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00


《Usis Film Catalog Korea 1960(미국공보원 영화목록)》

 미국공보원 엮어 옮김

 미국공보원

 1961.



  우리 어버이하고 살던 집을 스스로 떠난 스무 살부터 텔레비전이 없는 집에서 살았습니다. 텔레비전이 없으니 얼마나 조용하면서 홀가분한지요. 한가위나 설이 되어 우리 어버이 집으로 찾아가면 다시 하루 내내 텔레비전 소리로 귀가 따갑지만 ‘며칠만 재미나게 구경하자’는 쪽으로 생각을 돌렸습니다. 나쁘게 여기면 스스로 고달프더군요. 텔레비전이 늘 가까이 있던 어린 날은 ‘왜 미국 영화가 그렇게 넘치는지’ 몰랐어요. 나중에 혼자 살피고 배우는 동안 ‘미국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푸른별 거의 모든 나라에 미국 살림길을 퍼뜨리려고 미국 영화를 거의 거저로 쏟아부은’ 줄 알아챘습니다. 《Usis Film Catalog Korea 1960(미국공보원 영화목록)》은 1961년에 미국공보원에만 들어간 ‘숨은책’입니다. 그야말로 숨기고서 몇몇 사람만 알던 책이지요. 그때에 미국은 ‘서른아홉 나라말’로 미국 영화를 퍼뜨렸다고 하니, 숱한 나라마다 미국 영화를 얼마나 많이 틀었다는 소리일까요. 영화이름하고 두서너 줄짜리 줄거리만 담아도 책 하나가 되니, 우리는 또 푸른별 웬만한 나라는 어린이가 언제나 ‘미국 살림살이를 구경하고 지켜보고 마음으로 새기면’서 자란 셈입니다. 그나저나 오늘 우리는 어떤 영화를 보며 삶이랑 꿈을 그리나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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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99


《和服類一切の實際再生法》

 茂木茂 엮음

 大日本雄辯會講談社

 1938.11.1.



  어머니하고 저자마실을 다니던 어릴 적을 떠올리면, 길에 단추 하나 떨어졌어도 냉큼 주워 주머니에 넣습니다. “단추는 주우면 나중에 다 쓸모가 있지.” 새마을운동으로 꾸민 마을 꽃밭 한켠은 언제나 마을 아주머니 텃밭입니다. 어머니가 바늘이랑 실로 손수 뜬 옷은 형하고 제가 크는 몸에 맞추어 실을 모두 풀고서 새로 뜹니다. 인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다들 코가 나빴을 텐데요, 공장이 수두룩하고 서울로 살림을 보내려고 빠른찻길을 내달리는 짐차가 엄청나거든요. 어머니는 코를 푼 종이를 반듯하게 펴서 말린 다음 “적어도 열 벌을 더 코를 푼 다음에 버리자” 하고 얘기했어요. 1938년 11월에 《婦人俱樂部》 ‘제19권 13호’ 덤책(별책부록)으로 나온 “戰時下の家庭經濟”를 들려주는 《和服類一切の實際再生法》은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에서 여느 살림집마다 힘들고 벅찬 하루를 이으면서 헌옷을 어떻게 되쓰고 되짓는가’를 알려줍니다. 우리는 일본한테 몽땅 빼앗겼다지만, 일본 들사람도 가난하기는 매한가지였구나 싶어요. 벼슬아치나 우두머리는 언제라도 푸지게 누린다면, 밑자리나 흙자리 들사람은 등뼈가 휘면서 고분고분하던 나날입니다. 들사람은 버릴 살림이 없기도 하지만, 알뜰하면서 알찬 삶길이었지 싶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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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96


《원예가의 열두 달》

 카렐 차페크 글

 요셉 차페크 그림

 홍유선 옮김

 맑은소리

 2002.7.15.



  똑같은 하루는 없습니다. 똑같은 해도 없습니다. 똑같은 철도 없고, 똑같이 흐르는 때란 아예 없습니다. 날마다 하는 일이 똑같다고 하더라도 날마다 맞이하는 아침저녁이며 밤낮은 노 다릅니다. 해바라기·풀바라기·바람바라기·별바라기·비바라기·꽃바라기·숲바라기를 하면 우리 하루는 참으로 노상 빛난다고 깨달을 만합니다. 이와 달리 시계·달력을 바라보며 쳇바퀴를 도는 나날이라면 ‘갈아입는 옷’은 있되 ‘거듭나는 넋’은 없지 싶어요. 초·중·고등학교를 보낸 시멘트집에서는 다 다른 철을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겨울에는 손이 곱은 채 찬물로 걸레를 빨고 비질을 하며 ‘이 겨울은 언제 끝나나?’ 하고 생각했어요. 창문을 다 열어도 좁고 더운 여름에는 땀을 비처럼 흘리며 ‘이 여름은 언제 지나가나?’ 하고 생각했고요. 여느 일터에서도 철철이 다른 삶을 못 보기 마련 아닐까요? 《원예가의 열두 달》을 읽으며 ‘글님이라면 흙님에 풀님에 꽃님에 나무님에 바람님에 숲님이 될 노릇’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박경리 님은 《원주통신》을 남겼는데 흙말 아닌 먹물말이었어요. 숲말로 열두 달을 그리면서 풀꽃말로 하루를 돌아볼 줄 안다면 우리 삶은 푸르겠지요. 2019년에 《정원가의 열두 달》로 새로 나온 책이 반갑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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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03


《보리피리》

 한하운 글

 인간사

 1955.5.30.



  인천에서 태어나 살아가면서 한하운 님이 인천에 터를 잡고서 이녁처럼 몸이 아픈 이를 돌보는 길을 걸은 줄 몰랐습니다. 중·고등학교 국어 갈래에서 ‘보리피리’란 시를 가르치긴 했어도 정작 이녁이 어떤 삶이요 어떤 길이며 어떤 꿈으로 하루를 지냈는가를 밝혀 주지 않더군요. 2011년에 삶터를 고흥으로 옮기니 ‘소록도’가 그곳에 있지 않느냐고 《당신들의 천국》이 고흥 한켠을 그렸다는 말을 곧잘 듣습니다. 그러나 고흥에서도 이 대목을 놓고서 딱히 이야기를 들은 일이 없습니다. 고흥군 행정은 천경자 님 그림을 ‘비가 새는 헛간’에 처박아 놓았다가 천경자 님 따님한테 돌려주었는걸요. 《보리피리》란 얇은 시집을 퍽 예전에 헌책집에서 장만했습니다. 새하얀 종이에 반듯반듯한 짜임새로 나오는 요즈음 판도 있습니다만, 어쩐지 해묵고 얇고 빛바랜 시집에 마음이 끌려 목돈을 들여 건사해 놓았어요. 한 줄을 쓰려고 흘렸을 땀을 생각했습니다. 한 마디를 담으려고 쏟았을 눈물을 떠올렸습니다. 비로소 한 꼭지를 마무르면서 피어났을 무지개를 그렸습니다. 문화는 돈으로 세우지 못합니다. 우람한 문화회관이나 예술회관이 서야 우리 살림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누구나 곱게 풀피리를 부를 수 있는 터전이 되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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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08


《골목안 풍경 전집》

 김기찬 사진

 눈빛

 2011.8.27.



  적잖은 책은 한두 해조차 눈길을 못 받고서 조용히 스러지곤 합니다. 책 한 자락이 열 해를 살아내며 사랑받는다면 꽤 넉넉하겠지요. 새로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며 거듭 태어났으나, 바야흐로 더는 어렵구나 싶어서 자취를 감춘다면 이러한 책을 바라보면서 “그동안 애썼어. 언젠가 네가 새삼스레 빛을 볼 날이 있으리라 생각해. 이제 고이 쉬렴.” 하고 속삭이고 싶습니다. 《골목안 풍경 전집》이 두툼하게 나오던 2011년에 반가우면서 아쉬웠습니다. 김기찬 님이 사랑스레 골목길을 거닐면서 담아낸 포근한 눈길을 여민 대목은 반가우면서도, 사진결이 썩 안 좋았습니다. 책으로 찍으면서 빛결을 찬찬히 추스르지 못했습니다. 592쪽에 이르는 책인데 넘김새가 안 좋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사진책을 펴낼 만한 눈높이가 아직 먼 셈일까요. 반도체를 만들고 손전화나 군사무기를 만들 줄 안다지만, 막상 사진책 하나를 사진결대로 종이에 옮기는 솜씨는 이렇게 허술할까요. 골목마을을 휙휙 밀어내어 아파트를 올린 삽질을 헤아린다면, 살림자리를 사랑으로 가꾸도록 이끄는 배움판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셈(숫자·성장율·지지율)에 목을 매달아요. 셈을 하더라도 셈꽃이 되면 좋겠으나, 생각꽃이나 생각날개하고 너무 멉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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