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한 사람들을 위한 지구별 가이드 - 자신의 민감함을 감추지 않고 세상을 위한 선물로 사용하는 법
멜 콜린스 지음, 이강혜 옮김 / 샨티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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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12.12.

인문책시렁 267


《민감한 사람들을 위한 지구별 가이드》

 멜 콜린스

 이강혜 옮김

 샨티

 2021.4.22.



  《민감한 사람들을 위한 지구별 가이드》(멜 콜린스/이강혜 옮김, 샨티, 2021)를 읽었습니다. 이 같은 책이 나오면 반갑습니다. 하나하나 느끼는 이웃이 있구나 싶고, 뼛속으로 찌르르 스미는 기운을 알아차리는 동무가 있구나 싶어요.


  이 책은 ‘Highly Sensitive’를 ‘민감한’으로 옮깁니다. 영어 낱말책도 이처럼 옮길 듯합니다. 그런데 저는 다르게 느낍니다. 우리말 ‘느끼다’나 ‘알다’로 옮길 적에 어울리겠다고 느껴요. ‘바로알다·바로느끼다’나 ‘알아보다·알아차리다’라 해도 어울릴 테지요.


  길바닥을 가득 채운 부릉이(자동차)를 보기만 해도 메스껍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으나, 멀쩡한 사람이 있습니다. 부릉이를 타면 기름하고 플라스틱하고 쇠붙이 냄새에 어지러운 사람이 있으나, 말짱한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을 ‘느끼는’ 사람은, 느끼기 때문에 아픕니다. 또는 느끼기 때문에 스스로 길을 찾으려 해요. 이 고약하고 괴로운 결을 스스로 씻거나 털려고 용을 쓰고 몸부림을 쳐요. ‘못 느끼는’ 사람은 못 느끼면서 안 아프기도 하고, 못 느끼는 사이에 몸이 망가지기도 합니다.


  느끼는 사람은 처음부터 느끼기 때문에 스스로 서울(도시)을 떠나거나 나중에 어떻게든 시골이나 숲으로 깃들려 합니다. 못 느끼는 사람은 처음부터 못 느끼기 때문에 그냥 서울에서 살거나 나중에 다른일 때문에 시골로 옮기곤 합니다.


  느끼는 사람은 처음부터 느끼면서 스스로 몸이며 마음을 다스리고 달래며 아픈 데를 씻으려 하기에, 천천히 새길을 깨닫고 폅니다. 또는 처음부터 너무 아픈 나머지 일찍 쓰러지거나 숨집니다. 못 느끼는 사람은 끝까지 안 아플 수 있으나, 몸이며 마음에 꾸준히 고약한 기운이 쌓인 바람에 나중에 한꺼번에 터져서 걷잡을 수 없게 마련입니다.


  한자말 ‘민감’은 나쁜말이 아닙니다. 다만 ‘느끼다’나 ‘알다’처럼 수수한 낱말로 이러한 이야기를 풀어내어 펼 적에 어린이하고 푸름이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작게 느끼건 크게 느끼건 똑같은 ‘느낌’입니다. ‘Highly Sensitive’가 아니더라도 누구한테나 길잡이가 될 이야기를 서로 헤아리고 찾을 수 있을 적에 함께 나아가는 새길을 열 만합니다.


ㅅㄴㄹ


그렇게 떠맡은 역할을 의식적으로 알아차리지 못하면 성인이 되어서까지 그 역할을 계속 하고 있을 수 있다. (71쪽)


내가 쓴 가면들은 나의 연약함을 가리고 아무도 다시는 내게 상처 줄 수 없게 하려는 무의식적 방편이었다. (86쪽)


우리의 진짜 모습을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시선을 밖이 아니라 안으로 돌려서 자기 내면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뿐이다. (110쪽)


당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의 행동이나 상황이 더 큰 배움의 일부일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들의 못된 행동이 그들 자신의 과거 문제로 인한 것은 아닐까? (135쪽)


우리 몸 안에는 전기가 흐르는 전기 시스템이 장착되어 있다. 전기가 가장 강하게 흐르는 곳은 심장과 뇌이다. 모든 전기 시스템은 접지接地가 되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신발을 신은 채 보내기 때문에 우리는 ‘어머니 지구’와의 연결이 끊어진 상태로 살고 있다. (157쪽)


비록 보거나 느낄 수 없다 하더라도 당신 안에는 더욱 높은 차원의 힘이 있다. (200쪽)


#TheHandbookforHighlySensitivePeople 

#MelCollins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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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평화론 - 비판정본 독도 길을 읽다 1
안중근 지음 / 독도도서관친구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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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12.5.

인문책시렁 260


《비판정본 동양평화론》

 안중근

 독도도서관친구들

 2019.6.15.



  《비판정본 동양평화론》(안중근, 독도도서관친구들, 2019)을 곰곰이 읽습니다. 안중근 님이 남긴 ‘한문’을 우리글로 옮긴 《동양평화론》은 진작 다른판으로 읽었는데 ‘비판정본’이 나온 줄 뒤늦게 알고서 새롭게 읽어 보았습니다.


  새삼스럽지만, 안중근(1879∼1910) 님은 우리글로 이야기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우리 겨레가 읽자면 우리글을 쓸 노릇일 텐데, 아무래도 우리글을 배울 겨를이 없었다고 여겨야 할 테지요. 주시경(1876∼1914) 님하고 엇비슷한 나낱을 살다가 떠난 안중근 님인데, 나라사랑·나라걱정을 하면서 ‘낡은 틀(한문)’을 버리고서 ‘새길(한글)’을 찾자는 마음까지 바라기는 어려울 수 있어요. 지난날에 모든 낡은 틀을 버리고서 새길을 찾고 펴면서 홀로서기(독립운동)에 나선 사람은 뜻밖에 적었거든요.


  아무래도 우리글 아닌 한문으로 남은 글인 터라, 게다가 손글씨로 남은 글을 되옮긴 터라, 옮겨쓴 이가 잘못 적는다든지, 뜻을 새길 적에 엉뚱하게 새길 수 있다지요. 이리하여 ‘비판정본’을 내놓는데, ‘비판하는 정본’이라는 낡은 말씨를 쓰기보다는 ‘되새김’이나 ‘바른고침’처럼 우리말로 쉽게 쓰는 길을 헤아리면 한결 나았으리라 봅니다.


  한문을 옮기다 보니 한문처럼 예스런(낡은) 말씨를 일부러 쓰기도 하는데, 굳이 예스런(낡은) 말씨를 쓰기보다는 오늘말에 맞게 더욱 쉽고 부드럽게 풀어서 어린이도 스스로 읽을 만한 글로 가다듬으면 훨씬 낫겠다고 여겨요. 그러니까 ‘어른이 읽도록 새긴 우리글’에다가 ‘어린이가 읽도록 손질한 우리글’로 두 가지 판을 한다면 더 뜻있겠지요.


  이러구러 안중근 님은 아름길(평화)을 바라는 뜻이 그윽하면서 단단합니다만, ‘하늬녘(서양)·새녘(동양)’이 다투는 얼개에 머무른 듯싶습니다. 하늬녘에도 들꽃사람이 있고, 일본에도 들꽃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괘씸꾼이 있고, 하늬녘이며 일본에도 괘씸꾼이 있어요. 아름길은 온누리 들꽃사람을 헤아리면서 손잡는 길을 바라보아야 이루리라 봅니다. 곧 ‘동양평화’ 아닌 ‘세계평화’를, 그러니까 ‘온아름’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요. 바른고침으로 나온 《동양평화론》인 만큼, 풀이를 할 적에 이런 이야기를 곁들이면 돋보였을 텐데, 이 대목까지는 나아가지 못 하는구나 싶습니다.


ㅅㄴㄹ


농사짓고 장사하는 일보다 예리한 무기를 연구하는 일에 더 열중하여 전기포·비행선·잠수정을 새롭게 발명하니, 이것들은 모두 사람을 해치고 사물을 손상시키는 기계이다. (85쪽)


오늘날 서세동점西勢東漸의 환난을 동양 인종이 일치단결하고 힘을 다해 방어하는 것이 가장 좋은 계책이다. 비록 어린아이라도 이를 알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일본은 이런 순조로운 형세를 둘러보지 않고, 같은 인종인 이웃나라를 착취하고 우의友誼를 갑자기 끊어버려 스스로 방휼지세蚌鷸之勢를 취하여 어부를 기다리는 것처럼 하는가? 한국과 청국 두 나라 사람들의 소망이 크게 꺾이고 말았다. (93쪽)


지난 갑오년(1894년), 일본과 청국의 전쟁을 따져 보면, 그때 조선국에서는 좀도둑인 동학東學 무리의 소요騷擾로 말미암아 청국과 일본 두 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바다를 건너왔고, 허락 없이 전쟁을 시작하여 서로 충돌하였다. (97쪽)


안타깝다! 그러므로 자연의 형세를 돌보지 않고 같은 인종과 이웃 나라를 착취하는 자는 끝내 독부獨夫의 우환을 반드시 면치 못할 것이다. (11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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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물일기 -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존경해
진고로호 지음 / 어크로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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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12.4.

인문책시렁 253


《미물일기》

 진고로호

 어크로스

 2022.7.11.



  《미물일기》(진고로호, 어크로스, 2022)를 읽었습니다. ‘미물(微物)’은 “1. 작고 변변치 않은 물건 2. 인간에 비하여 보잘것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동물’을 이르는 말 3. 변변치 못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을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이 한자말을 써도 나쁘지 않을 테지만 ‘작은하루’나 ‘작은이웃’처럼 책이름을 붙이면 한결 부드러이 이야기를 펼 만했으리라 느낍니다. 글쓴이 둘레에 있는 작은숨결을 노래하는 꾸러미이니 ‘작은삶’이나 ‘작은노래’나 ‘작은얘기’처럼 이름을 붙여도 어울려요.


  글감은 먼발치에서 안 찾아도 됩니다. 글감은 대단하거나 훌륭하거나 엄청나야 하지 않습니다. 삶자리 어디에나 흐르는 글감을 알아보거나 기꺼이 품으면 됩니다. 작은이웃을 눈여겨볼 수 있기에 뭇이웃을 아우를 수 있어요. 작은하루를 돌아볼 수 있기에 온삶을 어우를 만합니다.


  하늘을 가르는 새는 크지도 작지도 않습니다. 모두 새입니다. 아무리 커다란 새라 하더라도 하늘 높이 뜬 모습은 깨알 크기로 보입니다.


  땅바닥을 기는 개미는 작지도 크지도 않습니다. 모두 개미입니다. 아무리 작은 개미라 하더라도 땅바닥에 엎드려서 하루 내내 들여다보노라면 개미살림을 차근차근 헤아릴 수 있습니다.


  사람은 지렁이나 파리더러 ‘작다’고 말할는지 모르나, 무엇이 작다는 뜻일까요? 사람은 코끼리나 고래더러 ‘크다’고 말하기 일쑤인데, 무엇이 크다는 뜻인가요? 크기란 무엇이고, 몸집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웃을 마주할 적에 몸집부터 보는지요? 동무를 사귈 적에 겉모습부터 살피는가요?


  흙을 만진 적이 없는 사람은 씨앗을 알 길이 없습니다. 씨앗을 손바닥에 얹고서 따스히 감도는 숨빛을 느낀 적이 없는 사람은 흙을 알 길이 없습니다. 작은이웃도 큰이웃도 우리가 마음을 기울여 바라보고 만나고 생각하기에 비로소 이웃입니다. 눈을 감거나 등을 돌리면 이웃이 아니고, 동무로 사귀지 못 해요.


  이 푸른별에는 사람만 안 삽니다. 이 푸른별에 사람만 살아남는다면 사람부터 다 죽습니다. 오늘 무엇을 보는지 스스로 물어봐요. 오늘 어디에 선 다리인지 스스로 되새겨요. 오늘 누구랑 말을 섞으면서 마음을 나누는지 스스로 곱씹어요. 겨울은 찬바람이 불어 겨울답고, 여름은 나무를 스치는 푸른바람이 불어 여름답습니다.


ㅅㄴㄹ


죽어가는 지렁이를 안타깝게만 여겼지 지렁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자웅동체, 눈과 코는 없고 입만 있으며,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정도였다. (22쪽)


파리는 해충으로 알려져 있지만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본 곤충이기도 하다. (58쪽)


작은 생명에 대한 배려를 보여주는 사람의 인격이 훌륭하다는 보장은 없다. 인간은 평면적이지 않다. 자신의 반려동물은 소중히 여기면서도 다른 생명에게는 시니컬할 수도 있고, 벌레 한 마리도 죽이지 않은 사람이지만 인간을 혐오할 수도 있다. (97쪽)


물고기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에서 살았다. 뒤늦게 이런 생각이 든다. 어릴 적, 횟감 물고기와 눈이 마주쳤을 때 들었던 목소리가 진실은 아니었을까. (12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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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살아요
무레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더블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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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11.24.

인문책시렁 256


《이걸로 살아요》

 무레 요코

 이지수 옮김

 더블북

 2022.4.20.



  《이걸로 살아요》(무레 요코/이지수 옮김, 더블북, 2022)를 읽다가 지우개를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글붓이나 그림붓을 쓴다면 지우개를 늘 곁에 두는데, ‘고무 지우개’는 거의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온통 ‘플라스틱 지우개’예요. 우리나라에는 ‘고무신’이 있습니다만, 이제는 이름만 고무신일 뿐 막상 ‘플라스틱신’이에요.


  사람들이 입는 옷은 실로 짭니다만, 모시·삼·솜·누에실·양털로 얻은 실이 아닌 ‘플라스틱’으로 짜는 옷이 넘쳐요. 값싸게 사고파는 지우개나 신이나 옷은 모조리 플라스틱입니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풀꽃나무한테서 얻은 밑감으로 지은 살림은 모두한테 이바지합니다. 이와 달리 플라스틱으로 뽑아내어 값싸게 사고팔거나 다루는 살림은 모두한테 쓰레기입니다.


  제가 글을 쓰는 살림살이는 나무입니다. 글붓도 종이도 나무이고, 글판(키보드)하고 다람이(마우스)도 나무예요. 나무 글판하고 나무 다람이를 찾아내기까지 만만하지 않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나무 글판이며 나무 다람이를 짓지 않더군요. 돈이 안 된다고 여기기 때문일 텐데, 가게에서 비닐자루를 쓰지 말라 하는 일 못지않게, 셈틀 껍데기·글판·다람이를 나무로 바꾸도록 나라에서 나서야지 싶어요. 손전화 뼈대도 나무로 짤 수 있어요. 길을 차지한 부릉이(자동차)도 속살림은 나무로 짤 만합니다.


  옷칸이며 잠자리를 나무로 짜면 모두한테 이바지합니다. 나무로 짠 살림은 손길을 탈수록 빛이 날 뿐 아니라 훨씬 오래 씁니다. 나무로 짠 살림이나 세간이 오래되어 닳거나 낡았다면 땔감으로 삼지요. 그러나 값싼 플라스틱은 모두 쓰레기일 뿐 아니라, 사람한테도 들숲바다한테도 나쁩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스스로 바꿀까요? 나라가 앞장서야 할 일이 틀림없이 있기는 하지만, 나라가 등지거나 팔짱을 끼더라도, 저마다 보금자리에서 하나씩 바꿀 노릇입니다. 풀꽃나무를 곁에 두면서 시골살이로 거듭나고, 손전화가 아닌 종이책을 펴고, 부릉부릉 몰기보다는 두 다리로 걷고, 아이들을 배움터에 몰아넣기보다는 보금자리에서 함께 살림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지을 노릇이에요.


  하나를 더 헤아린다면, 밥옷집뿐 아니라, 말글살이를 숲빛으로 여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트로 지우개가 필요하다”가 아닌 “지우개를 함께 쓴다”로 가다듬을 말입니다. ‘에코백’이 아닌 ‘천바구니’를 쓸 일입니다. “이걸로 살아요”가 아닌 “이렇게 살아요”나 “이처럼 살아요” 하고 말하는 눈빛으로 가꾸어 갈 수 있기를 바라요.


ㅅㄴㄹ


연필을 쓰면 세트로 지우개가 필요하다. 여태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쭉 같은 제품을 썼는데, 그것이 플라스틱 지우개이고 이 역시 작아져서 새것을 살 시기가 되었기에 전통적인 고무 지우개를 동네 문방구에서 찾아봤더니 플라스틱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자 일본 제품은 한 개, 스페인 제품은 여러 개가 나왔다. (26쪽)


요즘은 에코백을 들고 다녀야 한다거나 포장을 간소화해야 한다는 의식이 사람들 사이에서 높아져서, 물건을 살 때 “그냥 주세요”라고 말하기 쉬워졌다. (46쪽)


분명 책은 책장에서 넘쳐났지만 딱히 그런 터무니없이 비싼 물건을 사지 않아도 지극히 평범한 책장으로 충분했다. 허세가 있는 엄마는 선생님 앞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겠지. (120쪽)


#むれようこ #群ようこ #これで暮らす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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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종이들 - 사소하고 사적인 종이 연대기
유현정 지음 / 책과이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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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11.20.

인문책시렁 252


《나의 종이들》

 유현정

 책과이음

 2022.5.25.



  《나의 종이들》(유현정, 책과이음, 2022)은 종이를 줄거리로 삼습니다. 저부터 스스로 언제나 종이꾸러미를 품고 살아가기에 눈여겨보았습니다. ‘종이꿰미’를 줄기로 삼되 ‘종이’보다는 ‘종이 곁에 있는 글쓴이 삶길’을 풀어내려고 하는구나 싶은데, 어쩐지 종이 이야기가 덜 나오거나 겹쳐서 아쉽습니다.


  글쓴이 아버지부터 종이를 다루는 일을 한다면, 아버지 손끝으로 태어난 숱한 종이 이야기가 있을 만합니다. 끝자락에 가서야 헌종이를 모으는 할머니하고 마주하는 아버지 이야기가 살짝 나오는데, 아버지하고 어머니가 종이를 건사하는 살림을 조금 더 지켜보거나 말을 듣고서 책을 쓰면 어떠했으랴 싶어요.


  신문종이는 참으로 쓸모가 많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 곁에서 늘 심부름을 하고 집안일을 거들면서 신문종이 쓰임새를 익혔습니다. 마을에서 누가 신문종이를 내놓으면 얼른 챙겨요. 집에서도 쓰지만, 배움터에서는 다달이 ‘폐지 수집’이라면서 신문종이 몇 킬로그램에 빈병 몇에 이것저것 바치도록 시킵니다. ‘폐지 수집’ 눈금을 채우지 못 하면 길잡이가 두들겨팰 뿐 아니라, 너른터(운동장)나 골마루에 한나절 손을 들고 서도록 내몰아요.


  신문종이는 걸레로도 씁니다. 헌천으로 삼는 걸레 못지않게 신문종이는 물을 잘 빨아들이고, 쉬 마릅니다. 신문종이로 물을 훔쳐서 빨랫줄에 널어 말리고 또 씁니다. 옷칸에 신문종이를 넣으면 좀이 안 먹으면서 옷에 처음부터 깃들던 화학약품 냄새가 빠질 뿐 아니라, 곰팡이가 안 배요. 다만, 해마다 갈아 주면 좋습니다. 푸줏간에서 고기를 살 적에 싸 주는 신문종이도 빨랫줄에 며칠 널어 햇볕을 쪼여 핏냄새를 뺀 다음 쓰지요.


  《나의 종이들》을 쓰신 분은 어버이 곁에서 이런 여러 살림을 그리 눈여겨보지 않은 듯싶습니다. 글쓴이는 어릴 적에 이런저런 종이에 ‘갖고 싶은 것 그리기’는 했으나, 이 숱한 종이를 어버이가 어떻게 쓰는가를 덜 보았구나 싶어요. 참말로 지난날에는 종이 한 자락이 드물고 비쌌어요. 그림종이(도화지) 하나조차 못 사는 가난한 동무가 많았습니다. 1982년에 하얀 그림종이 한 자락을 20원에 팔았는데, 그무렵 어린이 버스삯은 60원이었습니다. 그림종이는커녕 물감이 없고 글붓(연필) 한 자루 제대로 못 쓰는 동무도 많았습니다.


  《나의 종이들》 첫머리에는 갖가지 종이하고 얽힌 글쓴이 삶을 드러낼 듯이 적었으나, 막상 몇 가지 종이를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글에 너무 힘이 들어갑니다. 일부러 어려운 말(일본말씨 + 일본 한자말 + 옮김말씨)을 자꾸 끼워넣습니다. 오늘날에는 종이라는 살림이 매우 흔하고 값싸다지만, 지난날에는 흰종이를 섣불리 다치거나 건드리지 못 했습니다. 좀 비싸기는 해도 ‘비닐자루 주전부리’가 아닌 ‘종이꿰미 주전부리’를 장만한 날이면, 이 종이꿰미를 살살 펴서 뒷종이로 삼는다든지, 기름이 튀는 밥을 지을 적에 꼬박꼬박 썼고, 냄비받침으로도 쓰고, 바람이 새는 미닫이도 막다가, 아주 헐면 그제서야 헌종이로 내놓았습니다.


  저는 오른손잡이로 태어났어도 왼손쓰기를 오래도록 갈고닦았습니다. 오른손잡이로 태어났기에 왼손쓰기를 다 안 한다고 섣불리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집안일을 하는 사람은 왼손이건 오른손이건 다치게 마련이에요. 우리 어머니도 오른손이 다치면 왼손으로 도마질을 했어요. 살림을 하는 사람은 으레 ‘두손잡이’입니다. 뜻깊게 나온 ‘종이 이야기’ 책이기는 하지만, 이다음에 글을 더 쓰려 한다면, 눈을 낮추고 매무새를 나무 곁에 놓고서, 쉬운 우리말결로 추스르시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종이는 나의 환상을 조금이나마 실현해 줬다. 갖고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종이 위에 그렸고, 그 바람은 읽은 부모님은 나에게 종종 그것들을 선물로 줬다. (24∼25쪽)


보통의 오른손잡이로 태어난 사람은 양손을 쓸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왼손잡이로 태어난 사람 중 일부가 오른손 쓰는 연습을 한다. 남들처럼 보이기 위해서다. (45쪽)


결국 어떤 글짓기 대회에서든 주최 측 입맛에 맞게 쓰는 일이 중요했다. (54쪽)


부모님께 신문지는 다양한 면에서 만족도가 높은 귀한 사물이었다. 어머니는 주방에서 신문지를 여러 용도로 활용했다. 시금치, 당근, 부추, 대파 등 흙이 묻어 있는 채소를 신문지에 싸서 말고, 씻지도 않은 채 냉장실에 넣어뒀다. (173쪽)


오랫동안 한 곳에서 사업장을 운영해 온 아버지에게 폐지 줍는 할머니는 이웃이었다. (19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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