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음식 빛깔있는책들 - 음식일반 214
김지순 지음 / 대원사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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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12.27.

인문책시렁 388


《제주도 음식》

 김지순 글

 안승일 사진

 대원사

 1998.5.15.



  《제주도 음식》은 제주섬에서 이어온 여러 밥살림을 단출히 들려줍니다. 이모저모 알차다고 여길 만하면서도 자꾸 갸우뚱했습니다. 제주섬뿐 아니라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요리’나 ‘조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밥’을 했습니다. 다 다른 삶터에서 다 다르게 살림을 가꾸면서 그때그때 알맞게 밥을 짓고 하고 차리고 나누면서 지냈습니다.


  아무래도 어떤 틀(학문적 성과)에 맞추려고 하면서 수수밥(서민음식)을 깎아내리는 얼거리로 흐를 수밖에 없었구나 싶어요. 임금밥(궁궐음식)이라면 이렇게 말하지 않겠지요. 하나부터 열까지 손수 심고 거두고 캐고 손질한 다음에, 다시 하나부터 열까지 손수 지지고 볶고 익히고 끓이고 삶는데, 이렇게 하고서 다시 하나부터 열까지 손수 차릴 뿐 아니라, 손수 치우고 건사하는 기나긴 부엌살림이자 밥살림입니다.


  밥살림은 “먹고 끝!”이 아닙니다. 밥차림은 “맛밥 찾기!”가 아닙니다. 밥살림이란,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터전에서 저마다 다른 들숲바다를 누비고 누리면서 스스로 찾아내고 알아내어 지은 오랜 슬기입니다.


  낮을 수도 높을 수도 없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손수 하는데 무슨 멋을 부리겠어요. 아이들이 기다리는데 무슨 멋을 내겠어요. 그렇다고 서두르지 않는 밥살림입니다. 다같이 챙기고 다함께 차려서 나란히 누리면서 오순도순 즐거운 밥살림입니다. 이런 얼거리로 ‘제주밥’을 바라보려고 한다면, 여는말부터 맺음말까지 확 다르리라 느낍니다.


  누가 일하는 사람인지 바라볼 노릇입니다. 일하는 사람이 어떻게 살림을 지었는지 헤아릴 노릇입니다. ‘제주음식의 인문학적 접근’이 아니라 ‘제주사람으로서 살림을 지은 나날’로 스며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ㅅㄴㄹ


제주 여인들은 식량을 확보하는 데 급급하다 보니 ‘요리’를 할 여유가 없었다. 요리는커녕 식품을 조리하고 저장하는 일도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식량이 귀하다 보니 아끼고 아껴서 꼭 먹을 만큼씩만 만들었고, 일이 많다 보니 시간이 없어 되도록 간단하고 빠르게 만들어 먹는 음식을 찾게 되었다. (21쪽)


생활 정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하루 세끼만 먹었고 간식은 거의 없었다. 이것은 절약하는 생활 습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중노동을 하는 사람도 간식은 먹지 않았다 …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제주도에서는 음식이 다양하게 개발되거나 발전하지 못하였다. (24쪽)


제주 음식에는 고춧가루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고추장도 귀하여 돼지고기를 찍어 먹을 때는 간장, 물, 식초, 파, 마늘, 깨소금을 섞고 고춧가루를 약간 뿌린다. (27쪽)


지난날 제주도의 농촌에서는 여름철 밭일을 나갈 때 재료와 생수를 준비하여 갔다가 즉석에서 냉국을 만들어 먹곤 하였다. (46쪽)


지난날에 비해 이제는 제주도에서도 식품의 종류나 조리 방법이 다양해지고 육지에 뒤지지 않을 만큼 식생활의 질도 많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식생활의 개선으로 인해 제주도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일부 전통 향토 음식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122쪽)


+


《제주도 음식》(김지순, 대원사, 1998)


식량이 귀하다 보니 아끼고 아껴서 꼭 먹을 만큼씩만 만들었고

→ 밥이 적다 보니 아끼고 아껴서 꼭 먹을 만큼씩만 했고

21쪽


생활 정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하루 세끼만 먹었고 간식은 거의 없었다

→ 살림결에 따라 적잖이 다르지만 다들 하루 세끼만 먹고 샛밥은 거의 없었다

24쪽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제주도에서는 음식이 다양하게 개발되거나 발전하지 못하였다

→ 이 탓에 제주섬에서는 온갖 먹을거리를 짓거나 북돋우지 못하였다

24쪽


재료와 생수를 준비하여 갔다가 즉석에서 냉국을 만들어 먹곤 하였다

→ 밑감과 샘물을 챙겨서 바로 찬국을 내어 먹곤 하였다

→ 밑거리와 물을 챙겨서 곧장 찬국을 담가 먹곤 하였다

46쪽


지난날에 비해 이제는 제주도에서도 식품의 종류나 조리 방법이 다양해지고 육지에 뒤지지 않을 만큼 식생활의 질도 많이 향상되었다

→ 지난날에 대면 이제는 제주섬에서도 밥갈래나 밥차림이 늘고 뭍에 뒤지지 않을 만큼 밥빛도 널리 꽃피운다

12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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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스미는 - 영미 작가들이 펼치는 산문의 향연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외 지음, 강경이.박지홍 엮음, 강경이 옮김 / 봄날의책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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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12.24.

인문책시렁 387


《천천히 스미는》

 G.K.체스터튼 외

 강경이 옮김

 봄날의책

 2016.9.20.



  요즈음에는 나래터(우체국)로 글월을 부치러 드나드는 사람을 아예 볼 수 없다고 느낍니다. 제가 미처 못 본 사이에 누가 글월통(우체통)에 살며시 글월을 넣을 수 있을 테지만, 요 몇 해 앞서부터 나래터 일꾼은 ‘우표’나 ‘엽서’ 같은 이름을 아예 못 알아듣습니다. 사서 붙이려는 사람도 아예 사라지다시피 했고, 나래터 스스로 나래(우표)가 새로 나온다고 알리지 않을 뿐더러, 나래터 일꾼부터 글월을 손으로 써서 부치지 않는 탓입니다.


  앞으로 나래터로 찾아가서 글월을 손수 써서 부치는 아이나 어른이 한 사람씩 늘 수 있을까요? 누리글월이나 손전화로 톡톡 누리면 이내 날아가는 판이니, 애써 품을 들이고 돈을 들여서 여러 날 걸리는 손글월을 띄울 까닭이 없다고 여길 만한 나날입니다. 이리하여 구태여 책을 왜 읽느냐고 핀잔할 만합니다. 손전화를 켜기만 해도 ‘책 읽어 주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책이 아니어도 ‘들을거리’에 ‘볼거리’가 넘칩니다.


  이레쯤 앞서 큰아이하고 읍내 나래터에 들르고서 저잣마실을 하려는 길에 매 두 마리를 보았습니다. 큰아이가 먼저 알아보았습니다. “아버지 바로 위에 매!” “어, 이렇게 가까이에서 나네!” 우리는 고개를 꺾은 채 걷습니다. 해가 날개를 비치며 반짝이는 모습까지 또렷합니다. 부드러이 소리를 죽이면서 맴도는 매 둘인데, 이러다가 사냥감이 보이면 곧바로 매섭게 내리꽂을 테지요. 하늘을 나는 매를 으레 지켜보는 사람이라면 매가 왜 ‘매’인지 굳이 말밑풀이(어원분석)를 안 들려주어도 확 알아차리리라 봅니다.


  《천천히 스미는》을 2016년에 처음 읽었고, 2022년에 다시 읽었고, 2025년을 앞두고 새삼스레 읽어 봅니다. 이미 다른 책에 실린 글이라 여러모로 익숙합니다. 엮은이도 이 대목을 잘 압니다. 다른 책에 벌써 실린 글이지만 애써 하나로 묶었습니다. 책이름으로 붙였듯이 천천히 스미도록 천천히 읽어 보기를 바라는 마음일 테지요.


  요새는 무슨 일만 터지면 손전화부터 빼앗고 보는 듯합니다. 손전화에 웬만한 말과 자국이 고스란하거든요. 그만큼 종이를 멀리하고, 손으로 안 짓고, 마음하고 마음이 안 만나며, 살림을 짓는 길을 우리 스스로 팽개치거나 끊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나라에서도 나래터를 자주 찾아가서 손으로 글월을 부칩니다. 우리 집 두 아이하고 날마다 하루글을 함께 씁니다. 나눔글(교환일기)을 꽤 오래도록 썼고, 앞으로도 두 아이하고 나눔글을 길이길이 쓸 참입니다.


  책은 빨리 읽어야 하지 않듯, 살림을 빨리 익히거나 빨리 여미지 않습니다. 찬찬히 여미기에 살림입니다. 찬찬히 새기기에 책입니다. 느긋이 품기에 사랑입니다. 넉넉히 나누기에 빛이요 생각이며 웃음꽃에 노래입니다.


ㅅㄴㄹ


제비보다 먼저, 수선화보다 먼저, 눈물꽃보다 그다지 늦지 않게 두꺼비는 다가오는 봄에 나름대로 인사를 한다. (94쪽/조지 오웰)


키질하는 날개 하나하나에 바람이 다정하게 엉긴다. 기러기 떼가 먼 하늘의 희미한 얼룩이 될 무렵 마지막 울음소리가, 여름을 보내는 영결 나팔소리가 들린다. (108쪽/알도 레오폴드)


다람쥐는 다른 나무로 뛰어갔다. 매는 빙빙 돌며 점점 멀어져 새로운 둥지에 자리를 잡았지만 벌목꾼은 그곳에도 토끼질을 할 준비를 하고 있다. (112쪽/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


《천천히 스미는》(G.K.체스터튼 외/강경이 옮김, 봄날의책, 2016)


2년 전 그날 밤 내 불면이 시작되었다고 여긴다

→ 이태 앞서 그날 밤부터 잠을 못 잤다

26


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 동네의 저녁이다

→ 그러나 나는 이 마을 저녁을 말하려 한다

34


내 온전한 마음이 방황하거나 정지된 사이에 분명 매우 긴 시간이 흘렀다

→ 온마음이 헤매거나 멈추고서 한참 지나갔다

→ 오롯하던 마음이 맴돌거나 멈춘 지 한참 되었다

55


숨 돌릴 휴지기가 어김없이 찾아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불행한 젊은이에게 삶이란 불가능해 보인다

→ 숨돌릴 틈이 어김없이 찾아오는 줄 깨닫지 못하는 슬픈 젊은이는 삶이 괴롭다

→ 숨돌릴 틈이 어김없이 찾아오는 줄 깨닫지 못하는 딱한 젊은이는 삶이 지친다

85


가끔씩 하늘이 비둘기떼로 변하는 듯 보이곤 했다

→ 가끔 하늘이 비둘기떼로 바뀌는 듯하다

→ 가끔 하늘이 비둘기떼처럼 보인다

91


생각이 효과가 있으려면 생각을 발사할 수 있어야 한다

→ 생각이 빛을 내려면 생각이 솟구칠 수 있어야 한다

→ 생각이 보람 있으려면 생각이 솟아날 수 있어야 한다

150


책은 세 부류로 편리하게 나눌 수 있다

→ 책은 셋으로 쉽게 나눌 수 있다

→ 책은 쉽게 세 갈래로 볼 수 있다

→ 책은 가볍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231


어디를 가든 모두 변했는데도 결코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 어디를 가든 모두 바뀌는데 끝내 안 바뀌는 사람은 어떻게 있는가

→ 어디를 가든 모두 달라지는데 왜 어떤 사람은 끝내 안 달라지는가

266


내가 처음 그녀에 대해 들은 것은 템블러 산맥에서였다

→ 나는 템블러 멧줄기에서 그분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28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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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터 세상을 바꿀 순 없을까? -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강수돌의 생각
강수돌 지음 / 이상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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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12.20.

인문책시렁 386


《나부터 세상을 바꿀 순 없을까?》

 강수돌

 이상북스

 2014.4.2.



  서울에서 오래 일자리를 잇다가 늘그막에 시골로 터전을 옮기는 분이 제법 있습니다. 끝삶을 추스르려고 떠난 새길일 테고, 이분들이 시골에서 짓는 집이며 거느리는 밭은 작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다들 비슷한 차림새로 밭일을 합니다. 맨손에 맨발로 흙을 만지고 디디면서 뭇풀을 두루 헤아리거나 품는 분은 드뭅니다.


  《나부터 세상을 바꿀 순 없을까?》를 읽었습니다. 여러모로 뜻깊다고 여길 줄거리가 흐르되, 이 책을 읽을 사람은 시골사람도 흙지기도 아닌 서울사람입니다. 서울에서도 글물이 제법 든 사람이 아니고서는 읽기 어렵습니다.


  강수돌 님은 ‘나부터’를 붙인 이름을 즐겨쓰기는 하는데, “나부터 혁명”은 말을 하지만 “나부터 바꾸기”하고는 멀어 보여요. 곧잘 어린이책을 쓰기도 하지만, 어린이한테 꽤 어렵구나 싶은 말을 좀처럼 못 바꿉니다. 아니, 어른끼리 주고받는 말글부터 안 쉽기 때문에, 어린이한테 들려주는 말글도 안 쉽게 마련입니다.


  흙에는 ‘산흙’하고 ‘죽은흙’이 있어요. ‘산흙’은 까무잡잡합니다. ‘산흙 = 살아서 숨쉬는 흙 = 숲흙’입니다. ‘죽은흙 = 누르스름한 흙 = 비료·비닐·농약뿐 아니라 풀뽑기에 시달린 흙’입니다. 풀을 뽑아야 남새가 굵고 크게 자란다고 여기는데, 굵고 크게 자란 남새를 멧돼지나 고라니가 뜯어먹으면 다들 몹시 싫어합니다. 그렇다면 생각해야 합니다. 둘레 다른 풀이 고루 자라면 멧돼지하고 고라니가 굳이 ‘사람이 심어서 굵고 크게 키운 남새’만 골라서 뜯으려고 할까요?


  우리는 누구나 풀을 먹습니다. ‘풀을 먹고 자란 짐승’을 고기로 삼아서 ‘고기라는 몸을 이룬 짐승’도 바탕은 풀입니다. 사람도 소도 돼지도 모름지기 풀빛인 숨결입니다. 들풀과 나무만 푸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풀 가운데 사람이 굳이 품을 들여서 심어서 가꾸면 ‘남새’이고, 들숲에서 스스로 돋을 적에는 ‘나물’인데, 나물로 삼기 앞서는 그저 풀이고, 풀 곁에는 늘 ‘나무’가 자라요. 여기에서 사람은 남새와 나물과 나무 곁에 있는 ‘나’입니다.


  강수돌 님이 글을 쓸 적에 으레 ‘나부터’를 앞장세우곤 하지만, 막상 ‘나’가 무엇인지부터 읽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를 모르거나 안 찾아보면서 ‘나부터’만 외친다면, 줄거리는 뜻깊을 수 있지만, 어쩐지 빈하늘에 울리는 북소리 같습니다. 여름하늘에는 제비에 꾀꼬리에 뜸부기에 소쩍새에 범지빠귀가 노래하고, 겨울하늘에는 오리에 기러기에 고니에 두루미에 매가 노래합니다. 참새에 박새에 딱새에 동박새에 까막까치에 할미새에 물까치는 한 해 내내 노래하고요.


  사람으로서 저마다 숲과 들과 바다 곁에서 어떤 숨빛으로 사이에 있는지 조금 더 느슨히 작게 맨손에 맨발로 흙을 만지면서 말씨와 글씨를 길어올릴 수 있기를 빕니다. ‘고려대 명예교수’ 같은 거추장스러운 허울은 이제 벗고서 ‘아저씨’나 ‘할배’로 설 수 있기를 빕니다.


ㅅㄴㄹ


그런데 결국 이 모든 게 미끼에 불과했던가? 사람들은 그냥 낚이고 만 것인가? (19쪽)


그 노동자나 교사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도 중요하다. 따라서 경제민주화가 완성되려면 보통 사람들의 철학이 중요하다. (50쪽)


최근 30대나 40대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받는 스트레스가 야근이나 휴일근무 등 초과근로, 그리고 다음은 상사의 잔소리, 또 그 다음은 부하의 비협조나 무시당하는 느낌 등이라고 조사되기도 했다. (66쪽)


셋째, 하우스 푸어 외에도 워킹 푸어나 에듀 푸어도 증가하는 추세다. (82쪽)


우리는 양심을 속인다. 진정한 우리의 느낌을 속인다. 그래야 생존할 것 같으니까. 그렇게 양심을 속이면서 우리가 하는 것은 강자와의 동일시다. (287쪽)


경제성장에 중독되어 돈벌이에 매진하는 이들은 사람과 자연의 건강을 생각하지 않는다. (314쪽)


사실 4대강 사업이란 처음부터 대국민 사기극이란 말이 어울리는 일이었다. (364쪽)


《나부터 세상을 바꿀 순 없을까?》(강수돌, 이상북스, 2014)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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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춘 교수의 민주주의 특강 - 보수와 진보 공동의 정치 철학 철수와영희 생각의 근육 2
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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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12.14.

인문책시렁 346


《손석춘 교수의 민주주의 특강》

 손석춘

 철수와영희

 2024.1.1.



  나라에서는 미리맞기(백신)가 사람을 살린다고 외칩니다만, 미리맞기로 죽은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몸앓이로 죽거나, 치여죽거나, 싸움터에서 죽은 여러 사람은 몇인지 밝히면서도, 정작 미리맞기 탓에 죽는 사람이 얼마인지 밝히는 나라는 없습니다. 나라에서는 배움터(학교)로 가르친다고 합니다만, 막상 배우고 가르치는 터전이기보다는 끈(학벌)을 거머쥐는 길목으로 여긴 지 오래입니다. 살림길과 사랑을 나누고 어깨동무하는 발판인 배움터하고는 한참 멀지만, 이 얼거리를 바꾸거나 바로잡으려고 힘을 기울이지는 않습니다.


  이른바 들넋(민주주의)은 ‘이야기 + 손잡기(대화·타협)’라고 일컫지만, 정작 이야기를 차분히 하고서 손을 잡으려고 하는 무리는 드뭅니다. 다들 저희 말만 늘어놓거나 목소리를 높일 뿐입니다. 겨우 이야기를 마쳤어도 손을 잡고서 일하지 않아요. 싸우기만 합니다. 그런데 얼뜬 무리만 이야기 없고 손잡기 없는 결이 아니에요. ‘민주’라는 이름을 건 무리도 이야기가 없을 뿐 아니라 손을 안 잡는데다가, 헐뜯는 막말을 아무렇지 않게 합니다.


  《손석춘 교수의 민주주의 특강》(손석춘, 철수와영희, 2024)을 읽었습니다. 2024년 첫머리에 읽고서 2025년 첫머리를 앞둡니다. ‘민주(民 + 主)’라는 한자는 ‘종(노예) + 기둥’이라는 얼개입니다. ‘백성(民)’이란 “이름없는 사람”을 가리키고 ‘종’을 나타냅니다. “종이 기둥으로 서는 틀”이란, 이름없는 종이 임금이 시키는 대로 바닥에서 받치는 얼거리일 수 있습니다. 아직 이 얼거리에서 못 벗어나는 우리나라요 푸른별입니다. ‘종·백성·국민’이 ‘기둥’이라고 떠들기는 하되, 사람들(종·백성·국민)은 기둥으로만 세워 놓고서 모든 나랏일을 임금(권력자)·벼슬아치가 거머쥐고서 뒤흔드는 얼거리이거든요.


  2024년 12월 첫머리에 고삐(계엄)를 틀어쥐려던 우두머리가 있고, 이 우두머리는 곧 끌려내려올 텐데, 나라에 나라지기가 없더라도 나라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랏일은 나라지기가 안 하거든요. ‘기둥’으로 떠받치는 몫인 “우리 스스로인 종(백성)”이 일합니다. 더 돌아본다면 우두머리뿐 아니라 벼슬아치(국회의원·도지사)이 몽땅 없어도 나라는 안 흔들리고 안 멈추고 안 무너집니다. 기둥 자리에 있는 우리 스스로 일하고 움직이기에 멀쩡하지요.


  들불(민주)을 일으킨 사람은 바로 ‘종’인 “우리 스스로”입니다. 몇몇 길잡이가 너울(민주)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민주화운동 유공자”란 따로 없습니다. 모든 종(사람)이 꽃보람입니다.


  숲은 온갖 나무하고 풀과 어우러지기에 온갖 짐승과 새와 벌레에 사람까지 어우릅니다. 우리가 나아갈 곳은 바로 ‘숲’입니다. 위아래로 가르는 틀이 아닌, 몇몇 벼슬아치에 우두머리가 일삯을 엄청나게 받는 틀이 아닌, 고르게 일하고 고르게 나누는 터전으로 나아갈 노릇입니다. 조금 더 땀흘린 이한테도, 몸이 고단해서 쉬는 이한테도, 두루 제몫을 누릴 빛줄기를 열어야 참다이 풀꽃나라(민주주의)입니다.


  이 나라에 돈이 모자라지 않습니다. 돈을 빼돌리는 막삽질이 판칠 뿐이고, 총칼(전쟁무기)에 너무 쏟아부을 뿐이고, 검은돈을 자꾸 꿍꿍이로 일으키는 임금·벼슬아치가 있을 뿐입니다. 이제 이 모든 굴레를 털고서 아름나라로 바로세우는 길에 뜻을 모아서 한지붕을 이루어야지 싶습니다. 함께살기(민주)를 헤아리고, 꽃누리(민주)를 돌아보고, 참길(민주)을 바라볼 적에, 상냥하고 올바르게 고루눈을 뜨면서 두루넋을 펼치는 숲하나(민주)로 설 만하다고 봅니다.


ㅅㄴㄹ


상공업 규모가 커지자 그들이 내는 세금도 늘어났습니다. 그럼에도 정치적 발언권은 신분제에 토대를 둔 세력(왕족, 귀조그 성직자 계급)이 독점하고 있는 현실을 상공인들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91쪽)


군부 독재에 맞서 싸운 민주화운동의 주체는 대학생만이 아니라 청년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빈민운동 들이 있었는데 386이란 말은 대학 학번 중심입니다. 1970년대는 물론 80년대 초까지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았던 시점에 주목하면 더 적절하지 않습니다. (156쪽)


유진오의 증언처럼 공산주의자들이 쓴다고 해서 그 “좋은 단어”를 쓰지 않는다면 그 말을 빼앗기게 됩니다. 단순히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에 담긴 민주주의 철학마저 잃어버리고 말지요. (169쪽)


첫째, 자신의 언어에 대한 성찰입니다. 현대인이 사용하는 언어 대부분이 최소한의 의미만 남거나 그조차 상실한 언어로 소통되고 있다는 진단이 언어 철학, 언론학, 정치 철학에서 두루 제기되고 있습니다. (214쪽)


+


해괴한 사건이 종종 벌어집니다

→ 끔찍한 일이 가끔 벌어집니다

→ 무서운 일이 곧잘 벌어집니다

4쪽


누군가를 잘 모르면서도 안다고 생각할 때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 누구를 모르면서도 안다고 여길 때 매운맛을 볼 수 있습니다

→ 누구를 모르면서도 안다고 여길 때 쓴맛을 볼 수 있습니다

13쪽


만약 누군가가 1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 누가 첫대목을 따르지 않는다면

→ 누가 첫자락에 고개를 안 끄덕인다면

→ 누가 첫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19쪽


각 조직에서 최고 의사 결정권은 아래로부터 올라오지 않습니다

→ 모둠마다 마지막에 다스리는 사람은 밑에서 올라오지 않습니다

→ 모임마다 끝에서 쥐는 쪽은 밑에서 올라오지 않습니다

→ 두레마다 갈피를 잡을 적에 밑에서 올라오지 않습니다

→ 자리마다 판가름을 할 적에 밑에서 올라오지 않습니다

22쪽


그런데 MZ세대에 대한 논의도 좌절 이야기가 지배적입니다

→ 그런데 젊은이를 놓고도 미끄덩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 그런데 젊은꽃을 두고도 넘어진 이야기가 넘칩니다

→ 그런데 젊은때를 다루며 쓴맛 이야기뿐입니다

29쪽


현대 한국에서도 ‘집성촌(集姓村)’을 찾아볼 수 있지요

→ 오늘날에도 한마을을 찾아볼 수 있지요

→ 요즈음에도 씨집마을을 찾아볼 수 있지요

38쪽


장송곡을 부르는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려면

→ 눈물노래를 부르는 때를 제대로 알려면

→ 가심노래를 부르는 자리를 잘 보려면

53쪽


상공업 규모가 커지자 그들이 내는 세금도 늘어났습니다

→ 크게 짓고팔기를 하자 낛도 늘어납니다

→ 널리 팔고짓기를 하자 나랏돈도 늘어납니다

91쪽


혁명의 유혈 사태가 있었지요

→ 너울치며 다치기도 했지요

→ 들물결에 죽기도 했지요

94쪽


다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직시하자는 말입니다

→ 다만 있는 그대로 보자는 말입니다

→ 다만 바로보자는 말입니다

144쪽


그 “좋은 단어”를 쓰지 않는다면 그 말을 빼앗기게 됩니다. 단순히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에 담긴 민주주의 철학마저 잃어버리고 말지요

→ 이 “고운 말”을 쓰지 않는다면 이 말을 빼앗깁니다. 그저 빼앗기지 않고 말에 담긴 들넋까지 잃어버리고 말지요

→ 이 “알뜰한 말”을 쓰지 않는다면 이 말을 빼앗겨요. 그냥 빼앗기지 않고 말에 담긴 사람빛까지 잃어버리고 말지요

169쪽


백번 양보해서 그래도 국민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 크게 봐주어 그래도 들꽃을 붙드는 사람들이 있다면

→ 오지랖으로 그래도 들풀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172쪽


1990년대 들어 뚜렷하게 퇴조했습니다

→ 1990해무렵 들어 뚜렷하게 무너집니다

→ 1990해무렵 들어 뚜렷하게 물러갑니다

17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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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주다 - 딸을 키우며 세상이 외면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다
우에마 요코 지음, 이정민 옮김 / 리드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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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12.12.

인문책시렁 336


《바다를 주다》

 우에마 요코

 이정민 옮김

 리드비

 2022.12.26.



  우리나라는 작으면서도 안 작습니다. 꽤 작기 때문에 이 고장에서 저 고장으로 가는 길이 그리 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들숲메가 제법 깊고 넓은 터라, 여러 고장을 오가는 길이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작으면서 작지 않은 터전이라서, 이 고장에서 불거지는 잘잘못이 쉽게 저 고장으로 번져요. 이른바 더럼치(위해시설)을 어느 끝고장에 몰래 때려박는다고 하더라도, 온갖 저지레가 둘레로 번져서 온나라를 휩씁니다.


  사람이 무척 많이 몰린 고장으로 서울·부산이 있고, 대구·광주·대전이 있는데, 이렇게 큰고장에 사는 분치고 ‘군대 피해’가 무엇인지 뼛속으로는 거의 모릅니다. 모를 수밖에 없어요. 큰고장 한복판이나 기스락에 커다란 싸움터(군부대)가 있지 않거든요. 마실을 다니려고 타는 날개하고, 사람을 죽이는 데에 쓰는 날개가 하늘을 누빌 적에 내는 소리는 아주 다릅니다.


  인천은 서울 곁에 있는 큰고장인데, 서울에 안 놓는 갖은 더럼치(위해시설)를 인천에 몰아부었어요. 서울을 버티고 먹여살리는 밑바닥인 인천입니다. 이런 대목도 서울사람은 하나도 알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큰고장 사람들은 온나라 시골과 들숲바다가 큰고장을 떠받치는 밑바닥인 줄 아예 못 느끼기 일쑤입니다.


  《바다를 주다》는 류우큐우(오키나와)하고 도쿄 사이에서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어울리고 만나서 마을을 이루는가 하는 대목을 짚는 줄거리입니다. 마음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무너지고, 마음을 잃은 사람은 어떻게 앓는지 가만히 짚기도 합니다.


  작지만 작지 않은 이 나라에서 서로서로 자주 오갈 수 있기를 바라요. 다만, 재빠르게 달리는 쇳덩이를 몰기보다는 걷거나 두바퀴를 느슨히 달리거나 버스를 타고서 빙그르르 돌면서 오가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로 만나야 합니다. 자주 만나서 얼굴을 보면서 저마다 사투리를 그대로 들려주고 듣는 자리를 열어야 합니다. 전라사람하고 경상사람도 자주 만날 일일 뿐 아니라, 서울사람하고 시골사람도 자주 만날 노릇이에요. 서로 찾아갈 일입니다. 새하늬마높이 오순도순 도란도란 마주할 일입니다.


  이를테면 서울시에서 일한 사람이 전남 고흥군으로 옮겨서 일해 보아야 합니다. 부산시에서 일한 사람이 충북 보은군으로 옮겨서 일해 보아야 합니다. 전북 고창군에서 일한 사람이 대구시로 옮겨서 일해 보아야 합니다. 껑충껑충 뛰어서 휙휙 넘나들며 여러 해씩 일하며 깃들 때에 이 나라가 비로소 바뀔 만하다고 느껴요. 그래서 국회의원 같은 자리는 이다음에 반드시 다른 시·도·군에서 나와야 하도록, 같은 고장에서는 다시 나올 수 없도록 돌려야 합니다. 한 곳에 뿌리를 오래 내리는 벼슬아치 가운데 안 썩은 놈이 있는지 볼 노릇이에요.


  바다는 늘 흐릅니다. 바다는 고이면 썩어문드러집니다. 바다는 언제나 새롭게 흐르면서 온누리를 고루 감쌉니다. 우리도 저마다 사람으로서 이웃을 만나고 동무로 사귀는 나날을 누릴 일이라고 봅니다. 자주 만나서 자주 얘기해 봐요. 이제는 ‘서울나라(서울에 쏠린 바보나라)’가 아닌 ‘우리나라(우리가 서로 다른 줄 알아보면서 어울리는 나라)’로 거듭나야 할 때입니다.


ㅅㄴㄹ


엄마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할아버지와 떨어지는 것은 쓸쓸했지만 할머니와 함께 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진심으로 기뻤다. 야호, 나는 이제 벽장에 숨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이제 할머니가 버럭 화내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 (40쪽)


지형이 바뀔 만큼 폭탄이 쏟아지는 것이 전쟁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하나둘씩 죽어 가는 것이 전쟁이라는 것을, 아이와 자신은 늘 함께 있을 거라고 말한 뒤 죽은 엄마가 있는 것이 전쟁이라는 것을, 굶주림과 공포로 인해 생리가 멎는 것이 전쟁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할머니는 그 모든 것을 경험한 뒤 다시 한번 그곳에서 땅을 일구어 살아왔다는 것을 딸에게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66쪽)


“아무리 아이와의 시간을 쌓아 올려도, 잘 알지도 못하는 윗사람이 저와 아이의 시간에 끼어들어요.” (150쪽)


남편이 딸을 성폭행해 왔다는 것을 모르는 어머니는 딸이 왜 정신과에 가는지 알지 못한다. (193쪽)


도쿄에서 살았을 때 놀란 것 중 하나는 군 비행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237쪽)



#上間陽子 #海をあげる


+


《바다를 주다》(우에마 요코/이정민 옮김, 리드비, 2022)


오키나와의 향토 음식 중

→ 오키나와 고을밥에서

→ 오키나와 오래밥에서

9쪽


일주일에 한 번은 밀폐 용기에 음식을 담아 오는

→ 이레마다 빗장그릇에 밥을 담아 오는

→ 이레마다 잠금그릇에 밥을 담아 오는

9쪽


세 사람의 관계라는 게 있잖아

→ 세 사람 사이가 있잖아

→ 세 사람 고리가 있잖아

14쪽


사람의 선의를 우려내는 건 무슨 억하심정에서 그러는 건지

→ 고마운 사람을 우려내는데 뭐가 미워서 그러는지

→ 따스한 사람을 우려내는데 뭐가 달갑잖아 그러는지

15쪽


그녀는 내 질문에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 그이한테 묻지만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 그이는 내가 물어도 말이 없다

16쪽


손쓸 방도가 없다는 것이었다

→ 손쓸 길이 없단다

→ 손을 못 쓴단다

41쪽


시한부 선고가 떨어지면

→ 끝장이 떨어지면

→ 마감이 떨어지면

42쪽


캄캄한 가운데 할아버지가

→ 캄캄한데 할아버지가

42쪽


오션 뷰네 하고 생각했다

→ 바다트임이라고 생각했다

→ 바닷빛이라고 생각했다

44쪽


벌써 합류했을 거야

→ 벌써 붙었겠지

→ 벌써 왔겠지

→ 벌써 들어왔겠지

46쪽


등원한 아기는 무조건 그 선생님에게 마사지를 받는다

→ 아침길 아기는 바로 이분이 주물러 준다

→ 아침에 온 아기는 늘 이분이 다독여 준다 

52쪽


혈액검사에 협조한 사람들

→ 피살핌을 해준 사람들

→ 피보기를 도운 사람들

53쪽


100데시벨의 폭음을 내며 빈번하게 날아들고 있다

→ 100시끌을 내며 자주 날아든다

→ 100소리로 시끄럽게 또 날아든다

55쪽


근처에 사는 구십 대 할머니를 소개해 주었다

→ 가까이 사는 아흔줄 할머니를 알려주었다

→ 둘레에 사는 아흔 남짓 할머니를 말하였다

57쪽


장녀인 나한테

→ 맏딸인 나한테

→ 맏이인 나한테

60쪽


푸른 바다를 보고 친구는 환성을 질렀다

→ 파란바다를 보고 동무는 소리를 질렀다

→ 파란바다를 본 동무는 외쳤다

→ 파란바다를 본 동무는 기뻐했다

61쪽


지형이 바뀔 만큼 폭탄이 쏟아지는 것이 전쟁이라는 것을

→ 땅이 바뀔 만큼 벼락이 쏟아지는 싸움인 줄을

→ 땅이 바뀔 만큼 불지르는 싸움인 줄을

66쪽


아이들이 하나둘씩 죽어 가는 것이 전쟁이라는 것을

→ 아이들이 하나둘 죽어 가는 싸움인 줄을

→ 아이들이 하나씩 둘씩 죽어 가는 불바다인 줄을

66쪽


어떤 호스트한테 투자했는데

→ 어떤 꽃한테 돈을 쏟았는데

→ 어떤 지기한테 돈을 썼는데

94쪽


세뱃돈도 제가 줬어요

→ 절값도 제가 줬어요

→ 절돈도 제가 줬어요

98쪽


구급차에 실려 가서 입원했어요. 의식불명이었죠

→ 살림이에 실려 가서 들어갔어요. 넋을 잃었죠

99쪽


가끔 구토를 한다

→ 가끔 게운다

→ 가끔 멀미를 한다

115쪽


공휴일이었는데 그날 출근을 하게 된 친구와

→ 쉬는날인데 그날 나간 동무와

→ 쉬어야 하는 날 나온 동무와

120쪽


두 개의 볼에

→ 오목이 둘에

→ 우묵이 둘에

120쪽


아무런 답신도 오지 않았다

→ 아무런 대꾸도 없다

→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 아무런 말도 없다

123쪽


모임을 발족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모임을 하는 줄 알았다

→ 모임을 차린 줄 알았다

→ 모임을 연 줄 알았다

127쪽


한기가 오싹오싹 스며든다니까

→ 오싹오싹하다니까

→ 찬바람이 스며든다니까

→ 겨울바람이 스며든다니까

128쪽


동트기 전의 청사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 동트기 앞서 나라터는 쥐죽은 듯했다

→ 동트기 앞서 나라일터는 조용했다

131쪽


악의가 난무하는 가운데에서도

→ 덫이 들썩거리는데도

→ 뒷셈이 넘실거리는데도

→ 나쁜뜻이 나풀거리는데도

→ 꿍꿍이가 나부끼는데도

131쪽


봉투 위에 돈을 올려놓고

→ 자루에 돈을 올려놓고

→ 꾸러미레 돈을 올려놓고

134쪽


월요일은 내가 아이들을 하원시키는 날이다

→ 달날은 내가 아이를 데려온다

→ 달날에는 내가 아이를 데려온다

143족


여러 차례 대화를 하고 가두서명을 벌여

→ 여러 자리서 얘기하고 길이름을 받아

→ 꾸준히 이야기하고 너울이름을 받아

→ 잇달아 만나고 물결이름을 받아

146쪽


나도 중재에 나서곤 했다

→ 나도 거들곤 했다

→ 나도 다독이곤 했다

147쪽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 둥그렇게 그리며

→ 동그라미를 그리며

151쪽


이번에는 여러분이 상급반이 됩니다

→ 이제 여러분이 윗칸입니다

→ 이제 여러분이 올라갑니다

→ 이제 여러분이 언니입니다

152쪽


플라워 데모가 열리는 곳 근처에서

→ 꽃너울이 열리는 곳 둘레에서

→ 꽃물결을 여는 곳 가까이에서

171쪽


유흥업계에서 일하는

→ 노닥술집에서 일하는

→ 질펀가게에서 일하는

179쪽


그 업소에서 고정으로 일하게 되었다

→ 그 가게에서 늘 일한다

→ 그곳에서 붙박이로 일한다

180쪽


옛날로 돌아가서 그 트리거를 정리했다

→ 옛날로 돌아가서 불씨를 치운다

→ 옛날로 돌아가서 밑싹을 자른다

185쪽


한 번 통원했을 뿐인데

→ 하루 다녔을 뿐인데

→ 한 걸음 했을 뿐인데

187쪽


1인실에서 다인실로 이동했다

→ 혼칸에서 모둠칸으로 갔다

→ 홑칸에서 두레칸으로 옮겼다

→ 홀칸에서 여럿칸으로 갔다

189쪽


팔십 대에 전신마취를 해도 괜찮냐고 물었다

→ 여든 줄에 온재움을 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 여든에 온몸재움을 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203쪽


장수 집안이라 그건 모르는 거야

→ 오래 집안이라 몰라

→ 오래사는 집안이라 몰라

204쪽


자는 동안 오줌을 지리는 야뇨가 반복되고 있어

→ 자다가 오줌을 자꾸 지려

→ 밤오줌이 자꾸 나와

223쪽


농로를 발견해 도중에 차를 세우고

→ 논두렁을 보자 부릉이를 세우고

→ 들길을 보자 수레를 세우고

226쪽


운을 떼자, 이렇게 주문했다

→ 말을 떼자 이렇게 시킨다

232쪽


기지 근처 폭음의 마을에 살고 있다

→ 싸움터 옆 시끄런 마을에 산다

→ 싸움마당 옆 꽝꽝 마을에 산다

24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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