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 창비시선 405
이설야 지음 / 창비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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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74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

 이설야

 창비

 2016.12.12.



  무엇을 못하는가 하고 가만히 살피면 못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무엇을 즐기는가 하고 찬찬히 살피면 즐기는 모습을 봅니다. 무엇이 아쉬운가 하고 곰곰이 살피면 아쉬운 대목이 티가 납니다. 무엇을 하고픈가 하고 하나하나 그리면 스스로 그리는 꿈길에 따라 하루를 걷습니다.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를 읽으면서 오늘 이곳을 다시 생각하고, 어제 그곳도 새삼스레 떠올립니다. 제가 나고 자란 고장인 인천에서 이런 이웃님이자 동무님이 바로 곁에서 이런 마음으로 살아갔고 배웠고 겪었고 누렸고 아프면서도 고이 피어나는 날갯짓이었네 하고 헤아립니다. “안 돼” 하는 마음이 아닌, “무엇이 되어 볼까” 하는 마음을 그리고 싶은, 나누고 싶은, 노래하고 싶은 걸음걸이가 얼마나 상냥한가 하고 또 생각합니다. 인천이란 데는 나이든 이웃이든 동무이든 공장일꾼이 참 많습니다. 공장일꾼이 아니어도 서로 얽히고 설킨 사이입니다. 마치 거미줄 같아요. 남남이 아닌 너랑 나랑 우리입니다. 너네 집이 아니라, 너랑 내가 같이 사는 우리 마을에 있는 반가운 집입니다. 이 터에서, 이 사랑터에서, 이 꿈터에서, 매캐한 바람이 부는 공장이 그득그득합니다만, 바로 이 고즈넉하면서 따순 볕살을 나누어 먹는 골목터에서 아이가 자랍니다. ㅅㄴㄹ



내가 상고에 간신히 입학했을 때 / 그애는 동일방직에 나갔지 / 낮에는 공장 다니고, 밤에는 산업체 야간학교 다니고 / 내가 밀린 납부금 때문에 복도에서 벌을 서고 있을 때 / 그애는 여공이 되어 솜뭉치로 매일 가슴에 돋는 상처를 봉했네 (동일방직에 다니던 그애는/14쪽)


오늘 중국 아이들 출석을 부르다가 / 풍결이라는 아이는 풍결 같고 / 우혜라는 아이는 우혜 같고 / 한총총이라는 아이는 정말 한총총같이 생겼다는 생각 (대나무숲/112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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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시놀이터 6
이오덕김수업교육연구소 엮음 / 삶말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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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69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남양주 아이들

 전국초등국어교과 엮음

 삶말

 2018.8.10.



  저는 동시를 씁니다. 어른인 몸으로 동시를 씁니다. 둘레에서 ‘동시’라는 한자말이 아닌 다른 이름이 없느냐고 물으시면 ‘노래꽃’을 쓴다고 이야기합니다. 여느 어른시라면 ‘노래’로 여기고, 어린이부터 읽고 즐기며 쓰는 동시라면 ‘노래꽃’으로 여깁니다. 여느 사전은 ‘동시 = 어린이한테 읽히려는 시나 어린이가 쓴 시’로만 풀이합니다만, 이 풀이는 안 옳다고 여겨요. 어린이‘부터’ 읽고 쓰기에 동시이지 어린이‘한테’ 읽히는 동시일 수는 없어요. 그림책도 어린이부터 읽는 책이고요. 경기도 남양주 어린이들 삶결이 묻어난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를 가만히 읽습니다. 이 동시꾸러미를 읽으면서 이 글꽃을 어린이나 교사나 어버이뿐 아니라 여느 어른이 같이 읽으면 참 좋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아이들 목소리란, 아이들이 스스로 기쁘거나 아프거나 신나거나 슬픈 하루를 담는 이야기예요. 그리고 우리 어른들이 이 삶터를 어떻게 돌보면 좋겠는가 하는 꿈을 펴는 이야기이고요. 어린이는 동시를 쓰고 읽으면서 새로운 길을 그려요. 어른은 동시를 쓰고 읽으면서 사랑스러운 길을 그립니다. 저는, 사랑스러운 길을 새롭게 그려서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고 싶어서 동시를 쓰고 읽습니다. ㅅㄴㄹ



난 성형수술 안 할 거다. / 못 생겨도 안 할 거다. / 얼굴에 손대기 싫다. / 내 얼굴엔 손 댈 곳이 없다. (성형수술, 송천분교 6년 구광모/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15쪽)


아빠가 / “너 커서 뭐 될꺼냐?” 물었다. / 나는 / “사람이요.”라고 대답했다. // 아빠가 기가 막힌 듯 / 한숨을 쉬었다. (뭐 될꺼냐?, 송천분교 6년 임선민/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37쪽)


우리보고만 조용히 하라고 하고 / 선생님 혼자 실컷 말한다. / 그리고 선생님이 책 읽어주실 때 / 정말 느끼한 목소리로 읽는다. (우리 선생님, 마석초 1년 김정윤/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97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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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딱 좋아 시놀이터 5
순무 엮음 / 삶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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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66


《지금이 딱 좋아》

 인천 아이들

 전국초등국어교과 인천모임 순무 엮음

 삶말

 2018.6.15.



  “언제가 좋아?” 하고 누가 묻든 똑같이 대꾸합니다. “오늘이 좋아.” 하고. 어제도 좋았고 글피도 좋았지만, 오늘이 참으로 좋아요. 모레도 글피도 좋을 테지만, 오늘이 더없이 좋습니다. 그렇다고 더 좋거나 덜 좋다고 가를 수는 없어요. 그저 한 마디를 할 뿐입니다. “오늘이 좋아.” 하고. 인천 어린이가 쓴 글자락을 그러모은 《지금이 딱 좋아》를 가만히 읽습니다. 인천 어린이뿐 아니라 다른 고장 어린이도 모두 매한가지라고 여겨요. 여덟 살이면 여덟 살이라서 좋고, 열 살이라면 열 살이라 좋습니다. 열두 살에는 열두 살이기에 좋은 하루예요. 어른은 어떨까요? 스무 살이든 서른 살이든 일흔 살이든 아흔 살이든 그 나이는 그 나이대로 다 다르게 좋습니다. 푸름이라면 열다섯 살이든 열여덟 살이든 다 다르게 좋아요. 다시 말해, 우리는 어린이로서 푸름이로서 젊은이로서 어른으로서 다 다른 나이에 다 다른 오늘을 누리면서 좋은 나날입니다. 언제나 새롭게 좋고, 서로서로 새삼스레 마주하면서 좋아요. 바람이 불어 시원하고, 해가 뜨며 따뜻하고, 비가 오며 맑고, 씨앗에 싹이 트며 반갑습니다. 다 같이 만나고, 모두 함께 어우러집니다. 놀이판을 이루고, 일마당을 벌입니다. ㅅㄴㄹ



비가 내리면 / 꽃이 펴요 (꽃, 능내초 1년 박윤승/19쪽)


엄마는 엄마는 / 매일 바빠요 /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 청소하고 애기 돌보고 / 애기 재우면 벌써 저녁 6시 / 엄마는 저녁 준비를 한다. / 우리는 밥을 먹고 tv를 보고 / 엄마는 밥상을 치우고 있는데 / 어? 아빠 왔네. / 엄마는 저녁을 또 준비한다. (엄마의 하루, 안산초 4년 최어진/47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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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한 바퀴 솔시선(솔의 시인) 19
하재일 지음 / 솔출판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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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84


《동네 한 바퀴》

 하재일

 솔

 2016.9.11.



  때로는 술술 흐르고, 때로는 꼼짝없이 막힙니다. 술술 흐를 적에는 거침없이 나아간다면, 꼼짝없이 막힐 적에는 가만히 서서 둘레를 살펴봅니다. 신나는 물살을 타면서 피어나고, 마치 고인 듯하지만 고요히 머무는 곳에서 새삼스레 이 삶을 돌아봅니다. 두 갈래 걸음이나 몸짓으로 하루를 맞이하지 싶어요. 기운차게, 조용히, 엇갈리는 듯하지만 늘 맞물려서 나타나는 두 길은 마음에 새로운 숨이 되지 싶습니다. 《동네 한 바퀴》는 시쓴이 나름대로 마을을 한 바퀴 도는 이야기를 갈무리합니다. 마을이란, 집이 있는 터전일 수 있습니다. 마을이란, 너른 온누리에서 지구라는 작은 별일 수 있습니다. 마을이란, 마음하고 마음이 만나는 이웃이 서로 마음으로 이루는 삶터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마을에서 어깨동무를 하는 사이일까요. 풀밭에는 토끼풀도 냉이도 질경이도 자랍니다. 한 가지 풀만 자라지 않아요. 여러 풀이 여러 결로 자라기에 풀밭은 늘 싱그럽지 싶어요. 사람 사는 마을도 온갖 사람이 다 다르면서 사이좋게 어울리기에 맑은 이야기가 자랄 테지요. 봄 여름 다르니 철철이 새롭고, 가을 겨울 달라 철마다 반갑습니다. 다만, 꾸미지 않아도 글 한 줄은 노래가 됩니다. ㅅㄴㄹ



그밖에, 아주 달콤한 게임 천국 미네르바가 있다 / 삼강오륜 돼지바도 있지만 / 내가 막상 선택할 때는 여전히 바밤바를 찾게 될 것이다 (바/17쪽)


항상 밝은 모습의 선영이, 베트남 불법체류자의 딸로 태어나 / 언제 단속에 걸려 추방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꽃인데 / 선영이의 꿈은 토끼풀 나라의 주민등록증을 갖고 / 합법적으로 당당하게 키 작은 토끼풀들과 어울려 사는 것 (토끼풀 세상/23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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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돌아서면 그만이다 문학동네 시인선 99
안정옥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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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71


《그러나 돌아서면 그만이다》

 안정옥

 문학동네

 2017.12.9.


 

  아침저녁으로는 아직 바람이 쌀쌀한 삼월 첫무렵에 제비꽃이 핍니다. 제비꽃은 봄가을에 제법 쌀쌀하면서도 따스한 기운을 타고서 꽃망울을 터뜨려요. 올해로 아홉 해째 봄맞이를 하는 작은아이는 제비꽃을 톡톡 따더니 입에 대고 후후 붑니다. 자그마한 나팔이라고 여겨요. 작은 꽃송이가 작은 꽃나팔이라는 생각은 어린이만 할 수 있는가 하고 돌아보다가, 어쩌면 작은 제비꽃나팔은 이 봄에 새롭게 깨어나려고 더 따스한 볕을 기다리는 숱한 풀동무를 부르는 노래일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돌아서면 그만이다》를 읽습니다. 시쓴이 말대로 돌아서면 그만입니다. 돌아서니 그만이고, 돌아서서 쳐다보지 않으니 우리한테 안 보이고 잊힙니다. 돌아선 등에는 찬바람이 휭하니 붑니다. 그런데 그이가 우리 눈앞에서 돌아섰기에 찬바람이 불지 않아요. 사랑을 우리 마음속이 아닌 ‘그이가 내밀거나 어루만질 손길’에서 찾기에 ‘돌아선 그이 등’에서 등쌀을 느끼면서 스스로 사랑을 짓이기지 싶어요. 제비꽃이 꽃나팔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쉬워요. 누가 알려주거나 가르치지 않아요. 스스로 ‘넌 봄꽃나팔이로구나’ 하고 여기기에 꽃나팔이 되어요. 그늘은 스스로 되고, 어둠은 스스로 되며, 미움이나 시샘이나 생채기도 스스로 되어요. 그리고 스스로 아물 뿐 아니라 스스로 샘물을 길어올려 사랑이 됩니다.



자는 척하면 아버지가 나를 안아 건넌방으로 가는 몇 초, 내리고 싶지 않은 비행, 허공에 떠 날아간 몇 초가 있었다 아버지의 그늘, 커서도 그런 그늘 뒤집어쓰고 싶은 탓에 구더기로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이 그늘에서 저 그늘로 (그늘을 보내오니/32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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