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가득 찬 책 - 제25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민음의 시 137
강기원 지음 / 민음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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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89


《바다로 가득 찬 책》

 강기원

 민음사

 2006.12.4.



  어쩜 그렇게 후줄근한 책이 잔뜩 팔릴 수 있느냐고 묻는 이웃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가 넌지시 말길을 터 봅니다. 이른바 막나가는 연속극은 아침저녁으로 텔레비전을 가득 채우고, 꽤 많은 분이 이 연속극을 볼 뿐 아니라, 얼결에 이런 막나가는 연속극을 보다가 재미나서 빠져든다는 분도 많다고, 날마다 사건·사고투성이에 싸움질 이야기가 가득한 텔레비전인데 참 많은 분들이 꼬박꼬박 챙겨서 본다고, 우리 스스로 얼마나 고운 빛님인 줄 모를 적에는 후줄근한 책이 장삿속에 언론질로 얼마든지 팔릴 만하지 않겠느냐고 속삭입니다. 《바다로 가득 찬 책》을 지난가을에 읽었는데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시쓴이가 들려주려는 노래가 무슨 뜻이요 삶인지 거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아니,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몇 달을 책상맡에 놓고 가끔 들추지만 도무지 알 길이 없다고 여기며 이제 그만 덮기로 합니다. 저는 아이들한테 아이 눈빛으로 들려줄 수 있는 어른시를 만나고 싶습니다. 어른다운 노래란 살을 섞는 이야기만 가득 끄적인 책일 수는 없다고 여깁니다. 슬기롭고 어질고 참하고 고우면서 새롭게 피어나는 눈부신 숨결이 환하게 흐르는 가락으로 짓는 말마디를 얹기에 비로소 어른시라고 여깁니다. 책이 바다로 가득하다면, 바닷빛을, 바닷물을, 바다노래를 들려주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여전히 그녀는 명소다 / 수많은 자들의 탐험이 있었으나 /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 은밀한 문 (위대한 암컷/12쪽)


무뚝뚝한 껍질 뒤에 숨긴 / 무향(無香)의 다감한 속살 / 이제 그대만을 위해 내어 드립니다 기꺼이 (베이글 만들기/25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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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 문학동네 시인선 117
곽재구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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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76


《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

 곽재구

 문학동네

 2019.1.25.



  저녁에 아주 찌뿌둥하게 잠들었습니다. 밤새 끙끙거리다가 새벽에 눈을 뜨는데 몸이 살짝 개운합니다. 잠자는 동안 찌뿌둥이 가셨을까요. 찌뿌둥은 어디로 가셨을까요. 이웃집에서 아무 쓰레기나 함부로 태우기도 하고, 풀약을 일부러 우리 집 풀밭에 뿌리기도 합니다. 아침에 마당에 서서 우리 집 풀밭을 바라봅니다. 들딸기가 무럭무럭 자라다가 그만 모조리 타죽은 모습을 조용히 봅니다. 시골에서는 풀약이 휘몰아친다면 서울에서는 자동차가 휘감아치겠지요. 풀약을 안 쳐도 풀약바람을 마셔야 하듯, 자동차를 안 몰아도 배기가스를 마셔야 하는 판입니다. 《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를 읽으면 시쓴이가 순천이란 고장을 얼마나 아끼는가를 톡톡히 엿볼 만합니다.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순천이기에 시 시집을 곱게 선보이는구나 싶어요. 고운 이웃을 마주한 걸음을, 반가운 이웃을 지켜보는 기쁨을, 상냥한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하루를, 그리고 순천이란 터에서 눈부시게 솟는 싱그러운 숲바람을 글줄에 녹입니다. 숲바람을 마시는 사람치고 궂거나 모진 마음이 될 사람은 없겠지요? 숲바람을 못 마시거나 잊기에 참한 길을 잃거나 잊습니다. ㅅㄴㄹ



누이 홑이불 배에 덮었다 / 까끌까끌하고 시원한 / 가을 물살 같은 / 징검다리 곁 물고기 몇 마리가 이리 와 함께 춤추자 말할 것 같은 (달빛/14쪽)


물고기는 몸이 예쁘다 / 하루종일 물속에서 춤을 춘다 / 물풀 사이 동네에 / 우체국과 문구점과 도서관이 있다 / ‘술병과 나’라는 이름의 카페도 있다 (물고기와 나/53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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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는 암만 봐도 예뻐 시놀이터 4
단디 엮음 / 삶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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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67


《민들레는 암만 봐도 예뻐》

 울산 아이들

 전국초등국어교과 울산모임 단디 엮음

 삶말

 2018.3.15.



  있는 그대로 쓰는 글이기에 더 낫거나 좋지는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쓰는 글은 오롯이 “있는 그대로”입니다. 생각을 그대로 쓰든, 생각을 지어서 쓰든, 생각을 펼쳐서 쓰든 매한가지예요. 어느 쪽이 낫지도 좋지도 않아요. 결이 다른 글이요, 쓰임새나 자리나 느낌이나 맛이 다른 글일 뿐입니다. 어린이도 얼마든지 생각날개를 펴서 글을 쓸 만합니다. 꿈에서 본 이야기를 살려서 쓸 만합니다. 앞으로 이루고픈 일을 쓸 만합니다. 눈으로 본 모습이 아닌 마음으로 본 모습을 쓸 수 있어요. 그리고 사랑이나 노래나 웃음이나 눈물로 본 모습을 쓸 수 있습니다. 《민들레는 암만 봐도 예뻐》에 흐르는 어린이 노래꽃을 지켜봅니다. 울산 어린이는 울산이란 터에서 어버이를 만나고 동무를 사귀는 나날을 누리면서 노래 같은 꽃을 한 줄씩 적습니다. 때로는 길게 때로는 단출히 저희 마음을 밝힙니다. 있는 그대로 쓰기도 하고, 살살 꾸며서 쓰기도 합니다. 그때그때 흐르는 마음을 사랑하면서 씁니다. 암만 봐도 예쁘고, 암만 봐도 밉습니다. 암만 봐도 아프고, 암만 봐도 사랑스럽습니다. 이 마음을 어린이 스스로 살리도록 곁에서 북돋우는 어른(교사와 어버이)이 차근차근 늘면 좋겠습니다. 모든 노래는 우리 가슴에서 씨앗으로 있습니다. ㅛㄴㄹ



아침에 눈떠 창밖을 보던 / 다섯 살 내 동생 // 엄마, 엄마, 여기 와 봐 / ‘구름이 터졌어’ (터졌어, 청솔초 4년 김정환/77쪽)


토요일이면 엄마는 직장에 간다. / 엄마는 힘들다. // 일요일에는 청소하고 쉬는데 아빠가 / 잔소리해서 엄마는 힘들다 // 아빠는 토요일마다 청소 / 나와 형은 설거지하면 엄마는 덜 힘들까? (엄마는 힘들다, 청솔초 4년 김도환/80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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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징검돌을 놓다 시인동네 시인선 65
김창균 지음 / 시인동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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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68


《마당에 징검돌을 놓다》

 김창균

 시인동네

 2016.10.31.



  사월에 찬바람이 불면 스산하구나 싶습니다. 일월에 포근바람이 불면 날이 풀리는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사월에 찬바람이 불 적보다 일월에 포근바람이 불 적에 온도가 더 높곤 해요. 추위를 느끼는 살갗은 재미있습니다. 온도가 더 낮은 철이어도 포근바람을 쐬면서 긴소매를 벗을 만하다 여기고, 온도가 더 높은 철이어도 찬바람을 쐬면서 긴소매를 걸쳐야겠다고 여깁니다. 《마당에 징검돌을 놓다》를 읽습니다. 추위는 추위를 생각하는 사람한테 찾아갈는지 모릅니다. 더위는 더위를 헤아리는 사람한테 찾아올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봄눈이란, 겨울눈이란, 함박눈이란, 꽃눈이란 모두 어디로 나들이를 갈까요? 봄에도 하늘에서 눈이 소복소복 내립니다. 봄이기에 나무마다 새로운 눈을 틔워서 잎이랑 꽃을 내밉니다. 한겨울에 나무 곁에 서서 살짝 손을 내밀어 줄기나 가지를 만지면 속으로 꾸욱 뭉친 기운을 느낍니다. 한봄에 나무한테 다가가 가만히 손을 뻗어 줄기나 가지를 쥐면 속으로 확확 풀리면서 뻗는 기운을 느낍니다. 우리 손길은 징검돌이 될 수 있고,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발길은 디딤돌이 될 수 있고, 높다란 울타리돌이 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똑같이 보이나 속으로는 사뭇 다른 하루입니다. ㅅㄴㄹ



유리창에 머리를 박고 죽은 새를 / 미처 묻기도 전에 / 눈이 내렸다 (대설경보/14쪽)


물빛 마당을 / 가끔은 깨끔발로 겅중겅중 건너뛰며 / 돌과 돌 사이를 딛는 발끝은 / 못내 사뿐하다 (마당에 징검돌을 놓다/35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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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잘못 날아왔다 창비시선 288
김성규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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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85


《너는 잘못 날아왔다》

 김성규

 창비

 2008.5.30.



  한 가지만 잘 하는 사람이 있기도 할 테고, 한 가지는 도무지 못 보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 잘 하는 사람이 참말 있으려나 하고 돌아보면, 좀 아니다 싶어요. 왜냐하면, 다들 숨을 쉬고 물을 마시고 밥을 먹으면서 살거든요. 아니, ‘나는 재주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치고 ‘참으로 아픈 사람’ 말고는 숨도 쉬고 물도 마시고 밥도 먹고 걸어다니고 눈을 떠서 보면서 살아요. 《너는 잘못 날아왔다》를 읽으며 꼭 이렇게 글을 써야 했으려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어머니를 이야기하는 시라고 하면서 “늙고 쪼글쪼글해진 젖가슴을 만지듯”이라 말하는데, 시쓴이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말하는 생각일까요? 언제까지 이 대목에 머무르려 할까요? 시쓴이한테 시를 가르쳤다는 어른(사내란 몸뚱이였을 어른)이 이렇게 써야 시가 된다고 했을까요? 늙고 쪼글쪼글해진 뭔가 보인다면 왜 그 몸뚱이가 보이는가를 깊이 살피기를 바랍니다. 왜 자꾸 겉몸만 보려 하는지, 왜 속마음을 읽는 길하고는 멀어지는가를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잘못 날아온 숨결은 없습니다. 새는 숲에도 둥지를 틀지만 서울 한복판에도 둥지를 틀어요. 어디에 둥지를 틀든 오로지 사랑입니다. ㅅㄴㄹ



늙고 쪼글쪼글해진 젖가슴을 만지듯 / 젓가락으로 살을 집어 / 어머니 앞에 내려놓는다 / 입을 오물오물거리며 물고기를 드신다 // 자기를 꼭 닮은 물고기와 / 물고기는 죽어가며 무슨 말을 나누었을까 (물고기는 물고기와/44∼45쪽)


누나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운다 / 아무거나 때릴 수 있는 게 없을까 / 담벼락에 낙서를 하던 아이들이 / 달아나며 못을 버리고, 금간 항아리 같은 여자가 / 마당으로 걸어들어간다 (하늘로 솟는 항아리/56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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