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1.12.17.

숨은책 593


《월간토마토 vol.173》

 이용원 엮음

 월간토마토

 2021.12.1.



  2007년부터 태어난 달책 《월간토마토》는 2021년 12월로 173걸음에 이릅니다. 씩씩하게 내딛는 걸음은 2022년으로도 이을 테고 2030년이며 2040년을 찬찬히 바라볼 테지요. 마을·고을에서 짓는 달책은 다달이 그 마을·고을에서 살아가는 숨결을 담습니다. 이달이 지나면 어느새 묵은 이야기로 여기지만, 이해가 지나면 어느덧 아련하면서 새롭게 바라볼 이야기로 피어납니다. 그달그달 우리 마을·고을 살림살이를 이웃하고 도란도란 나누는 자리에서 누린 이야기는 해가 갈수록 ‘옛이야기’ 아닌 ‘오늘이야기’로 자란다고 느낍니다. 오늘 우리는 ‘옛이야기’란 이름을 쓰지만, 아주 오래도록 누구나 수수하게 ‘이야기’라고만 했습니다. 다른 곳을 쳐다보기보다 스스로 오늘을 마주하며 차곡차곡 지은 삶을 옮긴 이야기인 터라 두고두고 싱그러이 되새길 만해요. 이야기는 보금자리에서 태어나거든요. 이야기는 남이 아닌 내가 지어요. 대전 이야기를 담으면서 “다달이 대전”이라 안 하고 ‘토마토’란 이름을 넣은 눈길이 재미있습니다. 그럼요, 삶은 재미지게 누리면서 나누려는 하루인걸요. 돋보일 까닭이 없이 도란도란 가는 길입니다. 내세울 일이 없이 나긋나긋 날갯짓을 하는 하루입니다. 투박할수록 빛나는 우리 얼굴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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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2.15.

숨은책 580


《現代歐州》

 伊達源一郞 엮음

 民友社

 1914.2.15.



  헌책집을 다니다가 어쩐지 묵은 일본책이 보이면 쉬 지나치지 못합니다. 일본 책집에서 만나는 일본책이라면 일본사람이 읽은 책이기 마련이지만, 우리나라 책집에서 만나는 묵은 일본책이라면 ‘총칼로 억눌리던 무렵에 일본글로 새길을 배운 한겨레’ 자취를 읽어낼 만합니다. 《現代歐州》를 얼핏 보면 일본책인지 아닌지 아리송합니다. 우리나라도 꽤 오래도록 책에 한자만 까맣게 박았거든요. 책을 펴니 일본이 하늬녘(유럽) 여러 나라가 얼마나 나라살림을 일으켜서 옆나라를 차지하려고 애쓰는가 하고 차근차근 밝힌 줄거리가 가득합니다. 일본 벼슬꾼이 보기에 우리나라는 ‘우려먹을 밑밥’이었구나 싶어요. 그나저나 이 책 속종이하고 여러 곳에 수수께끼 같은 글씨가 있습니다. “C.D.L. 類別·番號·大正 年 月 日 購入·備考. 中東文庫”라 나옵니다. ‘C.D.L.’이 무엇일까요? ‘中東文庫’가 귀띔일 테지요. 둘을 맞물려서 살피니, 1922년에 처음 연 배움책숲(학교도서관)이라는 중동고등학교에 깃든 자국입니다. ‘大正 年 月 日 購入’이란 자국만 있고 날을 안 적었기에, 1914년에 나온 책을 중동고등학교에서 언제 받아들였는 지까지는 모릅니다. 그무렵 누가 읽었는지도 몰라요. 그저 이 책은 기나긴 날을 살아남았을 뿐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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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2.15.

숨은책 590


《셈본 5-1》

 문교부 엮음

 문교부·한국인쇄주식회사

 1952.5.30.



  1982∼1987년을 다닌 어린배움터에서 배움책(교과서)을 받으면 어떻게든 겉종이를 챙겨서 싸야 했습니다. 그무렵 집에 달종이(달력)가 없는 동무가 많고, 날종이(일력)라도 있으면 이 얇은 종이로 겉을 쌉니다. 안 싸면 배움책을 싸서 나오는 날까지 두들겨맞아요. 봄에 받아 여름에 내놓고, 가을에 받아 겨울에 내놓지요. 길잡이(교사)는 하나하나 보며 뭔가 끄적인 자국을 안 지웠으면 ‘안 지운 만큼’ 때렸습니다. 늘 맞으면서 배운 나날인데, 한겨레가 서로 싸우던 때에 미국이 베푼 종이로 묶은 《셈본 5-1》를 보던 옛 어린이는 어떤 하루였을까요? 차분히 즐겁게 배우도록 어린이를 이끄는 어른이 그립습니다.


* 책을 아껴 씁시다. 이 책은 다 배운 다음에 아우들에게 물려줄 책입니다. 깨끗하게 아껴 써서 물려받은 아우들의 마음을 즐겁게 합시다. 물건을 아껴 쓰는 것도 전쟁에 이기는 생활의 하나입니다. 국제 연맹 한국 재건 위원단(운끄라)은 한국의 교육을 위하여 4285년도의 국정 교과서 인쇄 용지 1,540톤을 문교 부에 기증하였다. 이 책은 그 종이로 찍은 것이다. 우리는 이 고마운 원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층 더 공부를 열심히 하여, 한국을 재건하는 훌륭한 일군이 되자. (대한 민국 문교 부 장관 백 낙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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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2.13.

숨은책 588


民衆時代의 文學

 염무웅 글

 창작과비평사

 1979.4.25.



  푸른배움터를 다니던 열일고여덟 살에 헌책집에서 처음 《民衆時代의 文學》을 만났습니다. 열 살 무렵에 천자문을 익혔고, 열대여섯 살에 《목민심서》를 한문으로 읽었기에 염무웅 같은 글꾼이 한자를 잔뜩 넣은 글은 하나도 안 어려웠습니다. 다만, 푸른배움터를 통틀어 ‘한자가 새까맣게 박힌 책을 술술 읽는 사람’은 혼자였습니다. 책을 나누는 여러 동무한테 《民衆時代의 文學》을 빌려주었고, 불꽃을 튀기며 글·삶·사람을 놓고 이야기했습니다. 동무들은 “너무 어려워. 그런 책을 어떻게 읽어? 우리하고 너무 먼 이야기 같아.” 했습니다. 푸른배움터를 마치며 인천을 떠나 서울로 갔고, 서울에서 똑똑하고 잘난 윗내기를 잔뜩 만난 어느 날 문득 깨닫습니다. “아, ‘민중’이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민중’이란 이름을 안 쓰는구나. 그래, ‘민중’이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늘 ‘우리’란 이름을 쓰더라. ‘민중’이란 자리가 아닌 사람만 ‘민중’이란 틀을 붙잡더라.” 줄거리(내용)만 좋대서 글이나 책이 좋을까요? 글쎄, 아니라고 여깁니다. 줄거리가 훌륭하다면, 줄거리로 펼 글도 훌륭할 노릇입니다. ‘훌륭’이란 멋스러워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수수한 사람·민중)’가 읽을 ‘우리말’을 쉽고 사랑스레 써야지요.


ㅅㄴㄹ


‘아닌 사람’도 틀림없이 있으리라 보지만,

‘민중·인민·국민·시민’

이런 이름을 붙잡는 사람은

저마다 다르게 권력자요 기득권이면서

거짓말을 하지 싶다.


그저 ‘사람’인 자리로,

‘우리’가 어깨동무하는 자리로,

스스로 ‘들풀·들꽃’이란 자리로,

조용히 바람에 춤추고

햇볕을 나누면서

빗물에 노래할 적에

참말을 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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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586


《내가 만드는 요리》

 김성수 엮음

 소년생활사

 1979.1.15.



  밥은 ‘만들’지 않습니다. 밥은 ‘짓다·하다’란 우리말로 나타냅니다. ‘요리’는 일본스런 한자말이라지요. ‘조리’란 다른 한자말도 있는데, 우리말로는 ‘밥짓기·밥하기’나 ‘밥차림’입니다. 우리는 언제쯤 “우리 밥짓기·우리 밥차림”을 생각할까요? 《소녀생활》 1979년 2월호 덧책(별책부록)으로 나온 《내가 만드는 요리》는 ‘소녀생활’이라는 달책에 덧책으로 나왔듯이, 푸른순이(청소녀)가 익힐 길을 들려줍니다. 1979년뿐 아니라 1989년에도 푸른순이가 익힐 길을 집안일로 못박은 우리나라인데, 2009년을 지나고 2019년을 지나는 사이 어느 대목이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순이돌이 모두 손수 밥을 지을 줄 알아야 한다고 또렷하게 짚을까요.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되어 순이돌이가 함께 집안일도 집살림도 즐거이 맞아들여 하루를 노래하자는 이야기를 들려주나요. 《내가 만드는 요리》를 보면, 앞뒤 속종이에 “소년생활 칼라북스 120권 완간” 알림글하고 “소년생활 불루북스” 알림글이 있습니다. 《소년생활》이란 달책이 따로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소년생활’이 따로 있었다면 어떤 덧책을 여미었을까요? 푸르게 살아갈 이 나라 여린 눈망울에 어떤 숨빛을 나누거나 물려주는 어른일 적에 아름다울까 하고 돌아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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