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마실길

  두 아이를 이끌고서 벌교마실을 했습니다. 벌교중학교 푸름이한테 직업하고 진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열넷에서 열여섯 사이인 아이들을 바라보니 마치 우리 집 아이들 같네 싶도록 사랑스러워 보입니다. 이 아이들이 벌교라는 시골을 스스로 아끼면서 마음 가득 곱게 꿈을 키우는 넋으로 산다면 참으로 기쁘리라 생각합니다. 내가 이 아이들한테 들려준 마지막 말은 "즐겁게 살림하며 삶을 새롭게 사랑하는 신나는 생각을 꿈꾸기"입니다. 2016.6.13.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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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차리는 밥



  이틀에 걸쳐 바깥마실을 하면서 바깥일을 했습니다. 오늘 고흥으로 돌아와서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온 뒤, 쌀부터 씻어서 몇 분 동안 불렸고, 곧바로 밥을 짓습니다. 국을 끓인다거나 다른 것을 차릴 겨를을 내기는 쉽지 않아서 불판을 달구어 냉동식품을 살살 익혔지요. 이렇게 해 놓고 짐을 풀었고, 몸을 씻은 뒤에, 접시에 김치를 옮기며 밥상을 차렸어요. 서울을 떠난 시외버스가 고흥읍에 닿을 즈음 읍내에서 튀김닭이라든지 뭔가를 사서 들어갈까 하다가 이런 생각을 접었어요. 그냥 집에서 밥을 짓자고 생각했어요. 몸이 힘들다거나 버스에서 고달팠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냥 아무것도 못하겠구나 싶어서 새롭게 기운을 내려고 했어요. 이러면서 한 가지를 더 생각했어요. ‘밖에서 뭔가를 사면 돈이 많이 드니까 집에서 밥을 하자는 생각이니?’ 또는 ‘어머니가 힘들어서 밥을 못 차렸을 텐데, 아이들이 집밥을 맛볼 수 있도록 할 때에 훨씬 즐겁다고 생각하니?’ 며칠 만에 손수 차려서 먹는 집밥이 참 맛있네, 내 손으로 담근 김치를 내 손으로 지은 밥이랑 먹으니 몸이 반기네, 하고 느끼는 저녁입니다. 2016.6.1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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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설거지



  엊저녁에는 모처럼 설거지를 미루었는데 밤에 마치지 못하고 아침에서야 한다. 밤에는 그대로 곯아떨어지느라 저녁 설거지를 못한 셈이다. 이럴 적에 문득 돌아보곤 한다. 집살림을 도맡는 내가 ‘가시내’라면, 한집에 사는 여느 ‘사내’는 ‘저녁에 마치지 않고 아침까지 그대로 있는 설거지’를 어떻게 바라볼까? 여느 집안 여느 사내는 개수대를 바라보면서 ‘그래, 내가 맡아서 하면 되는구나!’ 하고 여길까 ‘가시내란 사람이 설거지도 안 하다니!’ 하고 여길까? 아침 설거지를 마치고, 어제부터 불린 미역으로 국을 끓이려고 부엌을 갈무리한다. 밥불을 올렸고, 이제 아이들더러 마늘을 벗겨 달라 얘기하고는 신나게 밥을 짓고 차려야지. 2016.6.8.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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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들마실이나 숲마실을 할 적에 문득 큰아이가 외칩니다. “우리 시골에 살아서 좋다! 앞으로도 시골에 살자!”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차츰 몸이 자라고 철이 들면서 생각이 더 넓으면서 깊게 열린다고 느낍니다. 이제 이 아이들은 우리를 둘러싼 터전을 한결 그윽하게 바라보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도시에는 큰아버지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나 이모나 이모부나 외삼촌이 살지만, 또 여러 이웃님이 살지만, 도시로 나들이를 갈 적마다 노래도 못 부르고 뛰거나 달리지도 못하는 줄 알아요. 자동차도 많을 뿐더러, 버스나 전철에서 ‘노래를 하면 안 되는’ 일을 견디기 어려워 합니다.


  흔히 일컫는 공공질서이니까 버스나 전철에서 ‘노래를 하면 안 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보다는 ‘나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도, 다른 사람은 노래를 듣고 싶지 않을’ 수 있으니 조용하고 얌전히 다니자고 말하는데, 이 말을 아이들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아요. 왜냐하면 시골에서는 군내버스에서 노래를 불러도 좋아하거나 귀여워하는 할머니나 이웃도 있고, 자전거를 타거나 걸으면서 얼마든지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조용한 유월 한낮에 아이들 노랫소리와 놀잇소리를 들으며 나도 함께 노래해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2016.6.5.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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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깃국물



  마늘장아찌를 하려고 생각하면서 읍내에 마실을 간다. 간장하고 고추장을 넉넉히 장만하기로 한다. 우리 집 간장이나 고추장을 아직 담그지는 못하지만, ‘우리 집 마늘장아찌’는 즐겁게 해 보려고 생각한다. 읍내 가게에서 간장하고 고추장을 장만하는 김에 고기도 장만한다. 저녁밥 먹기 앞서 마실을 다녀온 아이들은 배가 몹시 고프다. 집에 닿자마자 아이들더러 손발을 씻으라 하고, 나는 고기를 볶으려 한다. 큰아이는 아버지 곁에 붙어서 “나도 뭘 돕고 싶어.” 하고 말한다. “그럼 양파를 가져다 줄래?” “양파? 어디에?” “밖에 나가 봐. 처마 밑에 자루에 들었어.” 큰아이는 양파 껍질을 벗긴다. 양파 껍질을 다 벗기고 나서 “또 뭘 돕고 싶어.” 한다. “그러면 마늘 하나만 가져올래?” “마늘? 마늘 어디 있어?” “처마 밑에 보면 커다란 자루에 들었어.” 큰아이가 양파랑 마늘 껍질을 벗겨 주기만 해도 일손이 크게 던다. 손이 한결 느긋하다. 내가 어릴 적에 어머니 곁에 붙어서 양파나 마늘 껍질을 벗기기만 했어도 어머니는 손이 한결 느긋하다고 느끼셨을까? 감자나 당근을 썰어 주지 않아도 된다. 김치찌개 불을 맞추어 주지 않아도 된다. 쌀을 씻거나 일어서 밥물을 맞추어 끓여 주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은 아주 조그마한 손길로도 푸진 기쁨이 된다.


  작은아이는 고깃국물을 고기보다 더 맛나게 먹는다. 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내 몫으로 놓은 접시에 있는 고깃국물을 죄다 작은아이 그릇에 붓는다. 네가 다 먹으렴. 네가 맛있게 먹으렴. 네가 즐겁게 먹으면서 고운 사랑을 마음속으로 키우렴. 2016.6.4.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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