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맑음 문학의전당 시인선 226
최상해 지음 / 문학의전당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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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115



바람이 세찰수록 밝은 별빛을 노래합니다

― 그래도 맑음

 최상해 글

 문학의전당 펴냄, 2016.5.27. 9000원



  비가 오고, 비가 그칩니다. 해가 나고, 해가 집니다. 구름이 끼고, 구름이 걷힙니다. 때로는 무지개가 뜹니다. 그렇지만 요새는 무지개를 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무지개가 하늘을 가로지를 만한 터전이 못 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앞서까지만 해도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소나기나 무지개는 흔했는데, 이제는 시골에서조차 무지개가 매우 드문 날씨입니다.


  그래도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아무리 비가 세차게 몰아쳐도 머잖아 날이 개요. 아무리 어두운 밤이 길어도 머잖아 아침이 밝아요. 아무리 추운 겨울이어도 머잖아 봄이 찾아와요. “그래도 맑음”이에요.



새벽마다 배냇저고리 같은 밀양강이 콧김을 내뿜고, 씩씩거리는 강줄기를 달래는 영남루와 마주한 삼문송림이 울울창창 위용을 뽐내는 밀양에는, 누구든 한 발 들이기만 하면 쉽게 마음을 내려놓고 만다. (밀양)


강도 아이고 늪도 아이고 첩첩산중에 악어떼라니 믿을 수가 있어야지. 사람 사는 마을 앞에 뒤에 위에 해 뜨면 긴 그림자로 머리를 내리눌리고 비만 오면 씩씩거리고 윙윙거리는 악어떼가 지나다닌다는 게 말이 되나 이 말이지요. 소문이 돌 때만 해도 아무도 안 믿었지요. 지난 10여 년의 세월이 꿈만 같아요. (악어떼가 나타났다)



  최상해 님이 선보인 시집 《그래도 맑음》(문학의전당,2016)을 읽습니다. 강원도 강릉에서 나고 자랐다는 최상해 님은 경남 창원에서 아이를 낳아 살림을 짓는다고 합니다.


  이 시집을 읽으면 ‘그래도 맑음’이라는 시는 없습니다. 이 이름으로 쓴 시는 없지만 시집 이름은 ‘그래도 맑음’입니다. 시집 이름은 ‘그래도 맑음’인데, 이 시집을 읽으면 밀양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아니, 밀양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가 하나씩 태어나서 이 시집을 이루었다고 할 만합니다. 밀양에서 사는 이웃을 마음으로 아끼려고 했기에 이 마음이 고스란히 시로 태어났다고 할 만합니다.



내 당숙 이름은 ‘히도’이다 / 일제강점기 유산으로 물려받은 이름 / 어릴 적 히도 아재 하고 / 내 입에서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 얼굴 붉히시던 기억이 생생하다 (히도 아재)



  장마가 아무리 길어도 햇볕은 이 땅을 내리쬐어 줍니다. 나락은 볕을 받으면서 자랍니다. 옥수수도 콩도 오이도 들깨도 볕을 먹으면서 자랍니다. 능금도 배도 포도도 살구도 볕을 받으면서 익어요. 그러니까 우리 삶터는 ‘그래도 맑음’이기 때문에 쌀밥을 먹고 여러 남새를 먹으며 온갖 열매를 먹을 수 있어요. 우리 삶자리가 아무리 고단하더라도 마음속으로 ‘그래도 맑음’이라는 꿈을 품기 때문에 다시금 기운을 차릴 수 있어요.



어릴 때는 / 잘 자라는 말이 / 단순하게 / 잘 자라는 말로만 들렸는데 / 지금 생각해보니 / 잘 자라는 말은 / 잘 자라나라는 / 말 (잘 자라)


가난한 소극장에서 / 오디션을 보던 날 / 푹 고개 숙인 내 등 뒤에서 / 살포시 안아주시던 / 어머니 (버릇)



  어머니가 아이를 살포시 안습니다. 아이는 어머니가 살포시 안는 따사로운 품을 마음에 깊이 새깁니다. 아이는 어느새 자라서 어머니가 됩니다. 어머니는 할머니가 되었을 테지요. 할머니는 할머니가 되었어도 이녁 아이는 언제나 이녁 아이예요. 그래서 할머니는 이녁 아이인 ‘어머니가 된 어른’을 늘 곱게 따스하게 살포시 안아 줍니다. ‘어머니가 된 아이’는 어머니로서 낳은 아이를 이녁 어머니(할머니)가 늘 했듯이 곱고 따스하며 보드라운 품으로 살포시 안아 주어요.


  시집 《그래도 맑음》을 읽으면 최상해 님이 낳은 아이가 대학교를 그만두고 용접공으로 일하는 이야기가 나란히 흐릅니다. 퍽 어린 나이에 고된 일을 하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꽤 어린 나이에 고단하게 일을 하는 아이를 마주하면서, 대학교 졸업장이 아닌 용접공이라는 이름을 얻는 아이와 함께 살면서, ‘그래도 맑음’을 곱다시 되새깁니다. 그래요, 참으로 ‘그래도 맑음’입니다. 어떤 일이 있든, 어떤 일을 맞이하든, 어떤 일을 맞닥뜨리든, 우리 마음은 늘 ‘그래도 맑음’이지 싶습니다.



가끔 스무 살 적 창가에 / 나를 꿇어앉히기도 하지만 / 내일은 여전히 맑음 / 깜깜하고 무겁던 그림자를 끌어안고 / 여인숙 골방 깊숙이 / 슬픔의 무게만큼 가둬놓았던 / 한때의 시간, 그래도 맑음 (해피엔딩)



  어둠이 깊은 곳에서는 어둠만 보인다고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어둠이 깊은 곳에 있기에 이 어둠을 밝히는 빛나는 별빛이 있구나 하고 깨닫기도 합니다. 밝은 곳에서는 밝음만 보인다고 느끼기 마련이지만, 이 밝은 낮이 저물면 곧 어두운 밤이 되는 줄 깨닫기도 해요.


  슬픈 무게를 떠올리면서 슬픈 무게에 가라앉기도 하지만 다시금 마음속으로 ‘그래도 맑음’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흐리지만, 모레에는 글피에는 틀림없이 ‘그래도 맑음’이 되리라 여기며 노래할 수 있습니다.


  바람이 세차기에 이 세찬 바람이 곧 그치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할까요. 고단한 나날이 깊기에 이 고단한 나날이 곧 멎으리라고 여길 수 있다고 할까요. 마음속에 꿈을 품기에 이 꿈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할까요.



어둠이 / 지독할수록 / 바람이 / 세찰수록 / 빛나는 / 별 하나 / 내 가슴속에 산다 (북극성, 아버지)



  씨앗 한 톨을 땅에 심으면 곧바로 싹이 트지 않습니다. 씨앗 한 톨을 땅에 심은 뒤 ‘씨앗 묻은 자리’를 따사로이 보살피면서 지켜보기에, 하루가 흐르고 이틀이 지나며 사흘이 가고 이레쯤 이를 무렵 빼꼼하고 자그마한 싹이 올라옵니다. 씨앗 한 톨을 손에 쥐면 며칠이나 몇 달이 지나도 싹이 트지 않는데, 땅에 묻으면 며칠 뒤에 감쪽같이 싹이 터요. 참 놀라우면서 대단하지요.


  이 놀라운 씨앗 한 톨처럼 삶을 사랑으로 밝히려는 싯말 한 자락을 조곤조곤 곱씹습니다. 내가 오늘 심어서 가꿀 씨앗을 고요히 되새깁니다. 빗내음을 머금으며 살랑살랑 이는 여름 바람을 느끼면서 시집 《그래도 맑음》을 살살 어루만집니다. 2016.6.22.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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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가 따뜻해졌다 문학동네 동시집 20
오인태 지음, 박지은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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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83



혼자서 집 보는 아이가 마음으로 짓는 꿈

― 돌멩이가 따뜻해졌다

 오인태 글

 박지은 그림

 문학동네 펴냄, 2012.3.30. 8500원



  작은아이는 마실길에 돌멩이를 줍는 일이 드뭅니다. 큰아이는 마실길에 으레 땅바닥을 살피면서 돌멩이를 주우려 합니다. 큰아이는 때때로 소리를 칩니다. “와! 예쁜 돌이다!”라든지 “아버지! 여기 봐요! 사랑돌이에요!” 하고 외치지요.


  큰아이가 외치는 ‘사랑돌’은 돌멩이가 꼭 사랑 무늬(♥) 같대서 사랑돌입니다. 돌멩이가 이런 무늬로 있기는 쉽지 않을 텐데 큰아이 눈에는 가끔 나타납니다. 대여섯 달에 한 번쯤 나타나지요.


  돌멩이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지켜보노라면, 돌멩이를 몹시 좋아하던 내 어릴 적 모습이 떠오릅니다. 나도 어릴 적에 늘 땅바닥을 살피면서 예쁘거나 멋진 돌멩이를 모으고 싶었습니다. 내 주머니는 돌멩이로 늘 불룩했어요. 물로 깨끗이 씻고 늘 손으로 만지작거리니, 주머니에 든 돌은 반들반들해지지요. 돌멩이를 손에 쥐면 이 돌멩이가 살아온 기나긴 숨결이 마치 내 몸으로 스며드는 듯하다고 느끼기도 했어요.



한 시, 두 시, 세 시 넘어도 / 식구들은 아무도 오지 않고 // 혼자서 집 보는 날 // 몰랐다 / 우리 집이 이렇게 넓은 줄을 (혼자서 집 보는 날)


딩동! / 아무도 없는 줄 알면서 // 되도록 천천히 열쇠를 넣고 돌리자 / 철컥! // 또 아무도 없구나! (아파트 문 열기)



  오인태 님 동시집 《돌멩이가 따뜻해졌다》(문학동네,2012)를 읽습니다. 이 동시집에는 외롭거나 쓸쓸한 도시 아이들이 나옵니다. 아파트에서 혼자 집 보는 아이라든지, 집에 혼자 가서 열쇠를 혼자 따는 아이가 나와요.


  이 아이는 어느 때에는 외롭거나 쓸쓸한데, 어느 때에는 마음이 아픕니다. 때가 어느 때인데 어떻게 아직 이런 일이 있겠느냐고 할 만한 ‘푸대접’에 마음이 멍드는 아이가 되기도 해요. 이를테면 오빠하고 저(가시내)를 가르는 어머니 모습 때문에 멍드는 아이입니다.



우리 엄만 / 내가 크레파스 산다 하면 / 벌써 다 썼니? / 운동화 산다 하면 / 조금 더 신어라 / 천 언짜리만 달랑 내보이시면서 // 오빠는 / 말도 안 하는데 / 아직도 그 책이니? / 학원비 낼 때 되지 않았니? / 몇만 원 몇십만 원도 / 쑥쑥 내주신다. (엄마 지갑)



  외롭거나 쓸쓸한 아이는 모처럼 어머니하고 집에 있어도 마음이 멍들어요. 그런데 이 아이는 학교에서도 마음에 멍이 들고 말아요.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아이 마음을 읽어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틀에 박힌 대로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이끌려고 하면서, 아이들은 꿈날개를 펴지 못하고 말아요. 교과서대로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이끌어야 하다 보니, 아이들은 새롭거나 재미난 이야기를 배울 틈이 없기도 해요.



노란색 하늘이 어디 있니? // 미술 시간 / 하늘을 노랗게 칠하다가 / 선생님께 핀잔 들었다. // 조금 전 쉬는 시간 / 창문 너머 하늘을 / 노랗게 덮었던 그건 뭘까? (미술 시간)


어디서 날아온 풀씨 하나와 바위가 / 누가 세나 내기를 했는데 // 석 달 열흘을 꿈쩍 않던 바위가 / 끝내 입을 쫙 벌리며 (바위꽃)



  아이들은 주머니에 돌멩이를 넣고 싶습니다.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면서 놀고 싶습니다. 이 돌멩이로 땅바닥에 금을 그으면서 뜀뛰기놀이를 하고 싶습니다. 돌멩이를 던져서 톡톡 쓰러뜨리는 돌치기(비석치기)를 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모래바닥에 작은 돌을 손가락으로 튕기는 놀이를 하고 싶습니다.


  놀고 싶은 아이입니다. 꿈꾸고 싶은 아이입니다. 사랑받고 싶은 아이요, 사랑하고 싶은 아이예요. 이 아이들을 꾸밈없이 바라보아 줄 수 있을까요? 이 아이들을 가없는 마음으로 넉넉히 안아 줄 수 있을까요?



땅콩 한 알에는 / 땅콩 한 포기의 눈이 있다 // 밤 한 톨에는 / 밤나무 한 그루의 눈이 있다 (눈이 마주칠 때)



  마음에 있는 눈을 뜰 때에 아이들을 꾸밈없이 바라볼 수 있지 싶어요. 마음으로 아이들을 마주할 적에 비로소 사랑스러운 눈길이 될 만하지 싶어요.


  파란 하늘도 노란 하늘도 빨간 하늘도 모두 바라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파란 마음도 되고 노란 마음이나 빨간 마음도 되면서 어깨동무를 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땅콩 한 알에 깃든 눈을 바라보아요. 밤나무 한 그루에 서린 눈을 바라보아요. 아이 마음을 바라보고, 어른 마음을 돌아보아요. 서로 즐거운 눈이 되고, 서로 고운 눈이 되기를 바라요. 다 함께 노래하는 눈이 되고, 다 같이 웃음짓는 눈이 되기를 바라요. 2016.6.19.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동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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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디디며 헛짚으며 모악시인선 1
정양 지음 / 모악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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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114



벼슬자리도 서울살이도 모두 헛걸음이라는

― 헛디디며 헛짚으며

 정양 글

 모악 펴냄, 2016.4.4. 8000원



  부옇게 동이 트는 기운을 느끼면서 새벽에 일어납니다. 시계가 없어도 새벽을 알고 아침을 느낍니다. 딱히 시계에 기대지 않으면서 하루를 열고, 아침밥을 지으며, 밭자락을 살피다가, 하루 살림을 되새깁니다.


  어버이가 시계에 기대지 않으면서 지내니 아이들도 시계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시계를 따지지 않으면서 하루 살림을 지으니 아이들도 그저 하루 내내 새롭게 놀이를 지으면서 누립니다. 이 같은 시골살림을 꾸리면서 옛사람 발자국을 짚어 봅니다.


  어수선한 벼슬자리나 서울살이를 등지고 시골로 가는 사람이 제법 있어요. 많지는 않아도 예부터 꾸준히 있습니다. 벼슬이나 서울을 등지며 시골에서 지내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벼슬이나 서울을 바라보며 지내는 삶이란 또 무엇일까요.



줄 틀리는 아이들을 단속하면서 / 뭉치자 삼천만 깨뜨리자 삼팔선을 선창하면 / 아이들은 머리를 흔들어가며 따라 외쳤다 / 그것들이 모두 통렬한 반미구호라는 걸 / 그걸 만든 친미정권도 선생님도 / 까맣게 모르던 1948년 / 내 국민학교 2학년 때였다 (깨뜨리자 삼팔선)



  1942년에 태어나 교사로 오랫동안 일했다고 하는 정양 님이 쓴 시집 《헛디디며 헛짚으며》(모악,2016)를 조용히 읽습니다. 이 시집을 펴낸 출판사는 전라북도 전주에 있다고 합니다. 여러 시인하고 소설가 들이 모여서 뜻과 돈을 모아서 출판사를 작게 열었다고 해요. 전북 완주군에 모악산이 있다는데, 모악 출판사는 바로 이 ‘모악산’ 기운을 받아서 삶을 노래하려는 책을 펴내려는 뜻이지 싶습니다.



어느 게 다행이고 / 어느 게 불행인지 / 어느 게 더 만만하고 / 어느 게 더 군색한 건지 // 어딘가로 떠나는 철새들이 / 그게 다 그거 아니냐고 / 살똥스레 저물녘을 끼룩거린다 (그게 그거라고)


거울 속 까맣게 탄 얼굴이 낯익다 / 날더러 몰라보겠다고 하는 이들도 / 정작 나를 몰라보지는 않는다 / 더 탈 데도 없는 내 얼굴을 이제는 / 오뉴월 땡볕도 낯설어하지 않는다 / 이렇게 농사꾼이 되는 거라고 짐짓 / 김칫국도 마셔가면서 틈 날 때마다 / 산밭에 와서 땀을 흘린다 (땀)



  일흔 줄을 넘어선 정양 시인은 ‘산밭’에 틈을 내어 가서는 땀을 흘린다고 합니다. 벼슬자리나 서울살이가 아닌 ‘산밭뙈기’에서 오뉴월 땡볕도 한여름 뙤약볕도 실컷 쬐면서 새까맣게 얼굴이며 살갗이 탄다고 해요.


  요즈음 어느 시골이든 모두 비슷할 텐데, 오뉴월에 밭일이나 논일을 하는 분들은 챙이 긴 모자에 긴소매에 긴바지에 수건까지 목에 두르고 땀을 흘리지만, 이렇게 꽁꽁 싸매도 얼굴이나 살갗은 까맣게 탑니다. 참 용하지요. 햇볕은 어느 틈바구니를 헤집고서 살갗을 까맣게 태울까요.


  우리 집 아이들은 모자 없이 여름볕을 고스란히 쬐면서 뛰어놉니다. 여름볕이 아무리 따가워도 모자를 쓸 생각도, 뭔가를 걸칠 생각도 없습니다. 어쩌면 이 아이들은 햇볕이 얼굴이나 살갗을 태우는 결을 좋아할는지 모릅니다. 나도 어릴 적에 개구지게 뛰놀면서 땡볕이나 뙤약볕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머리카락 끝으로 땀이 풀풀 날리면서 신나게 뛰놀았습니다.



정년퇴임한 지 여러 해 된 / 목숨도 얼마 안 남은 동료들이 / 남는 건 시간뿐이라며 / 틈만 나면 고스톱으로 시간을 죽인다 (시간 죽이기)


할멈은 안방에서 할아범은 거실에서 / 티비 켜놓은 채 잠든다 / 전기세 아깝다며 먼저 깬 쪽이 / 살살 다가가 전원을 끄면 피차 / 용케 알고 잠이 깨어 / 다시 자려고 다시 켠다 (겨울밤)



  정년퇴임을 한 여러 동무는 “남는 건 시간뿐”이라면서 그 남는 겨를에 고스톱을 친다고 해요. 정년퇴임을 하기까지 늘 바빴을 텐데, 여행도 책도 영화도 아닌, 집살림을 건사하거나 요리를 배워 본다든가 하는 살림이 아니라, “남는 시간에 시간 죽이는 고스톱”을 한다고 합니다. 〈시간 죽이기〉라는 시를 읽으면서 조용히 웃습니다. 그러나 이 웃음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쓸쓸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모로 보면 재미난 모습이라서 빙긋 웃음이 날 만한데, 어느 모로 보면 어쩐지 애처롭습니다.


  우리한테 주어진 삶은 ‘시간 죽이기’를 할 만큼 넉넉할까 하고 되돌아봅니다. 우리가 앞으로 걸어갈 길은 ‘시간 죽이기’를 하면서 흘려보내도 될 만할까 하고 헤아립니다.



시인 윤동주가 옥사 당한 것은 / 그가 독립투사나 저항시인이어서가 아니고 / 순결한 조선의 청년이었기 때문입니다 / 일본제국주의는 조선 청년의 / 그 순결한 영혼이 본능적으로 두려웠지요 // …… // 바르샤바조약군은 폴란드를 점령하자마자 / 맨 먼저 달려가 쇼팽의 피아노를 / 산산조각으로 때려 부쉈습니다 / 해맑고 아름다운 쇼팽의 선율을 그처럼 / 군국주의는 가장 두려운 것으로 여겼답니다 (갈채, 제5회 눌민문화제)



  어쩌면 우리는 날마다 뭔가를 헛디디는 살림은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으레 뭔가를 헛짚는 삶은 아닌가 싶습니다. 살림이나 삶뿐 아니라, 사랑이나 사람(이웃·동무)까지도 헛디디거나 헛짚듯이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하루는 아닌가 싶습니다.


  벼슬자리도 서울살이도 모두 헛걸음이지는 않을까요. 이름을 드날리려는 몸짓이나 돈을 더 거머쥐려는 몸짓도 모두 헛손질이지는 않을까요. 손수 삶을 짓지 못한다면, 손수 살림을 짓지 못한다면, 손수 사랑을 짓지 못한다면, 손수 꿈을 짓지 못한다면, 이때에는 언제나 헛짓이요 헛놀음이요 헛삶이지는 않나 싶습니다.



눈 덮인 세상 어디나 고향 같고 / 눈길 닿는 데마다 포근하지만 / 아무 데나 가서 아무나 만나 / 아무 말이나 하고 싶지만 (도둑눈)



  내가 밭자락에 앉아서 호미를 놀리면 아이들은 어느새 내 곁에 모여서 흙놀이를 합니다. 자전거를 몰아 골짜기나 바다로 마실을 가면 아이들은 내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차려 “자, 밥 먹을 사람?” 하고 부르면 아이들은 참새처럼 제비처럼 벌처럼 쌩하고 달려와서 밥상맡에 둘러앉습니다. 내가 두 손에 책을 쥐면 아이들도 책순이나 책돌이가 됩니다.


  껍데기나 허울만 있는 헛살림이 아닌, 알맹이와 열매가 소담스러운 속살림을 생각해 봅니다. 함께 짓는 속살림을 생각해 봅니다. 서로 사랑하는 속살림을 생각해 봅니다. 1948년 어느 날 학교에서 시킨 “깨뜨리자 삼팔선” 이야기부터 “산밭에서 땀을 흘리는 할배 농사꾼” 이야기가 흐르는 작은 시집 하나를 가만히 어루만집니다. 2016.6.16.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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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어린 짐승들을 기른다 창비시선 129
이영진 지음 / 창비 / 199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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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26



여름에 옥수수잎을 매만지다가

― 숲은 어린 짐승들을 기른다

 이영진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95.2.1.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이영진 님이 1995년에 선보인 조그마한 시집 《숲은 어린 짐승들을 기른다》를 읽습니다. 봄은 어느덧 저물고 후끈후끈한 더위가 차츰 짙어지는 여름에 시집을 펼칩니다. 책이름에서 드러나듯이 ‘숲이 어린 짐승을 기르는’ 길을 가만히 마음속으로 헤아리면서 한 줄 두 줄 읽습니다.



내 본적지엔 지금도 한세상 징역 살듯 늙어가는 부모님이 계십니다. 뜰 앞엔 무화과나무 한그루 블록 담벼락을 가리운 채 소리 없이 가슴에 돋는 피를 삭이고 있습니다. (본적지)


소나기가 그쳤다. 헛간 처마 끝으로 구름이 느리게 지나간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걷고 있는데 세계는 자꾸 앞으로 밀려 나아간다. (연꽃)



  유월이 무르익는 요즈음 시골집 돌담 곁에서 자라는 무화과나무는 꽃알이 무척 굵습니다. 아이들 주먹만큼 굵습니다. 꽃이면서 씨방이자 열매라 할 무화과나무 꽃송이라서 ‘꽃알’이라고 할 만하다고 느끼는데, 이 여름에 후끈후끈한 볕하고 시원한 빗물을 마시면서 한결 굵고 달콤하게 익을 테지요.


  사월에 바알갛고 작은 꽃을 잔뜩 터뜨렸던 모과나무도 단단하며 야무진 열매를 맺는데, 이 열매는 나날이 굵어집니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알이었지만, 하루하루 지나면서 울퉁불퉁 커다란 열매로 거듭나요.


  오월에 살그마니 꽃송이를 내밀다가 톡톡 소리를 내며 꽃송이를 떨구던 감나무는 그무렵 떨구지 않은 꽃송이가 진 자리마다 조그맣고 푸른 알이 맺습니다. 여름 내내 햇볕과 바람과 빗물을 듬뿍 머금으면서 가을에 새빨갛고 달달한 열매로 거듭나겠지요.



지나갔다. 돌이킬 수 없이 / 창작과비평사 문을 나와 / 합정동 버스정류장 쪽을 향해 / 걷는 김남주의 뒷모습. 싸구려 파카와 어깨에 걸친 / 낡은 가방 하나를 / 나는 어제도 보았고 / 오늘도 본다. / “어이! 남주형 이따 점심시간에 만나.” / “뭐, 그냥 내장탕이나 한그릇 하자구.” (슬픔)



  구름으로 온통 하얀 하늘을 바라보며 아침에 일어나서 풀을 뜯었습니다. 뒤꼍으로 오르는 길목에 돋은 풀을 맨손으로 뜯어서 그 자리에 고이 내려놓습니다. 이틀 동안 집을 비웠을 뿐이지만 모시랑 젓가락나물이랑 보리뺑이가 쑥쑥 올라왔습니다.


  풀을 뜯고 나서 여름비 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짓습니다. 아이들은 비 오는 마당에서 달리고 뛰면서 놀다가 집으로 들어옵니다. 부엌에 어느새 차려진 밥상을 보면서 배고프다 노래합니다. 손이랑 낯을 씻고 밥상맡에 앉아서 수저를 듭니다. 배고픈 아이들은 바지런히 수저질을 합니다.


  빗소리가 구성진 한낮이 조용히 흐릅니다. 깊은 시골마을 앞을 지나가는 군내버스는 두 시간에 한 번 길게 바퀴 소리를 내는데, 이 바퀴 소리를 빼고는 거의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이 땅의 모든 길들이 증오를 향해 / 열려 있었다. / 오직 이를 통하지 않고서는 / 사랑에 이를 수 없었던 수많은 날들. (증오는 추억이 아니다)



  밥 한 그릇이란 무엇일까요. 서울에 있는 어느 출판사 문턱을 드나들던 시인 한 사람하고 낮에 내장국을 먹던 일을 아스라이 되새기는 시 한 줄이란 무엇일까요. 사람을 미워하던 권력, 이 권력을 미워하던 사람, 서로 얼크러진 미움을 시로 짓는 사람, 이 시를 엮어서 펴낸 시집, 이 시집을 읽는 사람, 이 모두 어떤 마음으로 이어지는 셈일까요.


  어린 목숨이 숲에서 태어나 숲에서 자랍니다. 숲에서 태어나 자란 어린 목숨은 어느새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된 목숨은 이제 숲을 떠날까요, 아니면 앞으로도 숲에서 살림을 지을까요.


  해남에서 나고 자랐다가 서울로 가서 시를 쓰던 한 사람을 그려 봅니다. 장성에서 나고 자랐다가 서울로 가서 시를 쓰던 한 사람을 헤아려 봅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마주치던 두 시인을 생각해 봅니다. 해남말하고 장성말이 어우러지면 어떤 말이 태어났을까요? 이른봄에 심은 옥수수에 어느새 꽃대가 나려 합니다. 2016.6.12.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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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 교실 - 문현식 동시집
문현식 지음, 이주희 그림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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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82



형아는 날 좋아하고, 난 엄마를 좋아하지

― 팝콘 교실

 문현식 글

 이주희 그림

 창비 펴냄, 2015.5.15. 9000원



  교사 문현식 님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몫을 맡습니다. 이 같은 교사 노릇을 꾸준히 하면서 어느새 ‘어른 마음’에서 ‘아이 마음’으로 기울어지는구나 싶습니다. 교사 자리는 어른이 맡습니다만 어른 눈높이나 눈길만으로는 아이를 즐겁게 가르치거나 슬기롭게 이끌기 어려운 줄 알아채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가르치는 어른은 으레 ‘어른 눈길’이 아닌 ‘아이 눈길’로 바뀌곤 합니다. 그저 어른으로 있는 채 아이를 가르치려고 하면, 아이로서는 너무 어렵거나 힘들기 마련이에요. 아이는 어른보다 키나 몸도 작고 힘도 여립니다. 더욱이 아이는 어른처럼 온갖 사회 지식을 몸에 익히지 않았어요. 그러니 수많은 지식이나 이론으로 아이를 가르치려고 하면 아이로서는 못 알아듣겠지요.


  교사뿐 아니라 여느 어버이도 언제나 아이 눈높이나 눈길이 되면서 아이를 따사로이 사랑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교사와 어버이 모두 아이하고 한마음이 되려는 몸짓이 되면서 서로 즐거운 하루를 새롭게 누릴 만하다고 느낍니다.



나한테만 죽어라 / 공 던지는 애 / 꼭 있다. // 이상하게 괜히 / 미운 짓 하는 애 / 꼭 있다. // 더 이상한 건 / 그런 애 좋아하는 애 / 꼭 있다. / 여기 있다. (이상하게 좋은 애)


커다란 팝콘 기계 안에 / 옥수수 알갱이 서른 개가 / 노릇노릇 익으면서 / 톡톡 튄다. // 알갱이들아 / 계속 튀어라. / 멈추면 선생님이 냠냠 / 다 먹어 버릴지도 몰라. (팝콘 교실)



  교사 문현식 님이 빚은 동시집 《팝콘 교실》(창비,2015)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팝콘처럼 뻥뻥 터지듯이 즐겁거나 놀랍거나 새롭다는, 때로는 개구지거나 밉살맞거나 짜증스럽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느 날에는 즐거운 웃음이 뻥 터진다고 해요. 어느 날에는 하나도 안 즐거운 골부림이 뻥 터진다고 해요. 이 모두 가만히 마주하면서 차분히 다스리기에 교사 문현식 님은 동시를 꾸준히 쓰면서 아이들하고 ‘노래’를 부를 수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옥상 철문이 열려 있어 / 몰래 올라갔다. // 몰랐다 / 교실 위에 / 이렇게 파란 하늘이 있었는지. (학교 옥상)


축구 잘하는 / 차돌이 일기는 / 축구 일기. / 오늘은 세 골 넣었다고 쓰는 일기. // 일기 쓰기 싫어하는 / 내 동생 일기는 / 어제 일기. / 오늘은 어제랑 같다고 쓰는 일기. (일기 쓰기)



  〈학교 옥상〉 같은 동시는 아이들이 겪은 일일까요? 아니면 초등학교 교사로서 겪거나 느낀 일일까요? 아니면 아이와 어른(교사)이 함께 겪거나 느낀 일일까요?


  요즈음은 초등학교 어린이도 온갖 학원을 다녀야 합니다. 중·고등학교 푸름이 못지않게 입시와 수업과 학습으로 어지럽게 쳇바퀴를 돌아야 하는 초등학교 어린이예요. 이러다 보면 아이들은 막상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볼 겨를이 없을 수 있어요.


  교사 문현식 님이 나고 자랐다고 하는 서울은 높은 건물이 많아서 하늘 한 조각을 올려다보기에도 만만치 않을 만하고, 길에 자동차도 많고 사람도 많아서 섣불리 하늘을 올려다볼 수 없을 만해요. 학교에서도 수업이 바쁘니 옥상이라든지 운동장에 드러누워서 하늘바라기를 할 겨를이 없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른도 아이도 너무 바쁘면 하늘을 모르는 채 하루가 흐르고, 어느덧 한 달 두 달 한 해 두 해 빠르게 지나가기 일쑤예요. 바쁜 걸음을 멈추고 하늘바라기를 하면서 하늘을 보거나 느끼거나 알 수 있어요. 바쁜 걸음을 멈추고 들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나비도 보면서 비로소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숨결을 보거나 느끼거나 알 수 있어요. 바쁜 걸음을 멈추어야 비로소 손에 연필을 쥐고 동시를 쓸 수 있어요.



넌? / 나? 52점 // 집에 가면 쩔겠네? / 아니. // 안 혼나? 쩐다. / 우리 집 완전 쩔어. 52점 맞아도 막 웃어. (쩔어)


형아가 먹는 약은 알약 / 내가 먹는 약은 물약. // 형아가 잘하는 것은 공부 / 내가 잘 안 하는 것도 공부. // 형아가 젤 좋아하는 사람은 나 / 내가 젤 좋아하는 사람은 엄마. (형아와 나)



  살짝 장난스럽거나 개구진 이야기를 동시로 담은 《팝콘 교실》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두 아이가 있으면 큰아이는 동생을 좋아하기 마련이고, 동생은 빙그레 웃으면서 어머니(엄마)가 좋다고 하기 마련이라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그러나 동생도 제 형이나 언니나 누나를 더없이 좋아하겠지요. 서로 아끼면서 돌보는 사이일 테고,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사이일 테지요.


  교사와 학생 사이도 이와 같으리라 느낍니다. 교사 문현식 님은 교실에서 ‘아이들이 좋다’고 말할 테지만, 아이들은 ‘어머니(엄마)가 좋다’고 말할 테지요. 교사 문현식 님은 교실에서 아이들한테 ‘우리 공부하자’고 말할 테지만, 아이들은 ‘우리 공부 말고 놀이 해요’ 하고 말할는지 모릅니다.


  학교는 가르치고 배우는 곳, 그러니까 공부하는 곳입니다만, 이 학교가 공부뿐 아니라 즐겁게 놀이를 누리고, 동무를 아끼는 마음을 배우며, 씩씩하게 자라는 몸짓으로 살림도 익히는 멋진 배움터가 될 수 있기를 빕니다. 공부도 하고 놀이도 하고 살림과 사랑도 배운다면, 이 멋진 배움터에서 새로우면서 기쁜 노래(동시)가 앞으로도 신나게 흐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2016.6.4.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동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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