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시선 38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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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37


《어린 당나귀 곁에서》

 김사인

 창비

 2015.1.15.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문학은 ‘문학에서만 쓰는 말’입니다. 살림자리·사랑자리·삶자리에서 쓰는 말하고 동떨어집니다. 문학비평·문학평론 가운데 살림말·사랑말·삶말이 한 톨이라도 있을까요? 이 나라 숱한 문학은 얼마나 살림말·사랑말·삶말일까요? 비평·평론에 앞서, 또 대학교육·문학강의에 앞서, 글잡이 노릇을 하겠다는 이들이 읊거나 적바림하는 말씨나 글씨는 모조리 살림·사랑·삶을 등지지 않나요? 이론만 남고, 이념만 있고, 철학만 앞세우고, 전문가 자랑만 하면서 문학이란 허울을 세우지 싶습니다. 《어린 당나귀 곁에서》를 읽다가 입에서 거친 말이 불쑥 튀어나올 뻔했습니다. 우쭐대는 사내질이 그득한 이런 꾸러미를 어떻게 시집이란 꼴로 묶어서 내놓을 수 있을까요? 어쩌면 오늘날 문학이란, 문학교육이란, 문학강의나 문학교수나 문학비평이나 문학창작이란 모조리 이런 얼거리인데, ‘문학이란 이름으로 쓰는 글이 살림이나 사랑이나 삶을 담아서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슬기로운 숲’으로 나아가리라고 엉뚱하게 생각한 셈이로구나 싶습니다. 살림·사랑·삶은 가르칠 수 없어요. 우리는 누구나 사랑으로 태어나서 살아갈 뿐입니다. ㅅㄴㄹ



소설 공부 다니는 구로동 아무개네 젖먹이를 맡아 봐주던 / 순한 서울 여자 서울 가난뱅이 / 나지막한 언덕 강아지풀 꽃다지의 순한 풀밭 / 응 나도 남자하고 자봤어, 하던 (김태정/19쪽)


영주에는 사과도 있지 / 사과에는 사과에는 사과만 있느냐, / 탱탱한 엉덩이도 섞여 있지 / 남들 안 볼 때 몰래 한입 / 깨물고 싶은 엉덩이가 있지 …… 사과 같은 엉덩이가 숨어 있다는 엉큼한 생각을 하면 / 정미소 둘째 닮은 허여멀건 소백산쯤 / 없어도 그만이다 싶기도 하지 / 남들 안 볼 때 한입 앙, / 생각만 해도 세상이 환하지 영주에서는. (엉덩이/34∼35쪽)


긴 머리 가시내를 하나 뒤에 싣고 말이지 / 야마하 150 / 부다당 들이밟으며 쌍. / 탑동 바닷가나 한바탕 내달렸으면 싶은 거지 (8월/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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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방석 푸른사상 동시선 45
이순주 지음 / 푸른사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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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35


《나비의 방석》

 이순주

 푸른사상

 2018.11.19.



  졸업장을 주는 곳은 졸업장을 주는 곳입니다. 졸업장을 주기에 학교라 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터전을 돌아보면 졸업장이 있어야 일자리를 얻거나 돈을 받는 길이곤 합니다. 졸업장이 없이는 일자리를 알아보기 어려우며 돈을 못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흙을 가꾸는 일꾼한테는 졸업장이 없어요. 사랑하는 두 사람이 아기를 낳아 어버이가 되는 자리에 졸업장이 없지요.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한테 ‘놀이 자격증’ 따위란 없습니다. 삶도 사랑도 살림도 숲도 ‘증서’를 따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가는 길에, 어린이가 싱그러이 꿈꾸는 길에, 어른이 아름답게 일하는 길에, 졸업장이나 자격증은 부질없어요. 《나비의 방석》을 읽는데 ‘점수 매기기’하고 얽힌, 그야말로 ‘졸업장 학교’ 이야기가 참 자주 나옵니다. 오늘날 터전을 빗대어 아이들이 새롭게 꿈을 꾸고 어른들은 생각을 가다듬도록 북돋우려는 뜻이라면 나쁘지 않겠지요.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해요. 우리는 언제까지 점수 매기기를 해야 하나요? 100점이 아니면 웃지 못하나요? 빗물을 빗물대로 바라보면서 반기기란 어려울까요? 모두 내려놓고 나비를 그저 나비로 마주하기를 빕니다. ㅅㄴㄹ



수업 끝나자 봄비가 옵니다. / 빗방울들이 고인 물 위에 떨어져 / 자꾸만 떨어져 / 채점을 합니다. (채점/22쪽)


학교 갔다 온 나를 반겨 주는 / 엄마 얼굴 같아요. // 내게서 100점 맞은 시험지를 받아든 / 환히 웃는 엄마 얼굴 같아요. (달리아꽃/28쪽)


나비는 / 아주 아주 쬐그만 / 책이다. // 들꽃 나라의 / 책이다. (나비/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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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 창비시선 302
문동만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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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31


《그네》

 문동만

 창비

 2009.5.27.



  고흥읍에 계신 이웃님이 낮에 전화를 걸어 ‘오랫동안 못 만났는데 얼굴도 보면서 술 한잔 하자’고 얘기합니다. 시계를 보니 세 시 삼십 분. 마을에서 읍내로 가는 버스는 다섯 시가 되어야 있습니다. 시골은 큰고장처럼 바로바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집에 있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아이들 주전부리를 장만하러 다녀올까 싶어 다섯 시에 마을 어귀에 섭니다. 한참 되는데 버스가 안 옵니다. 툭하면 이렇더군요. 시골에서 버스 타는 손님이 없다며 슬쩍 안 다니곤 해요. 때로는 시골버스에 저 혼자만 타고서 다니기도 하니 버스일꾼 스스로 ‘뭐 오늘도 빈 버스만 가겠네’ 싶어 지레 몰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읍내 이웃님한테 전화해서 “한참 기다려도 버스가 안 오네요. 다음에 뵈어요.” 하고 얘기하는데, 믿으실까요? 《그네》를 읽는데 어쩐지 처음부터 끝까지 술내음이 가득합니다. 글쓴님은 술을 마시고 나서야 시를 쓸는지 모릅니다. 맨마음으로는 이 땅에서 살아내지 못하겠다고 여겨 으레 마시고, 불콰한 마음이 되어 붓을 잡고서 시를 적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담배를 태우며 시를 쓰든, 아이를 돌보며 시를 쓰든, 자전거를 달리거나 밥을 지으며 시를 쓰든 다르지 않습니다만, 술·노닥질·여자만 어우러진 사내들 시는 따분합니다. ㅅㄴㄹ



우리는 낮술에 취했다 / 경매장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암호를 듣다 / 두툼한 광어를 씹었다 (소래에서/46쪽)


비석치기라던가 / 봉분 위에다 여자를 눕히는 자들도 있고 / 무덤을 들춰 밥벌이를 하는 도굴꾼들도 있다 (환관의 무덤/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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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위력으로 민음의 시 38
조은 지음 / 민음사 / 199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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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30


《사랑의 위력으로》

 조은

 민음사

 1991.10.20.



  멀구슬나무라고 있습니다. 저는 이 나무를 고흥이란 고장에 뿌리를 내리면서 제대로 마주했습니다. 처음 만난 멀구슬나무는 읍내 한복판에서 우람하게 자랐습니다. 얼마나 키가 크고 그늘이 아름다운지, 또 꽃은 얼마나 곱고 향긋한데다가 열매는 동글동글 앙증맞고 뭇새를 불러 겨우내 먹이가 되는지, 참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군청에서는 나무를 베어내고 이곳에 시멘트를 덮어 꽃밭하고 차댐터를 꾸미더군요. 아름드리라 해도 하루아침에 시멘트랑 자가용한테 밀립디다. 삶은 어디 있을까요. 사랑은 어디 있나요. 《사랑의 위력으로》에 ‘田園一期’라는 이야기꾸러미가 돋보입니다. 다만 이런 말치레를 꼭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한자를 딴 말치레를, 요새는 영어를 딴 말치레를 다들 하더군요. 시쓴님이 말치레 아닌 말살림을 헤아리면서 ‘시골쓰기’나 ‘시골살이’를 적바림하는 손길이었다면, 지난날이나 오늘날이나 멀구슬나무마냥 들이며 마을이며 숲에 고요하면서 풋풋한 이야기잔치를 이끄는 글빛이 될 만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먼발치에서 구경하듯 쓰는 이야기도 노래라면 노래이겠지만, 발치에서 피어나는 꽃송이를 아끼고 곁에서 돋아나는 잎사귀를 어루만지는 글쓰기가 된다면, 참말로 엄청난 사랑이 되리라 봅니다. ㅅㄴㄹ



그곳으로 옮기는 이삿짐을 꾸리며 가족들은 평화로운 날들이 주렁주렁 열리리라 믿었다. 즐비한 돼지우리와 뒷간 악취도 신비롭던 그 봄 잡목숲을 일궈 과실나무를 심었다. 어린 과실나무가 빗물을 걸러 먹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의 낮잠은 달고 깊었다. (田園一期 1/16쪽)


어른이 식사를 하고 계신다 / 명동지하도 계단에 앉아 잘린 대퇴부를 / 낡은 뼈를 내보이며 / 동전 몇 개를 육신 앞에 내세우며 / 오, 우리들 발길마다 채이는 먼지를 밥술에 얹어 식사를 하고 계신다. (나를 멈추게 하며/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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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은빛 창비시선 64
홍희표 지음 / 창비 / 198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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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29


《금빛 은빛》

 홍희표

 창작과비평사

 1987.10.10.



  눈치를 보며 살면 끝이 없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눈치인 터라, 스스로 누리거나 즐기는 길이란 없이,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얽매입니다. 사랑을 보며 살아도 끝이 없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오롯이 사랑인 터라, 스스로 누리거나 즐기는 길이 되어요. ‘내가 이곳에 온 뜻은 이렇구나!’ 하고 새삼스레 깨달으면서 언제나 환하게 노래합니다. 《금빛 은빛》은 1970∼80년대를 아우르는, 때로는 1990년대까지 뻗는 먹물붙이 글결이로구나 싶습니다. 2010∼20년대 먹물붙이 글결하고 사뭇 다릅니다. 앞으로 2050∼60년대에 이르면 또 다른 먹물붙이 글결이 나타나겠지요. 삶자리가 아닌 눈썰미로 글을 옮긴다면, 뭔가 멋스러워 보이는 글을 꾸민다면, 무엇보다 스스로 지식인이라는 생각에 갇혀서 글을 여민다면, 이러한 글로는 무슨 노래가 태어날는지 아리송합니다. 어느 풀벌레나 멧새도 눈치를 보며 노래하지 않습니다. 풀벌레는 풀벌레답게 노래하고, 멧새는 멧새다이 노래합니다. 다 다른 풀벌레하고 멧새는 노상 다른 숨결로 저희 하루를 노래하면서 삶을 짓습니다. 하루를 쓰지 않고서야 씻김굿이 안 될 테며, 삶을 짓는 길을 고스란히 밝히지 않고서야 시이건 문학이건 비평이건 안 되겠지요. ㅅㄴㄹ



제비꽃은 / 남쪽으로 고개 들고 / 진달래는 / 북쪽으로 깽깽 울고 (남쪽으로 북쪽으로-씻김굿 1/9쪽)


단군 할아버지의 단기력을 쓰던 호랑이 담배먹던 까까머리 시절. ‘평안남도 평양시 기림리……’로 시작하던 본적이 어느 때부터인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로 바뀌고, 바뀌는 평양의 햇빛과 서울의 햇빛 속에 우리의 까까머리들은 그대로 친척들이 다녀간 뒤에는 “내래 어카 갔시요?” “거럼 기리티 않구……” 해가며 동짓밤에 동치미국물로 냉면 먹듯 울다 낄낄대고. (본적-씻김굿 49/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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