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 시인동네 시인선 58
김효선 지음 / 시인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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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88


살구를 맛볼 수 없던 제주에서 자란 시인
― 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
 김효선 글
 시인동네, 2016.6.29. 9000원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 마당에 설 적에 어떤 소리를 듣느냐에 따라 하루가 달라지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누구는 새벽 일찍 일어날 테고, 누구는 아침 느즈막하게 일어날 테지요. 일찌감치 하루를 열거나 길을 나서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밤새 고단하게 일하느라 아침에 비로소 몸을 쉬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는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다른 살림을 짓습니다.

  오늘 저는 아침에 마당에 서서 휘파람새 노랫소리를 들었습니다. 시골에서 아침이라 하면 으레 대여섯 시 무렵입니다. 새벽 두어 시 즈음부터 휘파람새 노랫소리를 들었는데 아침 대여섯 시에도 휘파람새 노랫소리는 이어지더군요. 우리 마을에서는 올들어 삼월 십오일께부터 휘파람새 노랫소리를 들었어요. 낮에는 노래하지 않고 저녁이 이슥해질 무렵 비로소 노랫소리를 들을 만한 휘파람새인데, 이 땅에 봄이 찾아왔네 하고 느끼면 어김없이 이 새가 멧자락을 고요히 울리는 노랫소리를 베풀어요.


나의 왼쪽 얼굴만 기억하는 당신 
나머지 반쪽을 떠나보낸 먹구름 
게릴라성 폭우가 쏟아진다는 소식이다 

‘나’라는 문장의 오류는 여전히
 ‘나’라는 환멸에서 시작되고 있다. (아름다운 환멸)

우리가 별이라고 믿었던 것은? 

사거리엔 별다방이 있다 음침한, 삼거리엔 삼거리별이 오거리엔 오거리행성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우주는 늘 반짝거렸다 누워 있기 딱 좋은 방 (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


  비가 오는 날씨에 맞추어 씨앗을 심지 않았습니다만, 아이들하고 옥수수 씨앗을 심은 이튿날 사월비가 주룩주룩 내립니다. 비가 오기 앞서 옥수수를 알맞게 심었네 하고 생각합니다. 이 비를 맞으며 해바라기 씨앗을 더 심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작은 씨앗은 우리 집 둘레에 가만히 깃들면서 무럭무럭 자라는 꿈을 키울 테고, 우리는 우리 손으로 심은 씨앗이 씩씩하게 싹이 터서 마음껏 크기를 바라요.

  이 봄날에 김효선 님 시집 《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시인동네,2016)를 읽습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며 제주를 떠날 날을 그렸다는 시인은 제주를 떠나 봄직했으나 다시 제주에 깃드는 삶이 되고, 제주에 있는 대학교에서 젊은이를 가르치는 일을 한다고 해요. 시집 《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에는 제주라는 고장에서 어린 나날을 보내고 젊은 나날에 꿈을 키우던 한 사람이 걸어온 발자국이 가만히 드리웁니다.


드라마에서 악역으로 나오는 연기자가
유명 출판사의 시집을 읽고 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모든 사물은 잡았다 놓아버린 손목이다 
봄에 만난 제비꽃도 
여름 저녁의 로즈마리도 
시든 손목을 어쩌지 못하고 자꾸 
부서졌다 (시와 당신)

누가 내 손금을 보더니 
늦게 피는 꽃이라 했다 
마음 한 구석이 뽀로통해졌다 (늦게 피는 꽃)


  방송에 나오는 배우가 손에 시집 한 권을 쥐면 이 시집은 갑작스레 잘 팔린다고 합니다. 잘 읽힌다기보다 잘 팔린다고 해요. 시집이 잘 팔리는 일이 나쁘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다만 살짝 고개를 갸우뚱하기는 합니다. 시집은 ‘잘 팔리기’만 해야 할까 하고 말예요. 시집은 ‘잘 읽힐’ 수 있을까 하고도 생각해 봅니다.

  이름난 출판사에서 나온 이름난 시집을 방송에 나오는 배우가 손에 쥐는 일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딱히 재미있거나 재미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해 볼 수 있어요. 연속극에 나오는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린드그렌을 읽거나 권정생을 읽는다면? 연속극에 나오는 젊은 사내나 가시내가 세월호 아픔을 담은 인문책을 읽는다면? 연속극에 나오는 이들이 ‘한국말사전을 찬찬히 읽는다’면? 연속극에 나오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돋보기를 쓰고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읽는다면? 그저 멋스러이 보여주는 모습이 아니라, 참말 책읽기에 사로잡혀서 기쁜 눈짓을 한다면?


십 대의 창문엔 멀구슬나무가 살았다. 
늙은 구렁이도 함께 살았다. 
멀구슬나무에 똬리를 틀고 
천천히 보랏빛 꽃을 뜯어먹었다. 
가끔 창밖으로 눈이 마주칠 때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멀구슬나무의 전생)

한 평 남짓한 방에서 다섯 식구가 잠을 자던 때가 있었다. 불을 때지 않아도 겨울을 날 수 있었다 우리가 그 방을 벗어나기 위해 밤마다 질 나쁜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울 동안마저 소공녀나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읽었다 (한 평의 세계)


  제주 시인 김효선 님이 그리는 멀구슬나무는 구렁이하고 함께 나옵니다. 저는 이 멀구슬나무를 전남 고흥에 깃든 뒤에 처음 만났습니다. 고흥읍에서 한 번 만났고, 고흥군 도양읍에 있는 어느 고등학교 건물 뒤쪽에서 새롭게 만났어요. 제주에서는 ‘멀구슬’ 말고 ‘먹구슬’이라는 다른 이름을 흔히 쓴다고 해요. 고흥에서도 ‘멀구슬’ 말고 다른 이름을 흔히 써요. 고흥내기는 이 나무를 두고 ‘멀꿀나무’라고 합니다. 서울 표준말은 ‘멀구슬’일 테지만 고장마다 다 다른 이름이 있는 나무예요.

  가만히 보면 이 봄에 누리는 나물을 놓고도 고장마다 이름이 달라요. 식물학자라면 아마 서울 표준말이나 학술 이름을 쓰겠지요. 그러나 경상사람은 그저 예부터 쓰던 ‘정구지’라는 이름을 써요. 전라사람은 그냥 예부터 쓰던 ‘솔’이라는 이름을 쓰고요.

  아침에 밥을 지으면서 큰아이를 불러 심부름을 맡깁니다. 처음에는 큰아이하고 우리 집 마당 한켠에 함께 쪼그려앉아서 솔을 톡톡 끊습니다. 이러면서 큰아이한테 말하지요. “자, 아버지는 이제 들어가서 밥을 하고 국을 끓일 테니, 네가 솔 좀  끊어서 채반에 소복하게 담아 주겠니?”


살구는 너무 멀어서 가질 수 없었다
어떤 맛일까 궁금해서 잠이 오지 않는
밤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도 살구를 먹을 수 없었다
내가 모르는 먼 곳에 있었으니까
섬은 그런 곳이다
살구를 모르는 곳
처음으로 살구를 사먹게 되었을 때
시지도 달지도 않은 그저 밍밍한 맛이었다 (섬)


  살구를 맛볼 수 없던, 살구를 그저 이름으로만 알고 그림이나 사진으로만 만나면서 자라던 아이는 어느덧 어른이 되었습니다. 한 평 남짓 되었던 방에서 다섯 식구가 올망졸망 밤잠을 이루었다던 어린 날을 떠올리는 어른은 이제 교수도 되고 시인도 됩니다. 예전처럼 살구를 맛볼 수 없는 제주가 아니라, 이제는 살구쯤 어렵잖이 사먹을 수 있는 제주입니다 여행객도 관광객도 많은 제주예요.

  이 제주에서 앞으로 어떤 시가 노랫가락으로 흐를 만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매화꽃이 지고 앵두꽃이 흐드러지는 이 사월 봄날에, 들딸기꽃이 하얗게 들이랑 숲을 밝히고, 모과꽃이 곧 터지려고 하는 이 사월 봄날에, 곧 찔레싹을 훑어 나물을 무칠 수 있는 이 사월 봄날에, “오늘은 어떤 사랑이고 모레는 어떤 날씨일까” 하는 생각을 품으면서 시집 《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를 살며시 덮습니다. 2017.4.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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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의 방식 문학의전당 시인선 222
서정연 지음 / 문학의전당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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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68

 


돼지저금통을 깨 본 사람은 알지
― 목련의 방식
 서정연 글

 문학의전당 펴냄, 2016.2.12. 9000원

  돼지저금통을 깨 본 사람은 압니다. 돼지저금통을 깨면서 아주 살짝 숨통을 틀 수 있는 듯하지만, 곧 더는 깰 돼지저금통조차 없는 줄을. 비록 오늘 마지막 돼지저금통을 깨지만, 앞으로는 더 깰 돼지저금통이 없으니 어떻게든 이 바닥을 치고 일어나자고 생각합니다.


  어른인 내 돼지저금통을 깨면 그나마 나은데, 내 돼지저금통이 아니라 아이들 돼지저금통을 깬다면 겨우 숨통을 트더라도 마음이 이내 갑갑합니다. 어쩌자고 아이 돼지저금통을 깼나 싶고, 아이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싶어 아찔하기도 해요.


  그런데 말예요, 아이들 돼지저금통마저 깨 본 사람은 알아요. 아이들은 다 받아들여 주어요. 아이들은 아낌없이 마지막 10원짜리 쇠돈까지 챙겨서 내밀며 어른을 걱정해 줍니다. 어른더러 얼른 기운을 차리라고 되레 북돋아 줍니다.


새는 걸어서 하늘을 날고 // 아기는 걸어서 샛길로 가고 // 나는 걸어서 (새야)

처마 끝에는 광주리가 매달려 있다. 광주리에서는 바람이 지날 때마다 소리가 났다. 마당가를 비추던 햇살이 토방까지 와 닿았다. 아이는 광주리를 향해 까치발을 들었다. 광주리에는 삶은 고구마와 열무김치, 보리밥인 새참이 들어 있을 것이다. 아이의 손은 광주리에 닿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풍경 소리)


  서정연 님 시집 《목련의 방식》(문학의전당,2016)은 쉽게 읽을 만한 시집이면서 쉽게 읽기 어려울 만한 시집입니다. 아이들과 살림을 짓는 어머니로서 수수하고 쉬우며 따사로운 말씨로 시를 풀어내기에 쉽게 읽을 만합니다. 그런데 빚을 빛으로 여기는 아프면서 슬프면서 고우면서 너른 마음을 읽다가 자꾸 책을 덮어야 할 만큼 읽기가 어렵습니다. 한 줄을 함부로 넘기기 어렵고, 두 줄을 섣불리 읽어치울 수 없습니다.


새벽 꿈 사이로 길을 간다. 산길을 간다. / 아무도 없는 길. 한적한 길. / 주-욱 뻑은 길. 기다란 길. // 새 한 마리, / 나를 일으키는 새 한 마리. (새)

지키느라 / 죽는 줄 알았다 (가정)

  ‘가정’이라는 이름으로 쓴 시를 봅니다. “지키느라 죽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참말 그렇지요. 가난하고 가난하며 또 가난하고 자꾸 가난하다가 그예 끝없이 가난한 집살림이라면, 이 집안을 지키느라 얼마나 애가 닳고 숨이 타며 목이 잠길까요. 죽는 줄 알 만큼, 목숨을 걸고서 온갖 용을 짜낼 만큼, 참으로 기나긴 나날이 흐릅니다.


  그런데 그 숱한 이야기를 줄줄이 풀어놓자니 오히려 아찔해요. 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짤막하게 한 마디예요. “지키느라 죽는 줄 알았다”


나 / 가난하지만 / 많이 가난하지만 // 빚을 빛으로 여길 수 있는 / 눈물이 있어서 / 나, 풍요롭다 (눈물의 힘)

  시집 《목련의 방식》은 겨울이 저무는 길목에서 태어났습니다. 잎샘바람이나 꽃샘바람이 불면서 아직 시린 겨울 끝자락에 나온 시집입니다. 마침 때도 알맞게 나왔네 싶은 시집입니다.


  새봄에 새롭게 깨어날 목련 봉우리는 우리한테 어떤 말씀을 건넬 만할까요? 새봄을 맞이하더라도 아직 가난한 굴레에서 허우적거리는 살림이라면, 이 봄날에 봄꽃이 얼마나 눈에 들어올 만할까요? 새봄에 새로운 봄꽃을 바라보는 즐거운 잔치를 못 누린다면 이 봄은 얼마나 시리거나 추울까요?


아이가 잠든 틈을 타 / 빨간 돼지저금통 배를 가른다 // 쏟아져 나온 동전으로 탑을 쌓아 헤아리고 / 구겨진 종이돈은 다림질하고 / 먹거리도 장난감도 아이 옷도 사야 한다 // 돼지저금통 배를 갈라 / 아이의 꿈을 훔친다 (돼지저금통)

  부디 낮은 곳에 햇살이 드리우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부디 모든 정치와 정책과 행정이 낮은 곳을 헤아리는 따스한 손길이 되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가난한 어머니가 아이들 손때가 묻은 돼지저금통을 깨는 일이 없도록 이 나라가 거듭나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우리 힘을 내요. 오늘은 아이들 돼지저금통을 깼어도, 모레에는 아이들한테 새 돼지저금통을 건네어 주고, 앞으로는 돼지저금통을 깨지 않고 살뜰히 모아서 아이들이 찬찬히 꿈을 지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씩씩하게 일어서요.


  아이들은 모두 안다고 느껴요. 어머니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돼지저금통을 깬 줄을 알고, 앞으로는 돼지저금통이 아닌 갑갑한 사회를 깰 날을 맞이할 줄을 알지 싶어요. 2017.3.4.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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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끈 애지시선 41
이성목 지음 / 애지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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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85



늙은 소파가 노란 꽃을 피우다

― 노끈

 이성목 글

 애지 펴냄, 2012.9.27. 9000원



  실이나 삼이나 종이를 가늘게 비벼서 꼬아 길게 늘어뜨려서 ‘노끈’입니다. 종이를 꼬아 엮기에 ‘노’이고, 이 노로 그릇이나 바구니를 엮는 일을 ‘노엮개’라고 합니다. 아주 단단하지 않아도 제법 단단한 노끈이고, 이 노끈은 숲에서 자란 나무에서 비롯해요. 노끈을 손으로 만질 적에는 한결 보드라우면서 푸른 숨결을 느낄 수 있기도 합니다.


  이성목 님 시집 《노끈》(애지,2012)을 읽으면서 노랑 노엮개랑 노끈을 새삼스레 떠올립니다. 이 시집에서는 노끈 이야기나 노나 노엮개 이야기는 흐르지 않습니다. 이 시집에서는 사람하고 사람 사이에 이어진 끈을 이야기합니다. 아주 단단하지 않으나 제법 단단하게 이어진 사람 사이 끈을 이야기합니다. 물에 젖으면 쉬 끊어질 수 있는 노끈처럼 사람 사이에 이어진 끈도 아주 작은 일 하나로 끊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마당을 쓸자 빗자루 끝에서 끈이 풀렸다 / 그대를 생각하면 마음의 갈래가 많았다 / 생각을 하나로 묶어 헛간에 세워두었던 때도 있었다 / 마당을 다 쓸고도 빗자루에 자꾸 손이 갔다 (노끈)



  우리가 입는 모든 옷은 천으로 짭니다. 천을 가만히 보면 수많은 실이 얼기설기 있습니다. 공장에서 화학섬유로 짠 옷이라 하더라도 모든 옷은 가느다란 실오리를 엮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얼핏 못 느낄 수 있는 실오리인데, 숲에서 온 실오리이든 석유에서 뽑은 실오리이든, 가느다란 실오리를 엮기에 비로소 옷이 태어나요.


  사람하고 사람 사이도 늘 이와 같다고 느껴요. 얼핏 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고, 문득 보면 가볍게 스쳐 지나가기도 하는 사이입니다. 가까이에 이어진 듯하고 멀리 떨어진 듯하기도 한 사이입니다. 우리는 서로 튼튼하게 잇닿은 사이가 될 수 있고, 우리는 따로 떨어지며 멀어지는 사이가 될 수 있어요.



저, 몸을 함께 짜 맞춘 아비와 어미도 / 올 하나 풀어내지 못하였다 / 그는 매듭을 가졌다 몸속에 질긴 / 생이 올가미처럼 묶인 스무 살이었다 / 의사는 눈동자에 고인 검은 호수를 들여다보거나 / 일렁이는 수면에 청진기를 대 볼 뿐이었다 / 어미가 앞섶을 열어 헤쳐 꺼낸 / 돌덩이 같은 실몽당이 하나 / 아비는 실을 풀어주고 어미는 다시 옷을 짰다 (풀어 다시 짤 수 없는 옷)



  어버이는 아이하고 실오리가 엮입니다. 아이는 어머니 아버지하고 실오리가 엮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처음 나고 자라는 곳에서 수많은 동무나 이웃을 만납니다. 반가운 동무나 이웃이 있을 테고, 보기 싫은 동무나 이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살가운 동무나 괴로운 이웃이 있을 수 있어요.


  때로는 구경꾼처럼 팔짱을 낍니다. 때로는 감정노동이라는 말처럼 얼굴에 억지로 웃음을 띱니다. 때로는 억지스러운 웃음조차 없이 차갑거나 매몰찹니다. 때로는 모든 앙금을 털어내면서 환하게 노래합니다. 때로는 이도 저도 아니어서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이 땅을 떠나고 싶습니다.



팔순의 할머니를 아기처럼 무릎에 올려 앉히고 예순의 자원봉사 할머니가 흰밥 한 숟가락 퍼 올려 입에 댄다. 자아, 드세요. 입술만 꼼지락 꼼지락 움직이다 마는 입맛에 게 왜 안 드세요? 말하고 한 숟가락 먹어보고, 맛있어요! (첫눈)


모든 육체는 목숨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품고 태어나는 것이다. 몸에서 시간이 비곗덩어리처럼 분리되는 아버지 임종을 지킨 다음, 사내는 시간의 심복이 되었다. (새김꾼)



  여든 살 할머니 곁에서 밥을 떠먹이는 예순 살 할머니가 있다고 합니다. 아흔 살 할머니 곁에서 똥오줌을 치우는 일흔 살 할머니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스라한 지난날에는 서른 살 어머니가 열 살 아이를 돌보았을 테고, 한 살 아기를 보살폈을 테지요. 서로 차츰 나이를 먹으면서 돌보거나 보살피는 사이가 달라집니다. 천천히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끈으로 이어집니다. 또는 예전 끈이 끊어집니다. 곁에 있던 사람이 멀어지고, 아주 동떨어진 데에 있었지 싶은 사람이 가까이로 찾아옵니다.



소파가 꽃을 피우려는지 인조 가죽이 여러 갈래로 튼다. 갈라진 틈새로 노란 스펀지가 올라온다. // 의자는 몇 해 전에 이미 꽃을 피웠다. 굵고 탄력 있는 스프링 꽃대가 아직도 등뼈처럼 구부정하다. (이제 꽃피면 안 되겠다)



  늙은(또는 낡은) 소파가 노란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폭신하던 걸상은 낡으면서 목숨이 다하여 이제 스러지려 한답니다. 사람은 늙고 살림은 낡습니다. 그런데 낡아서 스러지려고 하는 걸상은 어느 모로 보면 꽃을 피우는 모습 같다고 합니다. 용수철이 구부정한 등뼈처럼 보이고, 스펀지가 봄꽃처럼 노랗게 빛난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입은 옷은 보풀이 올라오고 해진 자리는 구멍이 납니다. 낡은 옷은 오물조물 조그마한 꽃이 잔뜩 피어나는 모습이라고 할 만합니다. 스무 해 즈음 입어서 해진 바지에 천을 대어 기우다가, 시집 《노끈》에 나오는 노란 꽃 피우는 소파 이야기를 읽다가, 꽃이란 무엇일까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꽃피우다’라는 말을 으레 젊은 사람한테 쓰는데, 어쩌면 ‘꽃피우다’는 나이가 젊은 사람한테만 쓰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꿈을 지어서 새롭게 깨어나려는 사람한테 쓰는 말이 아니랴 싶습니다.


  꽃이 피면서 한동안 눈부시지만, 이내 꽃이 지면서 씨앗을 맺어요. 꽃이 필 적에는 곧 꽃이 지며 씨앗을 맺는다는 뜻입니다. 불꽃이 일기에 따스하다가 곧 불길이 사그라들어요. 나이가 들며 무르익는 사람도 살림도 천천히 거듭나는 사이가 되겠지요. 노끈에 서린 숲내음을, 사람 사이에 감도는 마음을 돌아봅니다. 2017.2.23.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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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동네 게시판 크레용하우스 동시집 1
박혜선 지음, 김정진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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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86



새봄에 깨어날 개구리를 기다리며 읽는 시

― 개구리 동네 게시판

 박혜선 글

 김정진 그림

 크레용하우스 펴냄, 2011.6.29. 9000원



  겨울이 지나고 봄이 가까우면 몇 가지 그리우면서 반가운 님이 우리 곁에 새롭게 찾아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설렙니다. 첫째, 개구리가 곧 깨어나겠지 하고 생각해요. 둘째, 개구리에 이어 풀벌레도 깨어날 테지 하고 생각해요. 셋째, 겨울을 앞두고 이 땅을 떠난 숱한 철새가 다시 찾아오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박혜선 님이 빚은 동시집 《개구리 동네 게시판》(크레용하우스,2011)을 읽으며 새봄에 반가울 님 가운데 개구리를 떠올려 봅니다. 아, 개구리 노랫소리란! 개구리 뜀박질이란! 이슬 내린 풀잎에 앉아서 아침을 맞이하는 풀개구리를 보는 기쁨이란!



내가 아플 때 / 엄마 맘은 / 더 아프다 하셨다 // 개나리 엄마도 그랬을까? / 내가 노란 꽃 똑똑 따서 / 꽃비처럼 뿌리며 놀았을 때 (후회)


도장 콩, 찍는 대신 / 꽃잎 한 장 붙여 둔 / 개구리 동네 게시판 (개구리 동네 게시판)



  동시집 《개구리 동네 게시판》은 시골에서 사는 아이가 바라보는 모습이 잔잔히 흐릅니다. 오늘날 나오는 거의 모든 동시집이나 동화책은 도시 이야기가 바탕이에요. 도시에서 나고 자라서 도시에서 학교랑 학원 사이에서 맴돌이질하는 이야기만 지나치도록 넘치는 어린이문학이지 싶어요. 아무래도 시골에 사는 아이가 매우 적고, 거의 모든 아이가 도시에서 사니까, 이른바 ‘거의 모든 독자’ 눈높이를 맞추자면 시골 이야기보다 도시 이야기가 걸맞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흐름에 한 마디를 묻고 싶어요. 그러면 시골 어린이를 헤아리는 동시나 동화는 없어도 될까요? 시골에서 나고 자라는 ‘얼마 안 되는 독자’를 헤아리면서 이 시골 아이가 시골을 좋아하고 사랑하며 아끼도록 북돋우는 어린이문학을 쓰는 어른은 없어도 될까요?



나보다 더 어렸을 때 / 엄마가 한 낙서 // 늙지도 않고 / 그대로 있다. (외갓집에 가면)


어스름한 저녁 / 엄마보다 먼저 / 대문을 들어서는 흙냄새 // 엄마가 자고 일어난 자리에 / 소르르 / 흙이 떨어져 있다. (우리 엄마)



  시골스러운 이야기를 시골스러운 목소리로 들려주기에 ‘시골 아이만 읽는 어린이문학’이 되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길어올린 시골 동시도 ‘도시 아이가 즐길 어린이문학’이 될 수 있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만해요. 도시에서 살더라도 도시사람이 늘 먹는 모든 밥은 시골에서 지어요. 시골이 있기에 밥도 나물도 뭍고기도 물고기도 먹어요. 시골에서 자라는 나무를 베어서 책걸상을 짜고 종이를 빚고 책을 엮어요. 시골에 아름드리 숲이 있기에 도시에서도 싱그럽고 푸른 바람을 마실 수 있어요.


  아무리 시골사람 숫자가 적더라도, 시골은 도시를 이루는 바탕이라 할 만해요. 아무리 시골 아이들이 아직도 빠르게 줄어들면서 도시로 빠져나가더라도 온누리 아이들은 시골스러운 숨결을 먹고 마시며 자란다는 대목을 놓칠 수 없어요.



사람이 텔레비전을 보는 게 아니라 / 텔레비전이 사람을 본다 // 말 한마디 없이 / 멀뚱멀뚱 자기만 쳐다보는 사람들 / 텔레비전은 참 우습다 (사람 보기)


빈 항아리 속에 떨어진 / 감 이파리 한 장도 / 따라간다 // 감 이파리 위에서 잠자던 / 달팽이 한 마리도 / 달팽이처럼 장롱 구석을 기웃거리던 / 왕귀뚜리 한 마리도 / 왕귀뚜리 눈처럼 까만 / 풀씨 몇 알도 / 빈 화분에 얹혀 (이사)



  차분하게 흐르는 동시를 읽습니다. 빠르게 내달리지 않는 삶결을 보여주는 동시를 읽습니다. 서로 나누는 살림을 드러내는 동시를 읽고, 철 따라 새롭게 드러나는 이야기가 깃든 동시를 읽습니다.


  달력이나 손전화나 텔레비전 모두 내려놓고 생각해 보아요. 교과서를 들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은 달이나 날이나 철하고 동떨어져요. 국어 과목도 수학 과목도 사회나 과학이나 영어 같은 과목도, 막상 달이나 날이나 철을 헤아리지 않아요. 철 흐름이 안 담기는 교과서이고, 철 흐름을 살피지 못하는 교육 얼거리예요.


  겨울이 저무는 새봄이기에 들과 밭과 숲을 거닐면 푸릇푸릇 돋는 봄맞이풀하고 봄맞이꽃을 만날 수 있어요. 나무마다 곧 터지려는 조그마한 움을 찾을 수 있어요. 풀 한 포기가 교과서 노릇을 하고, 나무 한 그루가 참고서 구실을 해요. 멧새 한 마리가 교사 노릇을 하고, 풀벌레 한 마리가 강사 구실을 해요.



오월 한낮에 / 하얀 / 싸락눈 // 녹지도 않고 / 가지마다 조물조물 / 매달려 있다. (조팝나무)


전기톱이 / 나뭇가지를 땅으로 / 떨어뜨린다 / 잘려 나가는 / 그 가지 / 까치집일 수도 있는데 / 참새 놀이터일 수도 있는데 (가로수)



  《개구리 동네 게시판》에는 꽃잎이 붙는다고 해요. 사람 마을 게시판에는 무엇이 붙을까요? 개구리 마을에서는 냇바닥에 시멘트를 들이붓는 일이 없을 테지요? 사람 마을에서는 아직도 냇바닥에 시멘트를 들이붓는 일을 벌이고, 숲을 밀며, 오랜 골목마을을 부수는 일이 끊이지 않아요.


  도시에서 왜 가지치기를 해야 할까요? 나무가 무엇을 가리거나 막기에 그렇게 모질도록 줄기를 뭉텅뭉텅 베어야 할까요? 자동차가 다니기 좋도록 닦는 길보다, 사람이 아늑하게 거닐기에 좋은 길로 바꿀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교과서를 빨리 떼면서 시험성적이 잘 나오도록 하는 교육을 내려놓고는, 아이들이 숲바람을 쐬고 햇볕을 쬐면서 싱그럽게 자라도록 이끄는 새로운 배움맏당을 열 수 있을까요?



학교 가는 발걸음 / 바람의 입김이 보태지면 / 더 가볍다 / 체육 시간 / 땀 흘린 내 몸 / 바람이 스치면 / 금방 시원해진다 / 잠들 때도 / 창틈으로 달캉달캉 / 꽃내음 뿌려 주는 바람 (미안하다 바람아)



  새봄에 깨어날 개구리를 기다리며 시를 읽습니다. 새봄에 개구리랑 나란히 노래잔치를 벌일 풀벌레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시를 읽습니다. 새봄에 우리 집 처마 밑으로 제비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시를 읽습니다. 새봄에 흐를 흰구름을 꿈꾸면서, 새봄에 피어날 들꽃을 기다리며, 새봄에 터질 매화꽃이며 모과꽃이며 민들레꽃이며 앵두꽃이며 딸기꽃이며 기다리면서 시를 읽습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이 작은 동시집을 가슴에 품고 즐거울 수 있기를 빕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도 작은 동시집을 두 손에 쥐며 너른 마음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2017.2.21.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동시읽기/동시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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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을 주는 일 모악시인선 3
문신 지음 / 모악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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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를 노래하는 말 284



‘곁주기’하고 ‘겉주기’ 사이

― 곁을 주는 일

 문신 글

 모악 펴냄, 2016.9.23. 8000원



  시인 문신 님은 《곁을 주는 일》(모악,2016)이라는 시집을 내놓으면서 “곁을 주는 일”이란 “살 부비고 싶어지는 일”이라고 읊습니다. 가늘면서 단단하게 읊는 “곁을 주는 일”을 곱씹어 봅니다. 누구한테는 ‘곁주기’가 ‘살부빔’일 수 있을 테지요. 누구한테는 곁주기가 ‘한마음’일 수 있어요. 누구한테는 곁주기가 ‘한눈’이나 ‘한길’이 될 수 있습니다.



아들아, // 속옷 바람으로 널 내쫓아놓고 애비는 처마처럼 두 귀가 얼어 네 울음을 듣는다. (동지)


잠이 가비얍다 낙엽이 진다 하늘은 어지럽고 아내는 살이 붇는다 달은 치마가 짧아지고 아들 녀석은 종아리 살이 단단하다 잠이 길어도 (입추)



  사내하고 가시내 사이에서 살을 부벼야만 서로 곁을 주는 일이 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살부빔은 수많은 곁주기 가운데 아주 조그마한 한 가지이지 싶어요. 살만 부비면서 머문다면, 살을 부비는 생각에서 멎는다면, 살을 부비고 끝낸다면, 이는 곁주기라기보다는 ‘겉주기’이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친구의 이혼 서류에 보증인 진술서를 써 주고 온 날은 종일 맑았다 / 바람도 훈훈하였다 / 달력을 넘겨보니 어느덧 2월이었다 // 뒷담 그늘에 / 여중생 두 명이 쭈그리고 앉아서는 / 두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있었다 / 빨갛게 언 종아리를 와들와들 떨어대고 있었다 (지지난해)



  살아가는 하루를 시로 읊습니다. 살아가는 나날을 시로 그립니다. 살아가고픈 꿈을 시로 노래합니다. 살아가려는 몸짓을 시로 짓습니다. 시집 《곁을 주는 일》에는 문신 님 나름대로 용을 쓰고 악을 쓰며 이를 깨무는 살림이 흐릅니다. 감출 일이 없고 숨길 일도 없이 고스란히 드러낼 살림이 흐릅니다.



곁을 주는 일이 이렇다 할 것이다 // 애초에 한 몸이었다가 홀연 등 떠밀린 것들 / 이만큼 / 살 부비고 싶어지는 일이라 할 것이다 // 그러니 애인이여 / 우리 헤어져 / 둘이 되어도 좋을 일이다 (곁을 주는 일)



  밥물 안치는 곁님을 끌어다 앉혀서 눈을 함께 구경할 수 있어요. 그리고 밥물 안치는 곁님은 눈을 구경하도록 해 놓고서 아저씨 시인이 밥물을 마저 안쳐서 밥을 짓고 밥상을 차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아저씨 시인이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비질을 하고 집살림을 건사해 놓고서 곁님더러 ‘살부빔’을 해 보자고 속삭였다면 어떤 이야기가 시로 드러날까 하고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눈 내린 아침, 밥물 안치는 아내를 끌어다 베란다에 앉혀 놓고, 저 눈의 무늬를 가늠해보라고, 눈 구경시킨다 (연애의 무늬)


아내와 다투고 침묵으로 하루를 보낸다 입을 닫으니 귀만 예민해진다 아내가 부엌에서 혼잣말하는 소리 심장 뛰는 소리 발가락 끝에서 핏줄 튀는 소리 그리고 고요 소리 고요도 이렇게 소란한 것을 (아내와 다툴 일이 아니다)



  사내가 쓰는 시에서 굳이 밥내음이나 물내음이 흘러야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사내가 쓰는 시에서 밥내음이나 물내음이 흐르지 않을 적에, 이른바 살가운 살내음이 살림살이에 젖어드는 이야기가 흐르지 않을 적에는, 어쩐지 겉주기로 그치는 ‘겉시’가 되지 싶어요.


  곁을 주는 일을 노래하려는 시라면 ‘겉시’보다는 ‘곁시’가 될 적에, ‘곁노래’를 부르는 ‘곁님’하고 하나가 되는 ‘곁마음’이 될 적에, 수많은 이야기가 곱게 살랑살랑 피어나리라 생각합니다. 2017.2.12.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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