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46


《W.살롱 에디션 2 쓰는 여자, 펜은 눈물보다 강하다》

 김정희·이도·권지현 글

 서탐

 2020.9.29.



  인천에서 살던 어제도 고흥에서 사는 오늘도 대구는 가깝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인천이나 고흥에서 광주도 가까운 길이 아닙니다. 큰고장에 살 무렵에도 다른 고장은 하나같이 멀었고, 시골에서 사는 오늘도 한결같이 멀어요. 이웃고장으로 마실을 가자면 참 멀지만, 먼 만큼 이따금 찾아가는 발걸음을 모두 사뿐사뿐 즐거이 디디려고 합니다. 어디이든 돌고돌아 여덟아홉 시간이나 열 시간 남짓 들여 드디어 닿고 보면 무릎이나 등허리가 후덜덜하지만 등짐을 내려놓고 두어 시간쯤 책내음을 맡고 이웃님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 나라 삶터를 저마다 다른 곳에서 보금자리를 틀어 돌보는 마음’을 헤아립니다. 대구에서 마을책집 〈서재를 탐하다〉를 꾸리는 이웃님이 있고, 이곳 이웃님은 “W.살롱 에디션”이란 이름을 붙여 꼭 100쪽짜리 손바닥책을 2020년 여름부터 선보입니다. 마을책집에서만 다루고, 마을책집 누리집에서만 살 수 있는 이 책은 이제까지 수수하면서 나즈막한 자리에서 조용하게 살림을 짓는 눈빛을 조촐하게 들려줍니다. 큰소리가 아닙니다.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이 아닙니다. 다같이 생각을 기울여 보자는, 우리가 선 이곳에서 어떤 마음이며 바람이 흐르는가를 읽자는, 상냥한 노랫가락이지 싶어요. 어제를 밝혀 오늘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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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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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45


《한 달 책방》

 김정현 글

 심다

 2018.11.



  2017년 3월에 순천에 있는 〈책방 심다〉를 처음 찾아갔습니다. 전남 고흥에는 배움터를 다니는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곁에 두는 물음풀이(문제집)이나 몇 가지 달책(잡지)을 두는 책집이 있을 뿐, 여느 읽을거리를 다루는 책집은 없습니다. 고흥만 이렇지 않아요. 웬만한 시골에는 책집이 없습니다. 요새는 누리책집에서 여느 읽을거리를 시켜서 받을 수 있습니다만, 손으로 만져서 책을 만날 길이 막힌 시골입니다. 시골이기에 종이책 아닌 바람책·풀꽃책·하늘책·바다책·숲책·풀벌레책·새책·눈비책·씨앗책 들을 마주할 만합니다. 이러한 책을 읽어도 예부터 시골 흙지기는 넉넉히 제살림(자급자족)을 일구었어요. 다만 시골에도 어린배움터하고 푸른배움터가 있다면 마을책집이 나란히 있으면 한결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을책집은 시골 어린이·푸름이가 다른 고장으로 떠나기보다 스스로 이 텃마을을 사랑하며 가꾸는 듬직한 젊은이로 나아가도록 돕는 징검돌이자 샘터이자 쉼터이자 모임터가 될 만하거든요. 〈책방 심다〉에서 한 달 동안 책집지기 노릇을 겪어 본 분이 ‘한 달 동안 하루쓰기’를 했고, 조그맣게 책으로 여미었어요. 짧다면 짧지만, ‘사읽는’ 자리에서 ‘책집가꿈이’란 자리에 선 나날은 뜻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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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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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44


《불러비의 아이들》

 린드그렌 글

 이반 옮김

 국민서관

 1981.2.20.



  1981년에 마을 그림놀이터(미술학원)에 들어갔습니다. 이름은 그림놀이터이지만 어린이집(유치원) 노릇이었고, 어린이집보다 퍽 눅은 값에 아이를 맡길 수 있어, 가난살림 어린이가 많이 모였습니다. 다만 이곳마저 못 보내는 가난살림집도 많았습니다. 이때 길잡이로 있던 분들은 꽤 힘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림만 가르치지 않고 아이돌봄까지 맡았으니까요. 요새는 어린이집에서 그림책이나 이야기책을 많이 읽히지만 예전에는 책이라곤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저 뛰고 달리고 놉니다. 나무를 타고 맨발로 냇가나 뻘이나 바닷가로 나갑니다. 《불러비의 아이들》에 나오는 아이들은 책을 만질 일이 없다시피 합니다. 시골순이·시골돌이한테 종이꾸러미란 없어요. 오로지 들이며 숲이며 냇물입니다. 온몸으로 뛰놀면서 하늘을 읽고 풀꽃을 헤아리며 나무를 익혀요. 1981년 그해에 이 멋진 어린이책을 만났다면 좋았을는지 모르나, 못 만났어도 좋습니다. 책 아닌 마을에서 신나게 뛰놀았거든요. 이 책은 1998년이 되어 《떠들썩한 마을의 아이들》이란 이름으로 새로 나옵니다. 따지고 보면 ‘떠들썩마을’보다는 ‘시골마을’이나 ‘숲마을’입니다. 린드그렌 님은 숲을 벗삼아 노는 어린이를 사랑스레 그렸어요. 숲어른으로 크길 바랐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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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AstridLindgren #TheChildrenofNoisyVillage #やかまし村はいつもにぎやか #やかまし村の春夏秋冬 #やかまし村の子どもた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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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43


《博物誌》

 르나아르 글

 뽀나아르 그림

 장만영 옮김

 문원사

 1959.



  한 가지 책만 쓴 사람이 있기도 하겠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으레 여러 가지 이야기나 여러 갈래 책을 엮어내곤 합니다. 배움터에서는 여러 글님을 ‘아무개 책 무엇’으로 외우도록 시킵니다. 이렇게 외워야 물음종이(시험지)를 받을 적에 안 틀리거든요. 오늘날 배움터는 이 틀을 얼마나 깰까요? ‘글쓴이 + 책이름’을 외우도록 하기보다는 그 글님으로 글빛으로 나누려고 한 넋을 몇 마디라도 들려준다면 좋겠습니다. 《博物誌》를 처음 만나던 날, 《홍당무》란 책을 쓴 사람으로만 떠올리던 그분을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아마 배움터 길잡이도 이분 삶자국을 몰랐겠지요. 배움책을 엮은 이들도 《博物誌》를 읽은 일이 없었을 수 있어요. 이 책은 《자연의 이야기들》이나 《뱀 너무 길다》란 이름으로 새로 나온 적이 있으나 이내 잊혔는데, 글을 쓰려면 들·내·숲·바람·바다·구름·풀·풀벌레·나무·눈비 들을 고루 살피면서 하나하나 마음에 담는 눈빛일 때에 아름다울 만하구나 하고 일깨웁니다. 곁에 있는 들꽃 이야기부터 써요. 오늘 본 구름 이야기를 적어요. 겨울날 찬바람과 여름날 더운바람 이야기를 그려요. 파리랑 모기 이야기도, 나비랑 참새 이야기도 오롯이 ‘이웃하는 마음’이 되어 노래해 봐요. 그러면 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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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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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42


《고물상장부》

 편집부 엮음

 한국특종물업연합회

 1983.



  이제는 책집은 ‘책을 다루는 일’로 오르지만, 예전에 헌책집은 ‘책을 다루는 일’이 아닌 ‘고물업’으로 올라야 했다고 합니다. 새책도 헌책도 모두 책인데 세무소에서는 헌책집만 ‘고물업’으로 올렸다지요. 헌책집을 드나드는 적잖은 이들은 헌책집이 ‘고물업’으로 오른 줄 알고는 꽤나 얕보았습니다. 헌책집 이야기를 쓰는 이들도 비슷했습니다. 헌것을 다루는 일꾼을 우리 터전에서 얕보았으니 고물업도 헌책집도 나란히 얕본 셈입니다. 앞에서는 “모든 일은 고르다(직업에 귀천이 없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속내로는 일감을 놓고 위아래로 가른 꼴이지요. 헌책집에서는 한 사람이 책을 사들이지만, 책숲(도서관)에서는 숱한 사람이 책을 만집니다. 책결로 보자면 책숲에 있는 책이야말로 낡거나 너덜너덜합니다. 그러나 책숲을 찾아가는 사람치고, 또 책숲에서 일하는 사람치고, 책숲에서 ‘고물·헌책’을 다룬다고 여기지 않아요. ‘도서관 장서’라 하지요. 《고물상장부》를 보았습니다. 이런 책이 있는 줄 2020년 가을에 이르러 처음 압니다. 겉에 ‘응암 110-11’에 있는 ‘국일사’ 이름이 있습니다. 헌종이랑 헌쇠를 다독여 새살림으로 빚는 발판이 고물상이요, 손길을 보태어 책을 새로 빛내는 곳이 헌책집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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