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하늘을 보면 창비시선 90
정세훈 지음 / 창비 / 199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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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노래책시렁 173


《맑은 하늘을 보면》

 정세훈

 창작과비평사

 1990.11.25.



  곁에 두고 거듭거듭 새겨읽고픈 책은 가득한데 주머니가 가난한 저한테 헌책집은 새롭게 빛나는 이슬방울 같았습니다. 어느 분은 ‘이슬’이 뭐 값지냐고 할 테지만, 저로서는 뭇돈보다 이슬이야말로 빛나는 숨결이라고 여깁니다. 풀꽃나무랑 숲을 축이는 이슬이란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가요? 누가 읽고서 내놓든, 미처 못 읽힌 채 버려지든, 이 모든 책을 그러모아 손질해서 건사한 헌책집은 ‘이슬집’이었어요. 들풀한테 힘이 되고 나무한테 벗이 되는 이슬을 책이란 무늬로 품은 곳이 헌책집이지 싶습니다. 《맑은 하늘을 보면》을 쓴 노래님은 이제 더는 뚝딱터(공장)에서 일하지 않는 듯합니다. 이제는 꽤 높은 벼슬을 얻은 듯하더군요. 한창 ‘일돌이’로 지내던 노래님네 아이들이 입을 ‘새 헌옷’을 곁님이 몇 보따리 얻었을 적에 가슴이 축 처지셨다는데, ‘헌옷 = 손길이 닿은 옷’이요 ‘헌옷 = 이웃 아이들이 사랑으로 입다가 물려주는 옷’이겠지요? 아이들이 아버지한테 들려준 꽃같은 ‘새말’을 늘 마음에 건사하면 좋겠습니다. 책 하나를 돌려읽으면서 어느 누구도 ‘헌책을 돌려읽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름책’을 돌려읽지요.



이것도 입어보고 / 저것도 입어보던 / 우리집 아이들은 // 말없이 / 쳐다만 보는 / 축 처진 내 가슴에 // 새옷 같은 / 한마디를 / 던져줍니다. // “아빠, 미안해하지 말아요.” (헌옷/23쪽)


내가 다니는 공장은 / 도시 B형 업종 // 매연 악취에다 / 분진이 날리는 유해 업태 // 글 쓰는 벗님 / 방문 와서는 / 일찍 죽고 싶느냐 따지길래 // 나에게는 / 일찍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 당장 먹고 사는 것이 문제라 하였네. (문제/117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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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조촐한 것들이 - 내일을 여는 시 32
안준철 지음 / 내일을여는책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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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노래책시렁 172


《세상 조촐한 것들이》

 안준철

 내일을여는책

 2001.5.25.



  열린배움터에서 가르치기에 글을 잘 쓰지 않습니다. 어린배움터나 푸른배움터에서 가르치기에 글을 쓸 틈이 나지 않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배움터에 일을 나가지 않아도 여느 삶자리나 마을에서 늘 가르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걸어다니면서도 쓰고, 흔들리는 버스에서도 쓰며, 아이들을 재우는 이부자리에서 한 손을 살며시 뻗어 몇 줄을 쓰고는 같이 잠들기 마련입니다. 《세상 조촐한 것들이》를 읽다가, 이 노래책을 여민 노래님이 2001년부터 스무 해가 지난 뒤에 이 노래책을 다시 펴면 어떤 생각이 들까 궁금합니다. 스무 해 앞을 내다보면서 오늘 이야기를 오늘에 맞게 수수하게 풀어내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스무 해 앞서를 돌아보면서 오늘 이야기를 새롭게 엮는 길은 어디에 있나요? 노래님 글동무처럼 모두 비운 맨몸으로 멧골에 들어가 이레쯤 보내어도 좋으리라 생각해요. 글동무랑 나란히 멧골살이를 해도 좋겠지요. 버스에서 자리를 얻은 할머니는 어떻게 고맙다고 나타내야 할까 생각하다가 이녁 손으로 조그맣게 기운을 나누어 주려 합니다. 저도 이런 일을 꽤 겪었는데 “할머니, 그냥 제 기운을 더 받고 튼튼히 지내셔요” 하고 말했어요.



어느 날 시내버스 안에서 / 내게 자리를 양보 받은 할머니 한 분이 / 버스 손잡이를 잡고 있는 내 손을 / 슬그머니 어루만지시더니 / 손을 쥐었다 놓았다 하신다 (손/26쪽)


구례에 사는 박 선생에게 / 방학동안의 안부도 물을 겸 / 문학 모임 소식도 전할 겸 / 전화를 걸었더니 / 오늘 산에서 내려올 거라고 / 그의 아내가 내게 전해준다 / 산, 산에서 내려올 거라고 / 지금 그는 산에 있다고 / 어제도 그제도 / 산 속에 있었다고 / 오늘 내려올 거라고 (산/63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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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씨 미안해요 창비시선 347
김중일 지음 / 창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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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노래책시렁 170


《아무튼 씨 미안해요》

 김중일

 창비

 2012.4.25.



  모든 사람이 두세 가지를, 서너 가지를, 열스무 가지를, 온 가지를 다 잘 해낸다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누구나 무엇이든 다 잘 해내어도 멋진 터전이 될 만합니다. 누구나 무엇이든 썩 잘 해내지 못할 적에도, 그러니까 한 사람이 고작 한 가지만 잘 해내어도 즐거운 터전이 될 만해요. 어느 사람은 한 가지조차 못 하는구나 싶어도 사랑스러운 터전이 될 테고요. 아기를 잘 돌볼 줄 몰라도 됩니다. 아기를 사랑하면 돼요. 글을 잘 쓸 줄 몰라도 좋습니다. 글을 사랑하면 돼요. 풀꽃나무나 숲이 어떤 마음인가 읽지 못해도 좋지요. 그저 풀꽃나무하고 숲을 사랑하면 넉넉합니다. 《아무튼 씨 미안해요》를 쓴 노래님은 왜 꾸벅꾸벅해야 할까요. 누구한테 꾸벅꾸벅하는 몸짓일까요. 고요히 숨을 돌리면서 오늘을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두 손에 두 가지를 다 쥐려고 하기보다는, 두 손이 텅텅 비어도 외려 넉넉할 수 있으니, 손에서 힘을 빼면 좋겠어요. 때로는 힘있게 나아가도 좋을 텐데, 굳이 힘을 넣으려 하지 않아도, 우리가 이 별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는 동안에는 늘 힘이 흘러나와요. 부드러이 흘러나오는 힘만으로도 얼마든지 노래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이제 난 이렇게 날개까지 버젓이 달았는데, 수천 개의 초록 혀를 빼문 마로니에 그늘이 작고 깊은 못을 만들고 있다. (황색 날개를 달고 우리는/90쪽)


한국어로 점잖게 표현하자면, ‘아주 근사’하죠. 말해 뭐합니까. 나의 1977년식 파밀리아레. (품/107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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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타오르고 있었네 창비시선 187
조태일 지음 / 창비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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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노래책시렁 171


《혼자 타오르고 있었네》

 조태일

 창작과비평사

 1999.7.5.



  이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 맞나 하고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 만나며 어울릴 적에는 보거나 느끼지 못한 모습으로 가득하기에 고개를 갸웃하지요. 그러나 둘은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끝없이 달라지니까요. 좋은 쪽으로든 궂은 쪽으로든. 《혼자 타오르고 있었네》를 읽으며 하품을 했습니다. 《국토》를 선보인 그분이 쓴 글이 맞나 하고 자꾸 해적이를 다시 들췄습니다. 그렇지만 두 노래책은 같은 노래님이 썼고, 이름은 같은 노래님이되 하나는 ‘꿈을 바라보는 밑바닥’에서 썼다면, 다른 하나는 ‘대학교수가 되어 잿빛집(아파트)에 높이 들어앉은’ 채 쓴 대목이 다릅니다. 삶이 다르니 글이 다르고, 삶이 다르니 눈빛이 다르며, 삶이 다르니 생각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호미를 쥐고 흙바닥에 앉은 사람이랑, 씽씽이를 몰며 흘깃 보는 사람이랑 생각이며 삶이며 눈빛이 같을 수 없습니다. 다달이 차곡차곡 들어오는 일삯을 누리는 삶이랑, 글 한 줄에 피땀을 들이는 삶이랑, 글길이 같을 수 없을 테지요. 등 따숩고 배부른 살림이 나쁠 턱이 없습니다. 누구나 등 따숩고 배부르게 살길 빕니다. 그리고 언제나 새롭게 빛나는 눈·손·발이길 빌어요.



시멘트벽으로 둘러싸인 / 안방 창가, / 화분에 어리디어린 고추 모종 / 한개 옮겨 시어놨더니, (안방에서 고추 열리다/19쪽)


나의 처녀작은 ‘백록담’, / 삼행짜리 시조풍의 / 이 처녀는온데간데없다 (처녀작/40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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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창비시선 277
이시영 지음 / 창비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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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68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이시영

 창비

 2007.6.15.



  1995년부터 2020년에 이르도록 제가 하는 일을 ‘일칸(직업 기입란)’에 적어 넣지 못합니다.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 말꽃지음이(사전집필자), 갈무리지기(유고 정리자), 책숲지기(도서관장), 살림꾼(가정주부) 같은 일을 적을 만한 일칸이란 없습니다. 가만 보면 일칸에 ‘흙살림꾼(농부)’ 자리도 없습니다. 일칸은 언제나 큰고장에서 돈을 버는 자리만 다룰 뿐입니다. 아이를 돌보며 집안을 살피는 ‘살림꾼’은 왜 일이 아니라고 여길까요? 새벽을 여는 나름이를 비롯해 짐을 옮기는 나름이도 이제는 어엿이 일칸에 넣을 수 있어야지 싶어요.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를 읽으니, 노래님하고 술을 마신 사람들하고 얽힌 글자락은 퍽 푼더분하되, 다른 글자락은 먼발치에서 뒷짐을 서며 바라본 이야기이지 싶습니다. 뒷짐을 선대서 나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머리끈을 질끈 동이며 앞장서지는 않으며, 뒷자리에서도 얼마든지 노래를 부를 수 있어요. 뒤켠에도 삶이 있으며, 살림과 사랑으로 오늘을 녹여 노래로 빚을 만합니다. 그나저나 노래님은 일칸에 어떤 이름을 적어 넣었을까요? 시인? 창비? 교수? 이사장? 먼데보다 곁을 보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달빛이 대숲에 하얗게 부서져내리는 밤, 웬 커다란 그림자 하나가 성큼성큼 걸어와 내 방 창문 앞에 쿵 하고 무언가를 부려놓았다. 아버지 등에 업혀 시오릿길을 꼬박 걸어온 옻칠이 반지르르한 앉은뱅이책상이었다. (책상 동무/18쪽)


금강산에 시인대회 하러 가는 날, 고성 북측 입국심사대의 귀때기가 새파란 젊은 군관 동무가 서정춘 형을 세워놓고 물었다. “시인 말고 직업이 뭐요?” “놀고 있습니다.” “여보시오. 놀고 있다니 말이 됩네까? 목수도 하고 노동도 하면서 시를 써야지…….” 키 작은 서정춘 형이 심사대 밑에서 바지를 몇번 추슬러올리다가 슬그머니 그만두는 것을 바다가 옆에서 지켜보았다. (시인이라는 직업/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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