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기다려 준다



  아이들은 늘 기다려 준다. 저희 똥그릇에 똥을 뽀직 누고는 “똥꼬 닦아 주세요!” 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기다려 준다. 부엌일을 하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비질을 하다가, 빨래를 하다가, 옷가지를 개다가, 이불을 가지런히 갈무리하다가, 작은아이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기다려. 곧 갈게.” 하고 외친다. 작은아이는 “알았어요. 기다릴게요.” 하면서 기다려 준다.


  배고픈 아이들은 늘 기다려 준다. “곧 밥 다 지어서 줄 테니까, 놀면서 기다려 주렴.” “네, 알았어요. 놀면서 기다릴게요.” 배고픈데 무슨 놀이를 할랴 싶을 수 있지만, ‘놀이’라는 낱말은 배고픔을 살짝 가시도록 도와준다. 소꿉놀이를 하면서 밥짓는 놀이를 할 수 있고, 놀다가 틈틈이 ‘밥 다 되었어?’ 하고 물으면서 기다려 준다.


  그러고 보면, 어른이 기다려 주지 않을 뿐이다. “얼른 와!”라든지 “빨리 해!”라든지 “싸게싸게 다녀!” 같은 말을 외치면서 아이를 닦달한다. 아이를 다그치면서 서두르라 외치는 모든 어버이는 웃는 낯이 아니라 찡그린 낯이다. 이와 달리 아이들은 언제나 기다려 주면서 웃는다. 어른이 안 기다리는데다가 웃지도 않을 뿐이다. 아이들은 노상 기다려 주면서 또 기다리고 다시 기다린다. 어른은 기다릴 줄도 모르고 기다릴 생각조차 없다.


  어떡해야 할까? 이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활짝 웃으면서 함께 기다리고 함께 살림을 짓는 길을 걸을 수 있을까? 2016.2.17.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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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마실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면



  읍내마실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면 졸음이 쏟아진다. 군내버스에서 쿨쿨 잠든다. 그러나 자리가 없어서 서야 하면 선 채 꾸벅꾸벅 존다. 아이들하고 오며 가며 버스를 타니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기를 바라는데, 작은아이는 ‘보랏빛 버스’를 못 탔다면서 자꾸 서운해 한다. 고흥 읍내에 있는 ‘보랏빛 버스’는 고흥하고 인천 사이를 다니는 시외버스이다. 그래, 아버지가 찻삯을 곧 마련해서 인천에 사는 큰아버지 댁에 나들이를 가자. 너희를 데리고 인천 큰아버지 댁에 다녀온 지 석 달 남짓 되었나? ‘보랏빛 버스’도 타고 ‘비행기’도 타고 ‘배’도 타면서 나들이를 다니자. 그리고 ‘우주를 나는 배’도 타고 머나먼 별나라에도 다녀오자. 2016.2.1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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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문을 활짝 연 겨울 끝자락



  그제 낮부터 도시로 돌아가는 자동차가 줄을 잇는다. 어제 아침하고 낮에 가장 많이 도시로 돌아갔지 싶다. 오늘은 아침부터 온 마을이 조용하다. 엊저녁에는 바람이 좀 분다 싶더니, 오늘은 바람조차 잠든다. 겨울볕이 무척 포근하다. 뒤꼍 뽕나무 둘레에는 어느새 쑥이 돋는다. 아주 어린 쑥이기에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월 한복판으로 접어드는 겨울볕은 보드라우면서 곱다. 방문을 열고 마루문을 연다. 오늘은 방바닥에 놓은 깔개를 걷어서 방바닥부터 훔친 뒤에 깔개를 빨기로 한다. 먼지를 뒤집어쓴 몸을 찬물로 씻는데 처음에는 아차차 싶더니 나중에는 아무렇지 않다. 바야흐로 전남 고흥은 봄을 코앞에 둔 막바지 겨울이다.


  방석 넉 점을 마당에 내놓는다. 함께 청소를 해 준 아이들은 고샅을 달리면서 놀고, 나는 옷을 모두 갈아입고는 기지개를 켠다. 두 아이가 먹고 남긴 그릇을 치운다. 노래를 크게 틀고 집에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4349.2.1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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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을 잊은 몸짓



  아버지가 철을 잊고 살면 아이도 철을 잊고 산다. 아버지가 철을 알고 살면 아이도 철을 알며 산다. 한겨울에도 웬만하면 양말을 안 신다가 요즈음은 양말을 꼬박꼬박 신으려 한다. 아이들이 자꾸 아버지를 흉내내기 때문이다. 지난가을에도 겨울을 코앞에 두고 집에서 반바지만 입으니 작은아이도 아버지를 흉내내어 반바지에서 안 벗어나려 했다. 이 아이가 긴바지를 입도록 하려면 아버지도 긴바지를 입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이한테 상냥하면? 아이도 아버지한테 상냥할 테지. 다만, 아이는 아버지가 썩 상냥하지 못할 적에도 한결같이 상냥한 몸짓을 보여주곤 한다. 이런 일을 겪을 적에는 늘 ‘아차!’ 하고 느끼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잡으려고 한다. 아이들은 늘 제 어버이한테 상냥한 몸짓으로 삶을 가르쳐 주네 하고 깨닫는다. 4349.2.7.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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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우리 집에서만 놀기



  설날에 우리 집에서만 논다. 설날을 앞두고 아이들을 이끌면서 나들이를 가려고 생각해 보았으나 오늘(2.6)이 되기까지 찻삯을 모으지 못했다. 그러니 설날에 우리 집에서 조용히 지내야지. 아이들은 할머니나 할아버지나 이모나 큰아버지를 만나서 함께 놀지 못하는 대목이 아쉽다고도 하지만 이내 잊고 저희끼리 재미나게 논다. 아침을 먹고 나서 뒤꼍에 올라 흙으로 만두랑 떡을 빚는 놀이를 하면서 깔깔깔 웃는다. 오늘 우리한테 살림돈이 퍽 적어서 설마실을 다니지 못하지만, 오늘 우리한테 있는 기쁨을 고요히 돌아본다. 아침부터 일찌감치 이불을 빨래한다. 포근한 겨울볕은 이불을 잘 말려 주리라. 신나게 비빔질을 하면서 이불 두 채를 빤다. 4349.2.6.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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