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윽 문학의전당 시인선 239
이정자 지음 / 문학의전당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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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74



누군가 ‘사랑해!’ 하고 소리낼 적에

― 그윽

 이정자 글

 문학의전당 펴냄, 2016.11.11. 9000원



  깊숙하여 아늑하고 고요하다고 할 적에 ‘그윽하다’라는 낱말을 써요. 깊이 들어가지 않거나 아늑하지 않거나 고요하지 않다면 ‘그윽할’ 수 없어요. 깊지 않더라도 아늑하면서 고요하다면 포근할 수 있어요. 시끄러운 곳이라 하더라도 어버이가 아이를 아늑하면서 고요히 품거나 안아 준다면 이때에 아이는 포근하다고 느껴요. 하루를 마무리짓고 잠자리에 들어 아이를 새근새근 재운다면, 아이는 어버이 곁에서 새롭게 그윽함을 느낄 만해요.


  호젓한 시골에서 아이들하고 달밤을 누리면서 살며시 마을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달빛을 느끼면서 아이들이 고이 잠을 자도록 이끈 뒤에 《그윽》(문학의전당,2016)이라는 시집을 찬찬히 읽어 봅니다.



햇살은 다, 이리로 소풍을 나왔는지 /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물빛이 / 가을빛을 닮아 맑고 깊다 / 얕아서 소란스런 물도 껴안고 가다 보면 / 고요해지는 것일까 / 꼬여서 삐딱한 물고기도 품어 안으면 / 푸른 지느러미 올곧게 출렁일까 (가을 호수)


메기는 어항을 사랑했다 /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 무리 지어 다니는 송사리떼도 / 어항을 사랑했다 / 먹이 앞에서는 서로 물고 뜯는 피라미도 / 어항을 사랑했다 (어항)



  시집 《그윽》은 시인 이정자 님이 붙인 이름처럼 그윽하게 삶에 깃든 이야기를 다룬다고 할 만합니다. 수선스럽지 않고 왁자하지 않습니다. 북적이지 않고 시끌거리지 않습니다. 빵빵거리는 자동차 소리도, 승강기 소리나 쇳소리도, 비행기나 헬리콥터 소리도 이 시집에는 깃들지 않아요. 자그마한 삶자리에서 자그맣게 피어나는 그윽한 이야기가 작은 시집에 머뭅니다.



중앙탑 공원 / 민들레 소녀 조각상 손목에 / 토끼풀꽃 시계가 채워져 있다 // 이승을 돌아 돌아 만난 인연처럼 / 풀꽃 시계를 채워준 이는 누구일까 (풀꽃 시계)


어디에서 발원했을까 / 맑은 물소리에 귀를 씻고 / 허리를 구부리고 들여다보는 / 고마리 꽃잎 이슬 한 방울에도 겸허해진다 (하늘재)



  때로는 너른 마당에서 시 한 줄이 태어납니다. 수많은 사람이 북적이는 곳에서 수많은 외침을 갈무리하는 시 한 줄이 자라기도 합니다. 때로는 아주 고요한 곳에서 시 한 줄이 태어납니다. 아기를 낳는 어머니는 가장 그윽한 곳을 살펴 새로운 목숨을 받아내듯이, 더없이 고요한 자리에서 그윽한 이야기가 시 한 줄로 자라납니다.


  아이들은 여러 동무하고 마음껏 깔깔거리며 뛰놀곤 해요. 아이들은 아주 조용하거나 고요한 곳에서 깊이 꿈을 꾸며 잠들어요. 아이들은 쉴새없이 노래하면서 뛰놀아요. 이러다가도 모든 소리가 뚝 끊어지면서 꾸벅꾸벅 졸더니 픽 쓰러져 낮잠에 빠져들어요.


  어쩌면 가장 부산스러우면서 가장 그윽한 숨결은 어린이일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가장 고요하면서 가장 기운찬 넋은 어린이일 수 있어요. 우리 어른은 모두 아기로 태어나서 어린이로 자라는 동안 부산스러움이랑 그윽함을 어우르는 손길을 익힌다고 할 만해요. 더할 나위 없이 고요하면서 기운찬 마음으로 씩씩하게 자라기에 어른이 될는지 모릅니다.



간절한 것이 없어 / 절실한 것이 없어 // 나는 늙는다 (아이러니)


누군가 ‘사랑해!’라고 발음할 때 / 나무의 어딘가에 깃들었던 / 초록 눈이 새순으로 돋아나 / 팔랑이는 것만 같아서 / 가슴에서도 꽃이 피어나지, / 한 그루 푸른 나무로 출렁이지 // 입에서 나온 말이 귀로 들어와 / 가슴을 열게도 하고 닫게도 하는 힘은 / 초록 눈이 가지고 있지 (초록 눈에 꽃이 핀다)



  앙상한 몸으로 겨울을 나는 나무한테 ‘사랑해!’ 하고 외치거나 속삭이면, 나무 어딘가에 깃들던 푸른 눈이 봄을 그리면서 곧 깨어나지 싶습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살가운 곁님하고 서로서로, 반가운 이웃을 그리면서, 먼 곳에 사는 동무를 헤아리며, ‘사랑해!’ 하고 가장 흔하면서 가장 따사로운 말을 들려줄 수 있는 살림살이를 떠올려 봅니다. 우리 입에서 나와 이웃 귀로 들어갈 가장 멋진 말을 떠올려 봅니다. 가슴을 열어 줄 수 있는 말 한 마디를, 어깨동무를 하며 즐겁게 꿈을 꾸도록 북돋우는 말 한 마디를 ‘그윽’이라는 이름으로 떠올려 봅니다. 2016.12.12.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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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가 이쁜 문학의전당 시인선 221
전해선 지음 / 문학의전당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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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66



뒤가 이쁜 수수한 사람들 이야기 한 자락

― 뒤가 이쁜

 전해선 글

 문학의전당 펴냄, 2016.1.27. 9000원



  부산에서 살며 시를 짓는 전해선 님은 《뒤가 이쁜》(문학의전당,2016)이라는 첫 시집을 선보입니다. 시집 이름이기도 한 ‘뒤가 이쁜’이라는 시는 자작나무 뒷모습을 보면서, 또 자작잎을 바라보면서, 이러다가 우리네 삶과 살림을 들여다보면서 느끼는 상냥한 마음이라고 봅니다. 얼핏 보면 수수하지만, 가만히 살피면 뒤도 이쁘고 앞도 이쁘며 옆도 이쁜 이웃이며 동무이고 숲이고 풀 한 포기랑 나무 한 그루예요.



쏙닥쏙닥 / 세 여자가 숭덩숭덩 쑥을 캔다 / 대바구니 대신 비닐봉지 속에 / 차곡차곡 쌓이는 아득한 이야기 속에 / 설핏설핏 나타나는 옛사람 / 몽당치마 저고리 앞섶 검댕도 따라 나오고 (쑥떡)


밥 짓는 여자의 웃음이 환합니다 /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남자는 / 자기 여자를 웃게 하는 남자입니다 (좋은 남자)



  쑥을 캐는 이야기가 시 한 줄로 태어납니다. 오늘 이곳에서 쑥을 캐다가 아스라이 먼 옛날에도 쑥을 캤을 숱한 사람들을 그립니다. 옛사람 손길이 오늘까지 이르며 똑같이 쑥을 캐고 쑥내음으로 젖어드는 숨결이 시로 태어납니다.


  그저 수수하게 늘 하는 집안일 가운데 하나인 밥짓기를 놓고도 시 한 줄이 태어납니다. 밥짓기를 지겨워 할 수 있지만, 밥짓기를 웃음으로 할 수 있어요. 밥짓기를 가시내가 도맡을 수 있으나 사내한테 이 일을 넘길 수 있고, 아이들이 찬찬히 배우도록 이끌 수 있어요. 아무튼 밥짓기를 누가 하더라도 우리는 밥짓기를 알아야 해요. 내가 밥짓기를 모른다면 다른 사람한테 밥짓기를 못 가르치거나 못 물려주거든요.



날선 칼은 무섭습니다 / 동작이 어정뜬 사람은 날선 것들 앞에 서면 / 주눅이 듭니다 언젠가 / 새 칼을 차마 쓰지 못하곡 / 헌 칼만 힘들게 썼드랬습니다 (무딘 칼날)


누군가 이름을 불러줄 때마다 / 자작자작 자작자작 자작자작 / 신명에 겨워 웃다가 자지러지고 / 뒤집어져야만 은빛으로 떠는 너는 (뒤가 이쁜)



  ‘무딘 칼날’ 이야기를 읽다가 우리 집 부엌칼을 문득 떠올립니다. 참말로 무딘 칼날을 무덤덤하게 오래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뒤가 이쁜》이라는 시집을 빚은 분도 무딘 칼날을 힘겹게 썼다고 하는데, 이 시를 읽는 저도 한동안 무딘 칼날을 힘겹게 쓰곤 했습니다.


  날선 칼은 어느 모로 무섭다고 할 수 있어요. 날선 칼이니 손이 베이기 쉽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날선 칼이어야 배추도 무도 잘 썰어요. 날선 칼이어야 도마질이 수월해요. 숫돌로 날을 잘 세워서 부엌칼을 손에 쥐어야 억지스레 힘을 주지 않아도 도마질이 수월해요.



고동을 삶아 먹을 때 하시던 엄마의 말씀 / 가서 울타리 가시 좀 잘라 오너라 / 손가락에 박힌 가시 빼낼 적에 엄마는 / 그 나무가시로 살 속 가시를 빼내곤 하셨지 / 나무가시는 독이 없어 괜찮다며 / 밥상을 물리고 나면 다시금 / 가시 좀 잘라오라 하시던 (탱자나무)



  자작나무 잎사귀를 바라보다가 시 한 줄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고동 하나 삶아서 먹다가 어릴 적에 이녁 어머니가 탱자나무 가시를 잘라 오라고 이르던 말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탱자나무는 울타리도 되고, 하야말간 꽃을 베풀기도 하고, 향긋한 열매 냄새를 퍼뜨리기도 하는데, 이쑤시개 구실도 하면서 우리 곁에 있다는군요.


  모르는 노릇이지만, 시를 쓴 전해선 님은 어릴 적에 ‘알맞게 작고 야무지게 단단한 노랗게 잘 익은 탱자알’을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리면서 흔히 놀았지 싶어요. 탱자알은 멋진 구슬이고, 재미난 놀잇감이며, 부드러우면서 살가운 숨결이거든요.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 / 언니 / 으응 / 갑자기 사정이 생겼다는 말에 / 기다린 만큼의 실망 / 누가 똑같은 마음이라 말한 적 없어 / 괜찮다며 손사래 치는 순간 / 보고 싶었어, 라는 말이 / 유월의 햇빛에 바래다가 / 시간의 발길에 차여 너덜거린다 (어느 하루)



  뒤가 이쁜 수수한 사람들 이야기 한 자락을 《뒤가 이쁜》에서 읽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뒤도 앞도 옆도, 위도 아래도 한복판도, 그러니까 겉모습뿐 아니라 마음속도 모두 이쁜 수수한 사람들 이야기가 시집 하나로 새로 태어납니다.


  어릴 적에는 늘 함께 붙어다니며 놀던 언니 동생이지만, 나이가 들어 서로 제금을 나면서 어쩌다 한 번 얼굴을 보기도 어려운 먼 사이가 됩니다. 얼굴을 본대서 따로 대단한 일을 하지는 않을 테지만, 그저 그 얼굴 한 번 마주하면서 수수한 수다를 떨고 수수한 밥을 차려서 먹고 수수한 차 한 잔을 끓여서 마시기에 ‘어느 하루’는 따사로우면서 넉넉한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시를 쓰는 마음이란 바로 ‘우리들 수수한 살림’을 그저 꾸밈없이 바라보면서 그예 사랑스레 녹여내어 이야기꽃 한 송이로 피우려는 뜻이로구나 하고 생각해 봅니다. 내 이야기도 네 이야기도 저마다 수수하면서 곱습니다. 우리 이야기는 언제나 모두 시라고 느낍니다. 2016.12.2.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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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먼저 기사를 올렸습니다. 글은 지지난달쯤 처음 썼고, 기사는 이제 띄웠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올라간 기사는 제가 처음 붙인 이름하고는 조금 바뀌었는데... 그래도 고갱이는 같습니다. (굵은 글씨를 누르면 오마이뉴스 기사로 갑니다)


+ + +


"술은 여자가, 없으면 젊은 사내가 따라야"

십여년이 지나도 생생한 그날의 기억... 상처받지 않을 권리 누구에게나 있어



중견 시인한테서 성폭력을 받은 적 있습니다

― ‘표현할 자유’하고 ‘상처받지 않을 권리’란?



2004년 뒷겨울에 겪은 어떤 일을 이제껏 마음 한구석에 꽁꽁 감춘 채 살았습니다. 그때에 저는 충북 충주 무너미마을에서 살며 이오덕 님 유고와 책을 갈무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오덕 님이 남긴 시도 그러모아서 이 시를 시집 한 권으로 태어나도록 하려고 서울에 있는 여러 문학 출판사를 찾아다니며 원고를 건네주고 교정지를 주고받고 했습니다. 이때에 문학 출판사를 드나들면서 여러 시인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여러 시인들은 훌륭한 어르신이 남긴 좋은 시집을 내려고 젊은이가 참 애쓴다면서, 또 시골에서 서울까지 먼길을 왔다면서, 저를 술자리로 데려가서 위로를 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무렵 만난 시인들은 술자리를 빌미 삼아서 저한테 성추행을 저질렀습니다. 아니, 성추행이라기보다 성폭력이라고 해야 맞다고 느낍니다. 술자리를 이끈 중견 시인들은 ‘문단 권력’과 ‘나이 권력’ 두 가지로 젊거나 어린 사람을 마구 부리려 했으니까요.


이무렵까지 저는 ‘시인’이라는 사람을 거의 책으로만 만났습니다. 가슴을 울리는 아름다운 시를 쓰는 분들을 얼굴도 모르는 채 그저 책으로만 마주했습니다. 이런 시인들을 일 때문에 만나서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성폭력에다가 욕설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열 몇 해가 지난 일이지만 이를 되새기려니 매우 끔찍합니다. 소름까지 돋습니다.


중견 시인이라는 분들이 술자리라는 곳에서 보여주는 몸짓은 몹시 어리둥절했습니다. 이들 ‘어른 시인(이들 중견 시인은 스스로 어른이라고 일컬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어른 시인’이라고 했습니다)’은 꼭 ‘여자가 접대하는 술집’에 가야 한다고 늘 말했습니다. 그래서 출판사 편집부에서는 이들 중견 시인을 이끌고 ‘여자가 접대하는 술집’으로 모시곤 했습니다. 내로라하는 중견 시인들은 하나같이 ‘여자가 옆에 안겨 붙어서 술을 따라 주어야’ 한다고 늘 말했으며, 여자가 없으면 ‘젊은 사내가 술을 따라 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들 시인은 술기운이 올랐다는 핑계로 제 허벅지를 쓰다듬고 주무르고 허리를 안고 뽀뽀를 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무렵 제 나이는 서른 살이었습니다. 여러 ‘어른 시인’들이 하나같이 ‘젊은 사내한테 추근거리니’ 소름이 돋을 뿐 아니라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제 허벅지를 주무르고 허리를 안고 뽀뽀를 해대는 시인을 물리치려고 하니, 앞에 앉은 다른 시인은 나더러 “왜 그래?” 하면서 외려 ‘어른 시인’이 나한테 해대는 성폭력을 감싸고 부추기기까지 했습니다. 참다못해 겨우 밀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민중이나 진보를 말하는 시인이 어떻게 이렇게 더럽게 술을 마십니까?” 하고 외쳤습니다. 그때 중견 시인 한 분은 “니가 뭔데 ××야, 나이도 어린 게 입 닥쳐! 이 ×××야 얼른 자리에 앉아! 술이나 따라!” 하며 대꾸했습니다. “아니, 당신들이 어른이라면서요? 어른이라면서 이렇게 놀고 그렇게 욕할 수 있어요?” “왜? 뭐가 잘못됐어? 술은 이렇게 마셔야지!”


저는 어처구니없어서 이들한테 똑같이 욕으로 받아쳐 주고 일어섰습니다. 싫었습니다. 그러니 이들 ‘어른 시인’은 “이 ×××아, 너 앞으로 문단에 나오기만 해 봐, 아예 문단에 못 들어오게 할 테니까. 어린 놈이 어디 건방지게 굴어!” 하고 대꾸했습니다. 그 뒤로도 온갖 욕을 퍼붓는데, 욕을 이렇게 잘해야 시인이 되는가 하고 싶더군요. 그러나 저는 귀도 몸도 더 더럽혀질 수 없기에 그 술자리를 박차고 나오려 하는데요, 제 몸을 더듬으며 추근대던 키 큰 시인이 내 팔을 억세게 붙잡더군요. “어디 가? 다시 여기 앉아서 술 대접 해! 어린 ××가 어른한테 술 대접도 안 하고 어딜 도망가려고 해!”


소름이 돋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기에 그 ‘어른 시인’ 팔을 팽개치고 달음박질을 쳤어요. 등 뒤로 들리는 욕지꺼리를 도리질치면서 내뺐습니다. 그 뒤로 그 출판사 언저리에는 되도록 가지 않았습니다. 출판사 편집부에서 술 대접을 하겠다고 하면 손사래를 쳤습니다. 이오덕 님 시집 교정지를 주고받을 적에는 웬만하면 우편으로만 했고, 서울에 갔다가 중견 시인이라는 분들 얼굴을 스칠까 무섭다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끔찍하고 싫은 짓을 겪어야 했던 ‘문단 성폭력 피해자’ 분들이 그분들 생채기를 털어놓으면서 여러 시인들 성추문 이야기가 불거졌습니다. 피해자인 그분들이 다시 피해를 안 받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피해를 받은 분들이 피해 경험을 털어놓기는 무척 어렵다고 느낍니다. 사내인 저도 중견 시인들한테서 받은 성폭력을 털어놓기는 열 몇 해 만에 처음입니다. 그동안 이 일을 아무한테도 말을 못하고, 그저 가슴에 꽁꽁 묻어둔 채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생채기를 꽁꽁 묻어둔 채 살다 보니 저 스스로도 웃음이나 따스함이 자꾸 사라진다고 느낍니다. 남한테 생채기를 입히는 이들은 생채기를 받는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가를 너무 모르거나 하나도 모르지 싶습니다.


제가 겪은 일을 돌아보면, 아무래도 그 ‘문단 권력자’한테서 ‘더 깊고 아픈 피해’를 받을까 두려워하면서 이런 피해 사실을 못 밝히고 마는구나 싶습니다. ‘남자 시인이 젊은 남자한테 저지른 성폭력’도 꽁꽁 감추며 살 수밖에 없던 한국 문단 얼거리요 책마을이지 싶습니다. 저 말고도 이런 일을 겪어야 한 이들이 있을 테지요. 그러나 이제는 이 응어리를 털고 싶어 몇 마디를 적습니다. 내 몸을 더듬고 문지르고 억지로 뽀뽀를 하던 시인 이름도, 그때 그런 지저분한 술자리를 벌이고 욕설을 쏟아내던 시인 이름도, 그들 이름을 제 입으로 밝히고 싶지 않습니다. 부디 그분들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면서 착하고 아름답게 거듭나 주시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제 마음에 아로새겨진 생채기를 이렇게 글로 밝히는 까닭이 있습니다. 얼마 앞서 어느 ‘남성 미술평론가’ 한 사람이 “여고생의 속살 체모 상상을 글로 쓰는 표현의 자유”를 그분 누리사랑방에서 밝혔기 때문입니다. 그 ‘남성 미술평론가’는 “누구나 표현할 자유”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분은 “나이 어린 여자를 향한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표현할 자유”가 있다고 거듭 외칩니다.


이분 말이 아주 틀리지는 않겠지요. 참말로 누구나 “표현할 자유”를 누려야 하겠지요. 그런데 말이에요, 저는 이런 ‘남성 평론가나 작가’인 분들한테 한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표현할 자유”가 있듯이 “상처받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누구나 “어떤 글이든 쓸 자유”가 있다면 누구나 “어떤 글로도 생채기를 받지 않을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지 싶어요. “표현할 자유”만 있고 “상처받지 않을 권리”가 없다면, 자유는 무엇이고 권리란 무엇이며, 민주나 평화나 평등이란 무엇일까요? 누구한테나 “글을 쓸 자유”는 있을 터이나, “막글(막말)을 쓸 자유”까지 있지는 않을 텐데요? “성폭력을 할 자유”란 자유가 아니라고 느낍니다. 주먹으로뿐 아니라 글로 일삼는 폭력은 ‘표현’이 아니라 오직 ‘폭력’일 뿐이라고 느낍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젊은 남자한테까지 성폭력을 일삼은 그 시인들은 아마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지난 이런 일을 다 잊어버렸을는지 모릅니다. 이 글에 그 시인들 이름을 밝힌다고 해도 하나도 기억을 못 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제가 그 시인들 이름을 굳이 밝히면 그 시인들은 정신이 번쩍 들면서 지난날을 뉘우칠까요? 아니면 그런 일은 없다면서 "증거를 대라"면서 발뺌을 할까요? 한 사람은 58년생 시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50년생 시인이라는 대목까지만 밝히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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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주 시전집 - 1953-1992
이연주 지음 / 최측의농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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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72



성노동자 곁에서 아픔을 받아쓴 이야기

― 이연주 시전집 1953-1992

 이연주 글

 최측의농간 펴냄, 2016.11.2. 13500원



  1953년에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서, 1992년에 숨을 거둔 이연주 님이 있습니다. 이녁은 1985년부터 ‘풀밭’이라는 시 동인으로 뛰었고, 1989년에 《월간문학》에 신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1991년에 첫 시집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을 냈고, 1993년에 유고 시집 《속죄양, 유다》가 나왔다고 해요. 그리고 2016년에 《이연주 시전집 1953-1992》(최측의농간)이 나옵니다.


  《이연주 시전집》을 읽으면서 ‘아프니까 아프다고 쓴다’라는 글월이 문득 떠오릅니다. 누가 이런 글을 썼는지 떠오르지는 않으나, 이 시집은 참으로 이 말이 잘 맞아떨어진다고 느낍니다. 시를 쓴 이연주 님 스스로 더없이 마음이 아프기에 이 아픔을 시로 삭여내고, 이연주 님이 이녁 삶자리에서 마주하는 이웃들 살림이 그지없이 아프기에 이 아픔을 고스란히 시로 그려냅니다.



가보라 하더구만, 끊어진 길 어귀에서 / 그래, / 내 갔지. / 어허, 어둡고 / 천지사방 막혀 / 갈퀴진 길, 벌건 살 뻐드러진 험한 / 내 갔던 길. (길)


바느질감을 내려놓으시며 어머니, 긴 한숨이 차고 슬프다. / 나는 시계를 본다. / 왜 이렇게 어수선한지 모르겠군요, 날 좀 / 내버려둬요. / 가족을 버리겠다는 거냐? / 가족이 나를 필요로 하진 않아요, 벌써 오래된 일이잖아요. / 그건 네가 환상을 꿈꾸어 왔기 때문이야. / 이제라도 뜻을 바꾸면 행복해질 게다. / 행복? 그래요, 행복 …… (지리한 대화)



  맑게 웃으며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은 으레 ‘아이들한테서 맑고 즐거운 기운’을 받는다고 말해요. 맑은 웃음을 받고 즐거운 놀이를 저절로 물려받는다고 하지요. 아이는 어른한테서 배우지만, 이때에는 어른이 아이한테서 배운다고 할 만해요.


  아파서 앓고, 괴로워서 끙끙거리는 이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으레 ‘아픈 이웃한테서 아픔을 고스란히 이어받’습니다. 아픔을 이어받으면서 ‘아픈 이웃이 홀로 짊어질 무게를 나누어’ 준다고 할까요.


  기쁨은 나누면 곱이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토막이 된다고 해요. 《이연주 시전집》에 깃든 싯말은 하나하나 ‘이웃 슬픔을 반토막을 내려는 노래’요, 때로는 ‘이웃 슬픔을 몽땅 도려내고 싶은 노래’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렇게 살 바엔, 너는 왜 사느냐고 물었던 / 사내도 있었다. / 이렇게 살 바엔― / 왜 살아야 하는지 그녀도 모른다. / 쥐새끼들이 천장을 갉아댄다. (매음녀 1)


검진실, 이층 계단을 오르며 / 그녀의 마르고 주린 손가락들은 호주머니 속에서 /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찾아 꼬물거린다. / 한때는 검은 머리칼 찰지던 그녀, (매음녀 4)



  시를 쓴 이연주 님은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다고 합니다. 이때에 기지촌 성노동자를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간호사 자리에서 바라본 성노동자 삶을 시로 옮기면서 이연주 님은 고스란히 ‘성노동자 눈길하고 마음’이 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이웃 아픔을 시로 쓰며 내 아픔이 됩’니다. 마음이 아픈 채 시를 쓰다 보니 ‘아프니까 아프다고 쓴다’를 넘어섭니다. 이 아픔은 ‘시를 읽는 사람’한테도 시나브로 스며듭니다.



신문을 찢어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다가 / 몇 군데 전화를 걸다가 / 건어포를 우물우물 깨물다가 / 생맥주 한 조끼를 클클클 마시다가 / 개 같은 날씨, 당한 거야, 그래 / 사는 게 음모라는 걸 몰랐으니 / 중얼거리다가 (그렇게, 그저 그렇게)


잠에서 깨어보니 내가 없다 / 위층집 하수구가 꾸르륵거렸다 / 음악을 크게 틀었다 / 꾸르륵 소리를 틀어막았다 / 음악소리로 꾸르륵 소리나 틀어막는 / 조연급으로 사는 게 나는 내 마음에 든다 / 잠에서 깨어보니, 그런데 / 사라진 나는 어디로 갔을까? (성자의 권리·8)



  신문을 찢어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던 시인은 조용히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생맥주 한 조끼를 마시다가 날씨 탓을 하며 온누리는 온통 꿍꿍이라고 중얼거리던 시인은 말없이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위층집 하수구 소리를 틀어막으려고 노래를 크게 틀던 시인은 어느새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스물 몇 해 만에 새로운 시집으로 우리 곁에 다시 찾아온 시인은 아무 목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녁이 이웃을 바라보며 온몸으로 껴안던 아픔에 서린 목소리는 고스란히 들을 수 있습니다. 아픈 목소리로 가득한 시집을 읽자니 내 마음도 함께 아픕니다. 아프니까 아프다고 말할밖에 없는데, 이 아픔이 이제는 하나둘 녹을 수 있기를 빌어요. 이 괴로움이 앞으로는 찬찬히 스러질 수 있기를 빌어요.


  아픔이 기쁨으로 바뀔 수 있기를 빌어요. 슬픔이 웃음으로 바뀔 수 있기를 빌어요. 괴로움이 노래로 바뀔 수 있기를 빌어요. 이리하여 이 땅에서 삶을 가꾸는 사람들이 서로서로 손을 맞잡고 따사로운 나라를 새롭게 지을 수 있기를 빌어요. 2016.11.25.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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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는 내가 살게 삶창시선 46
김정원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시를 노래하는 말 271



요로케 알기 옹삭한 것이 시다냐?

― 국수는 내가 살게

 김정원 글

 삶창 펴냄, 2016.9.5. 8000원



  교사로 일하는 김정원 님이 쓴 시집 《국수는 내가 살게》(삶창,2016)를 읽습니다. 교사로 일하기 때문에 대학교를 코앞에 놓고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 아이들을 마주합니다. 앞날이 까마득하다고 여기는 아이들 마음을 달래야 하고, 아이들 마음을 달래다가 김정원 님 스스로 예전에 이녁이 아이로 살던 나날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과 이야기를 고스란히 시 한 줄로 옮깁니다.



허기진 길손이라도 불쑥 찾아올까봐 / 저녁마다 초가 아랫목 솜이불 밑에 / 따뜻한 밥 한 그릇 묻어두시던 어머니 (까치밥)


우리 마을 / 큰 느티나무가 쓰러졌다 / 그 아래서 그의 이야기에 / 아이들이 당나귀, 노루귀 같은 / 귀를 쫑긋쫑긋 세우고 / 밤낮으로 푹 빠졌던 / 도서관이 불탔다 (정자나무)



  정자나무 한 그루가 쓰러진 모습을 보고 난 뒤 시를 쓸 수 있던 모습을 되새깁니다. 시인 스스로 정자나무 한 그루를 ‘그냥 나무’가 아닌 ‘어릴 적 이야기가 깃든 터전’으로 삼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시로 옮길 수 있을 테지요. 정자나무 한 그루는 ‘그냥 나무’를 넘어서 ‘도서관’으로 여길 수 있는 마음이 있기에, 시린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시를 쓸 수 있을 테지요.



9월 수능 모의고사가 끝나고 /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 진로 고민을 삼키지 못해 속 앓는 아이와 / 속 풀기 위해 영산강 상류 뚝방에 올라 / 담양 진우네 국숫집에서 / 얼얼한 비빔국수를 시켜 먹는다 (국수는 내가 살게)



  수많은 아이들이 대입을 앞둔 모의고사를 치르면서 “진로 고민을 삼키지” 못한다고 합니다. 점수가 잘 나오면 잘 나오는 대로 걱정이요, 점수가 잘 안 나오면 잘 안 나오는 대로 근심이겠지요. 교사로서 아이들한테 들려줄 수 있는 말이란 ‘어느 대학교 어느 학과에 들어가서 어떤 일을 찾아보자’는 대목을 넘어서기 어려우리라 느껴요.


  그래도 교사인 시인은 아이를 이끌고 국숫집에 갔다고 해요. 국수 한 그릇을 사 주면서 마음을 달래 주려 했다고 해요. 아마 ‘한 반에 100명이 웃돌던’ 예전이라면 이런 일은 꿈조차 못 꾸었으리라 느껴요. 한 반 100명이 아닌 50명이라 하더라도 교사 한 사람이 모든 아이들을 달래거나 다독이기 어렵겠지요.


  아무튼 대입을 앞둔 아이는 ‘선생님이 사 준 국수 한 그릇’에 천천히 마음을 풀어놓는다고 합니다. 시인인 교사도 덩달아 마음이 놓이고, 둘은 주거니받거니 이야기꽃을 피웠다고 해요. 국수 한 그릇 때문이라기보다, ‘나(아이)한테 마음을 기울이면서 시간을 써 주는 어른(교사)’이 있다는 대목 때문에 그 아이는 틀림없이 새롭게 기운을 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빠, 내가 왜 만화책 훔치던 버릇을 고친 줄 알아?” // 아버지는 조용히 그의 눈만 바라보았다 // “십계명 때문도, 벌칙 때문도 아니고, 뺨이 아파서도 아니야. 아빠의 눈물을 보고 마음먹은 거야.” (아빠의 눈물)



  스스로 마음을 열어 다가서기에 서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 서로 마음을 주고받지 못합니다. 십계명도 벌칙도 뺨따귀도 아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대요. 그러나 아이는 제 아버지가 흘린 눈물을 보고는 마음을 움직였대요. 아버지는 스스로 못 느꼈을는지 모르지만, 아니 아버지는 뺨따귀를 때리고 나서야 아이가 마음을 움직였다고 느꼈을는지 모르지만, 아이는 “아버지가 흘린 눈물”을 보고서 마음을 움직였다고 털어놓았대요.



아버지가 펼쳐보시더니 / …당최 무신 말인지 모르것다야. 요로케 알기 옹삭한 것이 시다냐? / 하셨다 (받아쓰기)


당찬 할머니가 서슴없이 말했다. “기사 양반도 항꾼에 타고 왔응께 절반은 내야 경우에 맞지라우, 앙 그려?” 운전사는 언덕길을 올라 현관 안까지 함박보다 큰 누런 호박을 날라죽고서도 할머니의 큰딸에게 만 원을 더 달라고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더치페이)



  시집 《국수는 내가 살게》는 대단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시인이자 교사인 김정원 님 스스로 ‘미처 마음을 열지 못했을 적’에는 아무런 이야기가 샘솟지 못했구나 하고 느낀 삶이 고스란히 시 한 줄로 드러납니다. 이러다가 ‘아하 이렇게 마음을 열며 서로 만났네 하고 깨달을 적’에는 온갖 이야기가 샘솟았다고 알아차린 삶이 차근차근 시 두 줄로 나타납니다.


  시인을 낳아 돌본 아버지는 흙만 만지고 살았다는데, 시인이 어릴 적에 그 아버지한테 ‘시 자랑’을 하려고 보여준 글을 이녁 아버지가 읽고서 투박하게 대꾸해 주던 말마디를 어른이자 교사로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마음으로 또렷이 되새기면서 시 석 줄로 옮깁니다. “알기 옹삭한” 시가 아니라, 알기 좋고 재미나며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럽고 신나며 멋들어진 춤사위랑 노래가 흐르는 살림을 꿈꾸면서 시 넉 줄을 빚어요.


  참말로 그렇지라. 알기 옹삭하게 써서야 무슨 시가 되겠어라? 항꾼에 손 맞잡는 마음이 될 적에 비로소 시가 되지 않겠어라? 2016.11.22.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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