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회사원, 그밖에 여러분 애지시선 49
유현아 지음 / 애지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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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49


《아무나 회사원, 그밖에 여러분》

 유현아

 애지

 2013.6.17.



  글 한 줄을 쓰면서 마음에 얹힌 것을 내려놓습니다. 굳이 글을 안 쓰더라도 입밖으로 말을 털어놓을 수 있으면 응어리를 풀어냅니다. 글로도 말로도 내어놓지 않으면 오래오래 얹히다가 그만 삭아서 속이 몹시 괴롭기 마련입니다. 말로 쉽게 털어놓기 어렵기에 글로 조용히 적어요. 하나하나 적은 글을 갈무리해서 엮으니 어느새 시 한 줄이 태어납니다. 《아무나 회사원, 그밖에 여러분》을 읽으면 답답합니다. 시쓴이가 살아오며 속에 품은 답답한 이야기를 풀어내니, 이 이야기를 읽을 사람도 답답한 마음이 될밖에 없습니다. 속엣것을 털어내려고 시를 쓰고, 시집을 손에 쥔 사람은 마음으로 이웃이 되어 이 답답한 속엣것을 맞아들여 마음으로 토닥여 주는 얼거리로구나 싶습니다. 가만히 보면 한국이란 나라에서 답답한 응어리 아닌 신나는 살림을 시 한 줄로 노래하는 사람을 마주하기란 참 힘드네 싶어요. 어릴 적부터 잘못이나 말썽이나 굴레를 숱하게 지켜보고서 이를 마음에 담아요. 오래도록 고이거나 썩고 만 응어리를 찬찬히 풀어내려니 글로 옮기면서 더더욱 괴롭기 마련입니다. 앞으로 시를 쓸 분들은 답답한 속엣것이 아닌, 노래로 피어나는 씨앗을 풀어낼 수 있을까요? 그런 날은 언제쯤이 될까요?



직업 없고 큰소리만 쥐고 있던 아버지가 정말 싫었어 죽도록 일만 하고 경제력은 아버지한테 쥐어준 엄마는 더 싫었어 기타를 옆에 끼고 노래 따위나 흥얼거렸던 아버지 앞에서 엄마는 궁상스럽게도 비굴했어 그리고 까스명수를 마셨지 (까스명수/46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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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사골에서 쓴 편지
고정희 / 미래사 / 199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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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46


《뱀사골에서 쓴 편지》

 고정희

 미래사

 1991.11.15.



  나는 꽃이다, 하고 입술을 달싹이면 참말 나 스스로 꽃이 된 듯합니다. 나는 꽃이다, 이 말이 수줍어 좀처럼 터뜨리지 못하곤 하는데, 살며시 터뜨리고, 거듭 읊고, 자꾸자꾸 말하다 보면 어느새 노래처럼 가락을 입고 흥얼흥얼 즐거워요. 나는 바보이다, 하고 입술을 놀리면 참으로 나란 녀석은 바보가 된 듯합니다. 바보스러운 짓을 했으니 이렇게 말하지만, 정작 이렇게 말하면서도 스스로 아픕니다. 스스로 깎아내리거나 슬픈 말은 하지 말자고 여겨요. 《뱀사골에서 쓴 편지》를 읽으면, 노래님 스스로 꽃이 되다가 바보가 되는 가락이 넘실거립니다. 때로는 눈부신 꽃으로 피어나고, 때로는 슬픈 바보로 가라앉습니다. 때로는 수줍은 꽃이었다가, 때로는 슬기로운 바보이고 싶은 마음을 느껴요. 우리는 누구일까요? 우리 참모습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디에 설까요? 우리 참길이란 참삶이란 참사랑이란 어떤 그림일까요? 진눈깨비가 흩날리다가 함박눈이 퍼붓는 겨울에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붙을 수 있지만, 겨우내 꽁꽁 얼다가도 포근한 볕하고 바람을 맞이하면서 기지개를 켤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우리 길이요 삶이요 노래이면서 하루입니다. 두 팔을 펼쳐 바람을 안습니다. ㅅㄴㄹ



잔설이 분분한 겨울 아침에 / 출근버스에 기대앉아 / 그대 계신 쪽이거니 시선을 보내면 / 언제나 / 적막한 산천이 거기 놓여 있습니다 (묵상/90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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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건드려주었다 시작시인선 203
이상인 지음 / 천년의시작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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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70


《툭, 건드려주었다》

 이상인

 천년의시작

 2016.5.25.



  겨울이라는 철은 추위가 오르내리는 결이 재미있습니다. 꽁꽁 얼어붙는 날씨가 한바탕 지나면, 포근한 기운이 얼마나 반가운가 하고 새삼 느껴요. 처음 겨울에 들어설 무렵보다 훨씬 바람 찬 날이라 해도 꽁꽁추위 뒤끝에는 꽤 지낼 만하네 하고 느껴요. 겨울에 더 눈부신 별빛하고 밤바람을 쐬며 생각합니다. 우리한테 겨울이 있고 봄이며 여름이 있기에 노래하는 삶이 이곳에 있고, 여름하고 겨울 사이에 가을이 있어 더욱 싱그러이 노래하는 살림이 여기에 있지 싶어요. 《툭, 건드려주었다》는 하루하루 툭 건드리는 말이며 벗이며 삶이란 무엇인가 하고 찬찬히 짚습니다. 무밭에서 만난 나비를, 할머니 무덤에서 받은 제비꽃을, 얼핏 스치려다가 한동안 지켜보고서 두고두고 마음으로 담아서 가락을 얹습니다. 우리는 오늘 어떤 바람을 마시며 하루를 마감했을까요. 우리는 이 밤이 지나고 나면 어떤 햇볕을 먹으며 하루를 열까요. 한겨울에는 나비가 모두 잠들어 없을 테지만, 아직 대롱대롱 남은 억새 씨앗이 마치 나비처럼 춤추며 하늘을 뒤엎습니다. 문득 한 송이씩 날리는 눈도 마치 나비 날갯짓처럼 조용히 찾아들면서 온누리를 하얗게 덮으면서 춤춥니다. 눈춤을 마주하는 아이들은 온몸으로 뛰고 달리면서 눈을 맞이하고요. ㅅㄴㄹ



나비 한 마리가 무밭을 뒤집다. / 손바닥 푸른 손금 안에, 생각을 낳는지 / 소리도 없이 몇 초씩 머물러서 / 내 등허리 간지럽다. (둥근 하늘/21쪽)


할머니 무덤에 갔다. / 반가운 손자가 왔다며 / 제비꽃 한 묶음 슬며시 내미셨다. (제비꽃 무덤/84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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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 없는 날 시놀이터 7
밭한뙈기 엮음 / 삶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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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39


《할 일 없는 날》

 여주 아이들

 전국초등국어교과 여주모임 밭한뙈기 엮음

 삶말

 2018.9.1.



  물을 쭉쭉 들이키면서 이 물이 흘러온 길을 그립니다. 뒷골에서 비롯했을는지, 구름을 타고 지구를 골골샅샅 누비다가 비님으로 왔을는지, 먼바다에서 고래하고 헤엄치다가 찾아왔을는지, 나무 곁에서 오래도록 동무하다가 왔을는지, 이웃나라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지피다가 찾아왔을는지 하나하나 그립니다. 이러면서 새로운 길도 그려요. 우리 몸으로 스민 물은 앞으로 우리 몸하고 하나가 되어 무엇을 겪을는지, 또 우리 몸에서 살며시 빠져나간 뒤에는 어떤 마실을 할는지를 그립니다. 동시집 《할 일 없는 날》은 경기도 여주 어린이가 저마다 겪거나 누리는 삶을 담아낸 그림을 들려줍니다. 그림입니다. 동시인데 그림입니다. 이야기는 모두 그림입니다. 글을 귀로 듣고, 글을 살갗으로 느끼고, 글을 눈으로 보고, 글을 마음으로 맞이합니다. 어린이가 문득 떠올리며 쓰는 모든 글은 그림이지 싶어요. 살아온 그림에 살아가는 그림에 살아갈 그림. 사랑한 그림에 사랑하는 그림에 사랑하려는 그림. 한 마디를 톡 얹어서 노래로 흐릅니다. 두 마디가 방긋 춤추며 노래로 일렁입니다. 석 마디가 나풀 바람처럼 노래로 붑니다. 우리는 아이들하고 노래를 나누면서 자라는 어른입니다. ㅅㄴㄹ



언니, 눈을 밟을 때 / 버그적버그적 소리가 나 / 꼭 과자 먹는 소리가 나 (눈이 온 날-신수빈, 여주초 2학년/15쪽)


선생님은 조용한 걸 좋아하신다 / 교실에서 쉿 / 복도에서 쉿 / 피아노도 쉿 / 쉿쉿쉿 (선생님-이수안, 상품초 5학년/선생님)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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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거처 창비시선 100
김남주 지음 / 창비 / 199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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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45


《사상의 거처》

 김남주

 창작과비평사

 1991.11.25.



  흐를수록 고운 숨결이 있습니다. 흐르는데 모르겠는 숨결이 있고요. 저는 여름이 되면 여름고비를 헤아리고, 겨울에는 겨울고비를 헤아려요. 유월 한복판 어림해서 낮은 더 길어지지 않고, 십이월 한복판 즈음해서 밤은 더 길어지지 않습니다. 두 고비를 바라보면서 철흐름을 느끼고, 바람맛을 보며, 볕살을 먹습니다. 이 흐름은 해마다 달라서 한 해씩 새로 맞이할 적마다 늘 새삼스럽다고 배워요. 《사상의 거처》라는 시집을 두고두고 읽습니다. 1990년대에 처음 만나고 2000년대에 다시 만나며 2010년대에 거듭 만났는데, 앞으로 2020년대가 되고 2030년대로 흐르면 어떤 맛으로 읽을 만할까 하고 돌아봅니다. 처음에는 막 밑줄을 그으며 읽었어요. 나중에는 가슴을 후비며 읽었고, 어느 날부터는 말마디마다 흐르는 모습을 머리에 그림으로 띄워서 읽었지요. 이제는 한 마디를 꾹꾹 새기고 풀어내면서 읽습니다. 생각이 깃드는 곳은 어디일까요? 마음이 머무는 자리는 어느 메일까요? 넋이 가는 길은 어느 쪽일까요? 뜻이 깃들 품은 어디요, 꿈이 자랄 터는 어디일까요? 떠난 님이 “아기를 보면서” 문득 읊은 노래는 지난날에 사람들이 피식 웃고 지나간 얘기였을 테지만, 오늘날에도 이 노래를 그냥 웃고 지나갈 만할까 궁금합니다. ㅅㄴㄹ



우리 아기 고운 아기 / 나물이나 뜯어먹고 칡뿌리나 캐먹고 평생을 가난하게 살지언정 / 맑은 물 맑은 공기 푸른 하늘과 가까이 벗하며 / 흙과 더불어 시골에 살았으면 싶어서 그러네 (아기를 보면서/43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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