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보푸라기 한겨레 동시나무 3
김금래 지음, 김효은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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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41


《꽃피는 보푸라기》

 김금래

 한겨레아이들

 2016.10.20.



  동시를 쓰는 어른이 억지스레 아이 눈높이나 말씨를 쓰는 일은 영 안 어울리지 싶습니다. 어른은 그저 어른으로서 어른답게 동시를 쓸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는 언제나 아이로서 제 이야기를 글로 담도록 이끌면 되고요. 아이가 어른 말씨를 흉내낼 적에 듣기 좋은가요? 참 어설프며 소름돋겠지요. 어른이 아이 말씨를 흉내낼 적에도 똑같습니다. 참 엉성하며 소름돋습니다. 《꽃피는 보푸라기》를 읽으며 ‘말씨란 마음씨’라는 대목을 새삼스레 떠올립니다. 어떤 말씨를 쓰느냐는 어떤 마음씨로 살고 싶은가를 드러내지 싶습니다. 스스로 제 말씨를 찾거나 살피거나 살리거나 키우지 않을 적에는 자꾸 다른 말씨를 흉내내거나 따르려 하기 마련입니다. 어른이 아이 말씨를 흉내내는 동시쓰기도 제 말씨가 없는 동시가 되고, 제 말씨가 없는 동시란, 아이하고 나눌 이야기가 없는 동시가 되는구나 싶습니다. 모든 어른도 아기로 태어나 아이로 살았다는 대목을 떠올려야 합니다. 요즈음 아이 말씨 흉내를 하는 동시가 아닌, 아이로 뛰놀며 자라던 글쓴이 넋을 되새겨서 오늘 새롭게 바라보고 배우면서 자랄 즐거운 꿈길이 무엇인가를 그리도록 마음을 기울여야지 싶습니다. 동시도 어른시도 겉멋쓰기로 그칠 수 없습니다. ㅅㄴㄹ



돌멩이에 / 맞은 연못 // 풍덩! / 아프다고 소리쳐요 // 돌멩이는 / 더 큰 소리 // 야! 비켜! 인마! // 너 때문에 / 빠지잖아! (너 때문에/14쪽)


길거리 양말에선 / 보푸라기가 피지 // 친구 보기 창피하다 했더니 / 할머니는 보푸라기를 꽃이라 생각하래 (꽃피는 보푸라기/32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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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경전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40
김수우 지음 / 실천문학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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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43


《몰락경전》

 김수우

 실천문학사

 2016.2.5.



  뭔가 잘못했기에 아플 수 있습니다만, 아플 적에 왜 아픈가를 가만히 지켜보노라면, 몸이 새로워져야 하기에 아프구나 싶습니다. 아플 적에는 아픔을 고이 바라보면서 받아들이고, 앞으로 새로 깨어날 모습을 그려야지 싶습니다. 튼튼할 적에도 이와 같다고 느껴요. 튼튼할 적에는 이 튼튼한 몸이 얼마나 눈부신가를 헤아리면서 앞으로 날아오를 길을 그려야지 싶어요. 아플 적이든 튼튼할 적이든 앞길을 스스로 그리지 않는다면 뒷걸음이 될 테고, 때로는 샛길로 자꾸 새지 싶습니다. 《몰락경전》을 읽습니다. ‘몰락’은 스러지는 몸짓을, ‘경전’은 종교 가르침을 적은 책을 뜻합니다. 이제 종교 같은 가르침은 스러져 버린다는 뜻쯤 될까요? 낡은 틀이란 무너지기 마련이요, 해묵은 길이란 그저 해묵을 뿐이라 새로운 빛이 하나도 없다는 뜻쯤 되려나요. 우리가 시를 쓴다면 모든 낡은 틀을 벗어던질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옛이야기를 담아도 재미있고, 옛일을 떠올려도 즐거울 텐데, 옛이야기하고 옛일에만 얽매이는 글쓰기가 아니라, 어제를 바탕으로 오늘을 새로 지어 먼먼 앞날로 날아오르도록 북돋우는 글쓰기가 되어야지 싶어요. 앞이야기를, 앞일을, 눈앞에서 보듯 그려낼 적에 비로소 시 한 줄이라고 여깁니다. ㅅㄴㄹ

  


나물다발 속 / 돈나물꽃 한 줄 묻어왔다 // 노란 꽃부리 기특해 / 유리잔에 담았더니 이튿날부터 먼 안부인 듯 내리는 실뿌리 (물속 사원/43쪽)


어머니는 운동화 필통 주름치마를 외상으로 사주었다 늘 그랬다 아직도 꿈속에서 외상값을 갚는 어머니, 초등학교 입학식 히말라야시다 옆에서 호랑무늬를 달고 있다 꿈 속 운동화가 아직 새 것이듯 엄마 날개는 아직 젊디젊다 (아직/75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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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츠아이 시작시인선 52
노혜경 지음 / 천년의시작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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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36

 

《캣츠아이》
 노혜경
 천년의시작
 2005.8.15.


  새끼 들고양이가 제 곁에서, 곁님 품에서, 아이들 사이에서 새근새근 잠이 듭니다. 우리가 사는 시골집에서는 새끼 들고양이를 마당에 내놓고서 별바라기를 하며 홀로 씩씩하게 잠들도록 하는데, 우리가 바깥마실을 해야 하는 때에는 이 들고양이가 아직 너무 어린 새끼라서 들짐에 두어 길을 나섰어요. 아홉 시간 가까이 온갖 버스에 기차에 전철에 시달린 새끼 들고양이라 어쩔 수 없이 등을 긁어 주고 품에 안아 주면서 달래었습니다. 어미 잃고 버려진 들고양이를 살리려고 하다 보니 사람 손길을 타도록 하고 마는데, 뜻밖에도 이 새끼 고양이가 똑똑하면서 야무지게 자랍니다. 《챗츠아이》란 시집을 읽고 나서 ‘캣츠아이’가 어느 보석을 가리키는 이름인 줄 처음으로 깨닫습니다. 갓 시집을 펼 적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시집을 덮고서는 좀 갸우뚱합니다. 양어 쓰는 나라에서야 ‘캣츠아이’라 할 테지만, 한국사람이라면 ‘고양이눈’이란 말로 보석 이름을 써도 될 텐데요? 우리 스스로 어떤 이름을 쓰느냐에 따라 눈길뿐 아니라 삶길이 다릅니다. 남이 붙여 놓은 이름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새길을 생각하거나 지어서 걸어가기는 만만하지 않을 뿐 아니라 꿈조차 못 꿀 일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시인이라면?

나는 더 오래 당신을 쓰다듬었네 / 손발이 다시 움츠러들고 / 씨방 속으로 숨결이 말리고 / 그 어떤 망치도, 끌도 / 당신을 이 돌덩이로부터 끄집어낼 수 없도록 (돌멩이떡/21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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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의 모자 산지니시인선 12
신정민 지음 / 산지니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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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31

《나이지리아의 모자》
 신정민
 산지니
 2015.12.31.​


  모르는 사람한테는 왜 모르느냐고 지기가 참말로 어렵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온통 모르는 데 어디부터 실마리를 풀어서 알려주어야 할는지 까마득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아는 사람한테도 왜 모르느냐고 캐묻기가 참으로 힘듭니다. 아는 사람이란, 스스로 아는 만큼만 알기 일쑤인데다가, 스스로 안다는 생각에 그 앎이 뒤틀렸다든지 외곬이라고 하는 대목을 알려주기가 더할 나위 없이 괴롭지요. 낱낱이 헤아려 보면, 모르는 사람한테도 아는 사람한테도 뭔가 이야기를 들려주기 어렵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그러면 누구하고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알지도 모르지도 않는 사람, 곧 마음을 트거나 연 사람하고만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나이지리아의 모자》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저는 시를 참 모르겠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여러 이웃님이 쓰는 시를 그야말로 모르겠습니다. 시인인 이웃님은 누가 읽으라고 시를 쓸까요? 어떤 사람이 읽으라는 시를 쓸까요? 대학교 문창과를 나온 사람이 읽기 바라는 시인가요? 인문책 천 권이나 만 권쯤 읽은 사람이 알아들을 만한 시인가요? 진보신문 한 가지쯤 받아읽는 사람이 사서 읽을 시인가요? 열 살 어린이나 여덟 살 아이가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놀듯이 누릴 만한 시인가요? 좀 내려와 주셔요.

어머니가 되기 좋은 나라에서 온 편지 / 답장 대신 모자를 뜬다 / 시는 사랑이 쓰는 거라서 / 그리움만이 단어를 찾아 떠나고 (나이지리아의 모자/22쪽)


시간을 빌려주겠다고 문자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 월요일을 보장해주겠다고 메일이 왔다 누군지 물어볼 겨를이 없었다 (가나안 슈퍼의 깡통들/98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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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희디흰 눈속 같은 세상 - 성원근 유고시집 창비시선 146
성원근 지음 / 창비 / 199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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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노래책시렁 30


《오, 희디흰 눈속 같은 세상》

 성원근

 창작과비평사

 1996.2.28.



  아침에 뒤꼍으로 가는데 들고양이 한 마리가 돌담에 앉아서 저를 빤히 바라봅니다. 이 들고양이는 우리 집에서 태어났고, 우리 집에서 곧잘 먹이를 얻습니다. 태어나서 얼마 안 될 즈음 큰고양이한테 물리고 뜯겨 무척 앓았고, 한동안 이 아이를 어루만지며 보살펴 주었는데, 사람손을 탔어도 들고양이로 살고, 들고양이로 살면서도 우리 곁에서 알맞게 떨어져 지냅니다. 어제는 이 아이하고 10센티미터쯤 떨어진 데에 밥그릇을 놓고 밥먹는 모습을 바라봤어요. 그래서 오늘은 이 아이가 저를 빤히 바라볼는지 모르지요. 《오, 희디흰 눈속 같은 세상》을 읽으며 눈속 같은 누리를 바라보는 눈빛은 어떠할까 하고 헤아립니다. 하늘이 맑을 적에 노래가 생겼듯이, 마음이 맑을 적에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봉우리에 올라 하늘을 본다면 맑은 바람을 마실 수 있듯이, 손수 짓는 사랑으로 살림을 돌볼 적에 우리 보금자리에 맑은 바람이 노상 싱싱하게 흘러요. 누구나 맑은 마음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를 부르는 손길로 글줄을 여밉니다. 노래를 부르듯 살림을 짓고, 살림을 짓는 손으로 글발을 엮습니다. 시를 쓰지 말고 살림을 쓰면 됩니다. 시를 지으려 하지 말고 사랑을 지으면 됩니다. 우리 삶자리에서 태어나는 시 한 줄입니다. ㅅㄴㄹ



그날, / 하늘이 맑을 때, / 노래가 생겼다. / 그날 감람산에 오르면 / 하늘을 볼 것이다. (하늘/6쪽)


내가 가진 모든 것과 / 네가 가진 모든 것으로써 / 우리 만나지 못한다면 / 우리가 못 가진 그것으로 만나기로 할까. (여백/77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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