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어서, 그리운 것들 오롯하여라
박미경 지음 / 봄날의책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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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80



“바람이 세서 갯꽃 갯무 다 작고 파리도 작은데 이뻐”

― 섬, 멀어서 그리운 것들 오롯하여라

 박미경 글

 김영준·안홍범·이진우·이한구 사진

 봄날의책 펴냄, 2016.12.20. 13000원



  설을 맞이해서 시골로 찾아온 아이를 마을 어귀에서 만납니다. 우리 집 아이들하고 바깥마실을 가는 길에 스치듯이 만납니다. 아이들은 서로 어디에 사느냐 어디에서 왔느냐 하고 묻는데, ‘서울에서 고흥에 왔다’고 하는 아이가 문득 “서울에서는 자동차 매연 때문에 숨막혀서 못 살아.” 하고 말합니다. ‘고흥에 사는 아이’는 서울 아이가 말하는 ‘자동차 매연’을 잘 모릅니다. 서울에 거의 간 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지요.


  설이 지나가면 서울 아이는 서울로 돌아갑니다. 그 아이 어버이는 고흥에서 나고 자랐어도 아이를 서울에서 낳았으니 아이는 ‘서울 아이’입니다. 어머니랑 아버지를 따라서 고흥이라는 시골에 오기는 했으나 아이가 늘 지내는 터전은 서울이에요. 설이나 한가위에 고흥이라는 고장에 오면서 서울 아이는 ‘자동차 매연이 없는 데가 한국에 있구나!’ 하고 느꼈구나 싶어요. 이밖에 또 무엇을 더 느끼거나 생각했는지 궁금하지만, 아이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에 할머니 할아버지 집으로 달려갑니다.



“다 어릴 적부터 봐온 분들이라 모두가 아짐이고 아재지요. 제가 맘씨가 좋아서가 아니라, 섬에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누구라도 그렇게 한다니까요.” (41쪽)


“먼저 피난 내려온 손위 시누가 살기 좋다고 해서 비금도 섬엘 들어갔는데, 여자들이 낭구하고 디딜방아 찧고 밥하고, 남자들은 ‘그냥’이야 그냥. 우리 영감이 일이라도 할라치면, ‘저기 피난민에 남자가 낭구하네.’ 하고 손가락질을 하는 거야. 그래 살 수가 있어야지.” (93쪽)



  ‘사진위주 갤러리 류가헌’을 이끄는 박미경 님이 글을 쓰고, 김영준·안홍범·이진우·이한구 님이 사진을 찍은 《섬, 멀어서 그리운 것들 오롯하여라》(봄날의책,2016)에 흐르는 섬 이야기를 읽습니다. 《섬》이라는 책은 “멀어서 그리운 것들 오롯하여라”라는 이름으로 섬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엮습니다. 섬은 뭍에서 멀고, 뭍은 섬에서 멀다고 합니다. 서로 멀리 떨어진 채 그리워하는 사이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꽃게를 잡으면 한 틀에서 30가마가 잡혀 올라오기도 했어요. 뗏마가 무게를 못 이겨 침몰된 적도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물 서른 틀을 놓아도 3가마다 잡힐까 말까 해요. 꽃게만 바라보고 살 수 없는 지경이 되었지요.” (122쪽)



  섬이든 뭍이든 모두 사람이 사는 땅입니다. 가만히 보면 뭍이라고 해도 지구에서 뭍은 30퍼센트 즈음이고 바다는 70퍼센트 즈음입니다. 너른 땅덩이라고 하더라도 바다에 넓게 둘러싸여요. 어느 모로 보면 ‘뭍’이라고 하는 땅덩이는 ‘커다란 섬’일 수 있어요. 뭍이나 섬이라는 이름으로 가르지만 우리는 어디에서나 물(바다)에 둘러싸운 터전에서 삶을 짓는다고 할 만해요.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어디에 터를 내리면서 살림을 일군다고 하더라도 ‘물(바다)하고 함께 있는’ 살림이라 할 수 있어요. 밥을 하거나 국을 끓일 적에 물이 꼭 있어야 하고, 빨래를 할 적에 물이 꼭 있어야 합니다. 씻을 적에도 물이 꼭 있어야 해요.


  사람 곁을 둘러싼 풀하고 나무한테도 물이 꼭 있어야 해요. 물이 있기에 삶자리를 가꿀 수 있어요. 물이 있으니 숲을 이룰 수 있어요. 물이 있어 집을 짓고 마을을 닦으면서 이곳에 곱고 푸른 숲이 펼쳐져요. 뭍에서든 섬에서든 물을 찾고, 숲을 살피며, 보금자리를 보듬어요.



“여기가 고향이니까, 밤에 누워 있으면 이맘때 산 속 어디어디에 뭐가 있고 뭐가 나는지 훤히 보여. 어느 돌 밑에 뱀이 있는가 없는가, 무슨 나물이 지금은 얼마큼 자랐는가 하고 말여.” (134쪽)


“가을에 와요, 고구마 캐고 그럴 때. 그때 와야 푸지지. 아직은 섬이 줄 것이 없어.” (180쪽)



  《섬》에 나오는 섬사람은 뭍손을 바라보면서 살가이 말을 겁니다. 뭍에서 섬을 찾아든 뭍사람은 섬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차곡차곡 아로새깁니다. 섬사람은 뭍사람한테 뭔가 건네고 싶은데 섬살림이 아직 푸지지 않은 철에 찾아온 뭍손한테 안타깝다는 마음을 내비칩니다. 뭍손은 섬지기한테서 아무것도 안 받아도 푸진 마음인데, 빈손으로 내비치는 살가운 숨결을 헤아리면서 다시금 이야기 한 자락을 아로새깁니다.


  푸진 가을에 섬에 찾아들면 줄 것이 많다는 섬입니다. 그런데 섬뿐 아니라 여느 뭍에서도 푸진 가을에는 길손이나 이웃한테 내어줄 것이 많을 테지요. 바람이 센 겨울에는 섬도 뭍도 춥습니다. 따스한 봄에는 섬도 뭍도 따스합니다. 눈이 내리는 날에는 섬도 물도 하얗습니다. 잎이 지는 철에는 섬에도 뭍에도 나무마다 잎을 떨구어요.



해녀였던 어머니의 유품인 낡은 구덕 밑바닥에 나일론 줄을 덧대면서 “이거 다 되면, 나도 다 될끼다.” 한다. 얼기설기 엉킨 줄과 손등이 서로 닮아 애달프다. (187쪽)


“섬에서는 놀고는 못 살아요. 갑갑해서. 뭐라도 일을 해야지요.” “그렇게 움직이고 부지런히 일하면 뭐든 얻어요.” “생각해 보면, 굴업도는 하늘이 주신 선물 같은 섬이에요.” (203쪽)



  뭍하고 섬 사이에 다리가 놓이며 섬이 더는 섬 같지 않은 곳이 늘어납니다. 섬에서 뭍까지 다리가 놓이면서 조용한 섬마을을 찾아드는 도시내기 뭍손이 늘어납니다. 이러면서 섬에서 나고 자라 그예 섬에 뿌리를 내릴 만하던 이들이 빠르게 뭍으로 빠져나갑니다.


  섬에서 뭍으로 빠져나가는 사람은 많되, 뭍에서 섬으로 깃드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시골에서 도시로 빠져나가는 사람은 많되, 도시에서 시골로 깃드는 사람은 무척 적어요.


  오늘날 한국에서 섬이나 시골에는 어린이하고 젊은이 모습이 자취를 감춥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섬이나 시골에는 늙은 할머니하고 할아버지가 부쩍 늘어납니다. 섬에서 고기를 낚거나 갯것을 캐거나 따는 손길은 차츰 나이를 먹습니다. 어리거나 젊은 도시는 차츰 부피를 키웁니다. 섬에서 내려온 이야기는 앞으로 하나둘 스러지리라 봅니다. 시골에서 흘러온 살림은 앞으로 천천히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섬은 바람이 세서, 갯꽃, 갯무 다 작고, 심지어 파리도 작아요. 그런데 이뻐, 생생하게 살아 있어.” (213쪽)



  바람이 센 탓에 꽃도 무도 파리도 작다는 섬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모두 생생하게 이쁘다는 섬이라고 합니다. 집도 길도 자동차도 학교도 가게도 모두모두 커다란 도시에서는 어떤 모습일까요? 모두 커다란 도시에서는 무엇이 이쁘고 무엇이 생생한 숨결일까요?


  섬에 한 발짝 내민 뭍손은 섬을 그리면서 섬 이야기를 갈무리합니다. 섬에 사는 섬사람은 따로 글이나 사진이나 책으로 섬 이야기를 갈무리하지 않곤 합니다. 시골에 사는 시골할매 시골할배도 굳이 글이나 사진이나 책으로 시골 이야기를 갈무리하지는 않는다고 할 만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이 땅에 아로새기면서 남길 씨앗은 무엇이 될까요. 우리가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한 이 땅과 이야기는 무엇이 될 적에 아름답거나 싱그럽거나 사랑스러울까요. 경제성장율을 물려주면 아이들이 좋아할까요? 전쟁무기를 물려주면 아이들이 기뻐할까요? 더 큰 자동차하고 고속도로를 물려주면 아이들이 반길까요? 핵발전소와 시멘트 문명을 남기면 아이들이 좋아할까요?


  투박한 섬지기 할매 손에서 흐르는 이야기가 《섬》에 가만히 깃듭니다. 수수한 섬지기 할배 눈에서 흐르는 이야기가 《섬》에 고즈넉하게 내려앉습니다. 2017.1.30.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 이 글에 붙이는 사진은 봄날의책 출판사에서 고맙게 보내 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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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 신영복 유고 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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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90



냇물은 바다 되고 빗물 되어 숲을 적신다

―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신영복 글

 돌베개 펴냄, 2017.1.2. 15000원



  ‘더불어숲’하고 ‘처음처럼’ 같은 글월을 남기기도 한 신영복 님은 스무 해 동안 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한창 푸르게 뻗어 나가던 스물일고여덟 살 무렵부터입니다. 어려서 배운 숨결을 젊어서 펼치려 할 즈음 날벼락을 맞은 셈입니다.


  신영복 님을 감옥으로 끌고 간 정치권력은 수많은 사람을 감옥에 가두기도 했고, 목숨을 빼앗기도 했습니다. 감옥으로 끌려가지 않거나 목숨을 겨우 건사한 사람들도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를 지나는 동안에 푸른 꿈을 펼치기는 수월하지 않았습니다. 독재라고 하는 정치권력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습니다.



어느 지루한 일요일 온종일 겨우 수필 한 편을 읽고 난 노인이 내뱉들이 들려준 말은 “자기 집 뜰이 좁아서 꽃을 못 심는다나 뭐 그런 걸 썼어”라는 확실한 한마디였다. 화려한 단어, 유려한 문장에 결코 현혹되지 않는 그의 통찰은 그의 무식에서 온 것이다. (24쪽)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의 생각은 결국 자기가 겪은 삶의 결론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어느 개인에 대한 이해는 그가 처한 처지와 그 개인을 함께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37쪽)



  함께 숲이 되기에 ‘더불어숲’이요, 늘 고이 흐르는 살림이기에 ‘처음처럼’입니다. 나 혼자서는 숲이 못 되고, 너 혼자서도 숲이 못 됩니다. 그러나 나나 너나 어느 한 사람이 스스로 먼저 작은 씨앗으로 뿌리를 내리기에 서로 즐거이 어우러지면서 짙푸른 숲으로 나아갑니다. 처음부터 크게 우거진 숲이 아니라, 처음에는 작은 씨앗에서 비롯하며 함께 어깨동무를 하는 숲이에요.


  처음 품은 마음을 마지막에도 고이 품을 수 있기에 ‘처음처럼’입니다. 한결같을 수 있도록, 사랑스러울 수 있도록, 아름다울 수 있도록, 언제나 우리 스스로 우리 모습을 가꾸자고 하는 다짐인 처음처럼이라고 할 만합니다.


  이 두 가지 다짐말은 어떻게 태어날 수 있었을까요? 괴롭고 아프던 스무 해 감옥살이에서 시나브로 길어올린 다짐말일 수 있습니다. 스물일고여덟 살부터 스무 해 동안 사회 바닥자리에서 숨죽이며 눌려야 했지만 이때에 스스로 새롭게 배웠기에 깨달은 다짐말일 수 있어요.



본다는 것, 관계있다는 것,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된다는 것, 이것은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해요. 오늘날 자행되는 차마 못할 짓들이 대부분 보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49쪽)



  신영복 님이 흙으로 돌아간 지 한 해입니다. 2016년 1월 15일에 흙으로 돌아간 신영복 님을 기리는 뜻에서 두 가지 책이 나왔습니다. 하나는 여러 매체와 했던 만나보기를 갈무리한 《손잡고 더불어》이고, 다른 하나는 그동안 따로 책에 묶지 않던 글하고 강연 자료를 엮은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입니다.



“폭력을 사용하여 강제하는 경우를 성폭행이라고 한다면 똑같은 행위를 폭력 대신 돈으로 강제하는 경우 이를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가?” 누이를 망쳐 버린 못난 오라비의 한 맺힌 질문을 잊을 수 없습니다. (199쪽)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를 읽으면 신영복 님이 감옥에서 만나서 삶을 새롭게 배우도록 일깨운 죄수 이야기가 흐르기도 합니다. 말장난일 뿐인 글을 읽고서 이 말장난에 사로잡히거나 휘둘리지 않는 늙은 죄수가 있었다고 해요.


  신영복 님은 감옥에서 나온 뒤 명상을 배워 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랍니다. 그런데 명상 수업에서 시키는 대로 하기보다 감옥에서 으레 했듯이 ‘벽보기’를 했더니 외려 마음이 차분해지더라고 하는 이야기가 흐르기도 합니다.


  신영복 님도 서울대를 나왔습니다. 그런데 스무 해 옥살이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와서 여러 사람들을 마주하고 보니, ‘서울대 나온 사람’은 너무 논리를 따지더랍니다. 그만 ‘논쟁을 하는 일이 실천이 되는’ 모습을 흔히 보여주곤 하더라 하고 느낀다는 이야기가 흐르기도 합니다.



대개의 인텔리 출신들은, 특히 서울대 출신들은 모든 문제를 논리적으로 접근하려 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논쟁도 무조건 논리 정합적인 방식으로 전개하려고 하지요. 자연히 논의는 논쟁적이 되기 쉽고 소모적인 사투로 이어지는 경향을 띠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논쟁 그 자체가 실천이 되고 마는, 다시 말해서 실천적 성과는 없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369쪽)



  냇물은 흐르고 흘러서 어디로 갈까요? 가만히 짚어 봅니다. 냇물은 골짜기에서 비롯합니다. 골짜기는 멧자락 한켠에 있습니다. 우리가 마시는 모든 물은 처음에는 깊은 멧자락에서 비롯하는데, 골짝물이 냇물이 되고, 냇물이 가람으로 됩니다. 가람은 개어귀를 지나면서 바다가 되어요. 이 바다는 바람을 타고 구름으로 되었다가, 빗물로 되어 다시 이 땅으로 찾아와요.


  냇물은 가람이요 바다이며 구름이고 비인 셈입니다. 우리가 마시는 모든 물은, 또 우리 몸을 이루는 물은, 바로 냇물이자 가람이자 바다이자 구름이자 비라고 할 만합니다.



책더미 속에 귀뚜라미가 있나 보다. 아까부터 울었지만 지금에야 깨달았다. 기계공업의 생산구조를 투자율의 시각에서 보느라고 귀뚜리 소리마저 스치다니. (140쪽)


대전교도소가 새 집을 지어 이사한 후 가장 기뻤던 일은 산이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구속되고 난 후 16년 만의 일이었다. (299쪽)



  “기계공업의 생산구조를 투자율의 시각”에서 보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느라 귀뚜리 노랫소리를 놓쳤다고 해요. 열여섯 해 만에 옮긴 다른 교도소에서는 산을 볼 수 있어서 기뻤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생각을 마음에 품으면서 하루를 산다고 할 만할까 하고 곱씹어 봅니다. 우리는 곁에 무엇을 두면서 늘 바라보는가 하고 되새겨 봅니다. 신영복 님은 귀뚜리 노랫소리를 놓쳤구나 하고 깨달으며 ‘스스로 선 자리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며 생각할 적에 즐겁고 아름다운 삶’일까 하고 돌아봅니다. 갇힌 교도소라 하더라도 ‘산을 볼 수 있’는 자리가 삶에 얼마나 푸른 기쁨이 되는가를 온몸으로 배웁니다.


  우리가 저마다 작은 씨앗이자 나무가 되어 ‘더불어숲’이 된다면, 사회뿐 아니라 마을과 집도 짙푸르게 달라지리라 봅니다. 우리가 서로 아끼고 보듬는 마음을 ‘처음처럼’ 노래하면서 아침을 연다면, 우리가 선 보금자리부터 아름다움으로 깨어나리라 봅니다. 작은 한 걸음이 어깨동무하여 나아가는 큰 걸음이 되지 싶어요. 시냇물이 너른 가람이 되어 바다로 거듭나요. 바다에서 피어난 빗물이 온누리를 싱그러이 품습니다. 2017.1.28.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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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같이 가자!
안미선 지음,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성매매방지중앙지원센터 기획 / 삼인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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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78



‘성매매 남성’한테도 사랑을 가르치며 같이 가자

― 언니, 같이 가자!

 안미선 엮음

 삼인 펴냄, 2016.11.30. 14000원



  성매매 피해자가 성매매 피해에서 벗어나도록 손길을 내미는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목소리가 깃든 《언니, 같이 가자!》(삼인,2016)를 읽으면서 ‘사람이 사랑하는 사이’를 떠올립니다.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곳에는 사랑이 없다고 할 만하지 싶습니다. 성매매가 불거지는 곳에서는 사람 사이에 사랑을 꽃피우는 숨결이 자라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곰곰이 따지자면, 사람 사이가 사랑이 아닌 돈이나 권력에 억눌리는 자리에서 성매매가 불거지지 싶습니다.



누구는 태어났을 때부터 성매매를 하고 싶어서 태어났겠어요? 그게 어떤 건지 알고나 하는 말이에요? (28쪽)


업주들이 직접 감금하는 게 아니라 해도 채무 문제들이 얽혀 있기 때문에 언니들이 업소에서 빠져나오기가 여전히 어려운 거예요. (37쪽)


그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고 끔찍하지만 벗어날 자신이 없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도 어려우니 힘들게 버텨내면서 그 안에 있는 거예요. (44쪽)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어떻게 지낼까요?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서로 함부로 하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고서 돈만 따진다면 어떻게 지낼까요? 이때에는 겉치레로 살필 뿐, 돈하고 먼 자리에서는 함부로 하기 쉬워요.


  우리가 서로 아끼는 사이라면 집과 마을과 나라를 어떻게 가꿀까요? 다 같이 즐겁게 이룰 살림을 생각하면서 아름답게 땀을 흘릴 테지요. 우리가 서로 아끼지 않는 사이라면 집이며 마을이며 나라이며 어떻게 될까요? 이때에는 그만 제 밥그릇을 챙기는 데에 사로잡히고 말리라 느껴요.


  남성이 여성을 돈이나 권력으로 거머쥐거나 움켜쥐거나 흔드는 얼거리가 성매매이지 싶습니다.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기 어려운 얼거리에 옭아매면서 성매매가 불거지지 싶습니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른 성이지만 서로 같은 숨결이요 사람으로서 사랑을 나누는 사이라는 대목을 잊거나 잃으면서 생매매가 생기고, 이에 따라 돈이 움직이면서 바보스러운 틀이 단단해지지 싶습니다.



보통 어린 시절부터 폭력을 당했고 지금 스무 살이라면 이십 년의 트라우마 속에, 서른 살이라면 삼십 년의 트라우마 속에 방치된 경우가 많아요. (154쪽)


(핀란드에서는 사회복지시설에서) 이 여성이 성매매 피해로 들어왔는지 성폭력 문제로 들어왔는지, 그곳에서 구분하지 않아요. 심지어 여러 반려동물들도 같이 와서 머물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성매매라는 표면의 양상을 국한해 볼 게 아니라 모두가 건강하게 살기 위해 사회의 시스템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200쪽)


한국 사회는 성매매 피해 여성이 만든 빵을 편안하게 사 먹을 수 있는 계층이 많지 않은 거예요. 심지어 성매매 피해 여성이 교회에 들어가기만 해도 일반 사람들이 너무 싫어해요. ‘어딜 감히 교회에 발을 들여놔?’ 이런 눈이죠. (217쪽)



  《언니, 같이 가자!》에 나오는 이야기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이야기입니다. 성매매 피해자가 되는 여성은 먼 나라 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성욕을 돈으로 풀거나 맺으려 합니다. 사랑을 배우지 못한 탓에 사람을 돈으로 휘두르거나 부리면서 성매매가 불거집니다. “파는 사람”이 있기에 “사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다. “팔게 내모는 사회”에서 등을 떠밀거나 몰래 속이기 때문에 성매매가 생깁니다. 그리고 “사는 사람”인 남성은 사랑을 못 배운 채 억눌리거나 짓눌리는 사회 틀에서 꿈을 그리지 못하고 성욕만 자꾸 떠올리고 말아요.


  왜 군대 둘레에서 어김없이 성매매가 이루어질까요? 일제강점기에 종군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짓밟은 일은 왜 생겼을까요? 일터와 사회와 마을과 군대에서 따돌림받거나 괴로운 사내는 왜 성욕에 눈을 돌리면서 성매매 사회를 더 단단히 하고야 말까요?



사람들이 성매매 여성에게 관심의 초점을 맞추는 것은 그게 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문제 있는 여성은 따로 있으니까’라고 여기면 사람들은 부채감이나 방관자적인 태도에 면죄부를 받는 거잖아요. (267쪽)


사실 낙인은 여성들한테 폭력적인 거예요. 성 구매에 대한 낙인은 해프닝으로 끝나는데 성매매 경험 여성에 대한 낙인은 그렇지 않죠. 여성한테는 그게 삶이 흐트러질 정도의 고통이 되니까 더 큰 폭력이 되는 거예요. (273쪽)



  ‘아픈 언니’한테 손길을 내미는 이들은 밤낮없이 아픈 언니 곁에서 지켜보고 함께하면서 살림을 배우고 가르칩니다. 버스나 전철조차 타 본 적이 없는 ‘아픈 언니’는 집장촌에서 겨우 달아났어도 ‘아는 사람’한테 도리어 집장촌으로 되팔린 일을 겪으며 ‘낯선 사람을 만나기’를 무척 꺼리거나 두려워합니다. 아픈 사람을 쓰다듬지 못하는 사회 얼거리인 셈입니다. 어느 모로 보면 아픈 사람을 더욱 아프게 하는 사내한테 제대로 ‘사랑 교육·삶 교육·사람 교육’을 하지 못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니다.


  《언니, 같이 가자!》는 아픈 언니한테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한테서 아픈 언니들 삶과 사랑과 꿈을 들은 이야기를 담습니다. 이 책을 덮으며 한 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아픈 언니한테 손을 내미는 일 못지 않게, ‘언니를 아프게 하는 사내’


한테, 그러니까 ‘성매매 남성’한테 사랑을 가르치고 삶과 사람을 처음부터 하나씩 제대로 가르치는 사회로 거듭나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지요.


  입시만 바라보는 학교교육은 하루 빨리 멈추어 참다운 살림을 가르쳐 주어야지 싶습니다. 군사훈련만 시키는 군대 사회도 얼른 평화를 제대로 일깨우는 얼거리로 거듭나야지 싶어요. 앞으로는 “언니도 같이 가”고 “오빠도 같이 가”는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빕니다. 2017.1.2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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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일본인입니다만 - 한국인 같은 일본인, 일본인 같은 한국인 부부의 일본 이야기
케이 지음 / 모요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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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89



“이 쉐끼, 나쁜 여자.”

― 남편이 일본인입니다만

 케이 글

 모요사 펴냄, 2016.12.26. 15000원



  일본으로 배움길을 떠난 케이(정현숙) 님은 석사논문을 발표하고 나서 어느 건축회사 디자인 일을 맡기로 합니다. 이때에 만난 어느 일본사람하고 끈이 이어져 혼인을 했고, 일본에서 살며 틈틈이 한국으로 마실을 오는 나날을 보낸다고 합니다. 일본사람인 곁님은 한국을 좋아하고 틀림없이 예전 삶에서는 한국에서 태어났으리라 여긴다고 합니다. 일본 한자 이름을 풀이하여 ‘깨달음’이라는 한국 이름을 써 보기도 하고, 한국에 있는 장모님은 이녁을 ‘깨 서방’으로 부른다고 해요.


  한 지붕 두 나라 살림 이야기를 엮은 《남편이 일본인입니다만》(모요사,2016)은 책이름처럼 일본사람인 곁님을 두면서 지내는 동안 겪거나 느끼거나 배우거나 지켜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일본 이름으로 불릴 때의 내 모습과 한국 이름으로 불릴 때의 내 모습이 약간 다를 때가 있다. 일본 이름으로 불리면 가끔 내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일본인 모드로 행동한다. 더 예의 바르게, 더 상냥하게, 더 열심히, 더 바르게 몸이 움직인다. (21쪽)


외국인, 특히 한국인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을 당연시하는 단체와 그룹들이 아직도 일본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는 게 놀랍지만 그것이 엄연한 21세기 일본의 현재 모습이다. (23쪽)



  일본에서 사는 케이 님은 ‘외국인 차별’이나 ‘한국인 차별’을 곧잘 보거나 겪는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이 같은 사람(일본사람)이 있다니 무척 놀랍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만 그와 같지 않아요. 한국도 어느 대목에서는 놀라울 만큼 바보스러운 모습을 보입니다. 한국에서도 ‘외국인 차별’이 있어요. ‘이주노동자’가 아직 차별을 받아요. 한국으로 시집오는 아시아 여성도 아직 차별을 받지요. 이 같은 모습은 차츰 나아진다고 하지만 아직 뿌리뽑히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부정부패가 얼룩진 한국 정치·경제·사회도 무척 놀랄 만한 바보스러운 모습이지 싶어요. 더구나 부정부패를 일삼은 정치권력자를 따르거나 믿거나 추켜세우는 이들이 꽤 많기도 합니다. ‘일본 극우’는 일본에서 바보스러운 모습으로 놀랍다면 ‘한국 극우’는 한국에서 바보스러운 모습으로 놀랍다고 할 만하다고 느껴요.



(남편) 깨달음이 얼굴을 내 얼굴에 바짝 들이대고는 한국말로 “이 쉐끼, 나쁜 여자.”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몰랐다. “…… 어디서 그런 말을 …… 배웠어?” “한국 영화에 많이 나오잖아?” “그래도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38쪽)


“조카들이 나를 위해서 일본어로 한마디씩 준비해 준 게 정말 감동적이었어. 일본인인 나를 위해서 일본어를 준비한 그 마음과 정성이 정말 예쁘고, 고맙고, 미안했어. 우리 조카들은 한국인 숙모를 위해 한국어 인사를 준비하려는 생각은 아마 못할 거야.” (51쪽)



  케이 님 곁님이 어느 날 “이 쉐끼, 나쁜 여자.”라고 말했답니다. 뭔가 못마땅한 일이 있어 케이 님한테 그 마음을 나타내려고 ‘어설프게나마 배운’ 한국말을 썼다고 해요. “이 쉐끼, 나쁜 여자.” 같은 말을 듣는 사람이 어떤 마음이나 느낌일는지까지는 모르지만, ‘영화에 자주’ 나와서 이 말이 익숙했고, 못마땅하다고 느낄 적에 이런 말을 쓰면 되겠거니 하고 여겼대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한국 영화에 거친 말이 퍽 자주 나옵니다. 연속극에서도 그렇고요. 한류라는 이름으로 한국 영화나 연속극이 일본이나 중국이나 여러 나라로 퍼지곤 하는데, 이런 영화나 연속극에서 흘러나오는 ‘한국말’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해 본다면, 꽤 아찔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영화에 나오는 바보스러운 거친 말’이 ‘한국에서 가볍게 쓰는 여느 말’인 줄 생각할 수 있어요.



“일본에서 두루마리 화장지는 말 그대로 화장실에서만 쓰는데 한국에서는 여러 용도로 쓰잖아. 이렇게 이사 선물로도 쓰고 식당에서도 쓰잖아. 내가 처음 한국에 갔을 때 식당 테이블마다 두루마리 화장지가 놓여 있어서 좀 거북했거든. 한국에서는 화장실 용과 방 안에서 쓰는 휴지를 구분하지 않는가 보다라고 생각했지.” (133쪽)



  《남편이 일본인입니다만》에 나오는 ‘깨달음’이라는 분은 ‘일본사람이기에 더 예의 바르거나 상냥하거나 바지런하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한국에도 예의 바르거나 상냥하거나 바지런한 사람이 많아요. 일본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일본이나 한국에도 건방지거나 짓궂거나 게으른 사람이 똑같이 있어요. 그래서 어떤 모습을 보면서 ‘일본다운’ 모습이거나 ‘한국다운’ 모습이라고 잘라서 말하기는 어렵지 싶습니다. 우리가 서로 아끼거나 헤아리려는 몸짓으로 어우러질 적에 느끼거나 마주하는 모습이지 싶어요.


  따스한 숨결이 되기에 서로 따스한 마음을 나누지 싶습니다. 매몰찬 몸짓으로 부딪히기에 그저 서로 매몰차다고 느끼지 싶습니다. 나고 자라며 지켜보는 살림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는 한국과 일본 사이뿐 아니라, 같은 한국이나 일본 사이에서도 집집마다 달라요. 김치 맛이나 된장 맛이 집집마다 달라요. 옷가지를 개거나 설거지를 하는 손길도 집집마다 다르지요.


  다 다른 살림을 생각할 수 있기에 서로 즐거이 만나요. 서로 다른 삶을 고이 바라볼 수 있기에 동무로 사귀거나 짝꿍이 될 수 있어요.



배추에 속을 넣는 작업을 하는데 역시 눈썰미가 있어서인지 그녀는 한 번밖에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혼자서 아주 잘했다. 정중히 무릎을 꿇고 차분히 김치를 버무리는 모습이 역시 일본사람 같다고 했더니 한국사람처럼 양반다리를 하는 게 자기는 너무 힘들다고 했다. (308쪽)


지금껏 한국 역사를 일본에서 발행된 역사책으로만 보다가 한국어로 된 역사책을 접하게 되고 그 역사를 생생히 알려주는 학생들과 대화하다 보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던 한일관계와는 전혀 다른 부분이 너무 많아서 혼란스러웠단다. (324쪽)



  일본에서 나오는 역사책이라고 해서 ‘우 편향’이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도 역사를 올곧게 바라보면서 책으로 쓰는 학자가 많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역사를 뒤틀거나 비틀려는 학자가 있어요. 이리하여 ‘국정 역사교과서’가 크게 말썽이지요. 더 따진다면 역사를 다룬 교과서뿐 아니라 사회나 문화나 노동이나 경제를 다루는 교과서에서도 ‘우 편향’이니 ‘극우’로 치달을 적에는 엉터리 이야기를 들려주겠지요.



“난 솔직히 받고 싶었어. 어머님이 뿌리치는 내 손을 잡고 꼭 쥐어주는데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서 그냥 받았어. 다시 돌려드리더라도 그때는 그냥 어머님이 하시는 대로 놔두고 싶더라고.” (82쪽)



  케이와 깨달음이라는 두 분이 짓는 아기자기한 살림 이야기는 누리사랑방(http://keijapan.tistory.com/)에 틈틈이 올라옵니다. 처음에는 한국이 그리워 누리사랑방에 글을 올렸다는데, 이제 이 수수한 글은 한 지붕 두 나라 사이에서 가꾸는 따스하고 즐거운 이야기로 거듭나리라 봅니다. 아끼는 마음이 서로 닮아 가고, 헤아리는 마음도 서로 닮아 가는 길에서, 두 가시버시뿐 아니라 두 나라 사이에서도 슬기롭게 이어지기를 빕니다. 2017.1.2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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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100 Universe 1 -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매혹적인 천문학 이야기 과학의 100가지 발견
자일스 스패로 지음, 강태길 옮김 / 청아출판사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288



해가 우리 은하를 도는 데에 2억 년 걸린다면

― 우주 100,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매혹적인 천문학 이야기 1

 자일스 스패로 글

 강태길 옮김

 청아출판사 펴냄, 2016.12.10. 15000원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까지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별을 보며 살았습니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고 손으로 흙을 만질 적에는 누구나 별을 보며 살았어요. 십 리나 이십 리쯤 가뿐히 걸어다니던 무렵에는 언제나 별을 보며 살았어요. 새벽에 하루를 열고 저녁에 고요히 하루를 닫던 즈음에는 참말로 늘 별을 보며 살았지요.


  천문학자나 과학자가 아니어도 누구라도 별을 보았어요. 우리는 별자리를 더듬으며 삶자리를 살폈어요. 우리는 별자리를 읽으며 이야기를 지었어요. 우리는 별 하나마다 마음을 담아 서로 아끼는 살림을 가꾸었어요.



우연치고는 놀랍게도, 갈릴레오가 중요한 발견들을 이뤘던 바로 그해에 요하네스 케플러는 ‘질서정연한 천구’라는 우주에 대한 오랜 이론을 산산조각 내 버렸다. 지동설의 이론적 근거를 확보하는 혁신적인 내용의 책을 출간한 것이다. (19쪽)


은하수는 밤하늘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것이 우리 은하 평면에 있는 고밀도의 별 구름들로부터 형성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천문학자들이 우리 은하가 많은 은하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은 채 100년도 되지 않았다. (40쪽)



  어쩌면 너무 바쁜 나머지 별을 볼 틈이 없다고 할 오늘날입니다. 천문학자나 과학나 동호인이 아니라면 굳이 별을 볼 일이 없다고 여길 만한 요즈음입니다. 딱히 별을 살피지 않아도 손전화 기계 하나로 길을 잘 찾을 수 있습니다. 굳이 별자리를 읽지 않아도 우리 둘레에는 온갖 이야기가 많습니다. 별 이야기는 그야말로 ‘별나라’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별을 잊거나 잃는다고 할 만한 흐름에서 《우주 100,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매혹적인 천문학 이야기》(청아출판사,2016)를 읽어 봅니다. 지구에 머무는 삶이 아닌 우주를 바라보는 삶을 생각합니다. 지구에서도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 머물기보다, 지구 바깥으로 눈을 뻗어 온누리를 드넓게 생각해 봅니다.



최근 연구는 아인슈타인 이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1980년대 이후, 몇몇 우주론자들은 빛의 속도가 느려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 호기심을 가졌다. 우주 초기의 빛의 속도가 지금보다 더 빨랐다는 사실은 우주의 현재 모습을 기술할 때 나타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 주며, (63쪽)


만일 우주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됐다면, 우주가 ‘탄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증거는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계속 존재해 왔던 것은 아닐까? (72쪽)



  해와 달이 있는 ‘우리 해누리(태양계)’는 ‘우리 별누리(은하)’ 가운데 아주 자그마한 모래알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 별누리는 수많은 별누리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이 별누리도 더 커다란 별누리 가운데 아주 작은 모래알처럼 깃들 뿐입니다.


  얼핏 보기에 우리 둘레에 아주 작은 모래알이나 먼지 알갱이가 있어요. 그런데 이 모래알이나 먼지 알갱이에는 ‘먼지 알갱이를 바라보는 이’하고 똑같은 ‘지구 세계’가 있을 수 있어요.


  우리가 우주를 바라보거나 생각할 적에는 ‘먼지 알갱이에 깃든 또 다른 지구’를 그릴 수 있어요. 여기에만 있는 지구가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먼지 알갱이에 깃든 지구를 그릴 수 있지요. 그리고 우리 지구도 먼지 알갱이 하나와 같아서 다른 어딘가에서는 우리 삶자리인 ‘지구’가 그저 먼지 알갱이 하나로 다루어질 수 있어요.



천문학자들은 어떻게 태양의 내부 구조를 조사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대답은 ‘태양에 귀를 기울임으로써’이다. 태양의 표면은 음파와 유사하게 다양한 방식으로 진동하는데, 광구 주위로 퍼져 나가고 내부를 통과하는 이 파동의 성질은 그들이 지나간 물질의 성질을 밝혀 줄 수 있다. (127쪽)


화석은 지구 표면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되자마자 지구에 생명이 출현했음을 보여준다. (176쪽)



  《우주 100》은 오늘날 과학기술로 지구 바깥을 살펴본 이야기를 백 가지로 간추려서 책 두 권으로 들려줍니다. 여느 사람들은 가까이하기 힘든 과학기술이라 할 테지만 이 같은 책 한 권으로도 우주 바깥을 가만히 그려 볼 수 있어요. 달을 새롭게 바라보고, 토성과 화성과 목성을 새롭게 바라봅니다. 소행성을 새롭게 바라보고 해와 해누리를 새롭게 바라봅니다.


  멈춘 우주가 아니라 늘 움직이는 우주를 바라봅니다. 우리 몸이 살아남을 수 있는 나이로는 어림하기 어려울 테지만, 백만 해나 억만 해라는 숫자를 가늠해 보면서 지구와 해와 별 모두가 살아온 나날을 그려 봅니다. 지구에 첫 목숨붙이가 태어난 때를 꿈처럼 그리고, 지구 아닌 다른 별에 태어났을 목숨붙이도 꿈처럼 그려 보아요.



태양이 우리 은하를 한 번 공전하는 데에는 2억 년이 걸리지만, 궤도의 흔들림에 의해 태양계는 3천만 년마다 한 번씩 우리 은하 원반의 고밀도 평면을 지나간다. (230쪽)


세레스는 태양이 2.5천문단위 안으로 결코 들어온 적이 없는 천체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따뜻한데, 그 표면 온도는 섭씨 영하 35도에 이른다. 이 온도는 얼음의 표면이 승화되기에는 충분한 온도이다. (266쪽)



  우리한테 따스한 볕을 베푸는 해가 우리 별누리를 한 바퀴 도는 데에는 햇수로 2억이 든다고 해요. 우리가 말하는 ‘해(햇수)’는 지구가 해를 한 바퀴 도는 날이에요. 지구는 해를 돌지만 해는 우리 별누리를 돌고, 우리 별누리는 또 더 큰 별누리를 도는데, 이 더 큰 별누리는 더욱 큰 별누리를 돌고 ……. 우리는 이 같은 ‘크기’를 얼마나 헤아릴 만할까요. 우리가 이 같은 별과 별누리를 헤아리는 마음을 품을 수 있다면 우리 삶을 어떻게 지을 만할까요.


  너른 마음을 품으면서 너른 눈길이 된다면 우주뿐 아니라 지구와 마을을 한결 너그럽고 넉넉하며 넓게 품으면서 바라볼 만할까요. 너른 마음을 못 품거나 너른 눈길이 못 되는 탓에 자꾸 싸움과 다툼과 미움이 판치지는 않을까요.


  달 밝은 밤에 달도 보고 달하고 얽힌 이야기도 나누면서 삶을 되새겨 보면 좋으리라 생각해요. 달과 별을 함께 누리고, 환한 해를 함께 누릴 수 있는 삶일 때에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전깃불로 밝히는 도시 밤거리가 아닌, 별빛으로 눈부신 온누리 한마을이 되기를 빕니다. 2017.1.18.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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