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2.4.24.

숨은책 665


《요리·일기 1981 완전칼라版 家計簿》

 편집부

 주부생활

 1980.12.5.



  흔히들 ‘조선왕조실록’이라든지 갖은 한문책을 ‘기록문화유산’으로 떠받듭니다만, 저는 달리 봅니다. 우두머리하고 벼슬아치 몇 사람 발자취는 우리나라를 이룬 삶길 가운데 티끌 하나만큼도 아닙니다. ‘적히지(기록)’ 않은 사람들 발자취야말로 참다이 ‘기록문화유산’이요, 이 가운데 하나로 ‘주부생활 송년호 특별부록’으로 나온 《요리·일기 1981 완전칼라版 家計簿》를 꼽을 만하다고 봅니다. ‘살림적이’인 ‘가계부’입니다. ‘여성잡지 별책부록’으로 찍힐 적에는 다 같으나, 사람들 손을 거칠 적에는 다 다른 살림빛으로 피어납니다. 서울 갈현동에서 아주머니 홀몸으로 아이를 돌본 눈물자국이 범벅으로 흐르는 1981년 살림순이(가정주부) 이야기가 ‘우리 역사’이지 않을까요? 임금님 이름은 ‘역사가 아닙’니다.


“오년동안 게혁 세우고 장사를 시작한다. 현금은 한푼도 엄다. 고모네돈 300만원 목공고 50만원, 이것이 빗이다. 내힘으로 이세상을 살아보렷다. 노력하면 된다. 하라 하면 된다. 오년 동안 내 힘을 다해서 살겠다. 돈이라면 고생 무릅쓰고 하겠다. 몸맣 건강하게 해주십시요. 이 불상한 여인을 구비살펴 주심시요. 내 잇는 힘을 다하겠습니다 …… 쌀 네가마가 올해 외상입.”


“(부산에 있는) 상호가 왔다. 용돈을 넘무 조곰 주어서 마음이 아푸다. 내 몸은 왜 이럭에 아플까? 너무 괴롭다.”


“상철이가 아버지한테 갔다 왜 완느야고 하더라. 그래서 아버지 공낙금 좀 내주실래요 그러니까 옴마한테 달라고 하더라며 집에 와서 울었다. 너무 게롭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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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4.24.

숨은책 648


《月刊 횃불 1호》

 조풍연 엮음

 소년한국일보

 1969.1.1.



  콩나물시루 배움칸(교실)에 가둬 두들겨패서 길들인 얼거리가 오래 흐른 우리나라인데, 이제 큰고장 몇 곳을 빼고는 아이가 확 줄어 사라질 판입니다. 살기에 나빠 아이를 더 안 낳는달 만하고, 아이한테 물려줄 아름나라가 아니라고 여겨 순이돌이가 참사랑길을 밝히는 살림길하고 등진다고 할 만해요. 《月刊 횃불 1호》는 “敎壇人과 知性人의 벗”이란 이름을 내걸었습니다. 앞자락에 떡하니 나온 ‘콩나물시루 배움터’ 모습을 보면서 이 달책(잡지)이 1960∼70년대를 가로지르는 속낯을 짚고 횃불처럼 앞길을 밝히며 새빛을 들려주려나 하고 생각했습니다만, 막상 이 책에 실은 글은 안 밝아 보여요. ‘술 마시기 앞서 먹는 약’이며 ‘옷벗기기 영화’ 알림그림(광고)을 곳곳에 집어넣고, 사이사이 넣은 ‘만화’는 추근질(성추행)이거나, 뒷돈(촌지) 받기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모습이기까지 합니다. 지난날에는 아이들이 넘쳐서(?) 제대로 못 가르쳤을까요? 아니겠지요. 오늘날에는 아이들이 적어서 제대로 안 가르칠까요? 아니라고 느껴요. 지난날보다 오늘날 사람(인구)이 훨씬 많습니다만, 더 빽빽히 서울(도시)에 몰린 채 숲을 등진 길로 치닫기에 배움빛을 잊어요. 스스로 짓고 스스럼없이 나누는 마음을 잃으니 아이가 떠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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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4.24.

숨은책 653


《英語の實力》

 宮田峯一 엮음

 弘道閣

 1938.10.5.첫/1939.8.15.18벌



  알고 싶기에 한 걸음씩 다가갑니다. 알아가기에 새롭게 배우려고 합니다. 알아차리기에 문득 고개를 숙이고서 마음으로 익히려 합니다. 차근차근 볕살을 머금는 열매는 천천히 무르익습니다. 하루아침에 다 익는 열매는 없어요. 이제 되었으리라 싶어도 볕살을 더 머금으면서 비로소 빛날 즈음 뽀로롱 멧새가 찾아와서 콕콕 쫍니다. 《英語の實力》은 일본사람이 엮어 일본사람한테 들려주는 영어 이야기입니다만, 우리나라는 이 책에 적힌 ‘일본 한자말’을 오늘날까지 널리 씁니다. 우리 스스로 ‘영어 익힘길’을 살피지 않은 탓에, 일본사람이 닦은 길을 쉽게 베끼거나 옮기거나 훔친 나날이 깁니다. 길잡이책(입문서)도 배움책(교과서)도 낱말책(사전)도 몽땅 일본 것을 따온 민낯을 《英語の實力》을 더듬더듬 펴면서 헤아립니다. ‘練習問題’를 보다가, 책끝에 붙은 ‘質問卷’을 넘기다가, 겉을 싼 다른 종이가 궁금합니다. 날아간 겉종이를 갈음한 흰종이를 벗기니, 이 흰종이는 ‘신체검사표’입니다. 이 책을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뒤에도 알뜰살뜰 읽은 분은 길잡이(교사)로 일했는지 모릅니다. ‘듣는힘·숨쉬는양·쥐는힘·나르기’ 같은 말씨가 반갑습니다. ‘싯쿠 반응’이란 뭘까요? ‘42○○년’으로 적었기에 4280년대 종이일 테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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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4.21.

숨은책 592


《이치고다 씨 이야기 3》

 오자와 마리 글·그림

 정효진 옮김

 학산문화사

 2011.1.7.



  만화책은 그저 만화책입니다. ‘학습만화’나 ‘철학만화’처럼 앞에 꾸밈말을 붙이면 만화책이 아닌 ‘만화책 시늉’입니다. 생각해 봐요. ‘학습그림책·철학그림책’이나 ‘학습동화책·철학동화책’이나 ‘학습시집·철학시집’이라 하면 이 책이 참말로 제빛을 고스란히 살리려는 줄거리나 이야기라고 할 만할까요, 아니면 ‘학습·철학·교육·인문’이란 허울을 씌워 장삿속을 숨긴 돈벌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치고다 씨 이야기》는 결이 몹시 고운 ‘순정만화’입니다. 돌이는 좀처럼 안 쳐다보는 만화요, 순이만 쳐다볼 만화인 듯 여기는 분이 많습니다만, 《이치고다 씨 이야기》에 나오는 돌이는 ‘손으로 옷을 짓기를 즐길 뿐 아니라, 인형옷도 짓고 인형소꿉도 하나하나 짓고 아이들한테 건네기를 즐깁’니다. 오늘날 순이는 치마도 두르고 바지도 뀁니다. 순이는 ‘치마를 벗고 바지를 입는 길(권리)’을 누리기까지 눈물겹게 싸웠습니다. 그러면 ‘치마돌이(치마 입는 사내)’는 어떨까요? 가시내만 두를 치마가 아닌, ‘누구나 입고프면 입을 치마요 바지’란 옷살림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순정만화여도(?)’ 누구나 읽을 만합니다. ‘만화는 애들만 보는 책’이 아닙니다. 삶을 그리는 숱한 손길 가운데 하나인 만화일 뿐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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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4.19.

숨은책 594


《미 군정기의 한글 운동사》

 이응호 엮음

 성청사

 1974.1.4.



  오늘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우리말을 하고 우리글을 씁니다만, 그리 멀잖은 지난날까지 우리글을 마음껏 못 썼습니다. 더구나 2000년을 맞이할 즈음까지 ‘한자를 안 섞으면 글이 아니다!’ 하고 외치는 글어른(원로작가)이 수두룩했어요. 총칼로 억누른 일본이 물러갔어도 ‘우리말 우리글’로 책을 내거나 새뜸(신문)을 엮거나 배움책(교과서)을 엮을 생각을 터럭만큼도 안 한 글바치(지식인·문인·기자)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이들은 무척 오래도록 새까맣게 한자를 드러내어 새뜸을 엮고 책을 썼지요. 열린배움터(대학교)에서 쓰는 글(논문)도 우리말·우리글로 쉽게 쓰면 안 받아주었는데, 이 흐름은 오늘날까지 그대로입니다. 《미 군정기의 한글 운동사》는 1945∼1948년 사이에 우리말을 도로 찾으려고 애쓴 사람들 땀방울하고 발자취를 갈무리하면서, 우리말을 굳이 도로 찾지 말고 ‘일본말·일본 한자말’을 마흔 해 가까이 써서 익숙하니까 그대로 쓰자고 외친 글바치 이야기까지 나란히 묶었습니다. 책이름은 “한글 운동사”이지만, “한글 투쟁사”라고 해야 옳구나 싶어요. 더구나 벼슬꾼(공무원)하고 길잡이(교사)도 으레 ‘그동안 익숙하게 쓴 일본말·일본 한자말을 왜 버리냐?’고 따졌다니, 스스로 수렁에 다시 갇힐 뻔했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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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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