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훔친 기적 민음의 시 233
강지혜 지음 / 민음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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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91



젊은 시인은 걸상을 들고 전철에 올랐다

― 내가 훔친 기적

 강지혜 글

 민음사 펴냄, 2017.3.24. 9000원



  저하고 띠동갑으로 나이가 젊은 분이 처음 낸 시집 《내가 훔친 기억》(민음사,2017)을 읽었습니다. 이 시집을 낸 분은 2013년에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시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하고, 이 시집을 내면서 비로소 시인이라는 길을 걷는다고 합니다.


  시집 책날개를 보면 《내가 훔친 기억》을 낸 강지혜 님이 1987년에 태어났다고 하는 이야기 말고는 다른 이야기가 없습니다. 오직 시로 이녁 삶과 이야기를 들으라고 하는 뜻이네 싶으면서, 굳이 어느 해에 태어났다는 대목을 밝힌 뜻은 무엇일까 하고 어림해 보았어요. 이러면서 제가 태어난 1975년을 떠올렸고, 저보다 열두 삶 젊은 삶이란 무엇일까 하고 되새겨 보았어요.



입성하지 못한 자들이

일몰에 맞춰 벽을 핥으러 간다


“봄이 되면 담벼락에 수만 마리 무당벌레가 날아와. 걔들을 터트리느라 똑똑해질 시간이 부족했는지도 몰라”


그들은 매일 인도가 없는 아스팔트를 걸었다 (벽으로)



  어느 분은 저보다 열두 살 위일 테니, 제가 그분한테는 열두 삶 젊은 사람이 되겠지요. 이 젊음이란 언제나 서로 맞물립니다. 저보다 젊은 분이 있고, 또 저는 누구한테는 무척 젊은 사람이 됩니다. 저보다 젊은 분도 그이보다 젊은 분이 또 있고요.


  이렇게 본다면 ‘젊은 시인’이라는 말은 좀 안 맞을 수 있지 싶어요. ‘젊다’를 꼭 나이로만 따질 수 없거든요. 나이가 스물 언저리이기에 젊을까요? 나이가 서른 언저리라면 젊을까요? 서울 같은 커다란 도시에서는 스물이 풋풋하게 젊고 서른이 씩씩하게 젊다고 여길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서른 줄에만 접어들면 ‘이제 안 젊다’고 여길는지 몰라요.


  이와 달리 제가 사는 시골에서는 일흔 살 나이가 ‘젊은이’예요. 저희 마을에서 가장 ‘젊은’ 분이 일흔 줄이 넘습니다. 다들 여든 줄이나 아흔 언저리랍니다. 이러다 보니 마흔 줄쯤 되는 나이는 젊은이조차 아닌 ‘아기’로 여겨요. 재미나지요. 나이 하나를 놓고서 ‘자리마다 삶마다 다른 이야기’가 태어나요.



아름다운 의자를 들고 퇴근 시간 전철에 탔다 의자는 황홀한 노래를 읊조리고 내 몸은 달아올랐다


이것은 의자, 별처럼 빛나는 의자


의자를 들고 전철에 탔지만 자리가 없었다 나는 분명히 의자를 들고 있는데 앉을 수가 없으니 나와 의자는 슬펐다 그리고 의자는 분명히 외로웠다 (의자 들고 전철 타기)



  시집 《내가 훔친 기억》을 쓴 강지혜 님은 이 시집을 내놓기까지 어떤 삶을 겪거나 마주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이 시집을 읽는 우리는 저마다 어떤 삶을 치르거나 맞닥뜨리는 길을 걸어오다가 이 시집 이야기를 만날 만한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강지혜 님은 시집에서 ‘걸상을 들고 전철을 타던 일’을 들려줍니다. 저도 이렇게 걸상을 들고 전철을 탄 적이 있어요. 언젠가 책상을 둘이서 들고 전철을 탄 적도 있어요. 책걸상을 들고 전철을 타야 하던 그때, 참 눈치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어요. 짐차를 부를 수 없던 때였고, 이래저래 전철밖에 없어서 전철로 서둘러 책걸상을 옮겨야 했지요.


  저는 두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어쩔 수 없이 출퇴근 지옥철 시간’에 갓난쟁이를 안고서 전철을 타야 하던 일이 몇 차례 있습니다. 저처럼 갓난쟁이를 업거나 안은 채 ‘어쩔 수 없이 출퇴근 지옥철 시간’에 전철을 오르는 분을 더러 보기도 했고요. 이때에 서로서로 참 괴롭지요. 고달파요. 아기 어머니나 아버지도, 다른 손님도, 누구보다 아기가 참으로 힘겨워요.



먼지들은 내가 자주 쓰는 의성어를 엮어

노래를 만들었다

소리는 분명히

내 몸 안에서부터

공중으로 퍼져 나갔다 (화단을 가꾸려 했다)



  이 힘겨운 삶이란 무엇일까 하고 되새겨 봅니다. 걸상을 들고 전철에 올라야 했는데, 막상 전철에서 ‘내가 들고 간 걸상’에 앉지 못하는 삶이란 무엇일까 하고 그려 봅니다.


  우리는 우리 지친 다리를 쉴 걸상이 저마다 있는데, 막상 이 걸상에 느긋하게 앉지 못하고, 쉬지 못하고, 숨을 돌리지 못하고, 한갓지지 못하다면, 이러한 삶이란 무엇이라고 할 만할까요.



누나는 번번이 자신을 시인이라고 소개했다

누나는 단지 풍경을 기록하는 사람

진짜 이야기는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동어반복)



  ‘화단을 가꾸려 했다’라는 시를 가만히 읊습니다. 노래가 되는 소리는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이야기를 저도 늘 느낍니다. 제 마음이 스스로 노래로 흐르지 않는다면 즐겁게 노래를 하지 못해요. 제 마음을 스스로 기쁨으로 일구지 않는다면 마음껏 노래를 하지 못해요.


  시인이란, 등단한 사람을 일컫는 이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인이란, 시집을 낸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를 쓰기에 시인이고, 시를 노래하기에 시인이며, 삶을 시라는 글로 가만히 갈무리해서 이웃한테 속삭이기에 시인이라고 느껴요. 비록 “진짜 이야기는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몸짓이거나 하루라 하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시인이라고 느껴요. 우리는 우리 삶을 노랫가락처럼 잔잔하게 들려줄 수 있으니 누구나 시인이에요. 동생한테 언니한테 아버지한테 할머니한테 우리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면 우리는 저마다 시인이지 싶습니다.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척 하면서

나는 내 머리를 토닥인다


모두의 바람처럼

거울이 나무를 비추면 좋겠지만

나는

숲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의자에 앉아

무릎의 위치는 왜 언제나 여기인지

생각하는 (껍질)



  머리카락을 쓸어서 넘기면서 제 머리를 토닥여 봅니다. 머리카락도 쓸어서 넘기고, 머리도 토닥여 줍니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볼 일이 없습니다. 곁에서 누가 제 머리를 토닥여 주기를 바라지 않고, 제가 스스로 제 머리를 토닥여 줍니다. 씩씩하게 서려 합니다. 기운을 내어 서고자 합니다.


  ‘바람’처럼 거울이 나무를 비추어 줄 수 있고, 숲을 마음에 담고서, 또 걸상에 가만히 앉아서, 이제 ‘껍질’에서 깨어날 수 있습니다. 한 걸음씩 뗍니다. 두 걸음으로 나아갑니다. 천 리라고 하는 길은 처음에 참 아득하구나 싶었으나, 아장아장 아기처럼 떼는 걸음을 꾸준히 잇고 보니 어느새 우리 꿈 앞에 다다릅니다.


  시집 《내가 훔친 기적》이 밝히는 ‘우리가 저마다 훔친 놀라움’이란 우리 스스로 미처 모르는 사이에 이룬 사랑일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우리 마음속에서 고요히 피어난 사랑을 시나브로 알아채면서 홀가분하게 걸상에 앉아 다리를 쉴 수 있는 오늘 살림이지 싶어요. 마음이 젊고 생각이 젊으며 꿈이 젊은 시인이 걸어갈 길은 ‘꽃이 피어날 수 있는 흙이 있어 숲으로 짙푸른 길’이 되리라 봅니다. 2017.4.30.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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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랑 깨 - 권오삼 동시집
권오삼 지음, 안녕달 그림 / 창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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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87


코앞에 바쳐야 먹는 게으름뱅이는 누구지?
― 진짜랑 깨
 권오삼 글
 안녕달 그림
 창비 펴냄, 2011.12.20. 8500원


  할아버지 동시인 권오삼 님은 동시집 《진짜랑 깨》(창비,2011)에서 ‘게으름뱅이들’ 이야기를 슬며시 들려줍니다. 이 게으름뱅이는 능금을 무척 좋아한다고 하지만 정작 제 손으로 깎아 먹을 줄 모른다지요. 누가 깎아서 코앞에 갖다 바쳐야 비로소 잘 먹는다고 해요.

  능금 한 알을 손수 깎을 줄 모르는 게으름뱅이라면, 능금나무를 돌보면서 능금알을 손수 딸 줄도 모르겠지요. 능금뿐 아니라 다른 열매도 손수 딸 줄 모를 뿐더러, 손수 기를 줄도 모를 테고요.
  

게으름뱅이들은 절대로
제 손으로 사과를 깎아 먹지 않는다.
사과를 무척 좋아해도.

깎아서 코앞에 갖다 바치면
그제야 잘 먹는다.

그 게으름뱅이들은 주로
아빠라는 사람들이다. (게으름뱅이들)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는 게으름뱅이일 수 없습니다. 예부터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는 들일을 하고 나무를 하고 장작을 패고 불을 때고 새끼를 꼬고 짚신을 삼고 돗자리를 짜고 연장을 깎고 …… 누구나 더없이 바지런히 살았어요. 이러면서 능금나무이건 배나무이건 감나무이건 알뜰히 돌보았지요.

  어쩌다가 한국 사회 아버지는 그만 ‘게으름뱅이’가 되고 말았을까요. 어쩌다가 한국 사회 아버지는 능금 한 알조차 손수 못 깎는 버릇이 몸에 배고 말았을까요. 어쩌다가 한국 사회 아버지는 집안일이나 살림을 으레 어머니(곁님)한테 슬쩍 떠넘기는 게으름뱅이 굴레에 갇혔을까요.


선생님이 보시고는
둘 다 틀렸다고 하면서
7단과 8단을 다섯 번 쓰라고 했다.

연아가 나 때문에 틀렸다고
눈을 흘기며 종알종알
집에 갈 때까지 나하고 말도 안 했다. (구구단 시험)


  학교에서 시험을 치는데, 짝꿍이 내 시험종이에 적은 답을 베껴서 썼대요. 그러나 내 시험종이에 내가 적은 답은 다 틀렸기에, 내 시험종이를 베껴서 쓴 짝꿍도 함께 틀렸다는군요. 너나 나나 똑같은데 굳이 안 베껴도 되었을 텐데요. 모르면 모르는 대로 시험을 치르면 될 텐데요. 무엇을 모르는지 제대로 알아야 앞으로 이 모르는 것을 제대로 배워서 알 수 있을 텐데요.

  몰래 베껴서 시험 점수를 잘 받으면 즐거울까요. 몰래 베껴서 시험 점수를 높인들 내가 잘 모르는 것을 잘 알 수 있을까요. 예나 이제나 학교에서는 시험을 치르면서 아이들을 닦달하는 터라 그만 아이들은 점수에 얽매여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떳떳하게 밝히면서 즐겁게 배우는 길하고 멀어질는지 모릅니다.


형은 중학생이 되고부터
학교 가기 싫다는 소리 자주 한다.
중학교에선
공부, 공부, 공부만 해야 한다고
숙제도 엄청 많이 내 준다고 한다.
그리고 선배들도 무섭다고 한다. (우리 형)


  학교 밖에서 본다면 나이 한두 살쯤 아무것이 아닙니다. 서른 살이나 마흔 살, 쉰 살이나 예순 살, 일흔 살이나 여든 살이라는 테두리에서 볼 적에도 나이 한두 살쯤 아무것이 아니에요.

  그렇지만 학교 문턱만 넘어서면 나이 한두 살로 선배가 되고 후배가 되면서 높직한 울타리가 쌓인다고 해요.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나이 한두 살을 놓고서 윽박지르거나 괴롭히는 몸짓이 사그라들지 않는다고 해요.

  아름답게 한 살을 먹고, 즐겁게 한 살을 먹으며, 사랑스럽게 한 살을 먹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한 살을 더 먹는 동안 더 배운 만큼 고개 숙일 줄 아는 몸짓이 되면 좋을 텐데요.


새는 악보 안 봐도 노래할 줄 안다.

나비는 음악 없어도 춤출 줄 안다. (새와 나비)


  할아버지 동시인은 비랑 구름을 바라보다가 새랑 나비를 바라봅니다. 비록 요즈음 도시에서는 새나 나비를 느긋하게 만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만, 시골이든 도시이든 새는 음악 수업을 안 받아도 노래를 한다지요. 나비는 노래가 따로 없어도 춤을 춘다지요.

  이와 달리 사람들은 따로 음악 교육을 받아야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잘못 여기곤 합니다. 즐거운 살림이 될 적에 저절로 즐거이 노래가 나오는 줄 잊곤 해요. 따로 춤을 배우러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되는 줄 잊지요. 저절로 어깨춤을 추고, 스스로 손짓 발짓 몸짓을 놀려서 춤을 누리면 되는 줄 잊고 말아요.


둥근 바퀴는 자전거 다리
자전거의 둥근 두 다리와
아이의 길쭉한 두 다리가
짝이 되어 짝꿍이 되어서
씽씽 쌩쌩 신나게 달리면
몸에 와 감기는 바람바람 (자전거 타기)


  아이도 어른도 몸에 와 감기는 바람을 쐬며 자전거를 달릴 수 있기를 빌어요. 싱그러운 바람을 맞이하며 자전거를 달리는 기쁨을 누려 본다면, 우리 사회는 많이 달라지리라 생각해요.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을 내려놓고서 함께 자전거를 달리다 보면,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들을 수 있어요. 때로는 걷고 때로는 자전거를 달리면서 마을하고 학교를 알뜰살뜰 가꾸는 길을 헤아릴 수 있지요.

  온몸으로 바람을 느끼고 새랑 나비를 동무로 삼을 수 있다면, 이쁘게 깎아서 코앞에 내밀어야 먹는 능금 한 알이 아니라, 저마다 마당이나 텃밭을 가꾸어 능금나무를 돌볼 줄 알면서 도란도란 나누는 능금 한 알로 거듭날 만하지 싶어요. 바지런하게 살림을 지을 아버지가 아닌, 게으름뱅이가 되는 아버지로 길들이는 사회는 이제 그만 멈추도록 서로 따사로이 손길을 내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7.4.27.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동시읽기/동시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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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계보 문학의전당 시인선 142
배재형 지음 / 문학의전당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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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90



꽃내음이 흘러 두 눈에 눈꽃

― 소통의 계보

 배재형 글

 문학의전당 펴냄, 2012.11.28. 8000원



  바람이 흘러서 이곳에서 저곳으로 갑니다. 바람길이 막힐 적에는 숨길이 막혀, 어디에서건 숨을 못 쉽니다. 바람길이 뚫리기에 우리는 맑은 숨을 마시면서 하루를 지을 수 있습니다.


  들에서 부는 바람이 마을을 스치고, 숲에서 부는 바람이 서울로 갑니다. 공장에서 부는 바람이 시골로 오고, 발전소에서 부는 바람이 바다를 덮습니다.


  배재형 님 시집 《소통의 계보》(문학의전당,2012)를 읽습니다. 서로 흘러온 발자국을 돌아보는 싯말을 하나하나 되새깁니다.



소복 입은 구름은 밤늦도록

뭉게뭉게 하늘을 거닌다

할머니는 달 여행하러

우주선처럼 하늘로 날아가셨다 (월하의 공동묘지)


아침 햇살마냥 여관 뒷문을 나오다

버려진 텔레비전을 바라본다

겉으로는 멀쩡한 허우대 하나 

소리 없이 서 있다 (소통의 계보)



  할머니는 달마실을 가셨으면 할아버지는 별마실을 가실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달을 거쳐 해로 마실을 할 수 있고, 이 해누리에서 벗어나 머나먼 별누리로 마실을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 지구에 머물면서 고즈넉히 지낼 수 있겠지요. 이웃집에만 가볍게 마실을 하며 지구라는 별에 깃들 수 있어요.


  집하고 일터 사이를 흐를 수 있습니다. 때때로 다른 고장으로 볼일을 보러 가면서 여관에 묵을 수 있습니다. 버려진 텔레비전을 볼 수 있고, 조그마한 들꽃을 볼 수 있습니다. 구름이 흐르는 하늘을 보거나, 낮에 뜬 달을 볼 수 있어요.



창가가 어두워졌다

저녁의 나이를 물감으로 그릴 수 있다면

어떤 풍경이 될까

동네 유치원이 사라진 저녁은

먼지와 잿더미가 가득 찬

빈 공사장 풍경 사이로

푸른 자전거 하나 지나간다 (저녁풍경)



  어느 마을에서는 유치원이나 학교가 문을 닫습니다. 어느 마을에서는 유치원이나 학교가 미어터집니다. 어느 마을에서는 놀이터가 자취를 감춥니다. 어느 마을에서는 어마어마하게 큰 쇼핑센터가 들어섭니다. 어느 마을에서는 조용히 흐르는 바람이 머물고, 어느 마을에서는 번쩍거리는 등불이 춤추며 바람이 깃들 자그마한 틈조차 없습니다.



복권가게에 붙은 찬란한 전광판에서

목 빼고 기다린 당첨숫자들이 차례대로 지나간다

비싼 꽃 우리 식구 쌀 한 포대는 족히 된다며

핀잔이나 주지 않을까 (꽃집 앞)


아내의 복숭아뼈 벌겋게 부었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닌 시장 한 구석

무거운 시장바구니 들고 가던 아내

양손에 비닐봉지를 내려놓고

아내의 복숭아 바라보았다 (복숭아꽃 아내)



  우리 마음에 꽃이 피어난다면, 우리 곁에 있는 사람도 이 꽃에서 향긋한 기운을 받아들입니다. 우리 마음에 꽃이 안 피어난다면, 제아무리 값진 꽃다발을 품에 안더라도 향긋한 기운이 퍼지지 않습니다. 값진 꽃이나 비싼 꽃이기에 꽃내음을 퍼뜨리지 않아요. 따사로운 마음으로 손에 쥔 풀꽃송이에서 꽃내음이 퍼져요.


  곁님 다리에서 복숭아꽃이 피고, 곁님 입술에서 앵두꽃이 피며, 곁님 볼에서 능금꽃이 핍니다. 우리 몸 어디에서나 마알갛게 꽃이 핍니다. 눈에서는 어떤 눈꽃이 필 만할까요? 마음에서는 어떤 마음꽃이 흐드러질 만할까요? 고이 흐르고 흘러 이야기가 될 노랫가락이 싯말 한 마디에 내려앉습니다. 2017.4.20.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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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무겁다 문학의전당 시인선 205
최부식 지음 / 문학의전당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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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86



무거운 봄비가 산뜻할 수 있도록

― 봄비가 무겁다

 최부식 글

 문학의전당 펴냄, 2015.6.17. 9000원



  겨울이 저물 즈음에는 제법 포근하구나 싶은 날씨가 찾아듭니다. 이러면서 이제 봄이로구나 싶을 즈음에는 거꾸로 제법 쌀쌀하구나 싶은 날씨가 찾아들어요. 어느 모로 보면 뒤죽박죽이네 싶으나, 땅으로 보고 들로 보며 숲으로 보면 제결이지 싶습니다. 따사로운 철로 바람이 바뀐다고 미리 알리고, 추위가 곧 가시지만 섣불리 들뜨지 말라면서 된바람이 마지막으로 싱싱 몰아쳐요.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 눈물의 새벽기도 / 빼곡하다 // 돋보기안경 쓰고 베껴 쓴 / 언약의 눈빛들 / 모든 걸 지나가게 했다 (필사)


이른 봄밤, 아버지 밭둑의 매화 암향 맡으러 간 사이 엄마는 텃밭에 심을 한 해 찬거리를 꿈꾸었지요 냉이 캐다가 제비꽃 옮겨 심는 꼴 싫어 타박 놓고 고랑에 심은 꽃잔디 환히 번지자 호미로 캐내며 차라리 가지 심어 가지꽃 보자던 감자 심어 감자꽃향 맡자던 엄마의 텃밭이었어요 (텃밭 꽃밭)



  시집 《봄비가 무겁다》(문학의전당,2015)를 읽으면서 봄을 헤아리고 날씨를 돌아봅니다. 봄이지만 아직 섣부른 봄인가 싶도록 땅이 안 녹더군요. 이러다가도 어느 날부터 흙이 포실포실 부서지도록 녹고, 개구리가 깨어나요. 언제쯤 제대로 봄이려나 하고 하늘을 보고 땅을 보며 하루하루 지나다 어느 날 문득 ‘그래 봄이지’ 하는 소리가 절러 나옵니다. 개구리와 함께 뱀이 깨어나고, 풀벌레도 하나둘 깨어요.


  저마다 철을 맞추어 깨어납니다. 저마다 철에 따라 기지개를 켭니다. 깊이 잠들던 목숨붙이가 하나씩 눈을 뜨면서 온누리는 새로운 모습이 되어요. 지난해처럼 봄이고, 지지난해처럼 참말 봄이지만, 해마다 다른 봄으로 새로운 옷을 입습니다.



인도네시아 어디쯤 / 한 해 두 번씩 쌀농사 짓는 친구들 / 오리 떼 몰고 노는 아이 남겨두고 / 시골 농장 온 지 세 해째건만 / 더듬는 말만큼 어둠도 여전히 낯설다 (귀가)



  봄은 어디에서나 봄인데, 고향이 아닌 곳에 선 사람한테는 똑같은 봄이기 어렵습니다. 봄은 늘 봄이지만, 즐겁게 하던 일을 내려놓고 입에 풀질을 하려고 등허리가 휘어야 하는 사람한테는 봄을 헤아리거나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이 봄이 가고 여름이 찾아오면 나아질 길이 있을까요. 여름을 바라기 앞서 이 봄부터 즐거운 시골살림으로 가꾸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요. 아이들을 도시로 보내는 시골살림을 이제라도 그치고, 시골 아이를 시골에서 키워 시골 흙지기로 북돋우는 시골살림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이러면서 빽빽한 도시에서 도시 아이가 시골로 터전을 옮겨 새롭게 흙지기로 살아갈 길을 고이 품어 줄 수 있을까요.



생판 처음 돌구지 타고 월남 하늘에서 제초제를 퍼부었다 푸른 숲이 녹아내리고 말라 징글징글한 송천 논둑 잡초들 깡그리 없애는데 안성맞춤이라 생각했다 베트콩 시신 앞에서 폼 잡은 사진 들고 보릿짚 냄새 구수한 고향에 새까만 얼굴로 돌아왔다 (에이전트 오렌지)


길림에서 오신 오촌 당숙 돈 될까 갖고 온 약재들 / 쓸모없음 눈치채고 몰래 죄다 내다버렸다 / 그리움이 자본의 쓴맛으로 사그라질까 / 못내 푼 마음 다시 봇짐 싸 묶으신다 (길림에 가시거든)



  농기계를 들이고, 비닐을 덮고, 농약과 비료를 뿌리고, 농협에 짊어지고 가서 팔아야 하고, 이런 관행논은 이제 그만두고, 시골지기도 느긋하면서 넉넉하고 도시 이웃도 즐거우면서 새롭게 함께 할 만한 흙살림을 생각해 봅니다. 무거운 봄비가 아닌 산뜻한 봄비로 맞아들일 수 있는 길을 꿈꾸어 봅니다. 돈으로 구르는 시골살림이 아닌, 따스한 사랑으로 흐르는 시골살림이 될 날을 바랍니다. 아마 그무렵에는 “봄비가 산뜻하다”고 하는 새 노래가 빛나고, “봄비가 싱그럽다”고 하는 새삼스러운 노래가 춤추리라 생각합니다. 2017.4.7.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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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 시인동네 시인선 58
김효선 지음 / 시인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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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88


살구를 맛볼 수 없던 제주에서 자란 시인
― 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
 김효선 글
 시인동네, 2016.6.29. 9000원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 마당에 설 적에 어떤 소리를 듣느냐에 따라 하루가 달라지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누구는 새벽 일찍 일어날 테고, 누구는 아침 느즈막하게 일어날 테지요. 일찌감치 하루를 열거나 길을 나서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밤새 고단하게 일하느라 아침에 비로소 몸을 쉬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는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다른 살림을 짓습니다.

  오늘 저는 아침에 마당에 서서 휘파람새 노랫소리를 들었습니다. 시골에서 아침이라 하면 으레 대여섯 시 무렵입니다. 새벽 두어 시 즈음부터 휘파람새 노랫소리를 들었는데 아침 대여섯 시에도 휘파람새 노랫소리는 이어지더군요. 우리 마을에서는 올들어 삼월 십오일께부터 휘파람새 노랫소리를 들었어요. 낮에는 노래하지 않고 저녁이 이슥해질 무렵 비로소 노랫소리를 들을 만한 휘파람새인데, 이 땅에 봄이 찾아왔네 하고 느끼면 어김없이 이 새가 멧자락을 고요히 울리는 노랫소리를 베풀어요.


나의 왼쪽 얼굴만 기억하는 당신 
나머지 반쪽을 떠나보낸 먹구름 
게릴라성 폭우가 쏟아진다는 소식이다 

‘나’라는 문장의 오류는 여전히
 ‘나’라는 환멸에서 시작되고 있다. (아름다운 환멸)

우리가 별이라고 믿었던 것은? 

사거리엔 별다방이 있다 음침한, 삼거리엔 삼거리별이 오거리엔 오거리행성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우주는 늘 반짝거렸다 누워 있기 딱 좋은 방 (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


  비가 오는 날씨에 맞추어 씨앗을 심지 않았습니다만, 아이들하고 옥수수 씨앗을 심은 이튿날 사월비가 주룩주룩 내립니다. 비가 오기 앞서 옥수수를 알맞게 심었네 하고 생각합니다. 이 비를 맞으며 해바라기 씨앗을 더 심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작은 씨앗은 우리 집 둘레에 가만히 깃들면서 무럭무럭 자라는 꿈을 키울 테고, 우리는 우리 손으로 심은 씨앗이 씩씩하게 싹이 터서 마음껏 크기를 바라요.

  이 봄날에 김효선 님 시집 《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시인동네,2016)를 읽습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며 제주를 떠날 날을 그렸다는 시인은 제주를 떠나 봄직했으나 다시 제주에 깃드는 삶이 되고, 제주에 있는 대학교에서 젊은이를 가르치는 일을 한다고 해요. 시집 《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에는 제주라는 고장에서 어린 나날을 보내고 젊은 나날에 꿈을 키우던 한 사람이 걸어온 발자국이 가만히 드리웁니다.


드라마에서 악역으로 나오는 연기자가
유명 출판사의 시집을 읽고 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모든 사물은 잡았다 놓아버린 손목이다 
봄에 만난 제비꽃도 
여름 저녁의 로즈마리도 
시든 손목을 어쩌지 못하고 자꾸 
부서졌다 (시와 당신)

누가 내 손금을 보더니 
늦게 피는 꽃이라 했다 
마음 한 구석이 뽀로통해졌다 (늦게 피는 꽃)


  방송에 나오는 배우가 손에 시집 한 권을 쥐면 이 시집은 갑작스레 잘 팔린다고 합니다. 잘 읽힌다기보다 잘 팔린다고 해요. 시집이 잘 팔리는 일이 나쁘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다만 살짝 고개를 갸우뚱하기는 합니다. 시집은 ‘잘 팔리기’만 해야 할까 하고 말예요. 시집은 ‘잘 읽힐’ 수 있을까 하고도 생각해 봅니다.

  이름난 출판사에서 나온 이름난 시집을 방송에 나오는 배우가 손에 쥐는 일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딱히 재미있거나 재미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해 볼 수 있어요. 연속극에 나오는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린드그렌을 읽거나 권정생을 읽는다면? 연속극에 나오는 젊은 사내나 가시내가 세월호 아픔을 담은 인문책을 읽는다면? 연속극에 나오는 이들이 ‘한국말사전을 찬찬히 읽는다’면? 연속극에 나오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돋보기를 쓰고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읽는다면? 그저 멋스러이 보여주는 모습이 아니라, 참말 책읽기에 사로잡혀서 기쁜 눈짓을 한다면?


십 대의 창문엔 멀구슬나무가 살았다. 
늙은 구렁이도 함께 살았다. 
멀구슬나무에 똬리를 틀고 
천천히 보랏빛 꽃을 뜯어먹었다. 
가끔 창밖으로 눈이 마주칠 때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멀구슬나무의 전생)

한 평 남짓한 방에서 다섯 식구가 잠을 자던 때가 있었다. 불을 때지 않아도 겨울을 날 수 있었다 우리가 그 방을 벗어나기 위해 밤마다 질 나쁜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울 동안마저 소공녀나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읽었다 (한 평의 세계)


  제주 시인 김효선 님이 그리는 멀구슬나무는 구렁이하고 함께 나옵니다. 저는 이 멀구슬나무를 전남 고흥에 깃든 뒤에 처음 만났습니다. 고흥읍에서 한 번 만났고, 고흥군 도양읍에 있는 어느 고등학교 건물 뒤쪽에서 새롭게 만났어요. 제주에서는 ‘멀구슬’ 말고 ‘먹구슬’이라는 다른 이름을 흔히 쓴다고 해요. 고흥에서도 ‘멀구슬’ 말고 다른 이름을 흔히 써요. 고흥내기는 이 나무를 두고 ‘멀꿀나무’라고 합니다. 서울 표준말은 ‘멀구슬’일 테지만 고장마다 다 다른 이름이 있는 나무예요.

  가만히 보면 이 봄에 누리는 나물을 놓고도 고장마다 이름이 달라요. 식물학자라면 아마 서울 표준말이나 학술 이름을 쓰겠지요. 그러나 경상사람은 그저 예부터 쓰던 ‘정구지’라는 이름을 써요. 전라사람은 그냥 예부터 쓰던 ‘솔’이라는 이름을 쓰고요.

  아침에 밥을 지으면서 큰아이를 불러 심부름을 맡깁니다. 처음에는 큰아이하고 우리 집 마당 한켠에 함께 쪼그려앉아서 솔을 톡톡 끊습니다. 이러면서 큰아이한테 말하지요. “자, 아버지는 이제 들어가서 밥을 하고 국을 끓일 테니, 네가 솔 좀  끊어서 채반에 소복하게 담아 주겠니?”


살구는 너무 멀어서 가질 수 없었다
어떤 맛일까 궁금해서 잠이 오지 않는
밤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도 살구를 먹을 수 없었다
내가 모르는 먼 곳에 있었으니까
섬은 그런 곳이다
살구를 모르는 곳
처음으로 살구를 사먹게 되었을 때
시지도 달지도 않은 그저 밍밍한 맛이었다 (섬)


  살구를 맛볼 수 없던, 살구를 그저 이름으로만 알고 그림이나 사진으로만 만나면서 자라던 아이는 어느덧 어른이 되었습니다. 한 평 남짓 되었던 방에서 다섯 식구가 올망졸망 밤잠을 이루었다던 어린 날을 떠올리는 어른은 이제 교수도 되고 시인도 됩니다. 예전처럼 살구를 맛볼 수 없는 제주가 아니라, 이제는 살구쯤 어렵잖이 사먹을 수 있는 제주입니다 여행객도 관광객도 많은 제주예요.

  이 제주에서 앞으로 어떤 시가 노랫가락으로 흐를 만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매화꽃이 지고 앵두꽃이 흐드러지는 이 사월 봄날에, 들딸기꽃이 하얗게 들이랑 숲을 밝히고, 모과꽃이 곧 터지려고 하는 이 사월 봄날에, 곧 찔레싹을 훑어 나물을 무칠 수 있는 이 사월 봄날에, “오늘은 어떤 사랑이고 모레는 어떤 날씨일까” 하는 생각을 품으면서 시집 《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를 살며시 덮습니다. 2017.4.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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