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동시문학
오순택 지음 / 아침마중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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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34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오순택

 아침마중

 2013.9.27.



  우리는 다 다르게 태어나서 다 다르게 자랐어요. 어릴 적에 겪은 하루가 다르고, 저마다 누린 놀이가 다릅니다. 가장 좋아하는 놀이가 다르기 마련이고, 무엇이든 다들 신나게 맞아들여서 기쁘게 하루를 짓기 마련압니다.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를 쓴 분은 책이름에 붙인 말처럼 바퀴를 굴리며 놀던 어린 나날이 더없이 기쁘고 신났기에,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어느새 할아버지 나이가 된 자리에 서서 아이들하고 나눌 이야기를, 또는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싶은 할아버지 옛놀이 이야기를 동시로 갈무리합니다. 아이 눈길이 아닌 할아버지 눈길입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동시는 어른이 아이가 되어 쓰는 글이라기보다는, 어른이 아이하고 함께 놀고픈 마음으로 쓰는 글이지 싶습니다. 아이 눈높이에 맞추어서 쓸 동시이기보다는, 어른이 아이하고 생각을 살찌우거나 북돋우면서 서로 기쁘게 어우러져 놀고픈 뜻으로 쓰는 글이지 싶습니다. 이리하여 할아버지 동시를 읽을 아이들은 ‘나는 이렇게 보고 생각했는데, 할아버지는 저렇게 보고 생각하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배웁니다. 할아버지는 아이를 보면서 배운 이야기를 새롭게 쓰고, 아이들은 이런 할아버지 곁에서 새삼스레 배우며 뛰놉니다. ㅅㄴㄹ



봄은 / 세 살배기 아기다. // 이제 막 말을 하려고 / 입을 여는 / 아기다. // 봄은 (봄은/80쪽)


손녀는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자고 하고 / 손자는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야 한다며 / 나의 손을 잡아끌었지요. (쉬/104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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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시인 문학동네 시인선 74
함명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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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44


《무명시인》

 함명춘

 문학동네

 2015.11.15.



  우리는 누구나 시를 쓸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인이 되도록 시를 쓸 노릇이 아닌, 여느 자리에서 흔히 쓰는 모든 말이 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처럼 꾸며서 말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수수한 이야기 한 토막도 시처럼 사랑스럽고 아름다울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른 사이에서도, 어른하고 아이 사이에서도 모든 말은 오롯이 시로 흘러야지 싶습니다. 《무명시인》을 읽으면서 오늘날 젊은 분들이 쓰는 시는 시라는 옷은 입되, 아직 시라는 이름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껍데기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그렇다고 젊은 시인을 탓할 수 없어요. 젊은 시인은 늙은 어른이 닦아 놓은 사회라는 틀에 맞추어 살면서 이런 시를 썼을 뿐입니다. 다만 젊은 시인도 젊은 시인 나름대로 스스로 이 낡은 틀을 벗어던지거나 깨부수려는 몸짓이 적었지요. 말재주를 부린대서 낡은 틀을 벗거나 깨지 못합니다. 오직 삶으로 스스로 즐겁게 언제나 아름말과 사랑말을 해야 비로소 낡은 틀이 녹아서 사라집니다. 네, “문학적 표현”이나 “시적 수사”가 아니라 ‘아름말’하고 ‘사랑말’로 생각을 짓고, 삶을 지으며, 꿈을 짓는 길에서 모든 말이 더없이 기쁘게 춤추는 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아직도 내 기억을 눌러쓰고 있는 빨간 모자 군용 트럭으로 끌려간 형의 머리카락을 싹둑싹둑 잘라내던 빨간 모자 농성중인 여공들에게 쇠파이프를 휘둘러대던 빨간 모자 무허가판잣집들을 무허가 해머로 마구 때려 부수던 빨간 모자 그것도 백주대로에서 부녀자를 봉고차에 강제로 실어가던 빨간 모자 법도 윤리도 없는 빨간 모자 (빨간 모자/31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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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도그 팔아요 문학동네 동시집 56
장세정 지음, 모예진 그림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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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47


《핫―도그 팔아요》

 장세정

 문학동네

 2017.9.11.



  어린이는 시를 씁니다. 어린이는 그냥 글을 쓸 뿐이지만, 어린이가 쓰는 글은 모두 시가 됩니다. 시라는 낱말을 모르고, 시를 배운 적이 없지만, 어린이는 마음에 흐르는 말을 잡아채어 연필로 그려 놓으면서 시를 짓는 놀이를 해요. 연필을 쥐지 않더라도 입을 벌려 소리를 내놓으면서 노래를 짓는 놀이를 하지요. 《핫―도그 팔아요》는 어떤 동시집일까요? 어린이가 어린이다운 숨결로 시를 짓고 노래를 짓는 놀이를 하듯, 가볍거나 상큼하게 펴는 동시일까요? 아니면 어린이 마음을 아는 척하면서 슬그머니 말재주를 피우는 동시일까요? 오늘날 어린이가 살아가는 터전은 어른이 이미 만든 자리입니다. 어른이 ‘지은’ 자리도 ‘가꾼’ 자리도 아닌 ‘만든’ 자리에서 길든 채 살아가요. 이런 ‘만들어진’ 터전에서 그냥 그대로 이 모습을 지켜보며 시를 쓴다면, 아무래도 이야기보다는 겉멋에 치우는 말재주로 기울기 쉽습니다. 어린이는 무엇을 보면서 어떤 꿈을 키울 적에 즐거울까요? 어린이는 어른들이 만든 틀에 쳇바퀴처럼 갇혀서 생각도 꿈도 키우지 못하는 채 교과서 진도와 대학바라기로 흐르다가 회사원이 되고 아파트에 살아야 할까요? 동시를 쓰는 어른들은 부디 어린이 어제와 오늘과 모레를 잇는 길을 글로 여미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슈퍼 앞에 ‘폭탄세일’이라고 적혀 있다 // 사람들이 두 손 가득, 자동차 뒷자리 가득 폭탄을 사 간다 // 트림폭탄 방귀폭탄 똥폭탄 될 분들 모시고 간다 (폭탄세일/87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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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어린 짐승들을 기른다 창비시선 129
이영진 지음 / 창비 / 199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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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33


《숲은 어린 짐승들을 기른다》

 이영진

 창작과비평사

 1995.1.25.



  이야기가 남습니다. 문득 스친 하루를 글로 적어 놓았더니 아주 조그마한 조각인데, 이 조그마한 조각으로도 애틋하거나 따스하게 돌아볼 이야기가 남습니다. 두고두고 지낸 살림이지만 글로 여미지 않으면서 어느새 잊기도 합니다. 꼭 글로 여미어야 안 잊지는 않아요. 글로 안 여미었어도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를 물려주었다면 우리는 오래오래 건사하면서 사랑할 이야기를 가슴에 품습니다. 《숲은 어린 짐승들을 기른다》라는 시집을 읽으며 밑줄을 그을 만한 대목을 좀처럼 못 찾는데, 김남주라는 시인하고 어느 날 스친 하루를 적은 시에서 눈이 멎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적은 시인이 자잘한 글치레를 부리기보다는 이렇게 수수한 하루를 그저 수수하게 적어 놓았으면 참 새로웠을 텐데 싶습니다. 뭔가 대단하다 싶도록 글을 꾸며야 하지 않아요. 부디 이를 잘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이래저래 꾸미기보다는 이 이야기 저 이야기 그대로 결을 살릴 수 있으면 돼요. “어제도 보았고 오늘도 본다”고 하는 옛 시인 김남주 님 낡은 가방을 놓고서, 으레 보고 또 본 그 낡은 가방 이야기를 더 풀어낼 수 있다면, 또는 시인이 손에 쥔 가방이 어떠한가를 더 적을 수 있다면, 신 한 켤레를, 밥그릇을, 설거지 수세미를 시로 쓸 수 있다면. ㅅㄴㄹ



지나갔다. 돌이킬 수 없이 / 창작과비평사 문을 나와 / 합정동 버스정류장 쪽을 향해 / 걷는 김남주의 뒷모습. 싸구려 파카와 어깨에 걸친 / 낡은 가방 하나를 / 나는 어제도 보았고 / 오늘도 본다. / “어이! 남주형 이따 점심시간에 만나.” / “뭐, 그냥 내장탕이나 한그릇 하자구.” (슬픔/46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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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척 - 개정판 시작시인선 82
길상호 지음 / 천년의시작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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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32


《모르는 척》

 길상호

 천년의시작

 2007.1.30.



  하루를 그릴 수 있는 마음이라면, 하루를 즐길 수 있는 몸짓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하루를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라면, 하루를 노래하는 걸음걸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시 한 줄은 어떻게 쓸 적에 즐거울까요? 글멋을 부리거나 글치레를 할 적에 즐거울까요? 오늘 하루를 새롭게 그리려는 마음으로 찬찬히 이야기를 써 내려갈 적에 즐거울까요? 《모르는 척》을 읽습니다. 시 한 줄이 그냥 태어나는 일이란 없고, 시 한 줄을 그냥 쓰지 않으리라 봅니다. 아무렇게나 흐르는 삶이란 없으며, 아무 뜻이 없는 살림이란 없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하루를 얼마나 새롭게 마주할까요? 스스로 새롭고자 하는 몸짓으로 살면서 글을 쓸까요? 다른 사람이 받아들여 줄 만큼 살피면서 몸을 꾸미고 옷을 입고 말씨를 가다듬으면서 글을 쓸까요? 새나 풀벌레는 사람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구름이나 바람은 사람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해나 별은 사람 눈치를 안 살핍니다. 아기는 어머니가 졸립다고 하더라도 제 배가 고프면 으앙 울면서 어머니를 부릅니다. 우리가 쓰거나 읽는 시는 얼마나 사랑스러울까요? 어쩌면 사랑스레 내딛을 걸음걸이는 모르는 척하면서 글멋을 키우기만 하는 시만 넘치지 않을까요? ㅅㄴㄹ



바람이 나를 노래하네 / 속을 다 비우고서도 / 땅에 발 대고 있던 날들 / 얻을 수 없던 / 그 소리, / 난간에 목을 매고서야 / 내 몸에서 울리네 (風磬소리/27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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