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령 큰바람 - 1995 제3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문학과지성 시인선 131
황동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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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1.8.1.

노래책시렁 190


《미시령 큰바람》

 황동규

 문학과지성사

 1993.11.30.



  배움터(학교)는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노래(시)를 물음풀이(시험문제)에 맞추어 조각조각 뜯고 줄거리(내용)하고 알맹이(주제)하고 글감(소재)을 알아내도록 가르칩니다. 그런데 노래를 ‘줄거리·알맹이·글감’으로 뜯어야 할까요? 가락(운율)을 짚고 빗댐말로 헤아려야 할까요? 저마다 다른 사람이 어느 한 가지를 저마다 다르게 느끼기에 저마다 달리 노래하기 마련입니다. 이웃이 어떤 마음이요 생각인가를 느끼고 읽어서 주고받으려는 뜻이 아니라면, 굳이 노래를 가르치거나 배워야 할까요? 《미시령 큰바람》을 읽는 내내 노래는 누가 누구한테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노래는 그저 부릅니다. 잘난 노래나 못난 노래란 없어요. 노래를 놓고서 물음풀이를 한다면 모두 눈속임이나 거짓이지 싶습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르게 느끼기 마련일 노래인데, 어떻게 줄거리나 이야기를 하나로 짜맞추어야 할까요? 곰곰이 보면 이 나라에서는 ‘문학비평·문학창작·문학수업·문학강좌’가 있습니다. 삶을 노래하고 살림을 사랑하면서 사람이 숲으로 서는 길을 나누는 자리는 좀처럼 안 보입니다. 글쓰기를 배워서 틀에 맞추는 문학이 아닌,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삶에서 저마다 피어나는 노래이기를 빕니다.


ㅅㄴㄹ


오백 년은 넘어 뵈는 느티나무가 지나가고 / 오르페우스처럼 / 나는 휘딱 뒤돌아본다. / 오토바이 하나가 눈앞에서 확대되려다 만다. (지방도에서/26쪽)


마음속 악마가 속삭인다. / 뒤돌아보지 마라. / 뒤를 보이지 마라. / 시간 됐다, 출석부와 책을 끼고 곧장 강의실로. (마왕魔王/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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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문을 열었을 때처럼 문학의전당 시인선 336
최상해 지음 / 문학의전당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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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1.6.18.

노래책시렁 196


《당신이라는 문을 열었을 때처럼》

 최상해

 문학의전당

 2021.4.6.



  제가 태어난 곳을 두고서 ‘○○사람’이라는 사람이 있고, 제가 오늘 살아가는 곳을 가리켜 ‘○○사람’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는 ‘○○사람’이라는 두 길이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삶터를 꾸준히 옮긴다면 ‘○○사람’이라는 이름은 자꾸 달라지겠지요. 누가 저더러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으레 ‘숲사람’이라는 한 마디를 합니다. 《당신이라는 문을 열었을 때처럼》은 강릉사람에서 창원사람으로 터전을 바꾸면서 살림도 바꾼 나날이 무르익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노래님한테는 두 ‘○○사람’이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언뜻 보면 두 이름이 걸맞을 텐데, 삶을 노래하는 사람한테는 ‘노래사람’이라는 이름이 걸맞지 싶습니다만, 삶을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사랑사람’, 삶을 꿈꾸는 사람한테는 ‘꿈사람’, 삶을 웃는 사람한테는 ‘웃음사람’을 이름으로 붙여야지 싶어요. 우리가 부르는 노래는 스스로 어떤 ‘○○사람’이란 이름을 붙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눈물을 짓겠습니까? 겉멋을 부리겠습니까? 목청을 높이겠습니까? 그림책을 곁에 두겠습니까? 풀꽃을 보듬겠습니까? 하늘을 마시겠습니까? 바다를 품겠습니까? 어느 사람이든 안 나빠요. 스스로 빛나는 숨결인 줄 알면서 노래하면 넉넉할 뿐입니다.


ㅅㄴㄹ


도시에서는 제법 뿌리를 잘 내린 나무일수록 매년 수난을 겪는다 가지가 싹뚝 잘린 몸뚱이로 서 있는 가로수를 두고 볼썽사납다느니 말끔해서 보기 좋다느니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체념하는 이도 있다 (정리해고/43쪽)


아는 이 하나 없는 창원에 이삿짐을 풀고부터 당신은 일터와 집을 오가느라 바빴고 하루하루 낯선 도시의 풍경과 거친 사투리를 받아들이느라 길 잃은 아이 같았던 어린 아들은 소복소복 쌓인 시간 앞에 신부를 맞아들이고 (창원 사람/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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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노래꽃
#노래꽃
#책
#책집노래
#책집을노래해

오늘 문득 떠오른
어느 마을책집이 있다.
시골에서도 깊은 두메에 사니
마음으로만 찾아가기 일쑤인데
"우리말 동시 사전"으로
'책'을 쓴 적 있되
"어린이 사전 풀이"로 쓴 동시라서
"책집노래"를
새로 쓰기로 했다.

#숲노래동시
#우리말동시
#우리말동시사전

쓰면서 즐거웠고
옮기면서 기뻤다.

모든 책집노래는
모든 마을책집이
마음으로 들려준 삶노래이다.

늘 고맙습니다

#마을책집에서책을만나요
#쉬운말이평화

"쉬운말이평화"도 나란히
날개 달며 훨훨 곳곳에 드리우기를.

#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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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창비시선 303
강성은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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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1.6.16.

노래책시렁 189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강성은

 창비

 2009.6.22.



  어릴 적에 동무하고 가로세로놀이를 즐겼습니다. 가로세로를 다섯이나 일곱쯤 그리고는 하나부터 스물다섯을 적어 넣기도 하지만, 사람이름이나 꽃이름이나 나무이름을 적어 넣기도 합니다. 이런 놀이를 하다가 ‘꽃이며 나무를 거의 모르는’ 줄 새삼스레 돌아보았어요. 참말로 어린배움터·푸른배움터(초·중·고등학교)를 다니기만 해서는 나무하고 사귈 일이 드뭅니다. 열린배움터(대학교)에 들어가면 나무하고 어울릴 일이 더더욱 드물어요.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를 읽고서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큰고장살이를 한다면 구두를 신을 일이 잦습니다. 아니, 늘 신겠지요. 시골살이를 한다면 으레 맨발입니다. 이따금 고무신을 뀁니다. 구두살이를 하는 큰고장에서 날마다 무엇을 마주하는 길일까요? 구두살림을 잇는 큰고장에서 나날이 어떤 마음이 되고 눈빛이 되어 삶을 바라볼까요? 발에 딱딱하게 대야 하는 신만큼, 사람 사이에서도 일터 언저리에서도 딱딱하게 버티거나 단단하게 일어서야 할는지 모르는데, 구두차림으로는 나무를 못 탑니다. 무엇보다 나무가 싫어해요. 나무는 맨발을 반깁니다. 풀밭도 맨발을 반겨요. 꽃송이는 맨손을 반기지요. 딱딱한 신은 멀찌감치 밀치고서 맨발에 맨손으로 풀밭에 드러눕고 나무를 타면서 노래해요.


ㅅㄴㄹ


우리는 달려간다 중세의 검은 성벽으로 악어가 살고 있는 뜨거운 강물 속으로 / 연필로 그린 작은 얼룩말을 타고 죄수들의 호송열차를 얻어타고 (오, 사랑/13쪽)


등뒤에서 악령들이 내 긴 머리를 땋았다 / 희고 가녀린 손으로 / 입속에서 허연 김을 내뿜으며 / 나는 손가락을 뻗어 / 뿌연 유리창 위에 밤의 다른 이름들을 써내려갔다 (환상의 빛/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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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의미 민음의 시 169
김행숙 지음 / 민음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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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1.6.16.

노래책시렁 188


《타인의 의미》

 김행숙

 민음사

 2010.11.11.



  인천에서 오동나무를 참 흔하게 보았습니다. 오동나무를 심어서 돌보면 딱히 열매가 대단히 맺지도 않을 텐데, 잎이 넓적하게 퍼지고 꽃이 바알갛게 피는 모습을 볼 때면 ‘이래서 오동나무를 심을까?’ 하고 돌아보곤 합니다. 가을이 되어 잎이 지면 오동나무는 어찌나 앙상해 보이는지, 이러면서 봄에 또 얼마나 푸릇푸릇 오르다가 여름을 시원하게 덮는지, ‘열매를 누릴 마음이 아니어도 나무를 보듬는 손길’을 천천히 느꼈어요. 《타인의 의미》를 되새기다가 여름날 오동꽃을 손바닥에 소복하게 주웠습니다. 우리 집 뒤뜰에는 여느 오동나무가 아닌 개오동나무란 이름인 나무가 제법 우람합니다. 어느 분이 언제 심었는지 모르나, 이 오동꽃(개오동꽃)은 몸을 살리는 길에 값지게 쓴다고 해요. 꽃을 몸살림길에 쓴다면 잎도 줄기도 열매도 모두 몸살림길에 쓸 테고, 굳이 꽃·잎·알을 안 훑어도 나무 기운으로도 몸을 살리리라 생각합니다. 노랫가락은 빼어나야 마음을 살찌우거나 씻지 않습니다. 그저 흥얼거리는 가락 하나여도 낱말 두어 마디여도 마음을 살찌우거나 씻어요. 노래를 하는 길을 걸을 적에 나무를 곁에 두면 좋겠어요. 시골에서든 서울에서든 나무 한 그루를 심고, 나무 곁으로 다가가서 가만히 눈을 감으면 좋겠어요.


ㅅㄴㄹ


눈을 떴는데, 눈을 감았을 때와 같은 어둠! / 당신의 몸은 없고 당신의 목소리만 있습니다. 부엉이는 없고 부엉이의 눈빛만 허공에 떠 있습니다. (밤입니다/20쪽)


얼어붙은 마음이 녹으면서 / 차츰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 더욱 외로워졌어요 (따뜻한 마음/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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