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 걷는사람 시인선 14
길상호 지음 / 걷는사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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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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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

길상호

걷는사람

2019.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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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문이와 산문이는 조금 전 / 월요일의 예감을 한 줌씩 핥다 잠들었어요 // 물그릇의 파문이 잠잠해지길 기다리며 나는 / 당신의 별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꼬리를 생각해요 (내일 모레 고양이/82쪽)


- 감자 한 바구니를 사는데 / 몇 알 더 얹어주며 덤이라 했다 // 모두 멍들고 긁힌 것들이었다 // 이 중 몇 개는 냉장고 안에서 썩고 말겠구나 생각하는 / 조금은 비관적인 파장 시간이었다 (덤/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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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펼 적에는 이 책에 붙는 느낌글(비평)은 안 읽습니다. 도깨비 씨나락 까먹는 소리도 아닌 말치레가 가득하거든요. 노래를 샅샅이 뜯거나 헤아린다고 하는 이들은 으레 “시어의 조탁” 같은 말장난을 합니다. 어느 나라 어느 바닥에서 굴러먹던 ‘조탁’일까요? 이런 중국말을 써야 노래가 될는지요? 우리말로 하자면 ‘가꾸다, 가다듬다, 갈고닦다, 갈닦다, 곱새기다, 곱씹다, 깎다, 다듬다, 다루다, 다스리다, 되새기다, 되씹다, 만지다, 매만지다, 부리다, 새기다, 손보다, 손질하다, 쓰다, 어루만지다, 여미다, 엮다, 짓다, 지어내다, 추스르다’일 텐데요, 이 숱한 말마디를 알맞게 가리거나 살리거나 북돋우거나 다루지 않거나 못한다면, 무슨 노래가 될는지 아리송해요. 《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를 읽으며 글님이 자꾸 “시어의 조탁”을 한다고 느낍니다. 굳이 ‘조탁’은 안 해도 됩니다. 그저 노래하셔요. 곁에 아이를 두고 함께 놀면서 노래하셔요. 곁에 푸름이랑 이야기하듯 노래하셔요. 어루만지는 손길이 아니라면 오늘도 모레도 쳇바퀴입니다. 하루를 되새기는 눈빛이 아니라면 노상 겉치레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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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자갈 b판시선 36
표성배 지음 / 비(도서출판b)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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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40


《자갈자갈》

 표성배

 도서출판 b

 2020.6.16.



  하루를 짓는 노래는 어디에서 오나 하고 돌아보면 늘 우리 마음자리가 보입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또는 밤부터 새벽까지 뭇새가 우리 보금자리에 찾아들어 노래합니다. 이 새가 얼마나 수다쟁이인지 몰라요. 문득 돌아보면, 제가 나고 자란 큰고장에서는 비둘기랑 갈매기랑 참새랑 왜가리가 섞여서 노래했다면, 이곳저곳 돌아 깃든시골자락에서는 뭇멧새가 얼크러져 노래합니다. 아무리 서울이더라도 새가 하늘을 가릅니다. 아무리 싸움터 한복판 총알이 춤추는 데라도 새가 곁에서 하늘을 가로질러요. 이 새를 알아보면서 노래에 귀를 기울일 만할까요? 《자갈자갈》에 흐르는 노랫사위에 귀를 쫑긋 세워 봅니다. 쉰 줄 나이에도 공장일꾼이어야 하고, 예순 줄 나이라면 이제 공장일꾼에서 물러나야 하는 삶길인 이 나라일 텐데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 적에 노래가 되려나요. 우리 두 손은 이 땅에서 무엇을 하려고는 몸뚱이일까요. 돈을 벌어야 할 손인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손인지, 아이를 어루만지거나 돌보는 손인지, 자동차를 몰거나 셈틀을 또닥거리는 손인지, 벼슬아치가 되려고 굽신대면서 내니는 손인지, 이 손을 똑바로 보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강물이 몸을 흔들면 // 미루나무도 따라 몸을 흔들었다 // 물총새가 강물에 날개를 접으면 // 미루나무 가지도 간들간들 몸을 담갔다 (미루나무 사랑/30쪽)


들르기만 하면 / 어머니는 돼지고기를 볶으시고 / 밥을 꾹꾹 눌러 고봉으로 푸시고는 / 꼭 한 말씀 하신다 // 무겄다 싶꺼로 묵어라 (밥상 앞에서/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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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일기 한티재시선 5
최진 지음 / 한티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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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39


《배달 일기》

 최진

 한티재

 2016.3.19.



  국민학교·중고등학교를 다닐 적에는 틈틈이 어머니를 돕다가, 때로는 방학 동안 한두 달짜리 곁일로 신문을 돌렸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 몇 해 동안 신문돌리기는 살림일이 되었습니다. 신문을 돌리며 ‘신문 보는 이’를 만날 일이 없습니다. 신문값을 거둘 때에 비로소 문틈으로 빠꼼 마주합니다. 신문값이 얼마나 된다고 ‘집에 없는 척’하고 몇 달을 질질 끄는 분이 곧잘 있지만, 또 반 해치를 밀리다가 달아나는 분이 더러 있지만, 따뜻하게 끓인 차를 넌지시 내민 분이 이따금 있어요. 《배달 일기》는 짐을 사이에 놓고 사람하고 사람을 잇는 길에서 밥벌이를 하는 삶을 담아냅니다. 예전에는 우체국에서 도맡던 짐나르기를 어느덧 택배회사에서 거의 맡습니다. 잇는 길은 여럿입니다. 몸소 찾아가서 건네며 얼굴을 마주하는 길이 있고, 심부름을 맡기며 마음으로 띄우는 길이 있어요. 일자리나 밥벌이로 이 길을 바라보아도 되고, 삶자리나 살림자리로 이 길을 마주해도 됩니다. 잇는 줄 알기에, 이으면서 마음으로 피어나는 노래가 있기에, 말 한 마디는 새롭게 빛나고 얘기 한 토막은 새삼스레 아름답습니다. 경상북도 두멧시골을 담뿍 만납니다. ㅅㄴㄹ



이고 쫌 갖다 주소 // 수산댁이 할매가 / 둘째 손자 낳은 딸에게 / 서울로 쌀을 보내다 말고 / 묵은 빚이라도 갚는 듯이 / 택배비 위에 만 원 지폐 한 장 / 부산스레 얹는다 // 기사 양반 둘째가 희한하네 / 지난 장날 시장에서 내를 알아보고 / 할머니 저 할머니 알아요 / 저 할머니 집 가봤어요 / 하고는 내 손을 잡고 걷데 / 고춧가루 빻는다꼬 돈이 없어가 / 그날 용돈을 몬 줬니더 (빚/50쪽)


찾는 물건도 없는 꼬부랑 할매 / 할미꽃처럼 굽어 피어 / 제 집은 지나쳤다 지나오는 / 택배기사 붙들고는 // 약도 안 친 꼬추니더 / 쪼매 찍어 묵어 볼라니껴? (오기 웃골 할미꽃/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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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경배 신생시선 41
원종태 지음 / 신생(전망)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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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38


《풀꽃 경배》

 원종태

 신생

 2015.6.25.



  저는 등단을 하지 않았고, 추천을 받지 않았습니다. 시를 써 달라고 하는 잡지사·신문사·출판사는 아직 없습니다. 따로 ‘시’를 쓴다기보다 ‘노래’를 씁니다. 이제껏 살아오며 만난 풀꽃나무를 떠올리고, 이 풀꽃나무를 품고 살아갈 아이들을 헤아리다가, 이 풀꽃나무하고 어깨동무할 이웃을 그리면서, 천천히 노래를 짓습니다. 바깥에서 누구를 만날 적마다 이웃님을 생각하며 노래를 엮고, 이 노래를 우리 아이들이 함께 나누기를 바라는 꿈을 글자락에 얹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열 몇 해를 추스른 노랫가락은 동시집이란 이름으로 둘 태어났습니다. 제 동시집을 읽은 이웃님은 곧잘 물어요. “시를 어떻게 쓰나요? 동시는 더 어렵지 않나요?” 저는 짧게 이야기합니다. “시를 쓰지 마시고요, 아이랑 사랑할 하루를 노래해 보시고, 이 노래를 글로 고스란히 옮겨 보셔요.” 《풀꽃 경배》를 읽다 보면, ‘시’가 꽤 많습니다. 시집이니 시가 많을까요? 그러나 곳곳에 시 아닌 ‘노래’가 있어요. 이 노래를 혀에 얹고는 뒤꼍에 서서 우리 집 나무를 쓰다듬으며 가락을 입혀 봅니다. 바람이 속삭이는 가락으로 노래를 듣고 부를 줄 안다면, 우리는 모두 시인입니다. ㅅㄴㄹ



농사는 절대 짓지마라 / 노가다는 하지마라 / 책상에 앉아서 펜데 굴리라 / 면서리가도 되어라 공부해라 // 공사판에 걸린 목장갑이 말을 걸어온다 // 아버지의 빈 도시락에는 늘 / 보름달 빵이 들어있었다 (목장갑/43쪽)


한 시간에 버스 한 대 올까말까 한 / 대금국민학교 앞 운동장 / 1학년이나 되었을까 샛노란 가방 메고 / 딸랑딸랑 달려온다 / 버스는 서고 풍뎅이 같은 발하나 걸치자마자 / 아저씨 저…도시락, 교실에 노코 았는데예… / 딸랑딸랑 어린학생 운동장을 다시 가로지르고 / 썬그라스 낀 운전사는 시동을 껏다 / 수양버들은 한없이 늘어졌다 (시동을 끄다/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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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배처럼 텅 비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485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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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36


《빈 배처럼 텅 비어》

 최승자

 문학과지성사

 2016.6.16.



  여름이 바싹 다가온 오월 끝자락인데, 나무가 우거진 풀밭에 맨발로 서면 아주 상큼하면서 시원하고, 나무 하나 찾아볼 길 없이 높다란 집만 빼곡하고 자동차만 씽씽 달리는 곳에 가면 후덥지근하면서 땀이 흐릅니다. 나무가 곁에 있으면 에어컨뿐 아니라 선풍기조차 쓸 일이 없습니다. 나무가 포근히 안으면 겨울에도 보금자리가 춥지 않습니다. 이제 과학으로도 이를 밝혀 줍니다만, 막상 건축이나 재개발이나 행정이란 자리에서는 아직 이 대목을 살피는 일이 없다시피 해요. 《빈 배처럼 텅 비어》를 읽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푸념하는 한숨이 길고 늘어지는구나 싶습니다. 삶이, 살림이, 사랑이, 온통 푸념으로 젖은 한숨일 수 있고, 이러한 하루를 몇 줄 노래로 그릴 수 있어요. 끝까지 다 읽고서 생각해 봅니다. 시쓴님을 나무그늘 짙푸른 숲으로 부르고 싶어요.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반짝반짝 드리우는 숲으로 모시고 싶어요. 이름값이고 주먹힘이고 돈주머니이고, 다 저들이 가지라 하지요. 맨몸으로 사뿐히 숲에 깃들어 봐요. 살갗을 가만가만 어루만지는 바람에 고스란히 내맡겨 봐요. 오월바람을, 유월볕을, 칠월하늘을, 팔월별을 노래해 봐요. ㅅㄴㄹ



살았능가 살았능가 / 벽을 두드리는 소리 / 대답하라는 소리 / 살았능가 죽었능가 / 죽지도 않고 살아 있지도 않고 (살았능가 살았능가/11쪽)


나 여기 있으면 / 어느 그림자가 / 거기 어디서 / 술을 마시고 있겠지 (나 여기 있으면/12쪽)


병실 안, / 옆 침상 아줌마가 말하길 / “양식 없다 부엉 / 내일 모레 장이다 부엉” (부엉이 이야기/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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