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동물원 민음의 시 132
이근화 지음 / 민음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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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2.2.19.

노래책시렁 217


《칸트의 동물원》

 이근화

 민음사

 2006.4.25.



  우리 집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나이가 들수록 큰고장(도시)을 힘들다고 느낍니다. 큰고장은 무엇보다 뛰놀 곳이 없습니다. 느긋이 해바라기를 하며 쉴 곳이 없고, 별바라기를 넉넉히 하면서 고요히 잠들 곳이 없습니다. 새랑 노래하거나 풀벌레하고 사귈 곳이 몹시 드물고, 바람하고 물을 맑게 마실 데는 없습니다. 《칸트의 동물원》을 가만히 읽었습니다. 여러 벌 되읽어 보는데 어쩐지 숨이 좀 막힙니다. 노래님은 숨막히는 서울살이(도시생활)를 아무렇지 않게 그려낸 듯합니다. 숨막히는 큰고장에서 스스로 새롭게 숨통을 틀 조그마한 불빛을 찾아내는 하루를 그리는구나 싶어요. 먼 옛날 글바치는 으레 두 가지 글감으로 노래했습니다. 첫째는 임금붙이를 기리는 노래요, 둘째는 풀꽃나무를 그리는 노래입니다. 오늘날 글바치는 어떤 글감으로 삶을 노래할까요? 아무래도 스스로 집을 얻어서 살아가는 터전에서 늘 마주하는 하루를 글로 옮길 테지요. 그렇다면 서울·큰고장이라고 하는 터전은 사람한테 얼마나 사람스러운가요? 사람한테 사람스럽지 않게 짠 서울·큰고장에서 어떻게든 수수하게 살아남으려고 하는 길에 적는 글일는지, 스스로 즐겁게 굴레를 내려놓고서 홀가분하게 새길을 나아가며 노래할 글일는지, 저마다 찾아나서야겠지요.


ㅅㄴㄹ


골목마다 장미가 피어나고 / 오후에는 차를 마신다 / 어느 맑은 날에는, // 낮잠을 자고 / 어김없이 목욕을 하고 / 나는 또 나인 듯이 / 외출을 한다 (지붕 위의 식사/30쪽)


나는 나로부터 멀리 왔다는 생각 / 편의점의 불빛이 따뜻하게 빛날 때 / 새벽이 밀려왔다 이 거리는 얼굴을 바꾸고 / 아주 천천히 사라질 것이지만 (따뜻한 비닐/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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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엮은 방패 창비시선 454
곽재구 지음 / 창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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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2.2.19.

노래책시렁 218


《꽃으로 엮은 방패》

 곽재구

 창비

 2021.2.19.



  일곱 해쯤 앞서 ‘넋·얼·마음·숨’이 어떻게 다른 결인가를 풀어낸 적 있습니다. 오늘 새벽에 새삼스레 이 네 낱말을 짚으면서 어떻게 태어난 결인가를 풀어냅니다. 곰곰이 보면 거의 쉰 해를 들여 네 낱말을 살피고 풀어낸 셈입니다. 이처럼 말뜻풀이·말밑풀이를 해내면 덤덤해요. “아, 이제 끝이네?” 같은 혼잣말이 나옵니다. 해내기 앞서까지는 온생각을 그러모아 바라보고, 해내고 나서는 온마음을 부드러이 풀어놓고서 앞으로 새롭게 바라볼 낱말을 그립니다. 《꽃으로 엮은 방패》를 되읽다가 곽재구 님이 스스로 안 놓으면서 둘레 사람한테는 놓으라고 말하는 결을 새록새록 느낍니다. 〈세월〉 같은 노래는 첫 다섯 줄은 좋으나 다음 줄부터는 군말이네 싶어요. 첫 다섯 줄로 노래가 끝났습니다. 〈기차는 좀더 느리게 달려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창비시선 454’에 이름을 ‘올리’고 ‘산문’을 매우 길게 붙였습니다. 칙폭이(기차)는 칙폭이대로 달리면 됩니다. 노래는 노래대로 부르면 됩니다. 회오리바람이 산들바람처럼 불어야 할까요? 더 빠르거나 더 느린 결은 없습니다. 저마다 다를 뿐입니다. 노래란, 소리에 얹는 가락이자 생각이 흐르는 마음입니다. 노래란, 목소리가 아닙니다. 목소리만으로는 ‘외침’일 뿐입니다.


ㅅㄴㄹ


하얀 민들레 곁에 냉이꽃 / 냉이꽃 곁에 제비꽃 / 제비꽃 곁에 산새콩 / 산새콩 곁에 꽃다지 / 꽃다지 곁에 바람꽃 // 소년 하나 언덕에 엎드려 시를 쓰네 (세월/11쪽)


KTX는 시속 삼백 킬로미터로 달리지 / 손을 흔드는 아이도 없지 // 기차는 좀 느리게 달려야 해 / 사람은 좀 느리게 살아야 해 (기차는 좀더 느리게 달려야 한다/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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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고 시선집
최종고 지음 / 와이겔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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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2,1,23,

노래책시렁 215


《法 속에서 詩 속에서》

 최종고

 교육과학사

 1991.10.20.



  부러우면 진다고들 말합니다. 길(법)을 다루는 길잡이로 일한 최종고 님은 노래님을 부러워해 마지 않습니다. “詩集이 팔린다”는 글을 쓰며 대놓고 부러워하는데, 《法 속에서 詩 속에서》에 담은 모든 글은 ‘부러움노래’입니다. 살다 보면 부러워할 수 있지 않느냐고도 하지만, 글쎄, 왜 부러워해야 할까요? 부러움은 잘못도 나쁨도 아닙니다만, 부러움에 사로잡히면 스스로 빛을 잃습니다. 스스로 즐겁게 펼쳐서 누리는 길로 나아가면 남을 부러워할 까닭이 없어요. 스스로 안 즐겁기 때문에 부러워합니다. 스스로 노래하지 않으니 부러워해요. 자, 봅시다. 모든 새가 꾀꼬리나 종달새여야 하지 않습니다. 모든 새가 독수리나 매여야 하지 않습니다. 꾀꼬리만 노래하지 않아요. 직박구리도 참새도 딱새도 딱따구리도 노래합니다. 오리도 왜가리도 거위도 노래합니다. 모든 새가 똑같은 날개를 달아야 할까요? 모든 나비가 똑같은 무늬나 크기여야 할까요? 모든 꽃이 똑같은 빛깔에 똑같은 날 피어야 할까요? 노래를 노래로 여기지 못하니 길을 길로 느끼지 못합니다. 스스로 ‘法’이랑 ‘詩’라는 굴레에 갇히려 하면 어떤 노래도 피어나지 않습니다. 옛말에 “법 없이도 산다”고 했어요. 슬기로우면 ‘길’이요, 억지라면 ‘틀’입니다.


ㅅㄴㄹ


詩集이 팔린단다. / 팔려도 많이 팔린단다. / 詩集이 팔려도 되는 것일까? / 그럼에도 시집이 팔린다니 / 한국은 詩的인 나라인가? / 아니면 하두 따분하다 보니 / 어디 詩나 읽자하는 세상인가? … 아무튼 詩가 팔린다니 詩人은  좋겠다. / 땀빼어 두꺼운 硏究書를 내어도 / 1년에 몇권도 안 팔리는 法學界와는 달라 (詩集이 팔린다/7쪽)


내 경상도에서 태어나 / 무슨 행운인지 서울法大 교수가 되어, // 관악 캠퍼스에 연구실 하나 차지하고 / 매일마다 관악산 봉우리를 쳐다보며 산다. / 돌 山, 惡山이라 혹평해도 / 10년을 넘어 바라보니 / 그런대로 情같은 것도 들어 (冠岳傳說/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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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는 목마름으로 창비시선 33
김지하 지음 / 창비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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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2.1.23.

노래책시렁 216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창작과비평사

 1982.6.5.



  1941년에 태어나 서슬퍼런 나라에서 서슬퍼런 글을 살을 깎으며 쓴 사람은 1991년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를 읊습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이이를 내쫓고 ‘변절·배신·이단’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노래님 김지하는 왜 마흔 살에 “죽음굿판을 걷어치우라”고 외쳤을까요? 그동안 제대로 안 밝혀진 뒷이야기는 지난 서른 몇 해 사이에 조금씩 드러났습니다. 간추리자면 ‘운동권·진보문인’은 “김지하가 박정희 군사독재 감옥에서 목숨을 빼앗겨 ‘열사’가 되어야 민주·평화·통일을 빨리 되찾는다”고 여겨 숱하게 “자살하라”고 괴롭혔”으며, “끝까지 스스로죽기(자살)를 손사래친 김지하를 끝없이 괴롭히고 따돌릴 뿐 아니라, 가시어머니 박경리 님까지 나란히 괴롭히고 따돌렸다”고 합니다. 이 대목을 헤아리고 나니 왜 박경리 님이 조용한 시골로 터전을 옮겨 손수 호미질을 하고, 딸이랑 사위가 시골로 가서 지내도록 그렇게 애썼나를 알겠어요. 《타는 목마름으로》를 서른 해 만에 천천히 되읽었습니다. 이름팔이·돈팔이가 아닌 ‘사랑’이라는 길을 찾아서 노래하고 싶은 푸른숨결이 피어나는 글입니다. 이 사랑노래를 글힘꾼(주류문단·기득권 진보문인)은 깔보며 비웃었습니다. 그들 무리는 참사랑이 아니니까요.


ㅅㄴㄹ


언젠가는 돌아올 봄날의 하늬 꽃샘을 뚫고 / 나올 꽃들의 잎새들의 / 언젠가는 터져나올 그 함성을 / 못 믿는 이 마음을 죽음이라 부르자 (1974년 1월/11쪽)


눈은 내린다 / 술을 마신다 / 마른 가물치 위에 떨어진 / 눈물을 씹는다 / 숨어 지나온 모든 길 / 두려워하던 내 몸짓 내 가슴의 / 모든 탄식들을 씹는다 / 혼자다 (바다에서/25쪽)


저 청청한 하늘 / 저 흰구름 저 눈부신 산맥 / 왜 날 울리나 / 날으는 새여 / 묶인 이 가슴 // 밤새워 물어뜯어도 / 닿지 않는 밑바닥 마지막 살의 그리움이여 / 피만이 흐르네 / 더운 여름날의 썩은 피 (새/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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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2.1.16.

노래책시렁 212


《지는 꽃이 피는 꽃들에게》

 김희수

 광주

 1988.5.30.



  글이 꽃이 되자면, 글을 쓰는 사람 스스로 꽃살림을 지으면 돼요. 글이 노래가 되자면, 글을 쓰는 사람 스스로 살림노래를 펴면 되고요. ‘글꽃’은 한자말 ‘문학’을 손질한 낱말일 수 있으나, 글이 갈 길을 밝히는 이름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오늘날 숱한 글은 스스로 꽃이기보다는 겉멋으로 흐릅니다. 스스로 노래이기보다는 자꾸 겉치레로 어수선합니다. ‘민중문학’에 ‘민중’이 있을까요? ‘민족문학’에 ‘민족’이 있는가요? 글바치가 ‘민중’이란 한자말로 가리키는 사람은 ‘민중’이란 한자말을 안 쓰고, 글꾼이 ‘민족’이란 한자말로 가리키는 사람도 ‘민족’이란 한자말을 안 써요. 그냥 ‘사람’이라 할 뿐입니다. 《지는 꽃이 피는 꽃들에게》를 무덤덤히 읽었습니다. 스물 몇 해 앞서 읽던 때에 조금 거슬리던 대목은 스물 몇 해를 지나면서 퍽 거북합니다. 돌이가 아닌 순이가 글을 쓰면서 ‘민중·민족’을 말할 적에도 살을 부비는 줄거리를 그토록 써댈까요? 글쎄, 아니지 싶습니다. 곰곰이 보면, ‘민중문학·민족문학’ 어디에서도 밥을 짓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아기를 돌보거나 집안일을 하거나 걸레를 빨거나 못질을 하거나 도끼질로 땔감을 얻는 얘기가 없지 싶습니다. 이제 겉말치레를 걷을 때입니다.


ㅅㄴㄹ


무등 아래서 / 총각처녀들 눈맞아 사랑 나누고 / 아들은 커서 더 큰 아버지 / 딸은 커서 더 큰 어머니 되고 (무등아래서/12쪽)


눈 맞았단다. / 알량한 남편을랑 사우디에 앗겨버린 / 상여집 며느리와 / 밤 몰래 부르스를 추고 돌아와 / 흙무지랭이라서 고자라 소문나서 / 장가 못가 애타던 서른 여섯을 / 던져버렸단다 박꽃도 숨죽여 / 시들어버린 저 벌판의 음흉한 밤에 (여름 悲歌/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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