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의미 민음의 시 169
김행숙 지음 / 민음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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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1.6.16.

노래책시렁 188


《타인의 의미》

 김행숙

 민음사

 2010.11.11.



  인천에서 오동나무를 참 흔하게 보았습니다. 오동나무를 심어서 돌보면 딱히 열매가 대단히 맺지도 않을 텐데, 잎이 넓적하게 퍼지고 꽃이 바알갛게 피는 모습을 볼 때면 ‘이래서 오동나무를 심을까?’ 하고 돌아보곤 합니다. 가을이 되어 잎이 지면 오동나무는 어찌나 앙상해 보이는지, 이러면서 봄에 또 얼마나 푸릇푸릇 오르다가 여름을 시원하게 덮는지, ‘열매를 누릴 마음이 아니어도 나무를 보듬는 손길’을 천천히 느꼈어요. 《타인의 의미》를 되새기다가 여름날 오동꽃을 손바닥에 소복하게 주웠습니다. 우리 집 뒤뜰에는 여느 오동나무가 아닌 개오동나무란 이름인 나무가 제법 우람합니다. 어느 분이 언제 심었는지 모르나, 이 오동꽃(개오동꽃)은 몸을 살리는 길에 값지게 쓴다고 해요. 꽃을 몸살림길에 쓴다면 잎도 줄기도 열매도 모두 몸살림길에 쓸 테고, 굳이 꽃·잎·알을 안 훑어도 나무 기운으로도 몸을 살리리라 생각합니다. 노랫가락은 빼어나야 마음을 살찌우거나 씻지 않습니다. 그저 흥얼거리는 가락 하나여도 낱말 두어 마디여도 마음을 살찌우거나 씻어요. 노래를 하는 길을 걸을 적에 나무를 곁에 두면 좋겠어요. 시골에서든 서울에서든 나무 한 그루를 심고, 나무 곁으로 다가가서 가만히 눈을 감으면 좋겠어요.


ㅅㄴㄹ


눈을 떴는데, 눈을 감았을 때와 같은 어둠! / 당신의 몸은 없고 당신의 목소리만 있습니다. 부엉이는 없고 부엉이의 눈빛만 허공에 떠 있습니다. (밤입니다/20쪽)


얼어붙은 마음이 녹으면서 / 차츰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 더욱 외로워졌어요 (따뜻한 마음/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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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독면 (일반판) 문학동네 시인선 5
조인호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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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1.5.29.

노래책시렁 187


《방독면》

 조인호

 문학동네

 2011.6.20.



  찔레꽃이 뒤꼍에 가득한 끝봄에 찔레내음을 듬뿍 머금었더니, 어느새 찔레꽃은 하나둘 지면서 석류꽃이 핍니다. 이제 석류내음을 물씬 머금는데, 곧이어 터지려는 갯기름나물 꽃망울이 몽글몽글합니다. 이 꽃 다음에 저 꽃이 있고, 저 꽃 다음에 그 꽃이 있어요. 이동안 감꽃이며 고욤꽃은 바지런히 비처럼 떨어집니다. 《방독면》을 읽다가 가만히 내려놓았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을 보면서 어떤 내음을 받아들이는 하루를 지을 생각인가요. 우리는 스스로 어떤 눈코귀입이 되어 무엇을 마주하려는 삶을 가꿀 셈인가요.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마라’ 하고 누가 말하던데, 어떻게 꽃을 쥔 손으로조차 ‘때림질’을 떠올리는지 알쏭했습니다. 무엇보다 ‘하지 마라’ 아닌 ‘꽃내음으로 서로 사랑하자’처럼 말하지 못하도록 억눌린 우리 민낯을 새삼스레 생각했어요. 참 오래도록 이 나라에서는 작대기를 몽둥이로 삼아 두들겨팼습니다. 작대기를 바지랑대로 삼을 생각을 안 했고, 작대기로 지팡이를 다듬을 생각을 안 했어요. 똑같은 나무를 ‘생각과 삶’에 따라 다르게 부립니다. 똑같은 낱말을 놓고도 우리는 노래를 부를 수 있지만, 멍울이나 생채기를 자꾸 터뜨리는 제자리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부디 첫봄 어귀에 꽃빛을 마주해요.


ㅅㄴㄹ


소년의 한 손에 쇠파이프가 들려지던 순간 / 소년은 변형됐다 // 시나브로, 소년은 생존했다 / 척후병처럼 적에게 발각되지 않았다 / 옥탑 난간 위 붉은눈비둘기를 사냥했고 (뉴 키즈 온 더 블록/15쪽)


타석에 들어선 직립한 타자들이 허공을 보았다 외계에서 날아온 마구 앞에선 어떤 타자도 그 공을 칠 수 없고 캐치해낼 수 없다 / 태초에 인간은 우주 속을 부유하던 야구공! (마구魔球/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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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과 늑대 - 개정판 문학동네포에지 20
이현승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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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1.5.29.

노래책시렁 186


《아이스크림과 늑대》

 이현승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8.31.



  하루가 즐거워 노래로 피어나는 사람은 굳이 글을 안 쓸는지 모릅니다. 하루가 아름다워 웃음으로 퍼지는 사람은 딱히 글을 안 읽을는지 모릅니다. 가만 보면 그렇더군요. 고단하고 싫고 밉고 짜증스러운 바람을 마음에 놓기 싫어서 글을 쓰거나 읽는 이웃이 많아요. 저부터 그랬고요. 손에 책을 쥐거나 붓을 잡으면 더위도 추위도 잊습니다. 한 칸에 즈믄(1000)이 넘게 타고 바람날개(선풍기)조차 없던 끔찍하던 인천·서울 전철에서도 손에 책을 쥐면서 “난 납작오징어가 아닌 사람이야” 하고 생각하면서 살아남았습니다. 《아이스크림과 늑대》를 읽으며 쳇바퀴 살림살이는 저 높은 데에서 누가 만들어서 가두는 틀이 아니로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누가 우리를 묶어 놓기에 갇히지 않습니다. 언제나 스스로 갇힙니다. 걱정꾼이 옆에 있어서 걱정이 물들 수 있지만, 스스로 걱정이라는 씨앗을 심기에 우리한테 걱정이 스며들어요. 우리가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으면 곁에 있는 걱정쟁이한테 되레 사랑이 스며들지요. 노래란 무엇일까요. 무엇이든 부르면 노래인데, 우리가 부르거나 듣는 노래는 우리 마음에 어떤 쳇바퀴질이나 사랑을 심을까요? 오늘도 쳇바퀴 시름질을 잊으려고 읽는지, 아니면 사랑으로 녹여내려고 읽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ㅅㄴㄹ


리턴, 리턴, 리턴, 그리하여 삶은 무한반복이네 / 누구든 이 골목에서는 갑작스레 날아오르고 싶네 / 아니, 날아오르는 자들이라면 가급적 그를 만나는 게 좋네 (슈퍼맨 리턴즈/15쪽)


걱정이 걱정이다 어머니는 자나 깨나 서울 걱정 나는 어머니의 걱정이 걱정이지 아침부터 건 전화 저편에서 어머니 마실견문록이 펼쳐진다 올봄에 데릴사위로 장가간 7촌이, 변호사 개업한 6촌이, 일가의 안녕과 불안이, 서른을 넘긴 아들이, 일흔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걱정이다 (걱정이 걱정이다/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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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 거짓 사랑아 민음의 시 102
문정희 지음 / 민음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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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1.4.24.

노래책시렁 184


《오라, 거짓 사랑아》

 문정희

 민음사

 2001.9.22.



  사랑에는 거짓이 없다고 느낍니다. 사랑은 오롯이 사랑입니다. ‘거짓 사랑’이 아닌 ‘거짓’이 있을 뿐이지 싶습니다. 거짓스럽게 굴면 사랑도 삶도 사람도 살림도 숲도 아닐 테지요. 이때에는 ‘척·체’입니다. 아는 척을 한다잖아요? 못 본 체를 한다지요? 숲인 척 꾸민대서 숲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인 척 꾸미기에 사람이 될까요? 숲으로 있어야 숲이고, 사람으로 살아야 사람입니다. 언제나 그저 사랑일 때라야만 사랑입니다. 사랑인 척 구는 모든 몸짓이나 말짓이라면 ‘거짓 사랑’이 아닌 오로지 ‘거짓’입니다. 《오라, 거짓 사랑아》는 노래님이 맞닥뜨리는 수수한 하루에서 글감을 길어올립니다. 아무렴, 누구나 스스로 노래하는 삶에서 스스로 노래하는 글을 얻어요. 바깥을 볼 일이 없습니다. 남을 구경할 일이 없습니다. 사랑이 아닌 거짓을 오라고 부를 까닭이 없고, 사랑이 아닌 거짓으로 속삭일 까닭조차 없어요. 저기가 아닌 여기를 봐요. 네가 아닌 나를 봐요. 놈이 아닌 나를 보고, 먼곳이 아닌 이곳을 봐요. 거짓 사랑도 참된 사랑도 아닌, 아무런 꾸밈말을 붙이지 않는 사랑을 가만히 봐요. 사랑을 바라보기에 사랑노래입니다. 사랑 아닌 거짓을 바라본다면 이때에는 늘 거짓노래가 될 뿐일 테지요.


ㅅㄴㄹ


여름 다 지나고 신선한 초가을날 /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 보라색 여름바지 하나 사 들고 돌아오며 / 벌서 차가운 후회가 바람처럼 숭숭 / 뼛속으로 스미어옴을 느낀다 (보라색 여름바지/22쪽)


내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할 때 /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 그때 나는 별을 바라본다 (내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할 때/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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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 가네코 미스즈 전집
가네코 미스즈 지음, 서승주 옮김 / 소화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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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1.4.19.

노래책시렁 159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

 가네코 미스즈

 서승주 옮김

 소화

 2006.2.21.



  누가 좋다고 알려주기에 좋구나 싶은 글이지는 않습니다. 누구 마음을 움직일 뿐 아니라, 이 마음에 사랑스럽거나 즐겁거나 아름답네 싶은 씨앗을 살며시 건네기에 좋구나 싶은 글입니다. 다만 누구 마음에는 사랑씨나 아름씨가 퍼질는지 몰라도, 모두한테 이 씨앗이 뻗지는 않아요. 어떤 이는 풀밭을 시멘트로 밀거나 삽차로 파헤치면서 씨앗이 깃들 자리를 없앱니다. 어떤 이는 자동차를 내달리거나 싸움연모(전쟁무기)를 휘두르면서 씨앗을 죽입니다. 어떤 이는 풀죽임물이나 비닐로 씨를 말려 버리지요.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는 바닷마을 조그마한 보금자리에서 태어난 노래를 묶습니다. 이 노래책에는 더없이 수수하구나 싶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런데 ‘수수한’ 이야기야말로 ‘아름답’기 마련이에요. 수수한 살림을 그리지 않으니 참으로 안 아름답습니다. 늘 부는 바람이기에 아름답고, 노상 내리쬐는 햇볕이라서 사랑스러워요. 늘 토닥이는 어버이 손길이기에 아름답고, 노상 뛰노는 아이들 웃음꽃이라서 사랑스럽지요. 글감을 먼발치에서 찾으려 하니 꾸밉니다. 이야깃감은 모두 우리 보금자리에 있는 줄 알기에 수수하게 옮기면서 스스로 빛납니다. 내가 있고 작은 새랑 풀꽃이 있으며 방울에 눈비에 구름이 함께 있습니다.



항구는 축제로 / 들떠 있지만 / 바닷속에서는 / 몇만 마리 / 정어리의 장례식 / 열리고 있겠지 (풍어/23쪽)


아무도 모르는 들녘 끝에서 / 파란 작은 새가 죽었습니다. / 춥디추운 해 저물녘에 // 그 주검 묻어 주려고 / 하늘은 흰 눈을 뿌렸습니다. / 깊이깊이 소리도 없이 (눈/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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