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콕



  작은아이가 글씨쓰기를 하도록 이끈 다음에 옆에 나란히 앉아서 바느질을 한다. 천가방 손잡이 실이 풀렸기에 기운다. 작은아이더러 글씨를 쓰면서 소리를 내라고 이르면서 작은아이 공책을 쳐다보는데 뜨끔! 아야, 바늘에 찔렸네. 작은아이더러 글씨를 쓸 적에 공책만 글씨만 쳐다보라고 했는데, 나도 바느질을 하면서 바늘하고 실만 쳐다보았어야지. 히유, 날카로운 바늘에 찔릴 적마다 손가락도 마음도 뜨끔하다. 아이 걱정은 하지 말고 나부터 나를 잘 살필 노릇이다. 2016.3.1.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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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심었어



  무엇을 심었니? 씨앗. 어떤 씨앗을 심었니? 예쁜 씨앗. 그래, 네 말대로 네가 심은 예쁜 씨앗이 이 땅에서 예쁘게 돋을 수 있기를 빌어. 그 씨앗에 깃든 네 꿈이 활짝 깨어나기를 빌어. 네 손길을 받은 흙은 싱그럽게 거듭날 테고, 네 눈길을 받은 씨앗은 아름답게 깨어날 테니. 2016.2.29.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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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만​



  낮에 한 차례 눕고 싶었으나 눕지 못한다.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자리에 살짝 누워 본다. 저녁밥물을 자그마한 불로 안친 뒤에 눕는다. 곁에 손전화를 놓는다. 딱 30분만 누웠다가 일어나서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마련하자자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마당하고 뒤꼍을 오르내리면서 씩씩하게 논다. 까무룩 곯아떨어져서 한참 꿈나라를 허우적거리다가 눈을 번쩍 뜬다. 손전화를 켜서 때를 살피니 꼭 30분만 누웠다. 기지개를 켠다. 부엌으로 가니 냄비밥이 거의 다 되었다. 국냄비랑 불판에 함께 불을 올리고 신나게 국이랑 반찬을 마련한다. 낮이나 저녁 사이에 30분만 쉴 틈을 얻을 수 있으면 새롭게 기운을 차린다. 이 30분이란 얼마나 고마우면서 아름다운가 하고 늘 느낀다. 내가 어릴 적에 우리 어머니도 아마 이 30분을 누리셨겠지. 2016.2.26.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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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집으로



  집으로 간다. 나들이를 다니고서 기쁘게 집으로 온다. 집으로 간다. 사뿐사뿐 마을 한 바퀴를 달리면서 놀고 난 뒤에 집으로 온다. 집으로 간다. 즐겁게 노래를 부르면서 바람을 마신 우리는 집으로 온다. 함께 집으로 가면서 문득 생각해 본다. 우리가 가는 길은 모두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바깥마실을 한다지만, 바깥마실을 하는 뜻은 집으로 돌아오려는 뜻이 아닐까? 아무리 멀리 걸음을 하든, 아무리 집을 떠나서 어디론가 돌아다니든, 우리는 참말로 집으로 오려고 이 길을 걷는 셈 아닐까? 집 바깥에서 일을 할 적에도 집으로 돌아와서 살림을 꾸리려는 몸짓이지 않을까? 2016.2.21.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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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 놀이터



  집에서 깍두기를 담가 보려는데 고춧가루도 마늘도 양파도 생강도 없으니 읍내마실을 하기로 한다. 두 아이랑 버스를 타고 간다. 아침 열한 시에 나서면 집으로 돌아갈 버스가 마땅하지 않다. 그러나 읍내에 있는 놀이터를 아이들이 한껏 누리니 이곳에서 다리쉼이며 어깨쉼을 한다. 바람이 좀 불어도 볕이 곱다. 오늘 우리는 다 같이 잘 놀고 깍두기잔치도 열어 보자. 2016.2.18.나무.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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