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에서 슬픔은 안 된다 - 김상혁 시집 민음의 시 192
김상혁 지음 / 민음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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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1.11.12.

노래책시렁 193


《이 집에서 슬픔은 안 된다》

 김상혁

 민음사

 2013.3.15.



  서울 서초 ‘서리풀쉼터’에서 재미난 알림글을 보았습니다.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는 마을사람이 포근히 잠들도록 ‘쉼터(공원) 불을 끈다’고 하더군요. 맞는 일입니다. 살림집으로 거리불빛이 스며들면 밤잠을 이루기 힘들어요. 이는 시골도 매한가지입니다만, 적어도 00시∼04시 사이에 모든 거리불을 끄는 고장은 얼마나 될까요? 이 대목에 마음쓸 줄 아는 벼슬아치나 글꾼은 몇이나 있을까요? 《이 집에서 슬픔은 안 된다》를 읽으면서 ‘이 집’하고 ‘슬픔’이 무엇을 나타내는가 하고 한참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아무래도 ‘수수한 사람들 여느 살림집’이나 ‘낮고 작은 자리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시골에서 풀꽃나무를 사랑하며 지내는 사람이 마주하는 슬픔’하고는 멀구나 싶습니다. 온갖 사람이 있기 마련이니 마치 자랑이나 하듯 밤새 집 안팎으로 환하게 불빛을 밝히는 집이 있고, 해가 저물면 불을 켜더라도 가볍게 켤 뿐 일찌감치 하루를 마감하고 아이들하고 새근새근 꿈나라로 가는 집이 있어요. 눈이 부시게 불빛을 밝히는 삶을 누린다면, 이러한 삶대로 글을 씁니다. 서울스럽겠지요. 해가 지면 굳이 불을 켜지 않거나 ‘백열전구’를 살짝 켜고서 별빛을 누리는 삶이라면, 이 삶결대로 글을 씁니다.


ㅅㄴㄹ


그러니까 말할 수 없었다 / 왜 그런 것인지 대답할 수 없는 슬픔은 / 금지되곤 햇다 내가 치마를 입고 죽어 있다 해도 / 집에서 불쌍해지는 건 내가 아니었다 / 그건 이상한 일이지만 / 어머니는 매일 일을 나갔다 (학생의 꽃/19쪽)


당신이 좋아 조롱하는 입꼬리, 비뚤어진 그 젖꼭지가 좋아 사해처럼 고이고 악취 나는 물이 좋아 당신이 너무 좋아 글로벌한 당신 유니크한 당신 아무리 밀어 넣어도 닿지 않는 당신 너덜너덜하고 변형되는 당신이 좋아 (당신 같은 작품/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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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하늘길 창비시선 63
양성우 지음 / 창비 / 198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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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1.11.11.

노래책시렁 200


《그대의 하늘길》

 양성우

 창작과비평사

 1987.10.10.



  삶이란 바라보는 자리에 따라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합니다. 삶이란 스스로 서는 자리에 따라 좋기도 하고 궂기도 합니다. 삶이란 언제 어디에서 입을 벙긋하며 이야기를 터뜨리느냐에 따라 빛도 되고 어둠도 됩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우두머리 노릇도 하고, 이명박을 나라지기로 힘껏 밀기도 했던, 떠난 노무현한테 재떨이를 던져 이를 부러뜨리기도 했던, 우리말(국어)을 가르치는 노릇을 하다가 박정희한테 찍히기도 했던, 이제는 고양시에서 조용히 글만 쓴다는 분이 1987년에 쓴 《그대의 하늘길》을 읽고서 이녁 발자취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몸이 있으니 뛰고, 손이 있으니 글을 쓴다는데, 어떤 눈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보고서 움직이는 몸이요 쓰는 손이었을까요? 모든 말글은 언제나 스스로 돌려받으려고 내놓기 마련입니다. 거친 말씨도 고운 말씨도 늘 스스로 비추는 거울입니다. 수수한 삶길도 겉치레 삶길도 노상 스스로 짓는 하루입니다. 노래님은 스스로 ‘브리지’가 되겠노라 자주 읊었는데, 우리말 ‘다리’도 한자말 ‘교두보’도 아닌 영어 ‘브리지’를 굳이 골라서 읊조리는 노래라면 “당신의 친미주의”일까요? 아니면 ‘내멋남못(내가 하면 멋있고 남이 하면 못나다)’일까요? 핑계는 노래하고 멉니다.


ㅅㄴㄹ


사람이 남들을 티없이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 / 그렇지만 그대 지금까지 늘 빈손일 뿐이고 / 오직 하나 숨어서 사랑하는 재주밖에 가진 것이 없으니, (다시 친구에게/57쪽)


굿모닝 웰컴. 식사 전에 환담을 나누시지요. 커피와 함께 여송연도 피우시구요. 국제어로 말씀하시고, 오케이 오우케이 무조건 고개를 주억거리십시오 …… 말 못할 사정이 있으실 때는 개 죽는 소리로 신호를 보내시지요. 끼잉낑낑 끼잉낑낑. 당신의 헌신적인 친미주의가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영원히 지켜줄 것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땡큐 때앵큐. (당신의 친미주의/86∼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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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자꾸 뒤돌아보네 문학의전당 시인선 318
최준렬 지음 / 문학의전당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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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1.9.27.

노래책시렁 197


《당신이 자꾸 뒤돌아보네》

 최준렬

 문학의전당

 2020.2.27.



  호미질을 하는 하루를 고스란히 옮기는 노래는 포근합니다. 도마질을 하는 살림을 그대로 들려주는 노래는 따스합니다. 아기를 품에 안고서 토닥이는 나날을 찬찬히 읊는 노래는 사랑스럽습니다. 아이들하고 숲길을 걸으며 풀꽃나무를 누리는 노래는 아름답습니다. 다만, 날이 갈수록 이러한 노래를 펴는 글바치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호미질을 안 하고 도마질을 안 하며 아기를 스스로 안 돌보고 맨몸으로 가벼이 숲으로 깃들지 않으니까요. 《당신이 자꾸 뒤돌아보네》를 읽으면서 ‘골프채 쥐는 글’을 자꾸 마주합니다. 요새는 골프를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까 얼마든지 노래로 옮길 만합니다만, 이 책에 흐르는 ‘골프채 쥔 이야기’는 하나부터 끝까지 겉멋을 지나치게 부립니다. 남한테 자랑하려고 골프채를 쥐나요? 골프채를 쥐며 논다고 우쭐거리고 싶어 글을 쓰나요? 빗자루부터 쥐고서 마루를 쓸어 보기를 바랍니다. 손에 아무것도 쥐지 말고 맨발로 풀밭에 서서 나비를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비오는 날에 맨몸으로 비를 맞으면서 빗물맛을 느껴 보기를 바랍니다. 겉으로 치레하는 하루가 아닌, 삶이 비롯하는 자리에서 피어나는 숨결을 처음부터 새롭게 맞아을이는 눈길로 다스리고서 앞길을 내다보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엄마는 찾지 않는데 / 기억에도 없는 엄마를 아이는 왜 찾는 것일까 // 남의 일처럼 건조하게 물으면서 / 내 마음을 다독거린다 (진료실에서/23쪽)


꽃 다칠까 / 연습장에 가서 영점 조정하듯 / 샷을 벼르고 나간 골프장 // 저공비행하는 나비를 피해 / 높게 띄워 보내는 골프공 // 나무들 연두빛 레이스 옷 들출까 / 봄바람처럼 스윙을 한다 // 여린 새싹 다치지 않게 / 몇 번의 궁리 끝에 내려친 / 골프채에 묻어 있는 / 봄의 연둣빛 피부 (봄의 골프/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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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야!
최명란 지음, 정은영 그림 / 창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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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동시읽기 2021.9.27.

노래책시렁 203


《해바라기야!》

 최명란

 창비

 2014.3.1.



  큰고장에서 나고자라는 아기를 안고서 걷습니다. 이 아기는 두리번두리번하다가 “저기 자동차.” 하더니 “저기 자동차 간다.” 하고 말합니다. 아기 어버이는 부릉이를 몰고, 아기 어버이가 사는 잿빛집에는 부릉이가 가득할 뿐 아니라, 잿빛집 둘레에도 언제나 부릉이가 넘실거립니다. 가만 보면 오늘날 아이어른 모두 부릉이한테 둘러싸입니다. 사람이 걸을 길은 매우 좁을 뿐 아니라, 거님길에 올라선 부릉이마저 수두룩합니다. 아기가 내내 ‘자동차’란 낱말을 읊을 만합니다. 아기를 안고 나무 곁에 서서 함께 줄기를 쓰다듬으며 “여기 나무.” “여기 줄기.” “여기 들꽃.” “여기 작은나무.” 하고 자꾸 말을 겁니다. 드디어 아기는 “저기 나무.” 하다가 “저기 나무 있다.” 하고 말합니다. 《해바라기야!》를 읽다가 오늘날 숱한 아이들이 바라보면서 눈망울에 담고 생각으로 심는 모습에 쓸쓸합니다. 노래꽃조차 이렇게 서울스럽기만 해야 할까요. 노래꽃조차 아이들한테 삶을 노래하는 길을 못 밝혀도 될까요. 노래꽃조차 틀을 세우고 짜증을 부리고 시샘을 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심어도 될까요. 아이들을 서울에 가두어 부릉이랑 잿빛집이란 높은 울타리로 막아버린 어른부터 스스로 ‘노래라는 꽃’을 잊거나 잃었구나 싶습니다.


ㅅㄴㄹ


나비는 배고파 꽃밭으로 가고 / 자동차는 배고파 주유소로 가고 / 나는 배고파 라면 먹으러 간다 (희망사항/16쪽)


온다는 말도 없이 / 전화도 없이 / 문자 한 통도 없이 (소나기/32쪽)


너, 왜 그러냐? / 왜 만날 넘어다보는 거냐? / 또 커닝하는 거냐? / 동그란 얼굴에다 / 그렇게 총총 많이 받아써 놓고는 (해바라기야!/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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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가 평화다 - 사드배치 철회 성주촛불투쟁 200일 기념 시집 한티재시선 9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 외 지음 / 한티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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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1.9.13.

노래책시렁 198


《성주가 평화다》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대구경북작가회의·성주문학회

 한티재

 2017.1.28.



  어쩐지 갈수록 이 나라는 여러 목소리가 억누르는구나 싶습니다. 이켠하고 저켠을 갈라서 어느 켠에 이바지하려는 목소리가 아니다 싶으면 동강내거나 토막치려는 칼부림이 판칩니다. 이른바 ‘윤미향 보호법’까지 ‘그들 밥그릇’을 움켜쥐려고 내놓는 판이나, 이를 나무라는 ‘왼날개 목소리’는 아직 못 듣습니다. ‘4대강 사업’을 그토록 나쁘다고 외친 ‘푸른모임(환경단체)’ 가운데 ‘200조 원을 웃도는 해상태양광·풍력발전’을 꾸짖는 목소리도 못 듣습니다. ‘해상태양광·풍력발전’은 ‘갯벌·철새’하고 나란히 못 갑니다만, 왜 입을 꾹 다물까요? 《성주가 평화다》가 들려주는 목소리는 이 땅을 아름다이 지키고픈 마음에서 비롯했을 텐데, 어쩐지 목소리만 맴돌지 싶습니다. 노래님(시인)은 성주 같은 시골에서 살며 글을 쓸까요? 큰고장이나 서울에서 잿빛집(아파트)에 깃들고 부릉이(자동차)를 몰고 이야기꽃(강의)을 자주 나가 목돈을 벌다가 이런 글을 쓸까요? “성주만 평화”이지 않습니다. “신안도 평화”요 “고흥도 평화”일 뿐 아니라 “서울 부산 광주도 평화”입니다. 신안 갯벌을 비롯해 온나라 갯벌을 망가뜨리는 ‘그린뉴딜 마피아’를, 고흥 갯벌을 죽이는 ‘무인군사드론 시험장 커넥션’도 쳐다보십시오.


ㅅㄴㄹ


술집하고 다방하는 것들은 / 퍼붓는 빗속에서 사드 가고 평화 오라고 / 목이 쉬도록 외치면 안 되는 것이냐 // 술집하고 다방하는 것들은 / 손에 손을 잡고 해방의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 안 되는 것이냐 (저 아가리에 평화를!-김수상/39쪽)


그러나 참교육 시를 쓰고 전교조로 학교서 쫓겨나자 / 속이 상한 아버지가 한밤중에 술에 만취해 / 밭둑 베고 하늘의 별을 보며 세상을 한탄하던 곳 / 아직 구순의 노모가 정정하게 살아 계시는 곳 (사드여, 미국 본토로 가라-김용락/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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