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 창비시선 337
최정진 지음 / 창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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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97


《동경》

 최정진

 창비

 2011.11.10.



  작은아이하고 이웃마을로 걸어갑니다. 우리 마을 앞을 지나가는 시골버스를 놓쳤거든요. 찻길을 걸어 봉서란 이웃마을로 갈 수 있으나, 논둑길을 걸어 황산이란 이웃마을로 갑니다. 가는 길에 여러 소리를 듣습니다. 밀잠자리 날갯짓 소리, 검은물잠자리 날갯짓 소리, 이삭이 패는 소리, 바람 따라 나락줄기 스치는 소리, 개구리 노랫소리, 풀벌레 노랫소리, 멧새 노랫소리, 여기에 구름이 흐르는 소리하고, 빗물이 듣는 소리를 누립니다. 이러다가 비가 쏟아져요. 아이가 “우산 안 가져왔는데.” 하며 걱정하기에 “구름한테 대고 얘기하렴.” 하고 말합니다. 비구름은 저한테 마음으로 “곧 지나갈게.” 하고 속삭입니다. 비구름 속삭임을 아이한테 들려주고서 한동안 늦여름비를 실컷 맞으니 개운합니다. 비란 참 놀라운 숨결이에요. 《동경》이란 노래꾸러미를 내놓은 노래님은 퍽 젊다 싶은 나이에 이 노래를 갈무리합니다. 그러나 젊든 늙든 저마다 부르려는 노래가 있으니 글로 이야기를 옮기겠지요. 어릴 적부터 마음으로 스민, 차근차근 자라면서 마음으로 본, 어느덧 스스로 서서 살림을 꾸려야 하는 때에 새삼스레 마음으로 깨달은, 여러 이야기를 읊습니다. 부디 이 이야기가 노래님이 앞으로 걷는 길에 즐거운 씨앗이 되기를 빕니다. ㅅㄴㄹ



발을 만지는 게 싫으면 / 그때 말하지 그랬어 / 외로워서 얼굴이 굳어가잖아 / 너의 집 앞에 다 왔어 / 창문을 열어봐 (첫 발의 강요/8쪽)


세탁소가 딸린 방에 살았다 방에 들여놓은 다리미틀에서 엄마의 품에 안겨 잠들었다 내 몸의 주름은 구김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엄마는 다림질밖에 몰랐다 엄마의 품에 안겨 다려지다 어느날 삐끗 뒤틀렸는데 세탁소 안에서 나는 구부정하게 다니는 아이라고 불렸다 (기울어진 아이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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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많은 아이 섬집문고 4
유은경 지음, 노영주 그림 / 섬아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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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99


《생각 많은 아이》

 유은경

 섬아이

 2008.10.3.



  바람이 드나드는 마루를 누리며 살아간다면, 바람이 바뀌는 흐름을 읽을 수 있습니다. 봄 다르고 여름 다르며 가을 다른 바람인데, 같은 여름에도 유월하고 칠월하고 팔월 바람이 달라요. 또 팔월 첫머리랑 한복판하고 끝자락 바람도 다른데, 하루하루 새삼스레 살며시 다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다른 바람맛을 누린다면, 아마 바람이 얼마나 재미난가 하고 노래를 부르겠지요. 바람 한 줄기가 노래가 되어요. 바람 한 자락이 글 한 줄도 됩니다. 《생각 많은 아이》는 삶을 생각하는 아이는 어떤 마음인가 하고 넌지시 지켜보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들은 저 아이를 동무로 여길까요? 아이들은 이 아이를 저희 또래라는 품에서 곱게 아끼면서 함께 놀까요? 어쩌면 따돌리거나 괴롭히거나 내치지는 않나요? 뭔가 서툴거나 엉성하다면서 깍두기로 넣거나, 깍두기에서도 빼지는 않는가요? 앵두 한 알에도, 능금 한 알에도 나무 한 그루가 고스란히 흐릅니다. 나락 한 톨에도, 콩 한 톨에도, 흙을 머금은 기운이 곱게 감돕니다. 아삭 하고 열매를 깨물어 먹는 사이 열매가 얼마나 즐겁게 해를 먹고 바람을 쐬었는가를 느껴요. 푹 떠서 입에 넣는 밥 한 술에 나락이 얼마나 신나게 흙에 뿌리를 내려 든든히 푸르게 자랐는가를 헤아립니다. ㅅㄴㄹ



동그란 은행 한 알에 / 나무 한 그루 들었다. (은행 한 알/23쪽)


- 너, 베트남 말 알지? / 한번 해 봐, 응? // 아이들이 조르면 / 고개를 저어요. // - 난 한국 사람이야 / 우리 엄마도! (기영이/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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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텅 가벼웠던 어떤 꿈 얘기 - 오상룡 시전집
오상룡 지음 / 최측의농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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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98


《텅텅 가벼웠던 어떤 꿈 얘기》

 오상룡

 최측의농간

 2019.5.30.



  마당 한켠에 참외꽃이 핍니다. 고빗사위를 지난 여름이 조금씩 저무는 이즈음 뜬금없을 수 있는 참외꽃인데, 이 꽃은 아이들이 심어서 피운 셈입니다. 아이들이 참외를 깎아서 먹으려다가 좀 쉰 듯하다며 마당 한켠 풀밭에 던졌는데, 어쩐 일인지 이 쉰 참외에 있던 씨앗 한 톨이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리더니 노란 꽃송이를 잔뜩 터뜨려요. 작은아이는 열흘쯤 참외꽃을 신나게 들여다보더니 종이를 길에 오려 참외덩굴을 짓고, 노란 꽃송이를 하나하나 붙여요. 드디어 1미터가 넘는 ‘참외꽃 종이인형’을 빚습니다. 이모가 갓 낳은 아기한테 선물로 주겠다고 합니다. 《텅텅 가벼웠던 어떤 꿈 얘기》는 “시는 사랑글이다” 하는 말로 첫머리를 엽니다. 이 대목이 매우 마음에 듭니다. 참말로 시는 사랑을 써서 띄우는 글이지 싶습니다. 누가 받을는지는 모르더라도, 이 시라는 글을 받을 사람들이 모두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나누다가 사랑으로 피어나기를 바라는 노란 참외꽃 같은 글이지 싶어요. 시쓴님은 1974년에 태어나서 2004년에 흙으로 돌아갔다고 해요. 이녁 해적이는 “1974년 출생, 2004년 타계.” 이렇게 두 줄입니다. 마침 ‘그의 연보’라는 시가 있어요. 사랑을 띄우는 손으로 개울가 조약돌을 줍는, 시요 글이며 노래입니다. ㅅㄴㄹ



詩는 연애편지다 하는 말에 나는 동의하네. 간절하지만 끝이 없는 그 무엇에 대한 짝사랑. (자서/10쪽)


연보 이외의 사생활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그가 죽고 나면, 호기심에 들뜬 연구자들이 그 짧은 연보를 과도하게 분석할 것이다. 그의 친지와 동창생 들을 만나 세세한 이력을 들춰낼 것이다. 개울가에 버려진 조약돌의 생김새로 난해하게 뻗어가는 물의 흐름을 성공적으로 예측해낼 것이다. (그의 연보/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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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을 때 문학의전당 시인선 249
최경순 지음 / 문학의전당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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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96


《그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을 때》

 최경순

 문학의전당

 2017.2.20.



  곁에 이웃이 얼마나 많은가 하고 헤아리다 보면 으레 놀랍니다. 참으로 많거든요. 이웃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나무이기도 하고, 꽃이나 풀이기도 하며, 벌레나 새나 벌나비이기도 합니다. 온갖 이웃은 온갖 살림살이를 다 다르면서 저마다 재미있게 가꾸는구나 싶어요. 아마 이 이웃들이 보기에 저도 숱한 이웃 가운데 하나가 되겠지요. 《그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을 때》를 덮고서 떠나보낼 즈음 세찬 바람이 찾아왔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 말로는 세차다지만, 제가 보기에는 가볍습니다. 이만 한 바람은 그저 바람일 뿐, 앞에 세차다거나 드세다거나 무섭다는 말을 붙일 수 없다고 느껴요. 나무가 휘청거린다든지, 새가 날아오르지 못한다든지, 아이들이 까르르거리면서 둥실거리는 바람쯤 되어야 세차다고 할 만하다고 봅니다. 낮에는 낮대로 하얀 구름떼를 날리는 바람을 보고, 밤에는 밤대로 별빛을 머금고 까맣게 물드는 구름밭을 바꾸는 바람을 봅니다. 이 바람에는 어떤 숨결이 흐를까요. 이 바람을 같이 쐬는 이웃은 어떤 하루를 지을까요. 이 바람을 함께 타며 노래하고 싶은 이웃은 어디에서 어떤 눈길로 나무를 어루만질까요. 나무를 바라보고 바람을 마시면서 쓰는 시 한 줄은 그윽합니다. ㅅㄴㄹ



창가에서 바라보는 감나무 한 그루 / 아침 새소리에 / 나뭇잎들이 팔랑팔랑 대꾸를 하고 있다 (그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을 때/34쪽)


새벽바람이 / 나무를 깨우고 나를 깨운다 / 새벽빛은 마음을 정갈하게 해준다 (다림질/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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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운 날 보리 어린이 25
오승강 지음, 장경혜 그림 / 보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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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시집은 판이 끊어져서 서지사항으로도 안 뜨기에

글쓴님 다른 동시집에 이 글을 붙입니다.



.. 


사랑하는 마을 사랑하는 숲

― 분교마을 아이들



《분교마을 아이들》

오승강

인간사

1984.5.5.



울엄마처럼

산이 날 키웠다.


슬픈 일이 있어 달려가면

엄마처럼

팔 벌려 포근히 날 안아 주고,


기쁜 일이 있을 때면

새들이 불러 함께 함께 노래 불러 주었다. (산소년/3쪽)



  여름철을 맞이하면 서울(도시)에 사는 분들은 으레 서울을 떠나 시골로 찾아갑니다. 그동안 서울에서 고되게 일하며 쌓인 때나 찌꺼기를 시골마실로 풀려고 합니다. 여름철에 시골마실을 하기보다는 다른 나라로 서울마실(도시여행)을 하는 분도 많습니다만, 하늘길을 날아 이웃나라에 갈 적에 그 나라 시골이나 숲을 누리려는 분도 무척 많습니다.


  해마다 여름철이 돌아오면 엄청난 자동차 물결이 서울을 떠나 시골로 찾아오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이때에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갑작스런 자동차 물결에 들볶이기도 하고, 서울손님이 바닷가나 골짜기나 들판에 휙휙 버리고 가는 쓰레기에 몸살을 앓기도 하며, 골짜기에 있는 아름다운 돌에 고기를 구워먹은 자국을 보며 씁쓸하게 혀를 차기도 합니다.


  포근히 안아 주는 숲을, 새랑 함께 노래하며 슬픔을 달래 주는 멧골을, 우리 마음을 가만히 적셔 주는 푸른바람을 부드러이 맞이하기 어려운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합니다.



학교 가는 길에

죽은 새 한 마리 보았다

머리가 짓이겨 있고

다리도 한 쪽이 끊겨 버린 채

다니는 길 복판에 버려져 있었다.


누가 그런 못된 짓을 하였을까?

누가 그 조그만 새를

그렇게 무참히 죽였을까?

공부시간에도 죽은 새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동무들에게 처져

살그머니 죽은 새를 보듬어 쥐고

햇빛이 잘드는 곳에 묻어 주었다.

싸리꽃도 꺾어 그 위에 놓아 두었다. (죽은 새)



  강릉에서 안동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하루에 둘 있습니다. 이 시외버스는 건널목이 없는 빠른길(고속도로)을 따라 빙 돌아서 달려요. 가까운 길보다는 빠르다는 길로 가야 외려 일찍 닿을 시외버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빠른길로 달릴 적에는 그냥 지나치는 고장이 많습니다. 들르지도 거치지도 서지도 않고 지나가는 고장이 수두룩한 셈입니다.


  안동에서 영양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려고 반나절쯤 기다리던 어느 날입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손님이 앉는 바깥마루(야외대합실)에서 가만히 구름바라기를 하는데, 아홉 살 아이가 저를 부르면서 손가락으로 어디를 가리킵니다. “아버지, 저기 봐요. 제비가 죽었어.” “응? 제비가 죽었다고?” “응. 죽어서 깃털하고 뼈만 남았어.”


  아이가 가리킨 곳을 올려다보니 참말 그렇습니다.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비는 그만 안동버스나루 한켠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제비 주검은 하나가 아닙니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있습니다. 곳곳이 제비 주검입니다. 웬 제비 주검이 이리도 많은가 하고 갸우뚱하다가 알아차립니다. 제비 주검이 있는 자리는 ‘속이 비치는 유리판이나 플라스틱판 지붕’입니다. 제비가 날아다니는 버릇을 헤아려 보건대 틀림없이 아주 날렵하게, 그야말로 빠르게 하늘을 갈라서 제 둥지로 돌아가 새끼 제비한테 먹이를 물리려 했을 텐데요, ‘속이 비치는 유리판이나 플라스틱판’을 그만 알아차리지 못했겠구나 싶습니다. 그대로 머리를 박고 그자리에서 숨을 거두었겠구나 싶어요. 이런 어미 제비 주검을 여럿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제비 주검을 올려다보다가 다른 생각이 하나 갈마들어요. 우리 집 아홉 살 어린이는 우리 시골집 처마 밑에 둥지를 틀어 새끼를 먹이는 어미 제비를 지난 아홉 해 동안 꼬박 지켜보았어요. 제비가 노래하는 소리도 솜씨좋게 따라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골아이였으니 이내 제비 주검을 알아보면서 안타까이 여겨요.


  저 주검이 제비인 줄 모른다면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도 ‘참새’쯤 되려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는 새 주검인지 아닌지 못 알아볼 수 있어요. 또는 새 주검이 있는지 없는지 아예 안 쳐다볼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을에 전깃불이 들어오자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형님도 누나도

모두 모두 만세를 불렀어요


녹음기가 들어오고

텔레비젼이 들어오고

우리 마을이 갑자기 도시같아 보였어요.


텔레비젼에서는

좋은 집만 나오고 

좋은 옷을 입은 사람들만 나오고

맛있는 과자들을 보여 주었어요.


농사짓는 사람들이 나올 때는

거지같아 보였어요.

춘화네 오빠도

우리 누나도

우리 동네 모든 형과 누나들의 눈빛도

슬퍼 보였어요.


보리밭을 그처럼 잘 매던 누나들,

나뭇짐을 지고도 그처럼 잘 달리던 형들.


텔레비젼이 우리 누나 도시에 데려 갔어요.

텔레비젼이 춘화네 오빠 도시에 데려 갔어요.


보기 싫은 텔레비젼이

바보 같은 텔레비젼이 (텔레비젼/32∼33쪽)



  서울에는 일찌감치 전기가 들어갔으니 시큰둥할 수 있으나, 웬만한 시골은 1980년대에도 전기가 안 들어가기 일쑤였습니다. 1990년대에 이르러 전기가 들어간 시골도 많고, 2000년대가 다 되어서야 빨래틀(세탁기)을 집안에 들인 시골도 제법 됩니다. 전남 고흥 어느 마을은 2000년대를 지나고서야 ‘마을 빨래터에서 더는 빨래를 하지 않았다’고, 그때서야 집집마다 빨래틀을 돌렸다고 해요. 그때까지는 할머니들이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빨래터에 나와서 손빨래를 하셨다더군요.


  1990년대에도 텔레비전이 없는 집이 있은 줄 떠올릴 서울 이웃은 얼마나 될까요? 더 따지고 본다면, 굳이 텔레비전이 없어도 아름다운 숲이며 하늘이며 들이며 바다가 좋은, 놀거리에 볼거리에 얘깃거리가 넘쳤던 옛날이라는 뜻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라디오하고 텔레비전을 앞세운 물질문명이 시골로 치고 들어가면서 마을마다 오랫동안 흐르던 일노래나 놀이노래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고 할 만합니다. 시골 구석구석으로 라디오하고 텔레비전이 번지면서,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얼른 이 시골구석을 떠나 번듯한 서울로 가야지!’ 하는 생각을 품었다고 할 만해요.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요즈음은 살짝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큰틀은 매한가지인데요,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또 유튜브에서 흐르는 ‘서울’을 살피면 온갖 물질문명을 마음껏 누리면서도 쓰레기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서울은 ‘소비’를 할 뿐, ‘생산’을 하지 않을 뿐더러 ‘소비한 것을 처리하는 일’도 도시 바깥으로 내보냅니다. 쓰레기처리장이나 폐수처리장은 다 서울 바깥이에요. 발전소도 도시 한복판이 아니라 시골 한복판에 세워서 끝없는 송전탑으로 도시까지 이을 뿐입니다. 핵발전소하고 핵발전소폐기장도 도시하고 가장 먼 데에 있지요.



상성이 아버지도 농사 지으시고,

우리 아버지도 농사 지으시고,

우리들 아버지 모두 농사 지으시고.


우리들이 보는 그림책 안에는

밀짚모자 쓰고

무릎까지 걷어 올린 옷 입고

논바닥에 엎드려 있는

농부 아저씨가 있었다.

신사복을 입은 아저씨의 그림과

선생님의 그림과 광부 아저씨의 그림,

기술자 아저씨의 그림들이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니는 커서 이 중에 뭐 될라노?

상성이는 내게 물었다.

나는 신사복 입은 아저씨의 그림을 짚었고

상성이는 선생님의 그림을 짚었다.

우리는 다같이

농부 아저씨의 그림을 보고

농부 봐라 하고 손가락질 하며

히히히 하고 웃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그러나 그러나 진짜 내 마음에는

농부 아저씨의 그림에

신사복을 입혀 드리고 싶었다.

엎드린 아저씨의 허리를

두드려 드리고 싶었다. (그림책 속에/40∼41쪽)



  1984년에 태어난 동시집 《분교마을 아이들》(오승강, 인간사, 1984)이 있습니다. 이 동시집은 일찌감치 판이 끊어졌습니다. 경북 영양군에서 태어나 안동교대에서 배움길을 걷고는, 경북 시골 어린이하고 마주하면서 삶을 들려주고 가르친 오승강 님은 ‘분교가 있는 마을 어린이’가 얼마나 스스로 창피하다고 느끼고, 못났다고 여기며, 뒤떨어졌다고 생각하는가를 가슴시리게 돌아봅니다. 이 시골아이들이 저희 삶을 어느 한 가지도 즐겁거나 자랑스럽거나 보람차거나 아름답게 여기지 못하는 채 그저 시골을 재빨리 떠나 서울로 나아가야만 한다고 여기는 모습을 쓸쓸하게 지켜봅니다. 시골아이한테 시골살이며 시골사랑을 들려주고 싶지만, 신문도 교과서도 책도 방송도 하나같이 ‘서울은 멋진 곳, 시골은 구닥다리에 힘든 곳’이라고 그리는 모습에 고개를 떨굽니다.


  그렇지만 붓을 쥐기로 합니다. 시골아이가 스스로 사랑하지 못하는 시골살림을 붓을 쥐어 글로 적기로 합니다. 누구보다 어린이 스스로 저희 삶을 기쁘게 사랑하기를 바라면서 글을 씁니다. 바로 동시를 쓰지요.


  어른을 바라보며 다그치듯 글을 쓸 수도 있습니다만, 이보다는 시골아이는 시골아이대로 삶을 사랑하기를 바라고, 서울아이는 서울아이대로 슬기로운 마음으로 온누리를 품어 주기를 바라는 동시입니다. 어디에서 태어나서 자라든 제 텃마을을 마음 깊이 사랑하기를 바라는 동시예요.



출석을 부를 때마다

네 자리는 비어 있었다.

열 여덟 명이 함께 배우는 5, 6학년 교실.

영숙이는 오늘도 안 왔구나

선생님이 걱정스레 말씀하실 때

우리들은 보았어요

선생님의 눈가에 맺히는 눈물 방울을.


선생님도 우리들도 모두 알고 있어요.

영숙이가 읍내 높은 사람 집에

식모살이 갔다는 것을.

보리밥이라도 실컷 먹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영숙이의 그 축 늘어진 모습을 (영숙이의 빈 자리/15∼16쪽)



  동시를 쓰던 분교마을 교사 오승강 님이 나고 자란 경북 영양은 멧골자락이 깊은 고장입니다. 영양군은 85퍼센트에 이르는 곳이 멧골이라고 해요. 《분교마을 아이들》이라고 붙은 책이름입니다만, 가만히 따지면 ‘멧골마을’이나 ‘멧마을’ 아이들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멧골을 바라보면서 태어났고, 멧골을 마주하면서 자랐고, 멧골을 오르내리면서 살림을 지은 아이들 삶을 그린 동시라고 하겠어요.


  오늘날 멧골은 어떤 곳일까요? 서울에서는 멧골을 관광지나 휴양지로 여기곤 하지만, 멧골사람으로 보자면 멧골은 관광지나 휴양지에 앞서 숲입니다. 작은 사람들이 작게 보금자리를 지어서 작게 살림을 가꾸는 숲마을입니다.


  이 숲마을에는 올봄에도 제비가 찾아와서 둥지를 지었어요. 이 숲마을에는 올여름에도 제비가 둥지에 알을 낳아 새끼를 돌보면서 하루 내내 신나게 노래를 베풉니다. 이 숲마을에는 고속도로나 기차가 지나가지 못할 뿐 아니라, 웬만한 공장조차 들어설 틈이 없다고 해요. 아마 이런저런 것이 들어서 본들, 이 고장에서는 돈벌이가 되기 어렵겠지요. 2020년대로 나아가는 오늘날 보기에 더없이 작아 보이고, 경제성장을 이루기 어려운 고장인 듯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르게 볼 수 있어요. 무시무시하게 내달린 경제성장이나 물질문명 사회를 너른 멧골숲이 막아 주었다고 할 만합니다. 끔찍한 막삽질이 들어서기 어렵도록 숲이 품어 준 고장이 바로 《분교마을 아이들》이란 동시집이 태어난 영양군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작으며 사랑스러운 손길로 마을을 짓고 숲을 돌보려는 작은 시골지기가 뿌리를 내려서 지내기에 알맞은 고장이 동시집이 태어난 영양군이며, 시골다운 시골을 바라면서 서울을 이제 떠나고 싶은 분한테는 대단히 멋지고 훌륭한 고장, 다시 말하자면 오늘날 어린이가 먼먼 앞날을 푸르면서 맑게 꿈꾸면서 살아갈 만한 고장이 동시집 《분교마을 아이들》이 태어난 영양군인 셈입니다.



텔레비젼에서는

부모님 손 잡은 아이들

고궁으로 공원으로 놀이 가는 사진 보여 주고,

어린이들 모여 즐겁게 노는 사진 보여주고, 

……


오늘은 어린이날.

아버지도 오늘 노는 날이제

잘 됐다 고추 심으러 가자.

어머니도 오늘 노는 날이제

빨리 빨리 아침 먹고

고추 심으러 가자.


아버지 오늘은 어린이날.

일하는 게 싫은 것은 아니고요

다른 날모다

저도 모르게 일하기가 싫어요.

괜히 괜히 속이 상해요

조금 전에 제 한눈 팔며

오늘은 어린이날인데 라고 말했을 때

어린이날이 밥 먹여 주나 하는 그 말씀보다

더 따뜻한 말 한 마디 듣고 싶었어요 (어린이날/17∼18쪽)



  이오덕 어른(1925∼2003)은 경북 멧골마을 어린이를 사랑으로 돌보는 나날을 살면서 멧골아이 글하고 그림을 차곡차곡 건사했습니다. 스스로 멧골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배움꽃을 작은 멧골학교에서 폈지요. 이런 땀방울은 《일하는 아이들》하고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같은 어린이 글모음으로 1970년대에 태어났습니다.


  다만, 이오덕 어른이 돌본 아이들이 쓴 글로 엮은 책은 오랫동안 판이 끊어져야 했는데, 지난 2018년에 새옷을 입고 다시 태어났어요. 1950∼1970년대를 살던 멧골아이 목소리는 바로 오늘날이기에 더욱 값지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럽다고 하는 대목을 눈여겨본 손길이 이 글모음을 되살렸습니다.


  왜 이제 와서 예전 멧골아이 목소리를 되살릴까요? 고되게 일만 하면서 ‘촌놈’이란 손가락질까지 받던 그 멧골아이 목소리는 오늘날에 어떤 값이나 뜻이나 사랑일까요?



아버지는 니 공부 못하면

중학 안 보내 준다.


어머니도 니 공부 못하면

농사일이나 시킬란다.


아버지 어머니

농사일은 공부 못 하는

사람들만 하는 건가요? (농부가 되겠어요/18∼19쪽)



  이제 한국에서는 ‘농고(농업고등학교)’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시골 중·고등학교에서 시골살이를 가르쳐서 시골에 뿌리를 내리는 길하고 동떨어집니다. 전남 고흥 같은 고장은 예전 농고를 ‘공장 보내는 실업계 고등학교’로 바꾸었다가, 요새는 ‘드론 기술자로 키우는 고등학교’로 바꿉니다. 서울에서 일자리를 찾도록, 서울에서 돈을 많이 벌도록, 하루빨리 시골에서 벗어나 서울에서 돈도 이름도 힘도 얻기를 바라는 얼거리입니다.


  이러면서 전국 모든 시골 지자체는 ‘귀촌·귀농·귀어 지원제도’를 마련하지요. 시골로 돌아오도록 북돋운다는 지원제도를 살피면, ‘도시에서 살며 돈을 많이 번 사람’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몇 억 원에 이르는 목돈이 있으면 ‘기업농·시설농’이 되도록 지원제도를 꾸려요. 농약·비닐·비료를 안 쓰고서, 더구나 기계조차 안 쓰고서 조그맣게 두 손으로 논밭을 일구며 조용히 살고 싶은 ‘귀촌인 지원제도’는 아직 어느 지자체에도 없다시피 합니다.


  그렇지만 말이지요, 시골에 가서도 목돈으로 목돈을 벌 일거리를 꾀할 서울사람도 틀림없이 있을 테지만, 이보다는 두 손으로 흙을 빚고 나무를 베어 조그맣게 흙집을 지어서 단출히 살고 싶은 서울사람도 꽤 많습니다. 품이 든다면 기꺼이 품을 들여 멧골에서 나무를 하겠노라는, 나무로 아궁이에 불을 일으켜 밥을 짓고 집안을 따뜻하게 하고 싶다는 서울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드넓은 숲을 드넓게 맞아들여서 드넓은 마음이 되고자 하는 서울사람도 많아요. 그리고 이러한 멧골살림이나 숲살림을 아이들한테 슬기롭게 물려주어서, 앞으로 도시문명이나 물질문명이 없이도 즐겁고 씩씩하며 곱게 멧사람이나 숲사람으로 키우고 싶은 서울사람도 많고요.



누나에겐 할 말이 많아.

할 말이 너무 너무 많아.

누나는 말했지

“공장 가서 돈 많이 벌어 올께

 논도 사고 밭도 사고

 우리 부자 되는 것 싫어?”

누나야!

공장이 있는 도시 얘길 들었어.

물도 돈 주고 사 먹고

일이 너무 힘들어

병만 생기기 쉽다는 얘ㅖ기,

누나보다 일 년 먼저 신발 공장 간

칠성이 누나에게 들었어. (누나에게/114쪽)



  요새는 약을 공장에서 찍습니다만, 약으로 짓는 바탕은 모두 숲에서 옵니다. 풀잎이나 풀뿌리가 바로 약이 되어요. 꽃송이나 씨앗이나 나뭇잎이나 나무줄기나 나무뿌리가 바로 약이 됩니다.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예부터 이 나라 바닷마을이나 섬마을에서는 후박나무 열매하고 줄기하고 잎을 고아서 ‘후박엿’을 고았고, 후박엿은 뱃일을 하는 뱃사람한테 둘도 없이 알뜰한 밥이었다고 합니다. 뭍사람이나 서울사람은 배를 몇 달이나 몇 해씩 탈 일이 없으니 후박엿이나 후박나무라는 이름을 모르기 일쑤라, 그만 ‘호박엿’으로 잘못 알려지곤 했는데요, 뱃멀미를 지울 뿐 아니라, 오랜 뱃길에서 몸을 튼튼히 건사하도록 이끄는 ‘약’이란 나무열매에 나뭇잎에 나무줄기였어요.


  쌀밥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바로 흙에서 나오지요. 농약이나 비료를 안 친 논에서 자란 나락하고, 농약이나 비료를 듬뿍 친 논에서 자란 나락은, 맛이나 결이 얼마나 다를까요? 어느 쪽이 몸에 이바지할까요? 서울사람은 무농약·자연농·친환경을 찾습니다. 이런 나락이나 푸성귀가 몸에 좋은 줄 알거든요. 이와 달리 시골에서는 농약도 비닐도 비료도 듬뿍 치려 합니다. 요새는 헬리콥터나 드론으로 농약을 더 세게 치고요. 젊은 일손이 없으니 농약하고 비료하고 비닐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만, 젊은 일손을 모두 서울로 떠나보낸 탓이 크기도 할 테고, 젊은 일손을 새롭게 끌어들일 마음이 모자라다고 보아야 옳지 싶습니다.


  이제는 어느 쪽이 삶길다운 삶길이 될는지 생각할 일이라고 느낍니다. 우리가 나아갈 삶길은 어느 쪽이 아름다운가를 바로 오늘부터 새롭게 생각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앞으로도 젊은 일손이 없는 시골·멧골로 나아갈는지, 앞으로는 젊은 일손이 아이를 기쁘게 낳아서 살아갈 보금자리가 될 시골·멧골로 나아갈는지, 더 늦기 앞서 이 대목을 깊이 생각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아무리 나쁜 땅에 심어 놓아도

민들레 씨앗은

민들레로 자라고 

질경이 씨앗은

질경이 새 싹을 틔우네.


아무리 좋은 땅에서 자랐어도

민들레는

민들레꽃을 피우고

질경이는 질경이꽃을 피우네.


뿌리 내린 땅이

나쁜 곳이라고 실망하지 않네.

좋은 곳이라고 넘쳐나지도 않네.

열심히 열심히 살아갈 뿐이네. (민들레 씨앗은 민들레로 자라고/108쪽)



  경북 영양이란 작은 멧골마을에서 나고 자라 작은 멧골마을 교사로 삶길을 걸은 오승강 님이 동시를 써서 묶은 뜻을 헤아려 봅니다. 이 작은 동시집이, 1984년에 나온 동시집이, 2020년대뿐 아니라 2050년대를 밝히는 새로운 노래꽃이 될 수 있는 바탕을 헤아려 봅니다. 이 작은 동시집을 오늘날 되살려서 읽거나 읽힐 값이나 뜻이나 보람이나 사랑이라고 한다면, 바로 ‘푸른사랑·푸른숲길’이지 싶습니다.


  언제나 바라보는 멧골처럼 푸르게 피어나는 사랑입니다. 언제나 바라보는 멧골을 푸르게 가꾸는 저 새파란 하늘처럼 파랗게 자라나는 꿈입니다.


  땅에서는 푸르고, 하늘에서는 파랗습니다. 멧골아이가 푸르고 튼튼한 몸이면서, 파랗게 해맑은 마음이 되기를 바라는 뜻을 담은 작은 동시집 《분교마을 아이들》이라고 느낍니다.


  동시집을 가만히 읽으면, 오승강 님은 《분교마을 아이들》이라는 책으로 어린이를 끝까지 보듬고 싶은 마음이었지 싶습니다. 스스로 너무 딱하게 처지고 만 멧골아이를 언제까지나 얼싸안고 싶은 마음으로 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빛나는 새길은 바로 이곳 멧골자락 작은마을에서 피어난다는 마음을 꾹꾹 눌러서 쓴 이야기이지 싶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집에 오면

동생은 늘 혼자 잠들어 있었어요

눈물자죽이 있는 뺨에는

파리들이 까맣게 앉아 있었어요.


빈 그릇이 밥 먹은 데로 널려 있는

부엌에서

식은 밥을 덜어 먹고

설겆이를 했어요.

깨어 우는 동생에게도

식은 밥을 먹였어요.


숙제를 하다 보면 동생은

공책 위로도 걸어 다니고

찢기도 해서 숙제할 수 없었어요.

칭얼대는 동생을 업어도 주고

달래다보면

언제나 해가 졌어요.


부엌에 동생을 데리고 앉아

저녁밥을 지으면

타오르는 불꽃마다

성난 선생님의 얼굴이 보였어요.

저녁을 먹은 뒤에는 고추도 가렸어요.


한번도 내 말을 믿지 않는 선생님.

일학년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고

공책은 왜 찢었느냐고

회초리로 제 종아리를 때리는 선생님.


선생님은 모르셔요

제가 숙제 못 해간 이유를.

제가 집에서 보내는 하루 생활을. (선생님은 모르셔요/46∼47쪽)



  아이들 삶을 똑바로 마주하면서 쓴 동시입니다. 아이들 앞길을 제대로 사랑하면서 쓴 동시입니다. 아이들 눈빛을 상냥하게 바라보면서 쓴 동시입니다. 아이들 앞날은 푸른숲이 우거진 마을에서 곱게 일어설 수 있으리라 여기면서 쓴 동시입니다.


  잊혀지려는 멧골마을 이야기를 담은 동시집으로 그치지 않는 《분교마을 아이들》이 아닙니다. 아스라한 옛일을 따스히 실은 동시집으로 그칠 수 없는 《분교마을 아이들》이라고 느낍니다.


  이제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은 사라집니다. 좁은 칸에 바글바글 가두는 교실은 시골에도 서울에도 없습니다. 외려 서울에서는 커다란 학교나 학급을 쪼개어 작은 학교나 학급이 되도록 나아갑니다. 시골에서는 조그맣게 된 학교를 닫아거는 흐름이 되었습니다만, 거꾸로 서울에서는 학교 크기를 줄이려고 해요.


  어떤 물결일까요? 옛날 시골 분교마냥 조그마한 학교로 달라지려는 서울 배움길이라면, 이런 배움길에는 어떤 속내가 흐를까요?


  작은 학교에 작은 학급일수록 참다이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얼거리라는 뜻입니다. 작은 학교에 작은 학급이 되어, 텃밭을 돌보고 나무를 심어 아끼는 배움마당을 펴려는 뜻입니다.


  한 학급에 다섯이나 열 아이만 있어도 좋습니다. 가르치는 어른 숫자가 적어도 좋습니다. 두 학년은 하나로 묶어도 좋습니다. 한 학교에 열 아이가 다녀도 좋고, 다섯 아이가 다녀도 좋습니다. 조그마하지만 포근한 배움집이 되어, 말 그대로 “배우는 보금자리(집)”가 되는 학교가 되어, 멧골이나 시골이라는 뿌리를 스스로 사랑하는 길을 나누는 흐름일 적에, 아이도 어른도 아름답게 살림꽃을 피울 수 있다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어른들 모이시면

이런 촌학교에서 공부하면

나중에 높은 사람 될 수 없다고,

어른들 모이시면

이런 촌학교에서는

더 배울 것 없다고…….


경식이

서울 무슨 학교엔가 전학갔다.

활발하고 공부 잘하던 경식이.


오늘 경식이한테서 편지 왔다.

아이들은 조그만 일에도 촌놈이라 놀리고

외삼촌 집이지만 모두가 낯선 사람

늘 혼자 방안에만 앉아 있다고

촌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편지지에 남긴

거무죽죽한 눈물자욱을 보며

선생님도 아이들도 눈물이 핑 돌았다.


전학가며

가기 싫어 울던 경식이.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교문 밖을 나가던 경식이. (전학/106∼107쪽)



  나중에 ‘큰사람’이 되어야 할 어린이일까요? 나중에 ‘아름사람(아름다운 사람)’이 되거나 ‘꽃사람(꽃처럼 곱고 눈부신 사람)’이 되면 즐거울 어린이일까요?


  멧골에서는, 숲에서는 따로 꽃씨를 안 심어도 철철이 새로운 꽃이 끊임없이 피고 집니다. 한겨울에도 피고 지는 꽃이 있어요. 얼음을 뚫고서 솟아나는 꽃이 있지요.


  멧골에서 태어나 자랄 수 있는 아이라면, 멧사람이 될 테고 숲사람이 될 테지요. 푸르디푸른 사람, 곧 푸른사람도 될 테고요. 하늘바라기를 하며 하늘사람이 됩니다. 꽃을 돌보며 꽃사람이 됩니다. 흙을 만지며 흙사람이 되고, 갖은 멧새하고 어울리면서 새사람이 되어요.


  사랑하는 마을이 사랑스러운 숲이 되기를 바란 마음이 고루고루 흐르는 《분교마을 아이들》을 누구보다 멧골이웃이 먼저 읽고, 서울이웃이 나란히 어깨동무하면서 활짝 핀 웃음꽃으로 같이 읽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어제하고 모레를 새롭게 읽으며 다함께 푸른숲으로 깨어나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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