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똥 굴러가는 날 창비시선 119
이재금 지음 / 창비 / 199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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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00



늦가을 서리 와도 조뱅이꽃 핀다
― 말똥 굴러가는 날
 이재금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94.3.30.


  늦가을에 비가 내리고 바람이 씽 부니 날이 매우 찹니다. 바야흐로 겨울이 코앞이라는 뜻으로 비바람이 찾아오는구나 싶습니다. 더 미루면 안 되겠다고 여겨, 늦가을비가 그친 이튿날 아침에 큰아이하고 뒤꼍에 올라 유자를 땁니다. 비는 그쳤으나 바람은 제법 붑니다. 바람이 부는 날 유자를 딴다니 얼핏 바보스럽지만, 유자는 이 찬바람을 머금으면서 더욱 노랗고 향긋하며 보들보들하지 싶어요. 올해로 일곱 해째 고흥에서 유자를 따는데 해마다 결이며 맛이 새삼스러워요. 해마다 깊어지는구나 싶고, 해마다 한결 수월하게 땁니다.


학교 들고부터 일번을 못 면한 아이.
땟국 줄줄 흐르던 아이.
얼굴에 오랑캐꽃 핀 아이.
수박 먹고 싶다던 그 아이.
몽당연필 침 찍어 글쓰던 아이. (슬픈 소원)


  새벽이나 저녁으로는 쌀쌀하지만 낮에는 볕이 따사로운 고흥입니다. 인천 언저리에서 살 적에는 십일월 막바지도 볕이 따사로울 수 있는 줄 미처 못 느꼈습니다. 다만 바람이 자고 구름이 없이 볕이 내리쬐면 한겨울에도 퍽 포근하구나 하고 느꼈어요.

  멧자락이 아닌 들녘인 밀양도 늦가을이나 한겨울에도 제법 포근할까요. 어쩌면 남녘 시골마을은 어디나 늦가을에도 볕바라기를 누릴 만하지 싶습니다. 마루에 앉아서, 마당에 서서, 빈들을 거닐며, 숲을 오르내리면서 고마운 가을볕을 받으면서 예부터 왜 ‘해님’ 같은 말을 썼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만하지 싶습니다. 아이들이기에 ‘해님 별님 달님 꽃님’이라 하지 않고, 시골에서 늘 해랑 별이랑 달이랑 꽃이 고맙고 거룩한 줄 알기에 ‘님’이라는 이름을 붙였지 싶어요.


아, 저놈 말순이
분명 말순인데 고개 얼른 돌리고 간다
밀양 장날 단장 서는 골목길
청바지에 아기 달랑 업고
겨울 속으로 가는구나
장거리 올망종말 돈사러 가는구나 (말순이)


  시집 《말똥 굴러가는 날》(창비, 1994)을 읽습니다. 책이름이 “말똥 굴러가는 날”이라니, 시를 쓴 분은 말똥을 보면서 어린 나날을 살았기에 이런 말을 쓸 수 있을까요. 이 시집을 낼 무렵에도 시골자락에서 말똥을 지켜볼 수 있어서 이러한 싯말을 적을 만할까요.


눈 오는 날
남도에 드문 함박눈 오는 날
공부시간에 첫눈 오는 날
눈송이로 피어나는 가시내들이
눈님 오시네
눈님 오시네
아 한결같이 피어오르는데
뭘 보고 있어 공부해야지
선생의 지엄한 목소리
오던 눈 그쳐
하늘 시들해진다 (어떤 수업)


  《말똥 굴러가는 날》을 쓴 이재금 님은 1997년에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동안 써 놓고 선보이지 않던 시를 갈무리해서 1999년에 《나는 어디 있는가》가 나온 적 있어요. 밀양에서 나고 자라면서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쳤고, 바로 이 밀양에서 가만히 흙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싯말마다 밀양하고 얽힌 삶이며 살림이며 사람이 흐릅니다. 아마 밀양 이웃님이라면 이 시집에 흐르는 삶이나 살림이나 사람을 눈앞에서 보듯이 그릴 만하지 싶습니다. 밀양 분이 아니어도 어느 작은 마을이나 고장에 흐르는 따사로운 가을볕 같은 기운을, 바람을, 숨결을, 이야기를, 노래를 느낄 만할 테고요.


떡볶이집
학교 가는 골목 모서리집
삼십 오가는 고운 여주인

꼬마손님 뜸하면 책 읽는다
염상섭의 《삼대》 읽고
소설 《화엄경》 읽는다
한눈 팔지 않고 책장 넘긴다 (떡볶이집)


  겨울에도 폭한 시골에서 사는 아이들이 웬만해서는 보기 드문 함박눈을 교실에서 창밖으로 내다보다가 ‘눈님’이라고 노래했다지요. 참말 그래요. 폭한 남녘 고을에서는 겨울에 눈을 보기 어렵고, 이 드문 손님인 눈을 맞이하며 ‘눈님’이라 할 만합니다.

  생각해 봐요. 겨울 지나고 봄이 오면 피어나는 꽃은 그냥 꽃일 수 없어요. 한겨울에도 씩씩하게 꽃대를 올리는 겨울꽃은 그냥 꽃일 수 없습니다. 새봄에 흐드러지고 여름 내내 눈부신 꽃도 그냥 꽃일 수 없지요. 모두 꽃님입니다.

  풀은 풀님이고 나무는 나무님입니다. 모든 목숨은 저마다 님이고, 모든 아이하고 어른도 서로서로 님이에요.

  일부러 내 눈길을 낮추지 않고, 부러 네 눈길을 높이지 않습니다. 찬찬히 거닐며 함께 살아가는 이곳에서 가만히 손을 맞잡는 마음이 됩니다. 저잣거리를 보고, 떡볶이집을 보고, 길을 보고, 창밖을 보고, 하늘을 보고, 또 해랑 별을 보고, 나긋나긋 연필하고 글종이를 봅니다.


산골 동네
먼동 늦게 트고
어둠 먼저 온다.

짧은 해 아까워라
양지머리 고추 나앉고
그 옆자리 아이들 놀고
늦가을 서리 와도 조뱅이꽃 핀다. (산골)


  엊그제 큰아이하고 뒤꼍에서 함께 유자를 따는데, “어라, 여기 봄까지꽃이 폈네? 이쁘다.” 하고 외칩니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면서 볕이 포근하니 새봄꽃이 이 늦가을에도 펴요.

  그러고 보면 우리 집 마당에서는 장미꽃이 늦봄 아닌 이달 첫머리에 갑작스레 피고 졌습니다. 철을 잘못 알았던 셈이지요. 더구나 뒤꼍 유자나무 곁에서 흰민들레가 어느새 잎을 내어 흙바닥에 잎을 납작 퍼뜨립니다. 이 겨울에 이렇게 나려는 셈일는지, 이 민들레도 그만 철을 잘못 알고 벌써 일어나려 하는지 아직 모릅니다. 그런데 곳곳에서 가을민들레가 돋아 ‘아이 추워. 그런데 어떡해. 꽃대를 올렸는걸.’ 하면서 봄하고 대면 대단히 빠르게 꽃을 피우고 떨구어 씨앗을 맺더군요.

  겨울을 앞두고 해는 나날이 짧아집니다. 이 짧은 해에도 따순 기운을 온몸으로 맞아들여서 피어나려는 가을꽃이 있습니다. 늦가을꽃입니다. 씩씩한 늦가을꽃을 고이 쓰다듬으면서 겨울맞이를 합니다. 2017.11.19.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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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탄생하라 문학과지성 시인선 501
이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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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10


비밀번호한테 지구를 맡긴 사람들은
― 사랑은 탄생하라
 이원 글
 문학과지성사, 2017.8.25. 8000원


  시집 《사랑은 탄생하라》(문학과지성사, 2017)에는 ‘사랑은 탄생하라’라는 이름으로 적은 시가 없습니다. 시집을 덮을 때까지 안 나온 ‘사랑은 탄생하라’인 터라, 책이름으로 된 시가 없네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꼭 책이름으로 된 시가 나와야 하지는 않다고.

  다만 이 시집에는 ‘사람은 탄생하라’라는 시가 있습니다. ‘사람은 탄생하라’를 다시 읽어 보면서 생각합니다. 사람이란, 서로 사랑하면서 삶을 이루는 숨결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사람이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면, 사랑이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하고 이어지리라 느껴요. 사랑이 태어나는 자리나 때를 바란다면, 저절로 사람도 삶도 태어나는 길이 될 테고요.
  

인사한다. 이상한 새 소리를 내서.
인사한다. 꽃잎과 꽃잎 사이의 그늘에 숨어.
인사한다. 작은 나무 아래 그림자가 되어.
인사한다. 세상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얼굴이 되어.
인사한다. 없는 모자를 벗어 두 손에 들고. (아이에게)

따뜻한 스웨터 한 벌을 짤 수는 없다
끓어오르는 문장이 다르다
멈추어 섰던 마디가 다르다 (사람은 탄생하라)


  해가 저물 즈음 마당에서 참새 소리를 듣습니다. 저물녘에 참새가 아직 깃을 들이지 않는구나 하고 여기는데, 곁님하고 아이들은 저 새소리를 참새가 내는지 다른 새가 내는지 갸웃해 합니다.
  흔히들 참새가 내는 소리를 ‘짹짹’으로 잘못 알곤 하는데, 참새가 더러 ‘짹짹’하고 비슷한 소리를 내기는 하지만, 이런 소리는 거의 안 낸다고 느껴요. ‘지째째’나 ‘찌이이째 찌째’나 ‘쪼로로록 쭈룹’ 같은 소리도 내고, 그때그때 달라요.

  짝이 되는 새하고 지붕에 나란히 앉아서 노래하는 소리가 다르고, 감나무에 앉아 감알을 쪼는 소리가 다릅니다. 하늘을 날며 노래하는 소리가 다르고, 직박구리나 까치한테 쫓겨 감나무에서 옆 나무로 옮겨 앉아 서운해하는 소리가 다릅니다. 그렇지만 이 여러 소리를 귀여겨듣지 않으면, 참새가 내는 숱한 소리를 “이상한 새소리”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요.


지구인 수를 셌다
비밀번호에게 집을 맡겼다
개를 껴안고 잠들었다
달걀마다 산란일자를 표시했다 (뜻밖의 지구)


  시골집에 살다가 도시에 사는 이웃이나 살붙이를 만나러 나들이를 가면 때때로 어쩔 줄 모르곤 합니다. 도시에 있는 여느 가게에 갈 적에도 곧잘 어쩔 줄 모르곤 해요. 언제부터인가 아파트를 비롯해서 다세대주택에도 문간에서 비밀번호를 넣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문간에서 문을 열어 달라고 말을 어떻게 물어야 하는지 몰라서 한참 헤매기도 해요.

  이제는 좀 익숙해졌지만, 손잡이가 없는 문을 처음 보았을 적에 무척 놀랐어요. 가게 문간에서 손잡이를 찾느라 허둥거리곤 했습니다. 한참 허둥거리니 길을 지나가던 누군가 또는 가게에서 누군가 나와서 단추를 눌러 주었지요. 단추를 눌러 저절로 여닫는 문을 보고서 이 문이 좋은 문인지 문명이 발돋움한 문인지 살짝 아리송했습니다. 전기가 끊어지면 이 문을 어떻게 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비행기를 타고 와 커다란 사탕을 줄게
노래를 불러봐
검색대를 통과하면 소리가 달라져
크리스마스가 지났어도
산타와 함께 나타날게
찢어지도록 입을 벌려봐
작은 상자 속엔 어린 양이 있고
울지 못하는 양
귀는 뾰족한 양
비밀이 흘러든 양 (검은 그림)


  시집 《사랑은 탄생하라》는 조그맣게 노래하려 합니다. 어느새 사랑이 사라진 듯한 이 지구라는 별에서 사랑이 새로 태어나기를 바라는 작은 마음을 노래하려 합니다. 비밀번호가 가득하고, 자동문이 가득하며, 검색대가 가득하고, 첨단에 최첨단이 새삼스레 가득한 이곳에, 사람다운 삶이 스러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노래하려 합니다.

  시집 한 권은 사랑이 태어나기를, 사람이 태어나기를, 삶이 태어나기를, 이러면서 살갑고 사이좋은 숲이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시집을 읽는 저도 사랑을 사람을 삶을 살가우며 사이좋은 숲을 바랍니다. 시골에서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온 사람이 온 사랑으로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곧추 세운 등뼈 아래로
엉덩이를 엉거주춤 유지해야 하는
이 포즈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의자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얼음 조각에서 녹고 있는 북극곰과 함께
우리는 지구에서 고독하다 (우리는 지구에서 고독하다)


  제가 어릴 적에는 지구별 사람이 삼십억쯤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릴 적에 국민학교에서 지구별에 머잖아 오십억 사람이 되리라는 말을 듣고 “선생님 터무니없어요! 어떻게 오십억이나!” 하고 외친 적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지구별에 칠십억 사람쯤 되지 싶습니다. 남녘만 해도 사천만을 지나 오천만이라는 숫자가 넘어가는 모습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지구별에 사람 숫자는 꾸준하게 느는데 외려 사람들은 ‘외롭다’ 같은 말을 자꾸 읊습니다. 줄지 않고 느는 숫자이건만 오히려 복닥복닥 어우러지는 흐름이 아닌, 서로 동떨어지면서 고단한 길로 가는구나 싶어요.

  엉킨 실타래는 어떻게 풀면 좋을까요. 사랑이 스러지는 듯한 이 지구별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시인 한 사람이 수수께끼를 풀어 줄 수 없겠지만, 시인 한 사람은 조용히 씨앗을 심고 싶습니다. 사랑도 사람도 삶도 부디 이곳에서 새롭게 자라기를, 서로 따스할 수 있기를, 모두 살가운 이웃이 될 수 있기를, 이제 외로움이 아닌 웃음꽃이 될 수 있기를. 2017.11.17.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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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 문지아이들
유희윤 지음, 김영미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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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85


잎이 더 있든 덜 있든 모두 이쁘다
―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
 유희윤 글·김영미 그림
 문학과지성사, 2017.6.30. 9000원


풀밭 동네 토끼풀 집 아이네.
토끼풀 집 아이들 중에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네.
우리 동네 찬이도 그런데
남다르게 생겼지만 예쁘네.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


  동시집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문학과지성사, 2017)에는 ‘할머니의 한 움큼’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 “할머니의 한 움큼은 / 많기도 하다” 하고 두 줄이 나오는데, 군말도 꾸밈말도 부질없이 이 두 줄로 할머니 몸짓이나 마음이나 살림을 잘 헤아릴 만합니다.

  ‘고모 방’이라는 시를 읽으면 “고모 시집가면 내 차지! // 내가 찜한 고모 방 / 썰렁이가 먼저 차지해 버렸다” 같은 이야기가 흘러요. 고모가 시집을 가면서 빈 방이 생각보다 크고 넓어서 벌렁 드러누워서 ‘이제 내 방이 되는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막상 벌렁 드러누워서 넓고 시원한 방을 느껴 보려 하니 무엇보다 ‘썰렁’을 느낀다고 해요. 두 말도 석 말도 덧없이 ‘썰렁’ 한 마디가 아이 마음을 잘 그리는구나 싶어요.


쥐고 있던 주먹
봉긋이 펴 보이네.

그 애 손은
반쯤 핀 연분홍 꽃

연분홍 꽃 속에
까만 씨앗 몇 개 (연분홍 손 꽃)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가 있습니다. 풀밭에도 있고, 마을이나 학교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는 그저 잎이 하나 더 있을 뿐이에요.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까요? 우리 사회나 학교나 마을에서는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를 어떻게 마주할까요?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를 이웃이나 동무로 여기면서 ‘잎이 하나 더 있지 않은 아이’하고 함께 한 교실이나 학교에서 즐거이 어우러지는 배움 얼거리일까요? 아니면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들만 한 학교나 학급에 몰아넣는 틀거리일까요?

  어른들은 아이가 조그맣게 쥔 손에 무엇이 있으리라 생각하려나요. 아이가 꽃씨를 곱게 쥐고서 기뻐하는 줄 느낄 수 있으려나요. 아이가 두 손에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움과 꿈’을 쥔 줄 알아챌 수 있으려나요.


까치발 들고
엄마 등 뒤로 다가온 아기
두 팔 벌려
엄마 목을 감는다.

“내 손이 뭐게?”

“엄마 목도리지!”

“따뜻해?”

“응, 아주 따뜻해.” (쉬는 시간)


  아이 손이 목도리가 됩니다. 어머니나 아버지 손도 목도리가 됩니다. 아이 몸이 겉옷이 되어 줍니다. 어버이 몸도 아이한테 겉옷이 되어 줍니다. 우리는 서로 따뜻하게 품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두 팔을 활짝 벌려 서로서로 포근하게 보듬고 어루만집니다.

  이러한 마음을 늘 건사할 수 있다면,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결로 하루를 맞이할 수 있다면, 어디에서나 누구나 웃음꽃이나 웃음노래가 될 만하겠지요. 1위부터 꼴찌까지 점수를 매기는 학교가 아닌, 경제성장이라는 숫자를 내세우는 사회가 아닌, 기쁘게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한 발짝씩 내딛는 홀가분한 몸짓이 될 테고요.


동생과 싸운다고 벌!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벌!

벌 잘 주는 엄마
자기에게도 벌을 준다

몸무게가 자꾸 는다고
날마다 벌을 준다. (벌 잘 주는 엄마)


  아이한테 벌을 안 주어도 되어요. 어른도 스스로 벌을 안 주어도 됩니다. 몸무게가 자꾸 늘 수 있지요. 아이들이 뭔가 깨뜨리거나 잘못할 수 있지요. 서로 너그럽게 헤아리면 어떨까요. 오늘은 오늘대로 따뜻하게 받아들이고, 모레는 모레대로 새롭게 거듭나자고 생각할 수 있으면 어떨까요.

  벌을 주듯이 운동장을 달리면서 몸무게를 빼려는 몸짓이 아니라, 신나게 놀이하듯이 달리기를 누리면 어떨까요. 아이가 잘못한 일이 있을 적에 따끔하게 나무라기보다는 찬찬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걸음을 새로 씩씩하게 내딛도록 이끌어 보면 어떨까요.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가 있듯이, 잎이 하나 더 있는 어른이 있습니다. 그동안 다른 아이나 어른하고 똑같은 잎이었다가도 어느 날 문득 잎이 하나 더 돋을 수 있어요. 때로는 잎이 하나 줄 수 있고요. 이 잎을, 꽃잎을, 풀잎을, 꿈잎을, 사랑잎을, 마음잎을, 생각잎을 고이 마주하는 삶을 빕니다. 아이 마음에도 어른 마음에도 너른 숨결이 흐르는 살림을 빕니다. 잎이 더 있든 덜 있든, 때로는 잎이 하나도 없든, 모두 이쁩니다. 2017.11.1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동시읽기/동시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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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잘 있습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503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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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11


이 가을에 모두 잘 있다는 한 마디
― 바다는 잘 있습니다
 이병률 글
 문학과지성사, 2017.9.20. 8000원


사람은 태어나 선인장으로 살지요
실패하지 않으려 가시가 되지요

사람은 태어나 선인장으로 죽지요
그리하여 사막은 자꾸 넓어지지요 (사람)


  가을이 깊습니다. 저희 집 뒤꼍에서 크는 감나무는 올해에 감을 제법 많이 맺습니다. 큰아이하고 즐겁게 한 소쿠리를 따서 말랑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얼려 놓습니다. 말랑감은 말랑할 적에 먹어도 맛나고, 꽁꽁 얼려서 숟가락으로 파먹어도 맛있습니다. 아이들이 배불리 먹고서 남은 말랑감을 얼리면서 겨울을 기다립니다. 언말랑감은 다른 철보다 추운 겨울에 제맛이더군요.

  마을에서 집집마다 감을 따느라 부산합니다. 나락을 베고 털고 말린 뒤에는 으레 감을 따요. 그리고 십일월이 깊으면 유자를 땁니다. 제주에서 겨울에 귤이 잔뜩 나오듯, 남녘 바다를 낀 포근한 고장에서는 찬바람이 싱싱 부는 철에 유자알이 샛노랗게 익어요.


그 사람은 지금 여기 없습니다

충분히 기억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내 목을 조른 사람이거든요

처음부터 나중까지 오래
올 수 있으며
한참을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

지금 여기 없습니다
내게 칼을 들이댄 적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 사람은 여기 없습니다)


  가을에 모두 잘 있습니다. 가랑잎을 떨구는 나무는 곧 앙상한 가지가 되려고 부지런히 잎을 내놓습니다. 겨울에도 잎이 푸른 나무는 새봄에 꽃을 피우려고 곳곳에 꽃망울이며 잎망울을 내놓습니다. 후박나무나 동백나무가 이런 모습이지요.

  들풀도 씨앗을 퍼뜨리려고 바쁘고, 솔(부추)도 새까만 씨앗을 잔뜩 맺으면서 터뜨리려고 합니다. 논둑이나 조용한 멧자락에는 가을 산국이 노랗게 올라오고요. 그리고 사마귀는 알을 낳으려고 마땅한 자리를 찾아나섭니다. 때로는 어느 틈인가 찾아내어 집에까지 들어와서 알을 낳습니다. 마당 한복판에서 가쁜 숨을 내쉬면서 알 낳을 곳을 찾기도 합니다.

  따뜻한 나라를 찾는 새는 벌써 이 고장을 떠난 지 오래입니다. 이 고장에서 겨울을 나는 텃새는 추위를 앞두고 몸을 부풀리려고 나무 열매나 곡식을 찾아 바쁘게 날아다닙니다. 아이들도 이제는 긴소매에 긴바지를 챙겨서 입으며 양말을 꼬박꼬박 신습니다. 바야흐로 새로운 철을 앞두고 모두 새로운 몸짓입니다.


만나도 모르는 사람들
몰라도 만나는 사람들

만나더라도 만나지 않은 것이다
이제 이 좁디좁은 우주에서 우리는 그리 되었다 (사람의 재료)

만약 내가 여자였다면 집을 지을 것이다
아프리카 마사이 여부족처럼
결혼해서 살 집을 내 손으로 지을 것이다

꽃을 꺾지 않으려는 마음도 마음이지만
꽃을 꺾는 마음도 마음이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여자라면 사랑한다고 자주 말할 것이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자신을 매번 염려할 것이다 (정착)


  이병률 님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문학과지성사, 2017)를 읽습니다. 시인 곁에 있는 사람을 그리기도 하고, 시인 곁에 없는 사람을 그리기도 합니다. 시인 곁에 있는 사람을 마주하면서 서로 얼마나 살갑거나 가까운가를 헤아립니다. 시인 곁에 없는 사람을 문득 맞닥뜨리고는 서로 어쭐 줄 몰라서 허둥지둥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합니다.

  시인은 “내가 여자였다면 집을 지을” 생각이라고 하는데, 여자 아닌 남자여도 집을 지으면 되겠지요. 시인은 “내가 여자라면 사랑한다고 자주 말할” 생각이라고 하는데, 여자 아닌 남자여도 늘 사랑한다고 말하며 살면 될 테지요.

  가만히 보면 한국 사회에서 숱한 사내는 보금자리를 짓고 가꾸는 일보다는, 집 바깥을 떠도는 일로 삶을 보내기 일쑤입니다. 왜, 그렇잖아요. 아직도 집일은 거의 모두 가시내가 해요. 아직도 아이는 거의 모두 가시내가 돌봐요. 바깥으로 나도는 사내요, 집에서는 도무지 손에 물도 잘 못 묻히고 도마질이 무엇인지조차 잘 몰라요.

  어쩌면 숱한 한국 사내는 보금자리를 짓거나 가꿀 줄 모를 뿐 아니라,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셈 아닐까 싶어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니 바깥으로만 맴돌고,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니 속에서 우러나오는 따사로운 사랑 한 마디를 노래할 줄 모르지 싶어요.


한 잔만 더 마시면 죽을 수도 있고
그 한 잔으로
어쩌면 잘 살 수도 있겠다 싶어 들어간 어느 포장마차에서
딱 한 잔만 달라고 하였다

한 잔을 비우고 난 뒤 한 병 값을 치르겠다고 하자
주인이 술값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당신이 취하기 위해 필요한 건 한 잔이 아니었냐며
주인은 헐거워진 마개로 술병을 닫았다 (미신)


  모든 사내가 사랑을 모르지는 않으리라 생각해요. 포장마차에 살짝 들어 소주 한 잔을 거저로 얻어마신 시인인데요, 시인한테 소주 한 잔쯤 아무렇지 않게 그냥 내어줄 줄 아는 가게지기는 틀림없이 사랑을 알겠지요. 밤새 포장마차에서 선 채로 도마질을 하고 술손을 맞이하는 가게지기는 참말로 보금자리를 짓거나 가꾸는 살림살이를 알 테지요.


눈을 뜨고 잠을 잘 수는 없어
창문을 얼어 두고 잠을 잤더니
어느새 나무 이파리 한 장이 들어와 내 옆에서 잠을 잔다 (내가 쓴 것)


  이 가을에 모두 잘 있다는 한 마디를 들려주고 싶은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이지 싶습니다. 바다도 잘 있을 테고, 들도 멧골도 냇물도 잘 있을 테지요. 아픈 바다가 있고, 아픈 들이며 멧골이며 냇물도 있습니다. 부디 가을이 깊고 겨울이 찾아들면, 아픈 골골샅샅으로 소복소복 포근한 눈이 덮이면서 앙금도 생채기도 시름도 씻어낼 수 있기를 빕니다. 살짝 열린 창문으로 나뭇잎 하나 들어와서 잠들면서 노래를 남긴다고 하듯이, 우리 마음자리에 시 한 줄이 가만히 스며들어서 웃음꽃으로 새롭게 피어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7.10.27.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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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의 모래 - 이시카와 다쿠보쿠 단카집
이시카와 다쿠보쿠 지음, 엄인경 옮김 / 필요한책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시를 노래하는 말 306


석 줄로 삶을 노래하며 울던 사람
― 한 줌의 모래
 이시카와 다쿠보쿠 글/엄인경 옮김
 필요한책 펴냄, 2017.5.18. 13500원


장난 삼아서 엄마를 업어 보고
그 너무나도 가벼움에 울다가
세 걸음도 못 걷네 (21쪽)

거울 가게의 앞에 와서
문득 놀라버렸네
추레한 모습으로 걸어가는 나여서 (33쪽)


  노래를 짧게 읊어 봅니다. 글잣수를 맞추기도 하고, 조금 홀가분하게 이야기를 펼치기도 하는 짧게 읊는 노래에는 삶을 지으면서 느끼는 기쁨이나 슬픔을 담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도 짧게 노래를 읊으나, 글을 안 쓰는 사람도 짧게 노래를 읊어요. 꼭 종이에 글로 적바림하지 않더라도 입으로 가만히 읊으면서 기쁨이나 슬픔을 노래합니다. 곁에 있는 동무나 이웃한테 노래를 들려줍니다. 아이들이 노래를 물려받습니다. 일하다가, 놀다가, 쉬다가, 살림하다가, 문득문득 짤막하게 노래를 읊습니다.


참 슬픈 것은
목이 마른 것까지 참아가면서
추운 밤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는 때 (61쪽)

어떤 사람이 전차에서 바닥에 침을 뱉는다
여기에도
내 마음 아파지려고 하네 (79쪽)


  《한 줌의 모래》(필요한책, 2017)는 1886년에 태어나서 1912년에 숨을 거둔 이시카와 다쿠보쿠라는 분이 지은 석 줄짜리 짧은 노래를 들려줍니다. 기쁠 적에는 기쁜 마음을 가만히 담고, 슬플 적에는 슬픈 마음을 눈물로 담습닏다. 2010년대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가 볼 적에는, 또는 서른이나 마흔이나 쉰이나 예순 ……이라는 나이로 볼 적에는, 스물일곱 앳된 나이에 숨을 거둔 이웃나라 시인 한 사람이 백 해도 앞서 남긴 짧은 노래가 대수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이가 적거나 많아야 기쁨이나 슬픔을 더 느끼지 않아요. 젊은 사람도 짊어져야 할 삶이란 무게가 있어요. 젊기 때문에 딛고 서야 할 살림이란 무게도 있고요. 그리고 누구는 서른 마흔 쉰 예순 ……을 살더라도 서른조차 못 살고 이 땅을 떠나니, 스물일곱 젊은 시인이 읊는 노래에 흐르는 기쁨이나 슬픔은 퍽 남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밤에 누워서도 휘파람을 불었다
휘파람은
열다섯 살 때 나의 노래였던 것이니 (98쪽)

헤어져 있으면 여동생 그립구나
빨간 끈 달린
게타 갖고 싶다고 울던 아이였는데 (120쪽)


  노랫말은 길지 않아도 됩니다. 다문 한 줄로 읊는 노래도 얼마든지 노래입니다. “밤에 누워서도 휘파람을 불었다” 이 한 줄로도 노래입니다. 교과서를 읽듯이 힘 없는 목소리가 아니라면, 곁에 살가운 벗님을 마주하면서 가만히 읊고 나직이 노래하며 사랑으로 이야기할 수 있으면, “헤어져 있으면 여동생 그립구나” 하고 적바림하는 글줄은 얼마든지 노래라고 느껴요.

  생각해 보면 그래요. 이런저런 꾸밈말을 꼭 안 붙여도 됩니다. 수수하거나 투박하게 기쁨이나 슬픔을 읊으면 됩니다. 힘들기에 “아이고 힘들어”라든지 “죽도록 힘들어” 하고 읊는 노래가 있어요. 힘겹지만 “그래도 일어서야지”라든지 “사는 데까지 살 테야” 하고 읊는 노래가 있습니다.

  일본에는 “게타 갖고 싶다고 울던 아이”가 있으면, 한국에는 “댕기 갖고 싶다고 울던 아이”가 있을 테지요. 말도 삶도 살림도 숲도 다른 한국하고 일본입니다만, 사람하고 사람 사이에 흐르는 마음은 서로 맞물리거나 이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서글프구나 내가 가르쳤었던
아이들도 또
이윽고 고향 마을 버리고 떠나겠지 (124쪽)

무엇 하나도 생각하는 일 없이
그날그날을
기차 기적 울림에 마음을 맡겼다네 (214쪽)


  1800년대에서 1900년대로 넘어서는 일본에서 ‘시골(고향)’을 버리고 ‘서울(도시)’로 가는 아이들이 또 있었다는 노래를 들으면서 생각에 잠겨 봅니다. 한국에서는 어느 무렵부터 서울바람이 불었을까요. 이 땅이든 이웃 땅이든 구태여 서울로 가야만 무언가 할 수 있거나 이름을 드날릴 만할까 궁금합니다.

  시골마을에서 조용히 삶을 지으면서 새롭게 꿈을 지필 수 있을까요. 시골숲에 깃들어 찬찬히 살림을 가꾸면서 드넓은 하늘을 품는 사랑을 피울 수 있을까요.

  글월 한 줄에 흐르는 마음은 차분히 노래가 됩니다. 글월 한 줄에 옮긴 마음은 애틋한 노래가 됩니다. 글월 한 줄로 또박또박 밝힌 마음은 해가 가고 달이 가더라도 두고두고 따사로운 노래가 됩니다.

  《한 줌의 모래》는 2017년에 한국말로 새로 나온 책이에요. 저한테는 1930년대에 일본에서 나온 이시카와 다쿠보쿠 님 시집이 있습니다. 거의 아흔 해를 가로지르는 두 책을 나란히 책상맡에 놓아 봅니다. 그동안 틈틈이 사 모으면서 읽은 다른 이시카와 다쿠보쿠 님 책들도 함께 쓰다듬으면서 삶이랑 노래를 헤아립니다. 2017.10.2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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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u:Do 2017-10-20 12:45   좋아요 0 | URL
가을 떨어지는 낙엽과 한 줄 시는 참 잘 어울립니다

숲노래 2017-10-20 19:59   좋아요 0 | URL
날마다 숱하게 떨어지는 가랑잎을 쓸어서 태우고
밭에 거름으로 내는
가을 하루입니다.
이 가을에 시 한 줄 즐거이 누리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