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거미
이종호 지음 / 북산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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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76



스무 해 묵은 빨간 구명조끼

― 무당거미

 이종호 글

 북산 펴냄, 2016.11.9. 8000원



  전남 진도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이종호 님은 이녁이 시골 공무원으로 일하며 부대끼는 삶을 틈틈이 시로 갈무리해 놓습니다. 이를테면 “뻘놈들아! / 제발 바다 막지 마란께 / 한 치 앞도 못 보믄 쓰것나(간척지)”처럼 굵고 짧게 외치듯이 시를 씁니다. ‘뻘놈’이라는 말로 익살처럼 제발 ‘뻘 좀 그대로 두라’는 목소리를 냅니다.


  군수도 면장도 아닌 공무원으로서 목소리를 낸다 한들 너무 작은 개미 한 마리 외침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도 공무원 이종호 님은 시 한 줄을 씩씩하게 쓰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녁이 나고 자란 그 마을을 사랑하거든요. “다 떠나는 곳”인 시골이 아니라 “다 모이는 곳”인 시골이 되어 이녁 고향마을에 새롭게 아기 목소리랑 젊은이 노랫소리가 넘실거리기를 바라요.



마을회관 앞 마당 정자에 / 백설을 이고 빙 둘레 모여 앉아있는 / 아짐들을 보면 마음이 착잡하다 // 삼십오 년 전, / 장딴지에 달라붙은 거머리 떼어내며 / 손모 몇 날 며칠 심기던 / 팔팔한 까만 청춘들은 어디 갔을까? (다 가는 곳)



  시집 《무당거미》(북산,2016)에는 나즈막한 이야기가 흐릅니다. 먼저 이종호 님이 어릴 적 시골집에서 겪은 이야기가 흘러요. 시골마을에서 무럭무럭 자라면서 사랑스러운 짝꿍을 만나는 이야기가 뒤따르고, 시골 공무원으로 일하며 아이를 낳아 오붓하게 돌보는 이야기가 곁따릅니다. 그리고 진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슬픈 떼죽음을 가깝거나 먼 자리에서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던 힘없는 한 사람으로서 가슴을 치는 이야기가 잇따라요.



마파람 부는가 거실 대못에 멀거니 / 서있는 달력 다섯 장이 철렁철렁 / 새벽 잠을 깨운다 // 예전엔 헌 달력을 안 버리고 모태 놔뒀다가 / 연도 날리고 새책 가오로 입혔다 (가오리연)



  한 달 서른 날 숫자가 적힌 달력 종이는 제법 두껍습니다. 이 달력 종이는 진도 시골마을에서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알뜰히 책을 싸던 종이가 되었어요. 이종호 님은 달력 종이로 책을 싸고 연을 날리기도 했대요. 그리고 딱지를 접어서 딱지치기를 하기도 했겠지요. 종이비행기를 접기도 하고, 개구리를 접기도 했을 테고요.



소가 벌집을 밟았나보다 / 말벌 우르르 내게 달라든다 / 얼른 내삐도 못하고 눈두덩이 부어오른다 / 소 내팽개치고 울며불며 집으로 달렸다 // 할마니는 “어째 그라냐, 내 갱아지” 하며 / 뒤안으로 데꼬가 넓적한 장뚜껑 여신다. / 몇 해 전 골박 터지고 볼랐던 그 메주 된장이다 (책임완수)



  표준말로는 ‘할머니’일 테지만, 진도사람 이종호 님한테는 ‘할마니’입니다. ‘아주머니’가 아닌 ‘아짐’이고, ‘모으다’가 아닌 ‘모태다’요, ‘내빼다’가 아닌 ‘내삐다’예요.


  전라말을 가만히 곱씹습니다. 진도말을 찬찬히 되씹습니다. 말마디에 서린 오랜 발자국을 돌아보고, 말결마다 흐르는 오랜 이야기를 헤아립니다. 참말로 진도내기 시골사람은 오늘날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이 전라말이나 진도말을 물려받을 아이들은 앞으로 얼마나 될까요.



다음 날 4월 16일 / 아침해도 변함없이 산마루 위로 방긋 웃으며 나왔다 / 나도 여느 날처럼 다람쥐 쳇바퀴 돌듯 / 출근해 컴퓨터를 켜고 일을 보고 있었다 // 갑자기 동료 여직원이 불러댄다 / 핸드폰을 막 닫고는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쳐다본다 / 혹시 작은애가 진도중 2학년 아니세요? / 오늘 제주로 수학여행 갔죠 / 지금 읍내 목욕탕에서는 아줌마들이 목욕하다 말고 / 학교로 전화 걸고 난리 났대요 (녹슨 냉장고·2)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바닷물에 잠기던 날, 진도중학교 아이들도 진도에서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갔다고 합니다. 그날 바닷물에 가라앉은 배는 진도 아이들이 아닌 안산 아이들을 태웠습니다. 그러나 진도사람은 진도 앞바다에서 가라앉은 배가 어떤 배인지 알 수 없었을 테지요. 그저 발을 동동 굴렀을 테지요.


  진도 아이들을 태운 배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을까요. 아마 어느 누구도 가슴을 쓸어내릴 수 없었으리라 봅니다. 내 아이가 아니었어도 ‘우리 아이’요 이웃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인천을 출발해 제주도로 가기 위해 세월호를 탔던 그 수많은 사람과 어린 학생들이 마지막 입었던 빛바랜 구명의가 보관소로 차곡차곡 피눈물로 쌓여 갔다. 모두 다 제조연월은 ‘1994’라고 하얗게 찍혀 있었다 //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의 나이보다 3살이나 더 많은 만 20세의 구명의가 갑자기 빨간 수의로 보였다. 그 순간, 북받쳤던 그 서런 감정을, 진도에 살고 있는 진도인으로서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둬야 할 책무감이 들어 급히 메모장에 숨가쁘게 적었다. (녹슨 냉장고·6)



  진도 공무원 이종호 님은 진도 앞바다에서 아이들을 태운 배가 가라앉은 뒤, 그 배에 실렸다가 흩어진 짐을 쌓아두는 보관소를 건사하는 일을 맡았다고 합니다. 끝자락 공무원으로서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이 애태우기만 하다가, 공무원이니 맡은 일을 하는데, 보관소로 쌓이는 빛바랜 구명의는 바닷물에 잠긴 아이들보다 나이가 많았다고 해요.


  구명조끼는 스무 해가 묵는 동안 그 자리에 얌전히 있었겠지요. 열아홉 해를 묵을 적에도, 열여덟 해나 열일곱 해를 묵을 적에도, 열여섯 해나 열다섯 해를 묵을 적에도 그저 그 자리에 곱게 있었겠지요.


  이제 부디 해묵은 구명조끼는 모든 배에서 치워내기를, 해묵은 구명조끼를 버젓이 두고도 멀쩡히 배를 모는 일은 없기를, 해묵은 구명조끼 같은 이들이 권좌에 눌러앉는 일도 없기를 비는 마음으로 시집 《무당거미》를 가만히 덮습니다. 2016.12.29.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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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레옷을 입은 구름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10
이은봉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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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78



예순 살 몸뚱이도 얼마든지 ‘꽃몸’

― 걸레옷을 입은 구름

 이은봉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13.6.21. 8000원



  1953년에 태어났다고 하는 시인 이은봉 님은 이제 예순 나이를 훌쩍 넘어서 일흔 줄로 달려갑니다. 2013년에 선보인 시집 《걸레옷을 입은 구름》(실천문학사)은 이녁이 예순 줄을 넘어설 즈음 어떤 마음이요 살림인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난 1980년대 이후, 꽃 피고 지는 오월 / 함부로 노래하지 못했다 / 최루탄 가스로 가득 찬 역사에 들떠 / 꽃이나 나무 따위 들여다보지 못했다 (오월이라고)



  한창 젊은 날에는 꽃을 보더라도 꽃을 노래할 수 없었다고 해요. 한창 펄펄 끓던 날에는 꽃이 아닌 피를 볼 수밖에 없었고, 사회와 역사와 정치만 바라보느라 오월에 어떤 오월꽃도 눈에 들어올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러다가 예순 줄 ‘걸레옷’ 같은 몸이 된 즈음 비로소 꽃을 볼 수 있었다고 해요. 시인이 걸친 ‘몸이라는 옷’은 낡고 쿰쿰하지만, 풀이나 나무는 해마다 오월이면 눈부시도록 싱그러운 꽃을 피우면서 새로운 모습을 새삼스레 깨달았다고 합니다.



우주를 흘러 다니며 내 몸의 날씨를 만드는 힘, 힘의 균형이 깨지면서 녀석은 내 몸의 물관부를 따라 함부로 떠돌며 행패를 부린다 // 때로는 귓속을 가득 메우며 귀뚜라미처럼 울기도 하는 기상대 // 해와 별과의 교신이 다시 연결되고 날씨가 맑아지면 녀석은 잽싸게 태도를 바꾼다 촐랑촐랑 내 몸속의 물관부를 뛰어다니며 까르르 웃는다 (기상대)



  어느 모로 본다면 예순이나 일흔이나 여든이라는 나이에 걸치는 ‘몸이라는 옷’은 ‘걸레’일 수 있을까요? 누군가 이렇게 볼 수 있을 테고, 시인 할아버지도 이처럼 여길 수 있을 테지요. 그러나 다르게 예순 줄을 바라본다면 예순이라는 나이는 ‘걸레라는 옷’이기보다는 ‘새롭게 깨어나는 옷’일 수 있습니다. 나이를 먹고 또 먹어도 꽃을 피우는 나무처럼, 사람도 예순이건 일흔이건 여든이건 얼마든지 새롭게 피어나는 ‘꽃몸’이 될 만하다고 느껴요.



밭두둑의 흙은 강아지풀의 집이지요 / 강아지풀은 흙 속에서 살지요 (강아지풀)


손톱을 깎는다 내 안에서 / 자라는 죽음을 깎는다 / 수염을 깎는다 내 속에서 / 자라는 어제를 깎는다 (오늘 치의 죽음)



  작은 손길 하나로도 멋스러운 살림을 지을 수 있습니다. 작은 눈길 하나로도 따스한 살림을 북돋울 수 있습니다. 작은 손길 하나로도 밭을 일굴 수 있습니다. 작은 눈길 하나로도 이웃을 보듬을 수 있습니다.


  예순 해를 살아내면서 몸으로 날씨를 읽을 수 있겠지요. 예순 해를 살아내면서 ‘몸에 깃든 숱한 말’을 걸러내어 아이들한테 이쁘장하게 물려줄 수 있겠지요. 예순 해를 살아내면서 마음에 담은 넉넉한 사랑을 젊은 넋한테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홈마트에서 싱싱한 오이 두 개를 샀다 / 하얀 비닐봉지에 돌돌 말아 왔다 / 밥보다 채소를 많이 먹으려고……. // 하나는 그날 곧장 깨물어 먹고 / 나머지 하나는 냉장고에 처넣어두었다 // 처넣어둔 것이 문제였다 / 처넣어두고 잊어버린 것이 문제였다 (오이)



  시집 《걸레옷을 입은 구름》은 그야말로 ‘걸레옷’을 입은 늙은 삶을 찬찬히 보여줍니다. 걸레옷을 입었기에 죽음으로 치달리는 모습을 그린다고 할 수 있고, 아무리 보아도 걸레옷이라 하지만 걸레옷이 아닌 꽃옷으로 바꾸고 싶다는 마음을 그린다고 할 수 있지 싶어요.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좋아해요.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늙건 말건 그리 대수로이 여기지 않아요. 아마 이런 몸짓이랑 눈짓이랑 마음짓인 아이들인 터라,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라고 말할 만하지 싶어요. 예순 고개를 넘어 일흔 고개로 달리는 ‘늙은 시인 할아버지’도 부디 몸이나 나이를 내려놓고서 즐거운 슬기하고 고운 손길을 이 땅에 새롭게 심는 씨앗노래로 가꾸어 볼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6.12.28.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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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십자가 문예중앙시선 26
박도희 지음 / 문예중앙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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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73



시뻘건 십자가는 아무도 못 살리지만

― 블루 십자가

 박도희 글

 문예중앙 펴냄, 2013.5.24. 8000원



  1964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박도희 님이 빚은 시집 《블루 십자가》(문예중앙,2013)를 읽습니다. 1964년이면 어떤 해일까 하고 헤아리면서 시를 읽고, 이 시를 쓴 분은 오늘 하루 어떤 살림을 지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시를 읽습니다. 2000년대에 태어나서 2010년대에 어린이나 푸름이로 산다면 1960년대를 헤아리기 어려울 테지요. 1970년대나 1980년대에 태어난 사람도 1970년대를 헤아리기는 어려워요. 1960년대 서울은 1970년대나 1990년대하고 사뭇 달랐을 테며 2000년대나 2010년대하고는 더 대기 어려울 만큼 다른 곳이었으리라 느껴요.



오른발이 홈쇼핑의 글루코사민 광고를 보고 / 왼발이 아일랜드에 풍차를 세운다 / 나뭇잎아, 오래오래 아주 오래 / 공중에 머물러라 (나뭇잎을 사러 간다)


내게 거짓말을 한 적 없으므로 믿을 수 없는 당신 / 폭포수 같은 시선을 간직해도 골짜기는 잠잠하다 / 당신이 있어 난 이르게 태어나기만 거듭했을 뿐이지만 / 나락의 꿈은 내 발의 종적을 감춘다 (새벽 산)



  오늘 우리가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십자가는 ‘빨간 십자가’입니다. ‘파란 십자가’는 눈 비비고 씻고 다시 떠도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박도희 님은 파란 십자가를 시집으로 노래합니다. 마치 파란 하늘 같은 십자가를, 파란 바다 같은 십자가를, 파랗게 물들이면서 흐르는 바람 같은 십자가를 노래해요.



내장산 대웅전 앞 / 〈즉석사진〉 완장을 두른 노인 / 비가 내리는 경내를 바ㅏ라보는 눈이 대웅전 같다 / 제 몸에 초점을 맞춘 적 없이 늙어버린 렌즈 속으로 / 단풍이 진다 단풍 아닌 발자국이 없다 (즉석사진)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 꿈속의 나무가 / 커져간다 / 꿈속 나무를 껴안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 내 그림자에 박힌다 (그림자가 무겁다)



  겨울에 자전거를 달려 면소재지 우체국에 다녀왔습니다. 서울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지 싶습니다만, 전남 고흥에서는 한겨울에도 맨발로 고무신을 꿰어 자전거를 달릴 만합니다. 그만큼 포근한 바람이고 날이며 하루입니다. 날이 워낙 포근해서 이 겨울에 눈이 아닌 비가 내리고, 겨울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달리는데, 장갑조차 안 낀 손에서도 땀이 돋고 몸에서 하얀 김이 돋습니다. 우체국에 택배를 맡기고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여러 새가 곳곳에서 하늘을 가르며 날아요. 동백나무 우듬지에 앉은 박새가 보이고, 빈 들판에서 이삭을 쪼다가 푸드득 날아오르는 멧비둘기가 보입니다. 까마귀 한 마리가 하늘을 가로지르기에, 저 까마귀는 그냥 까마귀일는지, 아니면 큰까마귀일는지, 아니면 다른 까마귀일는지 헤아려 봅니다. 맨눈으로는 알아보기 쉽지 않은데, 까마귀 가운데에도 텃새랑 철새가 있다고 해요.


  그러고 보면 나는 이 고흥이라는 고장에서 겨울에도 맨발에 고무신만 꿰지만, 서울만 가도 발이 시리니 양말을 꿰어야 합니다. 해주를 넘고 평양을 지나 의주쯤 이르면 양말 한 켤레로는 모자랄 테고 온몸을 친친 싸매야 할 테지요. 의주에서 압록강을 지나 연길을 거쳐 흑룡강 즈음 이르면 그야말로 눈하고 코만 바깥으로 내밀고 모두 두껍게 감싸야지 싶습니다. 시베리아쯤 이르면 추위는 또 얼마나 대단할까요.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딸이 현관문에서 소리를 지른다 아들은 시험 보는 날 지각을 한다 창밖을 보며 소나무야 소나무야 변하지 않는 네 빛, 노래를 부른다 엘리베이터도 주차장도 없는 가파른 아파트가 중력 없이 흔들린다 (떠다니는 길)



  십자가는 우리를 건져내어 살려 줄까요? 글쎄 모르는 노릇입니다. 어쩌면 십자가는 예배당은 살리되 우리는 아무도 못 건지고 못 살릴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십자가 아닌 우리 스스로를 믿고 사랑할 적에 비로소 스스로 건지면서 살려낼 수 있지 않으랴 싶어요. 해가 저물 즈음부터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십자가로는 참말 아무도 못 건지고 못 살리지만, 하늘을 닮고 바람을 닮은 파랗디파란, 그렇다고 굳이 십자가여야 하지 않을 테지만, 파란 하늘을 가슴에 담고 파란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할 적에 스스로 새롭게 깨어날 길을 열 만하지 싶습니다.


  “소나무야 소나무야 변하지 않는 네 빛”을 노래하는 시집 《블루 십자가》를 가만히 되새기면서 겨울 저녁을 앞둡니다. 아침에 끓인 된장국을 아이들이 맛나게 먹기를 바라고, 오늘은 오늘 나름대로 새로운 놀이와 이야기로 즐겁게 삶을 지으며 가슴에 곱게 노래 한 송이를 피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엘리베이터도 주차장도 없는 가파란 아파트”에 이 겨울에도 싱그럽고 포근한 파랗게 눈부신 바람 한 줄기 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6.12.21.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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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진 시집
박성진 지음 / 소소책방(소소문고)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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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를 노래하는 말 277



직행과 완행 사이에 애닳은 숨소리

― 숨

 박성진 글

 소소문고 펴냄, 2016.5.1. 8000원



  우리는 누구나 ‘숨’을 쉬고 삽니다. 숨을 쉬지 않는다면 곧장 ‘목숨’을 잃습니다. 사람도 숨을 쉬지만 푸나무도 숨을 쉬어요. 푸나무도 숨을 쉬지 않으면 곧바로 ‘숨결’을 잃어요.


  때때로 크게 짓는 숨인 ‘한숨’을 쉽니다. 걱정이 되어 한숨이요, 마음을 놓으며 한숨이에요. 마음이 무거운 나머지 한숨을 푹푹 쉬지만,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한숨을 폭폭 쉬기도 해요.


  그러니 ‘숨통’을 죄면 괴롭습니다. 숨통이 트이면 시원합니다. 숨통이 막혀서 고달픕니다. 숨통이 끊어지지 않도록 온힘을 다하면서 삶을 이으려고 해요.



다른 교생은 복사하러 가고 / 담임 선생도 자리 비운 사이 / 얼른 가방 열어 아이들이 남긴 / 우유 쑤셔 넣고 / 달아오른 얼굴 식히려 / 바라본 창밖 / 때마침 흘러가는 우윳빛 구름 (농협 우유)


엄마 눈 속에 내가 있네 / 세 살 아이가 / 완성한 첫 문장 // 엄마 뺨 양손으로 잡고 / 눈을 바라보다, 한참 (첫 문장)



  속초에서 교사로 일하는 박성진 님이 선보인 시집 《숨》(소소문고,2016)에 흐르는 숨소리를 헤아립니다. 교사로서 아이들을 만나며 느낀 숨소리를 헤아리고, 어버이나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바라보며 깨달은 숨소리를 헤아려 봅니다.


  세 살 아이 눈에 어머니가 살아서 숨을 쉬듯이, 서른 살 마흔 살 쉰 살 예순 살 어머니 눈에서도 아이가 살아서 숨을 쉽니다. 두 사람 눈에는 서로 아름다운 숨결이 살아서 빛나요. 따사로운 사랑으로 만나는 두 사람은 싱그러운 숨을 나누면서 하루를 지어요.



급식소로 가는 길 / 종원이나 성경이 실내화를 / 비 오는 운동장에 내던졌다 / 눈 깜짝할 사이였다 // 밥 남긴 적 없는 성경이 / 씩씩거리며 몇 숟갈 뜨더니 / 못 먹겠다며 일어선다 (눈 깜짝할 사이)



  숨 한 줄기는 바람이 되어 퍼집니다. 내가 오늘 마시는 숨은 네가 어제 마신 숨일 수 있습니다. 네가 어제 마신 숨은 그제 내가 마신 숨일 수 있습니다. 내가 마시는 숨 한 줄기로 작은 풀꽃이 자랄 수 있고, 작은 풀꽃이 자라며 마시는 숨 한 줄기로 내가 오늘 기쁘게 노래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러한 숨을 미처 한 번 제대로 쉬지 못한 채 흙으로 돌아가는 목숨이 있습니다. 난 곳이 무덤이 되는 목숨은 두 어버이한테 뼛속까지 사무치는 아픈 숨을 남깁니다. 저도 이렇게 여린 숨결을 두 차례 나무 곁에 묻은 적 있어요. 비록 열 달을 채우지 못했어도 우리한테 찾아온 고운 숨결이라고 여겨, 우리 집 나무 곁에 고이 묻어 주면서 앞으로 새로운 목숨을 받아 태어나기를 빌었지요.



새벽 욕실 앞 / 선 채로 아이처럼 우는 / 아내를 자리에 뉘였다 // 아내의 안 / 숨이 멎은 아이는 / 난 곳이 무덤 되었다 (숨)


어머니는 감 깎으러 이장 댁에 간 시간 / 티비 보려다 할머니가 깰까 봐 멈칫한다 / 하릴없이 시집을 뒤적이다 잠바 입고 / 뒤뜰에 쭈그려 앉아 담배 피운다 (하루)



  숨소리는 바람소리를 닮습니다. 바람소리는 숨소리를 닮습니다. 낮에 구름을 보면서 숨을 쉬다가, 밤에 별을 보면서 숨을 쉬다가, 우리 숨 한 줄기란 바람 한 줄기하고 똑같을 수 있겠다고 느끼곤 해요. 우리가 마시는 숨이란 ‘공기’인데, 이 공기란 ‘하늘’을 이루면서 흐르는 ‘바람’이기도 해요.


  어쩌면 숨쉬기란 바람쉬기요 하늘쉬기일 수 있어요. 숨을 쉬는 동안 바람을 쉬고 하늘을 쉴는지 모릅니다. 숨을 마시는 삶이란 바람을 마시면서 바람처럼 되고, 하늘을 마시면서 하늘처럼 되는 삶일 수 있어요. 그래서 예전에 어느 교사 시인은 “하늘숨을 쉬는 아이들”이라는 말을 읊은 적 있어요. 아이들은 그냥 여느 숨이 아니라 ‘하늘숨’을 쉰다고 했어요. 아이들을 낳거나 맡거나 가르치거나 보살피는 어버이나 어른이나 교사는 모두 아이들 곁에서 ‘하늘숨’을 함께 쉰다고 했어요.



원지에서 산청 가는 직행버스 / 할아버지, 다리가 아프니 댁 가차이 / 완행으로 내려달라 하신다 / 검표인이 올라와 완행 타시라 일렀지만 / 내릴 생각 않으시고 // 옛 길 위로 난 4차선 국도 / 시원스럽게 내달릴 즈음 / 입을 연 할아버지 다시 / 아픈 다리와 옛 길 이야기 / 젊은 버스기사 결국 핏대 세운다 (직행과 완행 사이)


내가 사는 이 시집 / 가물이 든 시인의 주머니에 / 백동전 몇 잎 피어나 / 주렁주렁 열매 맺으면 (내가 사는 이 시집)



  강원도 속초 시골자락에서 넌지시 깨어난 작은 시집 《숨》을 읽으면서, 전남 고흥 시골자락에서 읍내를 다녀오며 으레 타는 군내버스를 떠올립니다. 속초에서 시를 쓰는 교사인 박성진 님은 ‘직행과 완행 사이’ 이야기를 시로 그리면서 이녁이 깃든 시골자락에 놓인 길하고 얽힌 옛살림을 보여줍니다. 구불구불 작은 길이 사라지면서 뻣뻣하게 뻗은 너른 길로 바뀌는 사이, 시골 할매나 할배는 버스 한 번 타기 어렵습니다. 시골 할매나 할배한테는 직행도 완행도 그저 버스일 수 있어요. 더구나 ‘완행’이라 하더라도, 요새는 ‘한두 집만 남고 만 작은 마을’ 앞에서는 버스가 안 섭니다. 원지에서 산청 가는 버스를 탄 시골 할배는 완행을 타더라도 이녁 보금자리가 있는 마을에 서는 버스가 사라져 버리지 않았을까요.


  시 한 줄에 가늘게 숨소리가 흐릅니다. 시 두 줄에 가볍게 바람소리가 흐릅니다. 시 석 줄에 곱다라니 하늘소리가 흐릅니다. 겨울비가 지나간 하늘에는 한결 싱그럽게 열린 새파란 하늘빛을 닮은 숨소리가 흐릅니다. 고흥에서는 겨울비라면 속초에서는 겨울눈이었을 테지요. 같은 하늘 밑이지만, 어느 고장에서는 더 추운 바람을 타고 눈발이 날리고, 어느 고장에서는 더 따순 바람을 타며 빗발이 듭니다. 오늘 하루도 새롭게 숨을 쉬는 마음이 되기를 바라면서 아침을 열고, 시집을 읽고, 아이들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밥을 짓고, 호미를 손에 쥡니다. 2016.12.20.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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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 - 칠곡 할매들, 시를 쓰다 칠곡 인문학도시 총서
칠곡 할매들 지음, (사)인문사회연구소 기획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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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를 노래하는 말 275



저절로 시가 되는 칠곡 할매들 말과 살림

―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

 칠곡 할매 119명 글

 삶창 펴냄, 2016.10.10. 9000원



  칠곡 할매 백열아홉 분은 얼마 앞서까지 이녁 이름을 손수 글로 못 썼다고 합니다. 할매 나이가 되도록 글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딸아들 모두 도시로 떠나고 손자를 맞이하는 할매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한글을 배운다고 해요.


  이제껏 흙을 만지고 물을 주무르며 살림만 하던 할매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연필을 처음으로 쥔대요. 호미랑 낫은 늘 쥐어 보았으나 연필만큼은 쥔 일이 없는데, 아주 서툰 손길로 연필을 쥐어서 더더욱 서툰 손놀림으로 이녁 이야기를 글로 쓰는 하루를 지낸다고 해요.



일주일 손녀를 보았다 / 엄마를 찾을줄 알았는데 / 잘놀고 순했다 / 밥을 잘 안 먹어서 힘들엇지만 / 그래도 좋다 / 넷살짜리가 말도 참 잘한다 / 재롱부리며 잘 노는 것을 보니까 / 참 행복하다 (손녀/김정자)


오늘은 큰딸 작은딸이 / 손자들 갓이 와서 동생내하고 / 소고기를 먹었다 / 참 맛나다 (참 맛나다/유순희)



  작은 시집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삶창,2016)에는 백열아홉 할매마다 백열아홉 이야기를 백열아홉 빛깔로 그린 글이 흐릅니다. 백열아홉 할매는 저마다 글을 한 꼭지씩 썼습니다. 시가 무엇인지 몰라도, 글이 무엇인지 몰라도, 참말로 연필을 쥐고 종이에 뭔가 끄적이는 몸짓이 무엇인지 몰라도, 백열아홉 할매는 천천히 또박또박 참하게 글씨를 빚어서 이야기를 하나씩 선보였다고 합니다.



엄마를 일찍 여위고 사랑이란 단어를 /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 곳감이 프로포즈 할 때 / 편지로 사랑한다는 말 한 번밖에 없다. / 곳감한테도 딸 아들한테도 들어보지 못한 말 / 우리 예뿐 며느리가 / 어머니 사랑합니다. / 그말을 듣는 순간 너무 너무 행복했다. / 아들이 하는 일마다 잘되고 우리 며느리 복덩이다. (우리 예뿐 며느리/이정란)



  ‘사랑’이라는 말을 곳감(영감)한테서 꼭 한 번 편지로 들었을 뿐, 더군다나 딸아들도 이 말을 들려준 적이 없다는데, 며느리가 “어머니 사랑합니다” 하고 나긋나긋 이야기해 주었다고 합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하고 이야기한 며느리는 꼭 한 번만 이 말을 들려주지 않았으리라 느껴요. 할매를 뵐 적마다 틈틈이 이 말을 들려줄 테지요.


  조용한 시골집에서 시골살림을 일구는 시골 할매는 아주 오랜만에, 아니 거의 처음이라 할 만한 말 한 마디 ‘사랑’을 들으며 가슴으로 북받치는 기쁨으로 웃고 노래를 하다가, 처음으로 익힌 한글로 이 이야기를 옮깁니다. 이리하여 며느리는 그냥 며느리가 아닌 “우리 며느리”예요. 우리 며느리는 그냥 우리 며느리가 아닌 “우리 예뿐 며느리”이고요.


  흔하거나 수수하다고 할 수 있는 한 마디 ‘사랑’인데, 이 말 한 마디로 할매가 웃고 며느리도 웃으리라 느껴요. 온 집안 사람들이 다 함께 웃는 살림이 되겠구나 싶어요.



봄 콩 숭가다 / 들에 쑥 뜨더다 / 집에 와서 이불 빨래해다 / 밭에 가서 도래밭 쪼사다 / 도래씨 흐터다 / 머리 염색도 해다 / 오늘 디기 바빠다 (봄 콩 숭가다/이순늠)


아침에 / 일어나 느티나무를 보면 / 기분이 좋습니다 / 가만히 보면 / 인물이 잘생긴 사람같습니다 / 나이 하루하루가 / 느티나무 그림자를 따라 / 즐겁게 돌아갑니다 (느티나무/노선자)



  칠곡 할매들은 이녁이 꾸리는 삶을 고스란히 옮깁니다. 군더더기를 붙일 일이 없습니다. 토를 달 일이 없고, 말꼬리를 늘어뜨릴 일이 없습니다. 할매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를 고스란히 글씨로 옮겨요.


  표준 서울말이 아닌 칠곡말로 글씨를 그립니다. 글을 ‘쓴다’기보다 글씨를 ‘그린다’고 해야 걸맞을 칠곡 할매는 참말로 그림을 ‘그리’듯이, 꿈을 ‘그리’듯이, 사랑을 ‘그리’듯이 글씨를 그리면서 이야기를 하나하나 그려요. “콩 숭가”고 “쑥 뜨더”다가 “도래밭 쪼사”다가 “디기 바빠”맞은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투박하게 시 한 꼭지로 적어 냅니다.



어렸을 때는 여름이 되면 / 저녁을 먹고 친구들과 / 시내가에 가서 목욕을 하고 / 버들가지 꺾어서 / 호땍이도 만들어 불며 / 재밌게 놀던 시절 / 언제나 그 시절이 다시 올까 (어린시절/장오희)



  칠곡 할매가 칠곡 이야기를 칠곡말로 그립니다. 정선 할매는 정선 이야기를 정선말로 그릴 수 있어요. 장흥 할매는 장흥 이야기를 장흥말로 그릴 만하고, 옥천 할매는 옥천 이야기를 옥천말로 그릴 만해요. 


  시골마다 시골 할매를 만나서 시골 할매 스스로 한글을 익혀서 시골 할매 이야기를 투박하지만 한 땀 두 땀 살뜰히 옮기는 글을 쓰시도록 북돋우면 참으로 아름답고 재미나면서 즐거운 이야기가 퍼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늘그막에 글을 새롭게 배우면서 삶을 새롭게 사랑하시도록 북돋운다면 ‘아기 울음소리’가 없어서 고요하다는 시골마을마다 새삼스레 웃음꽃이 피어날 만하지 싶어요.



웃고 지끼고 첨에는 / 이르미 삐딱삐딱 도라가디 / 이제 내 이름이 참마게 빈다 / 자꾸 쓰이 이름이 참매진다 / 내가 써도 글씨가 참하다 / 이름도 퍼떡 쓰게꼬 / 요래 이쁜 내 이름을 / 누구한테 자랑해보꼬 (글씨가 참하다/안윤선)



  “이름이”라고 못 적고 “이르미”라고 적어도 됩니다. “참해진다”라 못 적고 “차매진다”라고 적어도 돼요. 찬찬히 바느질을 하듯이, 찬찬히 호미질을 하듯이, 찬찬히 씨앗을 심어 찬찬히 거두듯이, 할매들 살림살이가 찬찬하면서 따사롭게 흘러서 ‘할매 이야기 시집’이 앞으로도 새록새록 태어나겠지요?


  우리 사랑이 비롯하고, 우리 꿈이 태어나며, 우리 숨결이 흐르는 시골노래가 아름답게 퍼질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저절로 시가 되는 칠곡 할매들 말과 살림이 참말로 온누리를 포근하면서 살가이 어루만져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2016.12.14.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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