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한 아이도 버리지 않겠다고 (+ 진보교육감)



  우리집 큰아이는 올해(2026해)에 이름쪽(주민증록증)을 받는다. 여덟 살부터 올해까지 해마다 ‘입학유예신청서’를 내느라 애썼다. 작은아이는 앞으로 세 해 더 이 종이를 써야 한다. ‘우리집배움터’라는 길을 걸어가는 모든 아이와 어버이는 이 종이를 꼬박꼬박 써야 한다. 그저 집에서 스스로 배우는 길을 걷는데, 나라에서는 ‘위기청소년’이라든지 ‘학교밖 청소년’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얼핏 보면 ‘학교밖’이 맞다만, 이런 이름을 굳이 붙이려 한다면, 집에서 스스로 배우지 않는 아이들은 ‘집밖’인 셈 아닌가. 요즈음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언제 집에 발붙을 수 있는가. 숱한 어린이와 푸름이는 여덟 살이 되기 앞서부터 스무 살에 이르도록 “집이란 자느라 살짝 스치는 곳”일 뿐이다. 집에서 함께하는 삶이나 살림이나 사랑이 없이 몸뚱이가 커야 하는 오늘날 어린이·푸름이인 줄 알아챌 수 있을까.


  전남 고흥에 깃든 지난 열여섯 해를 되새긴다. 이동안 배움일꾼(교육감)이라는 사람을 늘 갈아치우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때껏 모든 ‘전남교육감’은 “전라남도 시민사회·교육단체가 밀어주는 진보교육감 후보”가 뽑혔다. 그런데 이때껏 뽑힌 모든 ‘전남 진보교육감’은 ‘새길(진보)’이 아닌 ‘벼슬꾼(공무원)’으로 곧장 나뒹굴었다. 이때껏 뽑힌 모든 ‘전남 진보교육감’은 너나없이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내걸었다. 이들은 ‘집밖(학교안)’과 ‘학교밖(집안)’에서 배우는 모든 어린이·푸름이가 고르게 제몫을 누리는 길을 열겠다고 밝혔으나, 아직 어느 누구도 이 말을 안 지켰다. 그래서 올해에 전남광주교육감을 새로 뽑는 마당에서 다시금 ‘새새새새 진보교육감 후보’를 밀기로 했다.


  전남뿐 아니라 경남도 충남도 비슷한데, 모든 고장에서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는 푸름이”한테 꽃돈(장학금)을 엄청나게 몰아준다. 이와 달리, 푸른배움터(중고등학교)나 어린배움터만 마치고서, 시골에서 논밭을 돌보거나 들숲메바다를 아끼는 길을 걷겠노라 밝히는 푸름이한테는 언제나 0원을 이바지한다.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어버이한테 땅이 없으면, 시골아이여도 어떤 ‘농업지원’을 못 받는다. 이미 땅임자(지주)끼리 돌라먹는 얼거리요 판이며 고을(지방자치)이다.


  시골에서 나고자란 사람이 시골빛을 배우고 익혀서 시골살림을 북돋우고 살리려는 배움길과 익힘길을 열겠다고 밝힌 일꾼(교육감·군수·도지사 후보자)을 전남광주뿐 아니라 대구경북이나 부산경남이나 서울경기나 강원이나 대전충청 어디에서도 보거나 들은 바 없다. 즈믄해쯤 거뜬히 살아내는 나무를 어떻게 바라보고 품고 사랑할 노릇인지 가르치거나 배울 수 있는 어린배움터나 푸름배움터가 없다면, 이제부터라도 작은배움터(폐교)를 살려서 새롭게 꾸릴 수 있다.


  이미 배움터가 닫을 때까지 일을 안 한 그들(교육청·군청·도청 공무원)이다. 시골아이가 시골에 뿌리내리는 배움길이 없고 익힘길이 없으니, 시골배움터는 갈수록 사라질밖에 없다. 파란바다 한복판과 푸른메 한켠에 때려박는 ‘태양광·풍력’이 푸른길(친환경)일 수 없다. 시골에서 서울로 끝없이 긴 빛줄(송전선)을 어마어마한 돈과 품을 들여서 새로 놓아야 하는데, 이런 짓은 터럭만큼도 푸른길이 아니다.


  한 아이도 팽개치지(포기) 않겠다고 말하려면, 풀 한 포기와 나무 한 그루를 고이 아끼고 보살피는 길을 열어야 맞다. 나무 한 그루와 아이 하나가 나란하다. 시골과 서울이 함께살 수 있는 길이 아니라면 모두 겉치레요 눈속임이며 거짓말이다. 삽질로 목돈을 끌어들이는 짓을 멈출 때라야 비로소 아이어른이 함께웃는 터전으로 나아가겠지. 2026.5.26.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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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책넋

놀러가는 너



  나는 집안일과 집밖일을 나란히 한다. 두 일을 ‘잘’ 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그저 두 일을 함께 맡는다. 여태 모든 일을 언제 어디에서나 기꺼이 맡았다. 어린배움터를 여섯 해 다니는 동안 ‘쓸고닦기(청소)’를 빼먹은 날이 하루조차 없고, 넓고 큰 짐승집(사육장)조차 동무하고 둘이서 내내 쓸고닦았다. 누가 짐이 무거우면 어린이 주제에 도맡거나 나눠들고, 어머니가 저잣마실을 가면 꼬박꼬박 짐꾼으로 따라나섰다. 싸움터(군대)에서 터무니없는 심부름을 시켜도 그저 맡았다. 싸움터에서는 윗내기(상관)가 시키면 “네! 알아서 죽겠습니다!” 하고 외치면서 다 해내야 했다. 200들이 기름통을 벼랑길에서 아찔아찔 미끄러지지 않으면서 혼자 굴려서 나르고, 멧길걷기(천리행군)를 하다가 쓰러진 뒷내기나 누가 있으면, 쓰러진  사람이 남긴 짐까지 어깨에 걸쳐서 끝까지 날랐다.


  큰아이가 태어나고 작은아이가 태어나는 동안 두 아이를 돌보면서 함께 노는 몫을 즐겁게 맡았다. 천기저귀를 대면서 날마다 빨래바람이요, 모든 빨래를 손발로 했고, 아이를 업거나 안으면서 달래고 자장노래와 놀이노래를 들려주었다. 밥을 짓고 비질과 걸레질을 하고,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하루를 오롯이 살면서 틈을 내어 ‘낱말책짓기(사전편찬)’를 했다. 일손이 바쁠 적에는 아이들을 무릎에 앉혀서 노래를 부르며 글일을 여몄다. 두 아이를 두바퀴(자전거)에 태워서 고흥 모든 곳을 다녔다. 멧자락도 오르고 바닷가를 달리고 들녘을 가로질렀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놀다가 잠들면 두 어깨에 한 아이씩 안고서 걸었다.


  집안일과 집밖일을 도맡는 나날이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다. 우리 어머니는 이렇게 일하셨고, 우리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도 이와 같이 일했을 테지. 사내(아버지) 가운데 두 일을 도맡는 사람이 드물 뿐, 누구라도 할 만한 일이다.


  언제나 아이곁에서 지내는 하루란, 아이한테서 배우고 아이한테 사랑을 속삭이는 길을 익히는 꿈빛이라고 느꼈다.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며 스스로 몸씻기를 해내려고 할 적에는 살짝 섭섭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씻고 나면 늘 목이나 팔뚝이나 등이나 곳곳에 땟자국이 고스란하다. 잘 비비고 문지르고 벗겨 주고 싶지만 꾹 참았다. 스스로 머리를 감는다고 용쓰지만 부스스하거나 먼지를 떨구지 못 한 모습을 보고도 말없이 지나갔다. 언젠가, 언젠가, 언젠가 스스로 알아채면서 즐겁게 해낼 테니까.


  어느 해부터 쇠날(금요일)이 몹시 붐빈다. 시골에서 서울로 가는 길도, 서울일을 마치고서 시골집으로 돌아갈 적에도, 쇠날 + 흙날은 그야말로 온나라 길바닥이 미친듯이 붐빈다. 살림하고 일하는 사람은 날짜(요일)를 안 따진다. 다녀야 하니 다닐 뿐이고, 일해야 하니 일할 뿐이다. 어쩌다가 쇠날하고 흙날이 겹치거나 끼면, 길손채를 잡느라 애먹고, 탈거리(버스·전철) 어디서나 빼곡빼곡 바다를 이룬다.


  삼성전자 일꾼이 꽃돈(상여금)을 뱉어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지. 일하는 사람은 일삯을 받을 몫이 있으며, 목소리를 내려고 머리띠를 두를 몫이 있다. 그러면 일꾼은 어느 만큼 일삯을 받으면서 제목소리를 내야 하는가? 이제는 ‘목소리’만 높일 때가 아니다. 이제는 ‘함께’라는 길을 볼 때이다. 지난날에는 어린배움터에서조차 길잡이가 아이들 뺨따귀를 순이돌이를 안 가리면서 갈겼다. 사내도 가시내도 길잡이 주먹질과 발길질에 피멍이 들 뿐 아니라, 피가 철철 흘렀다. 푸른배움터 길잡이는 아주 주먹꾼(권투선수)마냥 얼굴을 마구마구 두들겨패면서도 고개를 뻣뻣이 들고는 돈자루(촌지)를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지난날 “주먹잡이 길잡이(폭력교사)”는 멀쩡히 꽃돈(연금)을 넉넉히 받으며 탱자탱자 보낸다. 이러다가 요즈막에는 배움터가 뒤집혔다. 아무 곳에나 ‘아동학대’란 이름을 들먹이면서 아이들이 길잡이를 두들겨패거나 괴롭히기 일쑤이다. 어린이나 푸름이가 길잡이를 두들겨패거나 괴롭힐 적에는 종이(학적부)에 안 남는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판이다.


  일몫(노동권)을 어떻게 펴고 나누어야 슬기로운 나라요 터전일는지 헤아려야 할 때이다. 배움몫(교육권)을 어떻게 베풀고 추슬러야 어진 나라요 터전일는지 살펴야 할 때이다. 옳은목소리(정의로운 주의주장)로는 쌈박질만 하다가 다같이 죽는다. 옳은목소리가 아닌 ‘함께’라는 길, 곧 ‘함께살기·함께살림·함께꽃’을 바라보아야 할 때이다. 2026.5.16.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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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청초 淸楚


 들녘 한쪽에 청초하게 핀 → 들녘 한쪽에 곱게 핀

 가냘프고 청초한 아름다움 → 가냘프고 맑은 아름다움

 웃음은 연꽃처럼 청초했다 → 웃음은 못꽃처럼 정갈했다


  ‘청초하다(淸楚-)’는 “화려하지 않으면서 맑고 깨끗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를 가리킨다고 합니다만, 뜻풀이를 ‘화려하다 = 눈부시다 = 아름답다’로 이으니, 겹말풀이요 뜬금풀이입니다. ‘곱다·곱살하다·곱상하다’나 ‘해곱다·해맑다·해말갛다·해밝다·해사하다’로 고쳐씁니다. ‘구슬같다·구슬빛·구슬처럼·구슬꽃’이나 ‘깨끗하다·깨끔하다·보얗다·부옇다’로 고쳐써요. ‘푸르다·푸르스름하다·푸른빛·푸릇하다’나 ‘눈부시다·빛나다·반짝이다·드맑다’로 고쳐쓰지요. ‘말끔하다·멀끔하다·말쑥하다·멀쑥하다’나 ‘맑다·말갛다·맑밝다·맑고밝다·말긋말긋·말똥말똥’으로 고쳐씁니다. ‘정갈하다·칠칠맞다·칠칠하다·티없다·티끌없다’나 ‘이슬·이슬빛·이슬꽃·이슬같다·이슬처럼·물방울 같다’로 고쳐쓸 만해요. ‘산뜻하다·상그럽다·상큼하다·선뜻하다·선선하다·싱그럽다’나 ‘들길·들빛·들빛길·숲빛·숲빛깔·쑥·쑥쑥’으로 고쳐쓰지요. ‘아름답다·아리땁다·아름꽃·아름별·아름빛·아름꽃빛·아름빛꽃’이나 ‘예쁘다·예쁘장하다·이쁘다·어여쁘다·좋다’로 고쳐써도 어울립니다. ‘푸른사랑·푸른바라기·풀빛사랑·풀빛바라기·풀꽃사랑·풀꽃바라기’로 고쳐쓰며, ‘풋-·풋풋·풋풋하다·풋길·풋나이’나 ‘함초롬하다·함함하다’로 고쳐써도 됩니다. 이밖에 낱말책에 한자말 ‘청초’를 셋 더 싣는데 다 털어냅니다. ㅍㄹㄴ



청초(靑초) : 꼭지를 제외한 몸통 전체가 푸른 연

청초(靑草) 1. 싱싱하고 푸른 풀 2. 퍼런 잎을 썰어 그 자리에서 말린 잎담배 = 풋담배 3. 배운 지 얼마 되지 아니하여 아직 맛도 모르고 담배를 피우는 짓

청초(請招) : 사람을 청하여 부름 = 초청



야생 난 한 포기 청초하다

→ 들난 한 포기 맑다

→ 들난 한 포기 푸르다

→ 들난 한 포기 산뜻하다

《회화나무 그늘》(이태수, 문학과지성사, 2008) 39쪽


사야의 매력은 있는 그대로의 청초함이야

→ 사야는 있는 그대로 맑아서 그림같아

→ 사야는 있는 그대로 싱그러워 반하지

《사야와 함께 3》(타니카와 후미코/문기업 옮김, AK comics, 2017) 110쪽


정말 청초해 보였다

→ 참말 맑아 보였다

→ 참 산뜻해 보였다

→ 아주 푸르다

《박남옥, 한국 첫 여성 영화감독》(박남옥, 마음산책, 2017) 57쪽


청초해서 좋잖아

→ 맑아서 좋잖아

→ 말끔해서 좋잖아

→ 상큼해서 좋잖아

《고깔모자의 아뜰리에 1》(시라하마 카모메/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18) 15쪽


어찌나 청초하고 가련한지

→ 어찌나 싱그럽고 가녀린지

→ 어찌나 해맑고 가냘픈지

《행복화보》(오사다 카나/오경화 옮김, 미우, 2019) 39쪽


밤하늘에 청초하게 뜬 만월이 보인다

→ 밤하늘에 곱게 뜬 둥근달이 보인다

→ 밤하늘에 정갈히 뜬 보름달을 본다

《날마다, 도서관》(강원임, 싱긋, 2025) 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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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환대 歡待


 환대를 받다 → 반기다 / 모시다 / 섬기다

 예상 밖의 환대에 즐거워했다 → 뜻밖에 반겨 즐거워했다

 늘 환대해 주셨다 → 늘 모셔 주신다 / 늘 두손을 든다

 나를 환대하였다 → 나를 반색한다 / 나를 기뻐한다


  ‘환대(歡待)’는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함”으로 풀이합니다. ‘반갑다·반기다·반색·반색하다·뿌듯하다’나 ‘기쁘다·기뻐하다·기쁨·기쁨길·기쁨눈·기쁨빛’으로 고쳐씁니다. ‘꽃보라·꽃비·봄꽃비·여름꽃비·가을꽃비·겨울꽃비’나 ‘단비·봄단비·여름단비·가을단비·겨울단비’로 고쳐써요. ‘기리다·기림꽃·기림빛·기림질’이나 ‘모시다·모심·모심길·모심손’으로 고쳐쓸 만합니다. ‘섬기다·섬김·섬김길·섬김손’이나 ‘두손들다·두 손을 들다·손들다·손을 들다’로 고쳐쓰고요. ‘잘·좋다·좋이·좋디좋다·좋아하다’나 ‘하하·하하하·하하거리다·하하대다·하하호호·흐뭇하다’로 고쳐써도 어울립니다. 이밖에 낱말책에 한자말 ‘환대(環帶)’를 “1. [동물] 지렁이, 거머리 따위가 성숙했을 때 생기는 고리 모양의 띠. 이 표면으로부터 점액을 분비하여 난포막을 형성하고 그 속에 난자를 낳는다 2. [식물] 양치식물의 홀씨주머니 위를 고리 모양으로 에워싼 두꺼운 막으로 된 세포의 열. 이것의 작용으로 성숙한 홀씨주머니가 열리고 그 속의 홀씨가 밖으로 뿌려진다”처럼 풀이하며 싣지만 털어냅니다. ㅍㄹㄴ



꼬리의 구름, 그런 환대는 걷는다는 것

→ 꼬리구름, 그렇게 반기는 걷는 길

→ 꼬리구름, 그리 반기는 걷는 하루

《그런 의미에서》(임후성, 문학과지성사, 1997) 80쪽


유목민은 누구든지 가볍고 자유롭고 타인을 환대하고

→ 들지기는 누구든지 가볍게 바람처럼 이웃을 반기고

《소서노召西奴》(안명옥, 문학의전당, 2005) 34쪽


모두 이 땅의 엄청난 환대 때문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될 거야

→ 모두 이 땅이 엄청 반기기 때문인 줄 곧 알 수 있어

→ 모두 이 땅이 엄청나게 기뻐하기 때문인 줄 곧 알아

《충실한 정원사》(클라리사 에스테스/김나현 옮김, 휴먼하우스, 2017) 60쪽


작은도서관이라는 공통분모 하나로 가는 곳마다 환대를 받았습니다

→ 작은책숲이라는 한이름으로 가는 곳마다 반겨 주었습니다

→ 작은책숲으로 나란하다며 가는 곳마다 기뻐해 주었습니다

《우리 동네에는 작은도서관이 있습니다》(박소희·전혜선, 책숲놀이터, 2019) 6쪽


먹여 주고 환대해 주신 동네 어른들 덕에

→ 먹여 주고 반겨 주신 마을 어른들 힘에

→ 마을 어른들이 먹여 주고 반겨 주셔서

《위대한 일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김해자, 한티재, 2022) 7쪽


경제 주체인 어른들은 초대받고 환대받은 경험이 많다

→ 돈을 버는 어른들은 부르거나 반기기 일쑤이다

→ 살림을 하는 어른들은 으레 모시거나 좋아한다

《100교시 그림책 수업》(김영숙, 열매하나, 2022) 18쪽


궁에 도착할 때까지 큰 환대를 받았어요

→ 임금집에 닿을 때까지 크게 반겼어요

→ 큰집에 이를 때까지 크게 맞았어요

《여기는 집현전》(손주현·이혜정, 책과함께어린이, 2022) 50쪽


학벌로 얻는 가장 중요한 혜택 중 하나는 호의적 시선과 환대다

→ 배움끈이 있으면 다들 좋게 보고 반긴다

→ 줄이 있으면 무엇보다 좋아하고 모신다

《연애 결핍 시대의 증언》(나호선, 여문책, 2022) 171쪽


나를 진심으로 환대하는 거야?

→ 나를 참으로 반기니?

→ 내가 참말로 반갑니?

《누가 알았겠어》(푸름, 키위북스, 2023) 21쪽


이런 환대를 받게 될 거라곤 정말 생각하지 못했는데

→ 이렇게 받아들이리라곤 아주 생각하지 못했는데

→ 이렇게 반기리라곤 아예 생각하지 못했는데

《누가 알았겠어》(푸름, 키위북스, 2023) 23쪽


신입생을 환대하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 새내기를 기리는 곳이 있습니다

→ 첫내기를 반기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책벌레의 하극상 4부 2》(카즈키 미야·카즈키 히카루·시이나 유우/문기업 옮김, 대원씨아이, 2024) 10쪽


이 글을 읽는 동안 환대받는 기분을 느끼셨다면 더없이 기쁘겠습니다

→ 이 글을 읽는 동안 반갑다고 느끼신다면 더없이 기쁩니다

→ 이 글을 읽으며 반가우셨다면 더없이 기쁩니다

→ 이 글을 반갑게 읽으신다면 더없이 기쁩니다

《행운이 구르는 속도》(김성운, 사계절, 2024) 138쪽


모두를 품는 환대의 공간으로 도서관을 꼽는 나는 이런 글들을 볼 때마다 씁쓸하다

→ 나는 책숲이 모두를 품는 곳으로 꼽기에 이런 글을 볼 때마다 씁쓸하다

→ 나는 책숲이 모두를 반긴다고 여기기에 이런 글을 볼 때마다 씁쓸하다

《날마다, 도서관》(강원임, 싱긋, 2025)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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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반반 半半


 수입을 반반으로 나누다 → 벌이를 비슷하게 나누다

 합격할 가능성이 반반이라 → 그럭저럭 붙을 듯하여

 서로 반반이다 → 서로 비슷하다 / 서로 똑같다 / 서로 나란하다

 지난해의 반반도 못 된다 → 지난해에 거의 댈 수 없다

 오늘 할 일의 반반도 채 못 했다 → 오늘 할 일을 얼마 못 했다


  ‘반반(半半)’은 “1. 무엇을 절반으로 나누어서 가른 각각의 몫 2. 절반의 절반 = 반의반”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가르다·가름·갈라내다·갈라놓다·갈라치다’나 ‘가운-·가온-·가운데·가운몫·가운치·가운토막·가운판’으로 손봅니다. ‘가지런·가지런하다·고르다·고른길·고른빛’으로 손보고, ‘도막·도막도막·도막꽃·도막나다·동강·동강이·동강꽃’이나 ‘토막·토막토막·토막꽃·토막나다’로 손봐요. ‘나누다·나눔·나누기·노느다·노느메기’로 손보며, ‘나란하다·나란히·나란길·나란빛·나란꽃’이나 ‘나란살이·나란살림·나란삶·나란누리·나란마을’로 손볼 수 있습니다. ‘비금비금·비슷·비슷비슷·비슷하다’나 ‘도르다·도르리·도리기·도림꽃’으로 손보고요. ‘뒤섞다·섞다·섞음·섞이다·섞임’이나 ‘마찬가지·매한가지·맞잡다·마주잡다’로 손볼 만해요. ‘맞추다·맞춤·맞추기·알맞다·알맞춤하다’나 ‘몇·몇 가지·몇몇·몇 곳·몇 군데·얼마’로 손보아도 어울립니다. ‘갈마들다·갈마보다·같다·똑같다·뚝·똑’이나 ‘거의·겨끔내기·넌지시’로 손볼 수 있어요. ‘그냥·그냥그냥·그냥저냥·그럭저럭·그저’나 ‘이냥저냥·이럭저럭·이러쿵저러쿵·이렁저렁’으로 손봅니다. ‘깍두기·깨끔·깨끼·깨금’이나 ‘둘·두·두빛·둘씨·둘쨋씨·둘에 하나’로 손보지요. ‘진배·진배없다·진바·진바없다’나 ‘푼푼이·한 푼 한 푼·한 푼씩·한 푼 두 푼’으로 손봐도 돼요. 이밖에 낱말책에 한자말 ‘반반’을 셋 더 싣는데 다 털어냅니다. ㅍㄹㄴ



반반(班班) : 각 반. 또는 여러 반

반반(斑斑) : 1. 고르지 못한 모양 2. 여러 가지 빛깔이나 얼룩무늬가 섞여 있는 모양

반반(盤盤) : 산길 따위가 구불구불하게 구부러진 모양



잉크빛과 보랏빛이 반반이 섞인 오디 따먹으려고

→ 먹물빛과 보랏빛이 알맞게 섞인 오디 따먹으려고

《사랑은 늘 혼자 깨어 있게 하고》(한승원, 문학과지성사, 1995) 22쪽


디자인에 관한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게 되다니 두려운 마음과 신나는 마음이 반반씩이다

→ 꾸밈길 이야기를 활짝 꺼내놓으니, 두려운 마음과 신나는 마음이 똑같이 든다

→ 꾸밈꽃 이야기를 널리 꺼내놓으니, 두려운 마음과 신나는 마음이 갈마든다

《나의 디자인 이야기》(이나미, 마음산책, 2005) 책머리에


조선사람과 일본인이 반반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 조선사람과 일본사람이 똑같았다고 떠오른다

《역사가의 시간》(강만길, 창비, 2010) 25쪽


식비는 반반 부담이에요

→ 밥값은 같이 나눠요

→ 밥값은 똑같이 갈라요

《남자의 일생 1》(니시 케이코/최윤정 옮김, 시리얼, 2011) 70쪽


책 내용을 둘로 나눠 반반씩 하는 경우도 있다

→ 책을 둘로 나눠 하기도 한다

→ 줄거리를 둘로 나눠 보기도 한다

《책에게 말을 걸다》(오정화, 북포스, 2011) 254쪽


남자와 여자가 대략 반반씩 흩어져 살고 있는 것처럼, 이 두 가지 타입이 적당히 나뉘어져 분포하고 있다

→ 순이와 돌이가 얼추 고르게 흩어져 살듯이, 이 두 가지로 알맞게 나뉘어 살아간다

→ 사내와 가시내가 거의 나란히 흩어져 살듯이, 이 두 모습으로 알맞게 살아간다

《요코 씨의 말 1》(사노 요코·기타무라 유카/김수현 옮김, 민음사, 2018) 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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