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울던 마을 창비아동문고 64
이오덕 지음, 정승각 그림 / 창비 / 198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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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1


《개구리 울던 마을》

 이오덕

 창작과비평사

 1981.6.15.



  밤에 개구리가 베푸는 노래를 들으면 잠이 잘 옵니다. 아무리 크게 노래하더라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니, 개구리노래는 크면 클수록 잠을 더 깊이 누릴 수 있어요. 이와 달리 텔레비전이나 자동차나 냉장고나 기계에서 나는 소리는 아무리 작게 나더라도 잠이 들기 어렵습니다. 참으로 재미나지요. 개구리나 풀벌레가 베푸는 소리는 노래이지만, 갖가지 기계가 내는 소리는 시끄럽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아주 많이 몰려서 사는 도시는 어떤 곳일까요? 서울이나 부산에서 개구리 노래를 들으며 잠을 이루나요? 시골은 어떨까요? 농약바람이 부는 시골은 어떤 노래로 밤을 깊고 고요하게 누리는 터전일까요? 1981년에 나온 《개구리 울던 마을》은 “도시여, 안녕!”으로 끝을 밝힙니다. 2021년도 2011년도 아닌 1981년에 이런 노래로 마지막을 빛내지요. 한창 시골을 떠나고 숲을 짓밟으면서도 이런 모습을 개발로 삼던 그즈음, 이오덕 님은 도시를 등지고 시골살이를 하는 기쁨이 얼마나 크냐고 외칩니다. 더욱이 이런 외침을 아이들 눈높이로 들려줍니다. “개구리 울던 마을”을, 또 풀벌레하고 새가 노래하는 숲을, 우리 모두 꿈을 노래하는 길을 그립니다. ㅅㄴㄹ



이 많은 집들 속에 조그만 우리 집 한 채, / 우리 방 한 칸 없음을 슬퍼했지. / 얼마나 한심하고 부끄러운 일이었던가! / 이제 그 모든 허깨비들 다 물리치고 / 껍데기들 시원스리 훌훌 벗어 던지고 / 나는 떠난다, 가벼운 구름 되어. / 도시여, 안녕! (도시여, 안녕!/283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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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금산 문학과지성 시인선 52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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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0


《남해 금산》

 이성복

 문학과지성사

 1986.7.5.



  참으로 많은 분이 낯익은 이름에 끌립니다. 낯익지 않은 이름이라면 선뜻 다가서지 못합니다. 신문이나 방송 같은 곳에 으레 나와야 낯익은 이름으로 여기기도 해요. 또는 대학 교수 같은 이름쯤 걸쳐야 낯익다고 여기지요. 그렇다면 이름이란 무엇일까요? 젊은 이름이나 새로운 이름이란 무엇인가요? 삶을 밝히는 이름이나 사랑을 깨우는 이름이란 어디에 있을까요? 시인이라는 이름에 앞서 삶지기나 살림꾼이라는 이름이 있는지도 헤아릴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누구 시’라서 읽기보다는 ‘삶이 흐르는 시’하고 ‘사랑이 참다이 노래가 되는 시’를 마음으로 헤아려야지 싶습니다. 《남해 금산》을 읽다가 읽다가 한 줄도 밑줄을 긋지 못하며 책을 덮었습니다. 한참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성복이란 이름이 시인으로 제법 알려진 터라 이 시집을 골랐습니다. 첫줄부터 끝줄까지 읽는 내내 알맹이 있는 이야기를 느끼거나 찾지 못했습니다. 1980년대에는 이렇게들 써야 시가 된다고 여겼나 싶기도 한데, 1980년대가 아닌 2010년대에, 앞으로 맞이할 2030년대나 2050년대에, 우리는 어떤 눈으로 삶을 바라보면서 어떤 사랑을 어떤 사람으로서 시를 쓸 만할는지요. ㅅㄴㄹ



이곳에 와서 많이 즐거웠습니다. 갖은 즐거움 다 겪었습니다 민짜의 술집 여자들의 퉁퉁 부은 몸은 너무 즐거워 오래 보기 괴로웠습니다 하얗게 면도한 돼지가 하늘을 향해 흥흥, 냄새 맡는 것도 보았습니다 얕은 냇물이나 냇물가 조약돌보다 고운 아이들의 웃음도 보았습니다 그 웃음 속에 꼬물거리는 구더기도 보았습니다 (이젠 내보내주세요)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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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루사탕 사색의정원 시인선 2
이종호 지음 / 사색의정원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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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9


《여루사탕》

 이종호

 사색의정원

 2014.10.2.



  밤에도 불을 환히 켜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불빛을 낮추어 책을 펴자면 꼭 불빛을 밝혀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두운 데에서 글을 읽으면 눈이 나빠진다고들 말하는데 그리 미덥지 않습니다. 외려 환하게 해 놓은 교실에 하루 내내 있는 아이가 늘면 늘수록 안경을 훨씬 많이 쓰더군요. 형광등을 밝히기에 눈이 나빠지지 싶어요. 햇빛을 못 보기에, 밤에 제대로 어두움을 못 누리기에, 우리는 우리 눈을 차츰 잃거나 잊지 싶습니다. 《여루사탕》은 ‘앞말잇기’라는 말놀이를 지으면서 이야기를 엮습니다. 이를테면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으면 이 말마디를 앞자락에 한 마디씩 넣어서 새롭게 이야기를 풀어내지요. 앞말잇기 시쓰기가 될 만할까 갸우뚱해 볼 수 있지만, 아이들은 곧잘 이런 말놀이를 누렸습니다. 으레 한문으로만 ‘글맞추기(운율)’를 한다고 여기지만, 한글로도 얼마든지 ‘글결’을 살려 노래할 수 있습니다. 진도에서 나고 자라며 공무원으로 일하는 이종호 님은 진도살림을 구성진 말씨로 담아내려 합니다. 진도말이 살풋살풋 흐르는 투박한 말놀이는 말잔치가 말빛이 말사랑이 됩니다. 형광등빛 아닌 햇빛이 흐릅니다. ㅅㄴㄹ



썩어가는 두엄소리 써억 써억

어머니는 채소밭

도랑치고 한줌 한줌

준대로 거두는 게 우리네 인생사

치마에 묻은 두엄 엄매 냄새 (두엄/39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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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책 민음의 시 96
정끝별 지음 / 민음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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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8


《흰 책》

 정끝별

 민음사

 2000.5.25.



  밤하늘을 채운 별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별이라는 말을 혀에 얹으면서도 정작 별이 무엇인지는 모르기 마련입니다. 날마다 밥을 먹지만 손수 밥을 지어 보지 않았다거나, 밥이 되는 뭇숨결을 손수 갈무리해 보지 않았다면, 밥이라는 말을 글로 옮기면서도 막상 밥이 무엇인지는 또렷이 못 밝히기 마련입니다. 《흰 책》은 흰 책을 이야기합니다. 흰 책은 책이 흰 빛깔이라는 뜻일 수 있고, 아직 아무것도 안 썼다는 뜻일 수 있고, 책을 보는 눈길이 허옇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눈처럼 하얀 숨결을 말할 수 있고, 하얗게 아로새긴 발자국을 노래할 수 있어요. 모든 글은 쓰는 사람 마음으로 흐르면서, 읽는 사람 마음으로 헤아립니다. 그런데 저는 《흰 책》을 읽으면서 글쓴이가 무엇을 밝히거나 노래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톡톡 튀고 싶은 마음, 틱틱거리고 싶은 마음, 텍 하고 돌아서고 싶은 마음을 느끼면서도, 이 시집하고 하나되기는 참 어렵네 싶습니다. 어쩌면 글쓴이하고 읽는이는 하나될 수 없이 나란한 자리일는지 모릅니다. 글쓴이는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되고, 읽고 싶은 이는 읽고 싶은 대로 읽으면 될 테지요. 책을 덮고 빨래를 합니다. ㅅㄴㄹ



미끌하며 내 다섯 살 키를 삼켰던 빨래 둠벙의 틱, 톡, 텍, 톡, 방망이 소리가 오늘 아침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와 수챗구멍으로 지나간다 그 소리에 세수를 하고 쌀을 씻고 국을 끓여 먹은 후 틱, 톡, 텍, 톡, 쌀집과 보신원과 여관과 산부인과를 지나 르망과 아반테와 앰뷸런스와 견인차를 지나 화장터 길과 무악재와 서대문 로터리를 지나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을 지나간다 (지나가고 지나가는 2/38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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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아프리카 창비시선 321
이제니 지음 / 창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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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7


《아마도 아프리카》

 이제니

 창비

 2001.10.15.



  아이들하고 한국 어딘가를 걸을 적에 아이들은 한국말 아닌 바깥말에 귀가 쫑긋합니다. 저 말은 어느 나라 말이냐고 묻습니다. 아이들하고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 어딘가를 걷다가 한국말로 얘기하는 소리가 들리면 고개를 돌려 어디에서 한국말 쓰는 사람이 있는지 찾으려 합니다.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 말이 잘 들리고, 다른 나라에서는 한국말이 잘 들릴까요? 익숙한 말이란 익숙한 삶이요, 안 익숙한 말이란 안 익숙한 삶일 수 있습니다. 말놀이를 한다면, 사람들이 익숙하게 쓰는 말을 살짝 꼬아서 덜 익숙하도록 하는 셈일는지 모릅니다. 거꾸로 안 익숙한 말을 마치 익숙한 말이라도 되는 듯 꾸미는 셈일는지 모르고요. 《아마도 아프리카》는 처음부터 끝까지 말놀이를 폅니다. 말놀이로도 시집 한 권이 되는구나 싶지만, 이 시집에 흐르는 말놀이는 저한테는 살짝 따분합니다. 제 삶으로 스미는 말을 느끼기는 어렵군요. 거꾸로 제가 시골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사전을 새로 쓰는 말놀이를 살짝 따분히 여길 분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삶에 따라 다르게 읽을밖에 없으니까요. 서울냄새로 자욱한 시집에서 풀냄새를 찾으려 한 사람이 잘못입니다. ㅅㄴㄹ



분홍 설탕 코끼리는 발에 꼭 끼는 장화 때문에 늘 울고 다녔다. 발에 맞는 장화를 신었다 해도 울고 다녔을 테지. (분홍 설탕 코끼리/10쪽)


요롱이는 말한다. 나는 정말 요롱이가 되고 싶어요. 요롱요롱한 어투로 요롱요롱하게 단 한번도 내리지 않은 비처럼 비가 내린다. (요롱이는 말한다/20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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