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창비시선 164
김선규 지음 / 창비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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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1.3.13.

노래책시렁 182


《어머니》

 김선규

 창작과비평사

 1997.7.15.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된 몸으로 새롭게 아이를 낳습니다. 아이는 또 자라서 새 어른이 되고, 새삼스레 아이를 낳습니다. 똑같은 사람이 아이·어른(어머니나 아버지)이란 길을 걸으면서 할머니·할아버지란 이름을 얻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몸은 다릅니다. 속으로 흐르는 마음은 같습니다. 삶이라는 자리에서 새기는 이야기를 새롭게 쌓고, 살림이라는 길에서 가꾸는 노래를 새록새록 여미고, 사랑이라는 꿈으로 짓는 눈빛을 차곡차곡 남깁니다. 《어머니》는 글님이 이녁 어머니한테서 이야기를 듣는 얼거리로 꾸리는구나 싶습니다. 황해도사람인 어머니가 인천 앞바다 섬을 거쳐 인천으로 깃드는 발자취를 귀여겨듣고, 글님이 어릴 적에 지켜본 여러 어른들 모습을 버무립니다. 글님은 어머니 곁에서 언제나 아이입니다. 그런데 어머니한테서 듣는 이야기에 나오는 ‘예전 어머니 삶’이란 ‘오늘 글님 나이에 치른 삶’입니다. 어떻게 살아가는 발걸음으로 이야기를 쌓겠습니까? 어떻게 살림하는 몸짓으로 이야기를 여미겠습니까? 어떻게 사랑하는 눈빛으로 이야기를 남기겠습니까? 여태까지 눈물 곁에 멍울을 놓았기에, 웃음 옆에 노래를 두었기에, 꾸덕살 곁에 소꿉놀이를 차렸기에 글줄로 실타래를 풀어놓을 수 있겠지요.


ㅅㄴㄹ


남의 집 신세 열흘이면 길고 길었지 / 장판지는 못 깔았지만 오늘부턴 예서 자자. / 집 앞으로 다시 돌아가 용마루 훑어보고 / 남편서껀 식구들, 방에 들어앉았다. / 아들 셋에 시누이꺼정 모두 일곱 명 / 고구마 삶아 먹으면서 유성기를 틀었어. (16쪽/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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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개울에서 물총새가 놀다 갔지. / 오늘은 그 개울 아래 우리 집 논에서 / 뜸부기가 숨어서 노래를 하누나. / 벼포기를 헤쳐보지만 빨리도 달아나 / 꼬리를 밑에 감춘 알 몇개만 찾았다. (101쪽/김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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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기억 삶창시선 55
이철산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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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노래책시렁 180


《강철의 기억》

 이철산

 삶창

 2019.6.28.



  일하는 사람한테는 ‘일하는 말’이 있습니다. 살림하는 사람한테는 ‘살림하는 말’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사랑하는 말’이 있습니다. 겉모습을 꾸미는 사람한테는 ‘꾸미는 말’이 있고, 겉치레에 얽매인 사람한테는 ‘치레하는 말’이 있어요. 우리는 저마다 다르게 살아가기에 다 다르게 살아가는 말이 있기 마련입니다. 즐겁고 노는 어린이한테는 ‘즐거운 놀이말’이, 신나게 노는 어린이한테는 ‘신나는 놀이말’이, 재미나게 노는 어린이한테는 ‘재미난 놀이말’이 있지요. 일하는 자리에 선 어른은 어떤 ‘일말’을 곁에 둘까요? 《강철의 기억》을 읽다가 ‘폐기처분·자진출두·평생소원·극락정토’ 같은 말씨가 자꾸 눈에 들어옵니다. 이러한 말씨를 일하는 자리에 얼마나 쓰는지 모르겠어요. 일터에 높거나 낮은 자리가 있을까요? 틀(기계)을 잡는 사람도, 붓(펜)을 잡는 사람도, 높거나 낮지 않습니다. 그저 그들 자리에서 일할 뿐입니다. 예전에 흙을 만지던 어른은 “넌 참 무쇠같구나”라든지 “넌 참 차돌같구나” 하고 말했지만, 어느덧 ‘강철’ 같은 말씨만 흩날립니다. 우리 일자리란 무엇을 떠올리는 숨결일 적에 어깨동무가 되면서 함박웃음이 되려나요. 입으로만 일하는 이들한테 어떤 일말을 들려줄 만할까요.


ㅅㄴㄹ


처음 출근하던 날 작업복 입고 설레고 막막하던 날 생각나 / “그래 높은 사람들이 뭐라카드노?” / “시키는 대로 하라 카던데예.” (24쪽/어린 노동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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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에 갈 때도 승용차를 몬다는 그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 하루 수십 리 골목길을 숨어 다녔던 노동운동가였다 공장에서 기계 한 번 제대로 돌린 적 없지만 노동운동 배후로 찍혀 몇 년을 도망 다녔다 파업 때마다 신출귀몰하던 그를 잡기 위해 수십 명의 전담반이 쫓았다 그는 정권이 바뀌자 재빠르게 자진 출두해 죗값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노동자에게 배신당했다고 하소연하는 그는 노동연구소 간판을 내걸었다 노동을 연구하다니! 어쩌다 술자리에서 그는 횡설수설 육교 공포증을 하소연했다 (68쪽/육교 공포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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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공장 장미꽃 애지시선 5
엄재국 지음 / 애지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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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1.2.12.

노래책시렁 179


《정비공장 장미꽃》

 엄재국

 애지

 2006.1.27.



  저는 어릴 적부터 되게 일찍 일어났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도시락을 싸고 집일을 챙기느라 그야말로 날이 안 밝은 새벽 아닌 늦밤에 일어날 적에 함께 눈을 떴어요. 어머니는 으레 네 시 무렵이면 하루를 열더군요. 이러면서 가장 늦게 자요. 저는 여덟 살 무렵부터 어머니하고 똑같이 하루를 열었고, 어느 때부터인가는 하루를 한두 시부터 열었습니다. 이런 두 사람하고 달리, 우리 집 큰아이는 으레 열 시나 열한 시가 되어야 하루를 엽니다. 이러고서 좀 늦게 잠들려 하지요. 뭐 한지붕이어도 서로 다른 삶빛이니 그러려니 하는데, 그만큼 꿈이 깊구나 하고 여깁니다. 《정비공장 장미꽃》을 읽으면서 일돌이(공돌이)라고 하는 자리는 무엇일까 하고 새삼스레 되새깁니다. 일돌이 자리에서 일순이를 어떻게 바라볼 만한가 하고, 일돌이는 일순이하고 얼마나 어깨동무를 하려나 하고 돌아봅니다. 일은 밖에서만 하지 않아요. 일은 집 안팎 어디에나 있어요. 일은 크고작기만 하지 않아요. 사랑으로 품고 기쁘게 안을 일이 있습니다. 이 나라이든 이웃나라이든 ‘노동문학’이란 이름이 큰데, ‘살림글’은 어디에 있을까요? ‘삶을 사랑으로 짓는 수수한 어버이 글’은 어디에 있을까요? 글에서 힘과 목소리를 빼고 사랑과 노래를 담으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이승을 떠나는 사람들이 차표 없이 / 즐겨 승차하네 / 목적지에 닿아도 아무도 내리는 이 없네 // 일어섰다 홀연히 드러눕는 / 구름마당, 구름 흙, 구름 기둥 // 초가 한 채 지상을 다녀가네 (구름 폐가/18쪽)


서너 살 계집애가 맨땅에 / 사타구니 사이로 녹물을 찔끔 흘리는 봄 / 허공이 녹슬면 꽃이 피는가 / 홍매화 가득한 뒷뜰 그쪽 허공이 녹슬었다 / 어머니를 땅에 묻고 / 한 사람의 생애를 갈무리하는 무덤이 (녹, 봄봄/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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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중심 삶창시선 47
정세훈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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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노래책시렁 180


《몸의 중심》

 정세훈

 삶창

 2016.11.29.



  큰아이가 뒤꼍을 둘러보고서 “아버지, 산수유나무가 곧 꽃이 터질 듯해. 봉오리에 노란꽃이 살짝살작 보여.” 하고 말합니다. 큰아이가 말하기 앞서 진작 보았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는데, “그래, 그렇구나.” 하고만 대꾸했습니다. 처음 들은 척해야지요. 큰아이 말을 듣고서 이틀쯤 지나서 곁님한테 “올해에는 우리 집 산수유나무가 꽃을 엄청나게 피우려고 해. 매화보다 훨씬 먼저 피겠는걸” 하고 말하니 “산수유꽃? 난 못 봤는데?” 해서 그저 빙그레 웃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래요. 몸이 힘들거나 고되거나 아프면 함께 보았어도 잊기 쉽고, 마음이 환하거나 튼튼하거나 가벼우면 미처 못 보았어도 웃음꽃으로 맞아들여요. 《몸의 중심》을 읽는 내내 꽤 버거웠습니다. 노래님은 우리더러 같이 버겁자고 외치는구나 싶더군요. 그래요, 이 나라는 도무지 어깨동무보다는 외곬로 치달으니 노래 한 자락조차 버거운 이야기로 가득 채울 만합니다. 그런데 저쪽 자리 사람들이 나라지기를 맡기에 버거울까요? 이쪽 자리 사람들이 나라지기를 맡으면 안 버거울까요? 노래하는 정세훈 님 글 가운데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살림을 가꾸는 이야기’는 못 봤습니다. 바깥일도 대수롭겠습니다만, 우리 ‘복판’은 어디에 있을 적에 사랑이 될까요?


ㅅㄴㄹ



춥고 배고프고 누울 곳 없는 / 저 아슬아슬한 / 생 앞에서 // 투신하고 목을 매는 / 막막한 / 주검 앞에서 // 세상만사 다 그런 거라고 / 그저 그런 거라고 / 이런 모습도 있고 / 저런 꼴도 있는 법이라고 (나는 더 아파야 한다/58쪽)


내가 아무리 돈이 없는 / 놈이지만 / 이건 너무 싸다 / 가난한 내가 사기에도 싸다 / 달라는 대로 주고 사기에 미안하다 (싸도 너무 싸다/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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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하나를 사이로 창비시선 150
최영숙 지음 / 창비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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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노래책시렁 176


《골목 하나를 사이로》

 최영숙

 창작과비평사

 1996.6.25.



  곁님이 문득 “똑같은 일이어도 여자가 보는 눈하고 남자가 보는 눈이 달라요.” 하고 말합니다. 더없이 마땅합니다. 아이들이 곁님(어머니) 말을 귀담아 듣습니다. “얘들아, 너희가 보는 만화영화 가운데 여자 감독이 그린 것보다 남자 감독이 그린 것이 훨씬 많아.” 곰곰이 보면 ‘소년 만화’란 이름을 붙여 ‘치마 들추기 응큼질’을 곧잘 그리더군요. 아다치 미츠루 같은 사람이 이런 그림을 즐깁니다. 이이뿐 아니라 숱한 ‘사내’가 그래요. 타카하시 루미코 님은 하늘을 나는 아이를 그려도 ‘치맛속이 안 보이도록’ 합니다. 《골목 하나를 사이로》를 한 해 동안 책상맡에 놓고서 되읽었습니다. 노래님은 2003년에 흙으로 돌아갔기에 더는 노래를 못 남깁니다. 그러나 조용히 남긴 노래 몇 자락을 되새기면서 ‘이 땅과 푸른별을 바라보는 눈길’을 새록새록 생각합니다. 이 나라에서 누가 ‘인형’일까요. 이 터전에서 누가 ‘혼자’일까요. 옛날 옛적에 “암수 서로 살갑구나” 하는 노래가 흘렀습니다. 둘은 서로 다르기에 살가우면서 사랑을 속삭일 만합니다. 똑같을 적에는 사랑이 피어나지 않아요. 다르기에 사랑이 깨어납니다. 다른 암수는 다르면서 빛나는 사랑을 지으며 스스로 노래가 됩니다. 그래요, 사랑이라면 노래일 테지요.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주민들은 항의했다 / 아이들 교육상 안 좋은 저곳을 철거하라, / 유리 속의 인형 인형 같은 여자들은 말했다 / 당신들보다 오래 산 우리가 이곳의 주인이다. (유리 속의 인형/29쪽)

내 친구 애경은 상도동에서 혼자 산다 / 서른여섯의 독신, 아이들 글짓기 가르치며 / 한강 건너 다섯 가구가 사는 연립주택 / 그 중에 방 하나 세들어 산다 (그 집 찾아간다/45쪽)


늑장인 나의 출근보다 먼저 / 칠순의 새벽 새마을공사장 / 하얀 머릿수건을 고쳐 매시며 / 이거 한번 맛보라고 / 그리 공부해서 무에 될라느냐고 (식혜/80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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