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노르웨이로 가자
카트리나 데이비스 지음, 서민아 옮김 / 필로소픽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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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42



첼로를 믿고 15000킬로미터 ‘길노래마실’

― 어쨌든 노르웨이로 가자

 카트리나 데이비스/서민아 옮김

 필로소픽, 2015.8.7.




우리 집이 힘들었을 때, 첼로는 나에게 가장 좋은 친구이자 피난처였다. 나는 첼로에게 모든 걸 털어놓았다. 혼자서 연습을 하면서 차츰 우울한 곡을 연주하게 되었고… (26쪽)


오슬로 국립극장 지하철역 입구의 커다란 분수 근처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런 다음 그늘진 구석을 찾아 의자를 놓고 앉았다. 많은 사람들이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나는 연주는 고사하고, 이 사람들 앞에서 첼로를 꺼낼 엄두조차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남은 날들 동안 오슬로에서 서서히 굶어죽고 싶지 않으면 첼로를 꺼내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45쪽)



  첼로를 믿고 길노래를 들려주며 마실을 다니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아니 아예 없다시피 하다고 합니다. 길에 서서 노래를 들려주기에 첼로라는 악기는 썩 안 어울린다고 여길 만할 수 있어요. 들고 다니는 무게도 있을 테지만, 가락도 묵직할 테니까요.


  그러나 어느 악기라도 길노래를 들려주며 마실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기타나 플룻만이 아니라, 피리하고 거문고로도 길노래를 들려줄 수 있어요. 피리 가운데 풀피리를 그때그때 얻어서 길노래를 들려주어도 될 테고요.


  길노래를 하기에 어울리는 악기가 있다기보다는, 길에서도 얼마든지 즐겁게 때로는 슬프게 노래를 들려주면서 이웃을 마주하려고 하면 넉넉하지 싶습니다. 어떤 악기를 손에 쥐든 낯선 이웃하고 나누고픈 마음을 노랫가락에 실으면 되지 싶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재즈를 연주한 적이 없었는데, 설사 음을 놓쳐도 어찌어찌 만들어서 연주하면 사람들은 내가 즉흥으로 연주를 하나 보다 생각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71쪽)


“저기, 물을 좀 얻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시지요.” “저쪽에 강이 있어요.” 남자가 말했다. “저는 식수를 구하려고요.” “여기는 잉글랜드가 아니에요. 노르웨이에서는 강물도 마실 수 있어요.” (84쪽)



  《어쨌든 노르웨이로 가자》(카트리나 데이비스/서민아 옮김, 필로소픽, 2015)는 첼로를 노란 승합차에 싣고서 잉글랜드를 떠나 배를 타고 노르웨이로 건너가서 ‘지지 않는 해’를 바라보고 돌아오려 하던 아가씨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잉글랜드 아가씨는 젊은 나이에도 온갖 슬픔수렁에 푹 빠져서 헤어나올 길을 못 찾았다고 합니다. 태어나서 자란 집에서 아늑할 수 없었고, 집을 뛰쳐나와서 지내는 데에서도 마음을 붙일 짝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러다가 가까운 벗이 아주 어처구니없는 교통사고로 숨을 거두었고, 도무지 이 지구라는 별에 왜 태어나서 왜 사는가를 알 길이 없다고 여겨, 더는 제자리(잉글랜드 작은 마을)에 있을 수 없기에 길을 불쑥 나섭니다.



“남자가 해답은 아니었어.” 한나가 난로를 닫으며 말했다. “옷이나 돈도 해답이 아니었지. 내 근사한 아파트도, 내 값비싼 보석도,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거라고 믿었던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였어.” (134∼135쪽)


“어느 곳에 가든 차고 넘치게 많은 사랑을 발견할 수 있어. 사람들은 늘 너를 사랑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지.” (136쪽)



  처음에는 멋모르고 나서는 길입니다. 집에서 홀로 악기를 켜 보기는 했어도 길에서 낯선 사람한테 악기를 켜기는 처음입니다. 게다가 길노래를 켜자니,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외운 노래가 얼마 없는 줄 비로소 깨닫습니다. 다시 말해서 길노래로 들려줄 만한 노래를 몇 가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턱대고 길노래마실에 나선 셈입니다.


  길노래로 돈을 벌어서 기름을 사고, 자동차를 몰기에도 벅찬 나날이었지만, 마실 물을 얻고, 몸을 씻거나 옷을 빨래하기에도 고된 나날이었다지요. 처음에는 길어야 석 달을 헤아렸는데, 어느새 한 해를 훌쩍 넘길 만큼 노르웨이를 거치고 덴마크를 지나 네덜란드를 가로지르고 벨기에를 넘어 독일에 프랑스에 에스파냐에 이르지요. 그리고 포르투갈까지 1만 5천 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달리며 길노래로 하루하루 살았다고 합니다.



“잉글랜드로 가야죠.”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잉글랜드에는 왜요?” “떠나온 지 3개월이 됐어요.” 구름이 태양을 피해 지나갔다. “그래서요?” “언제까지나 빈둥거리며 돌아다닐 순 없으니까요.” “그럼 안 되나요?” (167쪽)


“스페인까지 해안을 따라 버스킹을 하면서 가는 게 어때요? 그러면 포르투갈에 갈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은 아무 곳이나 갈 수 있어요. 자유롭잖아요.” (182쪽)



  첼로를 믿고 길을 나선 카트리나 데이비스 님은 ‘남자가 길이 아닌’ 줄 알면서도, 이 길을 어떻게 떨쳐야 하는가를 제대로 몰랐다고 합니다. 어려서 배운 적이 없고, 나이가 들어 가르쳐 준 사람도 없으니까요. 이러던 어느 날 맨몸으로 걷거나 자동차를 얻어 타면서 깊은 숲이나 멧골이나 바다를 누비며 사진을 찍는 여성인 한나를 만나요. 안개 자욱한 노르웨이에서 만난 한나는 카트리나 님한테 ‘삶은 어렵지도 쉽지도 않지’만, ‘삶은 스스로 마음을 품는 대로 흐를 수 있다’고 차근차근 짚어 주었다고 합니다.


  아무쪼록 기운을 잃지 않기를, 헛바람을 피우는 몸짓이 아닌 참다이 씩씩한 마음이 되기를 바랐다고 해요. 첼로하고 낡은 승합차하고 한 해 남짓 살면서 길에서 새로 노래를 익히고, 새로 익힌 노래를 다시 낯선 이웃들한테 들려주고, 손가락이며 몸이며 마음에 차츰 굳은살이 박히는 동안, 카트리나 님은 아주 천천히 꿈길을 헤아려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남이 가르쳐 줄 수 없고, 남이 가르칠 까닭이 없는 삶을,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생각해서 스스로 찾아낼 삶을 비로소 바라보고, 드디어 가슴에 꼬옥 안아 보았다고 해요.



굽이굽이 흐르는 계곡들 주위로 올리브숲과 안개로 흐릿한 하늘이 펼쳐지고, 태양빛은 산봉우리 위로 흘러넘쳐 우리의 얼굴을 따스하게 비추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달큰한 거름 냄새가 느껴졌다. (271쪽)



  《어쨌든 노르웨이로 가자》를 읽는 동안 ‘고작 스물넷’밖에 안 된 젊은 아가씨가 얼마나 삶에 몸부림치는가를 새삼스레 돌아보았습니다. 나이가 아닌 주름진 삶을 돌아봅니다. 이제껏 살아온 나날보다 더 캄캄해 보이는 앞날에 고개를 떨군 모습을 하나하나 돌아봅니다.


  아마 우리도 저마다 고되거나 벅차거나 괴로운 일로 근심걱정에 휩싸인 하루일 수 있습니다. 도무지 뚫고 나갈 길이 안 보이는 어두움에 가로막혔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이때에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마냥 주저앉아야 할까요? 이런 날 무엇을 해야 스스로 수렁에서 벗어날까요? 제자리에 가만히 있어야 할까요?


  삶길에 악기 하나가 곁에 있다면, 누구라도 길노래를 들려주는 마실을 떠날 만하지 싶습니다. 멀리 마실을 떠나지 않더라도 악기를 손에 쥐고 가까운 숲이나 공원에 가서 조용히 노래를 켤 만하지 싶습니다. 악기 하나를 어릴 적부터 익힐 수 있다면, 이 악기를 바탕으로 수렁에서 헤어날 길을 찾기도 하고, 이 악기를 벗님으로 삼아 먼먼 마실길에서 다시 씩씩한 마음이 될 수도 있구나 싶어요.


  어쨌든 노르웨이로 가기로 하면서 묵은 짐을 떨치려 한 카트리나 님이, 앞으로 어떤 새로운 길에 접어들는지, 즐겁게 손뼉을 치면서 손을 흔들어 주고 싶습니다. 2018.3.29.나무.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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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에게 권력을 - 시민의 정치를 위한 안내서 팸플릿 시리즈 (한티재) 4
하승우 지음 / 한티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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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96


헌법 개정안에도 ‘지역 정당’ 이야기는 없으니
― 시민에게 권력을
 하승우
 한티재, 2017.1.9.


기득권 세력은 문제가 드러났을 때에는 잘못했다, 사과한다, 머리를 조아리지만 잠잠해지면 금세 고개를 세우고 군림하려 든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정치인과 기업인들의 비리와 부패는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7쪽)

한국도 그렇지만 입법·행정·사법부가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라 작동한다는 건 책에나 나오는 이야기이지, 실제로는 서로 얽혀 기득권을 보호하고 확장시킨다. (95쪽)


  나한테 힘이 있으면 어떤 일을 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첫째로 우리 터전을 넓혀 맨발로 돌아다닐 수 있는 집을 짓겠습니다. 사뿐사뿐 맨발로 걷고 달리고 일하거나 놀 수 있는 보금자리란, 아이들한테 고이 물려줄 만한 삶자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터에서 조용하면서 홀가분하게 살아가는 길을 그리려 합니다.

  우리가 저마다 맨발로 일하고 살림하며 포근히 쉴 수 있는 보금자리를 누리면, 마을이라는 곳은 매우 아름다웁겠지요. 작은 집을 비롯해서 마을이 아름답다면 우리 고장도 아름다울 테고, 이처럼 아름다운 고장이 모이는 나라도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정치개혁을 요구했지만, 민중이 스스로 권력을 통제하길 원하지 않았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요구했지만, 그 민주주의는 특정한 정치인이 민중을 대신하는 대의민주주의였다. (24쪽)

민주주의는 과정의 효율성보다 참여자의 효능감에 주목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시민들이 스스로 성장하도록 돕는 체계가 아닐까. 아니, 비효율적인 듯 보이지만 전체가 공감하고 공유하는 합의과정을 통해 실제로는 정책결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시민의 힘을 효과적으로 발산하도록 하는 체계가 아닐까. (32쪽)


  《시민에게 권력을》(하승우, 한티재, 2017)을 읽으면서 힘(권력)이란 무엇이고, 누구한테 있으며, 어떻게 흐르는가를 돌아봅니다. 우리는 저마다 어떤 힘을 누리는 삶이고, 정치 지도자는 어떤 힘을 어디에서 부리는가를 나란히 짚어 봅니다.

  2018년 여름에 전국에서 한꺼번에 선거를 치릅니다. 시장이나 군수를 새로 뽑고, 도지사나 도의원을 새로 뽑습니다. 교육감도 새로 뽑고요. 그런데 전국 모든 곳에서 똑같이 새 정치 지도자를 뽑다 보니, 큰도시 이야기에 모든 눈길이나 목소리가 쏠리기 마련입니다. 큰도시하고 멀리 떨어진 작은 군 이야기는 찾아볼 길도 없고, 살피는 눈길이나 목소리도 드뭅니다.

  우리한테 선거권이라고 하는 힘이 있습니다만, ‘전국동시선거’는 어쩌면 우리한테 있는 힘을 줄이는 셈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작은 시골 군수나 군의원이 어떤 민낯이며 어떤 꿈길을 그리는가 같은 대목은 어디에서도 듣지도 보지도 구경하지도 못하기 일쑤이거든요. 전국동시선거는 행정편의가 있을 테지만, 이와 맞물려 언론 눈을 타지 않는 작은 시골 지자체 선거가 으레 ‘그 나물 그 밥 잔치’가 되도록 내몰기도 한다고 느낍니다.


(에스파냐) 포데모스의 윤리강령에는 부패를 막기 위해 정치인의 월급이 최저임금의 3배 이상을 넘어서는 안 되고, 정치인의 모든 특권을 포기하며, 공직을 마친 뒤에도 정치활동과 관련된 기업의 중역을 맡거나 전략적인 부문이나 국가경제에서 중요한 기업의 이사가 되는 것을 10년 동안 금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35∼36쪽)


  《시민에게 권력을》은 시민 스스로 힘을 되찾은 두 나라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먼저 에스파냐 이야기입니다. 다음으로 베네수엘라 이야기입니다. 두 나라 시민은 중앙 정부가 움켜쥔 힘이 사람들한테 돌아오도록 밑자리에서 차근차근 어깨동무를 하면서 새로운 길로 나아가도록 뜻을 모았다고 합니다. 인기 있는 큰 정당 힘을 빌리지 않고, 모두 첫발을 내딛는 작은 사람들 스스로 제대로 된 틀을 짜고 제대로 된 길을 걸어서 권력 틀을 바꾸어 냈다고 해요.


(한국은) 정당법에 따르면 5개 광역시도마다 천 명 이상의 당원을 확보해야 정당을 만들 수 있고, 중앙당의 사무소가 서울에 있어야 하며, 지역정당은 인정되지 않는다. 또한 전국동시선거를 실시하기 때문에 사실상 중앙의 정치의제가 지방선거를 좌우한다. 그리고 법적으로 정당연합이나 지역정치연합체를 만드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 여러 정당이 한 명의 후보를 추천하거나 다른 정당의 후보를 공식적으로 지지할 수도 없으며, 이중당적은 금지되어 있다. (75∼76쪽)


  곰곰이 보면 한국은 ‘지역 풀뿌리 정당’이 없습니다. 지역에서 살며 지역을 가꾸는 일꾼이 설 바탕이 들어설 수 없습니다. 한국 정당법은 ‘큰도시를 발판으로 삼아 전국에 조직을 두는 큰 정당’만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할 뿐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고치려는 헌법에서도 지역 풀뿌리 정당이 들어설 길은 아예 나오지 않습니다. 총선 두 번에서 국회의원을 내지 못하거나, 정당지지도가 1%를 넘지 못하면 정당을 해산한다는 대목이 들어갈 뿐입니다.

  왜 모든 정당이 ‘전국 정당’이어야 할까요? 전북 고창군 한 곳을 바꾸려는 작은 ‘고창 정당’이 있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경북 구미시 한 곳을 바꾸려는 작은 ‘구미 정당’이 있을 만하지 않을까요? 전남 고흥군 한 곳을 바꾸려는 작은 ‘고흥 정당’이 있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경남 하동군 한 곳을 바꾸려는 작은 ‘하동 정당’이 있을 만하지 않을까요?

  지역마다 뜻있는 젊은이가 작게 꾸리는 정당이 발판이 되어 전국 곳곳에서 ‘해묵은 그 나물 그 밥 잔치’인 전국동시선거를 뒤집어엎을 수 있을 적에, 비로소 참다이 전국지역자치를 이루리라 생각합니다. 전남 작은 군이나 경남 작은 군에서 구태여 ‘서울 사무소’를 두어야 하지 않아요. 오직 지역에서 지역자치를 이루도록 지역 정당이 들어설 수 있는 길을 트는 새로운 헌법이 서기를 바랍니다. 이런 밑힘을 닦고 세우고 키울 적에 비로소 우리 모두한테 우리 힘이 돌아올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2018.3.28.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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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의 틈새에서 동아시아 라이브러리 3
김시종 지음, 윤여일 옮김 / 돌베개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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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39


재일조선인만 틈새에서 살았을까?
― 재일의 틈새에서
 김시종/윤여일 옮김
 돌베개, 2017.12.29.


(일제강점기에) 외아들이 해를 입을까 봐 아버지가 조선어로 말을 붙이지 않았다며 훗날 어머니는 거듭 타일렀지만, 황민화 교육만이 나를 맹목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런 만큼 권력이 쥐락펴락하는 ‘교육’의 연약함과 대단함을 생각하게 된다. 또한 거꾸로 식민지 조선에서 압제가 얼마나 가열찬 것이었는지도 과묵한 아버지의, 목에서 막히고 만 말로 알 수 있다. (18쪽)


  일제강점기를 살지 않은 사람으로서 그무렵 조선말을 쓸 수 없던 학교나 마을이나 사회를 헤아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낯선 나라에 뚝 떨어져서 하루아침에 그 낯선 나라에서 쓰는 말로만 살아가라고 한다면, 이때에 어렴풋하게나마 지난날 이 땅에서 살던 사람들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을까요.


조선인은 학교나 공공장소에서 조선어를 못 쓰게 된 사태에 그다지 저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뭐 가만히 있는 게 좋다고들 했으니 … 이처럼 아이를 볼모 삼아 조선을 철저히 일본화해 가던 선두에 실은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42쪽)

고약한 냄새가 자욱한 어둑어둑한 흙바닥에는 볏짚만 깔린 채 배가 볼록해 파리가 꼬이는 아이들이 몇이나 있고 반쯤 열린 솥이 변변찮은 아궁이뿐이었습니다. 소작농들이 이런 상태로 살고 있다는 것을, 엎드리면 코 닿을 광주 시내에서 몇 년이나 공부하면서도 몰랐다는 게 충격이었습니다. (46쪽)


  식민지인 조선에서는 나라가 조선이었어도 조선말을 쓸 수 없었습니다. 그무렵 한겨레가 쓰던 말은 ‘조선말(조선어)’이라는 이름이었고, 일본 제국주의가 이웃나라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국어’라는 이름을 붙인 말은 ‘일본말(일본어)’이었어요. 그래서 일제강점기 교과서를 보면 ‘조선총독부 국어 교과서’에는 오로지 일본말만 나옵니다. 그때에는 ‘국어 = 일본말’이었으니까요.

  그러면 일제강점기에 ‘국사’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무렵 ‘국사 = 일본사’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사’라고 따로 이름을 붙여야 비로소 이 나라 역사였어요.


지문날인을 해야 외국인등록증이 발급되는 규제에서 엿보이듯 일본의 사회질서 속에서 재일조선인은 여전히 치안의 대상이다. 특히 이 사실은 조금도 변할 기미가 없다. (69쪽)

그렇다. 일본의 자위론이 떠올랐다. 타국을 침범하던 일본이 ‘평화’를 위해서라며 입에 올린 게 ‘문단속론’이었다. 즉 보복이 두려운 게 아니겠는가! (200쪽)


  재일조선인으로 살아온 발자국을 담은 《재일의 틈새에서》(김시종/윤여일 옮김, 돌베개, 2017)를 읽습니다. 이 책은 일본에서 일본말로 처음 나왔고, 이제 한국말로 옮겨서 새로 나옵니다.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으로 살아가는 하루란 무엇인가를 그리는 이야기요, 우리한테 나라·뿌리·고향·바탕이란 무엇인가 하고 하나하나 되묻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국어·국사’라는 이름하고 ‘조선어·조선사’라는 이름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참말로 ‘국어·국사’라는 이름은 한겨레도 중국도 대만도 안 썼습니다. 일본에서조차 안 썼지요. 지난날 중국이나 조선이나 일본은 ‘중국어·조선어·일본어’하고 ‘중국사·조선사·일본사’처럼 말했습니다. 이러다가 일본이 제국주의로 치달으며 이웃나라를 식민지로 삼을 적에 ‘국어·국사’라는 이름이 튀어나왔어요. 일본 제국주의가 내세운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울타리를 군홧발로 세우면서 쓰던 이름이 ‘국어·국사’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 이런 이름을 털지 못합니다. 더구나 이 이름에 이런 뜻이 깃든 줄 모르기 일쑤이지요. 그냥 쓰는 말 한 마디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일제강점기 생채기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롯해서 재일조선인이라는 한겨레를 헤아리려 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국어·국사’ 같은 식민지 찌꺼기 이름을 털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일본 시의 전통이 만일 조선 시에 열등감을 느낀다면, 그건 시 한 편이 제대로 죽음에 값한 시인을 갖지 못한 까닭이겠죠. 조선에는 옛부터 시 한 편으로 목숨을 내놓아야 했던 시인이 많았습니다. (139쪽)

나는 재일조선인에게 ‘귀화’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귀화란 원래로 복원되는 것이지, 저기에 있는 체계로 마치 유카타처럼 자신을 다시 감싸는 허위의 소위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170쪽)


  《재일의 틈새에서》를 쓴 김시종 님은 어릴 적(일제강점기)에 일본말을 제 나라 말인 줄 여기면서 신나게 쓰던 부끄러운 이야기부터 풀어냅니다. 해방을 맞이하면서 벙 뜬 이녁 모습을 고스란히 적습니다. 일본에서 ‘어느 나라 품에 안길 수도 없는 살림’을 지어야 하면서 겪는 고단한 하루를 찬찬히 적습니다.

  글쓴이가 들려주는 김희로 이야기란, 재일조선인 지문날인 이야기란, 남북녘으로 갈린 두 정치권력이 저마다 독재로 치닫는 모습을 일본에서 바라보아야 하던 이야기란, 모두 우리 발자국입니다. 같은 겨레가 두 나라가 되어 싸운 지난날도 우리 발자국이요, 우리가 바라지 않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나 떼죽임마저 우리 발자국이에요.


생각해 보면 조선인의 유구한 가락, 애초 군인대오의 행진과는 거리가 멀던 3박자의 장단이 어느샌가 2박자 군화의 울림에 짓밟힌 지 오래다. (318쪽)

전횡을 휘두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뒤를 이은 전두환 대통령, 그것도 석 달 사이에 스스로를 대장으로 끌어올린 전 소장의, 이 또한 악마의 자식이라고밖에 말할 길 없는 처절한 (1980년 광주학살) 포학상을 생각하노라면 ‘조선인’이라는 게 문득 부끄러워질 만큼 기가 죽는다 … 정말로 조선인은 민족적으로 야만적이고 동족 학살을 일삼는 부도덕한 무리들인 것일까? (319쪽)


  우리는 스스로 남이며 북으로 가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일본이며 러시아이며 중국이며 중앙아시아로 퍼지지 않았습니다. 총칼에 눌리고 밟히면서 남북이 갈렸고, 곳곳으로 내쫓겨야 했습니다. 이런 우리는 정치권력이 이끄는 대로 군인이 되어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어요. 게다가 군사독재자가 시키는 대로 멀쩡한 사람들을 폭도로 내몰아 끔찍하게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평화로우며 착한 마음이 아닌, 위에서 시키는 대로 휘둘리는 사회였습니다.


‘광주사태’의 피비린내가 아직 가시지 않은 와중에 전두환 장군과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그리운 군가를 함께 노래하며 춤췄다는 감격을 좋아라 ‘회견기’에 적은 도쿄 모 대학의 교수가 있다. 얼마나 반죽이 잘 맞았겠는가! (320쪽)


  재일조선인만 틈새에서 살지는 않았다고 느낍니다. 《재일의 틈새에서》를 쓴 김시종 님은 일제강점기에 어린 나날을 보내면서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일본말 잘하는 모범생’으로 지냈다고 해요. 어릴 적에는 이 모습이 얼마나 부끄럽거나 못난 짓인지 하나도 몰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1960년대를 비롯해서 1980년대까지도 이 나라 한국에서는, 학교에서 반공웅변대회를 열었고 민주평화운동은 사회를 어지럽히는 짓이라고 가르치기 일쑤였어요. 저는 1970∼80년대에 어린 나날을 보내면서 학교랑 사회에서 길들인 소름돋는 말을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습니다. 나라가 민주와 평화가 아니라면 틈새살이가 될 뿐이라고 할까요. 민주와 평화를 등진 나라에서는 누구나 틈새살이로 억눌린다고 할까요.

  부디 군홧발이 모두 사라지기를, 모든 군국주의와 제국주의가 없어지기를, 이리하여 어깨동무와 따사로운 품이 태어나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북녘에서도 어리석은 낡은 모습을 말끔히 씻어내기를 바랍니다. 2018.3.14.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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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등여행기 - 도쿄에서 파리까지
하야시 후미코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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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98


모든 걸음은 여행이 되어
― 삼등여행기, 도쿄에서 파리까지
 하야시 후미코/안은미 옮김
 정은문고, 2017.6.13.


나는 하얼빈의 여름보다 겨울을 좋아합니다. 역시 추운 나라의 풍경은 추울 때가 제일. 공기가 와삭와삭 유리 같아 상쾌한 기분입니다. (12쪽)

이제 다시 만날 일은 없겠구나 싶어 우연히 스쳐가는 이 친절한 사람을 적어도 눈으로라도 배웅하자는 마음에 악수를 한 뒤 곧장 커튼 사이로 플랫폼을 씩씩하게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엿봤습니다. (19쪽)


  아침에 일어나서 마당을 한 바퀴 도는 몸짓을 나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안에서 오가는 몸짓을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버스나 기차나 비행기나 배쯤 타고서 수백 킬로미터나 수천 킬로미터를 오가야 비로소 나들이나 여행이라는 이름이 걸맞을까요.

  우리로서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도쿄부터 파리까지 기차를 타고 떠나서, 다시 파리에서 도쿄로 배를 타고 돌아온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1903년에 태어나 1951년에 숨을 거둔 하야시 후미코라는 분으로, 이 마실길을 《삼등여행기》(정은문고, 2017)라는 책으로 남겼습니다.


창에 이마를 대고 자작나무가 눈보라에 부러질 듯 비틀비틀하는 숲을 바라보는 내게 페름 군이 탱고의 한 구절을 불러줍니다. 어찌하여 러시아인은 이토록 노래를 사랑하는 걸까요. (28쪽)

러시아는 어째서 기계공업에만 손을 대고 내수 물자를 풍부하게 하는 데는 손을 놓고 있는지, 나쁘게 말하면 삼등 열차의 프롤레타리아는 모두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38쪽)


  1930년대에 무척 먼 마실길에 나서는 분은 짐을 바리바리 꾸렸다고 합니다. 부산을 떠나 러시아를 가로질러 프랑스까지 이르는 기찻길은 하루이틀 달리는 길이 아니라고 해요. 기차에서 숱하게 먹고 자면서 지내야 한다지요. 기차에서 밥을 사서 먹을 수 있으나 냄비를 챙겨서 손수 지어 먹을 수 있고, 차도 주전자를 챙겨서 손수 끓여 마실 수 있다고 합니다(요즘도 이렇게 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더욱이 한겨울에 시베리아를 가로지르는 기찻길을 달리자면 이불도 챙겨야 한대요.

  우리는 1930년대라는 일제강점기라는 나날을 살았기에 《삼등여행기》를 읽으면서 그무렵 조선사람은 어떤 삶과 살림이었나를 헤아릴 수 있어요. 억눌린 나라에서 바라보자면 일본사람 여행기는 별나라 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남긴 분이 바라본 기찻간 모습이라든지, 유럽 모습이라든지, 유럽에서 도시하고 시골 모습이라든지, 여러 나라 사람들하고 어울리면서 느끼는 생각은 곰곰이 돌아볼 만하구나 싶습니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프롤레타리아는 변함없이 프롤레타리아입니다. 그리고 어느 나라든 죄다 특권자는 역시 특권자입니다. 3루블의 기차 식당에는 군인과 인텔리풍의 사람이 대다수였습니다. 복도에 서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 중에 군인이나 인텔리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노동자의 모습이었습니다. (51쪽)

삼등 열차는 하나의 가족 같으니 어찌 된 일일까요? 한가로운 익살꾼이 많은 덕에 언제까지나 명랑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64쪽)


  일제강점기에 조선사람 가운데에도 누군가 이 책쓴이처럼 기차를 탔으리라 봅니다. 다만 조선사람이 남긴 기차 여행기는 찾아보기 매우 어렵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에 빌붙은 누가 이 기차를 탔을 수 있고, 독립운동을 하는 누가 이 기차를 탔을 수 있어요. 어떤 조선사람은 일등칸에 탔을 테고, 어떤 조선사람은 삼등칸에 탔을 테지요.

  《삼등여행기》를 읽으면서 1930년대 그무렵 어느 조선사람이 이 기차를 탔다면 어떤 눈으로 이웃나라 사람들을 바라보았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삼등칸에 탄 ‘삼등 사람’을 지난날 조선사람은 어떤 눈으로 보았을까 하고 어림해 보고, 오늘 우리는 우리 곁에 있는 이웃을 어떤 눈으로 마주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는 소수의 지식계급이라고 합니다만 흥, 놀라운 이야기네요. 파리를 지탱하는 건 백성과 이방인입니다. (85쪽)

파리는 경찰관 아저씨도 그냥 인사하며 지나갑니다. 아니, 경찰관조차 슬렁슬렁 돌아다니다 채소 가게 여종업원과 키스하는 판국입니다. (142쪽)


  삼등칸은 한식구 같았다는 책쓴이 말을 곱씹습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네 삼등칸도, 대중교통도, 시골버스도 그야말로 북적북적합니다. 느릿느릿 가는 대중교통으로 움직이는 여느 사람들은 천천히 달리는 이 길에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 마련입니다. 높거나 대단한 이야기는 없더라도, 수수하면서 살가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느 삶터에서도 이러한 모습은 엇비슷하게 흘러요. 책쓴이가 프랑스 파리에서 곁일로 살림돈을 벌며 살아가는 동안 지켜본 ‘삼등칸 같은 터전에서 살아가는 여느 프랑스사람’은 그야말로 살뜰하면서 살가운 몸짓이었다고 합니다.

  정치이며 언론이며 언제나 일등칸 사람들 이야기로 가득하기 마련입니다. 얼핏 보면 정치 지도자나 몇몇 지식계급이 나라를 이끄는 듯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책쓴이 말마따나 나라를 받치고 이끄는 힘이란 삼등칸 사람들한테서 비롯하지 싶습니다. 저잣거리에서, 골목집에서, 시골마을에서 아주 작고 수수한 손길이 흐르고 모여서 나라를 이루지 싶어요.


퐁텐블로에서 이틀, 바르비종에서 사흘이니 실로 팔랑개비처럼 분주한 여정이지만 파리 같은 도시에서보다 시골에서 알고 얻은 것이 더 많습니다. (191쪽)


  1930년대에 일본을 떠나 러시아를 가로질러 유럽에서 한동안 머물던 하야시 후미코라는 분은 일본을 견디기 어려웠을는지 모릅니다. 이웃나라로 쳐들어가는 군국주의가 물결치고, 숱한 지식인이 이에 어깨춤을 추며,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싸움판을 더 키우는 일본이 고향나라라고 한다면 무척 슬플밖에 없겠지요.

  여행길이란 이곳을 떠나 저곳에 머물면서 새바람을 쐬는 일이지 싶습니다. 이곳에 고인 바람을 걷어내어 새바람이 흐르도록 스스로 거듭나려는 몸짓이지 싶습니다.

  마당을 거닐거나 뒤꼍에서 호미질하는 손길도 여행이 될는지 모릅니다만, 부엌에서 밥을 짓고 마루에서 해바라기를 하는 하루가 마실길이 될는지 모릅니다만,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다른 고장에서도, 스스로 새롭게 보는 눈을 틔우면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다면 여행이요 마실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작은 곳에서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줄 아는 눈이기에, 멀리 돌아다닐 적에도 새롭게 아름다움을 마주하면서 받아들이리라 여겨요. 수수한 사람이 수수한 노래를, 투박한 마을이 투박한 바람을, 낮은 걸음걸이가 보드라이 이야기꽃을 나누어 줍니다. 2018.3.2.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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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무 백가지 - 꼭 알아야 할 우리 나무의 모든 것
이유미 지음 / 현암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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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37


남녘마을 집집마다 후박숲을 이룬다면
― 우리 나무 백가지
 이유미
 현암사, 1995.2.28.첫/2015.10.30.깁고 고침


자귀나무를 소쌀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농가에서 가장 소중한 소가 유난스레 좋아하는 나무이고 보면 농부들의 주름진 눈가에 자귀나무가 곱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인 듯싶다. (37쪽)


  자귀나무를 볼 적마다 으레 멈춥니다. 봄이 저물며 여름을 맞이할 적마다 자귀꽃이 눈길을 확 끌어요. 자전거를 달리다가도 아이들이 불러요. “아버지, 저기 저 나무!”

  저는 서울말이라 할 ‘자귀나무’라 하지만, ‘소쌀나무·소쌀밥나무·소찰밥나무’ 같은 이름도 있다고 해요. 어느 이름을 어디에서 먼저 썼는지 모르는데, 어쩌면 고장마다 다 다르게 이름을 붙였을 수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나무뿐 아니라 풀을 놓고도 우리가 어떻게 가까이하느냐에 따라 이름이 다르구나 싶어요. 우리 살림새가 풀이름이나 나무이름에 고스란히 깃든다고 할까요. 그래서 요즈막에는 소쌀나무 같은 이름은 퍽 낯설 수 있고, 이팝나무 같은 이름도 이름으로만 남기 쉽지 싶습니다.


햇살이 유난스런 겨울날, 반짝반짝 윤이 나는 잎새와 빨간 열매는 바라만 보아도 즐거운 마음이 들 만큼 아름답다. 긴긴 겨울이 다 가고 이른 봄에 피워내는 작고 앙증스런 꽃송이들, 그 꽃들이 내어놓은 향기로움. 호랑가시나무는 가까이 두고 아끼고 사랑해야 할 우리의 나무이다. (51쪽)


  《우리 나무 백가지》(현암사)는 1995년에 처음 나온 뒤로 꾸준히 고침판이 나옵니다. 글쓴이 스스로 나무를 더 배우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 테고, 스무 해 앞서 처음 여밀 적에는 빠뜨린 나무 이야기를 더 담을 수 있을 테고요.

  한국은 그리 큰 땅덩이는 아니라지만, 남녘하고 북녘 사이에 여러 가지 나무가 고루 자랍니다. 철 따라 남녘 끝에서 북녘 끝까지 달려 본다면, 거꾸로 북녘 끝에서 남녘 끝으로 달려 본다면, 이 앙증맞은 땅덩이에서 얼마나 갖가지 나무가 사이좋게 자라는가를 새롭게 느껴 볼 만하지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인천서 살다가 충북 충주에서 살다가 전남 고흥에서 살면서 고장마다 다른 나무 흐름을 여러모로 지켜볼 수 있어요. 나무 한 그루는 그냥 나무일 수 없을 뿐 아니라, 바람에 땅높이에 볕에 비에 흙에 따라 생김새나 크기나 굵기나 잎빛이 모두 다릅니다.


이팝나무 꽃을 한번 본 이들은 그 꽃이 만들어내는 황홀경에 빠졌다가는 왜 이렇게 아름다운 나무를 아직까지 몰랐는지 또 왜 관상수로 널리 심지 않는지 반문한다. (101쪽)

우리 선조들은 이 단단한 회양목으로 얼레빗을 많이 만들어 썼다. 회양목으로 만든 얼레빗은 부러지지 않고 부드러워 머리가 잘 빗겨지며 결이 일어나서 머리카락을 상하는 일도 없어 최고로 쳤다. (146쪽)


  겨울이 저물고 봄이 될 무렵, 아이들은 매화나무를 타겠다고 섣불리 나서지 않습니다. 이제 아이들 눈에도 매화나무 꽃망울이 잘 보여요. 나무타기를 하다가 겨우내 꿈꾸던 꽃망울이 다칠까 걱정해 줍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해마다 감나무를 더 높이 탑니다. 아마 올가을에는 아이들이 나무를 씩씩하게 타서 감을 따겠구나 싶습니다. 봄이 깊으면 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매화나무를 타면서 열매를 딸 테고요. 지난겨울에는 사다리를 받쳐서 유자나무 곁에서 유자알을 함께 땄어요.

  한 해 동안 잎하고 가지를 보는 나무라면, 꽃철에는 꽃을, 열매철에는 열매를 보는 나무예요. 여름에는 시원스레 그늘을 내어주고, 겨울에는 찬바람을 가려 주는 나무이고요. 아이들한테는 줄기를 잡거나 밟고서 타는 놀이벗이 되는 나무요, 어른한테는 보금자리를 넉넉히 품는 사랑스러운 나무입니다.


어린나무들이 훌륭하게 자라 더욱 아름다운 후박나무 숲이 이어지도록 하는 일은 이제 우리의 손에 달렸다. 우리의 푸른 미래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파괴되어 가는 우리 자연의 현실 속에 어린 후박나무들이 새로운 희망을 준다. (399쪽)


  《우리 나무 백가지》는 우리가 잘 살피고 알기를 바라는 나무를 백 가지 다룹니다. 우리 나무가 어디 백 가지뿐이겠습니까. 이백 가지도 삼백 가지도 될 테지요. 이웃나라에서 들어온 나무도 우리 나무처럼 고운 숨결이 될 테고요.

  글쓴이가 후박나무를 이야기하면서 ‘우리 푸른 앞날’이 어린 후박나무한테 있다고 적은 대목이 새삼스럽습니다. 우리 집 마당나무인 후박나무는 우리 집에 찾아오는 열 나문 마을고양이한테 낮잠 자는 터가 되곤 합니다. 큰 녀석도 새끼 고양이도 후박나무 그늘에서 여름내 서로 차지하겠다며 자리를 다투지요.

  태평양을 낀 남녘 고장 집집마다 후박나무가 우뚝 선다면 무척 어여쁘리라 봅니다. 바닷바람을 머금으며 씩씩하게 자라는 후박나무집이나 후박나무길을 가꾸어 본다면, 이 땅에 뿌리내린 우람한 나무가 마을숲이며 고을숲을 이룬다면, 참말 푸른 앞날을 열 만하지 싶습니다. 2018.2.26.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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