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창비시선 417
장석남 지음 / 창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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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17


똥 누는 아이 얼굴을 찍듯이 시를 그리는
―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장석남, 창비, 2017.12.8.


오는 봄
꽃 밟을 일을 근심한다
발이 땅에 닿아야만 하니까 (입춘 부근/12쪽)


  아침이면, 아니 새벽이면 쌀을 씻습니다. 조용히 부엌으로 가서 고요히 하루를 헤아리면서 찬찬히 쌀을 씻어 불립니다. 아이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면 넌지시 말합니다. “우리 이쁜 아이들아, 누가 우리 아침에 맛있게 먹을 밥이 될 쌀을 씻어 볼까?”

  스스로 씻든 아이들한테 맡기든 곰곰이 돌아봅니다. 아침 아닌 새벽마다 쌀씻기가 번거롭거나 귀찮다면, 이런 마음으로 씻어서 불린 쌀로 지은 밥이 맛날 수 있을까 하고. 아이들한테 쌀씻기를 맡길 적에 낯을 찌푸리거나 성가시다는 말씨로 아이들을 부르면 아이들이 반길까 하고.


나는 꽃이 되어서 꽃집으로 들어가 꽃들 속에 섞여서 오가는 사람들을 맞고 오가는 사람들로 시들어, 시들어 (꽃집에서/23쪽)


  장석남 님 시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창비, 2017)를 읽습니다. 시집을 손에 쥐고서 살며시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니, 어째서?

  봄이 와서 뒤꼍이며 마당이며 들이며 숲에 들꽃이 가득하면, 아이들 걸음걸이가 더디곤 합니다. 들꽃을 밟을까 자꾸 근심하지요. 이때 아이들한테 이야기합니다. “우리 꽃순아 꽃돌아, 들꽃은 한두 번 밟힌들 꺾이거나 눌리지 않아. 너희들이 근심하면서 그렇게 하면 외려 들꽃은 더 아프단다. 사뿐사뿐 걸으면 들꽃은 모두 아무 걱정도 근심도 없어. 가만히 앞을 보며 걸으렴.”


현관에 벚꽃 잎들 날려오니 자주 와서 꽃을 쓰는 노파여
꽃을 쓸어 깨끗이 하려는가?
하늘을 쓰는 노파여
옛날을 쓰는 노파여
꽃 쓸어 감추는 노파여
얼결에 마침 노을도 쓸어내는 노파여
꽃을 쓸어 밤을 맞는 노파여
꽃에게 이기지 못할 노파여 (꽃을 쓰는 노파여/26쪽)


  한겨울에 꽃을 자꾸 이야기하는 시집을 읽으며 봄꽃을 새삼스레 헤아려 봅니다. 봄에는 여름이 멀지 않았다고 여기고, 겨울에는 봄이 멀지 않았다고 여길 수 있어요. 12월을 지나 1월 한복판에 선다면, 우리 집이나 마을에서는 언제쯤 동백꽃이 터질까 하고 손을 꼽아 봅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로 접어들 무렵 차츰 맺는 동백꽃망울을 지켜보고 살살 만지면서 어쩜 이렇게 나날이 굵고 단단히 여무나 하고 설렙니다.

  추운 철이기에 따뜻한 꽃을 그립니다. 따뜻한 철이기에 시원하게 부는 바람을 그립니다. 열매가 익는 철이기에 온통 하얗게 덮는 눈을 그립니다. 돌고 돌면서 새로운 살림과 길을 그리는 하루입니다.

  골목에서 꽃이며 잎을 쓰는 할머니는 예부터 익힌 몸짓대로 정갈하게 보금자리를 가꾸는 모습이지 싶어요. 꽃을 한 군데에 모으면서 꽃이 더 도드라지게 한달 수 있고, 꽃을 가만히 쓸면서 꽃내를 한몸에 맞아들인달 수 있고요.


각색 양말을 빨아 방바닥에 널어놓고
나도 모르게 짝을 맞춰 그리해놓고
나는 그리해놓았다
전에는 없는 일이라 핸드폰으로 찍어놓고
나는 흐뭇하다 (다섯켤레의 양말/44쪽)


  시인은 모처럼 양말을 빨아서 짝을 맞추었다고 합니다. 아마 예전에는 이런 집안일을 곁님(가시내)한테만 도맡겼을 수 있습니다. 이제 이런 집안일을 살짝 거들면서 스스로 대견하구나 싶을 만합니다.

  참말 그래요. 아이들을 지켜보면서도 이 대목을 느껴요. 아이들은 심부름이 때로는 벅차다고 여기면서도 끝까지 해내면 얼마나 해맑게 웃으면서 두 손을 번쩍 치켜올리면서 춤추는지 몰라요.

  스스로 한다는 보람이란 놀라운 기쁨이라고 봅니다. 스스로 해내면서 온몸에 흐르는 짜릿한 기운이란 우리를 새롭게 살리는 웃음이지 싶어요. 스스로 잔빨래나 잔심부름을 하는 데에서 그치지 말고, 더 손을 뻗어 이 일 저 살림 건사해 본다면, 우리가 쓰는 시 한 줄은 한결 싱그러이 피어날 만합니다.


놀던 카메라를 팔고
눈이 멀었네
내 푸른 피의 사치였던 물건

첫아이의 똥 누는 표정을, 그 동생의 부러진 앞니의 웃음을,
그 에미의 아직 밝던 고단을 찍던 (카메라를 팔고, leica m6/82쪽)


  꽃이 고와 꽃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아이들이 고와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삶이 고와 삶을 시 한 줄로 여밉니다. 하늘이 고와 하늘을 고요히 노래 한 마디로 부릅니다.

  사진을 찍는 마음이란, 시를 쓰는 마음이란, 밥을 짓고 살림을 하는 마음이란, 빨래를 하고 아이들 이마를 쓸어넘기는 마음이란, 모두 한동아리가 되리라 느낍니다.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봄이 오니, 겨우내 아무리 추워도 봄꽃은 찬바람을 머금으며 피어나니, 오늘 하루를 더욱 씩씩하게 열자고 다짐합니다. 마음 한켠에 시 한 줄을 살며시 놓으면서. 2018.1.5.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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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점점 왼편으로 기울어진다 문학의전당 시인선 268
송문희 지음 / 문학의전당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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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15



내 펄떡이는 왼쪽은 어디인가?

― 나는 점점 왼편으로 기울어진다

 송문희 글

 문학의전당, 2017.10.23. 9000원



견딘다는 것은 왼편에 몸을 기댄다는 것,


목련꽃이 왼편으로 기울고 동백꽃 왼편이 더 붉은 것도

봄의 심장이 왼편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점점 왼편으로 기울어진다)



  송문희 님 시집 《나는 점점 왼편으로 기울어진다》(문학의전당, 2017)를 읽는데 책이름하고 같은 이름인 시를 읽다가 ‘왼편’이라는 낱말에 살짝 웃음이 납니다. 얼마 앞서 아이들하고 이웃님 자동차를 함께 타고서 나들이를 하는데, 자동차 길찾기 기계가 읊은 말을 큰아이가 물었어요. “아버지, ‘우회전’이 뭐야?”


  우리 집 큰아이나 작은아이는 ‘우회전’을 모릅니다. ‘좌회전’도 모르지요. ‘직진’도 몰라요. 우리 집 아이들이 읍내에서 택시를 타고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더러 기사님한테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을 이끌어 보렴 하고 얘기하면, 아이들은 “왼쪽으로 돌고요”나 “오른쪽으로 가시고요”나 “바로 앞으로 가셔요”처럼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왼쪽·오른쪽·바로 앞으로’라 말하면 기사님은 거의 못 알아듣습니다.



한 뚝배기면 속이 든든하고예 고기 몇 저름 다 지 몫이니

인정머리 없이 다투어 먹을 일 없고예

차려 먹기 귀찮은데 두세 끼니 걸러도 거뜬하지예

젤로 좋은 거는예, 속이 뜨뜻해져서

오래 살고 있는 내가 다 용서가 되는 거라예 (행복의 온도)


니 미신이라고 대충대충 대답만 하제

엄마 말 단디 듣거래이

니는 전에도 엄마 말 안 들어갔고…… (파랑주의보)



  우리 몸에 피가 돌도록 펄떡이는 염통은, 심장은 왼쪽에 있다고 해요. 더러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있다는데 거의 모든 사람은 왼쪽에 있다지요. 왼가슴, 왼손, 왼쪽, 이런 ‘왼’붙이 말을 떠올려 봅니다. ‘오른’이 붙는 말은 ‘바른쪽’이라고도 합니다. 오른쪽을 바른쪽이라 한다면, 왼쪽은 안 바른쪽이 될까요?


  어릴 적에 학교에서 “‘바른손’을 들라”고 교사가 흔히 읊던 말을 문득 떠올립니다. 왜 오른손만 바른손이 되어야 했을까요? 왜 왼손잡이를 나쁘게 보는 말을 사회 곳곳에서 퍼뜨렸을까요? 오른가슴 아닌 왼가슴에 있는 펄떡이는 숨결을 왜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도록 학교나 사회는 가로막으려 했을까요?



야가 오늘 제일 물올랐다 아이가

제값 받을라모 잘 모셔야제

손주 돌반지 하나 살라모 멀었다

금값이 하도 올라

열댓 번은 내다 팔아야제 (열무장수)


시장은 꽃밭


장미꽃 전대, 목단꽃 전대, 제비꽃 전대, 연꽃 전대

생선도 채소도 과일도 쌀도 양말도 커피도

꽃 한 다발씩 허리에 차고 있다 (꽃 전대)



  시집 《나는 점점 왼편으로 기울어진다》에 흐르는 꽃내음을 읽습니다. 돈주머니가 꽃밭이라는 이야기를 읽다가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시골 아지매나 할매 옷차림을 보면, 일옷이든 마실옷이든 으레 꽃옷이기 일쑤입니다. 그래요, 시골 아지매나 할매는 참말로 ‘꽃옷’을 입습니다. 꽃치마에 꽃바지입니다. 시골 아지매나 할매가 일하는 밭자락도 꽃밭이지요. 풀꽃이요 들꽃이요 남새꽃입니다.


  이러면서 아지매나 할매가 짓는 살림은 ‘꽃살림’이로구나 싶어요. 꽃삶을 여밉니다. 꽃밥을 짓습니다. 꽃말을 아이한테 들려줍니다. 이모저모 꽃판이요 꽃마당이요 꽃누리인, ‘꽃집’이 되겠네요. 요즈음 떠도는 꽃길이 아니더라도 시골길을 꽃길로 가꾸는 아지매나 할매 손길이라고 할까요.



밥상 차릴 때에 한 잔

손님 오실 때 한 잔

살기 좋을 때 한 잔

살기 힘들 때 한 잔


한 시절 탈탈 다 털어 마시고

이제 한 모금 남은

아버지 (소주병)



  내 펄떡이는 왼가슴을 묻습니다. 내 기운차게 뛰는 왼쪽은 어디인가를 묻습니다. 나이들어 힘을 잃고는 소주 한 병을 시렁 어디엔가 슬그머니 감추고서 한 잔씩 아주 달게 고마이 마시는 이웃님 늙은 아버지 모습을 그려 봅니다. 우리한테 가슴이 펄떡이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서로 가슴을 환하게 열어젖히면서 마주하는 너른 터는 어디일까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어깨동무하는 일을 그립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손을 맞잡을 마을을 그립니다. 차츰 왼쪽으로 기우는 시인이 걷는 걸음은 어떤 모습일까 하고 그려 봅니다. 나도 어쩌면 나 스스로 모르게 왼쪽으로 기울면서 살림을 짓지는 않나 하고 그려 봅니다. 왼가슴에 오른손을 얹어 봅니다. 오른가슴에 왼손을 얹어 봅니다. 두 손을 새롭게 맞잡고서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내가 빙긋 웃음을 지을 적에 똑같이 빙긋 웃음을 지으면서 두 팔을 벌려 안기려는 아이들을 마주봅니다.


  뜨끈한 국밥 한 그릇으로 하루가 즐거울 수 있다고 들려주는 시인이 아니더라도, 웃음 하나로 말 한 마디로 몸짓 하나로 하루가 즐거울 수 있지 싶어요. 한 해가 저물면서 새롭게 찾아오는 한 해에는 두 다리로 어떻게 서면서 펄떡이는 가슴을 느낄 적에 새삼스레 즐거울까 하고 조용히 꿈을 그립니다. 2017.12.22.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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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시인에게 - 김명환 시집 마이노리티 시선 4
김명환 지음 / 갈무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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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14


‘ㄱ절’을 하며 기름밥 먹는 이웃
― 젊은 날의 시인에게
 김명환 글
 갈무리, 2017.10.27. 7000원


나는 보았습니다
파란 청바지에 빨간 머리띠
코레일 직접고용을 외치던
그 아이와 그 아이의 친구들을 보았습니다
그 아이들을 해고하던 문자메시지와
그 아이들을 끌어내기 위해 몰려가던
경찰들을 보았습니다
코레일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결문을 받고 울고 있는
그 아이와 그 아이의 친구들을 보았습니다 (어느 KTX 여승무원의 이야기)


  저는 어릴 적에 ‘배꼽 인사’라는 말을 몰랐습니다. 아마 집이나 마을마다 쓰는 말이 달랐을 테지요. 제가 어릴 적에 우리 마을 동무들하고 놀던 때 쓰던 말하고,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학교에서 만난 다른 마을 동무들이 쓰던 말이 달랐습니다. 조금 더 커서 다른 고장 또래를 만나니 또 서로 쓰는 말이 다르더군요. 도드라지는 사투리가 아니더라도 서로 쓰는 말이 다른 줄 나이가 들면서 새삼스레 느끼고 배웠어요.

  그러면 저는 ‘배꼽 인사’라는 말을 모르면서 어떤 말을 알았느냐 하면 ‘ㄱ으로 절하기’를 알았습니다. 우리 집 어머니도, 할아버지도, 이웃 할머니나 아주머니나 할아버지도, “얘가 참 ㄱ으로 절을 잘 하네.” 하고 얘기했습니다. 학교에서도 ‘ㄱ으로 절하기’라고 들었어요.


조국아, 대한민국 군대야
너희가 용병이냐
일당 20만 원 받고 파업노동자 목숨줄 끊기 위해 투입된
내 어린 후배들아 아들보다 젊은 후배 군인들아
가다오 나가다오 (가다오 나가다오)


  시집 《젊은 날의 시인에게》(갈무리, 2017)를 읽으면서 새삼스레 ‘절하기’가 떠오릅니다. 절 가운데에서도 선 채로 허리를 꺾는 ㄱ으로 절하기, 이른바 배꼽절이 떠오릅니다.
  좀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고속철도 여승무원이라든지, 큰가게 일꾼이라든지, 크지 않더라도 온갖 가게나 밥집이나 어디에서나, 사람들은 손님을 맞이하면서 참말로 아이도 어른도 허리를 꺾어서 절을 하곤 합니다.

  어릴 적을 떠올리면, 둘레에서 어른들이 손님이 왔다며 허리를 꺾어 절을 하는 곳은 드물었습니다. 마을 푸줏간이든 약국이든 빵집이든 구멍가게이든 거의 고개만 까딱하거나 입으로만 인사를 할 뿐이었어요. 어른하고 어른 사이에서 허리를 꺾는 ㄱ절을 하는 때라면, 학교에 장학사나 누군가 높다는 사람이 올 적입니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백화점이나 커다란 가게에서였지요. 인천에서 서울로 어버이 손을 잡고 가끔 작은집에 마실을 갈 적에 작은아버지가 어떤 으리으리한 곳으로 이끌어 주면 그곳에 있는 어른 일꾼은 어린이한테도 ㄱ절을 했습니다. 저는 늘 깜짝 놀라서 그분들한테 ㄱ맞절을 했습니다.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고 할까요. 그냥 가볍게 손짓을 해도 좋을 텐데 왜 저렇게 어른 일꾼이 어린이한테도 ㄱ절을 해야 하는지 아리송하곤 했습니다.


저녁노을 타면
세상이 시 아닌가요 (압해도에 가면)

나이 오십에
자전거를 배웠다
초등학교 졸업하도록
자전거 못 타는
자식놈이 답답해서 (자전거)


  어느덧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 이 땅에 정규직 말고 비정규직이 있으며, 노동조합이 허울뿐인 데가 많을 뿐 아니라, 헌법에도 나오는 노동삼권을 제대로 못 누리는 사람이 많은 줄 하나둘 알아차립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나 아저씨는 우리 이웃일 수 있고, 때로는 어머니나 아버지일 수 있는데, 일터에서는 몸이 매인 채 고분고분하기만 해야 하는 줄 깨닫기도 합니다.

  서로 이웃이라면 조금 더 부드러이 느긋하게 일해도 좋을 텐데 싶습니다. 서로 한집 사람이라면 한결 푸근하면서 넉넉하게 일해도 좋을 텐데 싶습니다. ‘손님’이란 말도 ‘고객’이란 말도 똑같이 높임말이지만, ‘고객 + 님’이라는 겹말을 쓰도록 시키는 회사나 사회 얼거리입니다. 높이려는 뜻은 나쁘지 않으나 겉치레가 덧치레나 겹치레가 되면서 듣는 사람으로서도 매우 거북한 자리가 생기곤 합니다.


월부로 양복을 맞춰 입고 정종을 사들고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서울 가서 성공했다고
졸졸 쫓아다니는 마을 꼬마녀석들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는 창수는
늦게 취해 돌아온 날이면 불쌍한 자기 몸뚱아리가
정말 지긋지긋한 기름밥이 뱃속에 가득 차서
파란 쇳조각이 꾸역꾸역 기어나오는 기계처럼
털털거리는 기계처럼 생각된다고 쓸쓸하게 웃었지만 (우리들의 꿈)


  조금 더 따뜻한 사회로 달라진다면 겉치레나 덧치레나 겹치레는 잦아들 수 있을까요. 조금 더 느긋한 사회로 거듭난다면 어린이한테까지 ㄱ절을 해야 하는 일터는 사라질 수 있을까요.

  조금 더 가볍게 일하면서, 조금 더 살갑게 서로 이웃인 줄 느끼면서 마음을 쓰는 사회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라는 사슬을 끊고서, 일하는 사람 누구나 제몫을 받고 제살림을 꾸릴 수 있는 길을 열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자꾸 신분이나 계급을 가르려 한다면, 신분이나 계급에 따라 일삯을 나누려 한다면, 이리하여 모든 사람이 대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푸대접이나 따돌림을 안 받는다고 여기고 만다면, 매우 갑갑하거나 답답할밖에 없습니다.

  고등학교나 중학교만 마쳤어도 똑같은 일꾼으로 지낼 수 있어야지 싶어요. 초등학교만 마치거나 초등학교조차 안 마쳤어도 똑같은 사람으로서 제 권리하고 참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지 싶어요. 서울에 살든 시골에 살든 모두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대목을 헤아릴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나무는
자신이 서 있는 땅을
버리지 않으며
한겨울 속에서도
잎새를 떨구고
죽음의 빛깔로 말없이
생명을 키우며
어둠 속에서도
숲을 이루고 있다 (나무)


  기름밥 먹는 일꾼이 기름밥보다 사랑밥을 먹고 웃음밥을 먹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작은 시집 《젊은 날의 시인에게》라고 느낍니다. 참말로 우리 모두 사랑밥 먹는 이웃이 되기를 빌어요. 웃음밥에 노래밥을 함께 먹고,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어깨춤을 지을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빌어요. 이 겨울에 찬바람을 먹으면서도 속으로 새로운 움을 키우는 나무 같은 이웃이 될 수 있기를 빌어요. 서로 나무가 되고 함께 숲이 되어 이 땅을 푸르게 가꾸는 알뜰한 한 사람이 되기를 빕니다. 2017.12.10.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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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 최측의농간 시집선 3
심재휘 지음 / 최측의농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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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13


할머니 디딜방아에 깃들던 바람소리는
―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
 심재휘 글
 최측의농간, 2017.10.25. 8000원


대숲이 빛나는 오후에
외할머니의 디딜방아 밟는 소리
동굴에 숨어 듣기가 좋았으나 정작
매혹적이었던 것은 동굴이 내는
바람소리였습니다 (동굴 속의 산책)


  부엌에 서서 밥을 지을 적에는 오로지 밥내음이나 국내음을 맡습니다. 도마에 얹어서 손질하는 먹을거리 냄새를 맡고요. 다른 데에는 눈길도 마음도 쓰지 않습니다.

  아이들 곁에 누워서 이마를 쓸어넘길 적에는 아이들이 밤에 새근새근 잘 자기를 바랍니다. 하루를 신나게 놀았으니 느긋하게 꿈나라를 누비면서 새롭게 기운을 얻어 아침에 기쁘게 일어나기를 바라요. 이밖에 다른 생각은 하나도 안 합니다.

  때때로 몸이 아파서 드러누운 날, 문득 제 몸을 생각합니다. 이 일을 할 적에는 이 일만 생각하고, 저 일을 할 적에는 저 일만 생각해요. 이러면서 몸을 따로 생각한 적은 없지 싶어요. 몸이 아파 아무것도 못 하고 밥술조차 못 뜨는 동안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저를 이루는 몸은 무엇이고, 이 몸이 무엇을 바라는가를 귀여겨듣기로 합니다. 몸이 내는 소리를 들으려 하고, 몸이 끙끙대면서 조금씩 낫는 소리를 듣고자 합니다.


나는 노상 자판기에 기대어
캔 속의 코카콜라가 얼마나 남았는지
들여다본다 참 맑은 그 어둠의 바깥은
봄날이었고 아 그날
내게 내어준 바람의 한쪽 어깨는
넓고 편안했다고 함부로 기억할 것이다 (기울어 있는)


  시집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최측의농간, 2017)을 읽습니다. 몸이 튼튼하다고 여기던 때에는 제법 세게 부는 바람에도 끄떡하지 않습니다. 그러려니 하지요. 몸이 아프다고 여길 때에는 살며시 부는 바람에도 후들후들합니다. 잔바람조차 좀처럼 못 견딥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들도 이와 같습니다. 어른한테는 대수롭지 않다 싶은 바람에도 아이들은 춥습니다. 어른으로서는 대단하지 않게 지나칠 만한 일도 아이들은 오래도록 매달립니다.

  아프거나 여린 사람한테는 ‘알맞다 싶은’ 세기를 찾기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아파서 밥은커녕 죽조차 못 먹는 사람한테는 알맞다 싶은 끼니란 따로 없습니다. 몸이 아닌 마음이 아프거나 여린 사람한테도 알맞다 싶은 쓸쓸함이란 따로 없을는지 모릅니다.


제 속의 빛들을
온 힘으로 소진하는
저 나무들의
붉고 찬란한 예감 (지상의 가을)

영동고속도로 길가의 자작나무들
흰 몸들 내가 타관에서 시들어갈 때
이따금 나를 찾아와 주고는 하였는데 (자작나무 흰 몸)


  시인 한 사람은 쓸쓸하다고 느낄 적에 으레 나무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아마 시인이 나고 자란 강원도 어느 멧골에서 늘 마주하던 나무를 떠올렸구나 싶어요. 그리고 고향마을로 돌아갈 적마다 그 나무를 바라보면서 조용히 마음을 달랬을 테고요.

  나무가 있어 집을 짓고 종이를 얻어요. 나무가 있어 불을 지피고 책걸상을 짜요. 나무가 있어 한겨울 드센 바람을 막아 주고, 나무가 있어 한여름 뙤약볕을 막아 줍니다.

  그리고 이 나무는 곧잘 우리 마음을 포근히 달래거나 다독여 주면서 우람하게 자랍니다. 저 숲에서, 저 깊은 멧골에서, 때로는 도시 한복판 찻길에서, 골목집 조그마한 마당 한쪽에서, 나무는 저마다 씩씩하게 줄기를 올리고 가지를 뻗으면서 사람들한테 속삭입니다. 쓸쓸하다고 느낄 적에는 이 품으로 오렴, 하고요.


바람의 몸을 하고
바람소리로 중얼거리는 기둥 없는 집
기둥은 누워도 기둥이고
허공의 기왓장은 여전히 지붕이고
올해 아버지는 잃을 것 없는 일흔이시다 (오래된 한옥)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을 적바림한 시인은 시집 앞자락에서 어릴 적에 할머니가 디딜방아를 찧을 적에 ‘방아질 소리’보다 ‘바람소리’를 들었다고 밝힙니다. 시집을 마무리짓는 뒷자락에서는 이제 잃을 것 없이 일흔이 된 아버지 몸에서 휭휭 퍼지는 ‘바람소리’를 듣는다고 밝혀요.

  두 바람소리는 닮은 듯하면서 다릅니다. 또 다른 듯하면서 닮아요. 디딜방아를 찧는 할머니한테서 바람소리가 흐르고, 일흔으로 접어든(2002년 무렵에 이 나이였을 테고, 이제는 훨씬 많은 나이로 접어들었겠지요) 아버지한테서 바람소리가 흐른다면, 시인한테서는 어떤 바람소리가 흐를까요. 그리고 시를 읽는 우리 마음자리에서는 어떤 바람소리가 흐를 만할까요.

  저는 이레 즈음 아무것도 못 먹으면서 끙끙 앓는 동안 새삼스러운 바람소리를 들어 봅니다. 뼈마디 사이에서 불거지는 바람소리, 머리카락 사이에서 흩어지는 바람소리, 이마에서 등허리로 흐르는 바람소리, 또 빈 배이지만 아이들 곁에 누우면 저절로 자장노래를 부를 기운이 샘솟는 바람소리를 느낍니다. 2017.12.3.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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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앨리스 민음의 시 237
신현림 지음 / 민음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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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12


겨울에 외려 반지하집에 햇살이 듭니다
― 반지하 앨리스
 신현림 글
 민음사, 2017.7.21. 9000원


토끼 굴에 빠져든 백 년 전의 앨리스와
돈에 쫓겨 반지하로 꺼져 든 앨리스들과 만났다 (반지하 앨리스)

내 눈물은 빚더미 속에서 사는 법을 배운다
내 발은 사막을 건너는 법을 익히고
내 길은 무엇을 잘못했나 살핀다 (사랑 밥을 끓이며)


  시를 쓰는 신현림 님은 언제부터인가 반지하를 떠도는 살림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창 젊은 나이가 아닌, 딸아이를 돌보면서 쉰 한복판을 지나는 나이에 반지하집을 떠돌면서, 삶이란 이렇게 쓴맛 신맛 매운맛인가 하고 느낀다지요.

  시집 《반지하 앨리스》(민음사, 2017)는 꿈나라를 누비는 ‘앨리스’가 아닌 반지하를 떠도는 앨리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앨리스처럼 살고 싶던, 앨리스와 같은 꿈을 키우고 싶던, 궁금한 것도 많고 싱그러운 사랑도 오롯이 품던 한 사람은 매우 고단한 벼랑길이나 가시밭길을 걷는다고 합니다.


시도 성서도 안 읽기에
영혼 부패 속도는 더욱 빨랐다
책이 방부제인 줄 모르고, 곰쓸개, 개고기를 찾으며
개소리나 하는 남자는 바다 세탁소를 영영 잊었다
구하지 않으므로 바다는 출렁이지 않았다 (사랑을 잊은 남자)

사내 냄새는 맡고 살아야지 하고는 일하다 잊었다
해를 담은 밥 한 그릇이 얼마나 눈물겨운지
쌀 한 줌은 눈송이처럼 얼마나 금세 사라지는지
살아가는 일은 매일 힘내는 일이었다 (가난의 힘)


  어떤 이웃님은 어릴 적부터 반지하집에서 태어나 여태 반지하집에서 살 수 있습니다. 어떤 이웃님은 마당 있는 집에서 태어나 살다가 어느새 반지하집으로 옮겨서 살 수 있어요. 어떤 이웃님은 한동안 반지하집에서 살다가 마당 있는 집으로 옮겨서 살 수 있고요. 그리고 반지하집조차 못 되는 쪽방에서 사는 이웃님이 있고, 쪽방조차 깃들 수 없어 한뎃잠을 이루는 이웃님이 있습니다.

  반지하집이란 지하집보다는 한결 낫다고 느낍니다. 저는 반지하집에도 지하집에도 살아 보았는데, 반지하집은 그나마 햇살이 반 조각 즈음 들어오면서 하루가 흐르는 결을 느낄 수 있어요. 이와 달리 지하집은 아침인지 낮인지 밤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더구나 지하집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새벽이나 저녁에도 눈이 부시더군요. 마치 두더지가 된 느낌이라고 할까요. 길거리에 가득한 사람들은 ‘지하집에 살던 나’하고는 아주 딴 나라에 사는 사람들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반지하집하고 지하집을 떠돌다가 옥탑집으로 옮겨서 산 적이 있어요. 드디어 낮에 불을 안 켜고 살 수 있구나 싶어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비록 여름에는 불같이 덥고 겨울에는 오지게 추운 옥탑집이지만, 환한 햇빛을 누리며 빨래를 널거나 이불을 말릴 수 있으니 참으로 느긋하구나 싶었고, 앞으로는 반드시 마당 있는 집에서 해를 듬뿍 누리자는 꿈을 키웠어요.


금수저인 어린 날 10년이 있었고
지금은 흙수저라고 당신이 말할 때
나는 바람수저라 말한다 (절망의 옷을 벗겨 줘,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 3)


  반지하 앨리스가 된 시인 아주머니는 금수저로 어린 날을 보내다가, 흙수저인 오늘날을 보낸다는데, 이녁 삶이란 문득 바람수저와 같다고 느낀다고 밝혀요. 바람수저. 바람수저. 새삼스러운 이름을 혀에 얹어 봅니다. 바람처럼 살아가는 나날을 곰곰이 되새깁니다. 바람이 되어 하늘을 날고, 바람과 같이 온누리를 푸르게 감싸는 숨결을 떠올립니다.

  가진 것이 없기에 빈털털이라 할 수 있지만, 가진 것이 없으니 홀가분하다고 할 수 있어요. 홀가분한 몸이나 살림이나 마음이라면 참말로 바람 같을 터이니 바람수저가 되겠지요.

  다시 말하자면, 숱한 길을 걸어 보면서 숱한 마음이 되어 봅니다. 숱한 삶을 치르면서 숱한 눈길을 키웁니다. 숱한 가시밭길을 새삼스레, 늦깎이에도, 힘겹게 걸어야 하면서, 이 삶이란 어떤 바람결인가를 생각합니다. 우리한테 주어진 길마다 새롭게 배우며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면서 씩씩하게 한 걸음을 내딛는 마음이 될 수 있어요.


은행도 없던 시절 시골 약사였던 엄마는
환자 고쳐 버신 돈을 늘 신문지에 싸서 두셨다
통일되면 외가 식구 나눠 주려고 모으셨다

돈은 때로 사람을 찌르는 흉기인데
나누려는 돈은 따스하고 말랑말랑했다

엄마 돌아가신 후 발견한
먼지 가득한, 그 슬픈 돈뭉치 (이산가족을 찾는 긴 여행, 엄마를 기리며)


  포항에서 매우 큰 지진이 났고, 나라에서는 수능 시험을 이레 늦추었습니다. 대학시험을 앞둔 푸름이는 이레 동안 더 마음을 졸여야 했고, 이제 대학시험을 지나면서 홀가분한 벗님이 있을 테고, 오히려 마음이 무거운 벗님이 있을 테지요. 대학교를 눈앞에 그릴 수 있는 푸른 벗님이 있을 테며, 대학교는 그만 더 멀어진 푸른 벗님이 있겠지요.

  고등학교를 마치면서 바로 대학교에 가도 좋은 삶길입니다. 대학시험을 한두 차례나 서너 차례나 너덧 차례 더 치러서 대학교에 가도 좋은 삶길입니다. 그만 대학교 문턱을 밟을 수 없이 사회로 나아가도 좋은 삶길입니다. 대학교를 처음부터 바라보지 않은 채 당차게 새로운 길로 나아가도 좋은 삶길입니다.

  어느 삶길을 걷든 푸른 벗님은 새로운 하루를 배웁니다. 단맛을 보면 단맛을 배워요. 쓴맛을 보면 쓴맛을 배우지요. 단맛 쓴맛 고루 보면서 우리를 둘러싼 숱한 이웃이나 동무를 새롭게 바라보거나 느낄 수 있습니다. 신맛 매운맛까지 보는 동안 우리 곁에 있는 아프거나 슬프거나 외로운 이웃이나 동무를 더욱 깊거나 넓게 살피거나 헤아릴 수 있습니다.


좋은 집에서 살기를 더는 꿈꾸지 않는다
욕조에서 글 쓴 나보코프
부엌에서 글 쓴 하루키
쫓기면서 시 쓴 아흐마토바
창녀촌 아랫방서 글 쓴 마르케스
거울을 가진 그들에게 위안을 갖는다
반지하 방에 살아도
거울 알이 있기 때문이다 (거울 알)


  시집 하나 함께 읽어 봐요. 드디어 대학시험을 마친 푸른 벗님도, 삶에서 벼랑끝에 내몰린 이웃님도, 고단하거나 씁쓸한 살림이 그치지 않아 그저 캄캄한 앞날만 보이는 이웃님도, 아침마다 새로 뜨는 해님을 바라보면서 시집 하나 함께 읽어 봐요.

  마음을 새로 가다듬으면서 시를 읽어요. 마음을 곱게 추스르면서 시를 읽어요. 마음을 찬찬히 북돋우면서 시를 읽어요.

  시를 읽다가 웃음을 지어도 좋고, 눈물을 지어도 좋습니다. ‘나도 내 기쁨이나 슬픔을 시로 써 봐야겠다’ 하고 마음을 먹으면서 연필을 쥐고 공책을 펴도 좋습니다. 오늘 하루를 가만히 그리면서 함께 시를 읽어요.


당신이 곁에 없어도 당신을 느낀다고 쓰니
식탁으로 햇살 설탕이 쏟아졌다
아무도 없어도 나 혼자가 아니었다
자꾸 창을 열어 보라고 바람이 불었다 (햇살 설탕)


  11월이 저물고 12월이 찾아들면, 햇살꼬리는 더 늘어집니다. 제가 깃든 고흥 시골집 대청마루로 첫겨울 햇살꼬리가 길게 스며들어요. 종이를 바른 문으로 아침볕이 퍼집니다. 여름에는 높던 해가 겨울에는 낮아지면서 온 집안에 아침저녁으로 포근한 볕살을 나누어 줍니다. 겨울에 낮아지는 볕살이기에 대청마루를 거쳐 방문에까지 볕살이 퍼지거든요.

  무슨 말인가 하면, 여름에는 반지하집에 그야말로 햇살이 안 들어옵니다. 그런데 오히려 겨울에는 해가 길게 누우면서 반지하집에도 살몃살몃 햇살이 스미더군요. 추운 겨울에 뜻밖에도 반지하집에 조그마한 햇살이 퍼지며 살짝 포근한 볕까지 퍼져요.

  창문을 열어 바람을 쐽니다.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서 온몸으로 바람을 맞습니다. 이 겨울에 모든 이한테 고루 찾아드는 해님처럼, 마음에 빛이 되는 시를 한 줄 읽어 봅니다. 2017.11.27.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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