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사랑가 창비시선 94
김해화 지음 / 창비 / 199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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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1.12.28.

노래책시렁 204


《우리들의 사랑가》

 김해화

 창작과비평사

 1991.6.5.



  집짓는 곳에서 쇠막대를 잡는 일을 해온 발자취를 글로 옮긴 김해화 님은 노래책을 몇 자락 남깁니다. 《우리들의 사랑가》는 땀흘린 하루를 잇고 새로 이어도 헤어나지 못하는 가난살림을 그립니다. 땀을 노래한 글은 아름답습니다. 다만, ‘문학’이 아닌 ‘글’이기만 하다면, ‘시’를 쓰려는 생각이 아닌, ‘삶’을 ‘노래’하려는 생각이라면, 땀글(노동문학)은 이슬처럼 반짝입니다. 땀흘려 일하는 하루이니, 땀을 그대로 옮기면 됩니다. 글바치처럼 꾸미거나 보태야 하지 않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는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노동문학’이라는 이름을 얻으려고 하면 글도 노래도 망가집니다. ‘노동문학을 하려고 노동자로 지내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얼빠진 짓일까요? 그런데 땀글을 땀글로 읽지 않는 이들이 많아요. 말꾼(평론가)은 ‘땀흘려 일하지 않는 자리에 있으면서 땀글을 놓고서 이리 따지고 저리 잽’니다. 말꾼 가운데 삽일(막노동)뿐 아니라 집안일을 해본 이는 몇이나 될는지요? 김해화 님이 여민 땀글은 갈팡질팡합니다. ‘일하는 사람 눈길대로 쓰면 넉넉한’데 자꾸 ‘노동문학이 되려는 글치레’로 가려 합니다. 글쟁이도 글바치도 만나지 않으면서 땀흘리기만 했다면 얼마나 빛났을까 싶더군요.


ㅅㄴㄹ


누구를 위해 집을 짓는가, 45평 54평 / 1,200세대, 이 아파트를 짓고 나면 / 우리들의 마을은 마을 밖으로 밀려나 (13층 위에서/89쪽)


“함께 좀 가시죠.” / 따라 들어간 곳 / 컴퓨터 조회 끝에 / 15년 전 앞뒷마을 패싸움나 벌금낸 것 끄집어내 / “전과자로군. 깡패 아냐?” / 저희들 멋대로 가방을 뒤지며 / “노가다 치고 우범자 아닌 놈들 없어.” / “어쭈, 노동법 해설이라? 놀고 있네.” / 이 책 저 책 들춰보고 노트도 떠들어보고 / “불온유인물 같은 것 없나 잘 봐. 노동법 들먹이는 놈들 치고 빨갱이 아닌 놈들 없으니까.” (칼쿠리/1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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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갈대꽃 창비시선 69
오봉옥 지음 / 창비 / 198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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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1.12.28.

노래책시렁 206


《지리산 갈대꽃》

 오봉옥

 창작과비평사

 1988.7.1.



  나라(정부)에서는 말을 자꾸 뒤집으면서 바늘(예방주사)을 맞고 또 맞고 다시 맞으라고 합니다. 숱한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나라는 입을 싹 씻습니다. 나라가 입을 씻더라도 글바치(지식인·작가)라면 입을 씻지 말 노릇입니다. 그러나 입을 여는 글바치는 어디에 있을까요? 더구나 이 나라는 2022년부터는 ‘백신패스 딩동’을 밀어붙입니다. 사람들이 웃을 일이 없기에 웃기려고 벌이는 바보짓일까요? 사람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도 않을 뿐더러 촛불을 들 생각이 없어 보이니, 일본과 박정희가 총칼로 억눌렀듯 신나게 짓밟으려는 셈일까요? 《지리산 갈대꽃》을 내놓은 노래님은 한때 ‘국가보안법을 어긴 탓에 가싯길을 걸어야’ 했다지만, 이제는 열린배움터에서 길잡이 노릇을 합니다. 둘로 갈린 나라가 하나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뜻을 글(시)에 담던 지난날 글돌이(남성 작가)를 보면, 하나같이 ‘이쁜 북녘 순이를 안고 핥고 부비는 줄거리’를 적었습니다. 요즈음 눈길로만 엉큼질을 글에 담은 셈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지난날 눈길로도 거북합니다. ‘-더란다’ 같은 말씨처럼 구경하는 자리에 선 글바치란, 갈라치기로 미움(분노)을 일으켜 서로 싸우도록 내모는 글줄이란, 왼켠도 오른켠도 똑같이 나라 떡고물을 받아온 길입니다.


ㅅㄴㄹ


늙은 애비 헛간에서 죽었더란다 / 두 섬 쌀마지기 숨겼다고 쪽발이놈 죽였더란다 / 고운 아내 골방에서 죽었더란다 / 벌건 대낮에 강간하고 양키놈이 죽였더란다 (지리산 갈대꽃―아버지 10/22쪽)


이웃나라 북한여자와 결혼을 했어 / 굳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 우린 이 옷 저 옷 팽개치고 속살로 만났지 / 아픈 허리 휘어감고 밤새 뒹굴었어 / 무에 더 필요 있을까 / 달덩이 같은 방뎅이 이렇게나 푸짐한데 / 요건 분명 외국산이 아니었지 / 한라에서 백두까지 몇천번 핥아도 / 다시다시 엉기고 싶은데 (난 너의 남편이야/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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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비빔밥 - 동시집 아동문학 보석바구니 9
신현득 지음, 이호백 그림 / 재미마주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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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1.12.10.

노래책시렁 205


《통일비빔밥》

 신현득 글

 이호백 그림

 재미마주

 2019.6.15.



  나하고 다른 네가 서로 하나로 가려면 어떡해야 할까요? 둘은 틀림없이 다른데 어떻게 할 적에 하나일까요? 다른 둘은 하나일 수 없습니다. 다르거든요. 다른 사람을 틀에 짜맞춘다면 억지로 하나로 가겠지요. 그러나 틀·짜맞춤·억지는 서로 안 즐겁습니다. 서로 괴롭습니다. 남녘·북녘은 일본·미국·중국·러시아 입김 탓에 갈린 나라로 걸어왔다지요. 하나인 터전이 뜬금없이 갈리고 말았으니 아프고 멍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생각할 일입니다. 순이돌이(일반인·백성)가 잘못했을까요? 아니지요. 우두머리가 잘못했을까요? 네, 그렇습니다. 잘못한 이들은 ‘통일’이란 이름을 내세우지만, 정작 ‘하나’가 무엇인지 안 살펴요. 이는 글바치도 매한가지입니다. 나라힘을 쥔 이도, 글힘을 부리는 이도, 살림빛이나 사랑하고 등진 ‘겉발림말’만 외쳤습니다. 《통일비빔밥》을 읽으며 노래님이 ‘구경눈’으로 글을 쓰는구나 하고 짙게 느낍니다. ‘엄마 손’이 몇이어야 하나 구경하지 말고, ‘아빠 손’으로 집일하고 집살림을 하면 됩니다. 말장난을 멈추고 아기를 돌보는 아버지로 살면 이런 글은 안 씁니다. 총칼나라(군사독재)하고 사이좋게 지낸 발자취로 ‘동심천사주의 통일만세’를 외친들, 참사랑하고 어깨동무랑 멀기만 할 뿐입니다.


ㅅㄴㄹ


엄마께 손이 몇 개면 좋을까? / 밥 짓다가 아기 울 때 / 두 개 손으론 너무 부족해. // 엄마 어디쯤에서 / 아기 보는 손 한 쌍이 / 쏙, 나왔다가, 일 마치고 / 쏙 들어갔음 좋겠어. // 바쁜 엄마께는 / 빨래하는 손, 뜨개질하는 손이 / 따로 따로 있었음 해. (엄마는 손이 부족해/22쪽)


전쟁을 하고도 / 통일이 되지 않자, / 강아지 이름을 통일이라 하다가 / 송아지 이름을 통일이라 지었다 // …… ‘통일벼’로 보릿고개 내쫓고 / 한강에다 기적을 불러오고도 / 통일이 아득했다. 그러자 // …… 통일그릇에 나눠서, / 통일숟가락으로 / 통일비빔밥을 맛나게 나눠 먹고, / 그 힘으로 다시 외친다. // 통일을 믿자, 믿어라! / 통일에 힘을 모으자, 모아라! / 우리 이 소원, 통일을 이루자! (통일비빔밥/92∼93쪽)

.

.

‘통일벼’로 보릿고개를 내쫓았다니.

어처구니없어도

이렇게 어처구니없을 수 있을까.


엄마 손이 잔뜩 있어야 한다고?

엄마만 아기를 보고 일만 하나?

어이없어도

이토록 어이없을 수 있는가.


‘어린이문학 어른'이란 이름으로 보여주는

딱한 민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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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서 슬픔은 안 된다 - 김상혁 시집 민음의 시 192
김상혁 지음 / 민음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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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1.11.12.

노래책시렁 193


《이 집에서 슬픔은 안 된다》

 김상혁

 민음사

 2013.3.15.



  서울 서초 ‘서리풀쉼터’에서 재미난 알림글을 보았습니다.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는 마을사람이 포근히 잠들도록 ‘쉼터(공원) 불을 끈다’고 하더군요. 맞는 일입니다. 살림집으로 거리불빛이 스며들면 밤잠을 이루기 힘들어요. 이는 시골도 매한가지입니다만, 적어도 00시∼04시 사이에 모든 거리불을 끄는 고장은 얼마나 될까요? 이 대목에 마음쓸 줄 아는 벼슬아치나 글꾼은 몇이나 있을까요? 《이 집에서 슬픔은 안 된다》를 읽으면서 ‘이 집’하고 ‘슬픔’이 무엇을 나타내는가 하고 한참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아무래도 ‘수수한 사람들 여느 살림집’이나 ‘낮고 작은 자리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시골에서 풀꽃나무를 사랑하며 지내는 사람이 마주하는 슬픔’하고는 멀구나 싶습니다. 온갖 사람이 있기 마련이니 마치 자랑이나 하듯 밤새 집 안팎으로 환하게 불빛을 밝히는 집이 있고, 해가 저물면 불을 켜더라도 가볍게 켤 뿐 일찌감치 하루를 마감하고 아이들하고 새근새근 꿈나라로 가는 집이 있어요. 눈이 부시게 불빛을 밝히는 삶을 누린다면, 이러한 삶대로 글을 씁니다. 서울스럽겠지요. 해가 지면 굳이 불을 켜지 않거나 ‘백열전구’를 살짝 켜고서 별빛을 누리는 삶이라면, 이 삶결대로 글을 씁니다.


ㅅㄴㄹ


그러니까 말할 수 없었다 / 왜 그런 것인지 대답할 수 없는 슬픔은 / 금지되곤 햇다 내가 치마를 입고 죽어 있다 해도 / 집에서 불쌍해지는 건 내가 아니었다 / 그건 이상한 일이지만 / 어머니는 매일 일을 나갔다 (학생의 꽃/19쪽)


당신이 좋아 조롱하는 입꼬리, 비뚤어진 그 젖꼭지가 좋아 사해처럼 고이고 악취 나는 물이 좋아 당신이 너무 좋아 글로벌한 당신 유니크한 당신 아무리 밀어 넣어도 닿지 않는 당신 너덜너덜하고 변형되는 당신이 좋아 (당신 같은 작품/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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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하늘길 창비시선 63
양성우 지음 / 창비 / 198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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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2021.11.11.

노래책시렁 200


《그대의 하늘길》

 양성우

 창작과비평사

 1987.10.10.



  삶이란 바라보는 자리에 따라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합니다. 삶이란 스스로 서는 자리에 따라 좋기도 하고 궂기도 합니다. 삶이란 언제 어디에서 입을 벙긋하며 이야기를 터뜨리느냐에 따라 빛도 되고 어둠도 됩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우두머리 노릇도 하고, 이명박을 나라지기로 힘껏 밀기도 했던, 떠난 노무현한테 재떨이를 던져 이를 부러뜨리기도 했던, 우리말(국어)을 가르치는 노릇을 하다가 박정희한테 찍히기도 했던, 이제는 고양시에서 조용히 글만 쓴다는 분이 1987년에 쓴 《그대의 하늘길》을 읽고서 이녁 발자취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몸이 있으니 뛰고, 손이 있으니 글을 쓴다는데, 어떤 눈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보고서 움직이는 몸이요 쓰는 손이었을까요? 모든 말글은 언제나 스스로 돌려받으려고 내놓기 마련입니다. 거친 말씨도 고운 말씨도 늘 스스로 비추는 거울입니다. 수수한 삶길도 겉치레 삶길도 노상 스스로 짓는 하루입니다. 노래님은 스스로 ‘브리지’가 되겠노라 자주 읊었는데, 우리말 ‘다리’도 한자말 ‘교두보’도 아닌 영어 ‘브리지’를 굳이 골라서 읊조리는 노래라면 “당신의 친미주의”일까요? 아니면 ‘내멋남못(내가 하면 멋있고 남이 하면 못나다)’일까요? 핑계는 노래하고 멉니다.


ㅅㄴㄹ


사람이 남들을 티없이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 / 그렇지만 그대 지금까지 늘 빈손일 뿐이고 / 오직 하나 숨어서 사랑하는 재주밖에 가진 것이 없으니, (다시 친구에게/57쪽)


굿모닝 웰컴. 식사 전에 환담을 나누시지요. 커피와 함께 여송연도 피우시구요. 국제어로 말씀하시고, 오케이 오우케이 무조건 고개를 주억거리십시오 …… 말 못할 사정이 있으실 때는 개 죽는 소리로 신호를 보내시지요. 끼잉낑낑 끼잉낑낑. 당신의 헌신적인 친미주의가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영원히 지켜줄 것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땡큐 때앵큐. (당신의 친미주의/86∼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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