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 삶창시선 50
이종형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노래하는 말 324


호랑이 표식 단 남한 병사에게 어미 잃은 이웃
―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
 이종형
 삶창, 2017.12.15.


4월의 섬 바람은
뼛속으로 스며드는 게 아니라
뼛속에서 시작되는 것 (바람의 집/21쪽)


  아침에 작은아이가 방글방글 웃으며 마루이며 마당이며 부엌이며 휘젓고 달리다가 문득 큰소리로 묻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이제 봄이야? 저기 나무에 꽃이 피려고 해!”

  달력으로는 2월 22일입니다. 달력으로는 3월 1일부터 봄이라 할 수 있으나, 해나 바람이나 흙이나 물을 살펴서 봄이로구나 하고 느낄 만해요. 달력으로 바라보는 봄이 아닌, 봄이며 삶이며 숲으로 바라보는 봄을 익힐 수 있어요.

  저는 아이한테 한 마디를 들려줍니다. “음, 네가 봄이라고 여겨서 봄을 부르면 봄이야. 그리고 햇볕이 따뜻하고 바람이 시원하면서 흙이 말랑말랑한데다가 네 말처럼 나뭇가지에 잎눈이며 꽃눈이 터지려 하면 바로 봄이지. 꽃이 피는 모든 곳은 곧 봄이야.”


책갈피를 넘길 힘조차 이제 남지 않아서
만년필이나 사인펜보다 심이 굵은 4B연필로 서명하는 게 더 편하네요
그나저나
남의 이름을 이렇게 삐뚤거리게 써서 어쩌지요 (그 남자,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서/54쪽)


  시집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삶창, 2017)을 읽습니다. 지난 2017년 12월 끝자락, 그러니까 겨울 한복판에 나온 시집입니다. 시집이 겨울 한복판에 나왔대서 겨울을 노래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시집에 흐르는 이야기는, 이 시집에서 다루는 이웃은, 이 시집을 여미는 시인은, 안팎으로 으슬으슬 추운 겨울을 노래합니다.

  4월이 되어도 어쩐지 뼈마디가 시큰거릴 뿐은 바람을 느낀대요. 4월이면 한창 꽃철일 텐데, 꽃바람 아닌 시린 바람을 느낀대요. 그리고 이 시린 바람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을 듯해서 아픈 마음을 노래하고, 이 시린 바람은 제주뿐 아니라 저 먼 베트남에도 부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눈물짓는다고 합니다.


명색이 시인인 애비에게
번뜩이는 시상 떠오르거든 잊기 전에 적어놓으라고
따뜻하고 좋은 시 많이 쓰라고
몇 해 전 생일에 딸아이가 선물해준 작은 수첩을
두어 계절 지나고 들췄더니 (레시피/56쪽)

미워한 적은 없었지만 원망은 몇 번 했고
살아오는 동안 가끔씩 그리웠을 뿐이라고
그렇게 얘기하면 착한 아들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진 한 장 남겨놓지 않은 당신 때문에
삶과 불화한 세월이 길었다 (아버지/68쪽)


  시인 이종형 님은 노래하고 싶습니다. 슬픈 노래나 눈물 노래만이 아닌, 기쁜 노래나 웃음 노래를 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이녁 마음에 새긴 생채기를 좀처럼 털지 못합니다.

  봄에 봄을 그리지 못하고, 여름에 여름을 누리지 못합니다. 가을에 열매를 그리지 못하고, 겨울네 눈밭놀이를 누리지 못합니다.

  딸아이가 아버지한테 선물한 ‘시 쓰는 공책’도 한쪽으로 밀어둔 채 마냥 시린 가슴으로 하루하루 살아갔다지요.

  누가 시인한테서 봄을 빼앗았을까요. 누가 시인뿐 아니라 우리한테서 봄을 앗아갔을까요. 누가 시인하고 우리한테서뿐 아니라, 이 땅에서 봄을 짓밟거나 억눌렀을까요.


이 좋은 햇볕 그냥 보내면 죄짓는 거다
어렸을 적 외할머니가 하신 말씀 (10월/74쪽)

시청 앞에 다녀오시나 봐요
아, 저도 꼭 참석하고 싶었는데 너무 아쉬워요
돌아오는 주말엔 꼭 참석할 생각이에요
잠깐만요, 선생님 이거 하나 드세요
제가 사서 드리고 싶어요 (바나나 혁명/100쪽)


  따뜻한 볕을 쬐며 아이들하고 마당에서 놀다가 땀을 흘립니다. 고흥은 2월 끝자락이 따뜻하다 못해 살짝 덥군요.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칠 즈음 큰아이가 불쑥 손을 하늘로 뻗으며 매우 큰소리를 뽑습니다. “저기 봐! 무지개다!”

  소나기도 안 왔는데 무지개라니? 하늘이 구름도 없이 말끔한데 무지개라니? 마른 하늘에도 무지개가 있나?

  그런데 참말 마른 하늘에 무지개가 있군요. 따끈따끈 고운 볕을 베푸는 해님을 큼직하게 둘러싼 동그란 무지개가 낍니다. 어제도 오늘도 동그란 무지개가 우리를 쳐다보며 방긋방긋 웃음을 짓는구나 싶어요.


쯔엉탄 아랫마을 깟홍사 미룡촌에서 태어난 판 딘 란Phan Dihn Lanh
떨리는 목소리로 태어난 지 사흘 만에
호랑이 표식을 단 남한 병사에게 어미 잃은 사연을 얘기하는데
꼬박 오십 년이 걸린 거였습니다 (카이, 카이, 카이khai, khai,khai/106쪽)


  시집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에 흐르는 시 가운데 “바나나 혁명”을 퍽 애틋하게 읽었습니다. 촛불 한 자루를 들고 집회에 다녀온 늙수그레한 아저씨는 편의점에 들렀고, 편의점에서 시간제로 일하는 젊은 사내는 “저도 꼭 참석하고 싶었는데 너무 아쉬워요” 하고 한 마디를 하더니 늙수그레한 아저씨인 시인한테 바나나 우유를 내밀었대요. 시간제로 일하는 젊은 사내가 이녁 일삯을 덜어 내민 바나나 우유를 받고 늙수그레한 시인은 속으로 울었대요.

  베트남으로 찾아가 ‘베트남전쟁 때에 베트남사람을 끔찍하게 죽여서 잘못했습니다’ 하고 비는 빗돌을 여러 마을에 세운 이야기를 다룬 “카이, 카이, 카이khai, khai,khai”라는 시에는 ‘우리 마을에서도 한국군 양민학살이 있었는데 왜 우리 마을에는 빗돌을 안 세우느냐’면서, 제 어머니를 한국군 양민학살 때문에 잃은 마흔 넘은 아저씨가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옮겨적습니다.

  우리는 여러 총부리에 끔찍하게 다치거나 아파야 했는데, 우리도 다른 이웃나라 조용한 시골마을에 총부리를 들이대고서 끔찍하게 죽이거나 짓밟는 바보짓을 했어요. 4월마다 봄마다 제주에 부는 시린 바람은, 제주를 거쳐 베트남까지 부는 셈이에요. 그리고 이 시린 바람은 지구별 구석구석을 돌면서 아픈 사람들 가슴을 하나둘 스치거나 어루만지겠지요.


그대가 제주공항에 도착해서 신제주로 나가는 길이라면 한라산 방향 우측 능선에 소나무들이 곧게 허리를 뻗은 작은 숲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곳은 예전에 도령마루라 불리었던 숲이었으나 이제는 섬사람들에게도 낯선 지명이 되어버렸습니다 (도령마루/28쪽)


  새봄에 새봄을 노래할 수 있기를 빌어요. 이 봄에 이 봄을 사랑할 수 있기를 빌어요. 이웃 가슴에 시린 칼날이나 총부리를 들이대는 몸짓은 이제 사라질 수 있기를, 끝내거나 그칠 수 있기를 빌어요. 2018.2.22.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일의 노래 창비시선 101
고은 지음 / 창비 / 199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노래하는 말 325



사람들이 왜 시인더러 “꺼져버려라” 하는가
― 내일의 노래
 고은
 창작과비평사, 1992.4.25.


어느새 또 감쪽같이 빠져나가 아까 그 아가씨 손을 다시 잡고 노닥거리고, 그 사이 사타구니 속의 창창한 20대 젊음은 장작개비가 되어 벌떡거리고, 이번에는 숫제 숨까지 가빠올랐다. (145쪽/송기숙, 발문)

다음날, 그날 저녁 계획표에 강사와의 대환가 뭔가 하는 일정이 있었던지 우리를 찾아다녔던 한길사 직원들의 표정은 춘분 지난 우거지상이었다. 그러나 우리들 사정은 더 심각했다. 우선 속이 젓 담가놓은 속이어서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나몰라라 내내 코만 골았다. (150쪽/송기숙, 발문)

토굴에서 당대 최고의 선승 곁에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발발 기며 다소곳이 참선을 하다가 곡괭이로 방바닥을 파버리고 지리신만한 스승 앞에 대들던, 그 엉뚱한 행위의 이쪽과 저쪽, 금주의 실목걸이를 차는 결심과 그 목걸이를 차고 고주망태가 되어 술상을 치며 고담준론을 토하는, 그 이쪽과 저쪽, 이 극과 극의 머나먼 거리가 고은이라는 인간의 폭일 터이다. (151쪽/송기숙, 발문)


  ‘En시인’ 이야기가 불거지면서 고은 시인이 지난날 쓴 시집을 한 권 꺼내어 펼쳐 보기로 했습니다. 마침 1992년에 낸 《내일의 노래》(창작과비평사, 1992)가 저희 책숲집에 있습니다. 1992년은 최영미 시인이 등단한 해이기도 하기에, ‘En시인’이라는 사람 됨됨이를 이녁 글로 돌아보기에 맞춤하겠다고 여겼습니다.

  먼저 시집 끝에 붙은 글을 읽습니다. 웬만한 시집에는 문학평론가 한 사람이 시인이 어떤 문학을 펼쳤는가를 매우 딱딱하고 어려운 말로 풀어내기 일쑤인데, ‘En시인’이 쓴 《내일의 노래》에는 ‘작품 해설’이 없습니다. ‘발문’을 쓴 송기숙 소설가는 ‘En시인’하고 얽힌 이야기를 꽤 길게 늘어놓습니다. ‘En시인’이 스물 언저리였을 무렵 얼마나 땡중이었는가 밝히면서 “속수무책의 사나이”라고 일컫습니다.

  그래요, 절집에서 스님길을 걷지 않고 툭하면 몰래 절집에서 달아나 서울 한복판을 거닐며 술에 절다가 젊은 아가씨 손을 그윽히 잡고 살을 부비는 그런 땡중이 바로 ‘사나이’로군요.


오늘 나는 무엇인가
나는 짐승보다도 못하구나
반성이 없는 것과
반성이 있는 것 사이
그 질곡의 배회에 맴도는
나는 무엇인가 (다시 오늘/14쪽)

말 한마디 못하는 나무일지라도
사랑한다는 말 들으면
바람에 잎새 더 흔들어대고
내년의 잎새
더욱 눈부시게 푸르러라 (나무의 앞/24∼25쪽)


  시집 《내일의 노래》를 읽으면 이 시집을 쓴 분이 하루가 멀다하고, 아니 아침저녁을 가리지 않고 술에 절어 사는구나 하고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러면서 시인 스스로 “나는 짐승보다도 못하구나” 하고 뉘우치는 말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구멍가게로 달려가서 ‘딸한테 줄 우유’를 사는 길에 소주를 두 병씩 사들입니다.


안성으로 가지 않고
평택으로 가지 않고
15분쯤 잰걸음으로 가
동네 가게에서 우유 한 곽을 샀다
섭섭해서
소주 두 병도 샀다
알레그로 안단테 (동네 가게에서/35쪽)


  술을 마시는 하루가 나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하루에 소주를 두 병 마시든, 또는 아침에 두 병 저녁에 두 병 마신들 대수롭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밤새 술자리를 벌여서 산다 한들 대단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술이 좋다면 그토록 좋아하는 술하고 벗삼으면 되어요.

  누군가 숲이 좋다면 늘 숲하고 벗삼습니다. 누군가 바다가 좋다면 바다를 곁에 끼고 살아갑니다. 누군가 바람이 좋다면 싱그러이 바람이 부는 고즈넉한 터에 집을 지어 조용히 바람을 마시며 살아갑니다.

  술이 좋은 시인은 하루 내내 술에 절어서 살아갑니다. 이리하여 절집에서 얌전히 앉아 스님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얌전히 앉다가도 술이 떠오르고, 술을 한잔 걸치면 아가씨가 떠오르는데, 어떻게 스님길을 걸을까요.


나이 마흔다섯 마흔두서넛
이제 무얼 어쩌겠다는 건가
앞가슴 내려앉아버려
나바론에 건포도라
무얼 어쩌겠다는 건가
한밑천 잡아 무엇 하나 차리지 못하고
아직껏 이렇게 술상머리 나와
무얼 어쩌겠다는 건가 (돈암동 니나노/50쪽)


  언제나 술벗을 끼고 살아가는 시인은 무척 부지런히 글을 씁니다. 밤새워 술을 마시고 아침에는 아픈 속을 부여잡는다는데, 언제 글을 썼을까요. 술이 깨기 앞서, 술을 잔뜩 들이켠 뒤에, 또는 술판에서 글을 썼을까요.

  시집 《내일의 노래》는 1992년에 나왔습니다. ‘창비 시선 101호’라는 숫자를 받고 번듯하게 나왔습니다. ‘창비 시선’을 돋보이게 한다는 시집이라는데, 이 시집이 나온 1990년대 첫무렵 우리 글밭은, 글마을은, “속수무책 사나이”가 니나노집에 가서 늘그막 술집 색시 앞가슴을 훔쳐보면서, 아니 대놓고 바라보면서, 이를 고스란히 그리는 글판이었구나 싶습니다. 이렇게 쓰는 글이 문학이 되고 시가 되었구나 싶습니다.

  가시내를 술판 노리개로 삼는 문학으로 걸어온 우리 글밭이었을까요. 사내는 술자리에 가시내를 노리개로 곁에 두었던 우리 글마을이었을까요. 그리고 이를 따지거나 탓하거나 나무라거나 지청구하는 목소리는 하나도 없이, 이를 훌륭한 ‘문학’이라며 치켜세운 나날이었지 싶습니다.


그 거리 포장마차 안에서
소주 두 병째
술주정이 구원이었다
이런 판에 순정을 찾지 말라고

순정이라니 개에게나 던져주어라 (순정의 노래/66쪽)


  거나한 사나이는 술짓이 그리 깨끗하지 않은 듯합니다. ‘맑고 바름(순정)’ 따위는 개한테나 던져주라고 “순정의 노래”를 부릅니다. 밤새 술을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스스로 안 맑은 길을 걷겠노라 외칩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얼추 스무 해 남짓 흐르고 흘러서 ‘En시인’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2018년 시 한 줄로 불거졌어요. 아마 누군가 말할는지 몰라요. 이렇게 오래된 이야기를 왜 이제서야 건드리느냐고요.

  그러나 ‘En시인’은 예나 이제나 이녁이 했던 “맑지 않은 손길이나 손짓”을 제대로 뉘우친 적이 없지 싶어요. 이녁이 쓴 시에 스스로 “나는 짐승보다도 못하구나” 같은 글을 적지만, 막상 이런 글대로 스스로 뉘우치면서 새모습으로 거듭나려 한 적은 없지 싶어요.

  그동안 ‘En시인’한테서 생채기를 입은 숱한 사람들이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여겨, 오래오래 가슴에 묻은 아픔을 찬찬히 털어놓을 수밖에 없구나 싶습니다. 부디 ‘En시인’이 이 땅에 있는 동안 지난날 잘잘못을 말끔히 밝히고 고개 숙일 줄 알라는 뜻이지 싶어요. 앞으로 이 나라 모든 “속수무책인 사나이” 시인이며 평론가이며 작가이며 얄궂은 지난날을 털어내라는 뜻이라고 봅니다.


이용악 선생님
선생님 살아계실 때
소가 웃는 걸 보셨나요?
저희 동네 하마정마을
농사꾼 이득환 집
검정소 한 마리
이 녀석이 자꾸 웃었지요 (소가 웃는다/97쪽)

20년 혹은 30년
이 세월을
0.7평짜리 감방에서 보내는 양심범이 있다면
그런 늙어버린 양심범 몇백명이 있다면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인가 도대체

함부로 술 생각 따위 내지 말라
우리는 무엇인가 (너와 나/99쪽)


  1992년 고은 시인한테 어떤 해였을까요? 이해에 고은 시인은 얼마나 많은 ‘갓 글밭에 나온 앳된 가시내 시인’을 술자리에서 마주했을까요? 얼마나 많은 ‘고은 술벗 시인’은 ‘앳된 가시내 시인’을 얼마나 고은 시인 곁에 착착 앉히며 술을 따르라고 시켰을까요?

  한 입으로는 “함부로 술 생각 따위 내지 말라”를 노래하지만, 다른 한 입으로는 “순정이라니 개에게나 던져주어라”를 노래하는 삶이란 무엇일는지요? 한 입으로는 평화나 민주를 말하지만, 다른 한 입으로는 술이랑 니나노를 말하는 살림이란 무엇일는지요?


나의 딸 차령이는
아직 분단이라는 말을 모릅니다
휴전선이라는 말을 모릅니다 (나의 딸/102쪽)


  이제 1992년 시집 《내일의 노래》를 덮을 때입니다. 그러고 보니 시집 이름이 “내일 노래”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하루를 그리는 시집입니다. 이 시집에는 고은 시인 딸아이 이야기를 다룬 시가 하나 있기도 합니다. 분단이나 휴전선이라는 말을 아직 모른다는 이녁 딸아이 이야기를 시로 그립니다.

  ‘En시인’이 이녁 딸아이를 이야기하는 시를 읽으며 마음이 아립니다. ‘En시인’은 이녁 딸아이를 노래하면서 왜 딸 같은 앳된 가시내 시인을 그렇게 괴롭혀야 했을까요. 이녁 딸아이한테뿐 아니라 온누리 딸아이한테 어떤 몸짓과 말짓이 되어 하루를 그려야 했을는지 묻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시인을 꺼져버려라 했다. 그들에게는 나이팅게일의 울음소리가 시보다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인이 죽자 나이팅게일도 죽었다. 시인과 나이팅게일은 하나였던가. 하지만 새소리는 남아 있지 않으나 시는 남아 있다. (153쪽/고은, 후기)


  새소리는 안 남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저는 어릴 적에 들은 아름다운 새소리를 오늘에도 떠올려 우리 집 아이들한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En시인’은 새소리는 남지 않아도 시는 남는다고 말씀하시는데, 네, 틀린 말이 아닙니다. ‘En시인’이 남긴 시는 고스란히 남습니다. 한 입으로 두 가지 말을 하는 시가 고스란히 남고, 이녁 술벗이 이녁이 얼마나 모진 술짓을 벌였는지를 이녁 시집에 낱낱이 남겨 줍니다.

  사람들이 왜 시인더러 “꺼져버려랴” 할까를 ‘En시인’ 스스로 깨닫기를 빕니다. 사람들이 왜 시 아닌 새소리를 곁에 두고 싶어하는지를 이제는 알아차리기를 빕니다. 새처럼 맑고 상냥하게 노래부를 수 있는 시가 아니라면, 사람들은 언제나 “꺼져버려랴” 하고 말할 뿐입니다.

  ‘En시인’이여, 그리고 ‘En시인’ 곁에서 둘레에서 함께 술판을 벌이며 가시내뿐 아니라 젊은 사내 손이랑 허벅지랑 볼이랑 허리를 주무르고 쓰다듬었던 모든 “속수무책인 사내” 시인이랑 평론가랑 작가들이여, 그대들이 저지른 짓은 잊혀지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2018.2.17.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몬순 vol.2
고형렬 외 지음 / 삼인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노래하는 말 323



철없는 바람인 ‘중년 남성 시인’이 부끄럽다
― 몬순 vol.2
 고형렬·린망·시바타 산키치·꾼니 마스로한띠와 열세 사람
 삼인, 2017.12.29.


나는 알지 못한다
그 밥을 먹는 동안에도 또 다른 지진이 있었는지.
부서져 내린 흙이 밥 위에 떨어져 내렸는지.
그릇들은 다시 쟁강거리고
책장에서 남은 책들이 쏟아져 내리고
벽시계가 곤두박질치며 시계바늘이 멈춰 버렸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 흔들리는 나날 밖에서
희미한 파동을 몸으로 느낄 뿐
그곳의 슬픔과 공포를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우리는 흙 묻은 밥을 먹었다/나희덕, 35쪽)


  이른바 ‘예전·옛날’에 있었다는 일을 놓고서 여러 시인이 입방아에 올랐습니다. 다만, 입방아에 오르는 시인은 하나같이 사내입니다. 입방아에 오르는 이들 시인은 하나같이 가시내인 젊거나 어린 시인을 추근댔습니다. 이름이 낱낱이 드러나는 시인이 있고, 아직 이름이 안 드러난 시인이 있습니다.

  여태 갖은 막짓이나 막말이 바깥으로 널리 드러나지 않은 시인을 떠올려 보면, 속내가 어떠할는지 모를 이분들이 쓴 시집을 좀처럼 손에 쥐기 어렵습니다. 제법 나이가 있고,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시집을 여럿 낸 사내라면, 이분들이 얼마나 정갈하거나 말끔하거나 깨끗한지를 도무지 알 길이 없기까지 합니다. ‘나이와 이름 있고 교수라는 자리에 있는 40∼60대 사내인 시인’을 모두 못미덥게 보는 셈이라고 할까요.

  이런 마당이지만 막상 이들 ‘이름 있고 교수라는 자리까지 있는 사내인 시인’ 가운데 ‘추근질 시인’이 했던 짓을 함께 아파하거나 슬퍼하거나 뉘우치거나 나무라려는 목소리는 좀처럼 듣기 어렵습니다. 이와 함께 지난일을 되새기면서 고개를 숙이거나 털어놓는 목소리도 듣기 어렵습니다.


(바람은 영혼)이라고 심리학은 말하고
(바람은 신)이라고 문화인류학은 말하고
(바람은 방향에 주목)하라고 사회학은 말하고
(바람은 수평의 대기)라고 기상학은 말하고
(바람에 요주의)라고 소방서는 말하고
(바람을 타고 싶다)고 가수는 말하고 (마음의 비유/사소 겐이치, 68쪽)

무기가 아닌, 한 송이 꽃을
꺼지지 않고 조용히 퍼져 가는
양초 불꽃 같은 꿈을 (한 송이 꽃, 촛불/나카무라 준, 77쪽)


  시를 쓰는 손길이 시를 쓰는 손길다이 아름답지 않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끼는 이즈음, 여러 나라 시인이 함께 엮은 《몬순 vol.2》(삼인, 2017)을 읽습니다. 이 시집은 한국, 일본, 중국, 말레이시아에서 시 한 줄로 삶을 노래하는 열세 사람 목소리를 담습니다. 열세 사람이 열세 갈래 목소리로 지구별 평화와 꿈과 사랑을 바라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무기가 아닌 꽃을 바라볼 줄 알기를 바라는 마음을 시에서 읽습니다. 무기를 앞세운 전쟁이 아닌, 꽃을 가꾸는 호미를 함께 손에 쥐어 삶터를 가꾸자는 뜻을 시에서 엿봅니다.


국가를 탈출할 자유는 있다
하지만 그 저 편에
국가가 아닌 장소가 있을까?

국가란
인간의 환상이 만들어 낸 감옥 (아무것도 아닌 내가/시바타 간키치, 91쪽)


  글만 잘 쓴다고 해서 글로 먹고살아서는 안 될 노릇이지 싶습니다. 착한 마음이 없이 글만 잘 쓴다면, 글쓰기 빼고는 모두 바보스러울 수 있습니다. 상냥한 마음이 아닌 채 글만 꾸역꾸역 쓴다면, 글쓰기 빼고는 모두 멍청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글은 허울이 좋으나 속내는 빈 껍데기일 수 있어요. 삶은 없는 채 목소리만 큰 시라면 우리한테 거짓말을 들려주는 셈입니다. 삶을 사랑으로 짓지 않으면서 목소리만 이쁘게 꾸민 시라면 우리를 속여넘기려는 셈입니다.

  우리는 공직자한테 겉속이 같은 착한 마음과 몸짓을 바랍니다. 여느 공무원뿐 아니라 시장이나 군수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시의원이나 군의원 모두 겉속이 정갈하고 상냥하기를 바랍니다. 글을 다루는 시인이며 소설가이며 기자이며 교사이며 모두 참답고 착한 눈길에 손길에 마음길을 건사하기를 바랍니다.


저 멀리 윤리 하나하나를 응시한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우리 아이들의 미소를 나는 발견한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손으로 가슴을 탁탁 치는 아이들
우리가 바로 인도네시아예요 (근원의 이유/꾼니 마스로한띠, 157쪽)


  아이들 앞에서 활짝 마음을 열고 웃을 수 있는 시인을 바랍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을 뿐 아니라, 아이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아니 아이들하고 손을 맞잡고 삶을 노래하고 가꿀 줄 아는 시인을 바랍니다.

  아이들한테 전쟁무기를 물려준다면 바보스러운 어른이겠지요. 아이들한테 겉속 다른 시를 문학이랍시고 물려준다면 멍청한 어른이겠지요. 우리는 참말로 가장 아름다운 터전을 아이들한테 물려줄 어른으로 살아야지 싶습니다. 그리고 말 한 마디 또박또박 가다듬고 가장 고운 한국말로 갈무리한 시 한 줄을, 덧붙여 삶하고 말이 하나로 흐르는 정갈한 노래일 시 한 줄을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는 어른으로 살림을 가꾸어야지 싶습니다.

  여러 나라 시인이 모여 빚은 시집 《몬순 vol.2》을 돌아봅니다. ‘몬순(monsoon)’은 한국말로 옮기자면 ‘철바람’쯤 됩니다. 철이 든 어른으로서 철을 아는 노래를 읊기에 시가 됩니다. 아직 철이 덜 든 몸이나 마음이라면, 찬찬히 철을 익혀서 이제는 슬기롭고 올바로 살아갈 줄 아는 모습으로 거듭나기에 시를 씁니다.

  막삽질을 일삼은 정치도 권력이지만, 추근질을 해대는 사내들 손길도 권력입니다. 모든 사내들이 권력을 버리고 호미질 쟁기질 낫질 키질 써레질 바심질을 하기를 바랍니다. 맑은 숨을 짓는 글을 쓸 수 있기를 빕니다. 2018.2.16.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을 지펴야겠다
박철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시를 노래하는 말 287


글을 쓰는 사내가 걷는 길
― 불을 지펴야겠다
 박철 글
 문학동네 펴냄, 2009.3.2. 7500원


아빠는 마음이 가난하여 평생 가난하였다
눈이 맑은 아이들아
너희는 마음이 부자니 부자다
엄마도 마음이 따뜻하니 부자다
넷 중에 셋이 부자니
우린 부자다 (반올림, 수림이에게)


  지난날에는 그저 파묻히고 말던 이야기였으나, 이제는 바깥으로 환히 드러납니다. 지난날에는 힘이 없던 이들한테 쓰라린 이야기였으나, 이제는 힘을 휘두르던 이들 몸짓이 낱낱이 드러나고요. 고은 시인이 저질렀다는 성추행이 널리 불거지면서, 다른 문인들이 저질렀다는 성추행이나 막짓도 하나하나 불거집니다. 이 가운데에는 송기원 소설가가 술자리에서 새내기 시인 볼에 뽀뽀를 했다가 뺨을 맞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문단에서 힘이 있다면서 여린 이한테 더럽거나 지저분한 짓을 일삼은 이들은 그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까요? 그들이 저지른 더럽거나 지저분한 짓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고개 숙이거나 무릎 꿇거나 빌거나 뉘우친 적이 있을까요?


어느 날 나는 아내 앞에서
나도 모르게 북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 학원비로 분위기가 냉랭한 가운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툭 던지고 말았다
몸이 아파도 주눅들지 않는 곳에 가서 살고 싶다고
고개를 돌리며
아내는 신경질적으로 낮게 읊조렸다
“당신은 거기 가면 아오지 감이야” (아오지)


  고은 시인 막짓과 함께 새삼스레 불거진 송기원 소설가 막짓 이야기를 듣고 나니, 송기원 시인이 1990년에 낸 《마음속 붉은 꽃잎》(창작과비평사)이라는 시집을 읽던 무렵 매우 거북하던 일이 떠오릅니다. 이 시집은 송기원 소설가가 전라도에서 ‘술과 몸을 파는 늙은 가시내’를 만나서 술 마시며 나눈 이야기를 가득 다룹니다.

  박철 시인이 2009년에 낸 시집 《불을 지펴야겠다》(문학동네)에는 이녁이 ‘지방에 일을 보러’ 가서 ‘가시내를 옆에 끼고 잔 이야기’를 쓴 시가 나오기도 합니다. 송기원 소설가는 ‘술과 몸을 파는 늙은 가시내하고 술 마시며 나눈 이야기’를 시로 담았다면, 박철 시인은 ‘가시내를 옆에 끼고 잔 이야기’를 〈인연〉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시집에 실었습니다.


둘 다 괜찮다고 말하며 몸을 내려올 때 문밖에서 호각소리가 들렸다
새벽녘, 잠이 든 그녀를 두고 골목을 빠져나오다가
모퉁이 구멍가게에서 계란 한 봉지를 사서
되돌아가 슬며시 문을 열고 들여놓았다
방문 소리에 잠이 깬 그녀가 아유, 이걸 뭘, 하며 몸을 일으키곤
밥이나 좀 끓여 먹고 가라고 손을 잡았다
첫차 타고 산에 올라야 한다며 돌아나오는데
아침 해가 까맣게 떠오르고 있었다 (인연)


  《불을 지펴야겠다》라는 시집을 읽은 지 여러 해이지만, 이 시집을 두고 뭐라 말해야 좋을는지 아리송합니다. 한쪽에서는 이녁 아이하고 곁님하고 늙은 어머니를 그리는 이야기를 시로 쓰는데, 다른 한쪽에는 ‘가시내를 돈으로 사서 잠자리에 든 이야기’를 시로 써요.

  이러한 시는 ‘안과 밖은 모두 같다’는 빗댐말일까요. ‘사람은 어디에서나 똑같은 사람으로서 만나고 헤어지는 삶도 같다’는 빗댐말일까요. 아니면 다른 어떤 깊거나 거룩하거나 대단한 뜻을 담은 시짓기일까요.


추운 날 

아궁이에서 불 때는 엄마 모습 보기 좋았다

저녁 밥 짓는 겨울 석양 무렵

부엌 문턱에 앉아보다가

디딤돌에 섰다가

조금조금 다가가 부뚜막에 앉으면

얘야 연기 난다 맵다 매워 저리 가라 저리 가

눈물 찍어내며 엄마 손사래를 치면 (부뚜막)


  서로 살을 섞는 이야기가 소설에 퍽 자주 흐릅니다. 시에서도 서로 살을 섞는 이야기를 다루지 말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한국에는 틀림없이 성매매업소가 있습니다. 시인이나 소설가라 해서 성매매업소를 들락거리지 말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하고 곁님이 있다 하더라도, 늙은 어머니를 애틋하게 그리더라도, 얼마든지 성매매업소를 들락거리면서 그곳에서 만난 이를 ‘인연’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시라는 문학으로 얼마든지 담아내어도 됩니다.


싼 것이 편한 인생이 있다 팬티도 양말도 런닝구도
싼 것을 걸쳐야 맘이 편한 사람들이 있다
한번 산 운동화를 사골 고듯 신고 다니는
그런 사람들이 보석처럼 지키는 한 가지가 있다 (보석)

피뢰침의 뒷주머니에 등굣길 뽑기장수의 연탄불 속에
나의 작은 책상을 하나 놓아두어야겠다
지우개똥 수북이 주변은 너저분하고
나는 외롭게 긴 글을 한 편 써야겠다
세상의 그늘에 기름을 부어야겠다
불을 지펴야겠다 (불을 지펴야겠다)


  글을 쓰는 이들이 부디 착하고 고울 수 있기를 빕니다. 겉보기로 착하거나 얼굴이 고운 글쟁이가 되기보다는, 속마음이 착하고 마음결이 고운 글님이 되기를 빕니다. 어제까지는 얄궂거나 아쉬운 걸음을 걸었다면, 오늘부터는 상냥한 걸음걸이로 다소곳하게 삶을 짓고 글을 지을 수 있기를 빕니다. 부디 마음 가득 참다운 보석을 품으면서 하루를 열기를 빕니다. 2018.2.15.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룩한 허기 랜덤 시선 35
전동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시를 노래하는 말 322


장례비가 든 적금통장을 받고서
― 거룩한 허기
 전동균
 랜덤하우스, 2008.2.25.


아버지 돌아가신 뒤
몇 해 동안 시 한 줄 쓰지 못했더니
지난밤 꿈속에서
누가 쓴 것인지, 서럽고 아프고 황홀한 시들이
내 입술을 열고 노래처럼 흘러나왔습니다
오랫동안 눈물 훔쳤습니다 (첫눈/12쪽)


  해마다 겨울이면 아이들은 여름에 바다나 골짜기를 놀러가자고 말합니다. 이윽고 여름이면 아이들은 눈사람을 굴리고 싶다며 눈이 언제 오느냐고 묻습니다. 겨울 한복판을 지나 곧 봄을 맞이하겠다고 느끼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왜 겨울에는 여름을, 여름에는 겨울을 그릴까요? 왜 겨울에 더 겨울다운 추위를 맞이하지 않고, 여름에 더 여름다운 더위를 누리지 않을까요?

  그래도 해마다 똑같이 흐르는 모습이 있으니, 아이들은 겨울에 처음 눈을 맞이하면 마당이나 뒤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몸짓으로 입을 벌려서 눈을 받아먹습니다. 첫눈이란 겨울다운 첫밥입니다. 첫눈이란 기쁜 겨울놀이를 여는 첫걸음입니다. 첫눈이란 참말로 겨울이네 하고 느끼는 신나는 첫놀이입니다.


간성 혼수에 빠질 때는 링거 줄을 뽑아 던지며 살려달라고, 서울 큰 병원에 옮겨달라고 울부짖으셨는데, 한 달 반 만에 참나무 둥치 같은 몸이 새뼈마냥 삭아 내렸는데, 어느 날 모처럼 죽 한 그릇 다 비우시더니, 남몰래 영안실에 내려갔다 오시더니 손짓으로 날 불러, 젖은 침대 시트 밑에서 더듬더듬 무얼 하나 꺼내 주시는 거였다 장례비가 든 적금통장이었다 (겉장이 나달나달했다/20쪽)


  시집 《거룩한 허기》(랜덤하우스, 2008)를 쓴 전동균 님은 첫눈하고 이녁 아버지를 맞대어 놓고 이야기를 엮습니다. 하늘로 떠난 아버지를 그릴 적마다 서럽고 아팠는데, 어느 날 꿈에서 눈부신 시가 저절로 흘러서 잠결에 오랫동안 눈물을 훔쳤다고 합니다.

  아직 이 땅에 누워서 몹시 앓던 아버지는 어느 날 조용히 병원 침대에서 겉종이가 나달나달한 적금통장을 꺼내어 아들한테 내밀었다고 합니다. 죽음을 바라보던 늙은 아버지는 아들 어깨에 짐이 얹히기를 바라지 않으면서 ‘장례비 적금통장’을 건사했다고 해요.


꾸벅꾸벅 졸다 깨다
미사 끝나면
사거리 옴팍집 손두부 막걸리를
하느님께 올린다네
아직은 쓸 만한 몸뚱아리
농투성이 하느님께 한 잔,
만득이 외아들 시퍼런 못물 속으로 데리고 간
똥강아지 하느님께 한 잔, (까막눈 하느님/42쪽)


  겨울에 눈먹기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찬바람 쐬며 노는 아이들이 집으로 들어오고 나서 따뜻하게 몸을 녹이도록 건사하는 살림입니다. 신나게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밥을 짓고 국을 끓입니다. 개구지게 논 아이들이 씻고 나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도록 챙깁니다. 가만 보면, 어버이 자리에서 누구나 생각을 짓고 꾸려요. 아이들이 마음껏 날개를 펼 수 있도록. 아이들이 눈부신 노래를 가슴에 담을 수 있도록. 아이들이 홀가분하게 꿈길을 걸을 수 있도록. 기쁘게 놀고 즐겁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요즘 나의 소풍은
홍은동 뒷산, 몇 해 전 이사 왔을 때 심은
살구나무에게 가는 거야

누군가 사납게 칼질을 해
몸의 절반은 찢겨졌지만
기어코 살아보겠다고, 불구의 제 몸을 부둥켜안고 발버둥쳐
두어 해나 지나서야 전해오는
연둣빛 소식을 만나러 가는 거지 (살구나무의 저녁은/94쪽)


  작은 시집에 흐르는 작은 노래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나즈막하게 읊는 이야기입니다. 하늘로 떠난 아버지를 그리는 이야기요, 꿈결에 조용히 찾아온 시잔치를 눈물로 적시는 이야기입니다. 시골마을 이웃 할배가 경운기 끌고 공소에 가서 꾸벅꾸벅 졸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막걸리 한 사발을 하느님하고 나누는 이야기요, 서울 한켠에서 살 적에 살구나무를 씩씩하게 심고는 봄빛을 만나러 다니는 이야기입니다.

  겨울은 곧 지나갑니다. 봄으로 접어들면 이 겨울날 추위는 까맣게 잊습니다. 봄빛이 흐드러질수록 지난 겨울바람을 가만히 내려놓습니다. 사나운 칼날에 살아남은 나무처럼, 배고픔이나 아픔을 짊어지다가 내려놓는 하루처럼, 조곤조곤 속삭이는 말로 이야기를 그립니다. 장례비가 든 적금통장을 받고서 늙고 고단한 아버지 손등을 어루만지던 하루를 적바림합니다. 삶을 마친 이야기를 왼손에 얹고, 삶을 이어가는 이야기를 오른손에 놓습니다. 2018.2.7.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