 코데즈컴바인이라 한다 (그냥 일상, 2010피스 퍼즐)



  밭일을 하다가 부엌으로 가서 밥을 짓습니다. 밥을 지어 밥상을 차리고는 다시 밭으로 갑니다. 아이들을 이끌고 들마실을 하다가, 등허리를 펴려고 자리에 누워 가만히 쉬다가, 다시 밭일을 하다가, 부엌일을 하다가, 집안일을 하다가, 새롭게 아이들하고 놀다가, 이부자리를 펴고 잠자리에 눕다가, 꿈에 빠져들다가, 새삼스레 아침을 맞이합니다.


  문득 이 삶을 돌아보니 지난날에는 누구나 밖에서 일하고 밖에서 놀았구나 싶습니다. ‘밖’이란 먼 바깥이 아니라, 들이거나 숲이거나 냇가이거나 바다였지 싶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으레 밭일이나 논일을 했고 나무를 했어요. 빨래터나 냇가에서 빨래를 했고, 냇가나 우물가나 샘에서 물을 길었어요. 지난날에는 누구나 집 안팎을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지낸 살림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처럼 집안에만 있어도 ‘물 쓰고 전기 쓰고 컴퓨터 쓰고 뭐 하고’ 할 수 있던 삶이 아닌 지난날입니다.


  어쩌면 지난날에는 사람들이 책을 안 읽어도 될 만했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집 안팎에서 마주하는 숲과 들과 하늘과 바람과 냇물이 모두 책이었을 테니까요. 호미질이, 도끼질이, 지게질이, 괭이질이, 그야말로 모두 글쓰기나 책읽기와 같았다고 할 만하니까요.



아버지의 몸이 땅에 묻혔으니 / 이제 땅속에 뿌리를 두었다 // 돌아눕는 밤 (이제 나무)


하루살이 백수는 거듭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시끄러운 양들의 침묵을 끄고, 가르멜 수녀원 담을 따라 돌고 돌던 그 산책길도 끄고,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상도 끄고, 잘 태어나신 친구 분을 만나고 돌아오신 아버지도 끄고, 아버지도 끄고, (하루살이 백수→하루살이백수)



  여정 님이 빚은 시집 《몇 명의 내가 있는 액자 하나》를 읽으면 두 갈래 시가 흐릅니다. 하나는 차분하거나 고요한 마음이 되어서 쓰는 시입니다. 다른 하나는 들끓거나 물결치는 마음이 되어 쏟아내듯이 터져나오는 시입니다. 차분하거나 고요한 마음으로 쓰는 시는 수수한 말로 수수한 이야기를 적습니다. 들끓거나 물결치는 마음이 되어 쏟아내듯이 터뜨리는 시는 ‘말을 조각조각 내어 부스러기를 줍듯이’ 엮습니다.



∥잘못키웠다…아버지는나이가너무드셨고·어머니는뼈마디가자꾸쑤신다…아내는좀처럼마음을잡지못하고·아이들은점점더이기적이다…생활용품은필요이상으로흘러넘치고·통장에는너무먼미래들이담겨있다…과거는너무너덜너덜하고·현재는그런과거들의재활용이다 (리셋증후군∥리셋, 케이블TV∥ 게임채널·99)



  새벽 다섯 시에 시골마을에 마을방송이 흐릅니다. 이장님이 오늘 하루 알릴 이야기를 마을 곳곳에 달린 스피커로 쩌렁쩌렁 울리는 말씀을 들려줍니다. 시골이니 새벽 다섯 시에 마을방송이 흐르지요. 도시에서라면 새벽 다섯 시 마을방송이란 있을 수 없겠지요. 여름에도 겨울에도 시골에서는 으레 새벽 네 시 즈음부터 하루를 열거든요. 어느 시골집이나 새벽밥을 짓고, 새벽빨래를 하며, 새벽일을 합니다. 동이 틀 무렵 모두 부산하게 움직이다가 아침에 살짝 쉬고, 낮에 새로 기운을 내어 움직이다가 저녁에 해가 떨어지면 일찌감치 집으로 들어서 새 하루를 꿈꾸며 잠듭니다.


  수수하게 흐르는 하루를 돌아볼 적에는 수수한 이야기가 샘솟아서 수수한 노래를 부를 만합니다. 수수한 시골살림이 아니라 밤낮없이 바쁘고 부산한 현대 사회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통신과 정보와 문명과 첨단을 마주할 적에는 이 같은 들끓음과 물결이 빚는 이야기가 새로운 현대문학으로 나타나겠지요.


  아침에 일찍 빨래를 하고 당근밭을 새로 갈자고 생각하면서 시집을 덮습니다. 차분하게 하루를 열고, 고요히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호미를 쥐고 밭자락에 섭니다. 2016.5.5.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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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비꽃이 아주 피기 전에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81
김일영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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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22



나뭇가지 움트는 소리에 잠이 깨는 새벽

― 삐비꽃이 아주 피기 전에

 김일영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09.5.11. 8000원



  아홉 살 큰아이하고 마실을 다니다 보면 큰아이한테 궁금한 것이 잔뜩 있습니다. 아이는 언제나 아버지더러 이것은 무엇이고 저것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나는 예전에 이 아이한테 막바로 이것은 무엇이요 저것은 무엇이네 하고 말해 주었는데, 요새는 이렇게 하지 않아요. 다시 아이한테 묻지요. “이것은 무엇일까? 참말 저것은 무엇일까?” 아이가 먼저 스스로 생각해 보도록 하고서 이야기를 이끌지요.


  얼마 앞서 읍내로 마실을 다녀올 적에도 큰아이가 “아버지, 이 꽃은 무슨 꽃?” 하고 묻기에 “그래, 예쁜 꽃이네. 이 꽃은 무슨 꽃일까? 네가 한번 이름을 붙여 볼래?” 하고 되물었어요.


  이렇게 아이한테 되묻기를 하면서 내 어린 날을 돌아봅니다. 나도 어릴 적에 우리 아이들처럼 우리 어머니한테, 그러니까 아이들 할머니한테 끝없이 묻고 다시 물었어요. 어머니는 지치거나 귀찮지도 않으신지 꼬박꼬박 알려주셨지요. 그렇지만 나는 늘 잊어버리고는 다시 물어요. 우리 어머니는 아이가 물어도 늘 상냥하게 말씀해 주셨는데, 가끔 나한테 되묻기도 하셨어요. 이렇게 되물으면 움찔 하고 놀라면서도 ‘어라, 그러게. 참말 뭘까?’ 하는 수수께끼가 내 마음속에 생기곤 했어요.



나뭇가지 움트는 소리에 잠이 깨기도 합니까 / 누군가 웃고 간 듯 공기가 간지럽습니다 (벙어리별)


바다를 떠돌다 만난 나뭇잎들은 / 너무 깊이 젖어 있어 서로를 부를 수 없겠지 (안개 속의 풍경)



  김일영 님이 빚은 시집 《삐비꽃이 아주 피기 전에》(실천문학사,2009)를 읽으면서 ‘삐비꽃’이 참말 뭘까 하고 궁금합니다. 이런 꽃이름을 들은 일이 없고, 아마 본 일도 없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꽃이름만 들은 일이 없이 삐비꽃을 스쳐 지나가듯이 보았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 시집은 삐비꽃을 궁금해 하라는 시집은 아닙니다. 시인 김일영 님이 삐비꽃하고 얽힌 삶을 풀어낼 뿐 아니라, 삐비꽃처럼 김일영 님을 둘러싼 수많은 삶과 살림과 사람과 사랑을 두고서 ‘먼저 스스로(꽃이 피기 앞서)’ 생각을 가다듬으면서 길어올린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집이라고 할 만합니다.



나뭇잎들 떨어지는 무게가 아프다 / 흑백 초상화가 지켜보는 / 사진틀 밖에서도 / 어머니는 늘 해녀였다 / 검은 고무옷이 / 속살보다 부끄러웠다는 / 당신의 부은 손등 위에 / 어린 손을 얹으며 / 나무들은 나이테 속에 / 봄을 숨긴 채 겨울을 건너왔다 (가을 숲 속에서)


노란 박스 테이프로 / 정성 들여 감겨진 지팡이 (지팡이)



  김일영 님은 문득 묻습니다. “나뭇가지 움트는 소리에 잠이 깨기”도 하느냐고 묻습니다. 움찔 놀라다가 가만히 생각을 기울입니다. 어떻게 나뭇가지 움트는 소리를 듣느냐고 대꾸할 일이 없이, 나뭇가지 움트는 소리는 어떠한 결이나 가락일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이러면서 더 헤아리지요.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라든지, 꽃잎이나 나뭇잎이 벌어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을까 하고 헤아립니다. 나비가 번데기를 열고 나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나비가 날개를 말리려고 팔랑이는 소리를 들었는지, 벌이 꽃가루를 찾아서 붕붕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매화꽃잎이나 모과꽃잎이 바람에 떨어져 나부끼는 소리를 들었는지, 이런 수많은 소리를 내 삶에서 나 스스로 얼마나 듣는가 하고 헤아립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나한테 들려주는 소리를 얼마나 귀여겨듣는가 하고 헤아립니다. 바람소리나 빗소리뿐 아니라, 아이들 목소리와 곁님 웃음소리에 얼마나 마음을 기울이는 삶인가 하고 헤아립니다.



가지런히 늙은 고무신도 / 냇물에게 배운 말들도 두고 가야지 (얌전히 뜬 달도 깨끗이 씻어 걸고)


달빛 계곡 꿈을 꾸면 / 쪽배가 저보다 큰 텔레비전을 싣고 / 울 아버지, 하얗게 빛나는 이빨 앞장세워 돌아오듯 / 이제 다친 길을 어루만지며 그만 돌아와 / 삐비꽃이 아주 피기 전에 (삐비꽃이 아주 피기 전에)



  삐비꽃이 아주 피기 앞서 생각을 해야겠지요.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내가 스스로 마음을 가꾸고, 내가 스스로 마음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어야겠지요.


  어제는 하루 내내 비가 왔어요. 이 빗소리를 듣다가 문득 무엇인가를 느껴서 뒤꼍을 올랐어요. 뒤꼍에 올라 텃밭을 바라보니, 그제까지 안 돋았던 옥수수싹이 한꺼번에 올라왔더군요.


  비를 맞으며 한참 옥수수싹을 바라보았지요. 참말 하루 사이에, 아니 날마다 몇 차례씩 밭을 돌아보는데 ‘비 오기 앞서’ 싹이 하나도 안 돋던 아이들(옥수수씨)이 어쩜 이렇게 한꺼번에 싹이 돋을까 하고 생각하며 바라보았어요. 나는 옥수수싹이 땅을 비집고 솟은 소리를 제대로 들었을까요? 미처 못 들었다고 해야겠지요?


  삼월이 지났고 사월이 흐릅니다. 오월이 찾아와서 이 봄이 한껏 터지고 나면 어느새 여름 문턱입니다. 바람도 해도 비도 구름도 모두 우리한테 ‘어떤 이야기’를 소리나 몸짓이나 결로 들려주리라 생각해요. 무엇보다 우리 집에서 함께 삶을 짓는 사랑스러운 식구들도 온갖 웃음과 노래와 몸짓으로 ‘끝없는 이야기’를 들려줄 테고요.


  제대로 귀를 기울이자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쏟아 귀를 열자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귀뿐 아니라 마음을 활짝 열면서 이 아침을 새롭게 누리면서 온 하루를 즐거이 짓자고 생각합니다. 시집 한 권을 가슴에 대고 살살 문지릅니다. 2016.4.28.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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