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저기에 가면



저기에 가면 어쩐지 다르리라 여길 수 있어. 저기에 가 보니 그야말로 다를 수 있어. 애써 저기에 가 보는데, 네가 있던 데랑 같거나 썩 나을 바 없을 수 있어. 너 스스로 네가 선 곳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안 심으면, 네가 어디로 가 본들 다 마찬가지야. 누구나 스스로 온마음과 온몸을 하나로 모아서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으니, 언제 어디에 있거나 무엇을 하든 활짝 웃고 노래하지. 사랑씨앗을 안 심기에 자꾸 “저기에 가면” 같은 말을 해. “서울에 가면”이나 “높은 자리에 앉으면”이나 “큰돈을 쥐면”도 다 같은 굴레야. 씨앗은 어느 곳에서든 뿌리를 내려. “더 좋은 곳”을 가려서 뿌리내리는 씨앗은 없어. 왜 그런 줄 아니? 씨앗이 싹트며 뿌리를 내릴 적에는, “씨앗이 깃든 곳”부터 바꾸거든. 씨앗은 천천히 자라는 동안 흙을 가꿔. 푸나무가 자라는 곳은 어디이든 어느새 흙부터 살아나. 그래서 곧 지렁이가 찾아오고 풀벌레도 찾아오고 벌나비에 개구리에 매미에 새에 줄줄이 찾아온단다. 아주 조그마한 씨앗 한 톨은 허허벌판이거나 모래벌이거나 죽은땅조차 천천히 살리는 새빛을 심는다고 할 수 있어. 자, 그러면 사람은 무엇을 할까? 사람은 이 별을 사랑으로 살리는 몫이야. 곰곰이 보면 ‘사슬(감옥)’이자 ‘불늪(지옥)’이라 할 “딱딱하게 메마른 돌무지(지구)”이던 곳인데, 숱한 사람은 천천히 차분히 사랑씨를 ‘말’로 심고 ‘눈’으로 돌보며 살아왔어. 파란하늘과 푸른들과 파란바다와 푸른메는 모두 ‘풀꽃나무씨’가 사랑으로 퍼지기를 바란 사람들이 ‘말씨’와 ‘눈빛’으로 가꾼 보람이란다. 저기에 가면 다르지 않아. 늘 바로 이곳에서 하면 돼. 2026.3.28.흙.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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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2612 : 사람들의 기억 속 조금이라도 덜 일어날 것 생각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더 오래 남아 있을수록 이런 가슴 아픈 일이 조금이라도 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우리 마음에 더 오래 남을수록 이 가슴아픈 일이 더 일어나지 않으리라 봅니다

→ 우리가 마음에 더 오래 남길수록 가슴아픈 일이 더 안 일어나리라 봅니다

《맑음이》(로아·헌수, 원더박스, 2025) 36쪽


“사람들의 기억 속에”라 하면 마치 나하고 네 일이 아닌 남을 말하는 셈입니다. 이 보기글은 “우리 마음에”나 “우리가 마음에”로 바로잡습니다. 옮김말씨 “남아 있을수록”은 ‘남을수록’이나 ‘남길수록’으로 손봅니다. 그런데 “가슴아픈 일이 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처럼 적은 대목은 아리송합니다. “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기”라면 앞으로도 가슴아픈 일이 일어나야 한다고 밝히는 셈이거든요. “더 일어나지 않으리라 봅니다”나 “더 안 일어나리라 봅니다”로 고쳐써야지 싶습니다. ㅍㄹㄴ


기억(記憶) : 1.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2. [심리] 사물이나 사상(事象)에 대한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 3. [정보·통신] 계산에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시간만큼 수용하여 두는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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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2613 : 여행지 누군가 신세 -기


여행지에선 늘 누군가에게 신세 질 일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 낯선 곳에선 늘 누구한테 여쭐 일이 생기게 마련이니까

→ 나들이하면 늘 이웃이 돕게 마련이니까

→ 이웃마을에선 늘 고마울 일이 있으니까

→ 머물면서 늘 빚질 일이 있으니까

《안녕이라 그랬어》(김애란, 문학동네, 2025) 92쪽


나들이를 하는 곳은 이웃마을이거나 낯선 곳입니다. 우리가 찾아가는 곳이며, 머물거나 지내거나 보내는 곳입니다. ‘누군가에게’하고 “생기기 마련”은 틀린말씨이니 ‘누구한테’나 “생기게 마련”으로 바로잡는데, 낯선 곳이나 나들이하는 길이라면 ‘이웃한테’로 손볼 만합니다. 이 보기글이라면 덜어낼 수 있고, “누군가에게 + 신세 질 일이 + 생기기 마련이니까”를 통째로 “이웃이 + 돕게 + 마련이니까”나 “고마울 + 일이 + 있으니까”나 “빚질 + 일이 + 있으니까”로 고쳐써도 됩니다. ㅍㄹㄴ


여행지(旅行地) : 여행하는 곳

신세(身世) :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거나 폐를 끼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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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2614 : -의 -ㄴ 소식 것 잠시


보라의 새로운 소식에 들떴던 것도 잠시

→ 보라가 새로 들려준 말에 살짝 들떴지만

→ 보라가 새로 알린 말에 조금 들떴으나

《행운이 구르는 속도》(김성운, 사계절, 2024) 42쪽


새롭기에 “새로운 말”이나 “새로운 일”이라 합니다. 이처럼 쓰는 말씨는 부드럽습니다. 이와 달리 일본옮김말씨인 “-의 + -ㄴ + 한자말”인 얼개는 얄궂어요. “보라의 + 새로운 + 소식에”라면 “보라가 + 새로 + 알린 말에”로 손질합니다. 옮김말씨인 “들떴던 + 것도 + 잠시”는 “살짝 들떴지만”이나 “조금 들떴으나”로 손질합니다. ㅍㄹㄴ


소식(消息) : 1.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사정을 알리는 말이나 글. ‘알림’으로 순화 ≒ 성문(聲問)·식모(息耗)·풍신(風信) 2. 천지의 시운(時運)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순환하는 일

잠시(暫時) : 1. 짧은 시간 2. 짧은 시간에 ≒ 수유(須臾)·일삽시(一?時)·편시(片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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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2615 : 환대받는 기분을 느끼 -겠습


이 글을 읽는 동안 환대받는 기분을 느끼셨다면 더없이 기쁘겠습니다

→ 이 글을 읽는 동안 반갑다고 느끼신다면 더없이 기쁩니다

→ 이 글을 읽으며 반가우셨다면 더없이 기쁩니다

→ 이 글을 반갑게 읽으신다면 더없이 기쁩니다

《행운이 구르는 속도》(김성운, 사계절, 2024) 138쪽


우리말 ‘반갑다·반기다’가 있습니다. 밝게 맞이한다는 뜻입니다. 만나면서 서로 밝게 웃음짓거나 피어난다는 뜻이에요. ‘반하다’도 나란한 말결입니다. 거의 일본말씨라 할 ‘환대·환영·환호’는 이제 털어낼 만합니다. “환대받는 + 기분을 + 느끼셨다면”은 일본옮김말씨에 겹말씨이기도 합니다. 이 보기글은 “더없이 기쁘겠습니다”로 맺는데, ‘-겠-’을 덜어야 어울립니다. ㅍㄹㄴ


환대(歡待) :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함

기분(氣分) : 1. 대상·환경 따위에 따라 마음에 절로 생기며 한동안 지속되는, 유쾌함이나 불쾌함 따위의 감정 ≒ 기의(氣意) 2.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나 분위기 3. [한의학] 원기의 방면을 혈분(血分)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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