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추홀 연가 문학의전당 시인선 141
정경해 지음 / 문학의전당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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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65


《미추홀 연가》

 정경해

 문학의전당

 2012.11.28.



  우리가 나고 자란 곳이기에 더 잘 알지 않습니다. 우리가 처음 디딘 터이기에 더 모르지 않습니다. 나고 자란 곳이어도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면 못 보는 모습이 수두룩합니다. 처음 디딘 터여도 마음을 열고 바라보면 가없이 아름다운 빛조각이 끝없이 스며듭니다. 《미추홀 연가》를 읽습니다. ‘미추홀’은 인천 옛이름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쓴이는 인천이라는 고장에 살며시 깃들어 이 삶터를 바라보면서 노랫가락을 길어올리려고 합니다. 나고 자란 터는 아니지만, 오늘 살아가는 자리로 인천이라는 땅을 마주하려고 해요. 그런데 좀 섣부른 눈이 아닌가 싶습니다. 누구나 어느 고장이든 얼마든지 지켜보거나 바라보면서 노랫가락을 여밀 수 있는데, 그 마을을 몇 걸음쯤 디디고서 말을 엮으려 했는지 아리송합니다. 꼭 오래 디뎌야 하지 않고, 반드시 네 철을 두루 디뎌야 하지 않습니다. 모든 골목을 샅샅이 누벼야 하지도 않아요. 사랑노래를 부르려 한다면 첫눈에 반할 수 있고, 사랑노래를 부르다 보면 저절로 이야기가 피어날 수 있어요. 그래요, 사랑노래이지요. 사랑노래로 인천을 바라보려 한다면, 참말로 ‘사랑’하고 ‘노래’가 무엇인가부터 차분히 헤아리면서 마을을, 이웃을, 하늘을, 골목꽃을, 바람을, 숨소리를 들으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도예가를 만나러 만수동에 들어서니, 우뚝우뚝 선 향촌지구 재개발 아파트 군락이 길을 막는다. 까치발을 든 채 눈과 귀가 똑같은 에어컨 박스를 배에 달고 쌍둥이처럼 위풍당당 아래를 내려다본다. 허름한 옛 동네에나 어울릴 법한 도예가의 공방은 한쪽 구석에 모기만 한 명함을 내밀고 생각에 잠겨 있다. (인천 55―만수동 향촌지구/32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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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것들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솔시선(솔의 시인) 25
김종휘 지음 / 솔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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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48


《버려진 것들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김종휘

 솔

 2018.7.9.



  새벽이면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켭니다. 간밤에 자리에 누워서 잠들었을 뿐이지만, 오늘은 어제하고 사뭇 다릅니다. 몸에 새 기운이 돌고, 엊저녁까지 어지럽던 마음이 있었다면, 아침에는 꽤 차분합니다. 꿈꿀 수 있는 밤은 몸이나 마음에 깃든 찌꺼기를 가만히 녹이거나 살라 버릴까요. 꿈꾸고 일어난 아침은 이제 새롭게 하루를 지어 보라는 뜻으로 환하게 동이 틀까요. 《버려진 것들은 누군가를 기다리고》에 흐르는 노랫가락을 읊어 봅니다. 어제 늦도록 잠들지 않다가 곯아떨어진 아이들은 새 아침에 퍽 늦도록 안 일어납니다. 조용히 부엌을 갈무리하고, 알맞게 쌀을 씻어서 불립니다. 오늘 지어서 차릴 밥을 헤아리고, 이 겨울에는 언제쯤 빨래를 해서 마당에 널어야 잘 마르려나 하고 어림합니다. 동짓날을 앞두고 누울 만큼 누운 햇살은 머잖아 차츰 일어나며 새숨을 베풀겠지요. 아침이란 새빛이고 밤이란 새어둠일 수 있습니다. 새빛을 누리기에 새어둠으로 잠들어 앙금을 털고, 새어둠으로 잠들기에 다시 새빛을 지을 삶을 그릴는지 모릅니다. 오늘은 매생이를 어떻게 볶고 끓여서 맛나게 올리면 좋으려나 하고 생각합니다. 곁님하고 아이들이 콧노래를 부르면서 젓가락을 쥘 수 있기를 빕니다.



우리 집에 오시던 날 / 집 안팎을 둘러보시곤 혀를 끌끌 찬다 / 장독대와 베란다의 그릇들을 소꿉 장난하듯 예쁘게 정리해 놓고 / 새벽이면 콧노래를 부르며 쌀밥에 우럭젓국을 끓이신다 (어머니의 소꿉장난/78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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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처갓집 방문
김명국 지음 / 실천문학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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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40


《베트남 처갓집 방문》

 김명국

 실천문학사

 2014.10.29.



  묻고 또 물어야지 싶습니다. 사랑이 없어도 아이만 낳으면 될까요? 사랑을 속삭이지 않더라도 핏줄을 이으면 될까요? 사랑을 나누지 않아도 집일을 맡을 사람을 가시내로 들여야 할까요? 사랑에는 어떤 허물도 금도 없기에 어느 이웃나라 사람하고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이 아니라면 아무리 같은 마을에 살더라도 마음을 나누기 어렵겠지요. 《베트남 처갓집 방문》을 읽습니다. 베트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을 곁님으로 맞이한 시골지기 한 분이 베트남이라는 나라를 곁나라로 삼아서 드나든 이야기를 시로 풀어냅니다. 베트남 아가씨는 씩씩하게 한국이라는 나라로 와서 살림을 차리고 아이를 낳아서 살아갑니다. 한국에서 사내도 이처럼 씩씩하게 다른 나라로 가서 살림을 차리고 아이를 돌보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거꾸로 헤아려 봅니다. 한국 시골에서 살림을 짓고 살아갈 가시내를 찾기 어렵다면, 한국 시골지기가 이 땅을 홀가분하게 떨구어 내고서 중국이나 베트남이나 필리핀 시골로 가서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고요. 사랑을 찾는다면 어느 자리이건 대수롭지 않고, 사랑을 안다면 어떤 일이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곰곰이 보건대, 한국이란 나라는 학교도 마을도 집도 사랑을 안 가르칩니다. 사랑을 모르는 채 나이를 먹습니다. ㅅㄴㄹ



슬리퍼는 있지만 귀찮은 아이들은 맨발로 뛰어다니지 / 탄푸쭝 매일 시장 신발 가게에서 산 린의 운동화는 / 특별한 날에만 신난다고 모셔두었다네 // 한 달 십오만 원도 안 되는 봉급을 받기 위해 / 오십만 원짜리 중고 오토바이도 휴대폰도 없이 / 1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새벽과 밤 생선 공장에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이유도 (각별한 식구-식탁 위에 숟가락 하나 더 올린다는 것/58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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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기원 최측의농간 시집선 2
조연호 지음 / 최측의농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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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58


《저녁의 기원》

 조연호

 최측의농간

 2017.7.13.



  추위란 무엇일까 하고 문득 생각하면, 우리 스스로 몸에 기운이 돌지 않아서 바깥 바람에 휘둘리는 모습이지 싶습니다. 옷을 껴입든 벗든 몸에 기운이 도는 사람은 추위를 안 탑니다. 날이 따뜻하거나 포근하더라도 몸에 기운이 돌지 않는 사람은 한여름에도 춥다고 느껴요. 겨울에도 마치 봄비 같은 겨울비가 내리는 고흥이라는 고장에는 겨울안개가 으레 낍니다. 워낙 폭하기 때문이에요. 추운 고장이라면 눈이 펑펑 쏟아지겠지요. 가까운 지리산만 해도 눈밭인걸요. 겨울비 내리는 마당을 바라보던 아이들은 비놀이를 즐기고, 저도 겨울에 이따금 아이들하고 비를 맞으면서 뒹굽니다. 《저녁의 기원》을 읽는데 여름하늘하고 여름바람을 이야기하는 노랫말이 새삼스럽습니다. 저는 할머니가 아니었어도 페인트를 바른 줄 눈치를 못 채고 걸상에 앉았다가 옷을 버리기 일쑤였습니다. 고등학생 무렵에도, 스물 언저리에도 그랬어요. 고흥에 비를 쏟던 구름이 흩어지자 눈부신 햇발이 퍼집니다. 봄빛 같은 비를 맞으며 봄까지꽃이나 갈퀴덩굴이 고개를 내밀고 냉이도 어느새 꽃까지 피웁니다. 이 곁에 다른 봄나물도 함께 떡잎을 내놓습니다. 삶이란, 사랑이란, 하루란 빗불 한 방울에서 비롯할까요. 너른 별자리란, 우리가 어우러지는 보금자리란, 빗물 먹고 노는 아이들 웃음소리에서 태어날까요. ㅅㄴㄹ



오늘 있었던 가장 아름다운 일은 우주가 검은 것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 / 여름 태풍이 만찬 식탁처럼 많은 촛대를 세운다는 것 (벌레를 쥐고 태어난 아이 1983-1986/43쪽)


쉴 겸 / 페인트가 마르지 않은 벤치에 앉았다가 / 할머니는 붉은색이 되어 돌아왔다 (키신의 나날/118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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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성 투쟁의지 삶창시선 38
조성웅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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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55


《식물성 투쟁의지》

 조성웅

 삶창

 2013.9.30.



  싸우는 사람이 그대로 있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때뿐 아니라, 이명박 박근혜 때에도, 또 이들을 밀어내고 새로 꼭두머리에 서서 나라를 다스리는 이가 있는 요즈막에도 어김없이 싸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꼭두머리를 갈아치운대서 싸움이 그치지 않습니다. 꼭두머리 탓도 있을 테지만, 꼭두머리 갈아치우기로 나라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삶자리부터 갈아치워야 합니다. 삶터까지 몽땅 갈아엎어야 합니다. 윗자리 아랫자리를 가리지 말고, 모든 곳이 즐거우면서 아름답게 빛날 수 있도록 갈아야지 싶습니다. 《식물성 투쟁의지》는 싸우는 노래가 가득합니다. 이름부터 싸움말이지요. 그런데 하나 짚어야지 싶어요. 말이 어렵습니다. 우리는 왜 ‘일꾼두레’로 바꾸지 못할까요? 우리는 왜 “풀처럼 싸운다”고 말하지 못할까요? 지식인도 여느 일꾼도 일본 한자말이나 일본 군대질서를 못 털어냅니다. 아직 곳곳에 ‘더 빨리 더 많이 더 크게’가 도사릴 뿐, ‘즐거이 넉넉히 따스히’가 싹트지 못합니다. 이 대목을 찬찬히 짚어 본다면 싸움길도 달라질 테고, 글쓴이 스스로 밝히는 ‘웃사내질’도 부드러이 어루만질 수 있겠지요. 잘 먹고 잘 살아야 즐겁듯 잘 싸우고 잘 풀어야 즐겁습니다. 노래도 즐겁게 어깨동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청국장을 끓이면서 우리는 즐겁다 / 엉덩이도 들썩들썩, 어깨춤도 흥겨워라 / 뚜껑을 열고 부채질을 하면서 우리는 즐겁다 / 과학대가 직접 고용하라 / 성폭력 책임자를 처벌하라 / 우리의 요구를 청국장 맛으로 우려낸다 (청국장 투쟁/32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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