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서 버스를 타기



  집에서 면소재지까지 걸어갔다. 오 킬로미터 남짓 되는 길을 두 아이가 씩씩하게 걸었다. 면소재지에 거의 닿을 무렵 발이 아프다고 해서 한 아이씩 살짝 안고서 걷기도 했다. 가볍게 날듯이 걷는 두 아이는 이만 한 길이 이제는 하나도 대수롭지 않다. 다섯 살 아이는 끝까지 씩씩하게 걸었다. 면소재지 가게에 들러 과자 한 점을 사 준 뒤에 군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덟 살 아이는 걸상에 누워서 자도 되느냐고 물었다. 고단하다고 할 만한 길은 아니었지만 수월하다고 할 만한 길도 아니었겠지.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한 발자국씩 내딛으면서 함께 자란다. 스스럼없이 걷고, 씩씩하게 노래하고, 즐겁게 버스나 자동차를 얻어서 타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다시 새로운 넋으로 가다듬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4348.12.26.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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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뜨끔



  아침에 밥을 하면서 고구마를 여린 불로 구울까 하고 생각하면서 손질하다가 그만 엄지손가락을 칼로 포옥 찔렀다. 아침을 다 짓고 나서 칼을 새로 갈려고 했기에 그나마 날이 덜 선 칼이었고, 아차 하고 느끼면서 살며시 칼을 뺐으니 피가 나지는 않는다. 그래도 물이 닿으면 뜨끔하고 뭘 하면 자꾸 따끔하다.


  밥을 짓다가 손가락을 칼로 베면 어릴 적에 들은 ‘애들 같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러게 몸뚱이는 어른이라지만 아직 애들 같아서 칼도 어수룩하게 놀리면서 손가락을 또 베네. 4348.12.2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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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꽃으로 노래하는 아이



  웃음꽃으로 노래하는 아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하고 돌아보니, 바로 나한테서 나오고 곁님한테서 나왔다. 웃음꽃으로 노래하는 아이는 어디에서 웃음을 얻을까 하고 헤아리니, 바로 나한테서 나오고 곁님한테서 나왔다. 그리고 아이 마음속에서 고이 샘솟는다. 아이는 내가 아이를 바라보는 눈길에서 웃음을 느끼고, 나는 아이가 나를 바라보는 눈망울에서 사랑을 느낀다. 내가 물려줄 수 있는 삶은 바로 웃음이고, 아이가 물려받을 수 있는 삶은 언제나 사랑이다. 어버이로서 내가 날마다 아침에 새롭게 가다듬으면서 기쁘게 살피는 꿈은 다른 어느 곳이 아닌 늘 내가 삶을 가꾸는 이곳에서 짓는다. 함께 웃자. 같이 노래하자. 서로 손을 잡고 춤추자.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면서. 4348.12.21.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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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가 아버지로서 삶을 새로 가다듬는 길을 배우고자 마실을 나왔다. 아이들도 늘 삶을 새로 배우고, 어버이도 삶을 늘 새로 배우는데 나 스스로 한결 고운 넋이랑 웃음으로 노래하는 길을 가려고 배움마실을 다닌다. 오늘 이렇게 아버지가 혼자 길을 나섰는데,  다음에는 우리 다 같이 배우러 나오자. 시골집에서 이쁘게 놀렴. 고마워. 4348.12.19.흙.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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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콩 부딪혔는데



  막대솔을 들고 빨래터로 물이끼를 걷으러 가는 길에 산들보라가 뭔 일이 있는지 우뚝 서서 허리를 숙인다. 신이 풀렸나 보다. 사름벼리는 달리는 결을 멈추지 못해 그만 동생하고 콩 부딪힌다. 그래도 사름벼리는 어라 하며 멈추려 했는지 동생하고 부딪힌 뒤 엉덩방아를 찧고, 산들보라는 누나가 뒤에서 부딪혔으나 용케 가만히 있는다. 누나는 동생한테 미안하다 하고, 동생은 누나더러 괜찮다고 한다. 요 귀여운 녀석들. 4348.12.17.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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