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서 부르는 사랑노래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28
김해화 지음 / 실천문학사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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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6


《누워서 부르는 사랑노래》

 김해화

 실천문학사

 2000.8.1.



  처음 일할 적하고 다섯 해나 열 해째 일할 적에는 조금씩 다릅니다. 열다섯 해째 일하거나 스물다섯 해째 일할 적에도 다를 테고, 서른다섯 해를 넘고 마흔다섯 해에 이르면 또 다를 테지요. 철근 노동자라는 자리에서 일삯을 벌며 살림을 짓고, 이 살림을 고스란히 시로 옮기는 나날이라는 김해화 님은 《누워서 부르는 사랑노래》를 빚습니다. 고단한 나날을 고단하다고 여기기보다는 들꽃이 들판에서 자라듯 들바람을 담은 싯말을 길어올리려 합니다. 옴팡지게 쏟아지는 땀방울을 이슬꽃처럼 땀꽃으로 여기면서 글줄을 엮습니다. 사랑이란 어디에 있을까요? 사랑은 머나먼 곳에 있을까요? 우리 곁에 늘 있을까요, 가슴속에서 고요히 잠잘까요? 들풀은 밟히거나 뽑히거나 잘려서 죽더라도 다른 씨앗이 새롭게 깨어나서 들판을 푸르게 이룹니다. 죽은 풀포기는 새 풀포기가 자라는 거름이 되어요. 우리 노래는 무엇이 될까요? 우리 이야기를 담아서 훨훨 펼치는 노래는 서로서로 어떻게 스미거나 퍼지면서 다른 숨결로 거듭날까요? 열다섯 해 철근일에 산재로 힘들었다지만, 어느새 서른다섯 해 철근일을 지으며 땀꽃으로 물결치는 발자국을 돌아봅니다. ㅅㄴㄹ



씨 뿌리지 않았지만 지 맘대로 돋는 풀들 / 맘대로 우거지라고 놓아두고 / 푸른 깃발 같은 이름이나 불러주지 뭐 / 바랭이 쇠비름 명아주 강아지풀 (편지 2/61쪽)


철근쟁이 십오 년 / 나이 마흔 넘었습니다 / 발목 부서졌으니 다시 / 철근 멜 수 있겠습니까 / 참 뜨겁게 살았지만 / 무엇이 남았느냐고 묻습니다 (산업재해, 그 뒤/116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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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매일 문학과지성 시인선 351
진은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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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5


《우리는 매일매일》

 진은영

 문학과지성사

 2008.8.22.



  하루하루 살아온 날을 더듬으면, 말을 제대로 못하며 살았구나 싶습니다. 입에 맴도는 생각은 있으나 어떤 말로 터뜨릴 적에 누구보다 스스로 즐거울는지 모르는 채 말하며 살았지 싶어요. 껍데기로 말했다고 할까요. 그래서 말을 익히자고, 삶에서 우러나올 뿐 아니라 사랑으로 피어나는 말을 하자고 다짐하며 하루하루 살림을 짓습니다. 《우리는 매일매일》을 읽으며 노래님이 노래하고 싶은 말이란 사랑이란 꿈이란 무엇이려나 하고 어림해 봅니다. 다만 아무리 어림해도 읽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 마음을 조금이나마 짚기도 어렵습니다. 말하는 사람 마음은 바로 말하는 사람 혼자만 알 뿐입니다. 노래님이 “그런 남자랑 사귀고 싶다” 하고 노래하기에 이를 “그런 여자랑 사귀고 싶다”라든지 “그런 사람이랑 사귀고 싶다”로 바꾸어 보기도 하지만, 제 살갗으로 와닿지 않습니다. 저로서는 누구를 사귀며 살기보다는 스스로 사랑하며 하루를 새롭게 살아가는 길을 가고 싶거든요. 푸른 장미를 보지 않더라도 이 여름에 흐드러지는 달개비꽃을 줄기랑 잎을 톡톡 끊어 나물로 먹으며 하늘바라기를 합니다. 여름이란 더워서 참으로 좋은 철입니다.ㅅㄴㄹ



그런 남자랑 사귀고 싶다. / 아메리카 국경을 넘다 / 사막에 쓰러진 흰 셔츠 멕시코 청년 / 너와 / 결혼하고 싶다. / 바그다드로 가서 / 푸른 장미 /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가 / 폭탄처럼 크게 들리는 고요한 시간에 / 당신과 입맞춤하고 싶다. / 학살당한 손들이 치는 / 다정한 박수를 받으면서. (러브 어페어/91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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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성이 없고 창비시선 197
김명수 지음 / 창비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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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4


아기는 성이 없고

 김명수

 창작과비평사

 2000.6.10.



  다 읽고 나서 덮은 시집 《아기는 성이 없고》를 곁님이 문득 집어듭니다. “이 시집 무슨 이야기예요?” 하고 묻는다. 가만히 생각하다가 “응, 좀 재미없네.” 하고 대꾸합니다. 좀 얇다 싶은 시집에 흐르는 시를 읽는데 세 꼭지를 빼고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 세 꼭지에는 할아버지 나이로 다가서는 시인이 숱한 끈이랑 무게를 내려놓고 조용히 바라보는 숨결이 흐릅니다. 젊음이란 젊어서 아름답고, 늙음이란 늙어서 아름답겠지요. 그런데 젊음은 오직 젊음만 흐르지 않고 늙음도 함께 있다고 느껴요. 늙음도 그저 늙음만 가득하지 않고 젊음이 함께 도사린다고 느껴요. 시 한 줄이란, 모든 것에 깃든 두 갈래 숨결을 고스란히 밝혀서 사뿐히 얹는 깃털 같은 이야기이지 싶습니다.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손을 잡으면서 늙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저 동무로 여깁니다. 아이는 둘레 어른이 사이에 끼어들어 ‘어른한테 높임말을 해야지!’ 하고 끝없이 다그치지 않으면 할머니 할아버지하고뿐 아니라, 새랑 구름이랑 바람이랑 해랑 별이랑 꽃이랑 바다하고도 살갑게 동무로 지낼 줄 압니다. 이동안 할머니 할아버지도 아이처럼 맑은 눈이 되고요. ㅅㄴㄹ



새야, 아이와 놀아주렴 / 나무야, 아이를 안아주렴 / 바다야, 수평선아 / 아이와 놀아주렴 / 솔방울아, 물고기야, 물결나비들아 / 아이의 방에 쇠창살을 걷어주렴 / 쇠창살 속에 아이가 있단다 / 폭풍우 속에 아이가 있단다 (새야, 나무야/9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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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에 대해 생각할 때 문학의전당 시인선 46
강미정 지음 / 문학의전당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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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3


《그 사이에 대해 생각할 때》

 강미정

 문학의전당

 2008.3.31.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소리를 듣습니다. 소리에는 여러 길이 있어, 몸에 있는 귀로 소리를 듣고, 마음에 퍼지는 소리를 듣지요. 우리는 으레 귀로만 소리를 들으려 하는데, 귀를 가만히 닫고 마음을 열면 마음속에서 깊이 울리는 소리를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전철길이나 기찻길 곁에서 산다면 전철이나 기차가 달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꽃밭이나 풀밭을 곁에 두고 산다면 꽃이나 풀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습니다. 구름을 올려다보면 구름이 하늘을 나는 소리를 듣고, 처마 밑에 제비집이 있으면 제비가 노래하는 소리를 들어요. 《그 사이에 대해 생각할 때》는 너랑 나 사이에 흐르는 길을 가만히 헤아리려고 하는 노래입니다. 사이는 넓을 수 있고 좁을 수 있습니다. 사이는 있을 수 있고 없을 수 있어요. 사이가 있기에 너랑 나 사이는 멀 수 있지만 가까울 수 있는데, 아무것도 아니거나 모든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천만 송이쯤 잔치를 벌이는 곳에 가야 꽃내음이 짙지 않습니다. 마음을 기울여 바라보고 쓰다듬고 어루만질 만한 자리에 있다면 한 송이 꽃을 아이하고 나란히 앉아서 지켜보면서도 온몸에 꽃내음이 물씬 배기 마련입니다. ㅅㄴㄹ



햇살 눈부신 돌계단 사이 제비꽃이 지는 걸 / 딸과 함께 쪼그리고 앉아 보았습니다 / 꽃이 지는 일은 꽃이 다른 몸이 되는 일 같았습니다 (꽃이 지는 일/26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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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시
권정생 지음 / 지식산업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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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2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권정생

 지식산업사

 1996.1.25.



  노래할 수 있기에 하루를 열고, 노래할 수 있어서 하루를 마무릅니다. 노래할 수 없기에 하루를 열기 벅차고, 노래할 수 없으니 하루를 마무르지 못합니다. 즐거이 맞이하면서 웃음노래를 부르고, 슬프게 맞이하면서 눈물노래를 부릅니다. 웃음하고 눈물은 모두 노래입니다.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는 삶을 이루는 노래 가운데 눈물노래가 가득합니다. 눈물로 어룽지고, 한숨으로 아룽집니다. 그런데 이 눈물하고 한숨은 어느새 웃음하고 이야기로 거듭나요. 눈물이 그저 눈물에 갇히지 않고, 한숨이 끝까지 한숨으로만 남지 않습니다. 눈물을 잔뜩 쏟고 나니 마음에 깃든 앙금이 어느새 씻겨요. 한숨을 푹푹 내쉬고 나니 마음에 서린 응어리가 어느새 털려요. 노래란 참 대단하지요. 아파서 아프다 노래했더니 아픔이 차츰 스러져요. 슬프다 외롭다 벅차다 노랬더니 슬픔도 외로움도 벅참도 조용히 사그라듭니다. 소를 보면서, 쥐를 보면서, 토끼를 보면서, 아재를 보면서, 어머니를 보면서, 하늘을 보면서, 땅을 보면서, 길을 보면서, 이러다가 내(권정생) 몸을 다시 돌아보면서, 스스로 살아가는 길을 두 눈으로 똑똑히 바라보니 새로 기운이 돋습니다. ㅅㄴㄹ



새앙쥐야 / 새앙쥐야 / 쬐금만 먹고 / 쬐금만 먹고 / 들어가 자거라 // 새앙쥐는 / 살핏살핏 보다가 / 정말 쬐금만 먹고 / 쬐금만 더 먹고 / 마루 밑으로 들어갔어요. // 아픈 엄마개가 / 먹다 남긴 밥그릇을 / 달님이 지켜주고 있지요. (달님/137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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