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처럼 창비시선 67
황선하 지음 / 창비 / 198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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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노래책시렁 1


《이슬처럼》

 황선하

 창작과비평사

 1998.3.20.



  하루는 언제나 노래입니다. 노래가 아닌 하루란 없습니다. 딱 잘라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 즐거워 즐거운 노래이고, 따분해 따분한 노래이며, 슬퍼서 슬픈 노래입니다. 신나는 노래라든지 아름다운 노래일 수 있고, 아프거나 고단한 노래이기도 합니다. 좋은 노래이든 나쁜 노래이든 늘 흐르는 노래요, 이 노래는 바로 우리 스스로 짓고 부릅니다. 《이슬처럼》이란 노래책(시집)을 선보인 분은 이밖에 다른 노래책을 더 선보이지는 않으신 듯합니다. 조용히 노래를 부르다가 조용히 노래책을 펴냈고, 조용히 삶을 노래하면서 조용히 하루를 지었지 싶습니다. 아침을 열며 어떤 노래를 부를는지 우리 스스로 고르기 마련입니다. 저녁을 닫으며 어떤 노래를 부를는지 우리 스스로 새삼스레 고릅니다. 낮에는 어떤 노래를 부르려나요? 즐겁게? 짜증스럽게? 힘겹게? 가뿐하게? 어떤 노래이든 언제나 스스로 지어서 부르는 줄 돌아볼 수 있다면, 하루를 누리며 부를 노래를 섣불리 고르지는 않으리라 생각해요. 꼭 멋져 보여야 하지 않습니다. 잘생기거나 이뻐 보여야 하지 않습니다. 부드러운 바람결처럼 상냥한 손길로 지을 수 있는 노래이면 넉넉합니다. ㅅㄴㄹ



학생들 등학교 시간에 때 맞추어 교문 앞에 나와서 꽃을 파는 아주머니. 우리 학교 2학년 아무개의 어머니라던가. / 들통 하나에 가득 담은 꽃이 통 안 팔린 날은 보기에 안쓰러워 따뜻한 인사말 몇 번 건넸더니, 그게 그렇게도 고맙게 느껴졌던지, 하루는 국민학교에 다니는 막내딸을 시켜, 조선의 그윽한 가을을 머금은 국화꽃 한 묶음을 보내왔더라. (사람 3/35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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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바닥은 따뜻하다 - 문익환 탄생 100주년 기념 시집
문익환 지음 / 사계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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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 마음에 안 들기에 8점...

시를 노래하는 말 334


새로운 평화를 꿈꾸던 늦봄 바람줄기
― 두 손바닥은 따뜻하다
 문익환
 사계절, 2018.5.18.


나는 70년대에 사내라는 게 그리도 부끄러웠다
동일방직 쪼깐이들의 아우성을 들으며
걔들에게 똥을 퍼먹이는 것이 사내들이었거든
회사마다 여자들은 정의를 외치는데
사내라는 것들은 기업주들의 앞잡이였거든 (인숙아/58쪽)


  늦봄 문익환 님은 1918년에 태어납니다. 2018년은 이녁이 태어난 100돌입니다. 《두 손바닥은 따뜻하다》(문익환, 사계절, 2018)는 늦봄 문익환 님 100돌을 기리면서 새롭게 엮은 시집입니다. 그동안 써낸 시집에서 추려서 엮었기에 새로 캐내거나 찾아낸 시는 깃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묵은 시를 새로 엮은 시집에 흐르는 이야기는 해묵지 않습니다. 늦봄 어른은 1970년대에 이녁이 사내라는 몸뚱이여서 부끄러웠다고 밝히는데, 2010년대 사내는 안 부끄럽다고 할 만한 삶인가 하고 돌아보면, 아직도 퍽 많은 사내는 부끄러운 짓을 일삼곤 합니다. 바른 길을 외치지 못하기도 하고, 계급질서를 단단히 거머쥐기도 하며, 가부장 틀을 끝까지 버티기도 하고, 으레 주먹이 앞서 나가기도 합니다.


난 그들을 괴뢰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그렇다고 인민이라고 부를 생각도 없어
동무라는 좋은 우리말 있지 않아
동무라고 부르면서 열 살 스무 살 때로
돌아가는 거지 (잠꼬대 아닌 잠꼬대/104쪽)


  늦봄 어른한테는 ‘통일 할아버지’ 같은 이름이 곧잘 따라붙습니다. 할아버지 나이에 사회와 정치를 뒤늦게 깨달아 통일운동에 두 발을 성큼 내밀었거든요. 젊은이 가운데에도 한 발 아닌 두 발을 다 빼는 사람이 퍽 많은데, 늦봄 어른은 한 발뿐 아니라 두 발을 성큼 내딛으면서 이 나라가 나아갈 길은 무엇보다 통일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어릴 적에는 시인을 꿈꾸었고, 젊을 적에는 신학이라는 길을 걸으며 성경을 쉽게 고쳐쓰는 일을 했습니다. 1970년에 서울 청계천에서 앳된 젊은이가 몸에 불을 당겨 ‘근로기준법’을 외치자, 뒷통수를 크게 얻어맞았다면서, 쉰이 넘은 나이라 하더라도 몸을 바쳐 민주운동을 해야겠다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늦봄 어른은 북녘에 사는 한겨레를 ‘괴뢰’도 ‘인민’도 아닌 ‘동무’라는 오랜 한국말로 부르고 싶습니다. 〈잠꼬대 아닌 잠꼬대〉라는 시는, 참말로 이런 이야기를 잠꼬대처럼 늘어놓은 노래라 할 텐데요, 이 시를 내놓던 무렵 이런 이야기를 둘레에서는 ‘거 잠꼬대 같은 소리는 그만두시오’ 같은 소리를 익히 들었다고 해요. 독재 서슬이 시퍼런 마당에 독재부터 고꾸라뜨려야지, 통일은 나중에 생각할 일이라는 핀잔을 늘 들었다고 합니다.


어머니
그렇군요
분단의 장벽은 사람들의 마음에 있었군요
불신 반목 질시 적개심은 마음에 있는 거니까요 (통일은 다 됐어/149쪽)


  저는 늦봄 어른 시를 젊은 날에 문득 만나 하나하나 읽어 보았습니다. 곁에 두면서 으레 읊어 보았습니다. 신문배달을 하며 살던 무렵에도, 어린이 국어사전을 짓던 무렵에도, 이오덕 어른 글을 갈무리하던 무렵에도 늦봄 어른이 남긴 노래를 가만가만 되새기면서 “통일은 다 됐어” 하고 외치는 마음을 함께 느껴 보려고 했습니다.

  바로 우리 마음자리부터 정갈하게 다스릴 적에 통일도 민주도 평화도 온다고 여긴 늦봄 어른이라고 느낍니다. 정치 지도자가 만나기 앞서 우리부터 마음자리에서 미움을 씻어낼 적에 통일이며 민주이며 평화이며 우리 손으로 가꿀 수 있다고 여긴 늦봄 어른이라고 여깁니다.


국회는 행정부는 사법부는 누구를 위해 있는 겁니까
공장은 병원은 신문 잡지는 TV는
88올림픽은 정치학은 경제학은 철학은 언론은
시는 소설은 누구를 위해 있는 겁니까

뿌리가 없는데 민중이 없는데
하느님의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복음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우리는 죄인입니다/194쪽)


  시집 《두 손바닥은 따뜻하다》은 조그맣습니다. 두 발바닥으로, 작은 두 발바닥으로 남녘하고 북녘 사이를 가로지르고 싶던 꿈을, 발바닥만큼 작은 두 손바닥으로 흙바닥에 마주 대면서 풀내음도 꽃내음도 맡고 싶은 숨결을 담은 조그마한 시집입니다.

  뿌리를 찾고 싶은 마음을 살포시 그립니다. 뿌리 깊은 나라가 되기를 바라고, 뿌리 깊은 마을이 되기를 꿈꾸며, 뿌리 깊은 수수한 보금자리를 저마다 손수 짓기를 비는 사랑을 한 줄 두 줄 엮습니다.

  두 손바닥을 맞잡기에 한겨울에도 따뜻합니다. 두 손바닥이 만나기에 차가운 바람이 수그러듭니다. 2018년 올해에, 1918년부터 100해가 흐른 올해에, 남북녘 사이에 포근하면서 싱그러운 바람 한 줄기가 불 만할까요? 두 나라는 어깨동무를 하면서 새로운 나라로 거듭날 만할까요? 이제 모든 전쟁무기를 걷어내고 작은 살림살이를 가꾸는 길로 달라질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늦봄 어른이 늘 가슴에 품은 “꿈을 비는 마음”이라는 말마디를 읊어 봅니다. 2018.6.12.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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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그녀의 꽃들
루피 카우르 지음, 신현림 옮김 / 박하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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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33


아픔을 사랑으로 노래한 이주민 여성 목소리
― 해와 그녀의 꽃들
 루피 카우르 글/신현림 옮김
 박하, 2018.4.26.


젖가슴
이라고 남자애들이 말할 때
그 말이 싫었다
내가 그 말을 하면서 창피한 것도 싫었다
그 말은 내 몸을 가리키지만
내게 속한 말이 아니고
그 아이들에게 속한 말이었던 게 싫었다 (98쪽)


  시집 《해와 그녀의 꽃들》(루피 카우르/신현림 옮김, 박하, 2018)을 읽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는 이 시집을 어떤 사람들이 읽었을까요? 이 시집을 옮겨서 펴낸 한국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읽을까요?

  한 가지를 더 생각해 봅니다. 시를 쓴 분은 이녁 시를 누가 읽어 주기를 바랄까요? 여성 이야기를 여성이 읽기를? 아니면 여성이 걸어온 길과 걸어가는 길과 걸어갈 길을 ‘남성이라는 이웃’이 읽기를 바랄까요?


나는 바람을 질투해
지금도 너를 보고 있으니 (25쪽)

우리 부모님은 저녁에 우리를 앉히고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없었다. 한 분은 늘 일을 하셨고 한 분은 너무 피곤하셨다. 아마도 이민자의 삶이란 그런 것 같다. (142쪽)


  오늘날에도 더러 볼 수 있습니다만, 예전에 한국에서는 ‘사내 아이를 높이는’ 흐름이 있었습니다. 사내를 못 낳는 어머니는 쫓겨나기도 했고, 사내를 못 낳는 대서 새어머니를 들이기까지 했지요. 그런데 이런 모습은 한국에만 있지 않았더군요. 서양에서도 이런 흐름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서양이 한국보다 성평등을 한결 헤아린다고 하지만, 서양에서도 성차별은 곳곳에서 불거진다고 해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얹어 본다면, ‘동양에서 온 여성’을 따돌리는 모습도 적잖이 있다고 합니다.

  모든 나라나 모든 사람이 이웃을 이웃으로 바라보지 않으면서 따돌리거나 괴롭히지는 않을 테지만, 알게 모르게 따돌림이나 괴롭힘으로 고단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스라한 옛날이 아닌 바로 오늘 이곳에서 따돌림이나 괴롭힘으로 고달픈 사람이 있어요. 이러한 목소리를 시집 《해와 그녀의 꽃들》을 읽으면서 느낍니다.


내가 태어날 때
엄마는 말씀하셨다
네 안에 신이 계셔
그녀가 춤추는 걸 느낄 수 있니 (207쪽)


  인도 이주민 집안에서 태어난 작은 가시내는 가난한 살림을 늘 지켜보고 살다가, 어른이 되면서 ‘알게 모르게 와닿는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느낍니다. 이러면서 이녁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되새기고, 이녁 아버지가 이민자로서 집안을 꾸리려고 얼마나 힘겹게 싸워야 했는가를 돌아봅니다.

  힘들 때마다 하느님(신)을 떠올립니다.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에 흐르는 하느님입니다. 어머니는 어린 글쓴이를 바라보며 “네 안에 하느님이 있다”고 이야기했대요. 아버지는 바깥일로 너무 바쁘고 힘들어 거의 이야기를 못 들려주었다지만, 몸으로 말없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대요. 이러는 동안 글쓴이는 학교에서 마을에서 사회에서 ‘이주민 동양 여성’을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말·몸짓·모습을 하나하나 받아들여서 삭여야 했다고 합니다. 어릴 적에 ‘젖가슴’이라는 낱말을 놓고 겪은 이야기를 털어놓은 시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당신은 거울이다
당신이 계속 사랑에 목말라하면
당신을 목마르게 할 사람만 만날 것이다
스스로 사랑에 흠뻑 적시면
온 우주도 당신을
사랑해 줄 사람들을 보내 줄 것이다 (233쪽)


  다만 시집 《해와 그녀의 꽃들》은 무언가 까밝히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픈 이야기를 적지만 따지려 하지 않습니다. 고달프게 살아오고, 가슴에 맺힌 생채기를 고스란히 드러내기는 하더라도 미워하려고 하는 마음은 아닙니다.

  아프면서 배운 이야기를 차분히 적으려고 합니다. 나를 아프게 한 네가 누구인지 차분히 헤아리면서 이러한 걸음걸이에서 배운 이야기를 가만히 적으려고 합니다. 고달프거나 힘겹게 살면서 지친 이야기를 적되, 힘들다는 목소리가 아닌, 힘겨운 나날을 지내면서 무엇을 배우고 느꼈는가를 적어서, 내 곁에 있는 너하고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새롭게 살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적으려고 합니다.

  무엇에 목마른 채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을 시로 그립니다. 무엇이 목마르다면 왜 이러한 삶일까 하고 다시 생각하고 살피면서 어릴 적에 어머니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되새깁니다. 남이 입으로 읊는 ‘사랑해’라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살림자리에서 길어올릴 ‘사랑스러울 하루’를 짓는 길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따돌림이나 푸대접을 받을 여성도, 이주민 여성도 아닌, 고운 손길을 받으면서 고운 손길을 뻗을 즐거우며 새로운 사랑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태어난 첫날부터
그녀는 이미 자신 안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단지 세상이 그렇지 않다고 그녀를 설득했을 뿐 (237쪽)


  시집 《해와 그녀의 꽃들》은 여러모로 뜻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시집에 흐르는 번역말이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옮긴이는 영어 운율에 맞추어 한국말로 옮기려면서 좀 엉성하다 싶은 대목이 자꾸 드러납니다. 이 가운데 한 대목을 짚어 보고 싶습니다.


[신현림 님이 옮긴 말]
아버지는 모음이 무언지도 모른 채
어떻게 우리 가족을 가난에서 꺼내셨을까 생각하곤 한다
어머니는 영어 문장 하나 완벽하게
만들 줄도 모르면서
네 명의 자녀를 길러내셨다

[옮김말을 한국 말씨로 손질하기]
아버지는 홀소리가 무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우리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했을까 생각하곤 한다
어머니는 영어로 글 한 줄 제대로
쓸 줄도 모르면서
네 아이를 길러내셨다


  “무언지도 모른 채”는 “무언지도 모르는 채” 꼴로 고쳐야 하는데, 글흐름을 보자면 “무언지도 모르면서”로 고치면 한결 낫습니다. “모른 채”처럼 안 씁니다. “① 야구도 ‘모른 채’ 야구를 보니?”라 안 하지요. “② 야구를 ‘모르는 채’ 야구를 보니?”라 합니다. 부드럽게 말하자면 “③야구를 ‘모르면서’ 야구를 보니?”라 말합니다. ①은 한국 말씨로 보자면 틀립니다. ②로 적어야 한국 말씨에 맞습니다. ③이 가장 어울리면서 입말입니다. ①은 때매김(시제)이나 말틀(문법) 모두 어긋납니다. ‘채’를 붙일 수 있는 자리를 제대로 살펴야 합니다.

  영어로는 “가난에서 꺼내다” 같은 말씨가 있는지 모르나, 한국말로는 이렇게 안 합니다. 한국말은 “위기에서 꺼내다”나 “위험에서 꺼내다”라고도 안 합니다. 이런 자리에서는 “벗어나게 하다”라고 합니다. “영어 문장 하나 완벽하게 만들다”도 번역 말씨입니다. “영어로 글 한 줄 제대로 쓰다”라 해야겠지요. “네 명의 자녀”도 번역 말씨이자 일본 말씨예요. “네 아이”처럼 써야 한국 말씨입니다.

  이주민 여성이 겪은 아프며 슬픈, 그렇지만 마냥 아파하거나 슬퍼하지 않겠노라고 당차게 노래하는 아름다운 시를, 참으로 아름다이 한국말로 여미어 줄 수 있다면 더없이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2018.5.20.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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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만한 잡담 천년의 시조 1003
서성자 지음 / 천년의시작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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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30


작은 이야기를 상냥하게 노래해 본다
― 쓸 만한 잡담
 서성자
 천년의시작, 2016.10.12.


‘우리 딸 시집가는 날’ 달력에 크게 쓰고 / 아침이 참 맑다며 이불을 널다가 // 노을을 흠뻑 쏟아놓고 / 깔깔 웃는 엄마야 // 흘러간 어느 날의 구름 위를 거니는지 / 꽃이불 머리에 쓰고 사뿐히 앉았다가 (참 맑다)


  어버이가 아이를 품에 안고 들려주는 말은 모두 노래가 된다고 느낍니다. 어버이는 아이를 낳고 돌보는 동안 아이한테 말을 들려주고 가르치는데, 이 말이 늘 노래가 되면서 아이는 기쁨하고 사랑을 배우지 싶어요.

  어버이 곁에서 말을 듣고 배우며 자라는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말로 새롭게 이야기를 길어올려요. 이 이야기는 새삼스레 노래입니다. 아이 입에서 톡톡 터져나오는 말마디는 더없이 싱그러이 노래꽃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희끗한 사내가 운동장을 걷다 말고 전화기에 콧소리로 ‘사랑해’를 높이 보낸다 아장한 손녀 웃음에 먼 소년이 왔나 보다 (3월)

달덨다, 근린공원에 언니들이 달린다
왕언니 작은 언니 넘실넘실 파도 인다
“삶보다 살을 저주해”불룩해진 길도 웃고 (떴다, 달)


  틀에 맞춘 시조에서 벗어나 새롭게 시조로 삶을 노래하는 이야기를 담은 《쓸 만한 잡담》(서성자, 천년의시작, 2016)을 읽습니다. 시조집이라고 하는데 막상 펴서 읽으니 흔히 보던 ‘틀(글잣수)에 맞추는’ 글이 아닙니다.

  그러고 보면 시조이든 시이든 모두 노래입니다. 이름은 달라도 모두 삶을 노래하는 말입니다. 아침을 맞이하는 기쁨을 노래합니다. 낮에 바지런히 일하는 보람을 노래합니다. 밤에 고요히 잠들며 쉴 수 있는 즐거움을 노래합니다.

  아장걸음을 디디던 아이를 맞이한 기쁨을 노래합니다. 이 아이가 자라 스스로 꿈을 키우는 어른으로 새길을 걷는 모습을 지켜보는 보람을 노래합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 낳는 새로운 아이를 마주하는 새로운 즐거움을 노래해요.


가슴으로 울 일 없어 목메도록 밥을 먹고
옷에 핀 보푸라기로 솜꽃을 굴리는 여자
그 손등 푸른 혈관이 낯선 길처럼 아득하다 (보푸라기 여자)

시 한 편 써보려고 / 아비를 토막 내고 // 시 한 편 건져보려고 / 어미를 발라먹고 // 구름길 먼저 건너간 피의 족보를 뒤적이다가 // 어찌할 바를 몰랐다면 / 알아도 할 수 없지 (쓸 만한 잡담)


  우리 모두 하루를 노래하면서 시를 써 보면 좋겠습니다. 문학잡지에 싣지 않아도 좋으니 즐겁게 시를 써서 함께 읽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학교 숙제 때문에 시를 써야 하지 않습니다. 어버이하고 상냥하게 나눌 시를 쓰면 되어요. 어버이는 어버이대로 바라보는 삶을 적고, 아이는 아이대로 지켜보는 삶을 적어서, 똑같은 일이나 살림을 두고도 이렇게 새로 느낄 수 있구나 하고 배우면 좋아요.

  “쓸 만한 잡담”이란, 언뜻 보면 자질구레한 이야기 같은 삶이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모두 구슬처럼 빛나는 삶이라는 뜻이지 싶습니다. 노래하는 《쓸 만한 잡담》은 수수한 하루에서 길어올린 작은 삶 이야기라고 느껴요.


오랜 날 저 높은 한 남자를 사랑했네
위험한 확신인 줄 알았으나 눈 감고
흰 철쭉 무더기같이
나는 홀로 신부가 되네 (나의 시)


  시를 쓰는 하루를 살면 우리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사뭇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곁님한테 시를 써서 건네고, 아이한테 시를 써서 줍니다. 아이가 쓴 시를 받습니다. 이웃이 들려주는 시를 가만히 건네받습니다. 저마다 누린 하루를 저마다 참하게 적으니 노래가 피어납니다. 후미진 곳에서도, 구석진 곳에서도, 응달인 곳에서도 새봄 기운하고 빗물을 받으면서 푸르게 노래 한 송이 자라납니다. 2018.5.2.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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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언어사전
이정록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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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31


아이들은 ‘추억’ 아닌 ‘꿈’을 먹고 커요
― 동심언어사전
 이정록
 문학동네, 2018.3.12.


햇살로 가방끈을 엮자.
별빛으로 가방끈을 꼬자.
손바닥에 침은 뱉지 말고
꽃향기와 나비를 추억하게 하자. (가방끈/19쪽)

아기보자기에서 나와
책보자기 펼쳐 공부하고
떡보따리 풀어 함께 먹고
이야기보따리 끌러
웃음보따리 나누다가
짐보따리는 이고 지고 (꽃보자기/76쪽)


  요 몇 해 사이에 ‘사전’이란 이름을 붙인 책이 꽤 나옵니다. 아직 많지는 않으나 꾸준히 나와요. 잔잔하지만 ‘사전 바람’이 분다고 할 만합니다. 2000년대로 접어들고 나서 ‘글쓰기’를 다루는 책이 이럭저럭 나오다가 이제는 쏟아지다시피 나오는데, ‘글쓰기책 바람’은 얼핏 수그러들 듯하면서도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힘을 내어 나오는 듯합니다.

  사전 이름을 붙인 책이나 글쓰기책이 나오는 결을 살피면, 그만큼 한국 삶터가 억눌렸다가 한꺼번에 터져나오는구나 싶어요. 오랫동안 반민주하고 반평등으로 흐르던 나라에서 차츰 민주물결이 흐르면서 누구나 즐겁게 글을 쓰는 살림으로 거듭납니다. 예전에는 많이 배우거나 대학교 문예창작학과쯤 나와야 글을 쓴다고, 또는 기자나 학자가 아니고서는 글을 못 쓴다고 여겨 버릇했어요. 정치나 삶터 모두 크게 억눌렸기에 지난날에는 누구나 글을 쓰기 어려웠습니다.

  이러다가 즐겁게 글을 쓰는 이들이 늘어났고, 누리신문 시민기자가 생겼어요. 글을 쓰는 즐거움을 혼자만 누리고 싶지 않아서 자꾸 글쓰기책을 내고, 이곳저곳에서 새롭게 글꽃을 지피는 이들도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어 글쓰기책을 씁니다.

  사전 이름을 붙인 책은 한국말사전이 썩 알차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만합니다. 수천 쪽이 넘는 커다란 사전이 여러모로 엉성하기는 하지만 한 사람 힘으로 수천 쪽에 이르는 새로운 사전을 쓰기는 어렵기에, 작게 갈래를 나누어 갖가지 재미난 사전을 엮는다고 할 수 있어요. 《동심언어사전》(이정록, 문학동네, 2018)은 시집입니다. 시집인데 ‘사전’이란 이름을 붙입니다.


빗줄기 종아리 좀 봐.
소나기 종아리는
웅덩이에서 찰방거리며 놀 때 예쁘지. (날궂이/97쪽)

말은 가슴에서 울려퍼지지.
징이 되어 둥둥 퍼져나가지.
장구와 꽹과리와 추임새가 흥을 돋우지. 
말이란 붉은 심장을 꺼내어 건네는 일.
마른 손으로는 받을 수 없지. (넋두리/98쪽)


  《동심언어사전》 벼리를 살핍니다. ‘가갸날’로 첫발을 떼고는 ‘힘줄’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글쓴이 이정록 님은 낱말하고 낱말이 만나는 즐거움을 더 깊이 나누거나 누리고 싶은 뜻으로 316 낱말을 뽑아서 이야기를 붙여 시로 엮어 보았다고 밝힙니다.

  이 시집에 실은 낱말을 얼추 살펴보겠습니다.

  가난살이, 가로쓰기, 가방끈, 가새주리, 가시손, 가을귀, 개똥장마, 개미허리, 거지발싸개, 걱정꾸러기, 구름다리, 글쟁이, 김칫국, 까치발, 꽃손, 꾀주머니, 나무거울, 나이떡, 나이배기, 넋두리, 노루잠, 눈물샘, 눈웃음, 단비, 달꽃, 닭살, 독서왕, 돋을볕, 돌잡이, 뒷북, 등긁이, 땅끝마을, 먹장가슴, 먼발치, 메밀꽃 …… 오색딱따구리, 육쪽마늘, 입김, 잎몸, 주근깨, 쥐뿔, 책거리, 칠성무당벌레, 코딱지, 콩털, 키쩍다리, 터무니, 혓바늘, 황소눈, 흙이불 같은 낱말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여러 낱말을 살피면 어린이도 알아볼 낱말이 있으나, 어린이는 어림하기 어려운 낱말이 있습니다. 때로는 어른한테까지 낯선 낱말이 있어요. 다만 오늘날 어른한테만 낯설 낱말입니다.


아침해가 솟을 때,
할머니는 그 돋을볕이 아까워
내 바지를 벗기고 오줌을 뉘였지.
오줌주머니에 돋을볕을 담아주셨지.
햇살거름이 최고라고 웃으셨지. (돋을볕/126쪽)

눈을 반짝이며
씨가 되는 말을 하자.
슬며시 웃음 봉오리를 꽃받침으로 가리고
볼우물에서 물을 길어주자 (말씨/151쪽)


  그렇다면, 이 시집은 왜 ‘동심언어 + 사전’일까요? 316꼭지에 이르는 시를 읽어 보면, 글쓴이는 이녁 어린 날을 떠올리면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글쓴이가 밝히는 ‘동심’이란 어른이 된 오늘 몸으로서 지난날 아이였을 적에 부대낀 삶하고 살림을 되새기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어른으로 살지만 오늘 어린이로 살아가는 새싹한테 글쓴이 나름대로 물려주고 싶은 ‘한국말꽃’을 316가지로 모았다고도 여길 만해요.

  이 시집에는 ‘추억’이 자주 나옵니다. 글쓴이가 겪은 옛일을 떠올리는 옛생각이지요. 그런데 ‘추억’은 어린이가 쓰는 말이 아니고, 어린이가 글쓰기로 삼는 글감도 아닙니다. 더구나 아이들은 ‘추억’을 헤아리지 않아요. 아이들은 아직 어려도 ‘어릴 적 일을 어느새 잊’습니다. 어른이 잊는 지난날하고 아이가 잊는 지난날은 사뭇 다른데요, 아이들은 앞날을 내다보고서 날마다 무럭무럭 크느라 ‘아이로서 더 어릴 적’을 잊습니다. 더 어릴 적을 잊어야 씩씩하게 크거든요.

  아이들로서는 아장걸음을 걷던 때를 머리에 담을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로서는 수저질이 어설프던 때를 머리에 새길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로서는 자꾸 넘어지거나 글씨를 틀리게 적거나 말소리를 어긋나게 내던 일도 구태여 머리에 아로새겨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새꿈’을 먹고 삽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
한 방울 한 방울 성글게 떨어지는 걸
비꽃이라 부르지요.
구름꽃이 땅바닥에 그리는
물방울꽃이지요. (비꽃/212쪽)

― 어깨너머에는 별의별 것
다 가르쳐주는 학교가 있나 봐요?
……
― 배움이란, 어깨너머 학교에서
마음을 모셔오는 거란다. (어깨너머/279쪽)


  《동심언어사전》을 읽으면서 반가운 대목을 꼽자면, 316가지에 이르는 이야기를 글쓴이 나름대로 차곡차곡 갈무리해서 오늘 이웃님한테 들려주어요. 이 시집을 읽으며 아쉬운 대목을 꼽자면, 316가지에 이르는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어린이 마음하고 와닿을 만한, 그러니까 어른으로서 추억하며 새기는 옛이야기가 아닌, 어린이가 앞으로 새꿈을 키우며 나아갈 이야기는 좀 드물구나 싶어요.

  말은 늘 두 가지 결이 흘러요. 하나는 우리가 살아온 모든 자취가 말에 깃듭니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꿈을 말에 담지요. 오래도록 흘러온 말에는 오래도록 살아온 사람들 마음씨가 흐릅니다. 새로 지어서 쓰는 말에는 어제보다 새롭게 하루를 지으면서 씩씩하게 나아가려는 마음결이 감돌아요.

  시집을 더 헤아린다면, 어른은 ‘동심 + 언어’ 같은 말을 쓰더라도 아이들은 이런 말을 안 씁니다. 아이들은 ‘추억’ 같은 말도 안 쓰지만 아이 스스로 ‘동심’이라고 말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우리 마음”이라고만 말합니다. 이 시집이 어제하고 오늘을 이어 모레로 나아가는 새로운 ‘시집 + 사전’ 노릇을 하자면, 너무 어제(추억)에 머물기보다는 오늘(현실)을 살아가는 아이하고 어른이 조금 더 기운을 내어 즐겁게 모레(미래)를 노래할 수 있도록 북돋우는 ‘마음말(마음 + 말, 곧 동심 + 언어)’를 길어올리면 좋았지 싶습니다.


흙은 지렁이와 함께하는
간지럼 태우기 놀이를 좋아해.
비좁다고 식식거리는
감자 고구마 무의 밀치기 놀이를 좋아해. (흙장난/403쪽)


  봄에 봄바람이 붑니다. 아이들은 봄바람을 느끼며 옷차림을 가볍게 바꿉니다. 옷차림이 가벼우니 겨울보다 더 가볍게 달리기를 합니다. 겨울에는 묵직하고 두꺼운 옷을 겹겹이 입은 채 달렸다면 봄에는 홀가분한 차림새로 훨씬 가볍게, 마치 봄에 찾아오는 제비처럼 날갯짓하듯 달립니다.

  시원하게 달리고 시원하게 멱을 감으며 시원하게 쉽니다. 시원하게 노래하고 시원하게 놀다가 시원하게 배웁니다. 오늘 우리 삶을 새롭게 기쁨으로 밝힐 시집이며 사전이 자꾸자꾸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크고 묵직하지 않아도 좋으니, 작고 단출하면서 새로운 나날을 그리는 꿈을 이야기하는 시집이며 사전을 저마다 즐거이 쓸 수 있기를 바라요. 2018.4.19.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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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나라 2018-04-20 14:2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공부가 많이 되었어요.
골라잡아준 부분도 중쇄에서는 많이 바로잡았어요.
<동심언어사전>은, 겹낱말이 동심으로 묶인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지요.
중간에<언어의 마음>이란 제목으로 책을 쓰고 출판사에 넣었는데
<언어의 온도>란 책이 뜨면서,
혹시 오해를 살까봐 바꿨어요.
그러니까 이 사전은 ˝동심과 사전˝이라기 보다
˝말의 마음˝인 거지요.
정성을 다한 글, 잘 보았어요.

숲노래 2018-04-20 18:41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말에 흐르는 마음을
이 책을 읽을 이웃님이
즐겁고 새롭게 받아들이리라 생각해요.

말에 늘 마음이 흐르고
말에 곱게 마음이 깃들고
말에 새롭게 마음이 피어나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