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둡고 적막한 집에 홀로 있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140
남진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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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55


《나는 어둡고 적막한 집에 홀로 있었다》

 남진우

 문학동네

 2020.6.25.



  눈앞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어느 만큼 읽을 수 있나요? 코앞에 선 사람이 얼마나 허울을 쓰는가를 얼마나 헤아릴 수 있나요? 겉모습이나 이름이나 돈으로 아름다움이나 허울을 가리나요, 아니면 마음을 마주하면서 민낯이며 속내를 알아차리나요? 안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늘 보던 대로만 보는 사람도 많습니다. 둘레에서 으레 하는 말대로 따라가는 사람이 많고, 오롯이 우리 숨빛을 따라가면서 눈빛을 밝히는 사람은 드문드문 있습니다. 《나는 어둡고 적막한 집에 홀로 있었다》는 노래님 스스로 어둡고 고요한 자리에 있다고 말하는 듯하지만, 어쩐지 허울스럽습니다. 안 보이는 까닭은 안 보기 때문이 아닐까요? 차림새로만 보는 까닭은 차림새만 보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마음을 마음으로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기에 마음을 못 읽지 않을까요? 풀꽃나무하고 마음을 섞으려는 생각이 없기에 풀꽃나무하고 이야기를 못 하지 않을까요? 안 보인다면 보지 않아야 할는지 모르나, 볼 수 없다면 보려고 마음을 기울여야지 싶습니다. 노래를 부르고 싶다면 마음으로 볼 노릇입니다. 목청만 키운대서 노래를 부르지 않아요. 가락을 짚어야 노래가 되지 않습니다. 노래는 마음으로 듣고 살펴 마음으로 펴는 사랑입니다. ㅅㄴㄹ



일군의 병사들이 숲으로 행진해 들어갔다. 숲은 깊고 고요했다. 조만간 병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일군의 병사들이 숲으로 행진해 들어갔다. (전투/12쪽)


책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는 꿈을 꾸면서 다른 사람의 서재에 들어가 그의 서가에 꽂힌 책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을 훔쳐오기 시작했다. (책도둑/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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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창비시선 449
안도현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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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노래책시렁 164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안도현

 창비

 2020.9.25.



  바지런히 도마질을 하고 불을 올려 밥을 짓습니다. 다 지은 밥을 차곡차곡 차립니다. 부지런히 빨래를 하고, 다 마친 빨래는 아이들더러 마당에 내놓아 해바라기를 시키라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이 많이 어릴 적에는 모두 혼자 했으나, 이제 설거지쯤 아이들한테 슬쩍 맡기고, 때로는 아이들이 손수 지어 먹도록 하며, 빨래를 널고 개는 심부름은 으레 다 맡깁니다. 왜냐하면 날마다 밥을 먹고 옷을 입으며 잠을 잔다면, 밥옷집 살림이며 일을 함께해야 즐겁거든요. 2020년 첫가을에 안도현 님이 새 노래책(시집)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ㅂ 씨가 나라지기 자리에 있을 적에는 글을 쓸 마음이 안 들었는데, ㅁ 씨가 나라지기 자리에 서도록 애쓴 끝에 이제 노래책을 내놓을 만하다고 여긴다고 합니다. 나라지기를 쳐다보며 마음에 안 드는 누구 탓에 붓을 꺾을 수 있어요. 아이들을 바라보며 아이들이 아름답고 즐거이 살아갈 터전을 꿈꾸며 붓심을 더욱 키울 수 있어요. 어느 길이 옳다고 가를 마음이 없습니다. 서로 다른 눈빛으로 서로 다른 터전에서 서로 다른 마음으로 살아갈 뿐이거든요. 다만 저는 ㅂ 씨도 ㅁ 씨도 ㅇ 씨도 ㄴ 씨도 ㄱ 씨도 모두 쳐다볼 마음이 없습니다. 아이들을, 숲을, 마을을, 푸른별을, 풀꽃나무를 고이 품을 생각입니다.



전주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이후 / 아직 쓰지 못한 것들의 목록을 적었다 / 뚝 너머, 라고 부르지만 / 둑 너머, 라고 쓰면 거기가 아닌 것 같은 거기 (너머/28쪽)

.

고독하지 않기 위해 출근을 했고 밥이 오면 숟가락을 들었죠 강연 요청이 오면 기차를 타고 갔고 어제는 대통령선거를 도왔어요. (시 창작 강의/30쪽)

.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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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 - 노창재 시집 문학의전당 시인선 217
노창재 지음 / 문학의전당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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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노래책시렁 163


《지극》

 노창재

 문학의전당

 2015.11.4.



  꽃을 보기에 꽃이로구나 하고 느끼면서 꽃을 말합니다. 바람을 쐬기에 바람이네 하고 느끼면서 바람을 말하지요. 빨래를 하기에 빨래이지 하고 헤아리면서 빨래를 말합니다. 아기를 안기에 아기로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아기를 말합니다. 살아가기에 느끼고, 느끼기에 생각하며, 생각하기에 말합니다. 이 얼거리를 헤아린다면 우리는 누구나 얼마든지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책을 여밀 만합니다. 《지극》을 읽으며 노래님이 바라보고 느끼는 결에 흐르는 빛을 생각합니다. 이러한 빛은 어떠한 글자락으로 담아내 볼 만할까요? 이러한 빛은 ‘문학·시·문장’으로 담아내면 좋을까요, 아니면 ‘삶·사랑·살림’으로 담아내면 좋을까요? 어려울 일도 쉬울 일도 없어요. 오직 삶입니다. 힘들 일도 가벼울 일도 없어요. 늘 사랑입니다. 먼 일도 가까운 일도 없지요. 한결같이 살림입니다. 삶자리에서 바라본 길을 글로 옮기면 좋겠습니다. 사랑터에서 나눈 하루를 글로 담으면 좋겠습니다. 살림집에서 도란도란 지은 꿈을 글로 펴면 좋겠습니다. 삶이 아닌 문학으로 기울면 어쩐지 겉치레 같습니다. 사랑이 아닌 시를 쓰면 어쩐지 꾸민 티가 납니다. 살림 아닌 문장을 생각하면 어쩐지 겉돌다가 끝납니다. ㅅㄴㄹ



개울에 비친 모래알이 너무 고와서 / 한 아이가 저도 모르게 손을 담갔습니다 / 누가 볼록렌즈를 얹었을까요 / 아이의 손등으로 수천의 물길이 생겼습니다 (버들치/30쪽)


꽃씨 하나씩 가두어 / 물이 걸어갑니다 / 물 모서리 뒤로 새순이 자욱합니다 / 순한 계절을 데려다 놓았습니다 / 하늬, 바람이 불어 / 숲이 넘칩니다 (꽃잎열쇠/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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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문학동네 시인선 145
이병률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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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56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이병률

 문학동네

 2020.6.25.



  가고 싶다면 가면 됩니다. 가는 길을 막을 사람은 없습니다. 빨리 못 간다고 투덜거린다면, 그저 투덜길입니다. 오고 싶다면 오면 됩니다. 오는 길을 거스를 사람은 없습니다. 얼른 못 간다고 투정부린다면, 그저 투정쟁이예요. 담배 한 개비가 그리우면 담배를 태우면 돼요. 술 한 모금이 애틋하면 술을 마시면 됩니다. 슬프고 싶기에 슬프고, 기쁘고 싶기에 기뻐요. 누가 괴롭히거나 떠나기에 슬프지 않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슬픔으로 물들이니 슬픕니다. 누가 뭘 주거나 치켜세우기에 기쁘지 않아요. 스스로 마음을 기쁨으로 적시니 기뻐요.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를 읽다가 가을날 하늘빛을 올려다봅니다. 저는 가을빛을 누리고 싶어 하늘도 보고 멧골도 보고 숲도 봅니다. 아이들 얼굴도 보고 우리 집 뒤꼍이며 마당을 보고, 찬바람에도 아직 날갯짓하는 나비를 봐요. 그 길을 가려는 아이는 오직 그 길을 생각하기에 걸림돌이 없어요. 그곳에 있으려는 아이는 오로지 그곳을 꿈꾸기에 외롭지 않아요. 마음을 달래고 싶은 이웃님한테 늘 “누가 달래 주지 못해요. 어느 글도 못 달래요. 이웃님 스스로 마음에 사랑씨앗을 심으셔요.” 하고 말합니다. ㅅㄴㄹ



술만 마실 수 없어 달걀 두 개를 삶습니다 (아무도 모르게/20쪽)


하루 한 번 삶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당신 얼굴 때문입니다 (얼굴/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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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같은 마음 민음의 시 270
이서하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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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53


《진짜 같은 마음》

 이서하

 민음사

 2020.5.8.



  문학을 하고 싶은 사람은 문학을 합니다. 수필을 쓰고 싶은 사람은 수필을 씁니다. 삶꽃을 하고 싶은 사람은 삶꽃을 합니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글을 씁니다. 이름만 다른 길이 아니라, 생각이 다르고, 삶이 다르며, 사랑이 모두 달라요. 어린이한테 소설을 쓰라고 시키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린이더러 동화를 쓰라고 다그치는 사람도 없습니다. 어른이 되어야 쓰는 소설이나 동화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소설이나 동화란 그저 ‘글 갈래에 붙이는 이름’일 뿐, 이런 이름을 굳이 알지 않더라도 ‘무엇을 쓰면서 생각을 그려 삶을 밝히려느냐’를 느껴서 받아들이면 넉넉해요. 《진짜 같은 마음》을 읽습니다. 문학이요 시입니다. 문학이나 시인 터라, 삶꽃이나 글은 아닙니다. 조금만 힘을 빼면 어떨까요? 아니 아예 모든 힘을 빼면 어떨까요? 문학이나 시라는 이름을 내려놓으면 어떨까요? 참이 아닌데 참처럼 보이는 마음이라면 거짓입니다. 참은 그저 참일 뿐, 참처럼 보이지 않아요. 거짓도 그저 거짓일 뿐, 참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하루를 스스로 즐거이 지으려는 마음이라면 모두 삶꽃이에요. 이런 삶을 눈물로든 웃음으로든 풀어놓으면 모두 글입니다. ㅅㄴㄹ



그는 부모의 착한 아이였고 나는 없어 보이고 싶지 않은 아이였다 / 나는 그처럼 행동했다 코를 만지는 버릇, 그의 웃음까지 (숨탄것/24쪽)


현실은 실재와 달라서 ‘건드린다’는 표현은 의도적으로 묘사된다 빨주노초파남보 시멘트 위에 시멘트를 쌓는다 / 당신은 인간입니까. 시멘트입니다. 당신은 남입니까. 검정입니다. 당신은 미장이입니까. 작품입니다. (콘크리트 균열과 생채기, 얼룩, 그리고 껌딱지로부터/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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