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싸우는 책(군대일기)

팔굽혀펴기



  어릴적에 팔굽혀펴기를 참 못 했다. 그저 힘들고 너무 고달팠다. 팔굽혀펴기라면 한둘을 겨우 할 만했고, 턱걸이라면 한둘을 가까스로 했다. 팔굽혀펴기도 턱걸이도 못 하는 나를 보는 또래나 언니한테서 “사내애가 팔힘도 없어서 어쩌려고?”라든지 “계집애보다도 못 할 수 있냐? ○○가 창피하지도 않냐?” 같은 꾸지람과 놀림말을 내내 들었다. 어린배움터에서 지낸 여섯 해 동안 ‘체육’이라는 이름으로 너른터에 나올 적에 제발 ‘팔굽혀펴기’나 ‘턱걸이’ 좀 안 시키기를 바랐다.


  팔심이 오지게 없지만 심부름꾼이나 짐꾼으로는 한몫을 했다. 우리집은 ‘연탄을 때는 5층 아파트(13평형)’였는데, 기름보일러가 갓 나와서 퍼질 적에 아버지는 1984해 무렵에 200만 원이라는 큰돈을 들였다(36달 나눠내기). 아버지는 집에 연탄 아닌 기름을 때자고 말하면서도 밤마다 술떡이 되어 돌아왔고, 다달이 나갈 목돈은 어머니가 곁일(부업)을 하면서 메꿨으며, 언니와 나는 어머니가 하는 곁일을 신나게 도와서 가까스로 값을 다 치러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기름보일러를 들이면 기름통에 기름을 받아서 날라야 한다.


  우리집은 넷째(4층)이다. 빈 기름통(20ℓ)을 둘 들고서 기름집으로 간다. 기름을 꾹꾹 눌러담아서 받은 뒤에 집까지 들고 간다. 고작 열 살인 아이가 두 손에 ‘꽉 찬 기름통’을 들고서 나른다. 한 해 내내 나른다. 이듬해에도 다음해에도 나르지. ‘계단만 있는 5층 아파트’를 떠나던 1991해 여름까지 신나게 기름통을 날랐다. 이동안 아버지라는 분은 기름통을 나른 적이 없다. 지난날에는 다들 이랬다. 이른바 ‘가부장권력’이었고, 언제나 아이들이 모든 심부름과 일을 맡아야 했다.


  어머니가 신포시장으로 저잣마실을 갈 적이면, 나는 언제나 같이 가서 짐꾼 노릇을 했다. 그러나 억지로 짐을 견디면서 날랐을 뿐이다. 나는 팔힘도 손힘도 다릿심도 여렸다. 어머니가 엄청난 저잣짐을 집까지 혼자 나르면 얼마나 힘들겠느냐고 느꼈다. 집안일을 나랑 언니가 나눠야겠다고 여겼다. 힘이 없어도 젖먹던 힘을 짜내어 짐꾼 노릇을 했다. 그나마 팔굽혀펴기랑 턱걸이는 못 했어도, 오래달리기는 용케 버티면서 열손가락(55명 한 반)에 들었다.


  나는 힘없는 아이로 살며 늘 얻어맞는 나날인데, 열네 살(중1)에 또 마을 야살이(깡패)한테 얻어맞고서 돈을 빼앗기고 들어온 날, 우리 언니는 야살이보다 더 두들겨패면서 “어머니, 이 새끼 이대로 두면 안 되겠어요! 무술학원에 집어넣어서 주먹을 기르라고 해야지, 어떻게 맨날 쥐어터지면서 돈을 뜯기고 울면서 집에 들어와요?” 하면서 큰소리를 냈다. 언니는 내 멱살을 쥐고서 인천에 있는 내로라하는 무술학원을 하루 내내 돌았다. 한참 ‘대련·훈련’을 지켜보면서 “야, 여긴 안되겠다! 딴 데 가자!” 하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돌다가 마침내 ‘박문여고 옆에 있던 특전무술 도장’에 이르렀다. “여기까지 보고 안 되면 할 수 없지만, 여기는 좀 낫겠지!” 하고서 들어갔다. 언니는 ‘여고 옆 특전무술 도장’에서 펴는 ‘대련·훈련’을 한참 보더니 드디어 웃는다. 마음에 드는 듯했다. 그러나 옆에서 나는 ‘설마? 이런 데에 날 넣으려고? 나더러 죽으란 소리?’ 하면서 끔찍했다. 1988해에 ‘여고 옆 특전무술 도장’에 그날로 들어가야 했다. 이무렵 한 달에 이곳에 내는 삯은 55000원이었다. 그때 유도나 태권도나 합기도나 레슬링이나 뭐 이런저런 길을 가르치는 곳은 비싸야 15000원이었다.


  이제 와 돌아보면, 지난날 무술학원은 ‘돈을 받으면서 공식으로 두들겨패도 되는 곳’이었다. ‘여고 옆 특전무술 도장’을 다니는 첫 한 달 동안 ‘안 죽을 만큼 실컷 얻어맞았’는데, 날마다 멍이 시퍼렇게 들고 입술이 찢어져도 용케 안 빠지는 나를 지켜보던 길잡이(사범)가 한마디 한다. “넌 언제까지 맞을 생각이야? 너도 때려야지!” 하면서, 그곳에서 가장 어린 나더러, 적어도 서너 살부터 열 살이 더 넘는 ‘특전무술 유단자’한테 제대로 맞서라고 꾸짖는다. “넌 기술이 없잖아. 기술이 없으면 뭐가 있어야겠니? 맷집이 있으면 돼. 때리는 놈이 지칠 때까지 버티면, 그때 마지막으로 네가 한 주먹을 갈겨서 넘어뜨릴 수 있어. 우리 도장 2층에 헬스클럽 있는 거 알지? 넌 수련을 오기 전에 먼저 헬스클럽에서 한 시간씩 역기를 들고서 와!” 하고 을러댔다.


  이른바 ‘맞아죽’지 않으려고 날마다 한 시간씩, 나중에는 두 시간씩 쇳덩이를 들어 보았다. 처음에는 10kg도 버거웠지만 20kg과 30kg과 40kg을 지났다. 선 채로 한 손으로 60kg을 들고 내릴 수 있을 즈음, 이제 이곳에서 나보다 쇳덩이를 잘 드는 언니는 아무도 없다. 다만 내가 가장 무거운 쇠를 들고 버틸 수는 있되, 언제나 얻어맞기만 했다. 맷집만 늘었달까.


  한참 얻어맞은 지 석 달이 지날 무렵부터 팔굽혀펴기가 ‘이렇게 쉬웠나’ 하고 느꼈다. 어느새 턱걸이 서른∼마흔을 가볍게 할 수 있었다. 이곳(특전무술 도장)에서 시키는 턱걸이는 ‘빨리 해내는 길’이 아니다. 10초를 밑에서 있다가 10초에 걸쳐서 천천히 몸을 올려서 쇠작대 너머로 머리를 밀어올리고서 10초를 버틴 다음, 다시 천천히 10초에 걸쳐서 몸을 내려야 ‘1번 했다’고 쳤다. 이곳에서 시키는 팔굽혀펴기는 그냥 팔만 굽혀서 펴는 길이 아니었다. 손바닥을 바닥에 대는 자리를 바꾸어 숱하게 하고, 주먹으로 바닥을 대며 또 숱하게 하고, 다섯손가락과 세손가락과 두손가락과 한손가락을 바닥에 대면서 숱하게 갈마든다. 이러고 나면 오른팔만 쓰는 팔굽혀펴기를 하되, 손바닥과 주먹과 손등과 손가락을 다 다르게 쓰는 길을 시키고, 왼팔만 쓰는 팔굽혀펴기로 바꾼다. 이다음으로는 물구나무서기를 한 채 팔굽혀펴기를 시킨다. 이때에도 두손과 한손을 모두 갈마든다. 이다음으로는 다른 사람이 뒤에서 두 다리를 잡은 채 팔굽혀펴기를 처음부터 모두 새롭게 시킨다. 이리하여 이곳에서 시키는 팔굽혀펴기만으로 40분쯤 걸리고, 모두 즈믄(1000)벌을 해내야 한다. 날마다.


  우리나라에서는 열린배움터(대학교)에 들어가면 싸움터(군대)를 하염없이 미룰 수 있다. 나는 열린배움터에 들어갔되 그만두었다. 그만두기 무섭게 종이(입대영장)가 날아들었고, 열린배움터를 그만둔 지 한 달이 안 된 1995해 늦가을에 싸움터에 끌려갔다. 그러려니 여기면서 논산훈련소에 갔고, 두들겨패고 괴롭히고 윽박지르는 굴레에서도 “난 너희 노리개는 아니야. 난 언제나 나를 사랑하면서 돌봐.” 하고 혼잣말을 했다. 또래(훈련소 동기)는 두들겨패고 괴롭히고 윽박지르는 이곳에서 지쳐서 나가떨어지는데, 나는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앞서 ‘그곳(여고 옆 특전무술 도장)’에서 가르쳐 준 팔굽혀펴기를 잊지 않으려고 꼬박꼬박 몰래 했다.


  이러던 어느 날 훈련소 조교가 나를 봤다. “이 새끼 봐라? 우리 훈련이 안 힘든가 봐? 이 새끼는 이제 쉬라고 자유시간을 줬더니 혼자 팔굽혀펴기를 하고 지랄이네? 너 그렇게 운동 좋아해? ○○○ 그러면 이제 팔굽혀펴기 200회 실시한다, 실시!” 하고 뇌까린다. 훈련병이 무슨 재주가 있는가. 없지. 그래서 나는 “훈련병 ○○○번 최종규, 팔굽혀펴기 200회 실시!” 하고 따라한다(복명복창). 싸움터에서는 따라하기(복명복창)를 먼저 안 하면 “안 했다”고 친다. 아니, 안 했다고 치기 앞서 주먹이나 발이 먼저 날아온다.


  나는 그무렵 하루에 팔굽혀펴기를 혼자서 즈믄(1000)씩 몰래 했기에 200벌을 따로 더 한들 대수롭지 않았다. 곧 “훈련병 ○○○번 최종규, 팔굽혀펴기 200회 종료했습니다!” 하고 외쳤다. 조교는 말이 없었다. 멍한 듯했다. “어, 그래? 200회 실시했네. 앞으로 또 이러지 마, 이 미친새끼야!” 하고는 곧 달아났다.


  훈련소에서도 자대에서도 놈(상급자)이 시키는 모든 얼차려와 주먹질과 발길질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열네 살부터 얼결에 기른(?) 맷집 때문일까. 놈(상급자)은 놈(하급자)이 모두 따르면 두려워하더라. 때로는 무서워하더라. 이 놈(놈새끼)이 설마 끝까지 해낼 줄이야 싶으면서 눈 가장자리가 파르르 떨린다. 그곳(군대)에서 스물여섯 달 동안 놈(상급자)이 파르르 떠는 눈망울을 보았다. 다만, 그뿐이다. 그들이 파르르 떨든 말든, 그들이 터무니없는 짓을 시키든 말든, 그들은 스스로 갉고 스스로 무너지고 스스로 망가지려고 멍청짓을 시키면서 괴롭히고 밟으려고 한다. 그들이 시키는 모든 멍청짓을 바람과 바다처럼 가만히 흘려넘기면서 “그래, 기쁘게 받아들일게, 즐겁게 할게.” 하고 여기면 어느새 다 지나간다.


  1995해 한겨울 논산훈련소에서 ‘벌 얼차려로 팔굽혀펴기 200회’를 갑자기 해내야 했지만, 이미 ‘나살리기’를 하면서 나를 지키려고 날마다 저녁이나 밤에 몰래 했기에, 오히려 나를 괴롭히려던 놈(상급자)이 달아났고, 그놈은 그 뒤로 나를 안 쳐다보았다. 그런데 2026해 늦봄에 어느 싸움터에서 어느 놈(상급자)이 “멀쩡한 젊은이”를 괴롭히려고 팔굽혀펴기를 억지로 시키면서 몸을 망가뜨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국방부장관·대통령·국가인권위원회장·여성가족부장관·민주당대표·진보당대표’ 같은 이들은 어디에서 뭘 하며 무슨 말을 하는가?


  팔굽혀펴기는 스스로 하고 싶은 사람이 스스로 몸을 살펴서 알맞게 해야 할 뿐이다. 남이 시키면서 괴롭힐 짓이 아니다. 팔굽혀펴기를 하고 싶으면 ‘니들(상급자)’이 스스로 해야지. ‘국방부장관·대통령·국가인권위원회장·여성가족부장관·민주당대표·진보당대표’도 나란히 해야지. 입꾹닫을 할 일이 아니다. 싸움터로 끌려가서 뒹굴어야 하는 앳된 젊은이가 피눈물을 흘릴 끔찍한 짓을 이제는 모조리 걷어치워야 한다. 2026.5.28.


"제발 멈춰달라" 묵살한 강제 팔굽혀펴기…병사 근육 녹았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6099737?sid=102


군대서 팔굽혀펴기하다 근육 녹았다…피해 가족 “엄벌해달라”

https://n.news.naver.com/article/119/0003095336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민이 사르르, 유령 아이스크림
칸나 지음, 한귀숙 옮김 / 다그림책(키다리)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6.5.29.

그림책시렁 1812


《고민이 사르르, 유령 아이스크림》

 칸나

 한귀숙 옮김

 다그림책

 2025.7.16.



  요즈음 사람들은 근심도 걱정도 끌탕도 끊이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근심과 걱정과 끌탕을 일부러 즐긴다고까지 느껴요. 근심할 일이 아닌데 굳이 근심하고, 걱정거리가 아닌데 붙들어매고, 끌탕할 까닭이 없으나 내내 끓어요. 《고민이 사르르, 유령 아이스크림》을 읽었습니다. 이 그림책을 펼 아이랑 어른이 참말로 근심걱정끌탕을 사르르 녹일 만한지, 또는 더 근심하고 걱정하고 끌탕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놀이하지 못 하는 아이는 내내 근심걱정입니다. 일하지 않는 어른은 언제나 끌탕입니다. 아이가 놀이를 빼앗기면 끌탕입니다. 어른이 일을 안 찾으면 근심걱정이에요. 마음을 오롯이 기울이며 구슬땀을 내어 뛰논 아이는 둘레에 안 휩쓸리면서 ‘나’를 든든히 세우며 자랍니다. 뛰놀며 자라는 동안 ‘나’를 세운 아이는 천천히 철들며 ‘일’이 무엇인지 알아채요. 시켜서 맡는 심부름이 아니라, 스스로 일어나는 길이 일이거든요. 바람과 바다가 일듯, 스스로 삶을 을이킬 적에 일입니다. 뛰놀지 못 한 채 몸뚱이만 어른이 되었다면, 아직 늦지 않았으니 실컷 뛰놀 노릇입니다. 어릴적 못 한 놀이를 서른 살이나 쉰 살에 신나게 누려 보면, 비로소 일을 알아보게 마련이라, 이 삶에 근심걱정끌탕이란 없이, 굳이 얼음(아이스크림)을 먹지 않고서도, 스스로 다 풀고 품습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래 도서관
지드루 지음, 유디트 바니스텐달 그림, 박재연 옮김 / 바람북스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6.5.29.

그림책시렁 1772


《고래 도서관》

 지드루 글

 유디트 바니스텐달 그림

 박재연 옮김

 바람북스

 2023.6.30.



  바다에서 살며 파란별을 헤아리는 고래가 있습니다. 뭍에서 살며 책을 짓고 나누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다 + 고래 + 뭍 + 사람 + 책’이라는 다섯 갈래를 묶으려는 《고래 도서관》입니다. 언뜻 뜻깊게 줄거리를 짜는구나 싶으면서도, 막상 ‘이야기로 엮는 갈피’는 모자라구나 싶습니다. 고래로서는 몸에 긁힌 자국 하나하나가 ‘책’입니다. 고래 몸뚱이에 ‘따개비’가 붙어서 함께 바다를 가르며 오래오래 살아가기도 합니다. 따개비 하나도 언제나 책입니다. 고래가 뱃속에 어마어마하다 싶은 책숲을 품는다고 여겨도 되고, 이와 같은 곳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만, 너무 ‘종이책’에만 얽매인 얼개입니다. 바다에서 글월을 나르는 작은일꾼이 고래를 살살 어루만지면서 ‘긁힌 자국과 따개비’ 하나하나에서 숱한 이야기를 마음으로 느끼고 알아채는 줄거리를 짤 만하지 않을까요? 고래는 ‘저를 쓰다듬는 사람손길’을 느끼면서 ‘손마다에 남은 자국’에서 뭍살림을 읽어내는 줄거리를 짤 수 있습니다. 이 그림책을 펴면, 고래가 이모저모 궁금해서 사람한테 묻는다고 나오는데, 고개를 갸웃갸웃했습니다. 고래가 모를 까닭이 없는 일을 굳이 물어본다니 아리송합니다. ‘태어나는 아기’를 쳐다보지 못 하는 사람도, 바다도둑(해적)을 마냥 좋게 그리는 줄거리도, 이래저래 아쉽기만 합니다.


#La baleine bibliotheque (2021년) #Zidrou #Vanistendael #くじら圖書館


ㅍㄹㄴ


《고래 도서관》(지드루·유디트 바니스텐달/박재연 옮김, 바람북스, 2023)


수천 수만 권의 책들이 가다다순으로 가지런히 정리가 되어 있었지

→ 숱한 책을 가나다로 가지런히 놓았지

→ 숱한 책을 가나다로 가지런히 꽂았지

5쪽


이야기 속으로 푹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몰랐지

→ 이야기에 푹 빠져들어 하루 가는 줄 몰랐지

→ 이야기에 푹 빠져들어 날 저무는 줄 몰랐지

5쪽


쉽게 들어주는 부탁은 아니었지만

→ 쉽게 들어주지는 않지만

→ 쉽게 들어줄 일은 아니지만

6쪽


망망대해 한가운데로 노를 저어 나가곤 했지

→ 난바다 한가운데로 삿대를 저어 나가곤 했지

→ 큰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가곤 했지

→ 한바다 한가운데로 가곤 했지

10쪽


나는 그녀를 꼭 껴안았어

→ 나는 짝꿍을 껴안았어

→ 나는 곁짝을 꼭 안았어

16쪽


우리를 죽이는 것이 마치 자기들의 존재 이유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야

→ 우리를 죽여야 살아갈 수 있는 줄 말이야

→ 우리를 죽여야 삶인 줄 여기고 말이야

→ 우리를 죽이며 살아야 하는 듯 말이야

23쪽


서로를 알아가는 여정이었지

→ 서로를 알아가는 길이었지

→ 서로를 알아가는 날이었지

25쪽


저 깊은 심연에서부터 자라난다는 전설적인 거대 나무 이야기도

→ 저 깊은 곳에서 자라난다는 큰나무 옛이야기도

→ 저 밑바닥에서 자라난다는 우람나무 이야기도

27쪽


나는 고래에게 가을날의 낙엽, 눈의 내음, 살랑바람에 흔들리는 풀과 7월의 태양 아래에서 즐기던 소풍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지

→ 나는 고래한테 가을잎, 눈내음, 살랑바람에 흔들리는 풀과 한여름해를 쬐며 즐기던 나들이를 이야기했지

28쪽


고래는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냈어

→ 고래는 끊임없이 물어봤어

28쪽


매일매일 사라지는 태양은 어디로 가는 거야? 거대한 공동묘지로? 끝없는 슬픔 속으로?

→ 꼬박꼬박 사라지는 해는 어디로 가? 커다란 두레무덤으로? 끝없이 슬픈 데로?

→ 날마다 사라지는 해는 어디로 가지? 큼직한 한무덤으로? 끝없이 슬픈 곳으로?

29쪽


고래의 미소를 보지 못한 사람은 유머라고는 없는 이야

→ 고래 웃음을 보지 못한 사람은 익살이라고는 없어

→ 고래 웃음을 못 본 사람은 재미라고는 없어

31쪽


얼마 만의 기별인지

→ 얼마 만에 듣는지

→ 얼마 만에 알리는지

→ 얼마 만에 여쭈는지

43쪽


이토록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 나뭇잎들을

→ 이토록 아름답게 죽어가는 나뭇잎을

→ 이토록 아름답게 시드는 나뭇잎을

49쪽


한낮의 태양이 데워놓은 따듯한 모래 위에 앉아서 아직도 살짝 젖어 있는 책장을 조심스레 넘기며 책을 읽기 시작했어

→ 한낮에 따뜻한 모래에 앉아서 아직 살짝 젖은 종이를 살며시 넘기며 책을 읽어

→ 낮볕으로 따뜻한 모래에 앉아 아직 살짝 젖은 종이를 가만히 넘기며 책을 읽어

72쪽


그 별들 중 여럿이 해적이 되는 꿈을 꾸게 될 거란 것을 알았어

→ 별 가운데 여럿이 바다도둑이 되는 꿈을 꾸겠지

→ 별 여럿은 바다앗이가 되는 꿈을 꿀 테지

73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우리말


 '-적' 없애야 말 된다

 전설적


 전설적인 동물이다 → 오랜 짐승이다 / 옛이야기 짐승이다

 전설적인 인물로 회자된다 → 엄청난 사람이라 말한다

 현재는 전설적인 일로 회상한다 → 이제는 옛얘기로 되새긴다

 이 일대에서는 전설적이었지 → 이 둘레에서는 대단했지


  ‘전설적(傳說的)’은 “전설과 같은. 또는 그런 것”을 가리키고, ‘전설(傳說)’은 “1. 옛날부터 민간에서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2. = 전언(傳言)”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옛날이야기·옛날얘기·옛이야기·옛얘기’나 ‘옛적이야기·옛적얘기’로 손질합니다. ‘옛말·옛날말·옛적말’이나 ‘옛말꽃·옛날말꽃·옛적말꽃’으로 손질하고, ‘오래말·오랜말·오래말꽃·오랜말꽃’이나  ‘남기다·남다·남은빛’으로 손질해요. ‘오래·오래도록·오래오래·오래날·오래나날·오랫동안·오래꽃·오랜꽃’이나 ‘오래가다·오래하다·오래되다·오랜·오래다’로 손질하지요. ‘드날리다·휘날리다·대단하다·어마어마·엄청나다·놀랍다’나 ‘이야기·얘기·수다’나 ‘말·말씀·말하다’로 손질할 만합니다. ‘별 ·별꽃·별님·별씨’나 ‘큰별·한꽃·한별·한빛’으로 손질해도 됩니다. ‘발자국·발자취·자국·자취’나 ‘때·해·해적이·지난날·지내다’로 손질하고, ‘조각·타령·있다·하다’이나 ‘살림글·살림얘기·살림자국·살림자취’로 손질하고요. ‘살림꽃글·살림빛글·살림노래·살림하루’나 ‘삶글·삶얘기·삶쓰기·삶자국·삶자취’로 손질하며, ‘삶적이·삶꽃글·삶빛글’이나 ‘새기다·새겨넣다·새겨놓다·아로새기다’로 손질해도 어울립니다. “이름을 올리다·이름이 오르다·이름이 들다·이름이 들어가다·이름을 남기다·이름이 남다”나 “제 이야기·제 얘기·제 생각”으로도 손질하고요. ㅍㄹㄴ



그분의 전설적인 행적을 더듬어볼 때 청학동을 더욱 신비롭게 한다

→ 그분이 휘날린 길을 더듬으면 푸른두루미골이 더욱 꿈같다

→ 그분이 삶자국을 더듬으면 푸른두루미실이 더욱 반짝인다

→ 그분 발자국을 더듬으면 푸른두루미마을이 더욱 다르다

《청학동 가는 길》(이림천, 정신세계사, 1998) 13쪽


전설적인 인물이셨다

→ 놀라운 분이셨다

→ 옛이야기 같으셨다

→ 드날린 분이셨다

→ 엄청난 분이셨다

《옛 농사 이야기》(전희식, 들녘, 2017) 177쪽


그 지방에서는 전설적인 인물인 모양이니

→ 그곳에서는 엄청난 사람인 듯하니

→ 거기에서는 대단한 분인 듯하니

《순백의 소리 20》(라가와 마리모/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20) 71쪽


저 깊은 심연에서부터 자라난다는 전설적인 거대 나무 이야기도

→ 저 깊은 곳에서 자라난다는 큰나무 옛이야기도

→ 저 밑바닥에서 자라난다는 우람나무 이야기도

《고래 도서관》(지드루·유디트 바니스텐달/박재연 옮김, 바람북스, 2023) 2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우리말

[영어] 유머humor



유머(humor) : 남을 웃기는 말이나 행동. ‘우스개’, ‘익살’, ‘해학’으로 순화

humor : 1. 유머, (재치 있는) 농담[익살]; 유머러스함, 익살스러움 2. (특정 순간의) 기분

ユ-モア(humor) : 유머. 해학. 익살



영어 낱말책은 ‘humor’를 ‘유머러스함’으로 풀이하기도 하는데 엉뚱합니다. 국립국어원 낱말책은 영어 ‘유머’를 올림말로 삼습니다만, ‘우습다·우스개·우스꽝스럽다·웃기다’나 ‘우스갯말·우스갯소리·우스갯글·우스갯짓’으로 고쳐씁니다. ‘웃긴글·웃긴말·웃음글·웃음말’이나 ‘웃다·웃기·웃음·웃음짓다·웃음노래·웃음가락’으로 고쳐써요. ‘웃음비나리·웃음거리·웃음가마리·웃음감’이나 ‘웃음꾼·웃음둥이·웃보’로도 고쳐쓰고요. ‘익살·익살맞다·익살궂다·익살스럽다’나 ‘익살글·익살말·익살질’로 고쳐쓸 만합니다. ‘장난·자파리·장난질·장난하다·장난스럽다’나 ‘장난꾸러기·장난쟁이·장난꾼·장난글·장난말’로 고쳐쓰지요. ‘재미·재미나다·재미있다·재미글·재미말’이나 ‘하하·하하하·하하거리다·하하대다·하하호호’로 고쳐써도 어울립니다. ‘글꽃·글놀이·놀이글·놀이말’이나 ‘말꽃·말놀이·말짓기놀이·말잇기놀이·말짓놀이·말잇놀이’로 고쳐써요. ‘선하다·서낙하다·선’으로 고쳐쓰며, ‘신·신나다·신명·신명나다·신바람·신바람나다’나 ‘신꽃·신빛·신명꽃·신명빛·신바람꽃·신바람빛’으로 고쳐써도 됩니다. ㅍㄹㄴ



할머니는 이렇게 멋진 유머를 할 줄 알았고

→ 할머니는 이렇게 익살을 멋지게 하고

→ 할머니는 이렇게 우스개가 멋지고

→ 할머니는 이렇게 재미난 말을 하고

→ 할머니는 이렇게 웃길 줄 알고

《할머니》(페터 헤르틀링/박양규 옮김, 비룡소, 1999) 19쪽


자꾸 웃는데 말야, 유머소설인가?

→ 자꾸 웃는데 말야, 익살글인가?

→ 자꾸 웃는데 말야, 웃음글인가?

→ 자꾸 웃는데 말야, 웃긴글인가?

《기계 장치의 사랑 1》(고다 요시이에, 세미콜론 , 2014) 101쪽


유머는 그렇지 않다. 익살과 해학과 삶의 희로애락이 적절히 뒤범벅된 익살스러운 농담을 의미한다

→ 익살은 그렇지 않다. 웃음과 살아가는 기쁨슬픔이 알맞게 뒤범벅된 깊은 말을 뜻한다

→ 웃음은 그렇지 않다. 재미와 놀이와 살아가는 기쁨슬픔이 알맞게 섞여 노니는 말을 뜻한다

《언어의 온도》(이기주, 말글터, 2016) 171쪽


나는 개 명랑한 개 유머를 도통 모르는 당신은

→ 나는 개 밝은 개 익살을 영 모르는 그대는

→ 나는 개 밝은 개 웃음을 도무지 모르는 그대는

《멜랑콜리》(채상우, 최측의농간, 2018) 54쪽


딱 하나다. 유머.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대리만족

→ 딱 하나다. 익살. 그리고 이를 덤으로 즐긴다

→ 딱 하나다. 웃음. 웃음으로 벌충한다

→ 딱 하나다. 우스개. 웃으면서 채운다

《오늘도 삶을 읽어나갑니다》(이성갑, 스토어하우스, 2020) 61쪽


특유의 유머 감각을 생존전략으로 삼아 나름 잘 적응하였습니다

→ 남달리 웃기면서 제 나름대로 잘 살아남았습니다

→ 유난히 웃기면서 제 나름대로 잘 살아왔습니다

《민감한 사람들을 위한 지구별 가이드》(멜 콜린스/이강혜 옮김, 샨티, 2021) 17쪽


고래의 미소를 보지 못한 사람은 유머라고는 없는 이야

→ 고래 웃음을 보지 못한 사람은 익살이라고는 없어

→ 고래 웃음을 못 본 사람은 재미라고는 없어

《고래 도서관》(지드루·유디트 바니스텐달/박재연 옮김, 바람북스, 2023) 3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