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운 - 운이 들어오는 입구를 넓히는 법
사이토 히토리 지음, 하연수 옮김 / 다산3.0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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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54



내가 아직 부자가 아닌 까닭은 뭘까?

― 부자의 운

 사이토 히토리 글

 하연수 옮김

 다산3.0 펴냄, 2012.8.10. 12000원



  어떤 사람이 넉넉하게 살 수 있을까요? 내가 스스로 넉넉하게 산다면 이 물음에 쉽게 대꾸해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안 넉넉하게 산다면 이 물음에 도무지 대꾸할 수 없을 테고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내가 스스로 넉넉하게 산다면 “어떻게 해해야 넉넉하게(부자로) 살 수 있을까?” 같은 물음에 어떤 말을 들려줄 만할까요. 내가 스스로 넉넉하다면, 내가 스스로 부자라면, 아마 이렇게 말하리라 생각합니다. “스스로 넉넉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야 넉넉하지요.” 하고.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돈을 100억 원 손에 쥐었어도 스스로 넉넉하다고 생각하지 못하면 더 많은 돈을 움켜쥐려고 눈에 불을 켜면서 ‘마음이 바쁘거나 좁거나 메마른 채’ 살리라 느끼기 때문입니다. 100억이 아닌 1억이 손에 있어도 넉넉하다고 여기면 스스로 넉넉한 살림이 된다고 느껴요. 1억이 아닌 100만 원이 손에 있어도 넉넉하다고 여기면 참말로 스스로 넉넉한 살림이 된다고 느끼고요.



상사한테 잔소리를 들었을 때는 속으로 ‘이렇게 좋은 폭포수를 맞게 해 줘서 감사합니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해 보세요. 희한하게도 상대방이 변합니다. (15쪽)


‘재미있는 일’은 어떻게 만드는 걸까요? 이는 간단합니다. 재미있는 일은 늘 재미있는 일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많이 일어나는 법입니다. (24쪽)



  사이토 히토리 님이 쓴 《부자의 운》(다산3.0,2012)이라는 책을 읽으며 ‘넉넉함(부자)’을 새삼스레 그려 봅니다. 이 책을 쓴 분은 일본에서 소득세를 가장 많이 낸다고 밝힙니다. 소득세를 가장 많이 낸다고 하니, 벌어들이는 돈이 대단히 많겠지요? 벌어들이는 돈이 대단히 많다면 이른바 ‘부자’라 할 테고요. 이리하여 글쓴이는 ‘부자로 사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해야 부자가 되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직 부자가 아닌 사람들한테 ‘그대는 왜 아직 부자가 못 되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철학의 목적은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해결하는, 그런 인간을 만드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50쪽)


10년 걸리는 것은 10년이 걸리니까 어찌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10년 뒤에 부자가 된다고 생각하면, 지금 뭘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겠지요. (121쪽)



  재미있는 일은 스스로 재미있는 일을 생각하는 사람한테 찾아온다고 합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입니다. 웃음은 스스로 웃으려는 사람이 지을 수 있어요.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한테는 웃을 일이 없어요. 눈물만 글썽이는 사람한테도 웃을 일이 없고요. 그러니까 부자가 되기를 바란다면 스스로 부자다운 마음이 되어야 할 노릇이지 싶어요. 오늘 아직 내 주머니에 맞돈이 얼마 없다고 여기면서 ‘난 가난뱅이야’라든지 ‘난 빈털터리야’ 하고만 여긴다면, 어쩌면 나는 오늘뿐 아니라 앞으로도 이 모습이 그대로 흐르리라 느낍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 이곳에서 나한테 기쁜 일이 없어서 웃지 않는다’고 여기면, 나는 오늘 이곳에서뿐 아니라 이튿날에도 웃을 일이 없어요. 이튿날뿐 아니라 그 다음 날이나 다다음 날에도 웃을 일이 없을 테지요.


  ‘더 많은 돈’이 있어야 부자가 아닌 셈이요, ‘남보다 많은 돈’을 거머쥐어야 부자가 아닌 셈입니다. 스스로 넉넉한 마음과 생각과 꿈과 사랑으로 살림을 지을 적에 넉넉한 사람인 셈이요 부자라 할 만하지 싶습니다. 똑같은 돈을 벌더라도 ‘겨우 이만큼’이라고 여기면 가난하고, ‘아주 기쁘네’ 하고 여기면 부자라고 할 만하지 싶어요.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가르칠 때는 상대가 할 수 있을 때까지 가르치면 됩니다. )193쪽)


당신의 몸은 신이 머무는 궁전입니다. 당신의 머리는 그 궁전의 지붕이고, 얼굴은 출입구이며, 신발은 기둥을 받치는 토대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의 얼굴을 더럽혀서도 안 되고, 신발에 구멍이 뚫려서도 안 되겠지요. 늘 청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환하게 빛나야 합니다. (199쪽)



  《부자의 운》을 쓴 분은 스스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힙니다. 성공을 해도 운이 좋다고 여기고, 실패를 해도 운이 좋다고 여긴대요. 모든 일에서 스스로 운이 좋다고 여긴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며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해 보다가 ‘그렇네!’ 하고 느낍니다. 성공은 성공대로 기쁨이 될 테고, 실패는 실패대로 배울 수 있으니 기쁨이 될 테지요. 누군가 나한테 쓴소리를 퍼붓는다고 하더라도 이는 ‘쓴소리·실패’가 아니라 ‘무엇인가 새롭게 배우는 일’이 될 테니까 ‘운이 좋다’고 할 만하구나 싶어요.


  이리하여 부자가 되는 길이란 아주 어려운 곳에 있지 않으리라 느낍니다. 내 마음부터 부자답도록, 넉넉하도록, 알차고 푸지도록 가꿀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코앞에 얽매이는 살림이 아니라 꿈을 바라보는 살림이 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오늘 주머니에 돈이 없대서 잔뜩 골이 난 얼굴로 산다면 앞으로도 부자가 될 수 없으리라 느낍니다.


  언제나 웃고, 언제나 너그럽고, 언제나 따스하고, 언제나 기쁘고, 언제나 노래하는 몸짓하고 마음이 되어야지 싶습니다. 더 많은 돈이 아니라 즐거운 삶을 바라니까요. 남보다 많은 돈이 아니라 스스로 넉넉한 살림을 꿈꾸니까요. 2016.6.2.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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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열두 풍경 - 루브르에서 루이뷔통까지, 조홍식 교수의 파리 이야기
조홍식 지음 / 책과함께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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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55



걷기 좋아 언제나 아름다운 도시를 꿈꾸며

― 파리의 열두 풍경

 조홍식 글

 책과함께 펴냄, 2016.4.20. 16800원



  《파리의 열두 풍경》(책과함께,2016)을 쓴 조홍식 님은 초등학교 6학년 무렵에 한국을 떠나 아프리카 가봉에서 중학교를 다녔다고 합니다. 이윽고 프랑스로 건너가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녔다고 해요. 아마 어버이 일터를 따라서 한국을 떠나 아프리카하고 프랑스에서 어린 나날을 보낸 셈이겠지요.


  조홍식 님은 1982년에 프랑스 파리를 처음 만났다고 해요. 그즈음이라면 한국에서는 외국으로 여행을 가는 일이 퍽 드물었고, 유럽을 다녀온 사람도 꽤 드물었다고 할 만해요. 그즈음 한국 어린이는 프랑스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면서 생각했을까요?



내가 파리를 처음 만난 것은 1982년 여름이다. 10대 한국 소년에게 파리는 환상의 도시였다. 인류의 역사를 한곳에 모아 놓은 박물관, 거리에 넘치는 세련된 조각, 소설에서 읽었던 문학의 현장 등 매순간이 특별하였다. (17쪽)


파리는 쉽게 변하지 않는 도시다. 파리에서 달라진 구석을 발견하려면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듯이 눈을 비비고 살펴보아야 한다. 에펠탑과 노르트담 성당이 변치 않고 우뚝 서 있는 것은 당연하고, 그 주변의 건물과 도로와 나무 역시 항상 그대로다. (18쪽)



  어린 날 프랑스에서 자라면서 학교를 다닌 조홍식 님은 이제 한국에서 정치외교학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다고 합니다. “쉽게 바뀌지 않는” 프랑스요 파리이면서, 자유와 민주도 “한결같이 흐르는” 프랑스하고 파리를 헤아리면서 《파리의 열두 풍경》을 썼다고 합니다. 여행 길잡이라기보다는 ‘한 나라를 깊고 넓게 들여다보면서 품에 안는 발길’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썼구나 하고 느낍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생각해 봅니다. 프랑스사람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어린 날 찾아와서 자란 뒤에 “한국 서울”이나 “한국 부산” 같은 도시를 놓고 “서울 열두 풍경”이나 “부산 열두 풍경” 이야기를 쓴다고 하면 어떤 글을 풀어 놓을 만할까 하고요. 1980년대 서울이나 부산하고 2010년대 서울이나 부산은 얼마나 비슷하거나 다르다고 할 만할까요?



파리는 무작정 걸어도 좋다. 아름다운 건물들이 늘어선 파리의 거리를 산책하는 것은 특권이다. (24쪽)


일상 속에 아름다움이 살아 있는 것,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무는 노력이 바로 파리를 예술의 도시로 만든다. (36쪽)



  파리는 그냥 걸어도 좋은 도시라고 합니다. 파리뿐 아니라 ‘아름다운 도시’라고 일컫는 곳은 어디나 그냥 걷기에 좋다고 해요. 여행자한테 걷기에 좋은 도시는 여행자뿐 아니라 ‘거주민한테도 걷기에 좋은 도시’가 될 테고, 걷기에 좋은 도시는 ‘살기에 좋은 도시’가 되리라 느낍니다.


  왜냐하면, 걷기에 좋다고 할 적에는 걸어서 다니면서 바라보는 모습이 좋다는 뜻이고, 걸으면서 나무 그늘이나 냄새를 누리기에 좋다는 뜻이며, 자동차 걱정이 없다는 뜻일 테니까요. 그리고, 걷기에 좋은 곳이라면 아이들이 뛰놀기에도 좋은 곳이 될 테고, 이런 곳에서는 마을 이야기나 살림이나 문화도 한결 넉넉하거나 이쁘장하리라 생각해요.


  이리하여 조홍식 님은 파리를 놓고 “일상 속에 아름다움이 살아”서 흐른다고 말합니다. 예술가 몇몇이 꾸미는 겉모습이 아니라, 프랑스사람 스스로, 파리사람 스스로, 언제 어디에서 즐겁게 아름다운 살림을 짓는다고 해요.



1980년대 파리에 살면서 가장 불편했던 것은 주말에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 것이었다. 평일에도 저녁 7시가 지나면 아무것도 살 수가 없었다 … 30여 년 전 상점의 영업 시간을 통제했던 중요한 이유는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휴식을 취할 권리가 있다는 원칙 때문이다. (278, 279쪽)



  도시뿐 아니라 시골도 비슷하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살아가려고 하는 삶터를 ‘자동차 중심’으로 삼는다면, 자동차가 다닐 찻길을 늘리고 주차장을 늘려야 합니다. 이때에는 찻길을 반듯하게 펴려 하면서 재개발이 끊이지 않아요. 자동차가 한복판에 서는 도시 계획이라면, 골목에서도 자동차가 흔히 지나다니니까, 아이들한테는 무척 괴롭습니다. 어른들도 걷거나 자전거를 타기에 나쁠 테고요.


  자동차가 없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자동차를 타더라도 ‘어린이와 어른(젊은 어른이나 나이든 어른 모두)’ 누구나 느긋하게 걷거나 마실을 즐기거나 해바라기를 할 수 있을 만한 “걷는 문화”가 바탕이 되면서 “자동차도 즐겁게 함께 누릴 수 있는 도시 계획”일 때에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상상해 보라. 문화대국 프랑스의 문화부장관을 머나먼 한국에서 입양해 키운 인재에게 맡기는 용기를. (321쪽)



  《파리의 열두 풍경》을 쓴 조홍식 님은 파리 여행(또는 파리 나들이)에서 프랑스하고 파리를 가로지르는 깊은 속내를 들여다보자고 이야기합니다. 이를테면 ‘문화대국 프랑스’를 이루는 너그러움(관용)이 무엇인가 하고 짚습니다. 프랑스에서 입양한 아이가 얼마든지 문화부장관이 될 수 있는 터전을 다루어요.


  한국에서는 이 같은 일이 생길 수 있을까요? 한국은 이웃(마을 이웃뿐 아니라 다른 나라까지)한테 얼마나 너그러운 나라라고 할 만할까요? 이주노동자하고 이주여성한테 얼마나 너그러운 나라일까요? 같은 한겨레한테 얼마나 너그러운 나라일까요?


  너그러울 때에 착한 마음이 되고, 착한 마음일 때에 아름다움을 꿈꿀 만하리라 생각해요. 아름다움을 꿈꿀 적에 평화를 마음에 담고, 평화를 마음에 담을 적에 자유와 민주와 평등도 나란히 사랑하는 길을 걸어갈 만하리라 느껴요. 아름다운 한국을 꿈꾸면서 “열두 빛깔 파리” 이야기를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2016.5.24.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 글에 넣는 사진은 '책과함께 출판사'에서 고맙게 보내 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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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식물 - 일본 식물학의 아버지 마키노의 식물일기
마키노 도미타로 지음, 안은미 옮김, 신현철 감수 / 한빛비즈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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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51



‘콩’인가 ‘대두’인가, ‘나리’인가 ‘백합’인가

― 하루 한 식물

 마키노 도미타로 글

 안은미 옮김

 한빛비즈 펴냄, 2016.4.15. 15000원



  백 날에 걸쳐서 하루에 한 가지씩 풀이나 꽃이나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 《하루 한 식물》(한빛비즈,2016)은 1953년에 처음 나왔다고 합니다. 이 책을 쓴 마키노 도미타로라는 분은 1862년에 태어나 1957년에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일본 식물학을 일으키거나 튼튼히 닦은 아버지라고도 하는 글쓴이는 ‘일본에서 사람들이 잘못 알거나 제대로 모르는 풀과 꽃과 나무’ 이야기를 쉽게 풀이해서 들려주려고 《하루 한 식물》을 썼다고 합니다.



일본의 풀과 나무 이름은 모두 가나로 표기해도 어떠한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하는 쪽이 더 합리적이고 편리해 바쁜 현대사회에 적격이다. 소나무는 소나무, 삼나무는 삼나무, 벚꽃은 벚꽃, 벼는 벼, 보리는 보리, 무는 무, 순무는 순무, 가지는 가지, 파는 파, 기장은 기장, 감자는 감자, 양배추는 양배추로 말이다. 굳이 송松, 삼衫, 앵櫻, 도稻, 맥麥, 마령서馬鈴薯, 감람甘藍 같은 성가시기 짝이 없는 한자를 굳이 쓸 필요는 없다. (18쪽)



  일본 풀·꽃·나무 이야기가 가득한 《하루 한 식물》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일본하고 한국은 그리 먼 나라가 아닐 텐데, 두 나라 사이에서 자라는 풀이나 꽃이나 나무가 꽤 다르구나 하고요.


  일본은 중국하고 다르고, 중국은 한국하고 다릅니다. 한국도 일본하고 달라요. 세 나라는 동북아시아에 있는 세 나라라 하지만, 삶도 살림도 땅도 날씨도 모두 다른 터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 나라는 한자를 쓰기는 하지만 쓰임새가 다르고, 뜻도 다르며, 쓸모도 다르지요.



본디 백합은 중국 이름이니 옛날처럼 일본의 나리를 백합으로 쓰면 옳지 않다. (38쪽)


굳이 일본 이름을 붙인다면 중국흰나리로 짓겠다. 좀 더 우아한 이름을 붙인다면 흰눈나리도 나쁘지 않을 듯. 백합은 일명 중국흰나리, 흰눈나리를 가리키며 정확한 종소명은 알 수 없다. (39쪽)



  마키노 도미타로 님은 《하루 한 식물》이라는 책에서 ‘일본 풀이름·꽃이름·나무이름’을 섣불리 ‘중국 한자를 빌어서 붙이는 일’은 옳지 않다고 밝힙니다. 구태여 중국 한자를 붙여서 가리키지 말고 ‘일본 풀’은 ‘일본 풀이름’으로 가리키면 된다고 밝혀요.


  아주 마땅한 이야기일 텐데, 학계에서는 이 이야기가 그리 마땅한 일은 아닌 듯합니다. 벼는 벼라 하면 되고, 보리는 보리라 하면 될 테지만, 막상 학자는 이런 이름을 안 쓰는 듯합니다. 그러고 보면 ‘콩·팥’이라는 이름이 버젓이 있으나 ‘대두·적두’라는 한자를 빌어서 쓰려고 하는 학계요 사회에다가 농협이에요.



메이지 시대에 들어 처음 관동이 머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여전히 ‘머위 = 관동’이라 여기는 사람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특히 하이쿠 시인 등이 전통을 고수한다는 명목 아래 변함없이 완곡어법을 가장해 버젓이 사용한다. (197쪽)



  《하루 한 식물》에는 일본 풀·꽃·나무 이야기가 가득하기에 저로서는 잘 모르겠구나 싶은 풀이나 꽃이나 나무가 많은데 ‘머위’쯤은 한국에서도 흔하니 잘 알 만합니다. 새봄에 돋는 머위싹은 맛난 나물이요, 동그마니 피어나는 머위꽃도 재미나면서 구수한 나물이에요.


  《하루 한 식물》을 보면 ‘머위는 관동이 아니다’ 같은 이야기가 흐르는데, 문득 궁금해서 한국말사전을 살펴보았습니다. 일본에서도 ‘머위·관동’을 잘못 바라본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도 한국말사전은 ‘머위 = 관동’으로 다룹니다.



그럼 열매는 어떻게 일본에 건너오는 걸까. 내 생각에 바람 아니면 물새의 도움을 받는 듯한데, 어떤 물새인지. 조류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기러기나 오리 같은 철새가 늦가을에 조선(한국)의 사초가 무성한 곳에서 먹이를 주워 먹다가 땅에 떨어진 왕골의 작은 열매를 우연히 다리나 날개에 묻힌 채 일본으로 날아온다. (265쪽)



  나는 책상맡에 《한국 식물 생태 보감》(자연과생태 펴냄)이라고 하는 두툼한 책을 올려놓고 늘 들여다봅니다. 우리 집 마당이나 텃밭에서 자라는 풀을 살피다가 이 책을 들추고, 마을이나 숲이나 바닷가에서 돋는 풀을 헤아리면서 이 책을 들추어요. 일본에서는 《하루 한 식물》이 일본 풀·꽃·나무를 옳게 다루면서 알려주려고 하는 길잡이 노릇을 하는 책이라면, 한국에서는 김종원 님이 바지런히 엮는 《한국 식물 생태 보감》이 슬기로운 길잡이 노릇을 한다고 느껴요.


  이른 아침에 텃밭에서 당근싹을 살피며 김을 매면서 온갖 풀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광이풀을 뽑고, 환삼덩굴을 뽑습니다. 다른 때에는 나물로 먹거나 고이 여기지만, 당근밭에 자라는 사광이풀이나 환삼덩굴이나 쑥이나 쇠무릎이나 흰줄갈풀은 아무래도 김매기로 뽑혀야 할 풀이 됩니다. 늘 풀을 벗삼으며 지내는 시골살림인 만큼,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하루 한 가지 풀·꽃·나무 알려주기”를 해 보자고 생각해 봅니다. 하루에 한 가지 풀이나 꽃이나 나무를 함께 살피고 익히면, 한 해에 삼백 가지가 넘는 풀이나 꽃이나 나무를 알 수 있어요. 하루에 한 가지씩 새롭게 바라보면서 배울 수 있다면, 무척 즐겁고 아름다우리라 봅니다. 2016.5.23.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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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바다 - 칼 슈미트의 세계사적 고찰
칼 슈미트 지음, 김남시 옮김 / 꾸리에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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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50



신대륙을 ‘빈 곳’으로 보며 ‘땅 취득’을 하려던 문명

― 땅과 바다

 칼 슈미트 글

 김남시 옮김

 꾸리에 펴냄, 2016.4.30. 17000원



  독일 법학자이자 정치학자인 칼 슈미트 님은 1942년에 《땅과 대지》라는 책을 선보였다고 합니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말로 나옵니다. 칼 슈미트 님은 이 책에서 “우리는 땅의 자식들일까, 아니면 대양의 자식들일까(12쪽)?” 하고 묻는데, 나치당에 들어가서 일하기도 했던 이녁은 ‘독일이 영국처럼 드넓은 바다를 누비면서 식민지를 늘리지 못한 일’을 아쉽게 여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세계의 역사는 땅 취득의 역사야. 땅의 취득이 있을 때마다 그들이 서로 협약을 맺기만 했던 것은 아니야. 그들은 매우 자주 서로 대립했고 종종 피를 부르는 형제전쟁을 치르기도 했어. (91∼92쪽)


비행기들이 바다와 대륙 위의 영공을 횡단할 뿐 아니라, 모든 나라의 송신소에서 나오는 무선전파들이 눈을 깜빡이는 속도로 대기공간을 통과해 지구 전체를 맴돌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인간은 이제 새로운 제3의 차원을 획득했을 뿐만 아니라, 급기야 세 번째 원소, 즉 인간실존의 새로운 원소 영역인 공기를 정복했다고 결론 짓고 싶을 거야. (128쪽)



  군대를 앞세운 전쟁무기로 ‘이웃나라’로 쳐들어가서 ‘식민지’를 삼는 일을 “땅 취득”이라고 바라본 일은 오직 칼 슈미트 한 사람뿐이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땅과 대지》를 읽다 보면, ‘식민지가 된 나라’는 ‘유럽한테 식민지가 된 때부터 비로소 역사가 있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오기도 합니다. 바다를 가로질러서 유럽에서 북미 중미 남미로 쳐들어갔기에, 이때부터 북·중·남미는 ‘새로운 역사’가 생겼다고 이야기합니다.


  유럽 사람들 눈으로 본다면 이 같은 이야기는 ‘틀리지’ 않으리라 봅니다. 그렇지만 북·중·남미 사람들 눈으로 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섬나라’로서 바다만 끼고 살다가 한국을 식민지로 삼은 ‘이웃나라 일본’은 한국으로 쳐들어오면서 ‘대륙(땅)으로 나아간다’고 외쳤어요. 일본이라는 나라한테도 한국이라는 식민지는 “땅 취득”이었을 뿐일 테고, 그들 나라가 ‘새로운 역사’를 펼치는 일만 헤아렸으리라 느껴요.


  그리고 독일이 ‘바다 권력’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지만, ‘하늘 권력’을 누리려고 하는 모습은 새로운 ‘정복’으로 느끼면서 무척 반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늘을 ‘정복’한 독일은 어마어마한 비행기를 이끌고 이웃 여러 나라에 폭탄을 떨어뜨렸어요. 하늘을 아름답게 날면서 새로운 바람을 쐬는 몸짓이 아니라, 끝없이 전쟁을 일으켜서 “땅 취득”을 하려는 ‘형제전쟁’에 매달렸습니다.



아가미를 통해 호흡하는 거대한 육지동물을 말이야! 북극에서 남극까지 세계의 바다를 헤엄쳐 횡단하는 가장 크고, 가장 강하며, 가장 힘이 센 바다동물이 바다의 서식 조건에서 폐로 숨을 쉬고, 포유류로서 살아 있는 새끼들을 낳는다는 것! 양서류도 아닌 온전한 포유류이면서도 동시에 그 생명의 원소에 의하면 물고기라는 것이지. (37쪽)


고래물고기가 없었더라면 어부들은 언제까지고 해안에만 들붙어 있었을 거야. 고래가 그들을 유혹해 해양으로 끌어들임으로써 해안에서 해방시켰던 것이지. (42쪽)



  《땅과 대지》를 쓴 칼 슈미트 님은 이 지구라는 별에서 ‘뭍(땅)’은 좁고 ‘바다(물)’는 훨씬 넓은데, 사람들은 ‘땅에서 이루어지는 역사’만 바라볼 뿐,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역사는 볼 줄 모른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은 바닷가에만 겨우 붙들린 채 드넓은 곳을 바라볼 줄 몰랐다고 이야기해요.


  고래잡이가 나타난 일이란, 사람들이 고래를 잡으려고 먼 바다로 나간 일이란, 비로소 ‘좁은 땅’에서 스스로 해방되어 넓은 새터(신세계)를 깨달은 일이라고 밝힙니다. 그런데 칼 슈미트 님이 이야기하는 ‘넓은 새터’는 “땅 취득”처럼 “바다 취득”을 할 때에만 뜻이 있는 셈인가 싶어서 살짝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서로 이웃이 되어 아름답게 지내는 살림이 아니라, 이웃이 조용히 일구면서 지내는 땅을 가로채거나 빼앗을 적에 비로소 ‘넓은 새터’가 나타나면서 ‘새 역사’를 쓴다고 할 만한지 아리송하기도 해요.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 사람들은 비어 있는 공간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어. 그 이전에 일부 철학자들이 ‘비어 있음’에 대해 이야기한 바는 있어도, 비어 있는 공간을 떠올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던 일이란다. (83쪽)



  ‘식민지 개척’이라는 눈길로 바라본다면, 유럽 사람들한테 유럽 아닌 곳은 ‘빈 곳(빈 공간)’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유럽 사람들한테는 유럽 역사와 문화만 있을 뿐이고, 유럽 사람들한테 빈 곳이던 아시아나 북·중·남미는 그저 ‘빈 곳’이면서 ‘아무 역사가 없는 곳’이 될 만합니다.


  북미를 식민지로 삼아서 미국이라는 나라를 이룬 유럽 사람들한테 ‘미국사’란 북미 토박이를 밀어내어 “땅 취득”을 한 역사입니다. 아스라이 먼 옛날부터 그 터에서 조용히 살아온 사람들이 지은 살림을 ‘미국사’로 여기지 않겠지요.


  우리가 말하는 ‘빈 곳’은 참말로 비었다고 할 만한가 적잖이 궁금합니다. 빈 땅이나 빈 밭이라 하더라도, 그곳에는 수많은 풀과 나무가 자라고 수많은 벌레와 작은 짐승이 깃들어 삽니다. ‘빈 곳’이라고 여기지만 정작 비지 않고 수많은 다른 숨결이 있어요.


  유럽 문명이나 문화는 ‘유럽 아닌 곳’을 ‘빈 곳’으로 바라보면서, 유럽 아닌 곳을 하나씩 “땅 취득·바다 취득·하늘 취득”이라는 얼거리로 차지하려고 하면서 차츰 거듭났다고 할는지 모릅니다. 인류 문명이나 문화는 이렇게 발돋움했다고 할 수도 있을 테고요. 다만, 서로 아끼거나 어깨동무하려는 몸짓이 없다면, 바로 저곳은 텅 빈 곳이 아니라, ‘나 아닌 다른 숨결(사람)’이 살림을 짓는 삶터인 줄 바라보려는 눈길이 없다면, 이는 제국주의나 나치나 군국주의처럼 전쟁무기로 이웃을 짓밟고 마는 일이 되지 않으랴 싶어요.


  문명에 앞서 평화를 생각하고, 문화에 앞서 살림을 생각하며, 식민지(땅 취득)에 앞서 사랑을 생각할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6.5.18.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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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덴마크 사람들 - 그들과 함께 살아본 일 년
헬렌 러셀 지음, 백종인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53



총을 들지 않고 케익을 굽는 덴마크 남자

―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덴마크 사람들

 헬렌 러셀 글

 백종인 옮김

 마로니에북스 펴냄, 2016.4.15. 15000원



  헬렌 러셀 님이 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덴마크 사람들》(마로니에북스,2016)을 읽으면서 어렴풋하게 덴마크라는 나라를 떠올려 봅니다. 이 책 하나로 덴마크를 제대로 알 수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만, ‘덴마크 이주 생활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깨너머이기는 해도 덴마크 사회와 사람과 삶을 짚어 볼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을 쓴 분은 영국사람이지만 덴마크로 건너가서 살림을 꾸린다고 해요. ‘덴마크 레고 회사’에서 일하는 곁님하고 덴마크로 건너가서 ‘덴마크에서 자그마한 도시’에 집을 얻어서 열두 달을 살아내는 동안 겪은 일을 열두 갈래로 나누어서 쓴 책입니다.



직장을 옮기는 것이 연금 혜택이나 휴가일수 등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덴마크에서는 직장을 바꾸는 데 대한 어떤 장애도 없다. 사람들은 직장을 여기저기로 옮겨 다닐 수 있고 동일한 복지혜택을 누리고 휴가일수도 누적시킬 수 있다. 이 같은 제도가 오늘날 덴마크의 실업률을 5퍼센트에 머물게 하는 주요 요인이 된 것 같다. (82쪽)



  영국에서 살다가 덴마크로 건너간 글쓴이는 처음부터 한 해가 되는 날까지 ‘영국하고 터무니없도록 다른 삶과 사람’을 만나면서 모든 자리에서 늘 놀랐다고 밝힙니다. 영국에서는 으레 밤새워서 일하고, 여섯 시 퇴근이나 여덟 시 퇴근도 쉽지 않았다는데, 덴마크에서는 다섯 시 퇴근은커녕 세 시 퇴근조차 흔하다고 해요. 글쓴이는 영국에서 ‘혼인 휴가’를 어렵사리 이레 남짓 얻었을 뿐, 제대로 휴가다운 휴가를 누린 적이 없지만, 덴마크에서는 한꺼번에 넉 주를 쉬는 휴가가 있을 뿐 아니라, 여느 때에도 무척 쉽게 일을 쉬며 집에서 지낼 수 있다고 합니다.


  영국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학비를 대느라 수없이 알바를 했고, 아직 대학 학자금을 다 갚지 못했다고 하는 글쓴이는 덴마크 교육제도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무척 놀랐다고 해요. 덴마크는 학비가 들지 않는 나라일 뿐 아니라, 의료비도 들지 않는 나라라고 해요. 더욱이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학자금 제공’을 해 주기도 하니까, 덴마크에서는 대학교에 가려서 알바를 하거나 빚을 져야 할 일이 없는 셈입니다.



“만약 당신이 덴마크 사람이고 인구 550만 명의 작은 나라 밖의 세상에서 누구도 당신이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다른 언어를 배워야만 합니다 … 항상 머리를 사용하고 자신에게 도전하세요. 평생 배워야 하는 것으로 여기고.” (104쪽)



  그러면 덴마크는 어떻게 이런 교육과 복지와 의료를 할 수 있을까요? 바로 50퍼센트가 넘는 세금이 있으니 이를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50퍼센트는 여느 직업인이 내는 세금이고, 벌이가 늘어날수록 세금은 훨씬 높아져서, ‘많이 벌면 그만큼 세금 내는 비율이 더 높아져’서 75퍼센트에 이르는 세금을 내는 사람도 많다고 해요. 그리고 이 같은 세금을 누구나 기꺼이 내고, 무엇보다도 덴마크 국방비는 1퍼센트를 살짝 넘는다고 합니다. 한국은 국방비 지출이 15퍼센트에 이르지요. 더군다나 한국은 덴마크하고 달리 ‘탈세’가 많고, ‘많이 번다고 세금을 많이 내지’도 않지만, 이러한 세금이 교육이나 복지나 의료로 잘 가지 않는 얼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덴마크 사람들》을 읽다가 문득 궁금해서 덴마크하고 한국(남·북녘) 국방비와 평화지수 같은 통계를 찾아봅니다. 덴마크는 지구에서 다섯손가락에 들 만큼 ‘평화로운 나라’로 꼽힌다고 합니다. 국방 예산은 거의 안 쓴다고도 할 만하지만 전쟁하고는 가장 동떨어지면서 평화로운 곳이라고 해요. 이와 달리, 북녘은 지구에서 국방비를 가장 높게(GDP 비율로) 쓰는 나라이면서 ‘가장 안 평화로운 나라’라고 합니다. 이제 남녘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익히 알지만, 북녘은 복지나 문화에서도 그리 넉넉하거나 아름답지 못하다고 하지요. 국방비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쏟아붓기 때문에 다른 데에 쓸 돈이 모자라니까요.


  그러니까, 전쟁무기를 많이 갖추도록 국방비를 많이 쓴다고 해서 평화롭지 않다는 뜻이고, 자유롭거나 아름답거나 즐거운 나라가 되기 어렵다는 뜻으로도 읽을 만하리라 느낍니다. 전쟁무기를 많이 갖추기에 ‘평화하고는 동떨어진 채 더 으스스한’ 나라가 되는 셈이라고 할까요.



맥이 풀릴 정도로 높은 이혼율은 적어도 덴마크인들이 선택권을 가졌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들은 자신의 손으로 자기 자신의 운명을 택할 수 있고, 그들의 삶이 그들이 희망했던 것과 다를 경우 행동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유롭고, 이혼이 행복을 주진 않아도 자유가 그들에게 행복을 준다. (189쪽)



  영국 부부는 처음에는 딱 한 해만 덴마크에서 ‘살아 보기’로 했지만, 한 해를 살고 나서 ‘한 해 더’ 살기로 했고, 덴마크에서 ‘둘째도 낳자’고 마음을 먹었다고 합니다. 아마 ‘한 해 더’는 해마다 되풀이할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덴마크 사람들》을 쓴 분은 영국에서 밤낮 없이 바쁘게 일하며 살 적에는 ‘아기를 배려고 그토록 애썼’어도 아기를 밸 수 없었다고 해요. 말 그대로 밤낮 없이 일하고 휴가나 주말이 거의 없이 살았으니 몸이 못 버티고 마음도 느긋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랴 싶어요. 두 부부는 덴마크에 살면서 남편이 ‘두 주짜리 배우자 출산휴가’를 받을 뿐 아니라 ‘십 주짜리 양육휴가’를 얻는다는데, 휴가만 받지 않고 ‘육아 교육’까지 함께 받았다고 합니다. 마땅한 소리일는지 모르겠는데, 휴가를 받는 동안 ‘여느 때처럼 월급이 똑같이 나오’고 ‘아버지가 받는 육아교육비’도 나라에서 모두 대고요.


  한국에서는 어머니가 아기를 낳을 적에 아버지는 무엇을 하는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맞벌이부부 가운데 아버지는 ‘출산휴가’나 ‘양육휴가’를 며칠이나 받을 만할까요? 그리고 휴가를 넘어서 ‘육아 교육’은 제대로 받기나 할까요? 이러한 휴가가 모두 지나간 뒤에 ‘한국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얼마나 아기를 돌보면서 집살림을 맡을 만할까요?



두 주간의 배우자 출산휴가를 마치고 레고맨(레고 회사를 다니는 남편)은 그의 아기를 위한 십 주 간의 휴가를 내기 전 일을 마무리하려고 일터로 돌아갔다 … 그의 회사는 아이를 돌보도록 임금을 그대로 주면서 휴가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장려하는 회사다. 레고맨은 목욕시간과 취침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배웠고, 아기 엄마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한 시간의 숙면과 샤워를 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화요일 오후 2시, 거의 돌 것 같은 상태가 되는 아기 엄마의 기분을 이해했다. 그는 하루 24시간 아기를 돌보는 것이 굉장히 보람 있는 일이나 무자비하게 힘든 일이라는 것도 배웠다. (321쪽)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덴마크 사람들》을 쓴 분은 ‘덴마크 남자가 모두 케이크를 굽지’는 않지만 ‘웬만한 덴마크 남자는 그들 나름대로 케이크를 구울 줄 아는 솜씨’가 있다고 적습니다. 덴마크 남자는 한국 남자와는 달리 ‘군대에 끌려가야 할 걱정’을 하지 않으면서 ‘평등하고 평화로우면서 자유로운 삶과 살림과 사랑’을 생각하는 데에 시간과 품을 쓴다고 할 만하구나 싶어요.


  여러모로 살피면 덴마크는 그야말로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할 수 있지 싶어요. 다만, 덴마크에서 살려면 ‘덴마크말’을 할 줄 알아야 해요. 덴마크사람이 영어를 아주 잘한다고 해도 말이지요.


  그런데 덴마크에는 ‘이주민한테 덴마크말을 가르치는 제도’도 훌륭히 있다는군요. 게다가 덴마크말을 배울 적조차 나라에서 모두 돈을 댄다고 합니다. 2016.5.11.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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