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02


《暴政12年 第一輯 景武臺의 秘密》

 김석영 글

 평진문화사

 1960.5.30.



  우두머리랑 벼슬아치가 선 뒤부터 사람들이 느긋하거나 아늑하거나 즐겁게 살아가는 숨통을 튼 적이 있나 하고 돌아보면, 글쎄 아예 없지 싶습니다. 지난날 조선·고려·발해·고구려·백제·신라·가야·부여·마한·진한·변한·옛조선 같은 이름일 적에 하루라도 조용히 발뻗고 쉴 겨를이 있었나 하고 되새기면, 아무래도 참 없었네 싶어요. 일제강점기에 들어서고, 남북이 갈리고, 피튀기며 싸우고, 군홧발로 억누른 뒤에는, 돈벌이랑 고장다툼에 대학바라기로 어수선합니다. 《暴政12年 第一輯 景武臺의 秘密》은 남녘·북녘으로 갈린 자리에 남녘 첫 우두머리가 얼마나 마구잡이였는가를 밝히려는 책꾸러미 가운데 첫걸음입니다. 1948년부터 1960년까지 바람 잘 날이 없던 나날이라면, 드디어 ‘마구쟁이 우두머리’를 몰아낸 다음은 어땠을까요? ‘나라가 없으면 어떻게 사느냐?’고 묻는 분이 있습니다만, 마을은 우두머리 힘으로 굴러가지 않아요. 우두머리가 있어야 풀꽃나무가 자라지 않습니다. 벼슬아치가 있어야 잠자리나 벌나비나 새가 날지 않습니다. 흙살림꾼이 등허리가 휠수록 농협은 되레 돈이 흘러넘칩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만나 사랑이 피어날 적에 아이를 낳고, 보금자리가 태어납니다. 사랑일 때에만 삶이에요.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13


《솔로 이야기 1》

 타니카와 후미코 글·그림

 김진수 옮김

 대원씨아이

 2012.8.15.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고 내거는 누리신문이 나왔을 적에 이 말이 썩 안 믿겼습니다. 말만 달콤하게 하는 먹물꾼이 수두룩하거든요. 여섯 달을 지켜보다가 2000년 가을에 첫글을 띄워 보았고, 5000이 조금 안 되는 글을 그 누리신문에 띄운 끝에 더는 글을 안 띄웁니다. 허울좋게 내세운다고 해서 온목소리를 담아내지 않는구나 하고 깊고 넓게 느꼈어요. 이 나라 골골샅샅에 있는 숱한 책집 이야기를 띄울 적에 달갑지 않게 여기면서도 제가 쓴 ‘책집 이야기’를 저 몰래 네이버에 돈 받고 판 적이 있고, 그림책이나 만화책이나 사진책을 들려주는 느낌글을 무척 꺼리더군요. 이 가운데 만화책은 매우 얕보았어요. 그 누리신문 엮는이는 ‘편집부에서 만화책을 안 읽어 봐서 모르겠다’고 하던데, 인문책만 읽는 분들은 만화책을 매우 하찮거나 나쁘게 바라보는 눈길을 그냥그냥 잇습니다. 《솔로 이야기》는 띄엄띄엄 우리말로 나오는 만화책입니다. 2019년에 일곱걸음째 우리말로 나오지만, 2012년에 나온 첫걸음하고 두걸음은 조용히 자취를 감춥니다. 저는 《솔로 이야기》가 어깨동무(성평등)로 나아가는 길을 따스하면서 슬프고 기쁘고 아름답게 그린 아름책이라고 봅니다. 홀가분히 사랑하는 길을 찾아나서는 당찬 삶을 담아내지요.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10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

 박정희 글·그림·사진

 걷는책

 2011.6.27.



  1995년 어느 날,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 책집지기 곽현숙 님이 저를 조용히 부릅니다. “저기, 최종규 씨, 부탁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 박정희 할머니라고 아나? 그분이 따님하고 네덜란드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에 다녀오셨다는데, 네덜란드 잡지에 난 기사가 있어서, 네덜란드말이라는데 영어도 아니잖아, 할머니가 기사에 어떤 이야기가 나왔는지 궁금해 하는데 읽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그리 길지는 않은데 우리말로 옮겨 줄 수 있을까?” 한글 점글을 빚은 박두성 님 딸이기도 한 박정희 님은 예순이 넘은 나이부터 ‘이제는 내 꿈대로 갈래!’ 하고 외치면서 그때부터 물빛그림을 그렸고, 2014년 12월 3일에 아흔둘 나이로 숨을 거두기까지 그림붓을 쥐었다고 합니다. 저는 네덜란드말을 배우려고 대학교에 들어갔지만, 대학교가 워낙 엉터리라 그만두었는데, 이때 처음으로 보람있게 배움자락을 살렸습니다. 그 뒤 2001년에 《박정희 할머니의 육아일기》란 책이 나온 얘기를 듣고 매우 반가웠습니다. 《나의 수채화 인생》(미다스북스, 2005)도 기쁘게 읽었어요. 그러나 두 책 모두 일찌감치 판이 끊기는데 2011년에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란 이름으로 살아납니다. 그림할머니 손에서는 언제나 빛이 흘렀습니다. ㅅㄴㄹ



https://blog.naver.com/hbooklove/602110996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65


《모래 위에 쓴 落書》

 김동명문집간행회 엮음

 김동명

 신아사

 1965.1.30.



  1988년에 들어간 중학교는 국민학교하고 참 달랐습니다. 국민학교에서는 가시내·사내로 갈려 툭탁거리더라도 같이 놀고 깔깔거리면서 어울렸다면, 남자중학교에서는 더없이 거친 말씨에 싸움질이 날마다 춤추었습니다. 이제 와 돌아보면, 중학교부터 갑자기 ‘새벽 여섯 시∼밤 열한 시’를 학교에 갇힌 채 대학입시만 바라보아야 하니 오죽 힘들까요. 갇힌 푸름이나 가두는 길잡님이나 똑같이 고단하기에 입에서 막말이 쉬 터져나왔겠지요. 중학생이 되니 어린이노래는 사라지고 ‘어른스러운’ 노래만 가르치는데, 김동명 님이 쓴 글에 가락을 입힌 〈내 마음〉은 빛줄기 같았어요. 노랫말, 그러니까 시 한 자락이 무척 싱그러웠습니다. 1900년에 태어나 1968년에 숨을 거둔 김동명 님은 대학교수를 오래 했고 책은 몇 자락 안 남겼다는데, 1965년에 ‘김동명 문집’이 석 자락으로 나와요. 이 가운데 《모래 위에 쓴 落書》를 2020년 첫여름에 천안 헌책집 〈갈매나무〉에서 만났습니다. 오늘 보자면 쉰 해를 훌쩍 넘겼습니다만, 쉰다섯 해 앞서는 얼마나 반드르르했을까요. 한국전쟁이 터졌을 적에 ‘거짓말하는 이승만과 경찰’이며, 서울을 떠나는 먼길에 겪은 이야기가 애틋합니다. 이녁은 삶을 시로 쓰셨기에 살아남았구나 싶어요.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01


《그의 自敍傳》

 이광수 글

 고려출판사

 1953.



  어릴 적에 학교·둘레에서 숱하게 듣던 말, 서울에서 헌책집마실을 처음 누리던 1994년부터 책손 할아버지한테서 자주 듣던 말로 ‘조선의 3대 천재’가 있어요. 1990년대 첫무렵까지만 해도 대학입시에서 ‘이광수·최남선’ 문학을 으레 다루었고 ‘홍명희’는 아예 안 건드렸습니다. 아마 요새는 바뀌었겠지요. 헌책집 책손 할아버지는 “조선 3대 천재 책부터 읽어야 하지 않아?” 하는 말을 곧잘 들려줍니다. 이때에 “저는 천재보다는 조용히 빛나는 들꽃 같은 사람들 책부터 읽고 싶습니다. 굳이 그 천재들 책은 안 읽어도 되지 않아요? 읽어 준 사람이 많은 책보다는, 앞으로 읽어 줄 사람이 많으면 좋겠다 싶을, 우리 삶터를 아름답게 가꾸는 빛을 담은 수수한 책을 읽으려 합니다.” 하고 대꾸했어요. 《그의 自敍傳》은 헌책집에서 이따금 구경했습니다. 늘 시큰둥히 지나치다가 ‘꼭 오늘 읽어야 하지 않을 테니, 나중에 정 생각나면 읽기로 하고, 오늘은 장만해 놓자’고 생각해서 품었습니다. 가끔 조금씩 읽는데, ‘조선 3대 천재’이기 앞서 쉽잖은 어린 나날을 보냈고, 이이 나름대로 뜻을 품고서 애썼구나 싶습니다. 다만 ‘뜻’을 늘 ‘밖’에서 품으려 했더군요. 마을을, 숲을, 시골을, 하늘을 안 봤으니 얄궂은 길을 갔겠지요.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