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을 꽃 피우다 - 불교를 통해 어떻게 행복을 얻을 것인가
광우 지음 / 스토리닷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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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09


마음에 꽃피니 삶에도 꽃피네
― 공덕을 꽃 피우다
 광우 글
 스토리닷 펴냄, 2017.6.3. 14000원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을 처음 들은 어린 날을 떠올려 봅니다. 이다음으로 들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을 듣던 어린 날을 함께 떠올려 봅니다. 두 말은 다른 말인 듯하지만 다르지 않은 말인 줄 어릴 적에는 잘 알지 못했어요.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에는, “그래, 이웃을 사랑해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에는 “왜? 어떻게?” 같은 물음표를 붙였어요.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는 누구일까요 네,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11쪽)

나 자신보다도 가족이 더 소중한 분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누구의 가족이니까 더 소중한 거죠? 그렇죠! 내 가족이니까. (12쪽)


  광우 스님이 쓴 《공덕을 꽃 피우다》(스토리닷,2017)는 아주 쉬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불교 이야기를 쉽게 풀어냈다고 할 수 있고, 불교라는 틀을 넘어서 사람이 즐겁게 살아가는 바탕이 무엇인가를 부드럽게 풀어냈다고 할 수 있어요.

  책 첫머리에는 온누리에서 어느 누구보다 내가 나를 살뜰히 여기면서 사랑할 노릇이라고 거듭거듭 밝힙니다. 다른 사람을 아끼거나 돌보거나 사랑한다고 말하기 앞서, 우리 모두 우리 스스로 제대로 아끼거나 돌보거나 사랑할 노릇이라고 자꾸자꾸 밝혀요.

  어쩌면 이 대목이 어디에서나 가장 대수로운 이야기일 수 있구나 싶습니다. 종교에서뿐 아니라, 학문에서도 철학에서도 이 대목이 가장 대수롭구나 싶어요. 교육에서도 문화나 문학에서도 그렇지요. 여느 보금자리에서 짓는 살림살이에서도 마찬가지가 될 테고요.

  내가 먹는 밥 한 그릇을 살뜰히 차려서 맛나게 먹을 적에 즐거워요. 내가 먹는 밥을 맛없게 차린다면, 아이들한테 차려 주는 밥이나 이웃하고 함께 먹을 밥도 맛없을 수 있어요. 나부터 밥을 더 맛나게 지어서 먹지 않는다면, 배고프거나 고단한 이웃을 마주할 적에 밥 한 술을 나누는 보람이나 기쁨을 자칫 놓칠 수 있을 테고요.


화를 내는 것을 살펴보면 화를 내서 내 속이 시원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 마음에 분노, 화가 활활 타오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5쪽)

행복과 불행의 결과는 내가 지은 업의 결과라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하셔야 합니다. (19쪽)

복은 누가 짓는 것일까요? 누가 복을 주는 것일까요? 복은 내가 짓는 것입니다. (41쪽)


  골을 낸다고 해서 마음이 개운하지 않습니다. 부아를 낸다고 해서 마음이 시원하지 않아요. 성을 낸다고 해서 마음이 홀가분하지 않아요. 참말 그렇지요. 골을 내면 낼수록 자꾸 다른 골이 뒤따르는구나 싶어요. 부아를 낼 적에도 자꾸 다른 부아가 잇달아요. 성을 내어 성이 사라지기보다는 성 하나는 다른 성을 끝없이 끌어들이지 싶어요.

  이와 다르게 해 볼까요. 웃어 본다면? 한 번 웃으면 자꾸 웃음이 뒤따르지 싶어요. 한 번 노래하면 자꾸 노래가 잇따르지 싶어요. 한 번 춤추면 자꾸자꾸 춤이 피어오르는구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기쁠 적에 기쁨이 찾아오는 셈이라고 느껴요. 남이 나한테 갖다 주는 기쁨이나 복이나 행복이 아니라, 스스로 짓는 기쁨이나 복이나 행복이라는 흐름을 찬찬히 살피고 바라보면서 알아차려야지 싶습니다.


스님을 제외하고도 재가인들 중에 전생을 보는 분들이 있어요. 의식이 맑아지면서 전생이 보이는 건데요, 전생을 보게 되면 자신이 왜 이렇게 사는지 알게 되어서 가슴에 쌓였던 한이 싹 사라진대요. (73쪽)

부처께서는 “진실을 말하고, 화내지 않고, 작은 것이라도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다면 이러한 세 가지 일만으로도 마땅히 하늘세계에 태어날 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답니다. (105쪽)


  《공덕을 꽃 피우다》는 우리가 스스로 착한 일을 쌓아서 착한 보람을 누리자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남이 나한테 착하게 굴지 않는들 살그머니 흘려보내자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나한테 착하게 마주하고, 내가 우리 이웃한테 티없이 착한 몸짓으로 살자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남을 탓하면서 살 까닭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나한테 안 착하게 구는 남들 이야기는 그만두자고 해요. 우리가 오늘 새롭게 지을 즐거운 삶을 찾자고 말해요. 오늘 하루를 새롭게 지으려면 먼저 내가 나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요.

  기쁨이라는 꽃을 내가 손수 내 마음밭에 심어서 피웁니다. 사랑이라는 꽃을 내가 스스로 내 마음밭에 심어서 가꿉니다. 노래나 웃음이라는 꽃을 바로 내가 마음밭에 심어서 돌보아요.


‘배고픈 소크라테스와 배부른 돼지 중 어느 쪽이 되고 싶은가?’ 하고 묻는다면 우리는 진지하게 고민합니다만 그럴 필요 없습니다.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되면 됩니다. (114쪽)

“모든 것은 마음이 앞선다. 모든 것은 마음이 이끌고 모든 것은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깨끗한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면 반드시 행복이 따르리라. 그림자가 몸을 따르듯이.” (138쪽)


  마음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김치 한 접시 간장 한 종지만 올린 밥상이어도 내 마음에 따라서 값진 잔칫밥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에 따라 언제나 달라진다고 합니다. 흔하거나 수수한 살림살이도 내 마음에 따라서 아름답게 빛나는 보금자리를 이룰 수 있어요.

  똑같은 것을 놓고서 ‘이것밖에 없네.’ 하고 말하는 분이 있고 ‘와, 대단하네!’ 하고 말하는 분이 있어요. 목마른 사람한테는 ‘이야 물이 참 달다!’ 하는 느낌일 테지만, 목이 안 마른 사람한테는 ‘에계계 물밖에 없어?’ 하는 마음이 되기 일쑤예요.

  《공덕을 꽃 피우다》에서도 말하듯이 우리는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될 적에 가장 즐거우리라 봅니다. 배고픈 길이 아닌 배부른 길을 걷고, 생각이 없는 삶이 아닌 생각을 짓는 삶으로 나아갈 적에 즐거우리라 봐요.

  두 눈을 뜨고 일어나는 아침을 고맙게 맞이합니다. 곁에서 함께 자고 일어나는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날마다 하늘 높이 솟는 해를 고마이 바라봅니다. 늘 우리 곁에서 부는 바람 한 줄기를 반가이 마주합니다. 이제 마음에 꽃을 피우고, 생각에도 살림에도 삶에도 꽃을 피울 때입니다. 2017.6.20.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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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나무 (도서관학교 숲노래 2017.4.23.)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도서관학교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굵은 대나무를 베어 봅니다. 기울어진 채 꽤 굵은 대나무를 본 작은아이는 이 기울어진 대나무에 올라타서 널방아를 찧듯 놉니다. 대나무는 튼튼하면서 부드럽지요. 아이가 이렇게 놀아도 튼튼합니다. 굵게 잘 자란 대나무로 무엇을 해 보면 즐거운 살림이 될까 하고 생각하며 여러 그루를 벱니다. 한 그루는 두 아이가 어깨에 짊어지면서 날라 줍니다. 저는 네 그루를 낑낑거리면서 나릅니다. 잘 말려 놓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곧 마땅한 쓰임새가 떠오르리라 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일기)








(‘도서관학교 지킴이’ 되기 안내글 :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 ‘도서관학교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도서관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


[알라딘에서] http://blog.aladin.co.kr/hbooks/5784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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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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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06



고정희 시를 아무리 읽어 줘도 안 바뀌더라는
―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글
 서해문집 펴냄, 2016.12.26. 13500원


  글을 쓰는 ‘은유’ 님은 ‘고졸’이라고 합니다. 고등학교만 마친 배움길로 글을 쓰는 일을 하는 분은 매우 드뭅니다. 은유 님은 이녁 둘레에서 고등학교만 마친 배움길로 글을 쓰는 이웃이나 벗을 못 보았다고 해요.

  저도 그렇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만 마친 배움길로 한국말사전을 짓는 일을 합니다. 한국말사전을 짓는 일을 하든 국립국어원이나 한글학회에서 일을 하든, 고등학교만 마친 배움길로 이와 같은 일을 하는 이웃이나 벗은 아직 못 보았어요.

  어느 일이든 스스로 즐겁게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한국 사회는 이 대목이 크게 가로막히지 싶어요. 적어도 ‘대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일자리를 얻을 만하리라 여깁니다. 공공기관이나 여느 회사에서도 웬만하면 대학교 졸업장을 바라지요.


의도에서 잠실로 남편과 같이 출퇴근하면서 차 안에서 여성주의 책들과 고정희의 시집을 소리내 읽어 주었다. 일상의 불평등 구조는 해소되지 않았다. 이론의 주입은 가능하나 감각의 세팅은 불가능했다. 두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다. (5쪽)

박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애를 안 낳아 봐서가 아니라 해결하지 않아도 권력을 유지하는 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권력을 떠받치는 것은 나쁜 관념에 휩싸여 주변의 여린 소리를 듣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 주변 사람들이다. (32쪽)


  은유 님은 고등학교 가운데 ‘여상’을 나와서 돈을 꽤 잘 버는 금융기관에서 처음 일자리를 얻었다고 해요. 이렇게 살다가 마음에 드는 짝을 만났고, 혼인을 합니다. 아이를 낳았지요. 고등학교만 마친 뒤에 금융기관에 일자리를 얻어서 돈을 제법 잘 벌 적에는 어렵거나 싸워야 할 일이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는 길에서, 이러면서 새로운 삶길을 열려고 할 적마다 늘 싸울거리를 만나야 했다고 해요.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서해문집,2016)라는 책은 글님(글을 쓰는 사람)인 은유 님이 글을 쓰며 살림을 짓는 ‘고졸자’이자 ‘가시내(어머니이자 직업여성)’로서 언제 어떻게 왜 싸워야 했고, 이렇게 싸우면서 걸어온 길이 무슨 뜻이었는가 하고 스스로 묻고 우리한테 묻는 이야기책입니다. 한 마디로 ‘싸울 수밖에 없는 나라에 태어나 싸우면서 살아야 하는’ 이야기를 다루는 책입니다.


김제동의 말은 여성을 치켜세우고 남자를 비하하는 듯하지만 아니다. 한 사람을 보살피는 것은 한 우주를 헤아리는 일이다. 친밀성 능력, 정서적·육체적 노동이 다 투여된다. 두 사람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왜 한쪽이 도맡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가족도 학교도 못한 ‘사람 만들기’를 한 개인이 할 수 있을까. (42쪽)

어느 남성 평론가의 평론집을 읽었는데 서문 마지막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 “어머니가 해 주신 밥 먹으면서 이 글들을 썼다. 어머니가 쓰신 책이므로, 어머니께 드린다.” 참으로 뻔하고 오래된 각본처럼 진부했다. 어머니를 밥하는 존재로 못 박는 듯해 갑갑했다. 칠백 쪽이 넘는 두툼한 책의 현란한 문학적 수사와 이론적 분석의 글에 압도될수록 나는 어머니의 밥이 떠올랐다. 한 사람이 이 정도 지적 과업을 달성하기까지 동시간대에 이루어졌을 칠백 그릇 이상의 밥을 지은 한 사람의 ‘그림자 노동’이 아른거렸다. (65쪽)


  은유 님 곁님은 은유 님이 고정희 시를 읽어 주거나 여성주의 책을 읽어 주어도 ‘이론(머리)’으로만 받아들였다고 해요. 몸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다지요. 이러다 보니 아무리 사랑스러운 곁님이어도 싸울 일이 있을밖에 없습니다.

  여성주의나 성평등이란 어느 한쪽 성별인 사람을 높이려고 하는 몸짓이 아니에요. 서로 손을 맞잡는 길을 찾고, 즐거이 어깨동무하며 나아가는 길을 열려는 몸짓이에요.

  아무리 진보나 노동을 말하더라도, 생태나 평화를 말하더라도, 적잖은 사내는 가부장 권력을 잘 못 놓곤 합니다. 이 대목은 이 나라 사내들이 곰곰이 돌아보고 차분히 되새기면서 슬기롭게 풀어낼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머리로만 진보나 평등이 아니라, 몸으로 즐거이 움직일 줄 아는 진보나 평등이 될 때에 아름다워요.

  아름다움이란 겉모습이 아니에요. 잘 빠진 몸매는 ‘아름다움’이 아닌 ‘잘 빠진’ 몸매일 뿐입니다. 아름다움이란, 서로 사랑으로 보살필 줄 아는 따사로우면서 넉넉한 마음이 착하게 흐르는 숨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보나 평등이 아름다운 길로 갈 적에 여성도 남성도 서로 사람으로서 즐거이 어깨동무할 만하리라 생각해요.


난생 처음 군부대라는 곳을 들어갔다 … 사격 훈련장이 보였다. 우리 아이도 저런 걸 하겠구나. 총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도구인데 내 아이에게 총을 들라고 떠밀은 걱구나. 그제야 실감 났다. (107쪽)

고졸의 불편을 느낀 건 결혼할 때였다. 시가에서 노골적으로 내 학력을 문제 삼았다. 2세를 생각하면 엄마 머리가 좋아야 한다면서 … 그때부터 유심히 지켜봤다. 지나가는 말로라도 학벌 중심 사회를 비판하는 지식인들은 거의 고학력자였다. 학벌 중심 사회를 비판하면서 학벌 중심 사회를 공고화했고 그 틀을 깨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113, 114쪽)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는 김제동과 어느 남성 문학 평론가를 짚으며 나무라기도 합니다. 김제동 님은 방송에 나와서 ‘(여성은) 너희들보다 훨씬 더 상위에 있는 종족들이에요’라든지 ‘여자들이 불쌍한 남자 좀 잘 보살펴 줘요’라든지 ‘남자는 사람이 아니고 그냥 개라고 생각하면 싸울 일이 전혀 없습니다’ 같은 말을 흔히 한대요. 은유 님은 이러한 말을 들으며 몹시 거북했다고 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익살을 섞은 말이지만, 어느 모로 보면 ‘사내 스스로 사내를 깎아내린들 평등을 이루지는 못하’거든요.

  아무리 적잖은 사내들이 진보나 평등을 몸이 아닌 머리로만 생각하는 데에서 그친다 하더라도, 이러한 사내를 ‘가시내가 잘 보살펴’ 주기만 해야 할 노릇인지는 곰곰이 따져야지 싶어요. 사내 스스로 ‘나(사내)는 개야. 그러니 나는 엉터리 짓을 함부로 하겠어.’ 하고 생각해 버리지는 않을까요? ‘나(사내)는 개야. 그러니 이론밖에 몰라. 게다가 이론도 잘 몰라.’ 하면서 스스로 배우려는 길을 닫아 버리지는 않을까요?

  사내도 가시내도 똑같이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대목을 생각해야지 싶어요. 사내도 가시내도 똑같이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거듭나도록 배움길을 걸어야지 싶어요. 이런 테두리에서 은유 님은 수많은 ‘진보 남성’하고 ‘평등을 외치는 남성’이 놓치는 대목을 짚으려 합니다.


사는 게 총체적으로 낭비라는 걸 인지하지 못할 때는 살림만 미워했다. 살림이, 정확히 가사 노동이 지겹고 하찮게 느껴져서 제발 집안일 안 하고 살길 간절히 염원했다. 지금은 아니다. 좀 나아졌다. 콩나물을 다듬고 깻잎을 씻고 쌀을 씻으면서, 땅에서 난 그것들을 만지면 마음이 순해지고 위로를 얻는다. (285쪽)


  요즈음 저희 집에서는 아이들이 날마다 여러 가지 새로운 살림을 배웁니다. 예전부터 늘 배우곤 했는데, 한 해 두 해 나이를 더 먹으며 팔다리에 힘이 더 붙으니 더 즐겁게 여러 살림을 배웁니다. 두 아이는 곁님한테서 빵 반죽을 배웁니다. 두 아이는 아버지한테서 밥짓기를 배웁니다. 두 아이는 곁님한테서 뜨개질을 배웁니다. 두 아이는 아버지한테서 빨래이며 청소이며 톱질이며 못질이며 배웁니다. 두 아이는 어버이하고 나란히 살림을 새로 배우면서 새로 맞아들입니다.

  아이들한테 여러 가지 살림을 보여주고 가르치면서 생각해 보지요. 온누리 모든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스스로 먹고 입고 자고 살아가는 길’을 차근차근 지켜보고 배울 적에 ‘사람다운 숨결로 사내와 가시내 자리에 설 수 있구나’ 싶어요. 손수 밥을 지을 줄 모른다면, 손수 밥상을 치우거나 차릴 줄 모른다면, 손수 설거지나 빨래를 할 줄 모른다면, 손수 나무를 켜고 자르고 맞추며 살림을 마련한 줄 모른다면, 손수 씨앗을 심을 줄 모르거나 호미질을 할 줄 모른다면, 이 아이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며 어떤 자리에 설까요? 아마 ‘이론은 있되 몸은 안 움직이는’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를 쓴 은유 님이 따갑게 나무란 어느 남성 평론가 이야기처럼, ‘밥을 차려 준 어머니가 고맙다’고 말하는 사내가 아닌, ‘스스로 즐거이 밥을 지어 먹었다’고 밝히면서 ‘스스로 밥을 지어 먹고 보니 글이나 책이나 삶이나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지더라’ 하는 이야기를 펼칠 줄 알면 좋겠어요.

  스스로 살림하는 기쁨을 누리면서 이를 글로 펼친다면, 스스로 살림하는 보람을 나누면서 이러한 마음으로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한다면, 우리는 굳이 고정희 시를 읽어 주지 않고도 성평등이나 진보를 아름다이 이루는 나라에서 살아갈 만하지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한테 입시 참고서나 문제집은 그만 보여주고 살림을 보여주어야지 싶습니다. 우리 어른들도 이론만 잔뜩 다룬 책은 고이 내려놓고 기쁘게 살림을 지어 보아야지 싶습니다. 2017.5.22.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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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슨 컬렉션 : 일곱 가지 컬러 웨스 앤더슨 컬렉션
웨스 앤더슨.매트 졸러 세이츠 지음, 막스 달튼 그림, 조동섭 옮김 / 윌북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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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05


원작에서 얻은 재미로 영화를 새로 찍다
― 웨스 앤더슨 컬렉션, 일곱 가지 컬러
 웨스 앤더슨·매트 졸러 세이츠 이야기·글
 조동섭 옮김
 윌북 펴냄, 2017.4.10. 15800원


  영화로 나온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를 아이들하고 재미나게 보았습니다. 이 작품은 영화로 먼저 보았고, 나중에 이 영화가 나오는 바탕이 된 어린이문학이 있는 줄 알았어요. 어린이문학은 한국말로 ‘멋진 여우 씨’라는 이름으로 나왔습니다.

  영화에서는 영화에 나오는 모든 여우와 짐승한테 따로 이름이 붙고, 영화에 나오는 못된 사람들한테도 따로 이름이 붙습니다. 이러면서 여우이며 짐승이며 사람들이며 저마다 그와 같은 이름에 맞는 몸짓이나 이야기가 흘러요.

  어린이문학에서는 여우나 짐승한테 딱히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다. 여우 씨는 그냥 ‘여우 씨’일 뿐이고, 여우네 새끼(아이)들은 그냥 여우네 새끼들입니다. 다른 짐승도 이와 같아요. 다만 못된 사람들 셋한테는 따로 이름이 있으며, 이 이름에 걸맞게 저마다 다른 몹쓸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아는 사람들 중에 배우는 누가 있지?’ 같은 것보다 ‘우리가 아는 사람이 누구지? 우리가 아는 사람들 중에 재미있고 눈에 띄고 우리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 그러면서 이 역할을 기꺼이 맡을 사람이 있나?’ 같은 거였죠. (43쪽)

그 영화의 많은 부분은 당시 우리가 경험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을 포착하는 시도죠.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 각각이 당시 그 순간 그 사람 자신의 모습과 비슷한, 그런 영화에 속합니다. (57쪽)


  웨스 앤더슨 감독이 비평가 매트 졸러 세이츠하고 나눈 이야기를 담은 《웨스 앤더슨 컬렉션, 일곱 가지 컬러》(윌북,2017)가 있습니다. 이 책은 웨스 앤더슨이라는 영화감독이 어떻게 살아오면서 어떻게 영화를 찍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웨스 앤더슨이라는 영화감독을 아는 분은 아는 분대로 이 책에서 ‘영화를 찍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감독 이름을 모르던 분은 모르던 분대로 이 책을 읽다가 ‘아하, 내가 본 그 영화를 이 사람이 찍었네’ 하고 깨달을 수 있어요.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는 바로 웨스 앤더슨 감독이 새롭게 찍은 작품이에요.
  

저한테 사람들의 속마음을 읽는 능력은 없으니까 저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걸 해야죠. 그리고 제가 하고 싶은 것은 제가 영화를 보면서 좋아하는 것들과 큰 연관이 있죠. (102쪽)

저는 촬영할 때 늘 생각합니다. 분명히 이렇게 할 거라고, 바로 이런 방식으로 할 거라고. (167쪽)


  영화를 찍는 사람은 어떤 마음인지 알고 싶다면 영화감독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야겠지요. 또는 영화감독이 손수 쓴 글을 읽어야 할 테고요. 때로는 영화감독이 입으로 들려준 말을 찬찬히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영화만 보아도 영화감독이 어떤 마음인가를 짚을 수 있으나, 영화와 얽혀 따로 붙이는 말을 들어 본다면 영화를 더 깊거나 넓게 생각하면서 새삼스레 즐길 수 있기도 해요. 《웨스 앤더슨 컬렉션, 일곱 가지 컬러》라는 책은 이 책에 붙은 이름처럼 웨스 앤더슨이라는 영화감독이 ‘일곱 빛깔’과 같은 마음과 손길로 영화를 찍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일곱 가지 영화를 놓고서 일곱 빛깔로 다른 이야기가 흐른다고 밝히지요. 비평가 한 사람이 웨스 앤더슨 영화를 비평하는 글을 사이사이 넣으면서, 두 사람이 주고받은 이야기가 길게 흐릅니다.

  영화를 보면서 가볍게 지나쳤을 법한 대목하고 얽힌 이야기를 이 책에서 새삼스레 읽을 수 있습니다. 영화와 원작이 왜 이렇게 다를까 하는 궁금함도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풀 수 있기도 해요.


‘원작에서 아쉬운 게 뭐지?’ 하는 방식으로 책에 접근하지는 않았습니다. 분량을 더 길게 늘리고, 몇몇 캐릭터를 새로 만들어서 이름과 성격을 넣은 것뿐이죠 … 결국 영화는 정확히 로알드 달은 아니었죠. 이건 확실히 로알드 달을 따른 영화고, 저희는 로알드 달에게서 영감을 얻었어요. 저희가 로알드 달에게 충실하려고 애쓴 방법 중 하나는, 미스터 폭스가 곧 로알드 달이라고 생각하기로 결정한 겁니다. (269쪽)


  어느 영화는 원작을 알뜰히 옮겨서 보여줍니다. 어느 영화는 원작이 있더라도 마치 둘이 다른 작품인 듯 흐릅니다. 저는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에서 두 작품이 서로 다르게 흐르면서 서로 만나는 대목이 있구나 하고 느꼈어요. 어린이문학 ‘폭스’에서는 여우 씨가 아이들하고 힘을 모아 슬기롭게 일을 풀면서 멋진 삶을 이루는 모습이 고갱이입니다. 영화 ‘폭스’에서는 여우 씨 못지않게 어린 여우 둘이 다투다가도 사이가 좋아지는 얼거리에다가 못된 사람들하고 얽힌 더 깊은 이야기를 다루면서 볼거리를 베풀어요. 어린이문학은 ‘글을 읽으며 우리 스스로 생각을 지피도록’ 한다면, 영화는 ‘화면을 보며 그 자리에서 영화감독 나름대로 키운 꿈을 고스란히 보도록’ 하는 얼거리입니다.

  다르면서 비슷한 두 작품을 보면서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우리 꿈을 드러내는 길’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책이나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우리 삶에서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새롭게 삭여서 새로운 이야기를 지필 수 있어요. 아름다움이나 즐거움을 얻기에, 이 아름다움이나 즐거움을 새삼스레 북돋운다고 할까요.

  새로운 길을 찾으면서 새로운 영화가 태어납니다. 새롭게 생각을 가꾸면서 새로운 문학이 태어납니다. 새롭게 꿈을 마음에 품기에 우리는 저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올리면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2017.5.16.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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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김탁환 지음 / 돌베개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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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02


소설가 김탁환이 그린 ‘세월호 사람들’
―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김탁환 글
 돌베개 펴냄, 2017.4.3. 13000원


  소설을 쓰는 김탁환 님은 《거짓말이다》라는 소설책을 2016년 8월에 선보인 적 있습니다. 2017년 4월에는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돌베개 펴냄)를 새롭게 내놓습니다. 두 작품은 2014년 4월에 가라앉은 세월호라는 배와 얽힌 이야기를 다룹니다.


발목과 허리까지 물에 잠길 때도 계속 나만 올려다봤다. 나는 말하고 싶었다. 말해야만 했다. 그러나 끝내 말할 수 없었다. 내 눈물이 선내로 떨어져 그녀(여학생)의 눈에 닿았다. 그녀가 손등으로 눈을 훔쳤다. 나도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울먹였다. 입술로 나가지 않은 말들이 송곳처럼 잇몸과 혀를 찔러댔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30∼31쪽)


  소설책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는 세월호를 둘러싸고 응어리가 맺힌 사람들 이야기를 여러 자리에서 들려줍니다. 작가 눈으로, 사진가 눈으로, 잠수사 눈으로, 살아남아서 대학교에 간 뒤 교사가 되었다는 ‘먼 앞날’ 눈으로, 또 세월호하고는 아주 동떨어진 자리에서 딱히 걱정 없이 살다가 아주 뜻밖에 사고로 죽은 곁님을 둔 출입국관리소 직원 눈으로, 여기에 특조위 조사관 눈으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펼칩니다.

  소설이라지만 소설이 아닌 듯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소설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뚜렷하게 알 수 있는 대목이라면, 2014년 4월에 세월호라는 배가 바다에 가라앉았습니다. 배가 바다에 가라앉기 앞서, 이 배에 탄 사람들은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마땅히 모두 빠져나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이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배를 몬 사람이나 배를 둘러싼 행정이나 조치는 터무니없다고 할 만한 모습이었습니다.


물갈퀴가 물컹한 물체를 미는 순간 객실 안 전체가 움직였다. 헤드랜턴을 올려 갑작스런 움직임의 정체를 확인했다. 잠수사들이 찾고자 한 남학생들이었다. 스무 명이 넘는 학생들이 좁은 객실에서 어깨동무를 하거나 팔짱을 낀 채 한 몸처럼 뒤엉켜 있었다. 그의 물갈퀴가 그중 한 학생의 옆구리에 살짝 닿자 다른 학생들까지 모두 출렁인 것이다. (99쪽)


  배가 가라앉고 나서, 또 배가 가라앉아 수많은 사람이 죽고 나서, 뒤늦게 온갖 잘잘못이 불거집니다. 바다에 띄울 만한 배가 아닌데 바다에 띄운 배라 했습니다. 구명조끼이며 선원이며 선장이며, 온갖 곳에서 말이 안 될 만한 뒷모습이 드러났어요. 부끄러운 민낯이랄까요, 그동안 한국 사회와 정치가 먹고살기 바쁘거나 힘들다는 핑계로 뒤로 밀쳐둔 속살이 환하게 드러났습니다.


“우리 형수를 …… 어떻게 데리고 나왔는지 …… 말씀해 주세요. 이 늙은이, 마지막 소원입니다.” (114쪽)

가만히 있으란 지시가 그때부터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겨우 객실로 들어섰을 때 안내 방송이 나왔어요. 가만히 있으라. 지겹도록 반복해서 그 방송이 나오고 또 나왔어요. 가만히 있으라, 현재 위치를 이탈하지 말라, 움직이면 훨씬 위험해진다! (144쪽)


  소설책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에는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하는 이야기가 곳곳에 살그마니 흐릅니다. 틀림없는 말입니다.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몸으로 겪지 않았으니 모르고, 마음으로 함께하려 하지 않으니 모르지요.

  저는 이 소설책을 읽다가 마음속에서 거의 지웠다고 생각하던 어느 일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큰아이가 네 살 무렵이었는데, 어느 못가에서 저보다 세 살 위인 언니하고 노는데, 큰아이한테 세 살 위인 언니가 갑자기 큰아이를 뒤에서 밀어 못에 빠뜨렸습니다. 오십 미터 즈음 떨어진 데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다가 깜짝 놀라 바람같이 달려가서 못에 뛰어들어 큰아이를 건졌지요.

  허우적거리다가 살아난 아이는 한동안 아무것도 못 했습니다. 작은 웅덩이만 보아도 무서워했습니다. 아이가 물에 발을 담그도록 하기까지, 또 아이가 바닷가에서 놀도록 하기까지 꽤 오래 더디 걸렸습니다.


재서를 1년 동안 저만 꼭꼭 품고 지냈어요. 이젠 우리 재서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면 해요. 꼭 함께 전시해 주세요. (229쪽)


  소설을 쓰는 김탁환 님은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라는 책에서 굳이 잘잘못을 따지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는 아픈 사람과 아픔을 늘 안고 사는 사람과 아픔을 늘 안고 사는 사람을 지켜보는 사람을 다룹니다. 서로 다른 자리에 있으나 서로 아름답게 이어지는 사람이라고 하는 대목을 바라보려 합니다.

  어느 모로 보자면 세월호 이야기를 어떻게 벌써 소설로 쓸 수 있느냐고 여길 수 있습니다. 다르게 보자면 세월호 이야기를 바로 요즈막에 더 일찍 소설로 쓸 수 있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세월호를 둘러싼 모든 속내와 참모습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거든요.


“이 카메라를 재서의 방에 그냥 놔두지 마세요. 사진을 찍지 않는 카메라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버려진 들과 같습니다. 재서 어머니가 지금부터 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세요. 셔터를 누를 때마다 재서의 눈으로 세상을 기록한다고 여기셔도 좋습니다.” (252쪽)


  대통령을 끌어내리니 비로소 세월호를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끌어올린 세월호에서 아직 파묻힌 채 안 드러난 속살과 뒷모습을 낱낱이 파헤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끌어내릴’ 만한 짓을 하는 이들이 더는 대통령이나 공직자가 안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부디 아름다운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공직자가 될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7.4.26.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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