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 해녀
김신숙 지음, 박들 그림 / 한그루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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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2.3.11.

노래책시렁 219


《열두 살 해녀》

 김신숙 글

 박둘 그림

 한그루

 2020.8.27.



  우리 곁에 흐르는 모든 삶은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차곡차곡 갈무리하면서 아이한테 노래로 들려줍니다. 웃는 삶이건 우는 삶이건 오롯이 사랑으로 삭이면서 새롭게 들려주기에 노래입니다. 글이라곤 모르던 사람이어도 언제나 말로 삶을 갈무리하여 이야기로 엮었고 노래로 들려주던 살림이에요. 글하고는 등진 채 살림을 꾸린 수수한 순이돌이는 누구나 노래님입니다. 임금붙이나 글바치는 빛나는 노래님인 수수한 순이돌이를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예부터 임금붙이하고 글바치는 중국을 섬기는 바보짓을 일삼으면서 스스로 깎아내리는 틀에 갇혔어요. 《열두 살 해녀》는 글님이 어머니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찬찬히 옮겨적은 노래로 엮은 책입니다. 글님 어머니는 굳이 글을 안 썼으나, 이녁 아이한테 이녁 삶자락을 노래로 들려주었고, 이 이야기가 옹글게 노래인 줄 알아챈 손끝으로 새록새록 엮었다고 할 만합니다. 제주순이 이야기가 노래로 태어난 곁에 경상순이나 전라순이 이야기가 노래로 태어나기를 바라요. 서울순이나 대전순이 이야기도 노래로 태어나면 아름답겠지요.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글을 가르쳐 손수 쓰도록 이끌어도 나쁘지 않되, 한어버이 곁에서 오순도순 이야기를 펴면서 삶빛을 담아내면 한결 사랑스럽습니다.


ㅅㄴㄹ


밭에 가 풀 베고 집에 가 천초 빨고 / 여자 할 일들은 한한했다 // 여자 할 일들은 / 밭에서도 / 바다에서도 / 풀자라듯 지깍 (한한한 일/21쪽)


학교 다닐 때 용돈 없으니까 / 아버지가 말린 미역 / 몰래 뽑아서 숨겨 놓았지 // 그 미역을 가지고 / 뽑기 하러 가 …… 마른 미역 없을 때는 / 콥대사니 마농 // 어른들이 밭에다 심어 놓으면 / 몇 개 뽁뽁 뽑아다 // 뽑기 하러 가 / 뽑기 사탕 뽑으러 (공표 뽑기/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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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의자 아침마중 동시문학
김동억 지음, 김천정 그림 / 아침마중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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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2.3.11.

노래책시렁 222


《무릎 의자》

 김동억 글

 김천정 그림

 아침마중

 2017.7.1.



  고운말하고 이쁜말은 다릅니다. 참말하고 귀염말도 다릅니다. 고운말은 고르고 고른 말일 뿐 아니라, 고루 가꾸는 말이요, 곰곰이 생각을 기울이는 말입니다. 이쁜말은 겉으로 좋아 보이도록 꾸미는 말입니다. 참말은 착한 숨빛이 가득찬 마음으로 펴는 말입니다. 귀염말은 귀엽게 굴면서 누가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말입니다. ‘동심천사주의’란 이쁜말잔치에 귀염말잔치입니다. 《무릎 의자》는 바로 이쁜말에 귀염말을 씌운 글을 ‘동시’란 이름으로 펴는데, 이쁜말 사이에 무섬말이 깃들고, 귀염말 사이에 죽임말을 끼워넣습니다. “꽃이 시위를 한다”는 생각을 어떻게 할까요? 예부터 ‘김매기’라고는 했으나 “잡초와 전쟁”이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유격 훈련을 해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고요? 터무니없는 소리일 뿐입니다. 이쁘게 꾸미는 말에 아이들 생각을 가두려는 동심천사주의로는 어른부터 스스로 갇힌 수렁입니다. 누가 좋아해 주기를 바라면서 귀염말을 쏟아낼 적에는 바로 어른부터 아이들한테 겉모습에 얽매이는 굴레를 씌우는 노릇입니다. 어린이를 동무이자 이웃으로 바라본다면, 노닥질하듯 노리개를 하는 글을 쓰지 않습니다만, 어린이를 동무로도 이웃으로도 볼 줄 모르면 ‘말만 이쁜 죽음잔치’일 뿐입니다.


ㅅㄴㄹ


보도블록 틈새에 / 꽃 한 송이 피워 놓고 / 시위를 하고 섰다 (예쁜 시위/22쪽)


한여름 뙤약볕에 / 텃밭을 가꾸는 할아버지 / 잡초와 전쟁을 치른다. (할아버지는 전쟁 중/52쪽)


계곡을 흐르는 물도 / 유격 훈련을 하나 봐 // 더 넓은 세상으로 / 나아가기 위해 (물도 유격 훈련을 하지/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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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 - 풀빛시선 31
김남주 / 풀빛 / 198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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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2.3.6.

노래책시렁 221


《솔직히 말하자》

 김남주

 실천문학사

 1989.11.25.



  민낯을 말하기에 글입니다. 민낯을 말하지 않으면 눈가림이나 눈속임입니다. 참을 말하기에 글입니다. 참을 말하지 않으면 거짓입니다. 누구는 눈가림·눈속임·거짓을 말해도 ‘글’이지 않느냐고 읊으나, 참말로 눈가림·눈속임·거짓을 ‘글’이라 말할 수 있는지요? ‘글’이라 말해도 될는지요? 예전에 무슨무슨 뽑기(선거)만 있으면 사람들한테 막걸리를 먹이고 뒷주머니에 돈 몇 푼 욱여넣고서 종잇조각(표)을 얻곤 했습니다. 2022년 오늘날에도 이런 짓은 시골 한켠이나 서울 한복판에서 버젓이 일어납니다. 대통령·국회의원·시장·도지사·군수 앞에서 알랑거리면 돈이며 자리를 얻고, 그들 눈밖에 나면 빈그릇이지요. 새 우두머리를 뽑는 마당에 ‘택배상자·지퍼백·호주머니·분리수거 쓰레기자루’에 ‘코로나 확진자 투표용지’를 욱여넣는 일이 벌어지고, 이를 찰칵찰칵 담아낸 사람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라는 노래책 이름대로, 고스란히 말할 노릇입니다. 잘못을 잘못이라 말하거나 밝히지 않는다면, 참빛(자유·민주·평등·평화)을 어디에서 찾을까요? 이웃나라 일본 우두머리가 뭔가 잘못을 저지를 적마다 “유감”이라 말해서, 이 문드러진 말이 얼마나 문드러졌는가 따지던 무리가 똑같이 “유감”을 읊는 오늘입니다.


ㅅㄴㄹ


우리 둘의 사랑은 / 은하수 건너 무지개끝을 달리는 / 그런 사랑도 아니라오 / 누구 누구 아무개 싯귀처럼 / 단풍나무 숲으로 난 작은 길로 / 백마 타고 청포자락 날리며 가는 / 그런 사랑도 아니고요 (우리 시대의 사랑/15쪽)


미국이 이 땅을 점령하고 그동안 40년 동안 / 나라의 대통령이란 자가 해야 할 급선무는 / 자유가 그 고개를 들면 그 목을 치고 / 민족이 그 목소리를 높이면 그 입을 틀어막고 / 노동이 해방의 불꽃으로 타오르면 그 불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네 (발언/66쪽)


이쪽은 썩고

저쪽은 곪고

그쪽은 너무 먼나라 얘기를 읊는다.

썩지 않으면서 가멸찬 이도 있을 테고

곪지 않으면서 착한 이도 있을 텐데

서른 해 가까이 ‘주7일 종일노동’을 해온

작은 일꾼(노동자)으로서

‘주4일노동’은 아무래도

터럭만큼도 와닿지 않는다.


‘탄소 기후변화 온실가스’가 아닌

‘풀꽃나무 숲 별빛 바닷물 바람’......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다 거짓말쟁이로 돌아선 민낯을

서른 해 즈음 지켜본 터라

기호 15번이나 16번,

또는 기호 100번이나 200번 즈음을

찍을까 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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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식 - 1980 제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민음 오늘의 시인 총서 17
김명수 지음 / 민음사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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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2.3.6.

노래책시렁 220


《月蝕》

 김명수

 민음사

 1980.7.10.



  ‘시’를 쓰는 사람들은 으레 “시 = 언어예술”처럼 말합니다만, 이런 말을 들을 적마다 오글거립니다. 참말로 ‘시’가 ‘언어예술’이라면, ‘시·언어예술’ 같은 바깥말을 우리말로 풀어내거나 고치려는 생각을 터럭만큼이라도 하면서 새말을 지었을 테지요. 《月蝕》은 김명수 님이 처음 선보인 노래책이라고 합니다. 한글로 ‘월식’이라 안 적고 한자로 적은 책이름인데, ‘달가림’을 뜻하는 한자말 ‘月蝕’입니다. 노래님은 노래에 한자를 끝없이 씁니다. 한글로 ‘산천’을 적다가도 불쑥 ‘山川’으로 적고, ‘5月달’처럼 쓰기도 해요. ‘5月달’이 겹말인 줄 느끼지도 못했겠지요. 1980년에 내놓은 노래책에 한자를 안 쓴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김남주 님이 한자를 함부로 썼느냐고 묻겠어요. 여느 글이 아닌 노래에 한자를 함부로 섞거나 내세우는 이들은 ‘읽을 사람’을 먹물로 못박은 셈이요, 한글조차 모르는 사람은 아예 노래를 읽지 말라고 막아선 꼴입니다. “노래 = 말꽃”이려면 그야말로 생각이 꽃처럼 피면서 날개를 달아 나비다이 날아오르도록 가다듬을 노릇입니다. 가시내 젖가슴을 훔쳐보는 바보짓을 그리는 엉성한 사내질이 아닌, 온누리를 사랑으로 보듬는 어진 숨빛을 담을 일이에요.


ㅅㄴㄹ


용왕님은 병이 들고 / 토끼야, 너 간을 주어라. // 萬花方暢한 봄날 산천에 / 네가 따먹은 진달래 꽃잎 주어라 …… // 도토리 익는 十月 山川에 / 싸리순 피는 봄날 산천에 / 언덕 뛰던 / 네 빠른 생기 주어라 // 東海바다 저 어둡고 어두운 / 먹물결 위에 / 네 더운 피도 이제 모두 주어라 (토끼의 肝/52쪽)


해지고 나면 고향마을 윗냇가에 / 목물하던 처녀 아이들 // 풍덩대던 밤 물결에 / 흰 젖가슴 / 달도곤 훤히 비추어 오고 // 풀섶 냇뚝에 숨죽이던 악동들 / 반짝이며 웃음 참던 / 눈동자 몇 개 (개똥벌레/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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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동물원 민음의 시 132
이근화 지음 / 민음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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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2.2.19.

노래책시렁 217


《칸트의 동물원》

 이근화

 민음사

 2006.4.25.



  우리 집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나이가 들수록 큰고장(도시)을 힘들다고 느낍니다. 큰고장은 무엇보다 뛰놀 곳이 없습니다. 느긋이 해바라기를 하며 쉴 곳이 없고, 별바라기를 넉넉히 하면서 고요히 잠들 곳이 없습니다. 새랑 노래하거나 풀벌레하고 사귈 곳이 몹시 드물고, 바람하고 물을 맑게 마실 데는 없습니다. 《칸트의 동물원》을 가만히 읽었습니다. 여러 벌 되읽어 보는데 어쩐지 숨이 좀 막힙니다. 노래님은 숨막히는 서울살이(도시생활)를 아무렇지 않게 그려낸 듯합니다. 숨막히는 큰고장에서 스스로 새롭게 숨통을 틀 조그마한 불빛을 찾아내는 하루를 그리는구나 싶어요. 먼 옛날 글바치는 으레 두 가지 글감으로 노래했습니다. 첫째는 임금붙이를 기리는 노래요, 둘째는 풀꽃나무를 그리는 노래입니다. 오늘날 글바치는 어떤 글감으로 삶을 노래할까요? 아무래도 스스로 집을 얻어서 살아가는 터전에서 늘 마주하는 하루를 글로 옮길 테지요. 그렇다면 서울·큰고장이라고 하는 터전은 사람한테 얼마나 사람스러운가요? 사람한테 사람스럽지 않게 짠 서울·큰고장에서 어떻게든 수수하게 살아남으려고 하는 길에 적는 글일는지, 스스로 즐겁게 굴레를 내려놓고서 홀가분하게 새길을 나아가며 노래할 글일는지, 저마다 찾아나서야겠지요.


ㅅㄴㄹ


골목마다 장미가 피어나고 / 오후에는 차를 마신다 / 어느 맑은 날에는, // 낮잠을 자고 / 어김없이 목욕을 하고 / 나는 또 나인 듯이 / 외출을 한다 (지붕 위의 식사/30쪽)


나는 나로부터 멀리 왔다는 생각 / 편의점의 불빛이 따뜻하게 빛날 때 / 새벽이 밀려왔다 이 거리는 얼굴을 바꾸고 / 아주 천천히 사라질 것이지만 (따뜻한 비닐/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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