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함께 먹지 못하던 어머니



  작은아이가 밥상맡에서 묻습니다. “아버지도 밥 같이 먹어?” “응.” 그렇지만 아버지는 부엌일을 마저 끝내느라 부산합니다. 밥상을 다 차린 뒤에는 빨래를 마당에 내다 넙니다. 설거지를 하고 칼을 숯돌에 갑니다. 이러다가 밥상에 토마토를 안 올렸네 하고 깨닫고는 다시 칼을 써서 토마토를 썰어서 접시에 담아 밥상에 올립니다. 아이들이 밥그릇을 거의 비울 즈음까지 나는 밥상맡에 앉지 못합니다. 내 밥그릇이나 국그릇에 뭘 담지도 못합니다. 아직 못 끝낸 빨래가 몇 점 더 있고, 이밖에 아침 집일을 더 해야 합니다. 마당에 두 차례쯤 더 나갔다가 들어오고 하다가 문득 내 어릴 적 우리 어머니 모습이 떠오릅니다. 나도 어머니한테 으레 “어머니는 밥 안 드셔요?” 하고 여쭈었습니다. 이때에 어머니는 언제나 “먼저 먹어.”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참말로 어머니하고 한 밥상에 둘러앉아서 느긋하게 밥을 먹은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어머니로서는 어머니를 거들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부엌일뿐 아니라 다른 모든 집안일을 건사하느라 눈코를 뜰 새 없이 바쁠 뿐 아니라, 살짝 다리나 손을 쉴 겨를조차 없었으리라 느낍니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면 다 같이 밥상맡에 느긋하게 둘러앉을 수 있도록 이것저것 요모조모 같이 챙기고 건사할 수 있겠지요? 2016.6.27.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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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긴신, 새 장화



  작은아이 긴신을 새로 장만합니다. 두 아이 새 긴신을 틀림없이 올봄에 새로 장만했지 싶은데, 아니 지난가을이었나, 두 아이 모두 이 긴신 바닥이 닳고 갈라져서 물이 샙니다. 큰아이 것은 고흥에서 찾지 못해 나중에 서울마실을 할 적에 장만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작은아이 것만 노란 빛깔로 장만합니다. 작은아이는 새 긴신을 꿰고 골짝물에 풍덩 들어가서 마음껏 발을 휘젓습니다. 재미나지? 아무래도 긴신이든 여느 신이든 너희한테는 ‘한 해 동안 발에 꿸 신’으로 장만해야겠구나. 워낙 잘 달리고 뛰면서 노니까. 2016.6.27.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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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는 들어도 일어나지 못하는



  이틀 내리 골짝마실을 다녀옵니다. 작은아이가 더 자라면 골짜기로 걸어서 다녀올 생각이지만 아직 많이 어리니 자전거로 다녀옵니다. 그런데 골짜기를 자전거로 다녀오면 골짜기에서 누린 시원함을 내리막에서 더욱 시원하게 맞이하면서 집에 닿을 무렵에는 땀이 하나도 없지만, 걸어서 돌아오면 다시 땀이 솟지요. 아무튼 이틀 내리 골짝마실을 하고서, 집에서는 옷장 하나와 이 옷장에 깃든 옷을 몽땅 마당에 널어서 말린 뒤에 다시 집에 들이느라 부산한 하루였습니다. 이러면서 저녁밥을 차렸어요. 내 기운은 여기까지였는지 여기까지 하고는 그대로 자리에 드러누워 새벽 네 시까지 좀처럼 일어나지 못합니다. 이런저런 소리를 귀로 듣기는 해도 몸이 일어나지 못해요. 그래도 이런 몸을 일으키는 힘은 한 가지 있습니다. 내 옆에서 잠든 아이들이 이불을 뻥뻥 걷어차서 한밤에 썰렁해 하는구나 하고 느낄 적에 ‘누운 채로 손발을 뻗어’ 이불을 찾아내어 두 아이한테 꼭꼭 여미어 덮어 줍니다. 두 아이가 갓난쟁이일 무렵 ‘아무리 고되거나 지쳤어’도 바로바로 했던 기저귀 갈기처럼, 아이들하고 얽힌 일은 내 젖 먹던 힘을 끌어내어 어떻게든 해내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아이들은 오늘도 사흘째 골짝마실을 바랄 듯한데, 오늘은 큰아이 자전거를 자전거수레에 싣고 읍내에 다녀와 봐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골짜기를 가든 읍내를 가든 자전거로 다녀오기에 만만하지 않으나 즐거운 길이 되도록 하자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내가 더욱 힘을 내야지요. 2016.6.27.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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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먹는 손길



  밥을 함께 먹는 사이입니다. 밥을 같이 나누는 사이입니다. 밥을 서로 즐기는 사이입니다. 밥을 나란히 짓는 사이입니다. 밥을 오순도순 가꾸는 사이입니다. 밥을 놓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이입니다. 밥상맡에서 밥 한 그릇으로 웃는 사이입니다. 우리는 한솥밥을 먹는 사이입니다. 그래서 ‘한솥밥지기’이면서 ‘한솥님’이요 ‘한솥벗’이 되기도 합니다. ‘한밥(같은 밥)’을 먹는 사이, 곧 ‘한밥님’이자 ‘한밥사이’예요. ‘한식구·식구’란 ‘한밥님·밥님’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2016.6.25.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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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집에 가자



  얼마 앞서까지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마실을 다녀올 적에 두 아이가 버스에서 내릴 적마다 곯아떨어져서 이 아이들을 안고서 진땀을 뺐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집에 닿아 자리에 눕히면 눈을 번쩍하고 뜨면서 까르르 웃으면서 뛰놀아요. 이런 일을 한두 번이 아닌 여러 해 겪는 동안 곁님이 늘 하던 말이 있습니다. 버스에서 내릴 적에 아이한테 말하면서 깨우면 알아서 잘 일어나서 버스에서 내려서 걷는다고. 나는 지난 여러 해 동안 ‘그래, 그 말이 틀림없이 맞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이대로 안 하고 살았습니다. 이러다가 얼추 한 달 즈음 앞서부터 버스에서 아이한테 살살 속삭이면서 내리자고 달래 봅니다. 그러니 이 깜찍한 아이들은 버스가 멈춘 뒤에 눈을 슬그머니 뜨고는 졸리지만 똘똘한 몸짓으로 스스로 버스에서 내려서 씩씩하게 걷습니다. 마을 어귀에서 읍내로 나갈 적에는 “자, 이제 내리자.” 하고 말합니다. 읍내에서 집으로 돌아올 적에는 “자, 이제 집에 가자.” 하고 말합니다. 부드럽고 살가이 건네는 말 한 마디로 아이들이 몸에 새로운 기운을 척척 집어넣으면서 깨어날 수 있을까요? 틀림없이 그럴 테지요. 오늘 저녁에 신문 한 부를 얻으러 읍내를 다녀오면서도 이러한 말 한 마디로 아이들을 달랠 수 있는 모습을 몸소 겪으며 빙그레 웃으며 생각했습니다. ‘그렇구나. 나는 이 아이들을 앞으로 더 안아 주기 어려울 나이가 될 때까지는, 그러니까 아이들 몸무게가 내가 안기 어려울 만큼 될 때까지는 안아 주고 싶은 마음이었구나.’ 하고요. 그렇지만 등에 무거운 짐을 잔뜩 짊어지고 안아 주지는 말자고 생각을 고치기로 했어요. 홀가분한 몸으로 더 따스히 안고 신나게 놀자는 생각을 새로 짓기로 했습니다. 2016.6.24.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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