곯아떨어졌어도 다시 일어나는



  두 아이는 인천에서 택시를 타고 일산으로 건너가는 동안 곯아떨어진다. 먼저 큰아이가 곯아떨어지고, 이윽고 작은아이가 곯아떨어진다. 큰아이는 동생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작은아이는 어머니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일산에 택시가 닿아서 내릴 무렵, 두 아이는 스스로 일어나서 걸어 준다. 아버지가 혼자 이 아이들을 이끌고 다니면 이 아이들은 그냥 곯아떨어진 채 내 어깨에 안기지만, 어머니도 함께 다닐 적에는 졸음을 털며 씩씩하게 걷는다.


  두 아이는 이모를 만나고 이모네 아기를 보면서 새롭게 기운을 차린다. 나는 두 아이를 씻긴 뒤에 아기하고 놀도록 한다. 아이들은 아기하고 상냥하게 논다. 나는 목 뒤가 저리고 다리도 결리다. 하루가 다 지난 이제 온몸이 덜그럭덜그럭거리는구나 싶다. 오늘 하루 포근히 잔 뒤에 새로운 하루도 씩씩하게 누려야지. 모두 잘 자야겠다. 4348.11.28.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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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 데리고 저자마실



  아침 열한 시 십 분 무렵 지나간다고 하지만 으레 열한 시 이십 분 무렵에 찾아오는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저자마실을 간다. 두 아이는 아침에 버스를 탄다면서 즐겁게 웃는다. 해가 살몃살몃 고개를 내밀다가도 구름 뒤로 숨는 늦가을 아침에 버스를 달린다. 오늘 따라 군내버스 일꾼은 무척 거칠게 버스를 몰지만, 다섯 살 작은아이는 저 혼자 앉은 자리에서 흔들리지도 않고 잘 있는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혼자 자리를 잡고 앉은 모습을 지켜보다가 시집 한 권을 꺼내어 펼친다. 어느덧 두 아이는 두 아이대로 버스를 잘 타면서 창밖을 내다본다든지 혼자서 생각에 잠길 줄 안다. 나는 나대로 아이들을 데리고 마실을 다니되 살짝 틈을 내어 내 마음을 찬찬히 다스린다. 저자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두 아이는 의젓하고, 오늘은 작은아이가 단추를 눌러서 우리 마을 어귀에서 버스를 내린다. 4348.11.22.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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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갓잎볶음밥



  늦가을에 슬슬 갓잎하고 유채잎이 돋는다. 까만 잎으로 돋는 갓은 아이들이 아직 쓰다고 여기기에 잘 안 쓰고, 까만 기운이 적게 드는 갓잎을 뜯은 뒤, 갓잎 둘레에서 조금씩 올라오는 유채잎을 함께 뜯는다. 갓잎도 모두 까무잡잡하게만 돋지 않는다. 갓잎 가운데에도 유채잎처럼 짙푸른 잎이 꽤 있다. 어쩌면 유채씨가 섞여서 갓이 까만 기운이 살짝 옅어질는지 모르는데, 요즈막에 갓잎하고 유채잎이 돋아서 겨울을 앞두고 아직 마당에서 싱그러운 풀을 누릴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참말 지구별 바람과 햇볕과 빗물은 봄 여름 가을뿐 아니라 겨울에도 풀맛을 넉넉히 누리도록 북돋아 준다. 철마다 다른 풀을 베풀어 주면서 우리 몸을 살찌워 준다. 한줌 가득 쥘 만큼 잎을 썰어서 볶음밥을 하는데, 거의 다 볶을 무렵 잎이 숨이 죽으면서 부피가 확 준다. 부피가 줄는지 알았으나 참으로 많이 줄어서, 다음에는 한줌 더 썰어서 넣자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줌 더 썰면 잎맛만 있는 볶음밥이 되려나? 4348.11.19.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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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하고 누리는 하루



  지난 여덟 해 동안 아이들하고 무엇을 했는가 하고 돌아본다. 두 아이가 갓난쟁이일 무렵 날마다 그림책을 읽어 주었고, 이 갓난쟁이를 안거나 업고서 나들이를 다녔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을 쏘여 주었고, 언제나 햇볕하고 구름하고 꽃하고 나무를 마주하면서 사랑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썩 잘 했다고 할 만한지는 모르며, 여러모로 어수룩하게 했다고 여길 수 있다. 아무래도 나는 나 스스로 즐거운 삶을 찾아서 아이들하고 함께 누리려 했을 테고, 이 아이들이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을 삶이랑 사랑이랑 꿈을 기쁘게 나누려는 마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이들하고 누리는 하루는, 아이한테 노래를 불러 주면서 사이좋게 손을 맞잡으려는 삶이지 싶다. 아이들하고 누리는 하루는, 아이하고 춤을 추면서 신나게 어깨동무를 하려는 삶이지 싶다. 어제도 오늘도 모레도 이렇게 웃고 떠들면서 하루하루 새롭게 나아가려고 하는 몸짓이 이른바 ‘아이키우기’이거나 ‘육아’이리라 느낀다. 4348.11.13.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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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에



  한밤에 방을 좀 치웠다. 깔끔하게 다 치웠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달포 즈음에 걸쳐 조금씩 치우다가 오늘 꽤 잔손을 많이 들여서 이모저모 더 치웠다고 할 만하다.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깜짝 놀랄 수 있을까? 바닥에 널브러뜨린 책을 책꽂이 자리를 착착 갈무리하면서 꽂으니 방바닥이 한결 넓어 보일 뿐 아니라, 두 아이하고 엎드려서 그림놀이를 할 만큼 되겠다고 느낀다. 다만 아주 넓게 엎드려서 그림놀이를 하지는 못 하겠지만.


  그런데 이모저모 집안을 치운다고 하더라도 날마다 바지런히 돌아보면서 보듬지 않으면 먼지가 곱게 내려앉을 테지. 집살림이란 그야말로 날마다 꾸준히 돌아보면서 아끼는 손길이다. 나는 이제껏 집살림을 영 엉터리로 한 셈이다. 다만, 이제껏 영 엉터리로 했으면 이제부터 안 엉터리로 하면 되지. 이제부터 새로운 보금자리를 누리면 되지. 아이들하고 까르르 웃고 노래할 사랑스러운 보금자리를 지으면 되지. 겨우내 집밖보다 집안에서 오래 지내야 할 테니까, 십이월이 오기 앞서 집안을 더욱 정갈하게 치워 보자. 4348.11.11.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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앳살 2015-11-11 02:08   좋아요 0 | URL
제 일기장을 들쳐보는 느낌이에요

숲노래 2015-11-11 08:18   좋아요 0 | URL
아, 그러시군요 ^^;;;
우리는 저마다 비슷한 일기를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

blanca 2015-11-12 00:05   좋아요 0 | URL
공감이 갑니다. 먼지는 매일 매일 모든 곳에 내려앉지요. 정갈하고 간소하게 주변을 관리하고 싶은데 이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더라고요.

숲노래 2015-11-12 03:51   좋아요 0 | URL
참말, 온집 식구가 함께 나서고
함께 즐거이 돌보아야
비로소 정갈하고 깔끔해지는구나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